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4. 종려주일설교

화 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창 32장 24~32)

<서론>
오늘 저는 “화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아담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 후로는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하면 반드시 짐승을 잡아 피를 재단에 뿌려야 일시적으로 죄악이 덮어지고 하나님 만날 수가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니까 사망의 죄악을 덮지 아니하고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짐승으로써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 한 사건마다 재물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완전한 화목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해서 강수와 같은 짐승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화목은 완전히 이루지 못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죄를 갚아주고 죽으심으로 그 피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수 있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우리를 영접해 주시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죄의 값을 어떻게 청산합니까? 예수님의 피는 영원히 죄를 갚아버리고 우리에게 의로운 의복을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의롭게 된다는 것은 디카이오스. 의로움을 선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이 의는 평생에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죄를 지으면 의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일생에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상태. 이것은 사람으로써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의로움은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담대하게 예수님 통해서 의로움을 얻었으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 될 뿐 아니라 우리 가족, 이웃, 친지, 친구, 이웃나라 등과 화목하고 화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서로 마음이 부딪혀 원수되는 일이 다반사로 있습니다. 단절은 고독과 대결을 가져오고 살인과 전쟁도 가져옵니다. 우리가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찌하든지 화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가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이라고 말합니다. 가족의 경우,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전체 이혼율은 줄고 있지만 50대 이후의 이혼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의 보고에 의하면, 청소년들의 고민순위 1위가 친구관계라고 합니다. 교회학교 교사들 역시 인간관계 때문에 가장 힘들어하며 교사하기가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직장에 있어서도 크리스챤 직장인이 가장 큰 고민은 동료 간에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이 증가하다 보니, 위층과 아래층 사이의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심합니다. 윗층에서 걸어다니는 소리가 아래층에 다 들리는데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지난 해 환경관리공단에 접수된 전국 피해 신고가 약 7천 건이나 되는데 특히 서울의 경우는 공동주택이 전체의 84%를 차지하며 신고 건수도 전국에서 가장 많습니다. 층간 소음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 완력으로 말미암아 죽이고 살인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갈등이 점점 심해지는 것은 바로 이웃과의 단절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 아파트에서 ‘이웃과 인사하기’ 캠페인을 진행해서 강제로 인사를 했더니만 화해하려고 한 노력이 효과를 발생해서 법률 필요 없이 이제는 다투는 식구들이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찌하든지 서로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어릴 때는 한 동리에 부엌의 숟가락까지 다 알았습니다. 전부 김씨, 박씨, 소씨, 조씨 다 이렇게 찾아다니면서 같이 저녁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방문도 하고 그래서 이웃이 서로 화목하게 지냈는데 요사이는 단절이 되었습니다. 우리 이웃이 어떻게 사는지 모릅니다.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물론 모르지요. 그러니까 조그마한 일이 생기면 법적으로 나가고 완력으로 나가고 투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리신 것은 가장 중대한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단절을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난 다음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단절입니다. 하나님과 만남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면 우리가 변화를 받을 수 있는데 대화가 안됩니다. 이 단절을 화해로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죄의 담을 허물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하나님 말씀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 가족들의 단절과 화해에 대한 것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원수 된 형제 야곱과 에서
이삭은 리브가를 통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쌍둥이를 낳았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를 낳았는데 이 쌍둥이가 자라면서 대단히 서로 경쟁하고 갈등이 심하고 싸움이 있고 야단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장자가 되면 온 가문에 하나님이 내리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장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일단 아버지로부터 장자가 축복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그 축복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와 야곱은 성격이 또 달랐어요. 태어날 때부터 야곱은 욕심쟁이고 꾀가 많고 여러 가지 재주가 있어서 어머니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사나이답게 생겼습니다. 물질에도 별고 관심이 없고 사냥하기를 좋아하고 아버지와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집에 오면 아버지와 에서가 늘 있고 야곱은 어머니하고 늘 있었습니다. 요사이도 딸이 있는 집안에는 아버지가 좋아하고 딸보다 더 엄마를 더 잘 받드는 아들도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부모도 자식이 잘 해주는 자식이 가까이 지내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가만히 생각하면 옛날에 우리 아버지, 어머님이 아홉 자식을 키웠는데 그때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겠어요. 아홉 명 중에 서로 다투어 어머니,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쓴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금도 제 나이가 어지간 되었지만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날 사랑 덜 했다. 어머니는 날 사랑해 주셨다. 그 생각이 늘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버지가 어떤 때는 원망스러울 때가 있고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가까이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대하여 가진 원한은 뿌리가 깊고 상처도 깊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하나, 둘 장자의 명분을 다 빼앗아 갑니다. 하루는 에서가 산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데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서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하는 일에 수종을 들고 팥죽과 떡을 만들고 있었는데 에서가 와서 “야! 동생, 죽 한그릇 다오~ 내가 배고파서 못 견디겠다.” 그러면 죽 한 그릇 퍼서 주면 되는데 형을 쳐다보고 웃으면서 “형! 장자의 명분을 맹세를 하고 팔면 죽 한그릇 주겠다.” 팥죽 한 그릇을 어떻게 장자의 명분에 비교합니까? 아주 굉장히 나쁜 놈입니다. 그러니 형님이 하는 말이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옛다. 하나님 이름으로 장자의 명분을 너에게 주었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장자의 명분을 맹세로써 동생에게 주고 나니까 동생이 팥죽 한 그릇 주었어요. 팥죽을 먹고 기분 좋게 나갔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하늘나라 기록부에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이날 이시에 동생에게 넘겼다. 그런데 가정에서 엄마하고 친하면 아버지에게 가까이 나가는데 도움이 굉장히 됩니다. 에서가 엄마하고 친하지 않기 때문에 불이익이 굉장히 많았었습니다.
창세기 25장 33절로 34절에 보면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이래서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으로 샀습니다만 그 다음에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것도 어머니가 야곱 편을 들어서 축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제는 나이가 늙어서 전혀 안 보입니다. 귀는 멀어서 잘 들리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들을 수 있는데 눈은 전혀 안 보입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인 리브가가 남편을 늘 받들어 주었는데 리브가 보고 “여보, 나 이제 죽을 때도 가까이 오니까 장자에게 축복을 해 주어야 되겠다.” 그때에는 장자에게 축복이 있었는데 요사이 상속서류를 넘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듣고 야곱에게 가서 “야! 이리 오너라. 너 아버지가 이제 장자의 축복을 너 형 에서에게 주려고 하는데 나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의 축복을 받는 것 원치 않는다. 네가 가서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아야 한다.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요리해서 아버지에게 드리면 아버지가 그것을 먹고 기뻐하는 중에 축복을 실컷 하시겠다고 하니 저기 짐승 떼들 가운데 가서 염소 한 마리를 잡아 오너라. 아버지 입맛은 내가 안다. 내가 요리를 해서 줄테니까 그 요리를 가지고서 아버지에게 접대하고 내가 에서입니다. 그래서 축복을 네가 다 받아라.” “어머니, 어느 누구를 죽이려고 합니까? 우리 형은 털이 북실북실나서 많이 보면 담요을 덮어 쓴 것 같은데 나는 이렇지 말갛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반드시 내 얼굴 만져보고 손 만져보고 이 놈 야곱이 또 꾀를 부리는구나. 나에게 저주를 해버리면 축복은커녕 평생에 저주를 받을 것인데..” 엄마가 “그것은 걱정하지 말라. 그것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빨리 짐승이나 잡아 오너라.” 형이 사냥하러 갔을 동안에 요리를 맛있게 했습니다. 하고 난 다음에 염소 가죽을 벗겨가지고서 목에 털을 북실북실하게 감아 놓고 손에도 털로써 장치를 했다 말입니다. 어머니 장치하는데 아들이 따라갈 수 있습니까? 장치를 가지고서 네가 들어가서 네가 내 아들 에서냐? 그러면 그렇습니다. 사냥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해왔느냐?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빨리 해왔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아버지 대접하고 난 다음에 축복을 해달라고 할 때 아버지가 축복을 해주거든 다 받아라. 그래서 아버지가 어머니가 만들어 준 맛있는 고기를 가지고 아버지, 사냥해 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잡았노? 아버지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사냥해서 짐승을 잡아서 맛있게 만들었습니다. 잡수시고 나를 축복해 주십시오. 좀 가까이 오너라. 목소리가 아무래도 야곱의 목소리 같은데? 아휴 형제간에 서로 닮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이제 귀가 둔해지니까 내 음성을 동생의 음성으로 잘못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래? 나에게 와서 안겨 보아라. 안아서 목을 이렇게 만져보고 팔을 이렇게 만져 보더니 희안하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털이 북실북실하니 에서가 틀림없으니 오냐 가져오너라. 그래서 고기를 마음대로 맛있게 잡수시고 난 다음에 손으로 안수해서 축복을 해주시는데 이것 뭐 보통 축복이 아닌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축복은 다 해주었어요. 그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에 그는 아버지 앞에서 물러 나왔는데 에서가 사냥을 해서 들어오니까 아버지가 벌벌 떨고 야~ 조금 전에 내게 축복을 다 받아갔는데 네가 아니었구나! 그가 땅을 치고 울면서 동생이 나를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도 빼앗더니만 이제는 아버지의 축복을 고기를 가지고 다 빼앗아 갔으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아버지여, 내게도 축복을 주십시오. 동생에게만 주고 나에게 안 주면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가 우리 집안에 장자에게 줄 명분의 축복은 내가 동생에게 다 주었으니 이제 너에게 남은 것이 없다. 없을 턱이 있습니까? 좀 살펴보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은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축복을 하면 그 축복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말이 참 중요합니다. 자식들에게 축복을 하면 그 축복이 자식을 따라가고 저주를 하면 저주가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축복을 별로 하지 않는데 많이 축복을 하십시오. 축복은 효과를 발생하는 것입니다. 말이라는 것이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이 오냐, 이놈의 자식 두고 보자. 내가 가만 둘까보냐.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나면 내 칼에 너는 죽을 것이다. 내 축복을 네가 누리는가 보자. 그렇게 말을 한 것은 또 어머니가 들었어요. 리브가가 듣고 아이구 형이 동생을 죽이려고 하니 이것 안 되겠구나. 피난 보내야 되겠다. 그래서 야곱에게 짐을 꾸려가지고서 오라버니 친정으로 보낸 것입니다.
야곱은 형의 축복을 다 빼앗고 난 다음에 그는 집을 떠나서 외삼촌의 집으로 갔었습니다. 20년의 세월동안 외삼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는데 그 20년 동안에 마음속에 형의 마음속에 일어났던 원한이 얼마나 깊었던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내 장자의 명분도 빼앗았지 아버지 축복도 빼앗았지 이제 아버지, 어머니 나이가 연로한데 연로한 부모를 돌보지 아니하고 버리고 20년이나 떠나갔지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 있으면서 안부 하나 안 전해주었지. 그래서 에서는 야곱이 오면 야곱을 단칼에 목을 베려고 작정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400인의 군대를 키웠었습니다. 동생이 원래 꾀가 많은 놈이기 때문에 그냥 오지 않고 군대를 거느리고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형 에서는 400명의 군대를 훈련시켜서 동생 오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2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이제는 같이 동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부자가 되어서 그의 짐승 떼들이 외삼촌의 짐승떼보다 많아지게 되었으니까 외삼촌의 자식들이 시기하고 외삼촌의 얼굴이 낯색이 변했습니다.

2.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
그리고 야곱이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제 고향산천으로 돌아가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므로 그는 하나님 명령을 쫓아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 것입니다.
창세기 31장 2절로 3절에 보면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야훼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31장 17절로 18절에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출발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축복을 야곱이 많이 받은 것도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는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기 전에 반드시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한다. 이 가나안 땅 아름다운 땅을 우리 가족에게 준 것도 하나님께서 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하리라 했으니 너도 꼭 하나님 앞에 소원한 것을 바라보고 믿고 기도하라. 그렇게 가르켜 준 것입니다. 손주는 이것을 충분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삼촌하고 계약할 때도 내가 삼촌 짐승을 칠테니까 얼룩덜룩이는 다 옮겨버리고 순수한 색깔만 내가 치는데 순수한 색깔이 얼룩덜룩이 색깔을 낳으면 내 월급이 되게 하라고 외삼촌하고 계약을 맺었는데 외삼촌이 좋게 그 계약을 받아들였습니다. 얼룩덜룩이를 다 사흘길 되도록 옮겨놓고 난 다음에 순수한 색깔의 짐승만 야곱이 치는데 야곱이 산에 올라가서 단풍나무, 신풍나무, 버드나무를 꺾어 와서 얼룩덜룩, 얼룩덜룩 가죽을 벗겨서 야곱 양떼들이 물 마시는데 구유 앞에 세워놓고 그는 팔장을 끼고서 양떼들이 새끼를 밸 때마다 얼룩덜룩이를 밴다고 마음속에 그려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는데 새끼들이 나올 때마다 보니까 얼룩덜룩이를 낳았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부자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바라봄의 법칙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철저히 사용하게 하신 것은 광야에서 불평을 말하다가 불뱀이 와서 많은 사람을 물어 죽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회개하고 불뱀을 멀리 해달라고 하니까 모세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불뱀을 장대에 달아서 높이드니까 그것을 바라보면 다 병에서 나을 것이다. 우습게 생각하고 무슨 장난 같은 소리 하느냐. 그런 미신 안 믿는다고 한 사람은 다 뱀에 물려 죽었어요. 그러나 다 죽어가는 사람도 그 뱀을 바라보는 사람은 독이 사라지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 구원도 바라봄에 있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어떻게 우리가 거듭날 수 있습니까? 이 나이 많은 늙은이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또 태어나야 됩니까?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높이 매달릴 때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를 통하여 믿음을 얻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갈보리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가 우리 죄를 허물을 짊어지시고 우리 병을 담당하시고 우리 저주를 짊어지시고 우리 죽음을 담당하여 청산하고 부활하신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바라보면 그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것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소원하고 바라보고 믿고 시인하면 열매를 맺고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큰 부자가 된 것은 외삼촌과 계약을 맺을 때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서 계약을 맺어서 많은 바다의 모래 떼와 같은 짐승 떼를 자기의 것으로 소유해서 고향산천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고향산천으로 돌아와서 얍복강을 건널 때였습니다. 먼저 사람들 보내서 형에게 자기가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통보를 하라고 하니까 종들이 가서 형에게 보고를 하고 돌아와서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주인님, 형이 주인님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자마자 전군에 비상령을 내려서 400명의 군인들이 무장을 해가지고서 형을 배반한 동생을 징계하려고 출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기는 군대도 없고 아무도 없고 가족들만 데리고 가는데 형이 군대를 거느리고 왔으니 죽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야곱은 꾀가 많아서 보통 쉽게 죽지는 않습니다. 형과 자기 사이에 강이 가리워 있는데 얍복강입니다. 그 어떻게 했냐면 얍복강으로 가족들을 다 옮겨 놓습니다. 자기의 처자들을 다 옮겨놓고 짐승들도 다 옮겨놓고 난 다음 자기는 강 이쪽 편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자기 부인과 애들이 아빠, 왜 안 오느냐? 건너오세요. 건너오세요. 난 여기 할 일이 많다. 너희들 먼저 거기 있어라. 야곱의 생각은 어떻냐면 정말 형이 나를 죽이려고 생각한다면 처자를 칼로 칠 것이라. 그리고 내 소유를 칼로써 빼앗을 것이라. 그러면 나는 아직까지도 젊으니까 두 다리 이용해서 삼십육계를 놓는다는 것입니다. 도망친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살면 되지 처자들은 다 죽어도 괜찮다는 아주 약삭빠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다 옮겨놓고 자기는 홀로 얍복강 건너편에 앉아서 상황을 살피고 있는데 거창한 대장부 한 사람이 나타나더니만 자기 목을 잡고 이놈아 건너가라! 왜 건너가요? 처자들과 같이 가야지 처자는 죽이고 너만 살려 하느냐? 너를 믿고 따라온 저 목동들도 살려야지 너만 살겠느냐? 그들을 따라가라! 그러나 야곱은 죽어도 안갑니다. 내가 살아야지. 내가 왜 저들하고 죽어야 해요? 참 몰인정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남편으로 섬기는 그 부인들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죽으면 같이 죽어야지 자기만 살고 가족들은 다 죽어도 좋다고 하면 안 되지요.
창세기 32장 6절에 보면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형은 20년의 원한이 마음속에 상처를 입혔는데 그 원한을 풀 기회가 왔습니다. 천사가 요구하는 요구가 야곱에게는 너무나 가당치 않습니다. 책임 있는 인간으로 가족들을 책임지라고 하는데 그는 책임 안 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형에게 회개를 하라. 네가 잘못했지 않느냐. 그는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줄지 모르니까 회개하라고... 내가 왜 회개해요? 나는 잘못한 것 없습니다. 팥죽도 지가 먹고 장자의 권한도 지가 주었지요? 내가 잘못한 것 뭐가 있습니까? 나는 회개할 것 없습니다. 그러나 형께 항복하라. 항복해야 살지 항복하지 않으면 못산다. 내가 항복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나대로 삽니다. 책임을 주님께 맡겨라,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이 맡아 줄테니까 주님께 맡겨라. 이런 것을 가지고 어떻게 주님께 맡깁니까? 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싸우겠습니다. 그러니까 밤새도록 천사가 가라하고 야곱은 안가겠다고 하고 그래서 씨름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않으려고 할 때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 고집을 부리고 기도하겠지만 야곱은 실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했습니다. 이제 해가 떠오를 때가 되어서 결판이 벌어질 시간이 가까워졌는데 야곱이 이 천사를 잡고서 안 놓아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자로써 왔으면 내게 축복을 해줄 것이지 그냥은 못 간다. 내가 제시한 조건을 네가 받아 들여아 내가 보내주지. 조건을 왜 안받아주느냐 하니까 나는 내 중심으로 살겠으니 나를 축복해 달라고 그러니까 에라 이놈아 어디 맞아보라고 손들어서 환도뼈를 탁 치니까 우지끈 하더니만 그만 허리를 다쳐서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일어나보니 자빠지고 일어나보니 자빠집니다. 아이구 나는 그러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는 달아나지도 못하겠으니까. 네 이름이 뭐냐? 야곱입니다. 사기꾼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바꿔서 불러라.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씨름하면 지면 이기고 이기면 집니다. 하나님께 지면 하나님은 축복을 해주시니까 이긴 자가 되고 하나님을 불순종해서 사람이 이기면 하나님이 축복 안 해주기 때문에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성경에 운명을 바꿀 때 준 한 전통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람도 아브람에서 많은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 사래도 사래에서 사라로 많은 여주인으로 이름을 바꾸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름은 쉽게 의미 없이 짓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름은 평소에 많이 부르고 늘 적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이 이름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이름 잘 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최개똥, 아이 세상에 이름을 개똥이라고 지어서 늘 개똥, 개똥합니다. 그러면 개똥같은 인생이 되고 말아요. 전번에 일본에 화산이 터져서 큰 불행이 다가왔을 때 우리 한국 사람이 일본에 많이 도우러 건너갔습니다. 그 중에 출입국 관리소에게 한국으로 돌려보낸 사람이 있는데 박벼락, 박벼락을 이름을 가지고 가니까 벼락부자가 되라고 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본 사람들은 아주 기가 막힙니다. 그러니까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그 외에도 화산에 비슷한 이름이 있는 사람은 다 못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은 여러분 운명과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내 입의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입의 말로 내가 사로잡힌 바 되었다고 했으므로 입의 말이 여러분의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꼭 저주의 말은 하지 말고 축복의 말을 하고 패하고 망하는 말은 하지 말고 성하고 발전하는 말을 사용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잠언 3장 5절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아주 야곱이 어려울 때 천사를 만났는데 천사에게 모든 것을 맡겼으면 될 것인데 자꾸 자기 고집만 부리니까 천사가 환도뼈를 쳐서 부러졌습니다. 그러니 야곱이 이제는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형의 400인의 군대가 와서 처자들을 다 죽이고 자기를 찾아올 때 두 다리가 성하면 도망칠 수 있는데 이제는 절름발이가 되어서 도망을 못 치니까 그가 변화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를 받고 변화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면 환경적인 징계가 내려와서 우리를 순종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야곱은 절름발이가 안 되었으면 절대로 형 앞에 거꾸러지지 않습니다. 절름발이가 되었으니 형 앞에 거꾸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3. 천사와 씨름
천사와 씨름해서 이길 것 같았으나 기어코 절름발이가 되어서는 그가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창세기 32장 24절로 25절에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이기주의적인 자기중심의 삶을 깨뜨리지 않았으나 다리에 상처를 입고 절름발이가 되니까 이제는 자기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가 깨어졌습니다. 절름발이가 된 야곱은 최악의 상태입니다. 이제는. 변화를 받을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자기 뜻대로 하다가 죽을 것이냐. 둘 중 하나입니다. 야곱으로 남아있다가 죽을 것이냐. 이스라엘이 되어서 변화를 받아 살 것이냐. 변화될 것이냐 고집을 부리다 죽을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보내고 징계를 때릴 때 변화 받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고 변화를 받지 아니하면 그것으로써 고통을 당하고 파멸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6절로 32절에 보면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하나님 앞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9절로 32절에 보면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야곱이 절름발이가 된 그 인생에 크게 변화가 다가왔는데 그 절름발이를 통해서 주인의식이 달라진 것입니다. 전에까지는 내가 주인이다. 주인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 그러나 절름발이가 되고 난 다음 이제는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으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 그 다음 변화가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갈 동안에 내가 주인이면 모든 책임을 내가 걸머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인생의 주인이면 내 짐을 내가 걸머져야 되고 내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 되고 내가 갈 길을 스스로 정해야 되는데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면 모든 짐은 하나님이 맡아 주시옵시고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모든 길은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주님을 우리 주인으로 삼느냐 내가 내 주인으로 삼느냐. 마음에 결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가 주님께 내어 맡기면 주님이 책임을 지고 우리를 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린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죄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다. 자신에게 의지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면 나의 죄, 나의 불의, 나의 질병, 나의 저주, 나의 죽음을 예수님이 책임지고 십자가에서 청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주인이면 우편 강도, 좌편 강도 중에 한 강도가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과 같이 자기가 책임지고 스스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4. 내가 변화되면 상대도 변화된다
우리는 이 야곱이 환도뼈가 어그러지므로 이기주의를 버리고 인본주의를 버리고 주님을 주인으로 삼고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4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야곱이 꾀가 많은 여우같은 사람이었는데 환도뼈 어그러지자 버러지같이 된 것입니다. 굼벵이같이 꿈틀꿈틀.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십시오. 야곱이 환도뼈가 어그러지고 난 다음에 꾀 많은 사람이 버러지가 된 것입니다. 너 버러지 같은 야곱아,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제는 버러지는 자기가 스스로를 도울 수가 없으니까 내가 너를 도와주마. 하나님이 야곱을 도와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어져서 버러지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살아서 팔딱팔딱 뛰고 하나님께 저항하고 고집을 부리면 자기가 자기 운명 책임져야 되기 때문에 온갖 시련과 고난을 다 덮어쓰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버러지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 대신해서 짐을 짊어져 주시고 문제를 해결하시고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여러분, 여러분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삶을 살았다면 오늘 이 시간에 야곱처럼 회개하고 주님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나의 모든 짐을 맡아주시고 나의 문제를 맡아 주시옵시고 나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나는 하나님만 섬기는 종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내가 다 이룰테니 너는 나에게 맡기고 의지하고 따라오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난 다음 하나님께 와서 하나님 내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물어보십시오. 하나님이 내가 주인이니까 내가 너의 일을 다 맡아서 한다. 너는 할 일이 없다. 너는 그저 나를 믿고 순종하고 따라오라.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다 맡겨 놓으면 여러분 할 일이 없어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구원의 고통을 다 당하셨으니 여러분 십자가에 매달릴 일이 없습니다. 주님 혼자 달렸으니 고통스럽지요? 나도 좀 함께 달리게 해주십시오.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내가 다 짊어지고 달렸으니 네가 할 일은 없다. 너는 그저 나를 바라보고 믿고 따라만 오너라.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고 참으로 마음에 평안을 가지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으면 예수님이 우리 짐을 대신 짊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질 짐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짐을 예수님이 다 짊어졌는데 어디에 우리가 짊어집니까?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감사하고 따라가면 주님이 다 이루어서 유익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야곱은 주님을 주인으로 삼게 되고 모든 짐을 맡기니까 이제 자기가 할 일은 믿고 따라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따뜻하고 순종하고 교만을 버리고 낮아졌습니다. 얍복 나루터를 건너가서 당장 가족들 앞에 자기가 섰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건너왔습니까? 하고 애들이 물었을 것입니다. 내가 달라졌다. 이제는 내가 제일 앞에 서서 에서를 맞으러 갈테니까 내 뒤에 따라오너라. 그리고 에서가 군대를 거느리고 뛰어오는데 앞서 뛰어 나가서 7번 엎드려 절을 하면서 갔습니다. 그 당시 7번 절한다는 것은 종이 되겠다는 항복 문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원수 앞에 7번 무릎을 꿇어서 절을 하면 내가 종입니다. 처분대로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자기를 종으로 맡기는 형식인 것입니다. 자기의 짐승 중에 좋은 것으로 선물꾸러미를 만들어서 형에게 보냈고 형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33장 3절로 4절에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하나님이 변화시키지 않고는 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것이 20년 동안 원한을 품고 있던 형이 에서가 동생을 보고 난 다음에 7번 절을 하고 오는데 절뚝절뚝하고 오니까 이것은 칼 한번 써볼 필요도 없다 말입니다. 완전히 절룩발이가 되어서 7번 절을 하고 형에게 선물을 가지고 찾아오는 것을 볼 때 그 마음이 측은한 마음이 생겨서 성령이 역사해서 형이 동생의 목을 안고 울었습니다. 눈물은 뼈에서 나오는데 그 원한을 하나님이 얼마나 순식간에 변화시켰던지 동정으로 측은한 마음으로 변해서 동생을 껴안고 울었습니다. 이게 화해가 이렇게 되어야 화해가 되는 것입니다. 조건을 세워서 서로 밀고 당기는 것이 서로 화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측은히 여기고 깨어져서 눈물을 흘리면 화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남북 간에 헤어져 있는데 남북 간에 서로 화해할 날이 다가와야 되는 것입니다. 남북 간에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는 길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야곱처럼 우리가 스스로 낮아져서 형제를 끌어안고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북한 동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변화시켜 줘야지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고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되느니라고 하나님이 변화시키면 변화 못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되어야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나는 변화 안 되고 상대방만 변화되라고 하면 상대방이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야곱이 변화되어서 20년 전에 떠나던 동생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변화된 형제로 돌아오매 하나님의 은혜로 형제가 화목된 것입니다.
창세기 33장 10절로 12절에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동생을 죽이러 400인이 군대를 거느리고 온 형이 동생을 호위해서 가는 400인의 군사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가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양과 도덕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변화를 시켜주는 것입니다. 죄인은 의인으로 불의한 자는 거룩한 사람으로 병든 자는 치료받은 사람으로 저주받은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으로 가난한 사람은 부요한 사람으로 죽는 사람은 천당 가는 사람으로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성령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예수님을 통해서 변화 받아 왔고 앞으로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 문제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수없이 많은 고통의 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는데 하나님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주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 여러분의 문제의 대답을 그 자리에서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깨어져서 주님을 주인으로 삼고 주님을 섬기러 나오면 하나님의 대답은 여러분 생활 속에 줄줄이 이어서 올 것입니다. 닫힌 문은 열려지고 미움은 사랑으로 변화되고 저주는 축복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때가 오면 변화의 기적을 베풀어 주어서 은혜를 진실로 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고린도후서 5장 18절로 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해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로 21절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무슨 말씀이냐면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 무서운 대상이 아니라 우리 친 아바 아버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가서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르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게 된 이상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한 다른 사람에게 데리고 와서 화목시키는 직분을 맡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직분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흉악한 죄인, 버림받은 죄인이라도 여러분이 대속의 기도를 하고 데리고 하나님 앞에 와서 아버지 하나님 이 사람 하나님께로 돌아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화목케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를 우리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여러분 예수님이 죄를 걸머진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 자체가 죄가 되버린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죄 덩어리가 되버리셨어요. 죄를 짊어진 정도가 아닙니다. 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자비하도록 그를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도록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불한 대가가 엄청나게 큽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용서와 화해와 의를 주시는 그 화해와 의도 엄청나게 큽니다. 오늘 여러분 이 시간에 아무 의미 없이 앉아있는 것 같지만 여러분이 아버지 이름을 부르면 아버지가 하늘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여러분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때문에 그만큼 비중이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 아닙니다. 굉장히 비중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예수 이름으로 화목을 얻은 사람으로써 화목을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대신 기도를 하라고 성경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하나님이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죄인을 의인으로 불의한 자를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누어 이긴 자가 되어 온유하고 겸손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던 야곱과 같이 여러분도 그런 변화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형의 적개심을 무너뜨린 것처럼 여러분의 기도는 수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있는 적개심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여러분을 새것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라의 의, 평강, 희락을 가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면 여러분 속에서 사랑이 넘쳐 나오고 새사람이 되어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변화되면 환경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환경이 변화되어서 여러분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옛날보다 얼마나 잘삽니까? 그러나 잘사는 환경 때문에 우리가 옛날보다 행복해 졌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은 안 바꿔지더라도 우리가 예수 믿고 바꿔지면 환경이 안 바뀌어져도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거대한 변화를 마음속에 받아들였습니다. 여러분은 바꿔진 것입니다. 영혼이 잘됩니다. 범사에 잘됩니다. 강건하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은 병에서 고침 받고 장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성공합니다.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 여러분이 이름이 적혀지고 천국 보좌에 그리스도와 함께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일만 있지 나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좋은 일을 받아들여서 항상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믿고 기대하고 긍정적으로 말하며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십시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이삭의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의 원한관계가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으로 변화되어서 서로 달라지고 사랑으로써 용납하게 된 것을 보았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바라보고 우리 자신이 변화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용서하고 변화되도록 축복하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여! 이 세상에 스스로 잘난 사람도 없고 스스로 위대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잘났고 예수님이 위대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면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 바 되지 않고 거꾸러져도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 죽인 것을 항상 몸에 짊어지고 예수의 생명에 의지해서 사는 우리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지금 성령이 운행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우리 마음속에 변화의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