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7. 주일설교

율법과 사랑과 사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
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
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
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1~4)

<서론>
“율법과 사랑과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항상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입으로 전해져 온 구전적인 법이나 성문법이
나 인간관계를 윤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강자가 마음대로 폭력행사를
못하게 하고 또 약자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에 법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
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 때문에 타락하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동산의 모든 실과는 모두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 때문에 그 대가
로써 심판을 받고 에덴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그것도 법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인류들이 죄의 값으로 다 죽은 상태에 있었는데 이 인류를 사랑하사 건져내기 위해서는
대신 죄 값을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 있는 육신을 쓰고 오셔서 너희
죄, 나의 죄, 우리의 죄를 다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청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사람
이 사는 사회 속에서는 어찌할 수 없이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받은 첫 율법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이후 3백만 백성이 홍해수를 건너서 광야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오셔서 40주 40야 금식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서 주셨습니다. 그
법을 가지고서 사회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도 경영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하나님이 친히 돌판에 써주신 율법을 갖고 내려왔는데 출애굽기 32장 15절로 16절에 “모세가 돌이켜 산
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그 판은 하나님
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하나님이 직접 돌판을 만드시고 직접 그 돌판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될 법을 새겨놓은 것입니다.
신명기 4장 13절에 보면 “야훼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율법이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4계명과
인간과 인간관계의 6계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신명기 5장 6절에 보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야훼라”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고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
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이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고 이
십계명을 따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형성되도록 한 것입니다. 이 기본법이 하나님의 백성이 나라를 이
루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규례였습니다. 이 법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 잘 살고 안전하게 국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 사랑을 담아 주신 법인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절로 3절에 보면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야훼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
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
의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법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고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그 법을
주신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번성하
게 하기 위해서 지켜야 될 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 배
후에 반드시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복음주의 전도자 프레드 브라운(Fred Brown) 목사는 율법의 목적을 묘사하기 위해서 3가지 비유를
사용했었습니다.
첫째 율법은 뭐와 같으냐면 치과의사들이 충치가 있느냐 없느냐 알기 위해서는 치과의자에 앉으면 조그
마한 거울이 달린 긴 기구를 집어넣어서 살펴봅니다. 그러나 이 거울은 썩은 이가 있는지 없는지만 발견
해내지 이것 가지고는 이를 뽑지도 못하고 이를 떼우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합니다. 율법은 이 거울과
같아서 우리 생애 속에 죄가 없는지 있는지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주신 것이지 율법이 우리를 거룩하
고 깨끗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율법은 손전등과 같아서 집에서 불이 나갔는데 두꺼비집
을 발견해야 되는데 어두워서 두꺼비집이 어디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손전등을 들고 나가서 두꺼비집
을 발견하나 손전등이 두꺼비집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주나 우리의 잘못된
행실을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 율법은 다림줄과 같아서 집짓는 사람이 집이 바로 올라가는지 안
올라가는지 그것을 알기 위해서 다림줄 하는 줄을 내려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이 바로 올라가도록 하
는 것이지 그것이 집이 바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면 그 줄로써는 고치지 못합니다. 망치나 톱이나 기구를
가지고서 고치지 다림질하는 줄로써는 고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우리 삶에 있
어서의 바로 사느냐, 바로 못사느냐. 질서 있게 사느냐. 질서 있게 못사느냐. 이것을 찾아서 알고 고치게
하는 것이지 직접 고치는 힘은 없습니다. 율법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죄 있느냐 없느냐를 깨닫게 만들고
그에 따라서 정죄하고 심판은 했지 절대로 살리고 고치지는 못합니다.
율법은 죄를 들추어내지만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죄의 문제는 예수님이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법과 인간의 관계
우리는 법과 인간관계를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위한 법이지 법을 위한 인간이 아닙니다. 사
람들은 생각하기를 법을 세우기 위해서 인간의 권리를 제약하고 인간을 무시해도 된다. 법이 제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법을 주실 때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 주신 법이
지 인간이 노예가 되기 위해서 주신 법은 아닌 것입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 보면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야훼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 행복을 위해서 주신 법이지 우리 행복을 빼앗고 우리를 구속하고 속박하기 위해서 주신 법이 아닌
것입니다.
시편 19편 7절로 8절에 보면 “야훼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야훼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
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야훼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야훼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
게 하시도다”
이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 영혼을 살리고 우둔한 자에게 지혜를 주고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
고 눈을 밝혀서 성결한 것을 보게 하는 우리를 돕기 위해서 준 율법인 것입니다. 법은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법이 인간을 무시하고 버리면 그 법은 우상입니다. 법을 위해
서 사람을 희생시키면 그 법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법이 있는 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에게
올바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사람을 도우기 위해서 주신 법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8절로 10절에 보면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
라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이렇게 바로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가면 결국에는 멸망 받고 말지요. 그러니까 너가 가는
길이 잘못 되었다. 고쳐서 발을 곧게 하고 걸어가라.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주신 율법인 것입니
다. 율법이 없으면 우리는 깨달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지키되 하나님의 사랑을 꼭 함께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법과 하나님 없이 법만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을 모신 법과 하나님 없는 법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되어 길거리에 버려진 사람과 법의 집행자인 제사장과 레위인과 선한 사마리아
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다 빼앗기고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어서 내던져졌습니다. 누가 안 도와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제사장 한 사람이 오다가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정신을 차리고 올바르게
살지. 요사이 이런 놈들이 많다니까. 뭐 어쩌다가 강도 만나서 피투성이가 되었노.’ 그리고 지나가 버렸
습니다. 이 제사장은 율법을 세우고 율법을 집행하는 사람인데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었습니다. 그 다음
레위인이 총총 걸음으로 왔습니다. 이 사람은 제사장을 도와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는 의식주의자인
것입니다. 레위인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율법을
준수하고 율법을 지키고 율법을 행하는 사람인데 율법은 무엇 때문에 있습니까? 이런 상처 입은 사람을
도와주라고 있는 것이 율법인데 상처 입은 사람을 내버리고 꾸중만하고 그냥 지나가 버리면 그 율법은
무슨 율법인 것입니까?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 사랑이 없는 종교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와 총명이 많고
교육을 많이 받아서 석박사 되고 모든 비밀을 다 알고 믿음이 강해서 태산을 옮긴다 할지라도 사랑을 위
해서 사용하지 아니하면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몸을 불타는 데로 내주고 내 있는 것
으로 다 구제해도 국회의원 당선하기 위해서 장관되기 위해서 권력을 얻기 위해서 사람의 마음을 꾀기
위해서 하는 구제활동은 소용없는 것이다.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 사랑이 없이는 종교도 이 세상의 인간
의 선한 행위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
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지 사람을 때려잡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우상화하기 위해
서 사랑을 사람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잘 섬기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3절로 35절에 보면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
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자, 율법을 주장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가버리는데 여기 율법도 없고 제사 의식도 베풀지 않
는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이 장사 차 짐승을 타고서 그 옆을 지나가다가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니
까 그 말에서 내려서 그 상처 입은데 포도주를 붓고 기름을 바르고 자기 옷을 찢어가지고서 붕대를 만들
어서 감고 그를 짐승에 태워서 가까운 주막집에 가서 잘 돌보아주고 주막집 주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장
사를 하고 이리 돌아올테니 그동안 이 사람에게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다 갚아줄테니까” 은 두 데나리온
받으라고 은전을 주면서 부탁하고 지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들 중에 누가 진실한
이웃이냐? 율법을 집행하는 제사장이냐, 의식을 집행하는 레위인이냐, 율법과 의식도 없는 사마리아인이
냐. 누가 이웃이냐?” 여러분 누가 이웃이겠습니까? 사랑을 베푼 이가 이웃인 것입니다. 비록 종교가 없다
고 하더라도 사랑을 베푼 사람이 종교를 가지고도 사랑을 베풀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법은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율법 그 자체만 가지고서 사람을 평론하면 그 율법이 사람에게 원수가 되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집행 되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8절로 12절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
심이라”
사랑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율법을 가지고 의식을 집행해도 사랑하
지 아니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
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 힘으로는 죄를 청산하지 못하
겠으니까 독생자를 육신으로 보내셔서 우리 죄를 다 그 몸에 덮어 씌워서 그가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
혀 죽도록 하신 것이니 하나님의 사랑은 증명된 사랑이요 체험된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지 죽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
서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다. 이미 상한 갈대가 휘어져서 바람이 불면
끊어지게 되어 있는데 가서 꺾는 일하지 않고 촛불이 다 되어서 팔락팔락 하는데 가서 휙하고 불어서 끄
지 않는다. 하나님은 끝까지 살리려고 하신다. 상한 갈대로 세우려고 끝까지 노력하시고 촛불도 끝까지
불이 붙도록 도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못 봐
도 사랑이 있는 곳에 보면 하나님이 그 곳에 계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이 보여주신 법과 인간의 관계
예수님이 보여주신 법과 인간의 관계를 우리는 깊게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엄하게 지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면 그것은 유대인이라고 칭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켜라. 이것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준 사명이라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을 많이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고소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사람이면 어떻게 거
룩한 안식일을 어기느냐. 안식일을 어기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안식일에 제자들을 데리고 밀밭 사이로 지나가는데 제자들이 배가 고팠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프니까 밀서리를 합니다. 밀을 꺾어다가 손에 비벼서 불고 먹습니다. 우리
도 어릴 때 남의 집 밀밭에 들어가서 밀 많이 그렇게 먹었어요. 그런데 바리새교인들이 보니까 안식일에
타작한다 말입니다. 밀로 손으로 이렇게 비벼먹는 것도 타작으로 생각하고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타작을 하느냐. 그래서 여보시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면 제자들과 함께 왜 안식일날 타작
하느냐. 너 하나님 사람 아니지 않느냐. 그때 예수님이 하신 참 놀라운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르시
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
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
니다. 하나님이 안식일 만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안식일날 쉬어서 영도 마음도 몸도 건강하게 되라고
만든 안식일이지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굶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을 당하라고 한 것은 아니
다. 모든 것은 사람 중심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존재를 돌보기 위해서 주신 법이지 사람이 법을
준수하기 위해서 그 법에 대해서 희생을 하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이 그 길로 하나님의 전에 들어갔는데 회당에 들어갔어요.
마가복음 3장 1절로 5절에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
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
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안식일 날 예배드리려고 많이 왔는데 손 마른 사람이 이렇게 와서
몸을 자유롭게 못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율법주의자들은 틀림없이 예수님은
병을 고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안식일에도 병 고치면 그것을 잡아서 그를 심판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
는데 예수님께서 그 마음을 아시고 둘러보시고 난 다음에 안식일날 선을 행하는 것이 좋으냐 악을 행하
는 것이 좋으냐. 안식일날 사람을 살리는 것이 좋으나 죽이는 것이 좋으냐. 다 대답할 수가 없거든요. 예
수님께서 안식일날 선을 행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고 안식일날 사람을 살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느
냐. 그 사람을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팔을 못 쓰면서 일어서니까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고침을 받으
라. 고침을 받았습니다. 아주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고약합니다. 안식일을 이렇게 깨Em릴 수가 있
느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책잡을 수 없어요. 안식일날 좋은 일 하는게 좋으냐. 나쁜 일 하는게 좋으
냐. 어느 것이 좋습니까? 좋은 일 하는 것이 좋지요. 안식일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좋으냐 살리는 것이
좋으냐. 살리는 것이 좋지요. 그러면 특별히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안식일을 어겨도 상관이 없다는 것
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대단히 대담한 말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돌로써 쳐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사람을 위해서라면 깨뜨려도 괜찮다는 것을 말
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
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병이 들어 죽더라도 안식일에는 고치는 일
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안식일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사람을 고치는 것
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 먼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사람들을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일을 해야지 이것 중심으로 해야 신앙이 효과가
있지 이것 중심으로 안하면 신앙이 효과가 없습니다.
오늘 요한3서 2절 찬송을 안 하고 시작했네.
♬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종교를 준 것은 결국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독교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고난을 당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주신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살리려고 그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기까지 하
신 것을 보면 사람 사랑이 얼마나 극도에 달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몸 찢고 피 흘려 여러분의 죄, 나의 죄, 여러분의 불의, 나의 불의를 대신 갚게 만드신 것입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으로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이 우리 일생의 죄와 허물,
질병과 저주, 고난과 죽음을 대신 담당하셔서 청산하게 하셨으니 우리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께
서는 우리 사랑을 위해서 안식일도 주시고 율법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지극한 정
성으로 사랑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3절로 11절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자를 돌로 죽이려는 율법주의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성전 뜰에서 아침에 나가서 가르치는데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한 여자
를 머리댕기를 잡고서 끌어 옵니다. 여자는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그 여자를 발
길로 차고 예수님 앞에 내동댕이 치고 난 다음에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우리에게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았어요.” 자기들 주위에서 모두다 봤지? 모두다 봤다고 증인들이... “성경에는
모세의 율법에 간음하는 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율법을 지켜야
됩니까? 안 지켜야 됩니까?” 이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
습니다. 그런데 이제 책을 잡아서 율법을 어겼으니까 예수님도 덩달아 돌로 쳐 죽여야 되겠다고 생각하
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수님이 서서 사람들을 쭈욱 얼굴을 살피더니만 허리를 굽혀서 손가락
으로 글을 쓴 것입니다. 무엇을 썼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 어깨너머로 그 사람들이 다 봅니다. 계속해서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손가락이 글을 적어가는데 보니까 감추인 죄들
을 다 적어갑니다. 자기들이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에 감추어 놓았던 죄를 주님께서 조목조목 적는데 그
뒤에 이름만 쓰면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가만 보니까 이 여자에게 돌로 던졌다가는 그 다음 자기 차
례라... 예수님이 돌을 들어서 자기들을 돌로 쳐도 말 못하게 맞아 죽겠다 말입니다. 사람들이 꼭 들켜서
만 죄인이 아니라 가슴에 간직하고 숨겨놓은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글을 써 내려갔는데 바
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의 과거생활을 다 들춰내거든. 하나님 앞에서 뭘 감추겠습니까? 그 사람
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나는 아침에 소 물을 마셔야 되는데 빨리 가서 소에게 물을 줘야 되겠다. 나는
오늘 아침 조찬 기도회가 있는데 잊어버리고 여기 와있다. 빨리 가야 되겠다. 나는 병원에 아내 데리고
가야 되는데 여기 와있으니 안되겠다. 다 변명을 하고서 다 가버리고 나중에 예수님이 고개를 들어보니
까 돌맹이만 너저분하게 있고 그 여자만 땅에 고개를 숙이고 헐벗고 울고 있고 정죄한 사람 하나도 없습
니다. 그래서 여자여 고개를 들라. 너를 고소하는 사람이 있는가보라. 여자가 둘러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를 돌로써 치려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나를 쳐다보라. 죄를 지으면 이러
한 형벌을 당할 위기가 있으니까 집에 돌아가서 다시는 죄짓지 말고 평안하게 살아라. 나는 너를 정죄하
지 아니한다. 집에 돌아가라. 나는 이 성경을 읽을 때 참으로 너무나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
님이시구나. 이러한 사랑을 베풀어서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거기에서 주님이 극명하
게 보여주신 것은 율법은 사람을 회개시켜서 살려주는데 있지 사람의 잘못을 들춰서 때려잡는데 있지 않
다. 우리가 예수님께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해서 그 잘못을 계속
베풀면 화를 당할 것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아서게 하는 것이지 율법은 사람의 잘못을 들춰내서 정죄하
고 심판하여 죽여버리는 것이 율법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율법주신 것은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서 회개시켜서 변화받기 위해서 율법주신 것이지 죄를 정해서 심판해서 멸망시키려고 주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율법은 간음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회개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을 보
여주시는 것입니다. 죄책을 느낀 고소인들이 다 도망을 치고 난 다음 예수님이 하신 말씀 나도 너를 정
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될 것인 것입니
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온 것이라”
모세는 율법을 주어서 사람들을 질서 있게 살도록 해주었지만 예수님은 은혜로써 그 죄를 다 청산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이 이루어지도록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알아도 지키지 못합
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너무 강해서 지킬 힘이 없어요. 어떻게 해
서 율법을 지키느냐. 예수 믿고 용서받고 난 다음에 주님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이 마음속에 역사해
서 죄짓고 싶은 마음이 없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힘쓰고 애쓰고 금식하고 절제하고 이래서
율법을 지킬 수 있으면 좋은데 사람 힘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하나님 성령을 주셔서 성
령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4절에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에 있음이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일생의 죄가 청산받고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성령
의 능력으로 우리는 의롭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은 모든 율법을 완성해서 우리를 잘되게 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율법의 진실한 의미는 깨우치
고 회개시키는데 있는 것입니다. 정죄하여 심판하는 것이 본 목적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뉘우치게 하여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뉘우치게 하는 것이 근본 목적인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정죄해서
심판해서 내어 쫓는 것이 율법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율법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
고 있습니다. 율법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파헤치고 발가벗기고 정죄하고 심판해서 내어 쫓아버리는 것이
율법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목적으로 율법을 주지 않았습니다. 율법은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통회하고 자복하고 씻고 돌이켜 새사람이 되어서 놀라운 일을 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
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
달음이니라”
보십시오. 어떠한 사람도 율법을 집행하는 그 사람도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것이기 때문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하나도 없습니다. 율법의 진정한 뜻을 알려면 십자가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모든 죄
와 허물을 다 짊어지시고 죽으시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율법의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법은 법대로 지키고 사랑은 사랑대로 나타내게 하는 절묘한 하나님의 방법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심판을 해야 되거든요. 사람들은 심판을 받으면 다
시 살아날 수 없으니까 안 되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들이 지은 죄를 대신 받아서 심
판을 받으면 청산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다 짊
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서 다 청산한 것입니다. 영원히 청산한 것입니다. 백년 동안 지
은 죄를 청산한 것이 아니라 천년동안 지은 죄만 청산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라는 시간이 없습니다. 영원
동안 모든 죄를 청산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율법은 세우고 율법이 요구 하는 대로 심판을 받
아 죽음으로써 율법도 세우고 그 다음에는 사랑도 나타내고 주님이 대신 짊어지고 난 다음 이제 죄를 짓
고 불의하고 추악한 사람도 회개하고 나오면 용서하고 씻어지고 의롭다함을 주는 사랑도 이루고 율법도
이루고 두 가지를 절묘하게 조화가 되게 한 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만큼 훌륭하고 위대한 신앙
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힘과 능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어 구원받으라고 하면 여기에서 구원받을 사람 아
무도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죄지은 것을 아무 조건 없이 그대로 용서해주면 불의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죄는 내가 갚아줄게. 너는 용서를 받고 올바른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
면 우리가 빚을 잔뜩 지었는데 빚을 청산하지 아니하고 그냥 너는 빚 안 갚아도 괜찮다. 그러면 빚 준
사람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불공평하지요. 주님이 오셔서 빚은 내가 다 갚을테니까 너는 내 이름으로
청산되었으니 이제 빚에서 눌린 데서 면하여 나오라고 그렇게 말하면 그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
은 죄의 빚을 갚았어요. 죄의 빚을 안 갚고 무리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죄의 빚을 다 깨끗이 갚고 우리
를 죄의 빚에서 면하게 해주시고 예수님을 믿어 죄를 안 지은 사람처럼 축복을 해주셔서 천국 영생을 얻
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4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
니라”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생명의 성령의 법을 우리에게 주셔서 육신으로는 아무리해도 의롭게 못사
는 우리들을 도와주셔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우리가 되어서 의롭게 살고 거룩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신다
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기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너는 조금도 큰 죄인이요, 적은 죄인이고 우리 구별하는 일이겠지만
하나님의 법은 죄는 다 죄이니까 죄의 값은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 믿고 구원받을 도리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여러분 일생의 죄를 청산할 자격이 있고 청산하기를 원하셔서 다 청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는 주님의 초청하심
이 여러분에게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격이 없는 것 사실입니다. 자격도 없
고 훌륭한 일을 할 능력도 없고 한 적도 없고 정말 빈 손 든 우리들인데 주님은 무조건하고 내가 너 대
신 다 청산해 주었으니 내 품에 안기라고 하는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등지면 우리의 도움을 받을
자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사랑이 없는 율법은 그 자체가 우상입니다. 율법이 아무리 좋은 율법이 있어도 율법에는 사
랑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엄한 아버지가 자식을 키우는데 엄격한 법으로써 자식을 키워도 자비한 어
머니가 있어서 자식을 품에 안고 힘을 주고 격려를 해주어야 그 법을 지킬 수가 있지 어머니가 없이 아
버지 율법만 지키라고 하면 집안을 어지럽게 하고 집을 떠나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율법
은 아무도 구원 못합니다. 율법으로써 구원받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헛된 일인 것입니다. 구원 못 받아요.
구원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은혜로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깨달으
라고 주신 것이 율법이지 우리를 구원받으라고 주신 율법이 아닌 것입니다. 율법은 선하고 좋은 것입니
다. 그러나 사랑이 그 내용이 되지 않으면 흉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똑같은 칼인데 군인이 들고 있
으면 그것 살상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리사가 들고 있으면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기구가 되
고 의사가 그 손에 칼을 들고 있으면 환자를 수술해서 살리는 칼이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칼이라도 사
랑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면 죽이는 칼이 되고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살리는 칼이 되는 것입니다. 칼은
전쟁에는 살인도구입니다. 그러나 요리할 때는 조리도구이고 환자를 수술할 때는 생명의 도구가 되는 것
입니다. 똑같은 칼이 그 사용하는 목적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인 것을 알아
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이 사용하면 정죄와 심판과 죽음의 도구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법을 시행할 때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드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비춰보고 법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없는 율법은 신앙이 아니요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의 방
언을 멋있게 하고 천사같이 웅변을 하고 설교를 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갖고 있지 아니하면 꽹과리 치
는 소리 울리는 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 우리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철학자이고 현명한
지식이 많고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할지라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랑으로 행하지 아
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사랑이 감싸고 있어야 효과를 발생하고 하나님이 그것을 인정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하다가 내가 매를 맞아 죽을지언정 사랑 없이 심판하다가 매를 맞다
가 죽는 것보다 나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용하면 우리는 죄를 깨우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의 도구로써 율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성도들
이 모여서 예배 드리는 교회는 어찌할 수 없이 율법이 있어야 돼요. 법이 있어야 교회가 질서 있고 또
성도들이 다 공평하게 은혜를 받고 살 수 있으니 율법을 반드시 가지고 지켜야 하겠지만 그 율법을 진행
하는데 있어서 사람을 때려잡으려고 써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발가벗기려고 사용하는 율
법은 하나님이 오히려 정죄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사람을 회개시키는데 있는 것입니다. 변화시
키는데 있는 것입니다. 살리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어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역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고 더 손해가 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랑을 가지고
서 율법을 사용하는 우리가 되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너무나 어지럽고 너무나 복잡합니
다. 우리 사람들이 서로 발가벗기기를 원하고 서로 정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허다한 사랑을 가지
고서 덮어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노아의 홍수 이후에 노아가 포도주를 담궈서 마
셨습니다. 노아 이전에는 알콜이 없었어요. 그런데 노아 홍수 이후로 알콜 효소가 생겨나서 포도주를 담
그면 포도주가 되었어요. 노아는 노아 홍수 이전에는 포도즙을 짜서 많이 마셔도 끄덕이 없었지만 노아
홍수 이후에 포도를 해서 포도를 따서 먹는데 그게 발효가 되어서 술이 되었어요. 혼자서 잔뜩 마시고
난 다음에 술이 곤드레 만드레 되어서 발가벗고 자기 장막에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함이 둘째 아들이
와서 보고 아버지가 발가벗었거든 밖으로 나가서 얼레꼴레 이리와. 아버지가 발가벗었다. 빨리와~ 빨리
와~ 형제들에게 선전을 하고 이웃 사람들에게 우리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발가벗고 큰대자로 드러누워
계신다. 구경하러 오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샘, 맏아들과 야벳은 아버지 옷을 취해 가지고서 뒤로 이렇게
뒷걸음질 치고 들어갔습니다. 아버지 벌가벗은 것을 안 보려고 뒷걸음질해서 들어가서 몸채를 덮고서 나
왔는데 함은 따라오면서 뭐하는데 뒷걸음질치니? 발가벗은 것 보는데 어때? 다 봐~ 발가벗었어~ 그래도
아버지 발가벗은 것을 안 보았습니다. 그 다음 노아가 잠에서 깨어나서 그 말을 듣고 난 다음 샘 족속에
게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신앙을 축복해 주었고 야벳은 물질문명에 축복을 주었는데 함은 종 중에 종
이 되라고 한 것입니다. 덮어드려야 될 아버지를 발가벗긴 아버지로 흉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크게
노해서 그를 정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서로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율법으로써 허물을
찾아냈으면 곧장 사랑으로 덮어줘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법은 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
습니다. 우리에게 법을 준 것은 법으로써 상처 입은 것을 드러내놓고 사랑으로써 치료하라고 주신 것입
니다. 여러분은 모두다 사랑으로써 신앙을 실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생들인 것입
니다.
의로운 인생들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가 누구를 심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
은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깨달아서 벗어버리고 나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기 위해서 계명을 주신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 우리 형제끼리 서로 헐벗고 벗기고 정죄하지 말고 사랑으로 감싸
고 돌봐주어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