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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 성찬주일설교(선교헌금작정)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0~24) <서론> 저는 오늘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이것을 제목으로 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천국의 돈은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고팔고 봉사하고 봉사를 받는 모든 것들이 돈을 통해서 직접 혹은 간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돈은 경제의 핏줄입니다. 돈 없이 아무 거래도 되지 않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고 생활하는데 필요불가결하게 있어야 될 것이 돈입니다. 이처럼 천국의 돈은 믿음입니다. 천국에 관계된 어떤 일도 믿음이 없이는 되는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믿음만큼 잘 이해되지 못하고 잘못 사용된 것은 없습니다. <본론> 1. 믿음에 대한 바른 이해 믿음이 없이는 천국에는 한시도 못살지만 너무나 믿음에 대한 지식이 성도들 가운데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믿음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으면 믿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 생각하기에는 믿음이란 참 갖기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주셔서 가지고 태어납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보지요. 귀를 가지고 태어나서 음성을 듣지요. 코를 가지고 태어나서 냄새를 맡지요. 혀를 가지고 태어나서 맛을 보지요. 마음에 믿음이 있어서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라나면서 부모님을 믿잖아요. 어린 아이가 아무것도 안 배울지라도 믿음에 대해서 배우지 않아도 부모님을 믿습니다. 형제를 믿습니다. 그 다음에 나가서 스승을 믿고 많이 속임을 당할지라도 친구를 믿고 우리의 생활에 믿음이란 물 쓰듯이 항상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를 믿으면 중생할 때 주님께서 분량대로 믿음을 주십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중생할 때 벌써 하나님께서 분량대로 믿음을 주십니다. 큰 일할 사람은 큰 믿음을 주시고 적은 일 할 사람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되겠다 싶으면 겨자씨만한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앎으로 자랍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면 알수록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읽으면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 어릴 때 콩나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어릴 때 저기 나오는구나. 저 콩나물을 구멍이 뚫어진 단지에 콩을 넣어서 물을 주는데 내가 왜 저 콩나물만 보면 몸서리가 나냐면 우리 할머님이 항상 콩나물에 물주는 것을 제 책임으로 맡깁니다. 그런데 그 물 주면 되지 않느냐. 물을 많이 주면 썩는다구요. 그런데 물을 적게 주면 싹이 안 나온다구요. 아주 적당하게 물을 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콩나물 기르는 기술을 시합하자면 내가 2등할 자신은 없습니다. 1등을 하지요. 그러므로 아무리 바깥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콩나물 물 줄 시간이 되면은 기가 막히게 뛰어와서 물을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콩나물이 자라면 소담스럽게 자라서 그것으로 콩나물 국도 끓여 주고 고추에 섞어서 그것을 뭐라고 합니까? 반찬에 기가 막히게 좋거든. 우리는 어릴 때 콩나물이 언제나 반찬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콩나물이 자라는 것을 보면 참 기가 막혀요. 하룻밤 자고 나면 다르고 자고나면 다릅니다. 믿음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콩씨에 비교한다면 우리가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 하루가 달라지게 자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데 말씀을 직접 못 들으면 말씀을 직접 읽으면 되거든.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말씀을 등한히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마음속에 알아야 되요. 그리고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믿음을 강하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는 가정교사 보혜사로써 믿음이 약할 때 믿음을 뒷받침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과 26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주님이 부활하셔서 천국 올라가면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 예수님은 처음 보혜사고 성령은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처음 보혜사와 다른 보혜사 다르냐. 전혀 똑같은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은 너무나 똑같아서 분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성령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신 곳에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헬라어로써 전혀 똑같고 다른 것은 알로스라고 말합니다. 영 다른 것은 헤테로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알로스 파라클레토스, 나와 똑같은 다른 보혜사를 너에게 보내겠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성령이 오신 것과 같고 성령이 오신 것은 예수님 오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기를 내가 구하겠으니 나와 똑같은 보혜사를 아버지가 보내줄터이니 그 보혜사가 너를 떠나지 않고 같이 있겠다.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지금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분이 보혜사 성령인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동시에 와서 계신다구요. 그러므로 기가 막히게 놀라운 은총을 받고 있으나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때문에 연약하다. 연약함 마다 성령께 도움을 구하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성령이 오신 것은 예수님이 오신 것과 같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고 우리가 고아와 같이 버림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경을 읽을 때도 보혜사 성령님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기억이 안날 때도 보혜사 성령님 기억나게 해주시옵소서. 가르치시고 기억나게 해주시는 역할을 성령께서 오늘날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믿음이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집에서도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모님을 믿습니다. 미워하는 사람 믿을 수가 없어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는 남편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은 아내의 말을 믿습니다. 우리 모든 사랑의 근본은 믿음에 있고 믿음의 근본도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은 항상 같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높고, 깊고, 넓은 것을 깨달을수록 믿음이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6절로 19절에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믿음이 강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 믿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나 그것이 말씀을 통하여 자라나고 성령을 통해서 자라나고 사랑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서 출발해도 믿음이 자라나서 쑥쑥 큰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고 믿음이 자라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쪼그라져 있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 제게 믿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다 믿음이 있습니다. 없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귀가 와서 믿음이 없다고 말하면 마치 여러분 보고 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 눈 없지? 안 보이지? 그렇게 거짓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고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에 크고 적은 일에 기적이 꼭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는데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하니까 뭐 거창스러운 큰 문제에 남북대화의 문제라든지 개성공단 문제라든지 미국과의 교통하는 문제라든지 이런 것의 문제로 기도하지 우리같이 사는데 부엌에 가는데 어제 저녁에 젓가락을 어디에 갖다 뒀는지 모르는데 그런 것도 기도해야 되느냐 그럽니다. 우리 일상생활 하는데 믿음이란 지극히 적은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핸드폰을 어디다 놨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면 그것 찾는다고 돌아다니지 말고 주님이시여 핸드폰을 어디다 놨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좀 찾아 주십시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못 찾은 적이 없습니다. 또 여러분 몸에 열이 있고 고통스러우면 당장 약을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도 주님, 열이 나고 고통스러운데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믿어야 돼요. 사람들은 조그마한 것은 말해놓고 안 믿어요. 믿어야 돼요. 그러면 당장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지극히 적은 것에 응답이 와요. 어떤 때는 가족들 간에 다투고 난 다음 마음이 삐뚫어져서 불화가 꽉 들어찼을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어찌하든지 화목을 가져와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믿으면 화목을 가져올 수 있는 조건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화를 안 하면 안 될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화를 하고 화목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여러분 일상생활에 반드시 사용해야 될 것입니다.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믿음을 통하여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믿음을 통해서 더 쉽게 더 능력 있기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선택이다 그런데 둘째로 믿음은 선택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불신앙, 의심, 공포 등은 항상 주변에 있어요. 그런데 그 불신앙이나 의심이나 공포를 택할 것이냐 그렇지 않고 믿음을 택할 것이냐. 그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믿음이 있는데 주위 환경에 불신앙, 공포, 의심되는 일이 다가오면 그것을 믿을 것이냐. 내 속에 있는 믿음을 믿을 것이냐.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0절로 24절 본문에 보면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여기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우리 평범한 인생인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을 가지고서 태산을 옮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한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속에 내가 준 믿음을 가지고서 태산을 옮기는 믿음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니까 굉장히 믿음을 통해서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데 우리가 믿음을 사용 안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고 무화과나무를 꾸짖었습니다. 다시는 사람이 너에게서 무화과를 먹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그 옆을 지나갈 때 무화과나무가 바짝 말라 죽었어요. 그 제자들이 야~ 무화가나무가 죽었다. 베드로가 주여, 주여 주님이 저주하신 무화과가 말라 죽었네요. 그러니까 주님이 그것을 이용해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너희들 다 믿어봐라. 무화과나무 하나 살고 죽는 것이 믿음에 의하여 이루어지니까 너희 평소 생활에 가장 평범한 것도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라 하면 나도 포함됩니까? 물론 나도 포함되지요. 여러분도 포함됩니까? 진짜로? 산을 옮겨 보겠어요? 아멘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해보라는 것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하면 안됩니다. 해보라는데 구태어 산을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태산 같은 문제가 다가왔을 때 그것을 향해서 명령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물러갈찌어다! 사라져라! 그렇게 해보면 그 말 한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히브리 사람들이 바벨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갔을 때 느부갓네살 왕이 들판에 금신상을 세워 놓고 그에게 절하면 살려주고 그를 절하지 아니하면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을 다 들판에 모아 놓고 금신상에 나팔 불고 정금불 때 모든 사람이 절하는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유대인으로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 안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절하는데 달렸는데 그것이 고사되매 느부갓네살 왕 앞에 잡혀 나왔어요. 그래서 느부갓네살이 네가 정말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절 안하겠느냐? 안하면 불구덩이에 던져 태워 죽이겠다. 그때 그 사람들이 뭐라 말했습니까? 불구덩이에 던지면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내 주시겠고 안 건져 내주실지라도 우리는 우상에 절 안하겠습니다. 선택입니다. 믿음이란 선택입니다. 느부갓네살 명령대로 우상에 절하는 것을 선택했으면 믿음을 버린 것이고 믿음을 선택하면 우상에 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상에 절하지 않고 믿음을 선택하니까 풀무불에 이 세 사람을 던져 넣었는데 천사가 와서 그들과 함께 네 사람이 불 가운데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믿음대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믿을 것이냐, 안 믿을 것이냐는 여러분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은 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것은 내가 선택해서 나가면 하나님이 그 믿음에 대해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믿음이란 것은 믿겠다라는 당사자의 의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일이 있을 때 내가 이것 믿음으로 해결하겠다고 결심을 하는 것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믿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은 의지이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주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묘지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 묘지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고 했습니다. 유대나라는 굴에다가 시체를 놓고 돌로써 막아 놓은 것이 무덤인 것입니다. 돌을 옮겨 놓아라. 무르다는 옮겨 놓을 생각이 없습니다.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어 오라버니가 썩은 냄새가 나는데 돌을 옮겨 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아예 믿어보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의지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뭐라 했습니까? 마르다여, 내가 네게 말하노니 하나님을 믿으면 네가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믿으면 영광을 볼 것인데 믿을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 낙심하고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꾸짖었지요. 여러분께서 생활이 어려울 때 주님 한번 믿어 보겠다. 물질적으로 축복 주는 주님을 믿어보겠다고 십일조를 드리려고 작정을 하느냐 안하느냐는 여러분 마음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낼 것이냐 안 낼 것이냐. 십일조를 안내고도 먹고 살기가 힘든데 그것조차 내면은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안내면 주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을 의지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안되지요.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 십일조를 하나님께 내어보면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하면은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거든요.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니 도와주십시오. 성령께서 그래, 십일조를 믿음의 씨앗으로 먼저 내라. 십일조 말은 묻지 마십시오. 지금 생활이 어려워서 십일조를 다 써도 먹고 살기 힘든데 십일조를 내고 어떻게 삽니까? 안낼테니까 축복부터 먼저 해 주십시오. 그것은 시험해 보는 것이지 믿음이 아니라 주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주님, 나는 주님이 우리 집에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주실 줄 믿고 아예 십일조를 먼저 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십일조를 내 놓고 기도하면 내가 믿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 나는 믿기로 작정을 했으니 응답은 주님이 하십시오. 그리고 십일조를 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기도하고 난 다음에 믿고 난 다음에는 받은 줄로 믿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살면서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마음이 복잡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그것 다 청소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합니다. 왜 안하느냐. 믿기로 작정을 안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왜냐, 자기 마음속으로 이런 것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신변잡기의 이런 일들을 응답해 주시겠느냐. 또 나 같은 믿음을 사용해 주겠느냐. 자꾸 의심을 하고 믿지 않으려고 작정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 모든 일에 믿기로 작정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염려와 근심도 주께 아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부족한 것도 주님께 구하면 응답해 주시고 기회도 주님께 기도하면 열어 주시고 좋은 일이 믿음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시장에 가서 장사할 때 돈 주고 물건을 사는 것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 믿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모든 것을 응답받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없으니까 믿음을 늘 활용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1장 39절의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그러니 돌문을 옮겨 놓으라고 안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두로와 시돈 지역에 예수님이 여행을 할 때 수로보니게 여인 한 사람이 따라오면서 나사렛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심히 귀신들려 고통하고 있으니 귀신을 쫓아내 주십시오. 아무리 고함을 치고 따라와도 주님께서 응답을 안주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께 와서 저렇게 고함을 치고 따라오니 주님 응답해 주시지요. 주님이 이방 아니냐. 나는 지금은 유대인들 위해서 왔지 이방인들 위해서 일할 때가 아니니까 때가 아니니까 들어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동안에 수로보니게 여인이 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내 딸이 귀신 들렸으니 놓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딱 정면을 하고 쳐다보시고 난 다음 자녀들에게 떡을 취하여 개에게는 안 준다. 당신 이방인은 개다. 지금은 유대인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떡을 줄 때지 개들에게 떡을 줄 때가 아니다. 나 쯤 되어도 예수님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정색을 하고 주님, 안주면 안주었지 뭐 개라구요? 사람을 어떻게 보고 개라고 합니까? 그렇게 해야 될 것인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 옳소이다. 우리는 이방 개들입니다. 그러나 개가 어디서 얻어먹습니까? 애들이 먹은 상 밑에 들어가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지 않습니까? 대단한 여인이에요. 본격적으로 떡덩이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애들에게 주는 부스러기만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말을 듣고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가 이 말을 하겠으므로 네 딸에게서 귀신이 나갔느니라. 그런데 집에 가보니까 귀신이 나가고 딸이 건강해져 있었습니다.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어떠한 모욕을 당하더라도 믿겠다고 마음에 작정을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믿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고 결심을 했으므로 모욕을 당해도 모욕으로 느끼지 아니하고 그대로 밀고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 기적이 일어났지요. 우리는 반드시 기도 응답을 받겠다고 마음에 결심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 결심을 귀중하게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 보면 모세가 열 두 정탐꾼을 가나안에 정탐을 보냈을 때 열 명은 아예 부정적으로 마을에 안 들어가기로 마음에 작정을 했었습니다. 믿음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고 안 들어가려고 작정을 하고 보니까 모든 것이 마음에 맞지 않습니다. 땅은 황폐한 것 같고 성벽은 높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키가 크고 장대하고 무장이 잘 되어 있고 못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들어가려고 작정을 하고 믿음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들이 들어와서 보고를 하는데 민수기 13장 30절로 33절에 보면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완전히 믿음이 없이 사물을 바라보고 보고하니까 온 백성이 그 말을 들었다가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해서 통곡을 하고 울고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도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고 그곳의 백성들은 이미 사기가 다 떨어져서 두려움에 차 있고 우리가 쉽게 성을 점령할 수 있으며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들어가자고 했었습니다. 여러분, 사물을 볼 때 육신적인 불신앙의 생각으로 보지 말고 믿음으로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이너스 해놓고 내 인간적으로만 보면 낙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일에 플러스 하나님 하고서 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잖아요.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나의 이 일은 나와 하나님이 함께 역사한다는 것을 알고 하면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님을 제켜 놓고 나가면 가능성이 없습니다.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하나님 없이 나가면 나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보잘 것 없는 인생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하며 그 말한 것이 이룰 줄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여러분, 누구든지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만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목사, 장로, 권사, 집사만 들어간 것이 아니고 평범한 여러분도 그 숫자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믿으면 지금 생각하는 생각보다 훨씬 능력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사물을 볼 때 내 인간의 생각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고 생각하고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적은 사람은 적은 믿음을 가지고 적게 밖에 못 믿고 큰 믿음 가진 사람은 큰 믿음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고 칭찬한 이방인이 있습니다. 4. 큰 믿음과 작은 믿음 백부장 자기 부하가 중풍이 걸려 누워있는데 친구들을 보내어서 예수님께서 고쳐달라고 초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백부장 집에 찾아오는데 백부장이 그 동안에 생각하다가 마음이 달라졌어요. 자기 친구를 보내서 말하기를 주님, 우리 집까지 오시기 괴로울 것인데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시므로 말 한마디에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움직일 것인데 뭘 우리 집까지 오십니까? 나도 백부장 장교인데 나의 상사한테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내 부하를 보고 일어나라 하면 일어나고 앉으라 하면 앉고 내 시키는 대로 하는데 주님은 우주의 주인이 되시니 말 한마디만 하시면 만사가 다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가다가 손바닥을 치면서 야~ 이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 있구나. 예수님을 사람들은 보통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그는 하나님으로 확실히 알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 믿음은 유대인들도 가지고 있지 않은 믿음이다. 믿음 대로 될지어다. 그래서 가보니까 백부장의 종이 중풍에서 나아서 건강하게 걸어 다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시간과 거리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성도들이 저에게 손수건을 가지고 기도 받으러 오는 것입니다. 직접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집에 찾아가지 못하나 손수건에 안수하고 손수건 가지고 얹혀 놓으면 같이 간 것과 같은 효과를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우리 장로님 한 분이 허리가 다쳐서 병원에 수술하러 가서 누워 있는데 20층 병실에 누워 있는데 가니까 마침 전기가 나가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니까 20층까지 올라갈 수가 없어요. 장로님 허리 기도하러 갔다가 내 다리 고장날 지경이에요. 그래서 내가 마중나온 권사님에게 사모님에게 내가 도저히 내 무릎으로서는 20층을 걸어 올라갈 수 없으니까 어떻게 하지요? 그 권사님이 나보고 하신 말씀이 목사님이 왜 올라와요? 하나님이 어디든지 계시는데... 밑에서 기도만 해주시면 위에서 우리 장로님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님 기도 5분 후에 하십시오. 내가 올라가서 마음 준비하고 우리도 그때같이 기도할테니까. 내가 시계를 보니까 5분이 되기에 기도하니까 그 위에도 5분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권사님이 자기 남편 허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는데 5분 후에 기도하고 난 다음 집에 가려고 하는데 20층에서 뛰어내려와서 할렐루야를 하고 야단이에요. 왜그러느냐 하니까 당장 나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은 큰 믿음인 것입니다. 실제 안가도 거리와 장소가 달라도 믿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으니까 우리도 큰 믿음을 활동하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큰 믿음이 아니라 적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밤 사경에 물 위로 걸어오시는데 주님이여 나도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하니까 걸어오라고 했습니다. 배에서 나가서 저벅저벅 걸어가는데 그것은 큰 믿음입니다. 그런데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자 그만 주님을 놓쳐 버리고 마음이 두려워지면 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건져 주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바라보면 적은 믿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예수님을 바라봤으면 끝까지 바라보아야 돼요. 바라봐도 좋은 일이 생길줄 믿었는데 나쁜 일이 와도 늘 보지 말아야 돼요. 일단 주님을 믿었으면 일편단심으로 주님을 끝까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다가 어려운 일이 다가오면 그것 보고서 의심을 하고 아이구 주님이 안 도와주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일단 믿었으면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끝까지 끝장을 봐야 돼요. 그러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데 가만히 믿었다가 사태가 자기 생각대로 안 되면 포기해 버리고 낙심해 버리고 원망해 버리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보고 주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결론> 사람들은 자기가 믿음이 없든가 혹은 있어도 너무 약해서 무용지물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여러분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적어서 무용지물이라고 하는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충분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가만히 앉아 있는데 무슨 큰 믿음이 필요합니까? 제 말을 잘 듣고 졸음이 안 오게 하려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돼요. 졸음을 쫓는데 주님이여 태산 같은 믿음을 주시옵소서. 졸음을 쫓게 해주시옵소서. 그럴 필요 없잖아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안 졸고 설교 들을 수 있잖아요.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믿고 환경에 동요하지 않는 믿음은 큰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약해서 무용지물이라고 잘못 생각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없거나 약하거나가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은 있는 것이고 믿음은 약하다고 낙심할 필요 없는 것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충분한 것입니다. 알고 보면 믿음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며 아무리 약해도 겨자씨 한 알 만큼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그 외의 문제는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살겠다고 선택을 하고 믿겠다고 마음에 결심을 하고 달려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하고 믿지 않는 사람하고 다른 것은 우리는 항상 믿음으로 인생을 바라보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과 안심과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만 의지하고 살면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할 수 없으면 낙심하고 탄식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내 힘으로 의지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면 그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반드시 기적을 이루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의심을 가져오면 말씀을 가지고 대적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원수 마귀야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나는 이 말씀 위에 선다. 물러가라!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굳게 잡고 하나님 말씀대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능력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영국의 고아의 아버지인 죠지 뮬러는 5천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일을 했는데 아무것도 아니고 무릎을 꿇고서 기도하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경 약속 말씀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했는데 죠지 뮬러 목사님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성경 구절을 끄집어 내놓고 주님이시여,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했는데 나는 고아들을 위해서 지금 양식이 필요합니다. 옷이 필요합니다. 등록금이 필요합니다. 주님 이것을 주시옵소서. 기도해서 5만번 기도했는데 5만번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빈 손 들고 고아원을 시작해 가지고서 5천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켜서 내보낸 것입니다. 한 평범한 사람이 이와 같이 큰 5만 번 기도에 5만 번 응답을 받았는데 여러분은 몇 번 기도해서 몇 번 응답 받았습니까? 자기가 기도해서 응답받은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응답해준다는 용기와 힘을 가지고 앞으로 믿음으로 생활하십시오. 믿음으로 살면 큰마음에 기쁨도 오고 은혜도 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여러분인 것입니다. 말씀을 읽음으로 믿음이 자라고 성령을 모시므로 성령이 믿음을 더 강하게 해주시고 또 시련을 이김으로 믿음이 더 굳세어 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여러분 마음속에 갖고 있으므로 믿음을 사용하겠다고 결심을 하십시오. 무슨 일이 생겨도 믿음 제켜놓고 하지 말고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믿음을 사용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가면 믿음은 역사해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지고 응답을 받으면 마음이 담대해져가지고서 겨자씨 열 알만한 믿음이 되고 겨자씨 백 알만한 믿음이 되고 나중에는 주먹만한 믿음이 되고 나중에는 반석을 움직이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매일같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자라나는 것입니다. 자라날수록 마음이 담대해지고 더 큰 역사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사십시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전인구원을 놓치고 살면 늘 불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근본적으로 전인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셔서 죄를 청산하시고 모든 사업에 저주를 제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시고 병을 주님께서 대신 청산하셔서 건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는 하나님의 뜻은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에 보면 내 영혼아 야훼를 기뻐하라. 저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내 모든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셨으며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사 내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한다고 하시므로 죄악을 십자가에서 사하시고 물질적인 부족함을 채워서 만족하게 해주시고 질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그것을 믿고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가면 여러분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해결된 것입니다.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늘 염려, 근심을 하면 안 되지요.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난 다음 그 다음에 여러분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대로 해외 선교도 하고 고아들도 돌보아주고 길거리에 노숙자들도 도와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여유를 더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