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3. 성찬주일설교

네 짐을 야훼께 맡겨라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서론>
오늘 저는 “네 짐을 야훼께 맡겨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자동차가 없었어요. 간혹 한 대의 자동차가 지나가면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말고 선생님과 함께 뛰어 나가서 자동차 구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 매연이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어요. 전부 자동차 한 대가 가면 지나가면서 가스냄새 풍긴 것을 킁킁 아주 향기로는 냄새가 났습니다. 그때 우리가 버스 정류소나 기차 정거장에 가면 지게꾼들이 많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요. 여행하는 분들이 짐을 가지고 나오면 서로 짐을 짊어지고 가려고 쟁탈을 했습니다. 짐을 맡기면 집까지 걸머지고 와서 짐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요사이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때의 일이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네 짐을 내게 맡기라고 하셨는데 그 짐꾼들이 생각이 나요. 주인은 걸어가고 짐은 짐꾼이 걸머지고 가는데 천지를 지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짐을 맡기면 짊어지고 가시겠다고 하시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매일같이 우리 짐을 지시는 야훼를 찬양할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의 짐을 하나님이 지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짐을 야훼께 맡기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잊지 마시고 크고 적은 짐을 대신 짊어지고 집에까지 갖다 주고 하시는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야 될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께 짐을 못 맡기게 방해하는 마귀
그런데 하나님께 짐을 못 맡기게 하려는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는 성경에는 악한 자, 유혹하는 자, 이 세상 임금, 세상 신, 공중 권세 잡은 자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어찌하든지 우리가 하나님께 짐을 맡기지 못하게 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짐을 맡기면 우리는 인생을 평안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샘이 나서 짐을 못 맡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하는 것은 우리가 항상 짐을 바라보고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 심신의 고통, 저주와 죽음의 짐을 바라보고 벌벌 떨고 하나님께 감히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빠져 들어간 것처럼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에 빠져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마귀는 거짓말쟁이고 거짓의 아비가 되었는데 항상 우리에게 거짓말을 해서 협박과 공갈을 하고 불안과 공포에 떨고 절망의 바다에 빠져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요 10:10)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해주지 않습니다. 마귀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무슨 너의 짐을 져주노? 네 짐 네가 짊어져라. 하나님은 안 도와주신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짐을 짊어지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번민하고 고통하고 발버둥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수작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위 사람을 통해서 부정적인 조언을 하고 낙심하게 합니다. “너 큰일 났다. 이번에는 너 절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요번에는 네가 낭패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를 훼방하고 있다. 고소하고 있다.” 불안과 공포를 주어서 낙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이 한마디 말이 굉장히 위로가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것을 들으면 천길만길 떨어지며 마음에 낙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다가 일이 그르치고 안 되면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렇게 하시냐.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잘 믿고 주일날 예배도 잘 드리고 십일조도 드리고 전도도 하고 기도도 잘 했는데 왜 내게 이런 고통이 다가오느냐. 원망과 탄식합니다. 우리는 짧게 보지만 하나님은 멀리 바라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멀리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일일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조건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몰라도 좋게 만들어 줄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앞에서 못하게 마귀가 훼방하는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나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마귀는 대적 안하면 안 물러갑니다. 쫓아내야 돼요. 단호하게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쫓아내야 돼요. 여러분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분 한번 손들어봐 주십시오. 별로 많지 않아요. 꼭 쫓아내야 돼요. 뭘 마귀가 붙을라고... 반드시 붙습니다. 마귀는 뭐와 같으냐. 세상의 먼지와 티끌과 같습니다. 아무리 내가 깨끗하게 몸을 털고 다녀도 먼지와 티끌은 묻는 것처럼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억압하고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길을 빼앗아가버리고 믿음과 용기를 빼앗아가고 희망을 빼앗아가고 혹은 단잠을 빼앗고 건강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저도 매일 저녁 마귀를 쫓아냅니다. 희한하게 내가 잠자리에 들어갈 때 마음이 무겁고 몸이 으스스하고 괴롭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왜 이러느냐. 마귀에게 눌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고 한 몇 번 대적하면 마귀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저는 마귀가 들어올 때는 왜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나갈 때는 몸에 느껴요. 어떤 때는 전율이 나오고 마귀가 나가는 증거가 뚜렷이 보입니다. 마귀가 다 나가면 그 전율이 다 그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의 눌림이 떠나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도 편안해지고 단잠도 자고 좋아지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나쁜 일이 생기면 마귀가 왔다고 신호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이름으로 대결하면 그 마귀는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너희가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했으므로 귀신을 쫓아내시기 바랍니다. 뭐 그런 일하면 무식한 소리한다고 하는데 무식한 소리 아닙니다. 실제는 실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서 마귀를 대적하므로 말미암아 이기는데 그것은 늘 우리가 주님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마귀의 훼방을 내어 쫓는 것입니다. 우리 선교사들이 처음 왔을 때는 선교부에서 자동차를 주니까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녔어요. 그러면 동네 온 사람들이 다 와서 따라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길을 걸어가는데 할머니 한분이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머리에 이고서 가기에 차를 대고서 “할머니, 타십시오.” “아이구 미안해서 어떻게 하노.” “타십시오.” 그래서 선교사 차에 탔어요. 그런데 선교사가 운전하다가 보니까 뒤에 화닥딱 화닥딱 하거든. 그것 왜 그런가 보니까 짐을 머리에 이고 차에 앉아있는데 그때는 차길이 포장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차가 많이 요동하니까 막 흔들고 넘어지고 “할머니, 그 짐을 내려 놓으십시오.” 그러니까 “아이구 벼룩도 낯짝이 있지. 몸 실어주는 것도 그런데 짐까지 어떻게 내려놓느냐.” 끝까지 짐을 안내려 놓습니다. 몸 태어주는 것도 고마운데 짐을 어떻게 내려놓느냐. 우스운 일이지요. 저는 이 선교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한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너 십자가에 맡겨라.” “주님, 십자가를 믿습니다.” 그러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다 안고 있습니다. “그 짐도 맡겨라.” “아이구 내 몸을 맡아 주는 주님 감사한데 짐까지 어떻게 맡깁니까? 미안해서 못하겠습니다.” 미안하기는 뭘 미안해. 이미 내가 주님을 믿었을 때는 주님이 다 내 짐 맡은 것인데...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구인데... 예수님이 우리 짐을 맡을 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인생의 짐도 맡은 것입니다. 아무리 안 맡아도 주님이 맡겨 놓은 것이니까 오늘부터 마음 푹 놓으시라구요. 죄와 허물, 질병과 저주, 절망과 죽음, 공포, 괴로움, 주님이 다 맡아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내려만 놓으면 되는 것인데 자꾸 내가 이고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짐을 맡길 수 있는 방법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짐을 맡길 수 있는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이 땅에 왜 와 계십니까? 하나님이 할 일이 없어서 와 계십니까?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악한 세상에 와 있습니까? 악을 선으로 바꾸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원한이 있는 곳에 은혜로 바꾸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병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저주를 없애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어둠을 없애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병이 있는데 와 계셔야 되고 어둠이 있는데 와 계셔야 되고 고통이 있는데 와 계셔야 되고 절망이 있는데 와 계셔야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 나는 고통에 처해 있으니까 하나님은 나와 같이 아니 하신다. 웃기는 소리하네요. 평안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와서 뭘 해줄꼬? 해줄 것 없어요. 평안해요. 그럴 것 아닙니까?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뭐 해 줄꼬? 아이구 고통에서 건져 주십시오 하나님! 그럴 것 아닌 것입니까? 반색을 하고 환영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바로 어두운데 빛을 주기 위해서 오시고 굶주린 곳에 먹을 것을 주기 위해서 오시고 아픈 곳에 고침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는 것입니다. 의사는 병든 자가 있어야 의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다 영육 간에 병들었는데 하나님은 의사로 오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도 우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광을 나타내시기 원하는 것이므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고 어둡고 캄캄한데 처할 때 하나님이 꼭 같이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 말씀하신대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주님이 함께 계시므로 우리가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주님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와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모르니까 불안하고 공포에 떨고 뒤로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가 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어요.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 채찍으로 때리는 하나님, 나에게 책잡는 하나님, 날 벗기는 하나님, 지옥 보낸다고 협박하는 하나님,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그리는 그림을 잘못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반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인생은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보면서 삽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살고 건강해지는 것을 기대하고 살고 사업이 잘될 것을 기대하면서 살고 시험에 합격할 것을 기대하고 살기 때문에 이 짐을 져주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늘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별들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아들을 기대한 것처럼 바라보아야 돼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고 동쪽을 바라보고 서쪽을 바라보고 남쪽을 바라보고 북쪽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속으로 늘 바라보아야 돼요. 불행을 바라보지 말아야 돼요. 우리는 종종 불행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안 될 것, 내가 망할 것, 내가 고통당할 것, 배신을 당할 것, 슬픔을 당할 것, 고통이 다가올 것을 늘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 바라보는 것입니다. 롯이 잘못 바라봐서 신세 망쳤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있다가 아브라함이 너가 동이라고 하면 나는 서고 남이라고 하면 북이라 하리니 아브라함이 요단뜰을 바라보고 소돔, 고모라 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제일 그 당시에 타락한 도시인 소돔, 고모라성을 자꾸 바라보니까 그곳에 매혹되어서 소돔, 고모라로 갔다가 패가망신하고 만 것입니다. 올바른 곳을 바라봐야 돼요. 누구든지 안 바라보고는 살수가 없어요. 바라봐야 돼요. 우리가 당장 교회밖에 나가면 세상 간판이 보이지 않습니까? 바라보아야 돼요. 그런데 나쁜 것을 바라보게 되면 끌려가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끌어당기는 법칙인 것입니다. 좋은 것을 바라보면 좋은 것으로 끌려가고 나쁜 것으로 바라보면 나쁜 것으로 끌려가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늘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모든 수욕을 다 당하고 머리에 가시관 쓰고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고통 속에 울면서 가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그 증거가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도 그리스도를 따라서 사랑을 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4~6)
이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지금도 여러분 앞에서 손을 내밀고 너 짐 맡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 알면 주님을 바라보고 감격하고 주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로 6절에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고 주님께 짐을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짐꾼들이 주인의 짐을 맡고 집까지 갖다 준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맡아서 걸머지시고 천국까지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기고 나니 내가 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마음에 기쁨과 평화밖에 없고 주님을 믿고 따라만 가면 주님이 짊어져가는 것입니다. 이 어린양을 바라보아야 돼요.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바라보면 우리가 짐을 맡길 수가 있고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주님은 이같이 우리에게 간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맡기라고요.
연구조사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걱정, 근심 가운데 80%는 일어나지도 않을 쓸데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당한 많은 염려, 근심, 걱정을 했는데 지나고 보니 거의 80%는 안 다가와요. 걱정을 하고 했는데 효과가 없어요. 그리고 12%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고, 내게 아무 상관없는 일, 남의 일을 가지고 걱정하는 것이고 진짜 다가오는 것은 8%만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염려, 근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나머지 8%의 걱정, 근심도 맡기면 하나님이 맡아 주실 것이기 때문에 100% 평안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부정적인 말로 우리를 낙심하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낙심하면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는 세상의 온갖 근심 걱정으로 우리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수고를 외면하고 자기 스스로 짐을 지고 몸부림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네 짐 네가 맡아라. 하나님 안 맡아 주신다. 네가 해결해라. 네가 이 인생의 주인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거짓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미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근심과 걱정을 다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팔에 의지하여 쉬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참 좋은 것은 여러분 우리가 성경말씀을 많이 마음속에 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성경책을 들여다보고 걸어다닐 수 없어도 걸어다니면서라도 입으로 술술 하나님 말씀을 외우면 얼마나 좋습니까? 야훼를 송축하라. 내 모든 것들아 야훼를 송축하라. 저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내 모든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여 주시며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운다. 얼머나 좋습니까? 걸어가면서 그 말을 하면 마음속에 평안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내 짐을 야훼께 맡겨라. 그리하면 저를 너를 돌보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리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면 얼마나 좋습니까? 천인이 내 우편에서 만인이 내 우편에서 엎드려지나 이 재앙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외워서 자꾸 그것을 반복하면 굉장한 은혜가 되는데 제가 늘 여러분께 말씀드리듯이 시편 23편 여러분 생활에 밥 먹듯이 외워야 되는 것입니다. 나와 같이 한번 다시 외워 볼까요?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그것 외우면서 사망한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도 주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해를 받지 않는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한다. 할렐루야~ 그리고 원수가 나를 공격하면 원수가 오면 밥상도 차려 주신다. 주께서 원수의 목전 앞에 내게 밥상을 차려 주시며 내 머리에 성령으로 기름 발라 잔이 넘치게 해주신다. 그 말씀이 마음속에 위로가 되고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데 말씀을 내가 입술로 말하고 내가 들어서 믿음이 생겨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 105절이 말하는 것처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말씀을 보면 어두움이 밝혀지고 마음이 환해지는 것입니다. 시편 1편 2절로 3절에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을 마음속에 묵상하고 말씀을 마음속에 모시고 살면 우리 생활에 형통해진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정치가요 웅변가였던 윌리엄 J. 브라이언이 남긴 글이 있습니다. “나는 수박씨의 힘을 관찰해 본 적이 있다. 수박씨에는 흙을 밀어젖히고 나오는 힘이 있다. 그것은 자기보다 20만 배나 더 무거운 것을 뚫고 나온다.” 수박씨를 땅에 심어 놓으면 그 씨가 싹이 나서 흙을 뚫고 올라오는데 흙이 자기 씨앗보다 20만배나 더 큰 힘으로 누르고 있어도 그것을 뚫고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씨가 싹이 돋는 힘이 얼마나 센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씨를 가지고 있는 것이 말씀은 생명의 씨앗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씨앗입니다. 수박씨와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 말씀의 씨앗 속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매일 마음 밭에 심으면 이 말씀이 위대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할 때에, 모든 문제의 흙을 뚫고 나와서 생명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의 흙이 우리를 짓눌러도 말씀이 뚫고 일어납니다. 무거운 짐도 수박씨가 뚫고 나오는데 말씀이 어떠한 짐이라도 뚫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외우십시오. 말씀을 외우려면 많이 괴롭습니다. 귀찮아요. 저도 요사이 매주일 마다 새로운 성경구절을 외우는데 외우려면 귀찮고 괴로워도 나중에 외워 놓으면 굉장히 달고 오묘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 감사와 찬송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편 68편 19절에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오늘 여러분 짐을 주님이 지고 계십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는데 그것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해야 될 것 아닌 것입니까? 하나님은 안보이시지만 내 짐을 지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로 15절과 23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하면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느낀다. 우리도 남에게 좋은 일 하고 난 다음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하면 마음이 즐겁지 않습니까? 아무리 도와줘도 인사말씀 안하고 고맙다 말 안하면 괴씸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아무리 짐을 짊어져주어도 입 딱 다물고 아무 말도 안하면 괴씸하다 다음에는 안줘야 되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가장 좋은 길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울고불고해도 그것 몇시간 못갑니다. 감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어려움을 당할 때 감사를 하십시오. 감사를 많이 하면 어려움이 없어지고 좋은 일에 감사를 많이 하면 좋은 일이 더욱 우리에게 생겨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맡기는 자의 짐을 져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맡기는 자의 짐을 져주시지 안 맡기고 지고 있는 자의 짐은 주님께서 짊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 할머니같이 차를 타고 머리에 짐을 지고 안내려 놓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아무리 내려놓으라고 해도 벼룩도 낯짝이 있지 어떻게 짐을 내려놓느냐. 그렇게 말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의 신발을 벗으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은 소유와 주권의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주권이 신발에 있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났을 때도 먼저 신발을 벗으라. 너 행동과 너의 짐의 모든 것을 내게 맡겨라.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맡기는 것입니다. 신발을 벗어놓고 일하러 나갈 수 있습니까? 집에 들어와서 신발 벗고 방안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너희들은 나를 믿고 쉬어라. 짐을 내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끌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4절로 5절에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신발을 벗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자기 주권행사를 벗어놓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짐을 맡기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하게 어깨에 힘주고 나가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습니다. 모세가 신발을 벗으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의 일을 다 책임져 주시고 모세는 하나님에게 업혀 다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한 일을 다해서 이스라엘 3백만 백성을 이끌어내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5장 13절로 15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야훼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야훼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의 대장은 우리 편도 아니고 적 편도 아니다. 하나님은 누구 편들러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편들지 않습니다. 당신 원하는 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뭘 할까요? 신발 벗어라. 네 마음대로 행하는 주권을 벗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신발을 벗어 놓으니까 그때는 하나님이 작전 계획을 말합니다. 여리고성을 여섯 바퀴 돌고 일곱 바퀴째 고함을 치면 무너진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맡기는 일을 주님이 맡아서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 짐을 맡아 주겠는데 내 멍에 밑으로 들어오라 그 말인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예수님의 멍에는 뭡니까? 십자가입니다. 멍에라는 것은 멍에는 쟁기나 수레를 끌기 위해서 소나 나귀의 머리에 씌운 막대기인데 예수님은 우리 짐을 지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멍에, 여러분의 죄, 허물, 질병, 저주, 절망, 고통, 죽음을 다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멍에를 짊어지라는 것은 이미 예수님이 짊어지셨는데 어디 갑니까? 멍에 밑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소가 멍에를 메고 있는데 그 멍에 무거운 짐이 끌려 있습니다. 새끼를 보고 내 멍에 밑으로 들어오라. 어미 멍에 밑으로 들어가니까 새끼는 목에 멍에가 안 걸므로 그냥 따라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어미소를 보고 뭘 땀을 흘리고 힘을 잔뜩 주고 고생을 하느냐. 아이구 험담도 떤다. 엄마 왜그리 수고를 하냐. 야 이놈아, 너 목에는 이 멍에가 얹혀 있지 않지만 내게는 얹혀있지 않느냐. 짐은 내가 끌고 너는 공짜로 따라오지 않느냐.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십자가 밑에 들어가면 공짜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죄의 용서도 공짜로, 허물의 사함도 공짜로, 치료도 공짜로, 축복도 공짜로, 평안도 공짜로, 천당도 공짜로, 그렇게 가기를 원하는 것이 주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멍에 밑에 믿고 순종하고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끌고 가겠다고 내 목에 멍에를 걸고 당기면 내가 피땀을 흘리고 목의 가죽이 벗겨지고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발을 벗고 멍에 밑으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끌어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인이 책임을 지지 종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면 우리 인생의 일과 짐과 문제를 다 같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인이면 내 짐 내가 져야지요. 책임져야지요. 제가 결혼한 사람들에게 늘 말하기를 제일 처음에 사랑의 감정만 가지고 결혼하지 말라. 사랑이란 포두주와 같아서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취한다. 그러나 항상 취해서 사는 사람은 버린 사람이 되는 것처럼 사랑해도 결혼해서 항상 취해서 살면 일도 안하고 나중에는 바짝 말라 죽는다. 사랑은 하면 사랑에 달콤한 향기가 나고 달고 취하는 것은 석달이면 충분하다. 그 다음에는 밥 먹고 살아야 되고 이 세상일에 부딪히기 때문에 서로 논쟁도 하게 되고 싸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만하기 때문에 결혼한다고 하면 큰일 난다. 사랑을 할 때는 반드시 십자가를 걸머질 각오를 하고 사랑을 해야 된다. 예수님도 우리 십자가를 걸머지고 난 다음에 우리를 사랑했다. 십자가라는 것은 책임지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 책임지고 사랑해야 되고 아내도 남편 책임지고 사랑해야 되지 책임을 안지고 사랑하면 사랑이 식어지면 굿바이. 너는 너대로 가라. 나는 모르겠다. 이러면 안되잖아요. 주인의식을 가지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모든 것을 소유할 뿐 아니라 소유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사느냐. 그렇지 않으면 나의 협조자로 생각하고 사느냐 중대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내 짐은 내가 짊어지고 나를 도와주는 하나님께 도와만 달라고 하면 하나님 여러분 협조하러 따라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내어 맡기면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면 여러분 일생을 책임질 뿐 아니라 여러분의 짐도 여러분의 염려, 근심도 문제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로 3절에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그 일을 만들어 성취하는 이는 하나님이 하시고 우리가 할 일은 부르짖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여 부르짖어 맡기고 믿으면 하나님이 신기한 일을 보여주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5장 7절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야훼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주님은 밝은 일도 짓고 어두운 일도 짓는다. 밝은 일은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짓지요. 하나님을 반역하는 나라에서 주님께서 심판의 어두움도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도 화도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우리가 모셔야지 내가 주인이고 하나님은 따라오면서 도와달라고 하면 여러분 하나님은 보조인은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주권자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을 때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맡깁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을 모시고 살겠습니다. 주님, 다 맡기니 알아서 해주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 어떻게 건지는지 알아요?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물에 빠진 사람 건지려면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뛰어 들어가서 물에서 허덕이는 사람 건지려다가 같이 빠져 죽는 사람 여러 명 들어보았습니다. 왜냐, 물에 빠져서 허우적이는 사람은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무엇이든지 오면 붙잡습니다.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와도 붙잡고 다리에 휘어 감기면 수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꽉 잡기 때문에...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물에 빠져서 허덕이는 사람 살릴려면 완전히 녹초가 되도록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허덕이다가 물을 먹고 숨이 차고 하니까 가라앉으려고 할 때 그때 가서 건져야 되는 것이고 시간이 없으면 헤엄치고 들어가서 머리를 눌러서 녹초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물을 잔뜩 먹고 온 사지가 늘어져서 뻗을 때 건져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여러분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자기 힘으로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데 말려 들어갔다는 하나님조차도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다려요. 뻗어져서 나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내 주인이 되심을 믿습니다 하고 기다리고 안 그러면 눌러가지고서 아주 뻗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자신을 가지고 자기를 의지하면 하나님은 도울 수가 없어요. 내가 할 수 없게 되고 막다른 골목에 처하여 주님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판 저판 사판입니다. 믿습니다. 오냐. 그러면 맡겨라. 그러면 맡겨지지요. 하나님 맡긴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자기가 죽게 되어야 맡기지 조금이라도 살만하면 안 맡기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죽지 않고 맡기게 도와주는 분이 성령이신 것입니다. 성령이 와서 죽은 척해라. 죽은 척해라. 그래서 완전히 맡겨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주 결사적으로 맡기면 주님이 책임지는 것인데 다니엘서에 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이방신을 섬기지 않다가 느부갓네살왕이 화를 내어서 그들을 풀무불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럴 때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기회를 주었을 때 내가 세운 두라평지에 있는 신상에 대해서 절을 하면 살려 주겠다고 할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왕이여, 왕이 우리를 풀무불에 던져 넣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요 하나님이 안 건져 주셔도 우리는 절대로 우상에는 절하지 않습니다. 왕이 분노막심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불에 던졌는데 제 네 번째 사람 천사가 내려와서 같이 두리둥실 춤을 추면서 있었습니다. 묶은 줄이 다 타지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안탔습니다. 왜냐,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해주신 것입니다. 일사각오하고 믿으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세요. 이것은 믿지도 아니고 안 믿지도 아니하고 하면 하나님이 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니엘도 그렇지 않습니까? 다니엘을 시기하는 대신들이 왕에게 말해서 30일 동안에 왕 이외에 어떠한 신에게도 기도하면 사자굴에 집어넣자고 할 때 왕이 그렇게 하라고 할 때 다니엘이 그것을 알면서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해서 그것이 빌미가 되어서 잡혀서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사자가 다니엘에게 달려들지 않았어요. 왜냐,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사자가 감히 다니엘에게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니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하나님은 자기를 믿는 자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참수하던 장관들을 잡아서 사자굴에 넣으니까 땅에 떨어지기 전에 사자들이 뼈를 다 부서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타협 없이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께서 알아야 될 것은 2천 년 전 예수님은 나의 짐을 이미 다 짊어지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벌버둥을 치는 그 짐은 주님이 이미 2천 년 전에 다 짊어지셨습니다. 죄의 짐도 허물의 더러운 짐도 심신의 병의 짐도 저주의 짐도 사망과 음부의 짐도 다 짊어졌으니 진리를 깨닫고 내 짐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는 믿음으로 의지하고 믿고 감사하면서 걸어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매일매일 우리가 싸우는 것은 마귀의 말에서 귀를 기울이지 말고 우리 스스로에게 타일러서 주님께 짐을 맡기는 훈련을 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짐을 맡았습니다. 책임져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일생을 맡기고 주님을 주인으로 삼으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책임지고 여러분의 일도 짐도 문제도 책임지고 주님께서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짐도 주님은 걸머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멍에 밑으로 들어오라. 십자가 밑으로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믿고 십자가 밑에 들어오면 주님께서 우리 짐을 이미 걸머지셨으므로 우리는 쉽고 평안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서 손을 내밀고 내 멍에 밑으로 들어오라. 오늘이라도 좋다. 내게 짐을 맡기고 내 멍에 밑에 들어와서 의지하고 따라오너라. 그러면 너는 평안하게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결심하고 주님께 짐을 맡겨 보십시다. 기왕 예수 믿을 바에는 믿었으면 우리 짐도 다 맡겨 버리고 한번 평안을 가져 보십시다. 나도 그렇게 하고 이웃도 그렇게 하라고 격려하고 기도해 주십시다. 여러분께서 이 진리를 깨달아 알았으면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리고 믿고 맡기고 따라가십시다. 나의 죄를 짊어지고 몸 찢고 피 흘리며 그 고통을 감내하고 가신 예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결단코 버리지 않고 결단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 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감동하십시오. 감격하고 사랑하고 따라가십시오. 믿으십시오.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전달한 이 설교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반드시 보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성령님을 도와주시옵소서.
이미 2천 년 전에 오셔서 우리 짐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세상 죄 지고 가는 예수님을 우리가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깨닫고 바라보고 믿고 따라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오늘부터 평안을 가지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