2013. 1. 27. 주일설교

당신의 일생은 한 폭의 그림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9~10)

<서론>
오늘 저는 “당신의 일생은 한 폭의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였었습니다. 미술 숙제를 해오는데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그림이 안돼요. 그런데 내 친구 중에 정도형이라고 인물도 잘 나고 머리도 좋은 친구인데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는지 모르겠어요. 도화지에 슥슥슥 그리면 멋진 그림이 되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림을 슥슥슥 그려서 구겨서 도화지를 쓰레기통에 버려요. 그래서 내가 뛰어가서 주웠죠. 그것을 잘 펼쳐가지고서 조용기라고 이름을 써서 선생님께 숙제를 내놓았습니다. 선생님이 날 보고 오라고 그래요. 그래서 교무실에 불려가니까 그 그림을 내놓고 이게 네가 그린 그림이냐? 예. 야 이놈아, 이게 어떻게 네 그림이냐? 그러더니 도화지를 하나를 내놓더니 여기에 그림 한번 이 그림대로 그려 보아라. 기가 콱 막힙디다. 그것 보아도 그렸는데 얘는 도화지에 가득차게 그림을 그렸는데 나는 이 모서리에 조그맣게 그려 놓았어요. 도형이 이리 오너라. 그러니 정도형 그림 주인이 왔어요. 자기 그림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것은 말 안하고 너 이 그림 한번 그려 보아라. 슥슥슥 그리는데 꼭 그 그림과 같은 그림 그렸다 말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나를 보시고서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네 실력대로 살아야지 남의 실력을 훔쳐서 살려고 하면 낭패를 당한다. 너 이번 미술 점수는 빵점이다. 두고두고 제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내 그림 아닌 남의 그림을 훔쳐서 내 그림으로 만들다가 실패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론>
1. 한 폭의 그림 같은 우리 일생
여러분, 우리 일생을 뒤돌아보면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이 살아주지 못해요. 다른 사람 인생을 내가 산 인생으로 가짜로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고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이 살아주지도 않아요. 내 인생은 내가 사는 한 폭의 그림인 것입니다. 내가 살아온 배경이 화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를 들어 시몬 베드로를 보면 시몬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갈릴리에 있는 어부였습니다. 학교 공부도 못하고 무식하고 물고기나 잡고 술이나 한잔 마시면 주먹질하고 싸움하고 윽박지르는 그러한 저질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시몬이었습니다. 갈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갈대 갈대 갈대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림을 그릴 때는 갈대인생의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예수님이 그린 시몬의 후반기 인생은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 반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반석 같은 제자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기둥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린 그림은 그 그림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로 19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것은 예수님이 시몬을 향해서 하신 말씀인데 어떤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을 예언해 주신 것입니다. 내 인생의 그림이 변화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그림이 보잘 것 없는 그림이요 사람들이 이맛살을 찌푸리는 인생이라도 아름다운 그림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그림을 변화시키는 변화의 틀을 주님이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시몬을 변화시켜서 베드로라는 유명하고 놀라운 그림을 그리게 한 것처럼 여러분과 나를 택해서 여러분 화폭에 주님이 직접 화필을 가지고 그려 넣어 훌륭한 인생의 그림을 그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내 인생이 이렇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지실 때 어느 특정인을 위해서 걸머지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생들을 불러서 주님께서 십자가의 그림에 화합되게 만들어서 변화된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이미 그려놓으신 내 인생
예수님을 통한 대속 받은 인생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새로운 그림을 그립니다. 이번 그림은 배경이 십자가고 물감이 예수님의 보혈이고 그 결과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을 통한 대속 받은 인생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모두다 차별 없이 이 자리에 잘났던 못났던 공부를 잘했던 못했든 훌륭한 집안에 태어났든 못 태어났든 상관이 없어요. 우리는 전부 시몬과 같은 인생입니다. 갈대입니다. 그러나 갈대로 남아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우리를 초청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십자가로 초청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게 하면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시몬을 베드로로 변화시킨 것처럼 새로운 그림을 그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습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용서와 의의 선물을 받은 놀라운 인생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죄사함을 받은 인생
로마서 5장 17절에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용서와 의를 받고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모습으로 주님이 그려주는 것입니다.
허물을 청산 받고 거룩한 인생을 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인데 허물과 죄를 벗어날 도리가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가 내가 아무리 주를 믿고 거룩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결심을 하고도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면 안 되는 인생을 어떻게 할 것이냐. 내가 그림을 그리니까 늘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인생의 그림밖에 못 그리는데 주님께 화필을 맡기면 죄를 이기고 허물을 벗은 인생을 주님이 그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려 주시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5절로 7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힙입어서 의롭다 하심을 얻고 거룩한 삶을 살고 나중에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힘으로 여러분 의롭거나 거룩하게 안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데 그것은 내가 내 인생을 그려나가면 절대로 성령이 역사하지 않아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내 인생을 이끌어 나가면 항상 엉터리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지 말고 나를 주님께 내어 놓아서 주님이 주인이 되게 하시면 주님이 화필을 들면 여러분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성령으로 의롭게 살도록 그려 주시고 거룩하게 살도록 그림을 그려주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살지 말고 성령의 힘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도 내 힘으로 살려고 하면 항상 내가 그림을 그려야 돼요. 예수님을 내 주인으로 완전히 모시면 주님이 내 그림을 그려 주시기 때문에 내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나는 구경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 할 일이 없어요. 주님이 일을 하시는데 내가 무슨 할 일이 있습니까? 주님, 할 일을 들여다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박수치고 아멘하고 할렐루야 하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을 주님이 살리셔서 성령을 부어 주셔서 거룩한 삶을 사는 그림을 그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의 치료와 건강한 삶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은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내 인생은 관절염, 폐병, 암, 신장염, 온갖 병이 걸려 고통을 당할지라도 내가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한 그림을 아무리 그리려고 해도 안 그려져요. 건강한 그림이 안 그려집니다. 그러나 주님께 화필을 맡기면 한번에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 건강한 모습을 그려 놓습니다. 네가 눈에는 아주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나는 너를 위해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 병을 법적으로 청산해 버렸다. 내가 너를 그린 그림은 건강한 그림이다. 그래서 주의 그림을 보면 우리는 할렐루야~ 나는 건강합니다. 믿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로 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한번 손을 내보십시오. 손을 얹어 보십시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참말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상이요 거짓이 아닌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낫느냐. 믿기만 하면 낫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주셨고 우리가 말씀을 믿으면 말씀이 믿음을 통해서 현실화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것은 현실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당에 와 있다는 것은 현실입니다. 여러분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도 믿으면 그와 똑같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초월적인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법칙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적인 현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이 약한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이 너를 고쳤으니 평안히 가라.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화 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이 하신 일을 믿기만 하면 주님이 여러분 믿음을 받아서 현실에 건강한 모습을 그려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이 없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권력이나 힘, 세상적인 부귀나 영화가 없다고 해서 없는 줄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도 말씀 가지지만 말씀은 현실화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세상의 권세가 없어도 믿음의 권세가 있고 세상의 건강이 없어도 믿음으로 건강이 있고 세상의 돈이 없어도 믿음으로 돈이 있고 세상으로 부자가 아니라도 믿음으로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가 받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하고 번창케 하리라. 그 복을 우리가 받겠다고 하는데요. 아브라함의 믿음을 받은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에게 준 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해방되고 형통한 삶을 하나님은 여러분 마음에 그려놓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도 같이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야~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하시더니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착한 일을 하겠다는 동기만 올바르면 그 다음에는 모든 일에 주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믿으면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냥 그림으로 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실상으로 믿으면 현실화 된다고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마음에 가난의식, 실패의식, 궁핍의식을 버리고 나는 항상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후반기에 주님께서 그리시기를 원하시는 인생은 성령으로 이끌리는 삶인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희망찬 꿈을 주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꿈을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겠다. 꿈과 환상은 현재일이 아닙니다. 미래 가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 가상적인 것이지만 꿈과 환상을 마음속에 품고 기도하고 있으면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냥 그대로 믿으면 현실화되지만 그 이외의 것은 내 마음에 소원이 있어 소원이 이루어진 모습을 꿈꾸고 그것을 기도하고 믿으면 그것이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찬 꿈이 있는 삶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가져라. 소망을 가져라. 낙심하지 말라. 바라는 것을 꿈꿔라. 바라는 것을 꿈꿔라.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개인이나 나라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것은 예수 믿는 나라와 개인은 꿈을 마음속에 품기 때문인 것입니다. 꿈을 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입니다. 사람이 꿈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끝까지 그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따라오시지만 꿈을 포기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했는데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어도 하나님의 꿈이 있으니까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위해 성령이 임하여 계십니다. 왜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주를 믿고 앉아 있지요? 성령이 여러분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못 느껴도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성령이 운행하기 때문에 여러분 예수를 믿게 된 것이에요. 안그러면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 성령이 운행하시면 흑암은 광명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생명으로 추는 미로 변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예비하신 것은 우리 눈으로 안보이고 우리 귀로 안 들리고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없는데 이 하나님이 예비한 것을 그려내는 분이 누구냐. 우리와 같이 계신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만 버리지 않으면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지혜와 총명과 재능과 모략을 주셔서 그림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꿈을 따른 그림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께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셔서 여러분에게 예비해 놓으셨는데 이 예비는 성령이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에 그려 넣을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빛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오기 전에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캄캄 절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요 우리의 생명이시오 우리의 구원이시오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빛 아래서 빛의 열매로 착하게 살고 의롭게 살고 진실하게 살아 이렇게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도록 성령으로 주님이 그림을 그려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와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 이 열매를 내 힘으로 어떻게 맺습니까? 포도나무에 가지가 자기 마음대로 열매를 맺습니까?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포도나무에서 물기와 양분이 들어와서 열매를 맺지요. 자기는 열매 못 맺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이런 열매 못 맺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서 예수께 꽉 붙어 있어서 예수님 믿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있으면 저절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이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말하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 십자가, 나의 멍에 밑에 들어와서 나의 멍에를 지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의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주님은 십자가의 멍에, 여러분 인생의 짐을 다 짊어지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과 여러분의 짐과 여러분의 문제와 고통, 괴로움 하나 없이 다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고 내 십자가 멍에 밑으로 들어오너라. 짐은 내가 걸머지고 너는 내 밑에 들어와서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 책임지시니 여러분 책임질 것 없습니다. 여러분 할 일 없으니까 뭘 합니까? 믿고 따라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 일을 다 돌보아주면 여러분 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뭐합니까? 날 따라만 가면 되는 거지요. 우리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너희 짐을 내가 다 맡았다. 네 일도 내가 맡고 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다 맡았다. 그러므로 이제 네가 할 일이 없으니까 나를 믿고 따라만 오너라. 참 좋은 말인데 말은 쉬운데 실제로는 힘들어요. 따라오라 하는데 주님 자꾸 짐을 내게 도로 주십시오. 주님 불안해서 못 맡겨 놓겠습니다. 주님 내게 도로 주십시오. 반쯤은 내가 맡고 반쯤은 주님이 맡으십시오. 혹시 주님이 못 맡으면 내가 대책을 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부 그런 심정으로 반신반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완전히 믿는 것이 아니고 반신반의.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반신반의. 그러니까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맡기는 것도 아니고 맡기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도대체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와서 맡기려면 딱 맡겨라. 죽으면 죽으리라.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 모르겠습니다 맡아 주시옵소서. 그러면 주님이 맡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 젊을 때 30,40대 팔팔 할 때는 인생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아까운데 안 맡아 주면 나만 절단나지 않느냐. 그래서 레드고로 안 맡아주면 내가 해야지. 그래서 30%만 맡으십시오. 70%는 내가.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같이 나이가 70이 넘은 사람은 이판 저판 끝판이다. 맡기면 그대로 맡겨버려라. 지금까지도 못 맡기면 이제는 맡길 시간이 없습니다. 젊을 때는 반신반의해서 못 맡기고 늙어서도 못 맡기면 무덤에 가서 맡기겠습니까? 무덤은 맡길 곳이 못되는 것은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적막강산입니다. 여러분 공동묘지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 사랑한다고 아무리 칭찬해 보십시오. 무슨 말이 있는가. 미운 사람보고 죽일 놈 살릴 놈 해도 아무 말도 안합니다. 살아있을 동안에 주님을 믿어야 되는데 여러분 중에 다 50이 넘은 분 한번 손들어 봐 주십시오. 굉장히 많으시네. 여러분에게는 내가 특별히 말합니다. 이판 저판입니다. 여러분 힘으로 해봤자 별 볼일 없어요. 맡겨버리십시다. 우리 한번 예수님께 콱 맡겨 버리십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책임지겠다고 하시는데 여러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몸을 찢고 피 흘려주셔서 사랑해주신 그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분이 믿으라고 하는데 그런 분 못 믿으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한번 믿어 보겠습니다. 아멘!

3. 내 인생의 그림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그래서 내 인생의 그림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그려놓으신 십자가 구원 받은 인생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자 그 말인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서 다 매고 오면 다 나에게 대조해서 새로운 그림을 그려 줄테니까 내게 와서 맡기라 하는데 오늘 이 시간에 십자가에 나와서 주님께 내 인생을 맡기면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 인생을 그려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그려 놓으신 십자가 구원받은 인생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새로운 선물로 인생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행함으로 만드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이 예비한 인생으로 선물로 인생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로 10절 본문을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입이 딱 벌어집니다. 나는 이런 사람으로 생각 안했는데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요. 언제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까?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십자가를 통해서 이런 그림을 그려주겠다. 이런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그림이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마리아여인이 남편 없이 희망 없이 살았는데 물 길러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났다가 전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변화되었어요.
누가복음 5장 32절에 주님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나는 죄가 너무 많아서 주님이 나 같은 사람 안 돌봐 줍니다. 주님은 죄인 구원하러 왔지 의인 구원하러 안 왔습니다. 어부가 바닷가에 나가는 것은 모래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바지락 주으러 가는 것입니다. 바지락이 많다고 해서 아이 발에 밟혀서 싫다. 바지락이 나 때문에 미안합니다. 그렇게 할 것 없이 바지락 주으러 어부가 나오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온 것은 죄인을 찾으러 나온 것입니다. 죄인 있는 곳에 예수님 계신다. 병자 있는 곳에 예수님 계신다. 가난이 있는 곳에 예수님 계신다. 죽음 있는 곳에 예수님 계신다. 그런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주님 오신 것입니다. 변화 받을 필요가 없으면 뭐하러 오셨습니까?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데 변화시키는 예수가 필요한 것입니까? 패션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오늘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올 때마다 옷 패션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온다고 그 사람이 원망합니까? 원망 안합니다. 봄은 봄이라서 좋고 여름은 여름이 좋고 가을은 가을이라서 좋고 겨울은 겨울이라서 좋은 것처럼 주님은 여러분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변화시키는 역사를 베풀 재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죄인은 의인으로 바꿔 주고 허물 많은 사람은 거룩한 사람으로 바꿔 주고 병든 자는 건강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고 저주받은 사람은 복 받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죽은 사람은 영생을 얻게 만들어 주고 절망은 소망으로 기쁨이 없으면 기쁨을 주는 변화시켜 주는 우리 주 예수님이 그를 위해서 왔기 때문에 여러분 이 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곳에 계셔도 그곳에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늘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절대로 옛날 사람으로 남아있지 않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왜냐하면 주님 자체가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들어오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슬로우, 어떤 사람은 퀵퀵 하지만 퀵퀵 안 된다고 슬로우 하는 사람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화필을 주님께 맡기고 내가 내 주장대로 그리지 마십시다. 내 주장대로 그리면 인생을 마지막에 망칩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했습니다. 주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로 옮기시옵소서.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그림인 것입니다. 내 마지막 그림은 십자가에 달리지 않고 이 땅에서 엘리야처럼 들려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리기를 원하는 최후의 그림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내 뜻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그러나 그림을 내가 그리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 뜻대로 그리십시오. 주님이 그린 그림은 십자가에 몸찢고 피흘려 인류를 위해서 대신 고통을 당하라. 비참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주님이 명령을 했지만 주님이 맡겼으므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8절로 9절에 한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길보다 높으며 우리의 생각보다 높으니까 우리 생각대로 우리 인생을 그리지 말고 하나님께 화필을 맡기면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그림을 그리시는 것입니다. 맡겨 놓고 난 다음 왜 이렇게 합니까? 도로 내 놓으십시오. 화필 도로 내놓으십시오. 그렇게 하지 말고 나는 생각해 보아도 하나님 왜 이렇게 그림을 그리나 원망스러울 때가 있을지라도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한 의지를 가지고 계시므로 맡기면 하나님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3장 5절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수를 놓는 것과 같습니다. 요사이는 여러분 수를 놓지 않잖아요. 옛날에는 처녀들이 시집가기 전에 베개 옆에 그것을 뭐라고 합니까? 수를 놓는데 수놓는 것 보면 희한합니다. 나는 우리 누님이 수를 많이 놓으셨는데 누님이 수놓는 것을 드러누워서 구경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폐병으로 제가 아파 누워 있을 때 피를 토하고 기침하고 있어서 할 일이 없어서 누워 있으면 누님이 날 돌본다고 옆에 앉아 계시면서 수를 놓는데 수틀 뒤에 보면 엉망진창입니다. 노란 실, 빨간 실이 왔다갔다 하고 누나가 수를 뭐 저렇게 못 놓냐. 누나가 수를 놓는게 아니라 엉망진창이다. 좀 기다려봐라. 기다려봐라. 시간이 다 지나고 난 다음 탁 돌리니까 와~ 꽃피고 나비가 날고 시냇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동산에 나무가 푸르고 기가 막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수틀에 여러분 수를 놓고 계세요. 여러분 보기에는 엉망진창인데 하나님이 나중에 깜짝 놀랐지? 봐라! 기막힌 인생으로 만들어 놓고 마는 것입니다. 한번 박수 크게 칠까요?
로마서 8장 28절로 30절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러분을 예수님 모습 닮게 하기 위해서 미리 정해 놓았습니다. 몇만년 전에 몇십만 년 전에 우주가 생기기 전에 하나님이 정해 놓으시고 정해 놓은 여러분을 때가 오매 부르시고 부르신 여러분을 예수의 피로써 은혜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여러분을 천당으로 영화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고 감사할 따름인 것입니다. 주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 하셔서 은혜로 이루어 놓으신 것을 여러분은 믿고 감사할 따름인 것입니다.

<결론>
내 자신의 일생을 내가 그리면 휴지통에 버린 구겨진 낙서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종말이 휴지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을 주님의 화필로 그리도록 맡기면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하나님이 그림을 그려놓고 사래는 사라로 그리고 야곱은 이스라엘로 시몬은 베드로로 사울은 바울로 변화시키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두 가지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향해서 너 인생을 내게 맡겨라. 네 주인이 되어 주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은 엄청나게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 놓아서 몸 찢고 피 흘려 대속해 주신 그만한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맡길만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플러스해서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전능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주님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맡겨 놓으면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일도 내 짐도 내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맡길 수가 있으니까 믿고 맡기는 인생을 사셔서 주님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놓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