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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9. 주일설교 회개와 천국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서론> “회개와 천국”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아담의 반역죄로 인한 부패의 세력은 인간의 유전을 통하여서 대대에 미쳐 지금까지 인류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인간의 존재적인 죄를 청산할 수가 없습니다. 대대로 유전되어 오는 이 죄를 인간의 힘으로 청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새 인류의 조상인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의 유전을 받지 않고 태어나야 됩니다. 아버지의 피를 받은 사람은 다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데 예수님은 세상에 아버지가 없습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 속에는 세상의 유전이 한 방울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피이기 때문에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그 피는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기 위해서 흘릴 제물 된 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인류의 조상이 되어서 죄의 유전이 없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죄 없는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고 마침내 세상 죄를 짊어지시고 갈보리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죄를 벗어버리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노력도 효과가 없습니다. <본론> 1.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가는 길이 바로 회개의 길인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4장 17절에 보면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주님께서 30세에 요단강에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한 다음에 복음을 증거할 때 제 일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천국이 우리 곁에 와 있는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된다는 것을 제일 강조하셨습니다.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니아인데 생각을 고친다. 생각을 바꾼다는 뜻인 것입니다. 생각을 고치고 바꿔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고 나갈 때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본주의적인 종교 현상을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서 선한 행위를 하므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어떠한 사람도 죄가 없는 선한 행위를 하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인간의 힘으로는 다가올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의 용서를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죄가 더 싸여지고 잘못이 더 싸여져서 죄책만 늘어가고 좌절과 절망에 이르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적인 행위로써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죄를 벗고 구원을 받으려고 애쓰지만 인간은 절망적인 부패를 벗을 수가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피부가 검게 태어나면 아무리 비눗물로 씻어도 그것은 희어지지 않습니다. 유전 속에 있는 피부의 색깔을 어떻게 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죄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원죄를 걸머지고 세상에 태어나서 원죄 때문에 자범죄를 계속 짓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구원을 예비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손을 내어 붙잡고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는 은혜를 받지 않고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이 강단에 서 있는 저로부터 시작해서 여러분 전체로 여러분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고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늘 그런 질문을 부흥회에 나가면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죄 없는 사람 한번 손들어 보라고... 아무도 그 말에 담대하게 손들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다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한 인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재물로 주셨기 때문에 전적인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공짜로 주는 것입니다. 선물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지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 사람들은 구원을 받되 행위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의해서 선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조건은 믿음 이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아무리 지킨다고 해도 율법의 자로써 재면 죄가 드러납니다. 구원받는 것은 믿음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믿기로 작정을 하면 다 믿을 수가 있습니다. 디도서 3장 5절에 보면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의 행위로 우리를 구원하지 아니하고 주님께서 자비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새사람이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시는 것이므로 그 구원을 받기 위해서 우리의 조건이라는 것은 회개하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믿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지 못했었으면 우리 구원받지 못하고 내 중심으로 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를 해야 믿음에 이를 수 있는데 회개란 것은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우리 스스로가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 보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회개라는 것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삶을 돌이키는 행위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못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복하는 것입니다. 강제로 회개시킬 수가 없습니다. 자원해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주되신 예수님을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밝혀 주시므로 믿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믿으면 구원을 받으니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의롭게 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아무리 금식을 한다해도 그가 우리 죄를 씻을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스님은 10년 동안 누워서 주무시지 아니하고 앉아서 주무시고 좋은 음식을 먹지 않고 고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뜰 때 구원에 확신이 없어 나는 죽어서 가장 낮은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탄식하고 세상을 떴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구원의 확신은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능으로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서 의롭게 되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삶을 돌이키면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우리가 우리의 길과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나의 과거를 주님께 청산해서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니고 율법 앞에 나가면 과거를 청산하면 그에 대해서 벌을 내립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과거를 고백할 때 그를 청산하고 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율법을 통하여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드러내고 거기에 대한 형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형벌한다면 우리는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형벌을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에서 대신 다 짊어졌었습니다. 여러분과 나의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하실 때 어떠한 죄를 회개해도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지 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과거는 주님께서 예수의 피로써 씻어버리고 다시 생각도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현재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신령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두 아들에 대한 기록을 해 놓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아들을 길렀는데 열심히 일을 해서 충성스럽게 잘 자라더니 둘째가 잘못된 생각이 들어와서 아버지께 와서 아버지, 나 이제 독립할래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우리에게 재산을 나눠 줄 것인데 제가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미리 재산을 나눠 주십시오. 아버지가 아무리 달래도 안 됩니다. 그는 기어코 아버지 재산 달라고 매달립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줄 재산을 미리 청산해서 주니까 이를 받아서 꾸러미에 넣어서 하직하고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멀리 떠났습니다. 아버지 그림자가 비취면 기분 좋지 않으니까 아버지 그림자가 비취지 않는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돈이 있으니까 허랑 방탕을 한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마시고 잘 취하고 친구들과 아주 호탕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살고 난 다음에 가난이 안 다가올 수 있겠습니까. 가난이라는 것은 자기가 절제해서 살지 않고 허랑방탕하면 어떠한 사람도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가난한데다가 설상가상으로 기근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니 사람들마다 살기가 힘들어졌는데 이 방탕한 젊은이는 정말로 이제는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사람을 통해서 일거리를 하나 얻는데 시골에 가서 돼지 치는 직장을 얻었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돼지를 치는 직업이 가장 천한 직업입니다. 그래서 그가 하루 생각하기를 자, 우리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은데 나는 그래도 큰 부자의 둘째 아들로써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다가 아버지를 배반하고 나와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으니 천상 갈 곳은 아버지 밖에 없지 않느냐. 아버지께로 회개하고 돌아가자. 아버지가 받아주시면 좋고 안 받아주면 죽더라도 아버지 곁으로 찾아가자. 그래서 그는 내가 아버지와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사오니 아들로써 취급을 받기 원치 않습니다. 품삯을 받는 품꾼의 하나로 봐주시옵소서. 그렇게 고백하고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측에서 보면 이 둘째 아들이 나간 이후로 아버지는 주야로 기도합니다. 자식은 아버지를 잊어버렸어도 아버지는 자식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야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째가 머리는 산발이 되고 피부는 거칠어지고 약해지고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으나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찾아오는데 멀리서 아버지가 그 아들을 보고 뛰어 나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뛰어온 것이 아니라 아들이 있는 곳에 아버지가 뛰어 왔습니다. 그것 왜 뛰어오는지 그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부모를 거역하는 자식은 돌로 쳐 죽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좋습니다. 부모를 배반하고 나간 자식은 돌로 쳐 죽여라. 성경에는 자녀들아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 다음으로 우리가 해야 될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온다는 소문이 쫙 퍼지니까 미쳐 아버지에게 오기 전에 동리 사람들이 그를 발견하고 돌로 쳐 죽일까 싶어서 먼저 뛰어나가서 아들 보호하기 위해서 먼저 뛰어나간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큽니다. 그 아들이 오는데 뛰어나가서 그 아들을 붙잡아서 품에 안으니까 그 아들이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하였으니 이제 아들이라 일컬어 안줘도 좋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날품팔이로 나를 고용해 주소서. 아버지가 그 말에 대답 안했습니다. 그냥 그 아들을 끌어안고서 종들에게 네가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남루한 이 옷 벗겨서 제일 좋은 옷 허름한 옷 아닙니다. 최고로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그리고 가락지를 끼워줘라. 가락지는 자식이 된 흔적으로 주는 가락지입니다. 반지를 끼워줘라. 그리고 맨발 벗었으니 빨리 신발 신겨라. 종은 신발을 신지 못합니다. 아들이니까 신발을 신겨라. 그리고 집에 가서 제일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와서 잡아라. 잔치를 베풀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 그러니 집안이 기쁨이 충만합니다. 이 아들이 왔다고 해서 영웅을 대접하는 것같이 아버지가 준비합니다. 송아지를 잡아서 살찐 송아지를 나누어 먹이면서 풍악을 울리고 페스티벌을 가졌는데 맏아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저녁에 늦게 돌아왔는데 집안에서 풍악이 올리고 굉장해서 종을 불러서 이 무슨 일이냐 하니까 당신의 둘째 아들이 몸 성하게 돌아온 것을 아버지가 기뻐해서 이렇게 온 집안이 즐거워 한다니까 딱 버티고 있으면서 나는 이런 집에 안 들어간다. 아버지가 나가서 얘야 네 동생이 왔다. 함께 즐거워하자. 들어오너라. 아버지, 아니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방탕하게 놀아나면서 다 그 재산을 탕진해 버린 그 자식이 돌아오니 반가워 맞이해 들어오면서 나는 여태까지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열심히 섬겼으되 친구들하고 먹으라고 송아리 새끼 한 마리 주지 않던 아버지가 왜 이 죄인을 받아들였습니까? 이 놈이 집에 있는 이상 나는 집에 안 들어갑니다. 아버지가 얘야, 그러지 마라. 사람들은 젊으니까 철이 없으니까 죄를 지을 수 있지 않느냐. 이 자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으니 고마운 일 아니야? 들어오너라. 아버지, 혼자서 동생하고 잘 사십시오. 나는 안 들어갑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간청을 해도 안 들어옵니다. 그는 율법주의자입니다. 이 아들은 나쁜 놈의 자식, 죄를 짓고 들어온 놈을 왜 형벌을 내리지 않고 받아들입니까? 나는 이런 자식하고 같이 못삽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 것은 율법을 가지고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가지고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자식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회개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겠습니다. 종중에 하나로 보아 주시옵소서. 회개의 기도를 아버지가 듣자마자 그 아들을 끌어안고 그 아들에게 의로운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의 옷을 입혀 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제일 좋은 의로운 옷을 입혀 주시고 성령으로 아들 된 증거로써 중생을 주시고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예비한 신발을 신겨 주시고 그리고 가만히 보세요. 살찐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제가 목회하면서 제가 예수 믿으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설교를 하면 기복신앙을 전한다고 교훈을 내게 하고 꾸짖는 사람들 있었습니다만 여기 보시면 탕자 오는데 아버지가 탕자가 돌아왔으니 빼빼 마른 뼈다귀만 있는 못팔아 먹을 염소 새끼 한 마리 잡으라고 했습니까? 제일 살찐 송아지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 그렇게 말하는 다정하고 이해력 깊고 사랑이 넘치는 우리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춤을 추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주의자는 우리의 과거를 들춰냅니다. 현재 살지 않고 미래 살지 않고 과거에 고약한 행실을 들춰내서 그를 심판합니다. 그러면 집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이 아들은 과거에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했으므로 집에 돌아올 수 있는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심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과거의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여러분 자신을 주님께서는 다 청산해서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기억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미래 소망이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요사이 구원받을 때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은 회개하고 믿으면 돼요.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구원 못 받은 사람 여기에 한 사람도 없지요. 여러분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으므로 아무 조건 없이 주님이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너무 기뻐해서 여러분을 끌어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 주고 산 제일 좋은 옷을 입히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이 예비한 신발을 신긴다. 신발은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약속의 은총을 주시고 그 다음에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즐기자는 것입니다. 살찐 송아지가 뭡니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것이 바로 살찐 송아지 아닌 것입니까?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고 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32절에 보면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사람 주님 필요 없습니다. 주님이 없어도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스스로 죄인인줄 알고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고 죄책을 느끼는 사람은 내가 건지러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죄인을 불러서 다른 조건 없다. 회개만 하라. 돌이키고 회개만 하라. 그리하면 내가 용서하고 구원하여 주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의로운 아흔 아홉 명 보다도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 기쁨이 하늘에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죄인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하면 즉시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써 믿는 것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아버지가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이 곧장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춰서 어두운 가운데서 밝은 빛을 보는 것같이 예수님이 구주인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적 비췸을 얻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가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멋대로 산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회개를 어떻게 합니까? 죄가 너무나 많은데... 그것 다 계산해서 회개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간단합니다. 주님께서 제일 먼저 구원받는 회개는 내가 하나님 없이 내 중심으로 산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인 삶을 산 것입니다. 주인은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까? 종은 자기 마음대로 못해도 주인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데 죄인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내 멋대로 원하는 대로 하나님 없이 산 죄를 회개하고 이제는 주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나의 주인으로 섬기고 살겠다고 돌아오면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회개가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 과거의 고주알 미주알 회개는 그것은 장차 살아가면서 더 깨어지기 원해서 하는 회개지 구원받는 조건은 아닙니다. 구원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내가 내 주인으로 살던 인생을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모셔드리고 나가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회개하면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회개 안하면 여러분이 지은 죄가 매일같이 쌓여서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시여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 앞에서 주님 멀리 떠나서 내 중심으로 살고 불의하고 추악하게 살았으니 나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을 내 구주로 모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오케이 되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보배로운 흰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아서 천국의 가족 속에 들어오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버지여, 내가 거짓말 몇 번 했습니다. 도적질도 했구요. 이웃을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성결하게 되기 위해서 나중에 하는 것입니다. 처음 회개는 더러운 온몸을 물에 풍덩 적셔서 비누칠 한 번 싹하는 것이고 때를 벗기고 가죽을 밀어내는 것은 그 다음에 할 일인 것입니다. 구원 받았으니까 내가 점점 더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있는 것 고주알 미주알 다 캐내서 회개하는 것은 다음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것은 회개하고 구원받은 사람이 그 다음에 할 과제인 것입니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으니 새사람에게 합당한 새로운 의복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의복이 날개라고 옛날에 죄악 가운데 냄새나던 세상 옷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향기나는 의복을 받아 입고 하나님 앞에 행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어떻게 할까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해서 구원을 받았으면 이제는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까 라고 묻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답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회개는 한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손을 씻는 것과 같습니다. 회개는 씻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평생 회개는 늘 가지고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 한 번하고 끝장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쉽게 버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루에 490번 죄를 짓고라도 회개하고 나오면 씻어주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에 완전한 사람이 되지 않잖아요. 예수 믿었다고 해서 당장 날개 달렸나 싶어서 살펴봐도 날개 안 달렸잖아요. 예수 믿었다고 해서 성자가 되느냐. 반드시 당장 성자가 안 됩니다. 중생은 눈 깜박할 사이에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믿으면 즉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결하게 되는 것, 거룩하게 되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즉시 안됩니다. 넘어지고 또 회개하고 넘어지고 또 회개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탄식하고 또 새로워지고 탄식하고 또 새로워지고 그러면서 날이가고 달이 가면 달라진 가기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결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죄를 죄로 지적해주는 율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십계명은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거룩하게 되기 위한 조건인 것입니다. 십계명을 보고 그를 통해서 내가 더러워지느냐 깨끗해지느냐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2. 회개를 통해 성령을 받고 변화되라 여러분, 우리가 매일 같이 가장 많이 들여다보는 것이 뭡니까? 거울입니다. 우리 자매님 여러분은 남자들보다 더 자주 거울보지 않습니까? 저 같이 못난 놈도 거울을 늘 들여다보는데 일반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죄를 들여다보고 알기 위해서는 율법의 거울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 나는 죄가 없어요. 나는 깨끗합니다. 그 사람은 거울을 안 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울을 딱 보고서 당신 얼굴에 흠이나 점 있는 것 보십시오.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는지 안 흐트러졌는지 보십시오.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네요. 어떻게 압니까? 거울에 비취네요. 그렇습니다. 내가 전적으로 의로우냐 의롭지 않느냐를 율법을 비춰보면 여러분 잘못한 것이 당장 드러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로 17절에 보면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네 계명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 나는 그런 죄는 안 범한다 하는데 범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올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에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 한국에는 제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끊임없는 논란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이 효도냐 우상숭배냐. 어떠한 신학자는 죽어도 부모는 부모지 죽었다고 해서 부모가 아니냐. 죽은 부모에 대해서 절하는 것이 우상숭배가 될 수 있느냐. 다른 신학자들은 살아있는 부모가 부모고 죽었으면 우리와 관계가 없다. 멀리 떠나 가셨으니까 그의 무덤에 가서 절하는 것 좋지 않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면서 저에게 물어옵니다. 제사 드리는데 절을 해야 합니까? 안해야 합니까? 절을 할라고 하니 우상숭배하는 것 같고 안하려고 하니까 불효막심한 것 같고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꼭 그 질문이 정초에나 보름에나 그때 쏟아져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뭐라고 대답할까요? 좀 가르쳐 주세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말합니다. 제사 같이 한다고 일가 동기간에 욕을 얻어 먹지도 말고 양심에 가책도 느끼지 않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부모 기일날이 오고 다른 사람들이 다 절을 하거든 당신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십시오. 무슨 기도를 하느냐. 살아계실 때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 나를 길러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 나는 마음으로 우리 부모님을 기억하고 감사하지만 내 신앙의 의식에 의해서 절은 못하니 용서해 주십시오. 부모가 그것 이해하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또 제사지낸다고 부모가 거기에 올 자리도 아닙니다. 마음에 생각이 전부인 것입니다. 절도 하지 말고 섭섭하게도 하지 말고 여러분 마음속으로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마음속으로 감사하고 양심에 가책을 가지지 않기 바랍니다. 그 다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 이것도 꼭 시험을 당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안식일날 놀러가자고 온 가족들이 다 결심을 했는데 자기는 안식일날은 지켜야 되니까 어떻게 합니까? 놀러 안 가자니 가족들하고 교제가 안 되고 가자니 하나님 앞에서 미안하고 이런 고통이 다가오니까 이것이 괴롭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왜 하나님이 이런 것을 성경에 기록해 놓아서 꼭 마음이 괴롭게 하느냐. 성경에 없으면 우리가 그것 죄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는 것이 죄인 줄 아는 것은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것도 성경에 기록하고 있으니까 그것을 하면 마음에 가책이 오지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에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 물론 일반적으로 부모를 공경 안 해도 된다는 세상적인 사람도 있겠지만 성경에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었으므로 하나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해야지요. 성경에는 보면 요약해서 적지 않은 성경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한다고 했었습니다. 부모 공경하면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한다. 그러므로 이 성경을 보고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살인은 꼭 칼을 들어 사람을 찔러 죽이고 총을 들어 쏘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라 말로써 살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 했으니 끝없이 이웃을 사랑해야지 말로서라도 살인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 모두 다 한 가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성경에 기록 안했으면 고통을 안 당했을 것인데 성경에 기록했으니 성경을 통해서 나의 잘못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더 바르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성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십계명은 구원받는 조건은 아니다. 거룩하게 되는 조건이다. 그러므로 내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십계명을 늘 들여다보고 그것을 외우고 그 십계명에 어긋난 것은 회개하고 자복하고 그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가운데 우리 생활에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 변화 받는 과정으로서의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가 있어가지고 십계명을 어겼을지라도 회개하면 또 씻어버리고 또 새롭게 출발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회개는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3. 회개함으로 겸손한 삶을 살라 그 다음에 회개는 오만을 버리고 겸손히 삶의 바탕이 되는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은 꼭 죄가 아니라도 교만을 청산하는데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만한 사람 많지 않습니까? 복 받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만한 것은 교만한 것인데 오만한 것은 무엇이냐. 자기 평가에 정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너무 고가로 자기를 평가해요. 으스대는 것이 오만인 것입니다. 자기는 오만스러운 줄 몰라요. 교만한 사람들은 자기가 교만한 줄 몰라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면 교만이 보여요. 교만한 사람하고 이야기하면 참 만화경입니다.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는 제일 잘 알고 전부 다른 사람이 잘못 했지요.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오만한 사람을 돌이키게 하는 것은 정말 힘이 들지요. 오만한 사람은 남의 눈의 티는 보고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의 잘못은 다 보는데 자기 잘못은 보지 않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7장 1절로 5절 들어보세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형제는 눈에 티끌이 있고 자기 눈에는 들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과장이라고 할 수 없지요. 정말로 눈에 들보를 가진 사람은 그만큼 오만하다는 것입니다. 안하무인이요.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하무인이 되어서 전부 다른 사람의 잘못만 지적하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이 세상에 함께 살기가 힘든 것입니다. 오만해서 자기만 잘났고 다른 사람은 못났다고 하는 이러한 오만은 정말로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교인이요 철저히 율법을 지킨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세리로써 아주 죄인입니다. 바리새교인은 하나님 앞에 앞자리에 앉아가지고서 고개를 들고서 좌우를 살피면서 하나님 아버지 내가 왔습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안식일은 꼭 지키고 훌륭하게 사는 당신의 훌륭한 종입니다. 거기까지 읽으면 참 굉장한 사람이구나. 그런데 세리는 남의 세금도 많이 떼먹고 도적질도 많이 하고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천하에 나쁜 놈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바리새교인이 네 말 맞다. 너는 천하에 나쁜 놈이다. 그리고 난 다음 두 사람이 성전을 나갔는데 주님께서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입었느냐. 말할 필요 없이 바리새교인으로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성일은 꼭 지키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겠지요. 주님께서 아니라. 자기를 잘났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잘못했다고 가슴을 치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이 세리는 하나님께 용서와 의로움을 입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교만은 만 가지 죄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인이라도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가슴을 치고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쫓아내지 않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혀온 여자보고도 우리 주님께서 그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 보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성경에는 간음한 자는 잡아서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주님께서 아주 단호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아무도 칠 사람이 없습니다. 다 물러가고 나니까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물은 질문이 뭡니까? 여자여,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 없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과거는 청산해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죄 짓지 마라. 주님께서는 회개하고 미래가 있는 사람을 정죄해서 죽이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주님께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피와 물을 다 쏟고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런데 우편에 강도 한 사람 좌편에 강도 한 사람이 있는데 그 강도 중에 한 사람이 주여,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아주 극단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그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자기가 잘못 산 것을 자백하고 주님 나라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오냐.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회개하는 사람 당장 십자가에서 죽어가면서도 주님은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 교회 갈 리도 없고 회개할 시간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자기의 과거를 뉘우친 사람은 그 자리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강도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우리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라. 왜 달려 죽느냐. 하나님 아들 꼬락서니가 왜 그 모양이냐? 그 사람을 보고 똑같은 강도가 너와 나는 죄를 지어서 그 대가로써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이 분은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잘못 생각했다. 두 사람의 강도지만 한 사람은 낙원으로 가고 한 사람은 지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하면 주님께서는 어떤 일이든지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므로 멸망을 받지요. 만사에 남의 탓만 하고 자기의 탓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은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내 잘못으로 안하고 남의 탓입니다. 남편 탓, 아내 탓, 자식 탓, 이웃 탓, 남을 탓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교만하면 패망하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 3절에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야훼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교만하면 자기도 망하고 자기 따라오는 사람들도 망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사람 앞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가 언제 필요하냐. 교만하다가 깨닫거든 당장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서면 하나님이 은혜를 복구시켜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항상 회개를 한번 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 또 똑같은 회개를 하고 또 회개를 하는데 한번 회개하면 하나님은 잊어버리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회개한 것을 하나님은 기억하고 있다가 또 말하고 또 말하고 남편이나 아내와 틀립니다. 가정싸움을 잘하는 집안에 화해하러 가보면 과거 이야기를 줄줄 해줍니다. 남편은 아내가 왜 고약하냐를 고해주고 아내는 남편이 얼마나 나쁜 놈인가를 말하는데 전부 과거 이야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과거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과거는 한번 청산했으면 오케이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도 과거를 캐서 자꾸 파뭍고 있지 않고 덮어 씌우고 정죄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회개하면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지금 죽어가면서 회개해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성령께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 주시거든 회개하십시오. 회개하면 물러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깨끗이 씻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가는 모든 사람은 아무 지장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8절로 10절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생각하고 애통하고 슬퍼하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여러분 기도하다가 가만히 자기를 살펴보면 참 기막힌 인간입니다. 하나님 나는 넝마와 같은 인간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만 생각해도 무슨 말로 감사를 하겠습니까?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 걸러진 것을 감사합니다. 기도할 때 얼마든지 여러분 과거를 들춰서 그때는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용서한 것도 회개하는 것은 교만이 깨어지는 고통으로 알고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겸손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해와 동정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최대한도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용서하고 사랑을 실천하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이해를 받고 동정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대할 때 그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서 대하지 말고 자기 마음을 낮춰서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나가고 사람 앞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하고 대화할지라도 우리는 회개하는 마음이 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저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하고 동정하기 위해서 있다는 것을 알고서 용서와 사랑을 베푸는 여러분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로 15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러므로 용서하고 그 다음에 사랑하고 그 다음 감사하는 자가 되라. 용서를 하고 나면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 못하고 나는 옳은데 저놈은 나쁘다고 생각하면 대적감이 생겨서 용서할 수 없어요. 사랑할 수 없어요. 그러나 용서를 하고 나면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감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꼭 따라 말씀하세요. 용서하고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와 사랑을 주셔서 마음이 평안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구원받는 조건은 불신앙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면 구원을 은혜의 선물로 받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조건을 붙이면 안 됩니다. 구원의 조건은 예수님이 다 십자가에서 완성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는 회개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닮는 변화의 삶은 계속된 자기 성찰과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을 위해서는 회개를 하루에 490번 해도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 및 성령님의 가르침을 좇아 회개하고 변화를 받습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교제를 막는 죄를 늘 회개하고 버리며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나님과 교통이 있고 기도가 응답되며 병이 낫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출발은 회개요, 신앙성장이 끊임없는 자기반성인 회개요, 신앙의 완성도 회개를 통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예수 믿게 됨으로부터 시작해서 물 쓰듯이 늘 써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죽을 때도 주님이시여, 주님을 의지합니다. 회개의 고백을 하고 갈 수 있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회개는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을 믿고 사는 귀중한 보배로써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회개가 없습니다. 심판과 정죄만 있지 회개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가까워지고 이웃하고도 회개하고 친해지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