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0. 주일설교

언약궤를 짊어지고 요단 강을 건너라

“온 땅의 주 야훼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야훼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수 3:13~17)

<서론>
“언약궤를 짊어지고 요단 강을 건너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언약궤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을 돌판에 적은 것을 담은 궤입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민족의 사상의 중심이요, 종교의 중심이요, 국가 경영에 중심이 되는 굉장히 중요한 궤인 것입니다. 그 돌판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네 계명과 백성 사이에 관계에 대한 육계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지고 요단강에 들어서면 강물이 갈라지고 백성들이 마른 땅으로 건너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조상의 죄 때문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때가 오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삼아서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광야에 방황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는데 막힌 강이 요단강이었습니다. 이 요단강을 건너갈 도리가 없어요. 교량도 없고 3백만 이스라엘 백성이 배를 타고 건너갈 수도 없고 아주 난처한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을 갈라지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가 갈라진 것처럼 이제는 광야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데 막힌 요단강이 갈라지는데 어떻게 갈라지느냐.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이요. 예배의 중심이요, 통치의 중심인 법궤를 진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가서 서면 요단강물이 갈라질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본론>
1. 언약궤를 짊어진 삶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인 이스라엘은 언악궤를 짊어진 민족입니다. 그들은 이 언약궤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특별히 맺어지는 언약의 묶음인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약속이므로 이 계명은 윤리와 도덕적인 계명인 동시에 이스라엘이 타민족과 달리 특별히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도리를 기록한 궤인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네 계명은 중요합니다.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반드시 지켜야 될 계명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인간과의 관계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이 계명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며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을 보여주는 규범입니다.
신명기 5장 33절에 “너희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십계명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성경 전체를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었습니다. 십계명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우리를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윤리나 도덕의 계명일 뿐만 아니라 축복의 조건을 도입한 말씀인 것입니다.
신명기 5장 10절은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어떻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 언약궤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하나님과의 약속의 궤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언약궤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들에게 언약궤는 갈보리산 십자가가 언약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유대 민족 뿐 아니라 모든 이방 민족과 사이에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맺은 것이 갈보리 십자가인 것입니다. 오늘 성도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죄악의 허물을 씻고 의와 거룩한 삶을 살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언약궤인 십자가를 걸머지면 그 십자가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내가 노력해서 새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궤에서 넘쳐 나오는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세상 사람에서 천국 백성으로 변화를 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종교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대속의 은혜의 근원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 죄의 용서와 의의 은혜를 받고 성결과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고 치료와 건강의 은혜를 받고 아브라함의 복의 은혜를 받고 부활과 영생천국의 은혜를 받습니다. 십자가를 우리가 언약궤로써 받아들이면 그 언약궤를 통해서 넘치는 오중복음과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삼중축복이 우리에게 미쳐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이 이 십자가의 언약궤를 통해서 걸머지는 자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은혜를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받아들이면 이 언약궤가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요단강으로 들어가라
언약궤를 메고 믿음으로 요단 강물로 들어가라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제사장에게 말한 것은 언약궤를 걸머지지 않은 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약궤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같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요단강이 넘실넘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걸머진 언약궤를 걸머지고 요단강물로 들어가면 요단강물은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강이 넓고 깊어도 하늘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언약궤인 새로운 언약인 십자가를 걸머지고 나가야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걸머지지 않고 나 홀로 십자가를 떠나서 어떠한 일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3장 14절로 16절에 보면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굉장한 장관입니다. 이 언약궤를 걸머지고 물 안으로 들어갔었습니다 믿음으로... 만일 하나님의 언약이 없다면 빠져죽고 말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언약궤를 메고 하나님이 같이 계심을 알고 물속에 들어가서 발목에 물이 차이자 저 우편에 물이 흐르지 않고 그쳐서 산에 올라갑니다. 물이 쌓여 올라가니 장관 아닙니까? 밑으로는 다 말라버리고... 그래서 백성들이 마른 땅을 걸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언약궤 즉 십자가를 걸머지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걸머지면 십자가를 통해서 옛사람은 청산되고 새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양과 도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대신 다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이룰 수 없는 역사를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죄를 사하고 의로움을 선물로 주시고 허물을 사하고 거룩함과 성령 충만을 주시고 질병을 도말시키시고 치료와 건강을 주시고 저주를 제하여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주시고 영원한 죽음을 멸하시고 부활 영생 천국을 주시는 역사를 다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우리가 걸머짐은 예수의 부활의 생명도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우리 생활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와 내가 일치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꿈꾸고 십자가를 통하여 옛사람은 사라지고 새사람으로 부활했다는 것을 마음속에 다짐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항상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매일같이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살아나고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은 살아나고 이러한 변화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계속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청산하고 새사람으로 부활하는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가 내가 가슴에 끌어안고 어깨에 걸머지면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은 나를 넘어뜨리려 왔다가 십자가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를 걸머지고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3차원의 세계 속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살지만 우리는 그것을 동시에 성경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우리의 신앙세계는 현실세계 보다도 높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속에 속해 있으면서도 하늘나라에 속해서 살고 삼차원의 속에서 행하면서도 사차원의 영적인 생각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세상으로 살지만 믿는 사람들은 세상과 삶과 동시에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생각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고 꿈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행하고 입술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 말했었으며 야고보서 2장 17절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물을 지나는 것은 현실적인 세상인 것입니다. 어려운 고난의 물을 우리는 지나는데 현실이지요. 그러나 눈에 안 보이는 물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같이 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강을 건널 때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네가 불 가운데 지날 때 타지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러므로 보통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물을 능히 가로질러 건너갈 수 있고 불같은 시험이 와도 타지 아니하고 거스르지 아니하고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감각적으로만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 새 마음과 초자연적 삶
하나님의 사람은 새로운 마음을 얻음과 동시에 새로운 꿈, 새로운 믿음, 새로운 말을 하게 되고 그 삶이 초자연적으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만 살뿐 아니라 기적이 따라오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이상하게 희한하게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보고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두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세계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서 얻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세상에 살 뿐 아니라 하늘나라 속에서도 동시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여러분 속에 하늘나라 사차원의 세계는 삼차원의 세계보다 높습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처럼 여러분은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기도와 믿음을 통해서 다스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각을 통해서 현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넘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생각을 통해서 마음속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에서 우리가 바라는 소망, 영롱한 무지개와 같은 꿈. 이 꿈도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속에 주신 것이므로 기도하고 성령과 더불어서 나가므로 상상을 초월한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했는데 꿈이 있어야 내일이 있지요. 그런데 내일을 꿈꾸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채우시는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입을 너무 좁게 열어 놓으면 채울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렙다의 과부에게 그릇을 빌리되 많이 빌리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 입을 열 수 있는데 한도까지 많이 입을 열면 겁은 좀 나지만은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믿음으로 응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생활에 이제는 믿음의 도전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우리가 십자가의 언약궤를 짊어지고 인생을 살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플러스 언약을 했기 때문에 어느 곳에 가나 함께 하므로 하나님이 기적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니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렇게 까지 말씀하시는데 얼마나 언약궤의 효과가 큽니까?
마태복음 17장 20절에는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 태산을 옮기고 못할 것이 없다고 말했었으니 이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셨겠습니까? 과장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참말을 하시는 하나님,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 여러분 보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너는 보통 가능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태산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다.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음을 얻어야 해요. 우리는 별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환경을 바라보고 늘 억압을 당해서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어놓은 사람들이 나중에는 진흙덩어리가 되어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해와 달과 별들과 만물을 다스리게 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태어나고 난 다음 우리 환경이 늘 부정적인 것만 바라보고 부정적인 소리만 듣고 부정적인 것만 접촉하고 사람들이 너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는 것만 자꾸 말하므로 자기 스스로의 이미지가 부정적이 되고 믿음의 도전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가서 나중에는 세상에 패배자가 되어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하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일을 성취할 수 있느냐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 생각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시고 꿈을 활달하게 꾸게 만들어 주시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무모할 정도로 믿음으로 도전하게 하시고 긍정적인 말을 쓰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할 수 있다. 된다. 좋은 일이 생겨난다. 기쁘다. 긍정적인 말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분량대로 능력 있게 살고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마음과 초자연적인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되었은즉 믿음으로 도전하고 언제나 찬란한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10장 35절로 39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를 믿고 십자가의 언약궤를 걸머진 사람은 십자가 언약궤를 의지하고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믿고 기적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걸머진 사람은 죄를 이기고 용서와 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허물을 청산하고 성결함과 성령의 충만함을 모시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병이 물러가고 건강을 가지고 있으며 저주가 물러가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죽음을 멸하고 영생천국을 갖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확증을 마음속에 갖고 확실한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을 하고 꿈을 꾸고 믿고 말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도 깜짝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긍정적으로 입으로 시인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20절로 21절 이것이 우리가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달렸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 안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여러분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생명의 말을 입으로 계속해서 선포하면 그것이 나아가서 여러분을 크게 살게 하고 사망에 속한 말을 계속해서 하면 그것이 나가서 파괴하여 여러분을 사망의 종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우리의 운명을 메고 푸는 것이 땅에서 이루어지면 하늘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으로써 땅에서 매고 풉니까? 여러분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땅에서 매고 푸는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면 하늘이 그것을 받아서 여러분에게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술의 고백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이면 하늘이 그것을 받아서 절망이 생겨나도록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일에 우리가 자꾸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하나님은 원망 받을 이유가 없어요. 하나님은 천국 열쇠를 여러분에게 주었기 때문에 열쇠를 사용하는 사람은 들어올 것이고 열쇠를 사용 안하는 사람은 못 들어올 것이고 또 여러분에게 십자가의 새로운 언약을 맡겨 놓았는데 이 언약을 걸머지고 여러분이 긍정적으로 나아가면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역사하사 언약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홍해수를 건넜습니까?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홍해수를 건너갔지요.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습니까?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걸머지고 물 가운데 들어가니 하나님이 역사해서 물이 갈라지게 하고 마른 땅으로 3백만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언약궤를 걸머지고 물속에 들어갔으므로 하나님이 같이 역사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언약궤를 주었는데 언약궤를 걸머지고 물속에 들어가요. 다른 사람들이 다 빠져 죽는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들어가요. 하나님이 그 언약궤에 십자가를 통해서 함께 동행하므로 물은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선언을 하고 나갈 때 우리 생애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역사함과 동시에 여러분의 생활 속에도 과학적으로 굉장히 큰 변화가 오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하드필드 박사님은 세 사람을 불러다가 3번 손 압력 테스를 했는데, 결과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보통 상태로 테스트를 했는데, 세 사람의 평균 악력이 101파운드였습니다. 101파운드 짜리를 쥘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는, ‘당신은 약하다. 형편없이 기운이 없다.’ 그 말을 해서 받아들이게 하고 난 다음에 똑같은 압력기를 손으로 잡아 보라고 하니까 101파운드 잡던 사람이 29파운드 밖에 못 잡아요. 3분의 1밖에 없어요. 부정적인 생각을 하니까 3분의 1밖에 못 잡아요. 세 번째 실험에서는, ‘당신은 강하다. 당신은 장사다. 당신은 능히 할 수 있다.’ 그리고 압력을 잡게 해보니까 평균 악력이 무려 142파운드에 달했습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두고 보통으로 잡기 할 때는 101파운드에다가 못한다고 하니까 29파운드 잡다가 당신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니까 142파운드를 잡았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신체 건강에도 우리 입술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 효과를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미국에서 수녀서원식에 참여한 180명에게 자기 삶을 소개하는 간증문을 쓰도록 했습니다. 70년이 지난 후 심리학자들이 그 간증문에 긍정적인 말이 얼마나 있는지 분석하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간증문에 긍정적인 말을 많이 썼던 상위 25%의 수녀들 중 90% 이상이 살아있는 반면에, 긍정적인 말을 적게 썼던 하위 25%의 수녀들 중에는 34%만이 살았고 다 죽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은 사고체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대뇌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말은 뇌세포에 약 98%의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말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결과들은 긍정적인 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긍정적인 말을 하면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만 우리는 성경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대로 입술의 긍정적인 말은 하늘에 축복을 열어놓을 수도 있고 부정적인 말은 하늘의 축복도 닫아놓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으니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어려운 때일수록 더 긍정적인 말, 축복적인 말을 해야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말을 해야 될 것입니다.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 그 곤경을 벗어나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말은 감사하다는 말인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저 사람 돌았지 않느냐.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 원망, 불평을 해도 모자랄 것인데 감사 찬송을 한다는데 감사 찬송은 실제의 현실이 감사하고 찬송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를 감사하고 찬송하는 환경으로 만들어줄 힘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느니라.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감사와 찬송을 하면 하나님의 구원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면 마귀와 사탄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감사합니다. 찬송합니다. 고맙습니다. 할렐루야~ 이 말을 자주자주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이 늘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4. 요단강이 갈라지다
오늘 이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죽음의 땅을 벗어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찬송도 있지 않습니까?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요단강은 죽음의 강으로 상징하는 것입니다. 요단강이 이쪽 편은 광야고 요단강 저 건너편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그것을 건너가는 유일한 길이 법궤를 걸머지고 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광야는 이 세상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저주받은 땅에서 삽니다. 수없이 많은 슬픈 일들이 있고 괴로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요단강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일차 요단강은 우리 이 땅에서 살면서 하늘나라를 누리는 요단강을 건너가야 되는 것이고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가지 못하면 헛믿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법궤를 걸머지면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는 것이니까 우리의 법궤는 이미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2천년 전에 내가 다 이루었다고 선언을 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그 법궤를 걸머지면 우리의 삶에 막힌 담이 되는 요단강을 건너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이 땅에 살 동안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다가 영원히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언약궤를 반드시 걸머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수아 3장 17절에 “야훼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4장 23절로 24절에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야훼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야훼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요단강이 말라지면 안 믿는 사람들이 보고 세상에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고 감탄하게 만들고 여러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담대하게 더 믿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애 속에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나면 그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저것 봐라. 상상을 초월한 일이 일어난다. 저런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믿은 것이 헛된 것이 아니구나. 진짜로 새로운 능력이 나타나는구나. 이것은 보는 사람 좋고 체험하는 사람도 좋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짊어지면 죽음의 요단강은 갈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몸 찢고 피를 흘려 청산했기 때문에 반드시 갈라져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갈보리 십자가를 끌어안고 여러분 걸머져야 되는 것입니다. 왜, 갈보리 십자가를 짊어지면 죄의 강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죄의 강물에 휩쓸려 내려갑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저항할 수 없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바울선생도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걸머지면 에베소서 1장 7절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죄가 물러가고 용서의 강물이 흘러서 요단강을 건너가게 되는 것입니다. 허물이 아무리 많고 성격이 고약하더라도 십자가를 걸머지면 그 마음속에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변화가 안 오지요. 그러나 희한한 능력이 우리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를 멸하고 살리는 능력이 여러분의 언약궤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병의 강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우리가 병들어서 고통당할 때 이 언약궤를 늘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제가 한번 굉장히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아팠습니다. 시계를 보니까 새벽 2시 쯤 되었는데 얼마나 아픈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어지간하면 낮이면 병원으로 뛰어갔으면 좋겠는데 아파서 괴로워하다가 내 생각에 야~ 성령님이 너와 같이 계시는데 왜 너 혼자 아프다고 야단이냐. 성령님께 기도하라. 그런 마음이 생겨서 보혜사 성령님 그래도 꼴에 목산데 아파서 자꾸 약 생각만 하고 병원에 가야될 생각만 하고 고통을 당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 이 사람아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를 어떻게 볼까요? 십자가에 대해서 뭐라고 썼니? 병에 대해서.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전쟁은 끝나지 않았느냐? 끝난 전쟁에 너 혼자 한다고 야단이야. 이미 적은 물러갔는데... 네가 너 혼자서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 십자가에서 2천년 전에 싸움은 이미 끝나버리고 전쟁은 끝났다. 내가 싸울 원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이불로 들어가서 자라! 정말 성령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단순하게 말씀하세요. 내가 확 알아 들었습니다. 맞았다. 맞았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날 위해서 싸워서 전쟁은 다 이루었다. 이겨 놓았는데 지금 내가 허공을 향해서 주먹을 휘두르는구나. 적은 없는데 속아서 그렇게 한다. 그래서 성령님 고맙습니다. 들어가 잡니다 하고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잤는데 아침에 깨어나서 보니까 언제 아팠냐고 아프지도 않고 아주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십자가를 걸머지고 믿음으로 행하지 않기 때문에 요단강을 건너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여러분 앞에 요단강물이 넘실거리고 흐르고 있는 분이 많지요? 죄의 요단강이 허물의 요단강이 병의 요단강물이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업의 고통의 요단강물이 죽음의 공포 요단강물이 넘실넘실넘실 흐르고 있는데 그것 건널 수도 없고 이것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말합니다. 전쟁은 끝났다. 2천 년 전에 끝났으니 네가 십자가의 언약궤를 걸머지고 믿음으로 들어가라! 제사장들은 법궤를 걸머지고 요단강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바깥에서 갈라지기를 기다립니다. 갈라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안돼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는 것이 믿음이므로 믿음으로 요단강으로 걸어 들어가세요. 물이 발목까지 채였는데도 여호수아는 걸어 들어가라! 더 걸어 들어가라! 강 한가운데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데 위에서부터 물이 쫘악 갈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언약궤로 받아들였으면 가슴에 끌어안고 어깨에 걸머지고 요단강으로 걸어 들어가십시다. 오늘 모두다 요단강을 걸어 들어가서 마른 땅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으로 누려야지 그렇지 않고 인생을 살면 너무나 억울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주의 강이 갈라졌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 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요사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78년을 먹고 살았는데 이제 그만 먹어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삼시 세 때 꼭 음식이 오면 먹습니다. 그리고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인간은 어찌할 수 없이 먹다 죽는구나. 그런 생각이 늘 마음에 나요. 그래도 의식주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살아야 사는 것이지 의식주 문제가 걱정이 되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것은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았으니 믿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저주의 강이 갈라졌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한번 따라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서 너희 저주를 다 청산해 버리고 말았다. 십자가를 매는 사람마다 저주를 받는데 예수님은 축복의 하나님인데 왜 저주를 받았느냐? 너 저주를 대신 짊어졌으니 저주는 끝났다. 이제 안심을 하고 야훼의 축복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가라! 너희 천부께서 이런 것이 있어야 될 줄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의식주 문제를 염려하고 살면 사는 것이 아니다. 의식주 문제는 내가 해결해 줄테니 확 믿어라.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성취하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너가 할 일은 부르짖고 기도하는 일이다. 기도하면 일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이미 다 이루어 놓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 다음 최후의 강이 죽음의 강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 심판이 있는데 나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나 죽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죽은 부고를 신문에서 보면 잘 죽었다. 그런 생각이 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아깝다. 좀 더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때가 오면 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죽는 것이 그 죽음으로 끝나면 모르겠는데 죽음 저 건너편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좋은 문제고 안 믿는 자에게는 나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살다가 아무것도 없어진다면 인간보다 더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저 세상에 있는 것을 아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우리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죽고 살아난 분이 우리에게 증거하기 때문에 그 증거는 확실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구출해 주시고 믿음의 확증을 주시므로 죽음 건너편에 영원한 세계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우리는 벌써 영원한 영생이 들어왔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 지낸바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있습니다. 영적인 실상은 그렇습니다. 육체는 지금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영적 사차원의 세계에 들어가면 시간과 공간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앉아있음과 동시에 여러분은 하나님 보좌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를 못 건너가게 막고 있는 강은 다 십자가의 궤를 걸머지면 갈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죽음도 갈라지고 저주도 갈라지고 질병도 갈라지고 허물도 갈라지고 죄도 갈라지는 것입니다. 갈라진 땅을 지나서 마른 땅을 지나서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십자가 없는 사람은 이 강을 건너지 못합니다. 많은 종교가 있지요. 그러나 십자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같이 계시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플러스표가 되어서 하나님이 같이 계십니다. 십자가를 끌어안은 사람은 어떠한 사망의 세력도 무섭지 않습니다. 죄악의 사망도 무섭지 않고 허물도 무섭지 않습니다. 질병도 무섭지 않고 저주도 무섭지 않고 죽음도 무섭지 않습니다.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질 수 있는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입술로 고백하면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여러분도 말씀으로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그러한 특권을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여러분 입술의 말로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부터라도 늦지 않습니다만 여러분의 모든 죽음의 강을 갈라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십자가를 통해서 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속량하셨고 불러 세워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특권을 사용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선민과 언약의 백성이 되면 흑암의 요단강이 다 갈라지고 백성들이 유유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는 것같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젖과 꿀이 흐르는 삶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확증해 놓은 것입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무엇이 믿음인 것입니까?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 속에 임하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이 이끄신 것은 언약궤를 중심으로 뭉쳤기 때문인 것입니다. 언약궤가 그들이 섬기는 종교요 그 민족을 하나로 묶는 법이요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는 원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언약궤는 갈보리 십자가를 떠나서는 신자가 아닙니다. 십자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똑똑히 바라보고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깨닫지를 못합니다. 깨달아 알아야 돼요. 성령께서 여러분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생각이 완전히 십자를 통하여 깨달아지매 푹 빠져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 놓은 크나큰 은혜를 깨달아서 하나님 십자가를 통해서 의의 샘물이 솟아오르고 거룩함의 생수가 솟아오르고 치료의 강물이 흘러내리고 축복의 영광이 나타나고 죽음의 흑암이 떠나가고 생명이 넘쳐납니다. 그것을 항상 생각하십시오. 주야로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그 생각이 무엇을 만들어내느냐. 아름다운 꿈을 꾸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잘못 살았구나.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살 수 있는데 그렇게 못사는 것이 원통하다. 이제부터는 내 마음으로 아름다운 내일을 꿈꾼다. 나는 패배자가 아니다. 나는 승리자다. 그러므로 내일의 아름다운 소망을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보십시오. 주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나를 그렇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꿈이 있으면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어지면 믿어지는 대로 입으로 자꾸 고백하십시오. 믿음이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고백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있는 강물은 갈라지는 것입니다. 질병의 강물, 죽음의 강물, 가난의 강물, 낭패와 실망의 강물, 흑암의 강물이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고 성공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점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빨리 하나님께 은총을 받아서 그 은총을 이웃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과 나누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경건이 무엇입니까? 과부와 고아를 그 환난에서 건져주는 것이 참된 경건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이세상의 삶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복을 자꾸 나눠만 줘서도 감당을 못합니다. 복을 받는 길을 가르쳐 주어야 되겠는데 그 길이 뭐냐. 십자가의 법궤를 걸머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전도하여 예수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끌어안고 십자가의 법궤를 걸머지게 하면 저들이 믿음과 기도로써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강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강은 갈라지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에 흐르는 생명수는 여러분을 향하여 지금 넘실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 여러분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매일 매일 기쁨을 가지고 사십시다. 기대감을 가지고 사십시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이 법궤를 걸머지고 법궤 뒤를 따라갈 때 요단강은 갈라졌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법궤를 걸머지고 나가면 죽음의 강이 갈라집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종교나 의식을 늘 집행하고 낭패와 실패를 당하고 살지 말고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으로 들어가게 도와주시옵소서. 모든 사람들 속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