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3. 8. 18. 주일설교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야훼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출 15:22~27, 요 2:6~11) <서론> 오늘 저는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입니다. 주님이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초교파적인 여러 사람들이나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모인 곳이 교회인데 구약의 이스라엘 광야 교회는 교회가 가는 곳에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쓴 물을 달게 하고 병을 치료하고 엘림이라는 오아시스에 장막을 치는 삶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한 곳이 바로 그 교회이기도 한 것입니다. <본론> 1.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한 나뭇가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서 모세의 뒤를 따라 홍해를 건너서 수르광야 지역에 이르렀습니다. 광야에 이르러서 사흘을 걸어가는데 물을 얻지 못했었어요. 물을 많이 마시라고 오늘날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늘 말씀을 하는데 저들은 사흘동안 광야의 햇빛이 내리쬐는 먼지투성이의 길을 걸어가서도 물을 한 방울도 못 마셨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모세야 물 달라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런데 그 원망을 듣고도 모세가 뾰족한 수가 있나요? 물을 어떻게 만들어냅니까? 그래서 사흘 만에 물웅덩이를 발견했는데 뛰어가서 사람들마다 물을 마시더니 전부 토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쓴물이 꽉 들어차서 마실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한 나무를 지시하시는지라 그 나무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까 순식간에 물이 달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교회 성도들이 목말라할 때 쓴물을 달게 만들어서 물을 마시게 해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로 25절에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오늘날 우리가 그 쓴물이 달아진 것을 읽고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라고... 그러나 이것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떠오르는게 있지요. 이 세상에 사람이 살면서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면 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솟아나는 원망, 불평, 탄식, 고난의 쓴물도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마음의 쓴물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전에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더니만 갑자기 마음속에 말씀을 하세요. 너, 무병장수하기를 원한다고 했지? 그럼요. 비타민도 많이 먹고 물도 많이 마시고 쉬기도 충분히 쉬고... 아니야 그런 소리가 아니야. 건강하고 장수하려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로 썩게 만든다. 뼈가 썩는데 비타민을 먹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마음에 평안은 육체의 생명이다. 마음이 너희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는 제일 첫째 중요한 것인데 그 마음의 평안을 지키는 것은 자기가 직접 해야지 다른 사람이 와서 대신 해줄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장차 평안한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은 장차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지금 여러분 마음속에 평안을 얻어야 돼요. 그래야 건강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죄와 허물의 쓴 물이 솟아오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니까.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게 행동하면서 사는데 그것이 쓴물이 되어서 솟아오르지요. 불안과 공포의 쓴 물도 끊임없이 마음에 솟아오릅니다. 하루도 마음이 불안하거나 공포가 없는 날은 없습니다. 그리고 미움과 분노의 쓴 물은 더 무섭습니다. 미워하거나 분노를 가지면 우리를 파괴하는 쓴물이 되어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좌절, 절망, 우울의 쓴 물도 우리 육체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병보다 마음의 쓴물이 가장 무서운 병입니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는 결코 건강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의 쓴물, 불안과 공포의 쓴 물, 미움과 분노의 쓴 물, 좌절, 절망, 우울의 쓴 물인 것입니다. 이런 쓴 물을 무엇으로써 달게 만듭니까? 내 마음의 쓴 물을 무엇으로써 달게 만드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통하지 않고는 달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쓴 물을 활명수를 마신다고해서 달아집디까? 소화제를 마신다고 달아집디까? 마음의 쓴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달아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기하게 달아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쓴물이 달아져야 행복합니다. 기와집을 짓고 문전 옥탑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행복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환경, 주위 환경이 우리에게 행복을 갖다 주지 못합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어야 행복이 오는데 마음의 기쁨은 쓴물을 달게 해야 오지 마음에 쓴물이 있는데 기쁨이 있을 수가 없고 기쁨이 없으면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달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행복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마음이 기뻐야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에 행복이 들어오지 마음에 분노, 원한, 슬픔이 꽉 들어차 있으면 행복은 안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속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없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사람 다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내가 치료해 놓지 못한 쓴물이 솟아오르고 있으면 행복은 마음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불안을 먹고 불안을 낳으며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전체가 불안 속에 살아가는 것이지요.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은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불안을 연령별로 조사해 보았더니, 10대는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를 당할까 싶어서 끊임없이 불안합니다. 20대는 학교 공부를 마치고 나와도 직장을 얻을 수 없으니 취직이 못 될까 불안합니다. 그 다음 30대의 불안은 결혼 문제인데 경제적 사정을 들어서 결혼하려고 안해요. 요사이 직장이 있어 돈 벌고 몸 둘 아파트만 있으면 남녀 불구하고 편안하게 혼자 살지 뭘 결혼하느냐. 결혼 안하는 것입니다. 결혼 안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자꾸 결혼하라고 독촉을 하니까 마음이 불안한 것입니다. 40대는 벌써 노후 걱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40대가 되면 직장에서 다 높은 자리에 앉고 수입도 안정되고 아주 생활이 부요해져서 기쁘게 40대를 살아갈 수 있는데 오늘날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40대가 되면 집을 구하기는 구해야 되는데 하우스 푸어 라고 말해요. 요사이.. 내 집을 갖기는 가져야 하는데 실제 안을 들여다 보면 빚이 잔뜩 많아요. 집 없는 것보다 못한 게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40대가 되면 집을 가지고 있어야 아내나 자식들 앞에 체면이 서는데 집을 빚을 내고 산다 말입니다. 은행에 빚을 내서 집을 사서 매달마다 이자를 지불하고 나니까 허리가 휘청하게 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우스 푸어가 되어서 집이 있으면서도 빚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것입니다. 노후를 대비할 여력이 없어서 이제 늙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태산인 것입니다. 50대는 고립에 대한 불안인 것입니다. 직장에서나 회사에서나 나갈 사람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벌써 은퇴의 그림자에 덮여서 불안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완전히 버림받고 고립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60대가 되면 언제 갈지 모르니까 가는 동안에는 건강하게 살아야 되겠다. 건강에 대한 불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박완서 작가의 ‘호미’라는 산문집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됩니다.” 안 아프던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리고 소화도 안 되고 잠자리에서 편하게 잘 때도 있고 못 잘 때도 있고 이제는 내 몸이 나에게 상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다 이기고 편안하게 되기 위해서는 갈보리 십자가를 나무를 발견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야 돼요. 듣기만 하지 말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만남을 갖고 변화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고요하고 잠잠하게 확실하게 말씀합니다. 뭐라고 하시겠어요? 걱정마라. 내가 다 이루었다. 처참하게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고 고통을 당하면서 주님 마지막에 내가 다 이루었다. 그 말씀 남기시고 운명하셨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뭐였습니까? 여러분 찾아오셔서 여러분 귀에 대고 내가 다 이루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이루어 놓았으니 나만 의지하라.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 이사야는 예수님 오시기 약 7백년 전에 예언을 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그가 찔림은 나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나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러므로 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그 아들을 보내어서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한 것은 나 때문에 그렇다. 자꾸 이웃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성경 읽을 때 옆에 성도들이 같이 많이 앉아 있는데... 저 김씨 들으라고 오늘 성경에 나온다. 박씨 들으라고 저기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큰일입니다. 나 때문에... 주님 나 때문에 고난 당하셨다. 그러면 주님께서 곧장 여러분에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너는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다 이루었다. 걱정 투성이인 나를 위해서 주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가 다 가지고 있고 내가 너를 위해서 다 이루었으니 걱정 말고 맡기고 의지하라. 왜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죄와 허물을 안 지은 것처럼 용서해 주시고 불안과 공포는 하나님 성령님이 와서 내 손잡고 위로해 주시므로 평화가 다가오고 미움과 분노는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고 절망은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멸망시키고 영원한 생명으로 채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여러분과 나에게 인생에 절대 필요한 평안을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진실한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면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평안만 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영적인 향기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님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은 잔치와 같은 것입니다. 잔치에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은 포도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어머니와 제자들과 초청받아 갔는데 한참 잔치가 무르익을 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신랑이 아주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뛰어와서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어떻게 좀 해주실 수 있느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과 같이 살았으므로 그리스도가 보통분이 아니시고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행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찾아가서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주님이 여자여, 어머니라 안하고 여자라고 했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이르지 않았으니 나보고 이것해라 저것해라 간섭하지 마십시오. 아이구 아들을 향해서 어머니가 말하는데 저렇게 몰인정하게 여자여,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가혹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어머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셨다고 하면은 오늘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 나아가려면 어머니를 통해야 된다. 사랑하는 마리아님이여 예수님께 말씀해 주옵소서. 완전히 예수님 위에 마리아를 앉혀 놓지... 안그래도 오늘날 카톨릭 교회에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께 나간다고 그러는데 그 말까지 했더라면 예수님은 완전히 마리아의 심부름꾼처럼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때가 올 것을 알고서 방지시키기 위해서 주님이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어머니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말도 안했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어머니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장 하인에게 말하기를 쉿, 내가 말하면 안돼. 무엇이든지 예수님이 말씀한대로 순종하라. 그리하면 좋은 일이 생겨날 것이다. 잠시후 예수님께서 그 집에 결례통이라고 유대인이 예식할 때 손 발 씻는 물동이에 물 두 세 그릇이 들어가는 그런 큰 물독이 있는데 그 물독 여섯에 물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 물 갖다 채우니까 떠가지고 잔치 자리에 갖다 주라. 갖다주니까 아주 향기로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즐기고 대접하기 위해서 잔치를 위해서 포도주가 필요할 때는 포도주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절로 11절에 예수님이 제일 먼저 행한 것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11)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비유에서 의미가 깊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맹물같이 살면 삶의 재미가 없어요. 산다는 것은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기 살아서 계시지만 오늘 이내에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삶이란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삶의 일대 기회인 것인데 살 동안에 향기롭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맹물같이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를 보더라도 맹물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삶의 향기가 떨어진 맹물 같은 인생을 살지 말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내적인 향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그러므로 의와 평강과 희락 같은 향기 나는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 와서 같이 살든 그 사람 곁에 있으면 기쁘고 기분이 좋고 불안하지 아니하고 평안하고 삶이 즐거워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옆에 오면 불안하고 겁이 나고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떨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미가 없습니다. 맹물 같은 사람은 싫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신 것은 물 같은 인생을 살지 말고 포도주 같은 인생을 살아라. 그러면 어떻게 해요? 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님을 모시니까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는데 여러분의 생애에도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생애를 변화시켜 줄 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을 하겠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맹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고 또 그렇게 할 수 있고 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나를 청해서 그렇게 기도하라. 그러면 내가 그렇게 변화하는 역사를 베풀어서 네게 향기가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달콤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포도주와 같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인격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분 같이 모시고 있어보니 그렇게 온유하고 겸손하다. 겁나지 않다. 마음이 같이 있기가 즐겁다. 그것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사나운 사람만큼 싫은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사나운 사람을 상사로 모시고 있으면 회사고 일터고 밑에 있는 사람들이 기가 죽고 겁이 나고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나운 남편 밑에 한번 살아 보십시오. 부인이 하루가 천년같이 느끼게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되어보지는 못했지만 사나운 여자하고 사는 남자들을 보면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사나운 남편, 사나운 부인이 그렇게 되어있을 필요 있나요? 예수님을 모시면 그 속에 들어와서 향기가 나게 하고 포도주가 들어오면 달콤한 향기가 나니까 변화되지요. 예수 믿고 변화 안 되면 믿는 효과가 어디 있는 것입니까?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아무 효과 없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뭐하겠습니까? 포도주가 되어서 향기도 나오고 달콤한 맛도 생겨나야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 따라 가면 마음속에 향기도 나고 달콤한 온유하고 겸손한 인격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마음이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주변에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마시면 아무리 적게 마셔도 조금은 취해요. 포도주에 취하지 않는 DNA를 가진 민족도 있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취하는 DNA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마시면 한국 사람들은 잘 취해요. 그런데 나쁘게 말하지 말고 여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성령충만과 천국으로 취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오셔서 마음에 취하게 되고 천국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목사들도 그래요. 많이 기도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예배 인도하러 가든지 부흥회 나가면 한 4,5분 동안 설교하면 성령께서 싹 하늘에서 내려와서 마음을 붙잡으면 그만 성령에 취해지는 것입니다. 한시간 갔는데 한시간 갔는지 몰라요. 시간 간다고 시간 좀 보고서 설교하라고 그 말 요사이 종종 많이 듣는데. 오늘도 이대로 가다가는 시간 놓치겠어요. 취하기 시작하거든요 지금부터 벌써... 성도들도 취하고 목사도 취하면 가나의 혼인잔치와 같은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 말은 성령으로 취하라. 성령으로 취하면 이 세상에서 체험하지 못한 아름다운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마음속에 취하게 되고 즐겁게 되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 같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넘쳐나서 맹물 같은 삶이 포도주 같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하간 그리스도의 복음은 변화를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가 우리 마음속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면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데 종교적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하나 더 보태어지면 인생이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변화가 다가와서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평안해지고 향기로운 인격을 갖게 되고 기뻐지고 행복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3. 복음과 변화 쓴 물은 달아지고 맹물은 잔치 때 포도주 같이 되는 변화를 주님은 가져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할 뿐 아니라 주님은 여러분을 쓴물이 달아지기를 원하시고 맹물이 포도주같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성경에 적어서 우리에게 읽게 하시지 않습니까? 오늘 나중에 통성기도할 때 주님, 마음에 맹물을 포도주처럼 달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향기로운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번 기도하기 시작하십시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이 들어와서 우리가 변화되어 새것이 되어야만 되지 옛날 그대로 인간으로 있으면 믿는다는 증거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효과도 없구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 능력으로 변화를 받아야지 구원을 받고도 아무런 변화가 우리 생애 속에 다가오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천국 가는 것은 좋은데 천국 가기 전에 이 땅에 천국을 마음속에 모시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이 들어오면 마음에 용서받은 의로움을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았으므로 의로운 사람은 평안으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마음이 평안해져야 돼요. 죄가 있으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러나 그 죄를 주님께 다 맡기고 주님이 평안을 주시면 마음에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행복이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마음이 평안하면 굉장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을 누리게 되고 이웃과 사이에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불의를 청산하고 의로움을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허물진 삶은 거룩하게 되고 성령이 오시므로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딛 3:5~6)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행위로써 하면 주님 앞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부족한 것을 다 청산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이제는 주님께 구하면 값없이 주려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심신을 씻어서 새롭게 만들어 주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새로 변화시켜 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우리가 꼭 구할 것은 주님, 이제 주님을 모셨으니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풀어서 나로 하여금 포도주같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향기롭게 만들어 주시옵시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이 변화시키는 기적을 우리 생애 속에 체험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허물진 인생이 거룩하고 성령이 오심으로 변화되면 나도 행복하고 이웃도 행복하고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은혜로 말미암아 심신이 병과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게 되도록 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늘 병들고 늘 스트레스에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님은 변화시키는 하나님,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아무리 기독교가 고상하고 신학이 깊다하더라도 우리에게 변화를 갖다주지 아니하면 뭘하겠습니까? 제가 이번에 스웨덴에서 목사님 앞에서 한 말이 왜 서양사람들이 교회에 잘 나오지 아니하고 통성기도도 많이하지 아니하고 교회가 죽은 것같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하니까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요. 그 이유는 여러분은 학문을 전하고 생명을 주지 않는다. 죽은 예수님을 전하고 살아서 지금 움직이는 예수님을 전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님을 모시면 부담이 된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이야깃거리, 책 하나 더 몸에 걸어지고 가는 것이 되고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면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이 계시므로 우리에게 죄책을 드러내주시고 허물을 없애주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생명을 주시므로 짐이 가벼워지고 삶이 행복하게 된다. 우리는 산 예수님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죽은 예수님과 함께 예배드리지 않는다. 그 둘 중에 여러분이 좋은 편을 택하라고 하니까 모두다 박수를 치더라구요. 살아계신 예수님을 우리가 모시고 살지 죽은 예수님과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보면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육 간에 치료함을 받아서 심신이 건강해져야 기쁘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여러분 꼭 주무시기 전에 마귀를 쫓아내고 하루 종일 일할 때도 마음을 살펴서 마귀를 쫓아내라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주무시기 전에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마음에 분노가 꽉 들어차 있으면 분노하는 마귀가 붙어있는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이 마음을 점령하고 있으면 불안한 귀신이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우울한 모습이 보이면 우울하게 하는 마귀가 여러분을 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기도하면서 가만히 살펴보면 마귀의 모습이 마음에 보입니다. 마음이 우리 마음을 통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우울하거나 분노하거나 답답하거나 고통스럽거나 내 마음에 그런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더러운 귀신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명하노니 나가라! 좀처럼 꿈쩍 안 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 나가라! 나가라! 대개는 내게 붙었던 마귀가 나갈 때 나는 내게 전율이 와요. 옛날에 성경에 보면 귀신이 고함치고 나갔다고 하는데 고함 안치고 나는 전율이 와요. 그 다음 몇 번 쫓아내면 이 전율이 사라지고 편안해져요. 그러면 아주 평안하고 기쁘게 잠을 자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꼭 붙어오는 것입니다. 안 붙어오면 편안하게 자면 참 좋지요. 그러나 우리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는 것은 성령의 뜻이고 마음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마귀가 갖다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장난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을 삐뚫어지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괴롭게 만들고 정말 그 놈을 끼고는 잘 살 수 없어요. 그런데 마귀와 귀신은 쉬지 않고 여러분을 괴롭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70인이 귀신을 쫓아내고 기쁘게 주님께 돌아오니까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귀신이 너희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즐거워하지 말고 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한 것으로 즐거워하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피하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이 마귀를 대적하고 자유와 해방을 얻고 승리해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심신이 병과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게 되어 주님의 은총을 의지하고 평안과 기쁨으로 살면 우리가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저주 때문에 실패와 가난의 삶에서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기대하고 체험하고 산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저주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몸이 병들기 시작하고 자녀를 해산하고 기르게 고통을 당하고 농사지어 먹고 살아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고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오고 낭패와 실망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저주라는 것은 이마의 땀과 동일하게 반드시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저주를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무엇을 해도 저주가 따라다니면서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제일 처음에는 마귀가 저주를 가지고와서 여러분 따라다니면서 방해꾼이요 훼방을 놓아요. 그런데 자꾸 발을 걸고 훼방을 끼쳐요. 그것을 쫓아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는 여러분 억압하기 시작해요. 가로막고 억압하고 병들고 못하게 계속해서 우울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마귀의 종이 되고 말아요. 우리는 일평생 살면서 원하든 원치 안든 싸우고 나가야 될 것은 마귀와 싸우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그 약속의 말씀으로 쫓아내고 십자가의 보혈로 쫓아내고 우리의 무기가 많습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과 그 약속의 말씀 앞에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말씀과 성령과 예수 보혈로써 보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다. 아담과 하와가 받은 저주가 온 자손들에게 전달되었지만 예수님은 새로운 인류 조상으로서 여러분의 저주를 나무에 매달았다. 예수님께서 우리 저주를 대신해서 나무에 매달았으므로 여러분 지금 눈을 들어 십자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저주를 짊어지고 가셨다구요. 저주란 가시밭 인생길을 주님이 대신 책임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저주받은 사람은 들어가도 저주받고 나가도 저주받고 앉아도 저주받고 서도 저주받고 실패를 도장 찍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고난당하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느냐. 아브라함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75세에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실 때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했는데 그 복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종교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주라는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실제 생활의 저주인데 아브라함의 축복도 종교가 아닙니다. 직접 사는 생활에 축복이 임하신다구요.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복덩어리입니다. 절대로 저주받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복덩어리로서 일어나는데 앉아도 복을 받고 일어서도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복을 받기 때문에 여러분 같이 집안 사는 사람들이 복을 받고 일터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복을 받는 것은 천만 성도가 있기 때문에 5천만 민족이 다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복 받은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복이 더 넘쳐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나는 복 받은 사람이요 나는 형통한 사람이다. 이것이 마음에 꽉 들어차도록 생각을 하고 있으면 여러분 부정적인 생각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인데 그런 일이 안 생긴다. 걱정할 것 없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복 받은 사람으로 저주와 상관없다. 아브라함의 복이 나의 복이다. 할렐루야~ 복 받은 여러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변화가 예수 믿고 와야 되지요. 그런 신앙이 들어오고 그러한 생각이 들어오고 말을 해도 그런 말을 하고 사는데도 그런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천국의 소망이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확실합니까? 주님께서 저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우리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우리가 안 죽으면 좋겠지만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죽는 것 조금도 겁이 안 난다고 다 큰소리 하는데 내가 부흥회 나가서 그러나 지금 당장 죽는 것보다 100살을 살고 죽는 것이 좋지요? 그러니까 다 박수 치더라구요. 하나님이 살려고 우리에게 보내주셨는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선물로써 아름답게 향기 나는 삶으로 오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여러분도 행복하고 같이 사는 사람도 행복하게 되어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 우리는 이래 뵈도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구요. 그러니까 죽어도 예수님 안에 살고 살아서 예수 믿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되므로 감사할 따름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믿음이 종교적 교양이나 형식과 의식으로 전락하면 교회는 메마른 광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왔다갔다 하는 것이 종교적인 교양이나 형식과 의식을 지키기 위해서 한다면 이것은 쓸데없는 시간을 뺏기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교회 나와서 설교도 듣고 기도하는 것은 쓴물이 달아지고 맹물이 포도주가 되는 변화를 체험하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계셔서 여러분을 만나 주시고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무엇보다도 변화시켜주시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님은 내 안에서 변화를 가져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변화를 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신앙은 천국 포도주에 취한 삶을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술에 취하지 말고 포도주 성령에 취하는 경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취하면 기도도 술술 실타래 풀 듯이 풀려나오고 마음에 슬픔과 괴로움이 사라지고 이웃에 좋은 칭찬과 즐거움을 나누어 갖는 사람이 되고 좌우간 멋있다구요. 성령의 포도주로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집회를 하고 돌아오면 사람들이 물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집회 잘되었냐구요. 그것을 대답할 필요 없습니다. 오늘 나나 성도나 술 취한 것 같았다. 성령에 취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교회에서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천국 포도주에 취한 오늘 하나님의 성령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