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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2. 어버이주일설교 깨어진 사람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서론> 오늘 여러분과 함께 저는 “깨어진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물건은 깨어지면 못씁니다. 내가 어릴 때는 어머니 따라 부엌에 가서 불 때는데도 도와드리고 불도 쬐고 했는데 항상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그릇들 만지지 말라. 왜요? 얼마나 비싸다구. 네가 떨어뜨리면 깨어지잖아. 그래서 어머니가 계시면 항상 그릇에 손을 안 대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릇은 깨어지면 못쓰게 되지만 사람은 깨어지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람은 깨어지지 아니하면 쓸모가 없어요. 여러분 자신도 깨어진 사람이 아니면 남편에서 골머리가 되고 또 아내에게 골치 아픈 자가 되고 이웃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중심적인 깨어지지 않은 모진 사람들은 이웃에게 재앙이 됩니다. 세상의 환란과 고통과 재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깨어지지 않은 강한 지도자는 수많은 슬픔을 세상에 가지고 왔습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스탈린, 도죠, 김일성 같은 깨어지지 않은 사람이 우리 인류에 끼친 화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농부가 하나님께 나가서 요구를 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원하는 때 비를 주시고 원하는 때 빛을 주시면 상당히 수확을 많이 거두어서 십일조도 많이 드리겠으니까 좀 제가 시키는 대로 해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그래, 1년 동안 네가 시키는 대로 해주마.” 그래서 비가 필요할 때 “하나님 비를 주십시오.” 하니까 비가 농장에 내려서 곡식이 잘 자랍니다. 그리고 햇빛이 비췰 때 “햇빛을 비춰 주십시오. 열매 맺을 때 햇빛이 비취니까 참 좋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보내지 마십시오. 태풍이 불면 큰일입니다.” 바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가을에 추수하는데 곡식들이 잘 자라서 수확이 굉장히 많을까 싶어서 기분이 좋아서 거둬 보니까 곡식 알맹이가 거의 없는 쭉정이들이에요. “하나님, 비올 때 비를 주시고 햇빛 비췰 때 빛을 주셔서 곡식이 열매를 잘 맺은 줄 알았는데 왜 반 쭉정이가 되었습니까?” “자네가 한 가지 잘못한 것이 있네.” “뭡니까?” “바람 불어야 될 때 바람 달라고 말 안했기 때문에 곡식이 쭉정이가 되었다.” 여러분 곡식도 바람 불 때는 바람이 불어야 알맹이가 탄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생활에 살아가면서 바람 없는 고요한 인생을 살게끔 해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그런 삶은 주시지 않겠지만 주면 열매가 없습니다 인생에... 여러분 인생에 이름을 나타내고 큰일을 이룬 사람들의 생애를 보면 험한 길 걸어왔습니다. 시련을 많이 겪습니다. 인생 풍파를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큰 축복을 그 이후에 갖다 주는 것입니다. 알곡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햇빛뿐 아니라 적절한 바람이 필요하듯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고난이 우리 생애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깨어지지 아니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깨어진 사람들 우리가 구약성경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이 택해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복을 준 사람은 인간의 삶속에 시련을 당하고 깨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굉장히 복을 받은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며 번창케 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가서 창성하고 거부가 되고 굉장히 복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우리가 그 배후를 보면 시련을 많이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고향산천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내려갔는데 큰 기근이 다가와서 일가친척들이 다 고향으로 도로 돌아가고 롯을 데리고 올데 갈데 없어서 살려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애굽에서 자기 아내가 너무 이쁜 고로 임금님에게 아내까지 뺏기고 고생을 실컷 했습니다. 또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온지 오랜 세월동안 조카를 데리고 살았는데 조카의 재산이 늘어나니까 삼촌의 목동들과 조카의 목동들이 풀밭 가지고 서로 싸우고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조카하고 헤어졌는데 조카가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멸망을 받게 되었으니까 그것 건져내려고 죽을 애를 썼습니다. 한편으로는 축복을 굉장히 받았는데 다른 면으로는 시련이 그치지 않습니다. 제일 큰 시련이 100세에 낳은 아들을 모리아산에 번제로 드려라. 번제로 드리라는 것은 잡아서 각을 떠서 장작불에 넣어서 태우는 것입니다. 시련치고 그만큼 고약한 시련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짐승을 잡아서 드리라고 해도 힘들겠는데 자기가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아들을 재물로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가서 모리아산에 가서 재단을 쌓고 장작을 펼쳐 놓고 아들에게 달라 들어서 그를 묶어서 장작 위에 얹어놓고 칼을 들어서 잡으려고 달려드니까 하늘의 천사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외독자 아들 이삭에게 칼대지 마라. 네가 외아들이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내게 내놓은즉 이제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한 줄 알겠다. 하나님은 시련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의 진실성을 알아보실 뿐 아니라 시련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를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랬고 야곱은 정말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았었습니다. 형하고 늘 부딪혀서 많은 시련을 집안에서 겪다가 나중에 형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난 다음 형이 죽이려고 하매 그가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레아와 라헬이라는 두 딸을 사랑해가지고서 라헬 동생을 아내로 삼으려고 외삼촌에게 조건을 댔습니다. “내가 7년 동안 월급 하나 안 받고 임금 없이 일을 해드릴테니까 라헬을 내 아내로 주십시오.” 외삼촌이 “좋다. 남에게 주는 것보다 네 누나의 아들에게 내 딸 맡기는 것 나도 좋게 생각한다. 좋다. 그렇게 해라.” 그래서 7년을 하루같이 세월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 야곱이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7년을 살았는데 하루 지낸 것 같더라. 굉장히 사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혼식날 삼촌보고 “삼촌, 이제 내 사랑하는 라헬을 내게 주십시오.” “데리고 가라. 오늘식에 데려가라” 아주 행복하게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에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얼굴을 보니까 라헬이 아니라 레아입니다. 언니에요. 전등불이 없었으니까 그런 일 당했지 전등불 있었으면 그런 일 안 당했지요. 그러나 외삼촌에게 항의를 하니까 외삼촌이 “우리 지방에서는 언니보다 동생을 먼저 시집보내는 법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라헬을 줄 테니까 7년 동안 일 좀 더 하게.” 그래가지고 외삼촌은 자기 딸 둘을 한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20년 가까운 머슴살이를 시켜서 공짜로 부려 먹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계획도 안했는데 아내를 두 사람이나 거느리게 되었어요. 자식들 이제 많이 낳아서 돌봐야 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삼촌이 모든 것을 다 빼앗고 강제로 고향으로 못 돌아가게 하려 했으나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얼룩 덜룩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큰 부자가 되어서 짐승 떼를 거느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형이 400인의 군인을 거느리고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이를 갈며 원수를 갚으려고 기다렸던 형이 동생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자마자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낭패입니다. 이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까 얍복나루터에 가서 강 건너 가족들을 다 건너 보내고 자기는 강 이편에 있어서 형이 와서 식구들을 치기 시작하면 자기를 진실로 죽일 의사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는 도망쳐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자기 혼자 숨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밤에 얼토 당토 않게 큰 장정이 뛰어 들어와서 그의 목을 잡았어요. 그리고 건너가라! 왜 너만 살겠다 하느냐. 너 처자가 있는 곳으로 건너가라! 난 못 건너갑니다. 처자가 있어도 내가 살아야지 처자가 살기 위해서 내가 같이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밤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몸의 덩치가 하도 큰 장정에게 부딪친지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는 요번에 오스트레일리아에 가서 느낀 것은 우리 한국에서는 나도 중간쯤 키가 큰데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네피림의 자손 아낙자손 대장부가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엘리베이터 타면 전부, 전부는 아니지.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내 머리가 그들 턱 밑으로 들어가요. 이렇게 쳐다봐야 돼요. 이번 집회를 주장한 프레지던트, 책임 목사님하고 이야기를 내가 별로 안했습니다. 아침에 밥 먹으러 내게 오고 날 인도하러 오고 나하고 이야기하러 와도 내가 마음 놓고 이야기를 못하는 것은 이렇게 하고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말을 하기 전에 벌써 꿀린다 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키 큰 사람이 있으니까 정신적으로 억압을 당하는데요. 감당을 못하겠어요. 그런 사람하고 씨름하라고 하면 백발백중으로 질 거에요. 그런데 야곱이 당한 것도 그것입니다. 자기보다 등치가 크고 키가 큰 대장부가 들어와서 건너가라! 나는 안 건너갑니다. 건너가라! 안 건너 갑니다. 죽어도 가족들과 같이 죽고 살아도 가족들과 같이 살아야지. 그것은 옛날 사람들 이야기고 내가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덩치 큰 사람이 도저히 야곱이 말을 안듣고 발버둥을 치므로 여기 환도뼈를 치니까 환도뼈가 어그러져가지고서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형은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오는데 이제 절름발이가 되었으니 달아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절뚝거리면서 여러분 어떻게 달아납니까? 사람은 두 다리가 튼튼해야 일도 잘하고 달아나기도 잘할 수 있는데 다리가 절뚝거리면 큰일이거든요.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목사들과 어지간한 성도들은 제가 파킨슨병에 걸려서 고생한다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얼마 안 있으면 못 걷고 휠체어에 앉아서 밀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제가 설교하는 중간에 사람들 앞에서 걸었습니다. 여러분이 박수치는 것처럼 그들도 일어나서 박수를 쳤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십시오. 절름발이가 되었습니까? 안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므로 여러분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하라고 절름발이를 안 만들었습니다만 야곱은 하도 고집이 세니까 하나님이 영구히 절름발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형이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오는데 건강한 몸이 아니고 상대가 안 되니까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잔뜩 분을 품고 오다가 보니까 절름발이가 오는데 창 한번 던질 가치도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갑자기 측은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측은한 마음을 주셔서 20년 동안 원한이 변해서 20년 동안 불쌍한 마음이 되었어요. 사람이 마음에 측은한 마음을 품으면 원수를 갚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이 앞서지요. 아까 어머님의 사랑은 말할 수 없다는 찬송 부를 때 자꾸 눈물이 나서 내가 오늘 강단에 서서 눈물 흘리면 안 되겠는데 애를 써서 결심을 해서 다행히 안 울었어요. 이와 같이 형이 갑자기 마음속에 긍휼한 마음이 생겨가지고서 동생에게 오는데 동생은 땅에 일곱 번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기에 일곱 번 절했습니다. 일어났다 절하고 또 일어나고 절하고 또 일어나고... 그러니 형이 와서 목을 얼싸안고 야 이놈아, 20년 동안 안부도 한번 안전해주고 아버지 세상 뜨시고 어머니 세상 뜨셨는데 장례식도 안 와보는 고약한 놈아, 이렇게 했으면서 건강한 몸으로 못오고 절름발이가 되어서 왔느냐!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내가 너를 죽이려고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왔으나 400인의 군대를 동원해서 너를 옹위해서 보호해서 데리고 갈 것이다. 하나님 앞에 깨어지니까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까 원수가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하나님이 복 주실 때 어지간한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깨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더구나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질투와 시기를 당해가지고서 애굽으로 포로로 종으로 팔렸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10년 동안 종살이하고 그 다음에 보디발의 아내의 참소를 받아서 3년 동안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13년 동안에 그는 종살이, 감옥살이에 뼈가 굵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하나님이 그를 높이시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서 나중에 그를 팔아먹었던 형제들이 다 와서 그 앞에 무릎을 굻고 항복하고 사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깨어져야 하나님이 쓰는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일은 모세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바로의 딸의 양자가 되어서 애굽의 바로궁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애국심이 투철해서 자기 동족을 방해하는 애굽사람을 쳐 죽이고 난 다음 이것이 들켜서 바로왕이 죽이려고 하매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쳐서 40에 도망을 쳐서 미디안의 추장인 이드로의 딸에게 결혼해가지고서 40년 광야에서 삽니다. 목동으로서 떠오르는 햇빛 그리고 폭풍우, 메마름, 아무 친구도 없는 곳에 양떼를 거느리고 풀을 찾아 이구석 저구석으로 다니는 생활을 40년 동안 해서 40살의 젊은 나이에 광야에 들어온 그가 40년 동안 머슴살이로 세월이 흘러갔으니 이제는 세상에서 잊어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머리도 백발이 되고 몸도 허리가 굽어지고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고 이제는 나는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불붙는 가시넝쿨 안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백양목도 있고 좋은 나무도 있었을 것인데 가시넝쿨을 통해서 이야기 했느냐.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니까 인생이 가시와 같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가시넝쿨 아닙니까? 자기 인생이 가시넝쿨 같이 되어서 나는 버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가시넝쿨이 불에 타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의 불이 오면 아무리 가시넝쿨 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주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비하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나는 가시넝쿨 같은 인간입니다. 나는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 개의치 않습니다. 가시넝쿨에도 성령의 불만 임하면 천하를 밝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그런 시련을 통해서 깨어져서 하나님에게 항복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종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신명기 8장 2절로 3, 16절에 보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의 목적은 마침내 복을 주겠다. 그러나 그 중간에 깨뜨려서 낮추신다. 교만하고 오만하고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이렇게 어깨 펴고 머리를 흔들어 재끼는 사람하고는 무슨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깨어지고 낮아진 사람 그리고 진실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모세는 그 단계에 도달한 40년의 세월이 걸린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사업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하는데 일이 안되고 자꾸 어려워지고 괴로워지면서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데 왜 하나님 나를 버리십니까? 그렇게 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큰 시련 뒤에는 큰 축복이 있고 적은 시련 뒤에는 적은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 앞에 밥상 차리시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잔이 넘치게 한다. 원수가 큰 원수면 밥상도 진수성찬이고 원수가 큰 원수가 아니면 김밥입니다. 그래도 시험이 없이는 김밥도 얻어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시험을 보내는 것은 시험이라는 것이 나쁜 것이 시험만 되는 것이 아니라 큰 축복 이것도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당장 너무 큰 축복이 오면 그만 마음이 세상에 잡혀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에 끌려가고 낭패가 되니까 하나님은 영혼도 붙잡아 주고 천당도 주고 이 세상에도 축복받게 하기 위해서는 시련을 통해서 영혼이 단단히 교훈을 받고 난 다음에 이 땅에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험 없는 축복은 큰 환난이 될 수가 있습니다. 시험 없이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백만 지옥으로 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고 끝까지 하나님이 잘되게 한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나를 시험하시는 것은 마침내 내게 복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마침내 내게 복을 주시려고 나를 낮추시고 나를 시험하신다. 이것 잊지 말아야 돼요. 시험 당하면서 내내 불평하고 원망하면 그 축복도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2. 깨어진 사람과 안 깨어진 사람 우리가 살면서 깨어진 사람과 안 깨어진 사람이 뭐가 다르냐고 그런 질문을 합니다. 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안 깨어진 사람 어떻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생각해 보면 깨어진 사람은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 된 사람인 것입니다. 깨어지기 전에는 내가 내가 이 집도 내가 지었고 이 성도 내가 지키고 이 사업도 내가 하고... 전부 자기중심으로 자기를 자랑하는데 깨어진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도 돌보아 주셨고 이 집을 짓는 것도 하나님이 지어 주셨고 이 성을 지키는 것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하나님이 축복해서 건강하게 살고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주인이 되고 하나님만 자랑하는 사람은 깨어진 사람이고 안 깨어진 사람은 자기 자랑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와 동등하지. 하나님 선악을 심판하는 것처럼 나도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동등하게 선악을 판단하는 사람이니까 하나님과 나는 똑같이 이퀄(equal)이다. 미안한 말로 불신자와 무신론자니 하나님 자기나 나나 이런 소리를 합니다. 아주 두렵지요. 자기 삶의 주인이고 안 깨어진 사람은 극히 이기주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통해서 만나서 이야기 할 때 자구 내가 내가 라고 말하거든 큰일 날 사람인줄 알고 빨리 비키는 것이 좋습니다. 그 다음 또 깨어진 사람은 무엇이 다르냐. 사람이 환난과 시험을 당하여 깨어지고 나면 그 입에서 뭐가 나오느냐. 끊임없이 감사의 말이 나옵니다. 깨어진 사람이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무엇이든지 감사합니다. 합동하여 선을 이루니 감사합니다. 감사를 자꾸 하는 사람은 깨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하고 시간을 보내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긍정적으로 말하고 감사하고 칭찬하고 좋지요. 그러나 안 깨어진 사람은 범사에 원망, 불평, 부정적입니다. 일이 생겼다 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입니다. 참 모시기 힘든 사람인 것입니다. 시편 37편 7절로 8절에 “야훼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야훼를 의지하고 잠잠히 참아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하나님께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깨어진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사람이 깨어진 사람은 자기가 참 따뜻하고 진실하고 겸손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께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안 깨어진 사람은 완악하고 냉정하고 사납습니다. 서로 만나서 이야기할 때 보면 냉정하고 사나운 사람, 그 사람은 안 깨어진 사람입니다. 나중에 같이 일하면 큰일 당할 사람인 것입니다. 그 다음 또 깨어진 사람은 이해와 동정과 사랑과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서로 일을 당해도 이해하려고 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오래 참습니다만 안 깨어진 사람은 아집과 무정과 미움,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중심이고 무정합니다. 몰인정하고 한번 미워하면 용서하지 않아요. 참지 못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진 사람은 은혜의 사람인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도와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고 도와주려고 하지만 안 깨어진 사람은 율법주의자로서 판단하고 정죄하고 벗깁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잘못하고 내가 제일이다. 내가 옳다. 나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 내가 옳고 네가 다 나쁘다. 그래서 너가 욕을 먹어야 되고 너가 화를 당해야 되고 너가 발가벗김을 당해야 된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이웃을 벗기려고 달라드는 사람 이 사람은 안 깨어진 사람입니다. 3. 사람을 깨뜨리는 시련과 고난 그 다음에 시련과 고난이 사람을 깨뜨리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은 다른 것으로는 안 깨어져요. 수양과 도덕을 닦는다고 깨어지느냐. 안 깨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벌써 범죄자의 자식으로 DNA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옆으로 앞으로 인간적인 수양과 도덕을 닦도록 해도 안 깨어지는 것입니다. 속에서부터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데 그것은 인생에 심한 내적 고난을 겪어야 깨어지는 것입니다. 시련과 고난이 사람을 깨뜨리지 수양과 도덕과 논리를 가지고는 깨지지 않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 동등 됨을 으스대는 인간이 자기의 무력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순종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올 만큼 고난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싫어요. 누구든지 고난당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야 여러분 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이 감당할 만한 고난은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감당치 못할 시험은 당하지 않게 합니다. 시험당할 쯤에 이제 이 사람이 못 견디겠구나 하면 하나님이 시험을 중지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여러분 시험 당해도 여러분이 못 감당할 시험은 안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톱시키는 것입니다. 시험 여러분이 감당할 만한 시험은 끝까지 당하게 해서 그만큼 여러분이 깨어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로 6절과 11절에 보면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깨어지고 난 다음에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깨어져서 악인의 꾀를 버리고 오만과 교만을 버리고 온유하며 순종하고 겸손하여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깨어진 사람이어야 믿음의 사람이 되어요.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내가 내가 내가 하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이 안되는 것입니다. 깨어진 사람은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믿음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깨어지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사람은 큰일을 이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하니까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혼이 나고 깨어지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지킬 수가 있어요. 내가 안 깨어지고 오만하고 교만할 때는 어떠한 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을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는데 깨어진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를 높이시리라. 높이는 것이 동서남북 어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데 하나님은 깨어진 사람을 높이시고 깨어진 사람은 자기가 주인 된 삶을 살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천지만물, 인간의 주인으로 모시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 주인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으니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아예 그것을 인정 안하지만 예수 믿고 아직 초년병 일 때는 내 마음에 하나님이 주인이 되었다가 내가 주인이 되었다가 주인이 두 사람이 들락 날락 들락 날락 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초신자들이 교회 나오는데 꼭 교회 나오는 그날에 동창회 모임이 있습니다. 꼭 그런 날이 있어요. 네가 꼭 와야 된다. 너가 안 오면 안 된다. 그 날은 마귀가 동창들 시켜서 특별히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일어나서 하나님, 이번 주일은 아무래도 내 마음대로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환경에 따라서 네가 주인이 되었다가 내가 주인이 되었다 하면 내가 정신이 헛갈려서 못 견디겠으니 네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하면 큰일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나에게 미리 허락을 받으려고 하는 일이 종종 있어요. 토요일 날에도 그렇고 토요일 오기 전에도 나에게 어떤 사람은 전화를 걸어서 목사님 주일날 교회 못나가겠으니 용서 좀 해주십시오. 피치 못할 상황입니다. 내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 주일날 못 갈테니 교회에서 못 오더라도 날 좀 봐주십시오. 그런데 내가 하는 말이 교회 오는 것은 내가 봐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봐 주냐 안 봐주냐가 문제지... 주님께 허락을 받아야지. 날 보고 허락해달라고 하느냐 하니까 주님은 안 보이고 목사님은 보이지 않습니까? 벌써 그 때부터 두 주인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기도 하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기도 하고... 신앙이 자라면 여러분 주일날에는 동창회 아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주님 섬기는 것이 제 일의 첫째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님을 섬깁니다. 사람들이 저 예수에 미쳤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게 사랑의 표시니까 어려울 때 내가 건져 주겠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너가 나를 알고 있으므로 내가 높여 주겠다. 축복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자기가 주인이 된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는 것은 우리에게 천하를 얻을만한 큰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주인은 여러분 자신만 하나님이 받아들여서 돌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도 문제도 주인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책임 지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어떠한 짐이 해결 못할게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우리 주인으로 삼는다는 것은 거대한 축복입니다. 네 길을 네 짐을 네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나를 돌보심이라. 여러분 살아가는 길도 맡기고 짐도 맡기고 염려도 맡기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갈보리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고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꿈꾸고 믿고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그 자리에 앉아계시면서도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마음으로 쳐다 보십시오. 여러분이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죄가 있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함께 장사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해서 함께 승천해서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나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둘로 분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내 짐을 예수님 당신의 짐으로 짊어지고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 다 맡기고 믿고 감사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일은 여러분이 하지 않고 주님이 하기 때문에 주님께 일과 짐을 다 맡겨버리고 난 다음에 믿고 그 다음에는 안식하는 것입니다. 쉬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목숨까지도 주님께 맡겼습니다. 주님께서 느부갓네살 당신이 우리를 불풀무에 던져 넣으면 건져내주겠거니와 안 건져 주시더라도 우리는 우상에 절 안한다. 우리 생명을 맡긴다. 그러니까 칠 배나 뜨겁게 한 불구덩이지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이 태우지 않고 천사를 보내셔서 지켜준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은 주님이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참말로 말한 것입니다. 누가 다른 사람 짐 맡기 좋아하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내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나에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짐은 쉽고 내 멍에는 가볍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여러분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복을 주셔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오스트레일리아 목사들의 식탁에서 이야기 하면서 발견한 것은 우리 주님은 죄에서 우리를 용서하셔서 영생을 얻게 하는 주님이시고 그 다음 문제는 주님 책임 안 진다는 그런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하는 말이 여보십시오. 이 땅에 살면서 70년이나 80년을 사는데 그것은 쓸데없는 인생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이 땅에서도 천국 생활을 하고 육신을 떠나서는 천국은 말할 필요 없이 올라가서 천국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 바로 천국인데 주님이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 속에 와 계십니다. 심령천국, 지상천국, 천상천국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을 믿고 마음 천국, 지상천국, 영원천국에 들어가서 삽니다. 좋은 하나님, 좋은 예수님을 모신 결과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뜨리게 만들어서 깨어져서 정말로 하나님 품에 안기는 귀한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여러분께서 하나님 말씀을 딱 외워서 가지고 있으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말씀을 잡고 말하면 그 말씀이 대신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러면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원수가 생겨서 나를 괴롭히잖아요. 그러면 말씀을 가지고 대적을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푼다. 하나님, 진수성찬 차린 것을 믿습니다. 원수가 자꾸 와서 괴로우니 잔을 차려 주심을 믿습니다. 성령으로 기름 부으셔서 내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꼭 말씀을 받아서 대적을 하면 원수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말씀이 굉장히 귀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지고서 여러분 큰 승리를 하십시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우리가 시련의 학교를 졸업하면 그 졸업장이 온전하게 굳건하게 강하게 견고하게 하는 졸업장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밤과 낮이 번갈아 하루가 되는 것처럼 평안과 시련이 번갈아 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합당하게 교육시키시는 것입니다. 밤이 가고 낮이 와서 하루가 된다. 그러면 우리 인생살이에도 평안과 시련이 아침, 저녁으로 번갈아 와서 온전한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신다. 우리는 반드시 시련이 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반드시 시련을 통해서 예수님께 의지하면 우리가 깨어진 사람이 되어서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은 마음이 깨어져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된 인물인 것입니다. 다윗을 보고 하나님이 내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다윗은 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모두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왔다 갔다 하시면서 시련을 통하여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련이 오면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또 학교 보내십니까? 깨어져서 하나님 앞에 계급이 하나 올라가게 해 주시옵소서. 절대로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십니다. 감당할만한 시험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을 당할 때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저의 신앙생활에 경험한 것은 시험을 당하면 결과에 가서 좋아지지만 결과의 끝이 다가올 때쯤 되면 참을 수 없이 괴롭습니다. 그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서 제일 좋은 길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고통이 감사합니다. 이 시련을 감사합니다. 이 시련을 가져온 그놈 콧대를 때리고 싶지만 감사합니다. 나를 그런 진노의 자리에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꾸 감사를 하면 감사가 제일 빨리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주는 것입니다. 함께 분노하고 진노하면 더 큰 시험이 다가오고 시험이 괴로워지는데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의 영화로움을 받고 곧장 시험에서 이겨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 아버지, 이 시험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자꾸 반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