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 성찬주일설교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1~6)

<서론>
오늘 저는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굶주리고 목마르고 오래 살지 못해 짐승들에게 잡혀서 찢깁니다. 다른 모든 짐승들은 자기 방어 수단이 있어요. 이빨이 무섭다든지, 뿔이 사납다든지, 잘 달린다든지 그런 것인데 양은 그런 것이 없어요. 뿔도 튼튼하지 못하고 이빨도 강하지 못하고 발톱도 없고 멀리 달려갈 수도 없고 십미터 앞은 캄캄하게 안보이고 목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양입니다. 그러나 목자가 있으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강한 목자가 양을 지키면 양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언제나 강한 목자가 지키므로 안전하게 살고 푸른 풀밭으로 이끌어 주셔서 푸른 풀밭에서 누이신다고 말했습니다. 양은 배가 부르지 않으면 절대로 안 누워요. 밤새도록 풀을 뜯습니다. 그러나 배가 불러야 눕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니까 양은 목자의 인도를 쫓아서 푸른 초장에 누인다고 했습니다. 나는 행복하다. 만족하다. I''m happy. 그리고 쉴만한 물가에 가서 호수에 물을 마시고 쉴 수 있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그 구절을 참 좋아해서 어려울 때 그 구절을 늘 사용합니다. 내가 곤란한 가운데 부족함이 많이 다가오고 어려운 시련이 있을 때 주여,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다고 하셨으니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부족한 것은 다 나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만족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역사를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뭡니까? 하나님 주신 약속을 마음속에 꽉잡고 그것을 주장하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역경이 다가와도 말씀대로 된다고 말씀에 매달리고 말씀을 주장하면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이룰 수밖에 없는 것은 거짓이 없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영혼이 생기에 충만하고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하고 의롭게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나에게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을 우리의 목자로 삼으면 모든 삶에 플러스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플러스인생, 삶에 환경이 다가와서 보탬이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왜 플러스인생이 될 수 있느냐. 예수님이 목자가 되어서 언제나 우리가 있으면 플러스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플러스 인생과 같이 사니까 우리는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요. 빌립은 광야에 나가서도 예수님을 계산에 안 넣고 자기 혼자만 계산하니까 실패했지요. 안드레는 광야에 나갔을 때 예수님을 플러스 하니까 문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사는데 여러분 혼자 살려고 하지 말고 플러스 예수님, 예수님과 함께 생각해보고 의논하고 기도하고 믿으면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항상 너와 같이 하느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으니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된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러면 여러분 주님 나와 함께 갑시다. 플러스로 인생을 사십시다. 그렇게 되면 주님이 붙잡아 주세요. 거짓이 없으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로 삼고 플러스 인생을 살게 될 때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부족하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플러스 인생으로 예수님이 강한 능력으로 같이 계시기 때문에 긍정적인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왜 그렇게 유명하냐. 그는 17살쯤 되는 초립동이었지만 어른들보다도 적군의 장수보다 더 위대한 것은 예수님을 플러스로 보태어서 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은 나의 목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의 목자뿐 아니라 나의 목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3)
늘 같이 하지 않습니까? 푸른 초장에 눕도록 풀을 뜯어먹게 해주시고 쉴만한 물가에 가서 쉬게 해주시고 마음을 소생시켜서 행복하고 만족하게 해주시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플러스 인생 예수님만큼 플러스 인생으로 좋은 것이 없습니다. 저는 가만히 살아온 길을 요사이 종종 생각해 봅니다. 옛날에는 죽는데 대해서 별로 깊이 생각 안했는데 요사이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필연적으로 인생은 죽는데 사는 것보다 죽는 날이 가깝다 말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나 생각하니 예수님이 플러스해서 산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시험과 환난은 많이 당했지만 부족함은 없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예수님이 함께 계시니 플러스 삶을 살았다. 예수님이 없었을 때는 마이너스가 많았습니다. 피투성이가 되고 고통을 당하고 절망적일 때도 많았는데 예수님이 계시고 난 다음부터는 어느 곳에나 주님이 플러스 인생을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수면에 운행하신 것처럼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내게 다가와 있을지라도 나의 가슴위에 날개를 퍼덕 거리면서 나는 독수리같이 덮어주시는 이가 계시는데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학문이 아닌 것입니다.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족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로 11절에도 보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이 내가 온 목적이 내 양을 이끌어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고 왔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주님이 우리 위해서 목숨을 버릴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플러스 인생을 살도록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 위해서 목숨을 버렸다 말입니다.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죄와 허물, 질병과 가난과 저주와 죽음을 대신 짊어졌습니다. 정말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 깨닫고 보면 왔다입니다. 왔다에요. 보통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플러스인생을 살도록 해주시니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살아서 운행하고 역사하시는데... 제가 언제나 서양에서 우리 교회를 연구하러 온 목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합니다. 그 사람들은 꼭 묻습니다. 어떻게 교인들이 교회를 저렇게 꾸역꾸역 찾아오나. 우리 미국이나 구라파에서는 안 오는데... 교회 나오는 수가 날로 줄어들고.. 저렇게 많은 교인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한국은 그렇게 나오느냐고 내가 하는 말은 좀 자세히 보세요. 저 사람들이 교회를 다 찾아올 때 기쁨이 충만하고 활기차게 들어오는 것을 보면 누가 같이 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가 같이 오느냐. 예수님이 같이 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함께 인생을 살아주기 위해서 오면 우리에게 의롭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악의 홍수에 휘말려가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어떻게 의롭게 삽니까? 죄가 만연한데... 그런데 예수님을 플러스 인생으로 모시고 들어오면 예수님은 은혜로 공짜로 우리에게 의롭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의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의로움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부끄럼 없이 나갈 수 있는 깨끗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격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의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지요. 그리고 또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거룩한 삶을 절대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허물이 많은 사람이라 나쁜 일 생각하고 나쁜 말하고 나쁜 일하고 나쁜 습관이 있고 이 나쁘다는 것을 재낄 수 있는 힘이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같이 계시면 우리에게 나쁜 삶을 다 제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거룩한 삶으로 덧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이 우리를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해주시면 그 다음에 성령이 우리를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물로 씻어 깨끗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의롭다함을 얻고 거룩하게 되고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우리의 약한 것을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친히 담당해 주시고 그리고 우리 병을 대신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한평생 병 없이 온전히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분들이 좀처럼 있지 않아요. 다 크고 적은 병을 앓게 돼요. 그런데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병을 대신 짊어져 주겠다. 이게 또 플러스 알파입니다. 병이 들면 예수께로 더 의지하게 되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병을 대신 짊어지게 되므로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만 하는 것은 만족하지 못하지요. 복 받은 삶을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만나면 인사할 때 복을 받으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God bless you.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진짜로 믿고 말합니까? 안 믿고 말합니까? 믿고 말하는 사람은 진짜 가까운 사람이고 그냥 말하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왜 습관적으로 말하느냐. 할 말이 없으니까 그 말이라도 하고 헤어지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 우리 보고 내가 네게 복을 준다는 것은 진짜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다 같이 소리 내어 함께 읽어 보십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을 보고도 주님이 우리에게 복을 안준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보고도 예수 믿는 생활은 복 받은 생활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 알고 있어요? 잘못 알고 있었지. 예수 믿는다고 뭐 부자가 되겠노. 저는 핍박 많이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예수 믿고 하나님께서 복 준다는 말을 하다가 기복신앙을 전한다고 이단 삼단이라고 욕을 많이 얻어 먹었는데 참말을 가르치니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알고 있거니와 예수님이 너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심은 자기가 가난해서 우리로 부요케 하게 하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요 하나님 아들로써 남의 집에서 늘 셋방살이로 살고 들과 산에서 잠을 주무시고 얻어먹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은 너희들 잘살게 하기 위해서 전셋집에 돈 주고 가는 것과 한가지입니다. 미리 너희를 위해서 부요의 축복을 예금해 놓고 가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뒤에는 예수님이 예금해 놓은 것이 많습니다. 여러분 찾아서 먹으라구요. 자세히 찾아보세요. 여러분 앞에 예금 통장이 있을 것입니다. 많이 저금되어 있어요. 발견하거든 여러분만 잡수지 않고 저도 좀 보내 주십시오. 우리는 플러스 인생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면 예수님이 복을 우리가 누리며 살고 그 다음에는 가장 놀라운 것은 죽음이 다가와도 겁낼 것 없는 것은 천국 영생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사는 삶이 보장이 되어 있어요.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눈물을 흘리면서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다시는 눈물이 없도록 만들어 주시겠다. 울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해주신다. 사람들이 가난하고 헐벗고 못살게 되면 마음도 약해져서 원망 잘나오고 눈물도 잘 흐릅니다.

2.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고 했는데 여러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생활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사는 이 생활 자체가 천당이 아닙니다. 여러분 집이 천당인 사람 한번 손들어 봐 주세요. 나도 좀 가서 배우려고... 천당이 없지 않습니까? 모두 다 우리가 사는 자체가 적은 죽음의 골짜기에서 큰 죽음의 골짜기가 우리 삶인 것입니다. 삶 자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담대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며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역시 플러스 알파로 주님이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이 함께 하시면 주님의 손에 있는 막대기와 지팡이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막대기는 뭡니까? 막대기는 짐승이 오면 치는 무기요, 지팡이는 뭐냐, 길을 찾아가는데 필요한 지팡이인 것입니다. 목자는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짐승들이 오면 막대기로써 치고 보통 때는 지팡이로 가지고서 양들이 가는 길을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십자가 몽둥이와 십자가 지팡이로 함께 계신 것입니다. 짐승이 오면 마귀를 지팡이로 막대기로 치고 어려운 골짜기를 지날 때는 지팡이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는 우리와 같이 계신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그날에는 너가 내 안에 내가 너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 성경만큼 우리와 같이 있겠다고 보장하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사망의 골짜기인데 그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우리에게 주님이 오셔서 죄와 허물을 책임져 주신다. 우리가 죄를 짓고 허물 많은 인생들의 죄와 허물을 친히 책임져 주신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올 때 자기들이 무화과 잎사귀로써 앞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되니 서로 부끄러우니까 앞치마를 해 입었는데 사람이 무화과나무잎으로 앞치마를 만들어 입으니까 햇빛이 나면 그만 쪼글쪼글해져요. 햇빛이 나면 쪼글쪼글 해져서 영원한 옷이 될 수가 없어요. 그와 같이 오늘날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쪼글쪼글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이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앞치마 해서 입고 나가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가죽을 벗겨서 가죽옷을 만들어서 입혔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고 나가는 사람에게도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가죽으로써 옷을 만들어 입혀서 반영구적인 옷을 입혀서 내보낸 것입니다. 상징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히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이번에는 짐승을 잡은 것이 아니라 아들을 잡았습니다. 그 아들을 잡아서 그 의로운 옷을 벗겨서 여러분과 나에게 입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의로운 옷을 받아 입고 보혈로써 씻고 의롭게 되어서 나갈 수 있으니 주님께서 죄와 허물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로 3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하나님이 오셔서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마귀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졌다는 것입니다. 공중에 마귀가 권세를 쥐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권세를 쥐고 있으면서 이 세상에 그 영향력을 미쳐서 모든 세상 사람들이 세속을 따라 살고 하나님을 따라 살지 않도록 악을 퍼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따라서 사는데 예수를 믿으면 보혈로 씻어버리고 주님의 의로운 옷을 입혀 주시고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망의 권세에서 건저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겼습니다. 여러분과 나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말하는 것이 다르고 행하는 것이 달라져서 두 종류의 사람이 세상에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만 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질병과 저주의 삶도 예수님은 철저히 제하여 주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저주를 받아서 쫓겨났기 때문에 저주란 무섭습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살게 되지 않습니다. 늘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실패하고 낭패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이 저주의 삶을 축복의 삶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무에 매달렸습니다. 저주받은 자는 나무에 매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하여 나무에 못박혀서 매달려서 저주를 청산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11절에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질병과 저주의 삶을 주님께서 대신 살아주었기 때문에 병들어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고침을 받아 건강해질 수 있고 저주도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것은 저주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주 트레이드마크가 붙었습니다. 너는 나 때문에 영혼이 잘된다. 범사가 저주에서 해방되어서 잘된다. 강건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흑암 가운데 살고 고난 중에 허덕이고 저주의 병이 날뛰어도 이 말씀 속에 서서 기록되었으되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내 영혼이 잘된다고 하기 때문에 나는 영혼이 잘된다. 범사에 잘된다고 하므로 나는 범사에 잘된다. 강건하다니까 나는 강건하다. 그 외에 다른 것하고 나는 타협하지 않는다. 나는 절대로 너를 따라가지 않는다. 여러분이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영혼이 잘되는 것으로 생각이 점령당하게 하십시오. 범사가 형통하고 잘된다고 늘 생각하고 그것이 마음을 점령하게 하십시오. 언제나 나는 강건하고 건강하다는 것을 시인하십시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 문화가 마음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령이 와 계시므로 하늘나라 문화가 여러분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하고 틀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혼이 잘 안됩니다. 범사가 고통스럽습니다.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려서 허덕이는 것입니다. 우리하고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가 다가와서 고통이 다가와도 언제나 여러분은 밝고 맑고 환하고 소망찬 인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세상 사람들은 탄식합니다만은 우리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광풍을 피하는 것 같이 될 것이요 폭우를 가리우는 분같이 될 것이요 마른 땅에 냇물같이 될 것이요.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과 같다. 야~ 광풍이 불어 닥칩니다. 경제적인 광풍, 가정에 문제가 광풍처럼 생활의 문제가 광풍처럼 불어올 때 광풍을 피하는 곳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께 부르짖으면 예수님이 여러분을 피하게 해주셔서 광풍을 피하는 것, 폭우를 가리우는 것, 폭우가 쏟아지면 도시가 물에 다 떠내려가고 물에 잠기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그러한 세상환난이 다가와도 우리에게는 폭우를 가리우리는 것이 될 것이요. 마른 땅에 모든 것이 말라 비틀어지고 죽는데 마른 땅에 시냇물 같은 분이 있다.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아주 초목, 곤충이 다 못사는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이 되어서 우리를 피하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여러분 플러스 알파 되어 가면 이러한 예수님이 곁에 따라 다니신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광풍이 불어와도 겁나지 않고 폭우가 내려도 떠내려가지 않고 마른 시냇물이 없는 곳에도 시냇물이 흐르게 해주시고 곤비한 삶속에 쉴 수 있는 바위가 되어 주신다. 공짜다. 값없이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것입니다. 좋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알파로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죄와 허물도 겁나지 아니하고 질병과 저주도 겁나지 아니하고 사망과 음부의 삶도 겁나지 않습니다. 주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갈보리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주님은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해 주시고 바라봄의 법칙이 승리하는 것같이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광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불뱀을 보내어서 불뱀이 사람들을 물매 여기저기에서 수없이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그때 잘못했다고 모세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불뱀이 떠나게 해달라고 하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불뱀을 만들어가지고서 장대에 매달아라. 쳐다보는 사람마다 생명을 얻는다. 빨리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머리에 못으로 박아서 머리를 저기 쳐다보라. 저기를 쳐다보면 죽지 않는다. 뱀에 물려서 독이 올라 얼굴이 시뻘개진 사람도 얼굴을 들어서 그 뱀을 쳐다보면 다 살아났었습니다. 끝까지 뱀을 안 쳐다본 사람은 죽었습니다. 니고데모 보고 주님 하신 말씀이 그것인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만든 뱀을 쳐다본 사람마다 독이 다 나가고 살아난 것처럼 이 세상에서 나를 쳐다본 사람마다 다 살아난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를 보시고서 나를 보라. 다 이루었다. 내가 너희 죄도 다 값아 버렸다. 불의도 다 씻어버렸다. 너희 병도 내가 책임졌다. 너희 저주도 내가 갚았다. 너 죽음도 내가 짊어졌다. 다 이루었다. 사는 것만 남았다. 안 믿고 죽지 말고 믿고 살아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주여, 믿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바라볼 수 있으니까 어려울 때도 바라보고 슬플 때도 바라보고 외로울 때도 바라보고 고통스러울 때도 바라보고 좋을 때는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슬플 때는 바라보고 위로를 받고 답답할 때는 바라보고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 이런 생활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놀라운 비결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3. 원수의 목전에서 차려 주시는 밥상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살면 원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인생은 생존경쟁으로 네가 사느냐. 내가 사느냐의 투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경쟁자가 생기고 원수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발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꿔라. 인간의 생각으로써는 원수가 오면 저 원수를 그냥 죽여 버릴까. 저 원수 때문에 내가 통곡을 할까. 어떻게 할꼬? 어떻게 할까요? 나를 물고 찢고 손가락질하는 원수를 어떻게 할까요? 나에게 물건 갖다 주고 난 다음에 물건 값을 다 뽑아가 버리고 나에게 안 갚는 것 어떻게 할까요?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쥐어박아버리고 고소하고 강제로라도 보복을 하기를 원치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생각을 달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가 오면 그것을 미끼로 삼아서 진수성찬을 차려주마. 그러므로 원수는 오히려 우리에게 밥상 가져오는 심부름꾼에 불과한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밥상도 차려오거니와 원수가 안 오는데 밥상도 없습니다. 원수가 오면 그 원수가 여러분에게 고통을 갖다준 만큼 하나님은 밥상을 차려다주는 것입니다. 손해 안나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일을 잘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공하게 만들어 주신다. 그러므로 원수의 공격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원수가 공격하면 하나님이 원수 보는 앞에서 우리를 더 성공하게 만들어 주셔서 원수가 기절초풍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5절에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환난이 오면 환난 때 주님께서 그것을 미끼로 삼아서 건져내고 오히려 여러분 영화롭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번 과거를 돌이켜 보십시오. 고통당할 때 좋은 일도 많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고난은 좋은 일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좋은 일이 있기 전에 반드시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갑자기 좋은 일이 생겨나면 그 대가로 고통을 지불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일만 있으면 좋은 일을 누릴 수가 없어요. 고통을 통해서 좋은 일이 생겨나면 그 좋은 일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고 그 좋은 일을 누릴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날도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 부르시면 아바 아버지라고 불러라. 그렇게 말합니다.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굉장히 친밀하게 하루 종일 그림자가 몸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같이 계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버림 안 받으니까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또 다른 보혜사, 왜 또를 붙였습니까? 예수님이 내가 처음 보혜사고 그 다음에 성령은 또 보내시는 다른 보혜사다. 보혜사는 무엇이냐. 보혜사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보내신 우리의 도우미가 보혜사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성령 도우미가 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첫 도우미로써 우리에게 와서 도와주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부활해서 승천하고 난 다음에는 성령으로 보혜사로 오셔서 여러분과 나에게 예수님과 똑같은 도우심을 베풀어 주시면서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헬라어로 프뉴마라고 합니다. 프뉴마는 바람으로 해석하고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휴~ 제가 숨을 쉬었습니다. 프뉴마를 쉬었습니다. 여러분도 숨을 한번 쉬어 보십시오. 휴~ 그 숨을 쉴 때 여러분 보통 공기를 느낍니까? 안 느끼지요? 자동적으로 숨을 쉬고 있지요? 건강할 때는 자동적으로 숨을 쉬고 숨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성령은 프뉴마이기 때문에 성령이 여러분 속에 계시면서도 여러분이 모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안 보인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성령님께 의지하십시오. 인격자이기 때문에 우리와 대화를 하면 대화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성령님 함께 갑시다. Dear, Holy spirit Let''s go! Let''s go! 함께 가십시다! 그 말 꼭 해요. 오늘도 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단에 나올 때 Dear, Holy spirit Let''s go! 함께 갑시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니까요.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여러분이 도와달라면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구해서 보혜사가 오고 보혜사 뒤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삼위일체로 와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리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세상은 성령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세상에 같이 있느냐. 마귀가 세상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성령을 못 받는 이유는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데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님 나와 함께 계시지요? 우리 형제, 자매하고도 같이 있지 않아요? 아멘! 성령은 고요하고 잠잠하게 그를 바라보면 우리 생각 속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 속에 플러스 알파로 다른 생각이 떠오릅니다. 성령이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거라구요. 제가 설교할 때 더욱 느끼는 것은 한참 설교를 하는데 내가 계획도 아니하고 연구도 아니했는데 생각이 마음속에 숨소리처럼 싹 지나갑니다. 생각이.. 아, 성령이 이 말씀을 하라고 하시는구나. 그럼 내가 그 말을 해요. 하고나면 다시는 그런 생각이 안나요. 다른 생각이 떠올라와요. 그리고 중요한 논쟁을 할 때 성령님 나 논쟁을 하는데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논쟁을 하는데 내가 생각지 않은 말도 생각도 자꾸 떠올라와요. 그럼 그 생각을 붙잡아 내 논쟁하는데 사용을 하면 나중에 보면 기가 막힌 대답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들리는 목소리로 말하지만 성령은 우리 생각을 통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해놓으면 생각이 안정되고 잠잠하고 조용한 가운데 성령이 생각을 집어넣어 주면 우리가 잘 알아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해주세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로다.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이 버림받는 것입니다.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 생활하는 사람 중에 60이 넘은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40대, 50대에는 한참 사회생활을 하다가 60대가 되면 은퇴하고 나오면 이제는 지위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지위를 따라서 찾아오던 사람들, 돈 보고 따라오던 사람들 다 떠나갑니다.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외로워짐이 제일 무섭습니다. 고독이 제일 무서운 거에요. 그런데 성령은 고독한 사람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예수님께 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여러분 외로울 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버리지 않고 천당 갈 때까지 손잡고서 가주시는 것입니다. 외롭지 않고 마지막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4.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
마지막에는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인데 그것은 내가 짧게 하겠습니다. 성찬 떼야 되니까.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내가 죽어도 천당에 가서 영원히 살 것이니까 마지막 인생을 절대 긍정적인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슬프다. 고통스럽다. 외롭다. 죽으면 절망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기쁘다. 좋다. 행복하다. 나는 천국집이 만들어져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28,32)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해 주실 것이다.

<결론>
그러므로 오늘 예수를 믿는 사람들, 인본주의자는 패망하고 말 것이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에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 것을 늘 마음에 기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버리지 않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