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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26. 주일설교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사 32:1~2) <서론>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첫 인류의 조상 아담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후손들은 자자손손이 아담의 저주 안에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둘째 인류의 조상 예수님은 하나님께 절대 헌신하고 충성하고 복종하고 믿음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사야서 32장 1절로 2절에 예언은 읽는 자나 듣는 자에게 감탄과 감격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며칠 전, 토네이도가 미국 오클라호마주 무어시를 강타했는데, 최고 풍속이 320km로 미국 기상청이 규정한 초특급 토네이도에 준하는 큰 폭풍우였습니다. 사람이 인형처럼 공중에 날라가 버려요. 바람이 불어서... 40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학교가 무너지고, 주택가 전체가 초토화되어 평화롭던 도시가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습니다. 토네이도가 잇따르자 미국 각 주에서 자신의 집에 폭풍 피난처를 짓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폭풍 피난처란 시멘트나 철강으로 만든 공간인데, 시속 160km의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토네이도가 불어 닥쳤을 때 폭풍 피난처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생명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삶에도 눈에 안 보이는 여러 가지 광풍이 불어 닥칩니다. 여러분은 삶의 광풍이 불어 닥칠 때 폭풍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가지고 있나요?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피난처가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피난처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피난처에 들어가지 못하면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폭풍우가 반드시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돼요. 그 폭풍우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마음에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광풍을 피할 곳을 찾고 있지요.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이라 해서 우리가 찾는 피난처는 바로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본론> 1. 광풍을 피하는 곳 자연 속에서 불어 닥치는 광풍은 울창한 수목도 모두 뿌리째 넘어뜨리고 집을 무너뜨리고 지나가는 곳마다 전쟁터와 방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악의 광풍을 만나 한 평생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씀한 것처럼 죄악이 광풍이 되어서 휘몰아치면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휘청 거립니다. 피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했으므로 이 광풍이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광풍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얼마나 심한 광풍을 우리 대신 당한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이키시고 그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폭풍우를 만난 그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고함을 쳤는데도 하늘에서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광풍을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고난당할 때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다 도망을 쳤어요. 3년 반 동안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일해 온 열 두 제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다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는 모른다고 예수님을 부인하기를 세 번 거듭했습니다. 사람들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잖아요. 내가 좋고 잘 나갈 때는 친구도 많고 친척도 다 자주 찾아오지만 내가 어렵게 되고 고통스럽게 되면 친구도 떠나가고 친척도 떠나고 외롭게 될 때가 한 두 번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이 다 자기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얼굴은 너무 맞아서 사람이 쳐다봐서 예수님인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었습니다. 온몸에 옷은 걸치지 않고 발가벗겨서 생살에 대못을 박아서 나무에 매달아 놓았었습니다. 그리고 원수들과 군중들은 정죄의 목소리로 아귀와 같이 고함쳤습니다. 저를 죽여라. 죽여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렇게 고함쳤습니다. 지나가던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이것이 바로 죄악의 삶의 광풍입니다. 이런 광풍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스란히 당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광풍을 온몸으로 막으사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오늘날에 예수님께서 광풍을 만난 사람이 그 품에 뛰어 들어오면 밀어내지 않습니다. 시편 91편 2절로 6절의 말씀같이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여러분 매일같이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얼마나 놀랍고 훌륭한 피난처가 되더라도 입을 딱 다물고 있으면 우리에게 효과가 없어요. 마음에 믿은 바를 입술로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된다. 그러면 그 말한 대로 되는 것입니다. 말을 안 하고 입을 딱 다물고 그냥 쳐다보고 있으면 주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될 수가 없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그렇게 말을 하면 그때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은 새 사냥의 올무에서와 극한 전염병에서 건지시고 그의 날개로 여러분을 덮어서 안전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광풍을 온 몸으로 막으신 우리의 피난처이시지만 여러분이 그를 인정해 드려야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아 몸찢고 피흘려 우리 죄를 사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바라보고 믿어도 실제 효과는 없습니다. 입으로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말로써 시인하면 예수님은 그대로 여러분에게 구주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치 독일의 감옥에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싸우던 코리 텐 붐 여사는 감옥 속에서도 이런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히틀러는 6백만 유대인들을 죽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코리 텐 붐도 유대인 중의 한 사람인데 감옥에 잡혀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때 그가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면 절망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내면을 바라보면 낙담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안식을 누릴 수가 있다.” 주위 환경은 히틀러가 최고의 권력을 누릴 때 온 크리스챤이나 유대인들은 다 잡아 죽였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절망이지요. 자기 속을 바라보면 너무나 허망합니다. 도울 자 없고 외롭고 고독합니다. 그때는 누구를 바라봐야 되느냐.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의 희망되심을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삶의 광풍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나의 피난처라고 말하면 마음속에 안식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찾아와서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세상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외로울지라도 주는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을 생각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피난처가 되신다. 환난을 아무리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빨리 그리스도의 품속에 안겨야 되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안기느냐고 자주 묻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피난처라고 입으로 고백하면 안기는 것입니다. 보고 믿고 말하면 된다. 예수님이 나의 피난처라는 것을 마음속에 상상으로 보고 그 다음에는 그가 피난처인 것을 믿고 그 다음 내가 말하면 놀랍게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피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먼저 마음속에 분명히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어야 되고 그것을 입으로 고백하면 현실적으로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2. 폭우를 가리는 곳 둘째로, 이 예수님은 폭우를 가리는 곳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폭우는 쏟아지는 비 아닙니까? 지구 여러 곳에 폭우가 쏟아져 도시가 물에 잠기고 산업시설이 떠내려가고 농토가 매몰되고 폭우를 당한 사람들이 망연자실한 모습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종종 납니다. 재난의 폭우를 당한 성경적인 상황에는 노아의 홍수가 있지요.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이 너무나 범죄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사람 지은 것을 후회하시고 노아 한 식구 여덟 식구는 의롭게 살았으므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방주를 준비하라고 하시고 40주 40야 비가 쏟아지게 하니 온 땅이 물에 잠기고 생명이 있는 것이 다 죽은 사건이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인 것입니다. 그리고 욥의 시험을 보면 구스 땅에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의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더라 그러나 사탄은 의로운 욥을 정죄했고 욥은 아들 7명과 딸 3명을 잃었고 모든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큰 폭풍우입니다. 인생폭풍우에 이런 고난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하루아침에 아들 일곱, 딸 셋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다음 또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폭우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하늘 곧 야훼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 19:24~25) 소돔과 고모라가 타락하고 우상숭배에 열중하고 하나님을 떠나 여러 번 경고를 해도 경고를 듣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불을 폭우와 같이 퍼부어서 그 성을 멸하고 만 것입니다. 위에서 폭우가 넘치게 온 것은 하나님이 심판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광풍은 지구에서 지구로 불어오는 바람이지만 위에서 쏟아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쏟아지게 만드시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 고난의 억센 폭우를 누가 막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을 누가 대신 막아 주겠습니까? 폭우는 하나님의 심판을 뜻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폭우를 가리우는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위에 하나님의 심판이 쏟아졌어요. 폭우가 쏟아졌어요. 예수님께서 여섯 시간 동안 매달려 있는데 그 고통과 괴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매달리신 예수님에게 폭우가 쏟아지듯이 심판의 불을 쏟았던 것입니다. 마지막에 주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하나님이 인류를 심판해야 될 그 모든 진노가 다 끝이 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세상에 온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했기에 아들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두다 예수님을 심판하고 만 것입니다. 그 아들이 전부 하나님의 진로를 맡아서 심판을 받고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심판에서 놓여나고 구원을 받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고난 받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께 나가면 꼭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해방과 자유, 예수님은 우리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해방과 자유를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해방과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해방자요, 자유를 주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정사와 권세가 다 허물어지고 마는 우리는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잡힌 사슬에서 해방을 주시고 그 다음에는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용서의 자유, 거룩함의 자유, 치료의 자유, 축복의 자유, 영생복락의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데 해방이 없고 자유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늘 우리 예수 이름을 부르고 이 자리에 모였기 때문에 여러분은 마귀가 갖다 준 묶음에서 해방을 얻습니다. 무엇에서 여러분 묶음을 받고 있는 것입니까? 죄에서, 저주에서, 가난에서, 낭패와 실망에서, 미움과 고통에서.. 반드시 해방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그리고 자유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아 자유를 갖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속박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이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 아니고 학문이 아닌 것은 우리 삶속에 들어와서 삶을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만히 설교를 듣고 있는 것 같지만 주님은 이 시간에 여러분을 살피고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3. 마른 땅에 냇물 세 번째, 예수님은 마른 땅에 냇물 같다고 말했습니다. 물이 없는 마른 땅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뭄이 다가와서 논이 바짝 마르고 밭이 바짝 마를 때 그 농부들의 가슴이 타는 듯한 상황이 되는 것을 우리는 어릴 때 종종 보았었습니다. 그때는 수리시설이 잘 안되어서 가뭄을 많이 타고 홍수도 많이 타요. 자연의 훼방을 많이 당했습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가뭄입니다. 한참 비가 와야 될 곳에 비가 안와서 땅이 쩍쩍 갈라지고 식물이 다 타죽어갈 때 농부들이 시냇물을 담아서 짊어지고 와서 아무리 부어도 소용이 없어요. 마른 땅에 냇물이 흐르면 그 땅은 비옥한 토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옥토라도 물이 없으면 사막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이 메마른 땅과 같이 되고 생명이 없어지면 사는 것이 기가 막히게 고통스럽습니다. 우리 마음에 샘물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 흘러가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런 것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왜 우리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찬양 드립니까? 내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와서 샘물이 솟아오르고 강물이 흘러나가서 내 생활뿐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생명수를 받아 변화 받게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셔라. 너희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여러분의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린다.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이런 것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 입으로 시인해 보십시오. 내 속에 생수의 강이 들어와서 흘러나간다. 말을 해야 됩니다. 내 속으로 나를 볼 때 내 속에 주님이 생수의 강을 만들어 주시고 강이 흘러나가는 것을 상상해 보고 믿고 그리고 내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립니다. 오늘도 내가 직장에 가면 직장 동료들에게 생수의 강이 흘러나갑니다. 우리 집에 들어가면 집안 식구들에게 생수의 강이 흘러나갑니다. 말하면 그때부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짜 생수의 강이 흘러나가서 믿음이 흘러나가고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넘쳐나가는 것입니다. 신앙하는 사람들 속에 이러한 실제적인 역사가 일어나야 신앙을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인류문명은 강을 끼고 일어났습니다. 강이 흐르면 인류문명이 발생해요. 인류 4대문명 발생지는 황하유역의 황하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문명,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문명 이 4대문명이 강을 끼고 생겨난 것입니다. 서울도 한강이 있기 때문에 서울이 이렇게 번창한 것입니다. 강물이 없으면 어떠한 문명도 일어나지 않아요. 창세기 2장 10절로 14절에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강이 흐르는 곳에는 농사가 잘되고 생활이 부유해지고 문명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황폐해지고 절망할 때 예수님은 냇물같이 우리를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오면 여러분 속에서 강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여태까지 믿고 열심히 교회를 나와도 강물이 흐르지 않던데요. 열심히 나올 때나 방학을 하고 안 나올 때나 똑같던데요. 그것은 내가 없는 것은 믿지 아니함이요 믿음으로도 못 받는 것은 잘못 구함이라고 했는데 강물을 예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들었으면 마음속에 반드시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내 마음속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기도할 때 천막 밑에서 자꾸 기도하니까 눈에 아무것도 안보이지 않습니까? 주님이 천막에서 나와서 하늘의 별들을 쳐다보고 헤아리고 네 자손이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고 꿈꾸면서 기도하라고 그렇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가나안 땅을 내게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그런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보고 이리 나오너라. 높은 언덕에 올라가라. 그리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그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하리라. 보여야 돼요. 좋은 옷 한 벌을 사 입고 싶으면 거울 앞에서 좋은 옷을 입고 자기를 보는 그것을 상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믿어야 돼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믿어야 돼요. 그리고 입으로 말합니다. 이 옷은 내 옷이다. 이 물건은 내 것이다. 이 은혜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다. 입술로 고백하면 그때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황폐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 생수의 강이 넘쳐흘러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살리고 즐겁게 해주는 모습을 상상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된다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몇 년 전인가 아주 멋쟁이 자매님이 내 사무실에 찾아왔어요. 할머니 같기도 하고 아직 젊은 여성 같기도 하고 그쯤 많이 늙지 않은 자매님인데 얼굴이 말이 아니에요. 왜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암이 있어서 암이 아주 온 몸에 퍼졌는데 이제 병원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하는데 자기가 소문에 듣기는 조용기 목사에게 가면 암도 고친다고 하더라. 그래서 왔으니까 좀 살려달라고... 조용기 목사가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당신의 암을 고치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당신의 죄를 담당하고 병을 청산했으므로 법적으로 말하면 2천 년 전에 이미 암이 나았습니다. 한참 듣더니만 나는 복잡해서 그런 것 몰라요. 어떻게 그것 복잡해서 다 알아요. 그냥 나에게 안수해서 고쳐 주십시오. 나는 그냥은 아무리 기도해도 안됩니다. 협조를 얻어야 되겠는데 그러면 이렇게 해주십시오. 당신 젊었을 때 좋은 옷 입고 모자 쓰고 이렇게 하던 사진 있지요? 아 있다고... 그것을 여러 장 만들어가지고서 현관에 붙여 놓고 부엌에도 붙여 놓고 화장실에도 붙여 놓고 침대방에도 붙여놓고 어디를 보나 멋있는 당신 모습이 보이도록 하십시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동서남북에 다 붙여 놓으세요. 동서남북에... 볼 때마다 야~ 멋있다. 젊은 청춘이었구나. 그렇게 상상하고 나중에는 그것을 믿으십시오. 나 저렇게 될 수 있다. 도로 회복될 수 있다. 나는 건강하다. 튼튼하다. 씩씩하다. 괜찮다. 그렇게 말을 하십시오. 말을 하면 그림이 더 뚜렷해지고 믿음이 확실해지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제가 축복하고 기도하고 난 다음 보냈는데 얼마 있지 아니하여 아주 만연에 희색을 가지고 내게 왔어요. 어떻게 되었습니까? 신체검사를 하러 가니까 암이 많이 사라지고 조금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계속 그렇게 하세요. 계속 그렇게 하면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동안 아무 연락이 없어요. 그랬다가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하러 왔습니다. 아플 때는 종종 찾아와도 나으면 안 찾아와요. 그래서 바라봄의 법칙에 대한 소중함을 제가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깨달았는데 우리들의 마음이 황폐하고 절망할 때 예수님은 냇물같이 우리를 복되게 하시므로 예수를 마음속에 모시고 여러분 냇물이 가슴속에 흘러 넘치는 것을 상상하고 믿고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실제로 냇물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10절로 11절 보면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야훼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물 댄 동산 같다. 여러분 마음이 물댄 동산같이 하나님의 은총이 넘쳐나면 여러분의 삶이 행복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강이 흐르면 문명이 발달되는 것처럼 여러분 생수가 흘러나면 여러분의 생활이 행복과 평안과 기쁨으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중심이 잡혀야지 마음이 중심이 잡히지 아니하고 공허하면 참 불행합니다. 마음이 텅 비어 있어 중심이 잡히지 못하고 늘 마음이 불행하고 슬프고 부정적인 바람이 불어오면 누가 감당합니까? 돈이나 지위나 권세나 명예가 그 마음을 만족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 중심이 꽉 잡히고 여러분께서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고 환경을 다스리는 키를 가지고 있으면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다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데 중심을 잡아서는 흔들리고 말아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하늘이 변하고 땅이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가 내 삶의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여러분 환경을 다스리는 것은 여러분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바라보고 믿고 말하면 다스려진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을 중심으로 서서 마음을 다스리면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50년을 목회하면서 수많은 성도들을 세계적으로 돌보아 드렸는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나오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경은 하고 입맛은 다시는데 누리지 못합니다. 왜 누리지 못하느냐.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언제나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볼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적은 것이나 큰 것이나 바라봄의 법칙이란 참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라보면 믿게 돼요. 아무 목적이 없으면 믿음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바라보게 되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그 다음에는 믿음대로 될지어다 입술로 고백하게 되고 입술의 고백을 계속 하십시오. 한 두 번하고 뒤로 물러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계속 입술의 고백을 하면 그 말이 나가서 성령의 손에 잡혀서 사용되게 되고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도 외국에서 목회자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와서 그는 저의 책을 많이 읽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자기도 똑같은 은사를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자기도 내 책을 읽고 성경을 보니 땅아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데 하나님의 신이 수면위에 운행하시더라.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니 빛이 있고 이런 일이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어도 실제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내가 당신 가슴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가 있지요? 글쎄요. 아직까지 살면서 마누라하고 한 번도 안 싸웠어요? 싸울 때도 있지요. 그러면 마음이 괴롭죠? 괴롭지요. 어떻게 괴로운 것을 편안하게 합니까? 안 편해지던데요. 기도를 해도 안 되던데요. 그런 것이 실제로 적은 것이라도 생활이 이루어져야 당신의 신앙이 자라고 기쁨이 자라는 것입니다.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성령이 운행을 하고 계tu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꿈꾸시고 믿으시고 입술로 말하시매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 여러분 생애 속에 성령이 운행하고 계십니다. 성령이 결코 여러분 떠나지 아니하시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지금 성령이 운행하고 계세요. 성령은 프뉴마토스, 공기, 바람과 같은 단어인 것입니다. 바람과 같이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 바람을 늘 느낍니까? 하~ 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숨을 쉬잖아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께서 여러분 속에 영적 호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보고 믿고 말하면 그 길을 통해서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다른 사람을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 심정을 만족케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가르쳐 주면 그 공로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은혜는 생명강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여러분을 위해서 대속한 것을 마음속에 늘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통해서 죄가 용서함 받았죠? 죄를 다 대속해 주셨죠. 허물을 다 대속해 주셨죠. 그 다음 질병과 연약을 다 대신 맡아 주셨죠. 그 다음 저주와 가난도 예수님이 다 맡아 주셨죠. 그 다음 죽음과 멸망도 주님이 맡아 주셨죠. 그 대속의 은총을 가만히 생각하면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가 보통 많은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대속의 은총을 바라보고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어 주신 예수님을 감탄하고 감사하고 찬송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이란 십자가 중심의 신앙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오중복음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그것을 자꾸 생각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 나는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의인이 되었다. 나는 치료받고 건강하게 되었다. 나는 아브라함의 형통을 받게 되었다. 나는 부활, 영생, 천국인이 되었다. 이것을 노래처럼 늘 말씀을 하십시오. 그것을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그것을 시인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역사가 여러분 생활 속에 늘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 보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한번 주님께서 생수의 강을 흐르게 하시면 영원토록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물을 마시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을 이웃과 나누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남녀, 노유, 빈부귀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여러분 가만히 기도하고 신앙생활 할 때 기쁨도 머릿속에서 기쁘다고 생각하는 것 잠시 있다가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가슴의 기쁨은 좀 울렁울렁 하다가 말아요. 계속되는 기쁨은 뱃속에서 기쁨이 넘쳐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뱃속에서 기쁨이 넘쳐 나오고 평안도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상상적인 평안함도 있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평안이 있지만 오래 안갑니다. 그러나 뱃속에서 평안이 넘쳐나면 이것은 오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휘어잡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뱃속에서 넘쳐나게 되는 것인데 왜 그러느냐. 성령께서 여러분 뱃속에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와 계셔도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게 하는 성령님을 알고 성령님과 함께 역사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4.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그리고 성경은 말하기를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고 폭우를 가리우는 곳이 되고 마른 땅에 냇물 같은 분이 되고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같이 된다. 이것은 예수님이 실제로 그런 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학문이 아니고 종교의식이 아니고 실제로 우리 생활 속에 그런 역사를 일으키겠다는 것입니다. 폭우를 광풍을 피하는 자가 실제로 되고 실제로 폭우를 가리워 주시고 실제로 마른 땅에 냇물이 되시고 그 다음에는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이 되시는 것입니다. 거센 사막바람이 불어 닥치고 강한 햇빛이 내려쬐는 황무지에 길을 잃은 나그네를 생각해 보십시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대로 방황하면 목말라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막 바람과 햇빛을 가려주는 큰 바위는 삶의 은혜인 것입니다. 광막한 광야에 나무는 한그루도 없습니다. 풀도 없습니다. 거기에 건너가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목마르고 지쳐버리면 그대로 죽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피할 곳은 바위입니다. 바위 그늘 밑에 들어가면 햇빛이 사라지고 시원한 저녁이 올 때까지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지극히 고독하고 소외된 심정으로 마음이 곤비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언제나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다 어느 한부분에서 굉장히 외로워요. 아 집에 남편도 있고 아내도 있고 자식들도 있는데 외롭냐. 외롭습니다. 사람들은 한평생을 같이 살아도 완전히 속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편도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요. 아내도 남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요. 부모도 자식, 자식도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래서 마음에 굉장히 외로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 외로움은 다른 것으로 피할 수가 없어요. 바위 되시는 예수님 밑으로 기도하고 들어가야 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삶이 지치고 고달파 살아갈 의욕이 사라질 때 그때 예수님은 큰 바위 그늘이 되어주셔서 생명을 소생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삶이 지치고 고달프고 살아갈 의욕이 사라질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여러분 배속에 들어오셔서 여러분 속에 넘치는 성령의 생수가 되어 주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큰 바위가 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온 천지에 바람이 불고 해가 비취는데 그 바위가 여러분을 가리워 주는 것을 상상해 보고 예수님이 그 바위인 것을 믿고 예수님이 나의 바위가 되십니다. 예수님 당신 품에 나는 피난처를 가집니다. 당신은 나의 바위입니다. 얼마나 말 안하면 시원하고 상쾌함이 여러분 마음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시편 36편 7절로 9절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고 빛이 예수님께 있고 풍족함이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한번 잘 모시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되시고 건져 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24시간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마음속에 항상 상상하십시오. 외롭게 혼자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외롭게 혼자 둔적이 없습니다. 항상 여러분과 같이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옛날에 역사하시던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와 계시기 때문에 해방과 자유를 요구하면 주님께서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성경 말씀을 보면 마음에 감동을 주지 않습니까? 저도 옛날에 신학교 졸업맡고 젊은 전도사 시절에 이 말씀을 전도하면서도 내 속으로 그림의 떡이지 뭐. 체험할 수 있냐? 저도 아주 좋은 말씀인줄 알면서도 내 생각에 그림의 떡이에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 누릴 수 있고 실제 먹고 마실 수 있는 복음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긍정적인 자세를 마음에 확고히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두드러진 것이 상상하는 것, 꿈꾸는 것입니다. 상상하고 꿈꾸어보는 것, 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이 지나면서 한 사람은 상상하고 꿈꾸고 다른 사람은 상상하지 아니하고 꿈꾸지 아니하면 몇 년 이내 그들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앉아서 시간 있으면 성경 말씀을 읽고 좋은 말씀을 상상하고 꿈꾸십시오. 그러면 믿게 되고 말하면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생수의 근원 되신 것을 꼭 상상하고 믿고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여러분의 삶속에 실제로 생겨나게 될 것인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함께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상상 속에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있다. 예수님이 함께 이 자리에 와 계신다. 주님 함께 계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뒤에 권사님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렇게 상상하고 믿고 주님 나와 같이 계시니 감사합니다. 함께 가십시다. 함께 일하십시다. 그러면 희한한 일이 일어난다고... 주님이 역사하기 시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은 열렬합니다. 우리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잘 이해를 못해요. 그래서 하나님과 손을 잡지 못하는 것이 큰 우리의 잘못인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된다. 얼마나 긍정적입니까? 함께 하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내가 너를 굳세게 만들어 주고 도와주고 붙들어 줄 터이니 나를 앙망하라. 어떻게 앙망할까요? 내가 같이 있다는 것을 꿈꾸고 바라보고 믿고 같이 있다고 말을 하라.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나의 주가 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믿습니다. 그렇게 하면 주님이 그렇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결론> 광풍이 안 닥칠 사람 아무도 없어요. 우리 살아가는 동안에 크고 적은 광풍이 거의 반드시 다가온다고 거짓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광풍을 피할 곳은 예수님이 되시고 예수님 안에 어떻게 피하는지 그 방법은 여러분이 오늘 배워서 알게 되고 그러므로 저는 광풍을 피하는 곳, 그 다음 폭우를 가리우는 곳. 하나님이 우리 잘못을 참다가 못해서 심판하실 때 심판의 폭우가 쏟아질 때 예수님이 우리로 인하여 폭우를 가리워 주시고 마른 땅 같은 인생을 살 때 고통스러울 때 시냇물같이 마른 땅에 시냇물 같은 것도 예수님이 그렇게 되시고 그 다음에 곤비한 땅에 피곤하고 지치고 곤비하여 쓰러질 때 예수님은 큰 바위 그늘이 되어서 우리를 덮어 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종교가 아니지 않습니까? 철학도 아니지 않습니까? 학문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 삶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하고 더 풍요하게 살 수 있는 놀라운 은혜의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여러분 성경말씀대로 상상하고 그가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의뢰하는 하나님 되시고 나에게 만세반석이 되시고 냇물이 되시고 기쁨이 되신 예수님을 상상을 늘 하고 그리고 믿고 찬송하고 주님을 입술로 시인하면 여러분의 삶은 이 시간보다도 넘치게 변화가 다가오는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광풍이 불어 닥칩니다. 죄악의 광풍이 옵니다. 마귀가 사악한 광풍으로 욥의 삶을 파멸시키듯이 여러분의 삶을 파괴시키려고 다가옵니다. 심판이 폭우처럼 쏟아집니다. 홍수의 난리가 납니다. 마른 땅에 냇물이 흘러 옥토 같은 내 마음이 황무지가 됩니다. 세상에 곤비하여 비틀거리며 쓰러집니다. 햇빛과 사막 바람을 막아 줄 자가 있겠습니까? 나는 어디에 가야 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이런 고난에서 건져주시는 주님을 구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것입니까? 그리고 그 건지시는 그리스도를 이웃에 전도하면 여러분이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 숫자 채우려고 전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려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살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노력해서 한 두 사람 건져내고 그리고 그 다음에 꿈과 희망을 실어주면 얼마나 보람차게 인생을 살아가는지 몰라요.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이 오셔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꿈과 환상을 주시고 예수님은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은사 받은 것이 그런 것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그 예수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자유와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병에서 자유와 해방, 가난에서 자유와 해방, 고통에서 자유와 해방. 반드시 주십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이웃하고 나누고 하고 가르쳐 주어 자유와 해방을 얻은 모습을 상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고 기도하고 찬미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변화를 받지요. 그 사람이 변화를 받으면 여러분이 더 축복을 받고 더 전도하게 되고 그래서 전도라는 것은 이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변화를 가지려고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온 동리를 바꾸고 도시를 바꾸고 세계를 바꾸는 역사를 이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 자리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큰 은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 시간에... 나를 주로 인정하라. 내가 너를 돕는다는 것을 시인하라. 내가 너를 위해서 일해주마. 예수님은 놀러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과 나를 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시도 쉬지 않고 여러분과 나를 건져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건져주시고 허물에서 건져주시고 질병에서 건져주시고 저주와 가난에서 건져 주시고 사망과 음부에서 건져 주시고 실제로 이 일이 이루어지기를 여러분이 꿈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주님이 손을 잡고서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건짐을 받고 축복을 받고 승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잔뜩 입고서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