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8. 주일설교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0)

<서론>
오늘 저는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통상 알고 있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것은 로마정부와 유대인들의 참소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또 사실 그 말이 맞구요. 로마총독의 사형선고를 받고 유대인들의 참소를 통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성령님의 인도를 통해서 들어가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로마정부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도 안되고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감히 어떻게 손을 대나요?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자원해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생명을 십자가에 내놓은 것입니다. 왜요,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내놓지 아니하면 여러분과 나는 버림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 허물, 병, 저주, 절망, 죽음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고 청산하기 위해서 자원해서 자기 생명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정확한 지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 질병과 허약함, 저주와 가난, 죽음과 음부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 대신 죽으신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짊어짐은 예수의 부활의 생명을 우리 몸에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십자가에 예수님이 못박혀서 몸부림 친 것은 여러분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예수 죽음이 우리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 죽음을 우리가 받아들여서 내 죽음으로 걸머지는 것입니다. 내 책임입니다. 내가 걸머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왜 죽었느냐. 너희들 건지기 위해서 죽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나누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으니까 용서와 의로움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 허물 때문에 죽으셨으니까 거룩함과 성령충만을 주시고 우리 병 때문에 채찍에 맞으셨으니까 치료의 은혜를 주시고 우리 저주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서 나무에 매달렸기 때문에 주님은 나무에 매달린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의 저주를 청산하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허락해 주신 것이고 예수님은 죽을 수 없는 분이신데 죽으신 것은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음부를 멸하고 천국의 문을 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은 여러분, 우리의 의가 되시고 거룩함이 되시고 건강이 되시고 축복이 되시고 천국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은 내 죽음이요, 예수 부활은 내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 생애 받아야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일생의 죄를 청산해 주셨다. 허물을 다 갚으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우리 평생의 질병을 대신 짊어지셨으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어 맡기고 나가면 질병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저주도 사라지고 하는 일마다 안되는 고통과 저주가 사라져서 아브라함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는 일마다 잘되거든요. 하는 일마나 복이 임하는 축복을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린 것이요 죽고 난 다음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국 가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살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깊이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음
오늘 이 성경을 보면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성경에 질그릇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질그릇입니다. 흙에서 빚어진 질그릇입니다. 그런데 이 질그릇이 보통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를 담아 놓은 질그릇입니다. 예수님은 보배 중의 보배지요. 그 예수님을 이 질그릇에 담아 놓으니까 얼마나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질그릇이 귀중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놓은 예수님이 보배이기 때문에 질그릇을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면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지 않습니까? 죄, 허물에 마귀에 질병에 가난에 실패에 고통에 둘러 쌓여서 고민을 하고 괴로워하지만 절대로 우리를 파멸시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속에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친다고 다가와 보니 한 대 치는데 우리가 막을 줄 아는데 예수님의 손이 와서 막아 버려요. 주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한다. (고후 4:7~8)
그러므로 여러분 일생을 살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때문에 여러분을 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험한 일들이 다가와도 종국적으로 여러분 멸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이상 예수님이 여러분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므로 그리스도를 넘어뜨리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조차도 멸하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이기고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있는 우리들을 빼앗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광풍이 아무리 불어와도 예수님 같이 있으면 예수님은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폭우가 내려와서 온 도시가 물에 잠긴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폭우를 가리우는 자가 될 것이고 메마른 땅에 의지할 곳 없는 곳에 간다할지라도 예수님은 메마른 땅에 냇물같이 된다. 메마른 땅에 냇물이 흐르면 만물을 살아나요.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다. 피곤하고 지치고 고달픈 곳에 바위 그늘이 되어서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도단 성에 있을 때 아람 군대가 욱여싸서 엘리사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하고 아람이 전쟁을 하면 백전백패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굉장히 사랑받는 선지자가 있었는데 아람군대가 진을 치기도 전에 미리 다 알아요.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이스라엘 왕에게 가서 요번에 아람군대가 이곳에 진 치니까 여기서 막아라. 저리로 오니까 저기를 막아라. 미리 알고 전쟁을 하므로 아람군대가 백전백패했습니다. 그러니 아람왕이 가슴을 치면서 우리 여기 왕궁에 나를 섬기는 대신들 중에 첩자들이 있다. 그래서 나의 모든 생각과 정보를 이스라엘 왕에게 전달해 주는데 이 첩자를 잡아라. 그러니까 하는 말이 왕이여 그렇게 화내지 마십시오. 왕이 혼자 밤에 침대에 들어가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조차도 다 알아내어서 이스라엘 왕에게 보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냐! 선지자 엘리사입니다. 엘리사가 있는 이상은 싸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엘리사를 잡아라. 엘리사가 어디 있느냐. 도단성이라는 그 성에서 일박을 한답니다. 전군을 동원하라. 전 아람군대가 동원이 되어서 도단성을 첩첩이 둘러쌓습니다. 잘 자고 아침에 엘리사의 종이 와서 기지개를 켜면서 아아아~~ 보니 온 천지에 적군이 둘러쌓습니다. 벌벌벌 떨면서 엘리사 선생님 우리는 죽었습니다. 아람왕이 전군을 동원해서 우리를 첩첩히 둘러쌓습니다. 엘리사가 그렇게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우리와 같이 있는 자가 저들보다 많다. 우리는 둘밖에 없는데요? 그러니까 네가 인간이지 신자가 못되지 않느냐. 하나님 이 젊은이의 눈을 떠서 보게 하옵소서. 눈이 한꺼풀 딱 벗어지는데 보니까 적군과 엘리사 사이에 하늘에서 보내온 천사들이 천군과 천사들이 불말과 불병거로 첩첩히 둘러싸고 있습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나가서 그 적군 앞에 바로 나가서 그냥 말을 해요. 여러분, 누구를 찾습니까? 엘리사를 잡으러 왔다. 잘못 찾아왔습니다. 이 도단성에는 없습니다. 나를 따라오면 엘리사 있는데를 알려줄테니 따라 오시오. 전군이 엘리사를 따라와가지고서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성내까지 왔습니다. 와가지고서 이스라엘 군대가 포위를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 눈을 뜨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이 눈을 띄우니 적군들의 완전히 가운데 와 있어요.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 보고 아버지여, 쳐서 다 죽일까요? 아니 창칼로 잡은 것 아니니까 밥이나 잘 대접해서 보내십시오. 아침 식사 못한 그 군인들에게 밥 잘 대접해서 보내고 난 다음에 다시는 아람군대가 엘리사가 살아있을 동안에 이스라엘을 쳐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일개 선지자도 예수님 전의 선지자도 하나님께서 불말과 불병거를 통해서 둘러 진치는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값이 얼마나 나가느냐.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서 구원받은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의 값이 나가는 것입니다. 쉽게 못 죽여요. 하나님 아들이 함께 있으므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안 쌓이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얼마나 능력으로 여러분을 돌보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 열왕기하 6장 13절로 14절에 보면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야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5~17)
성경에는 365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매일같이 한번씩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일 하나님이 부탁하는 것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고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것입니다. 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러니 우리 속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우리 속에 중심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죄가 와도 두렵지 않고 허물이 와도 두렵지 않고 병이 와도 두렵지 않고 저주가 와도 두렵지 않고 죽음이 와도 두렵지 않은 것은 그를 이기신 대 장군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서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너무나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참으로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여러분과 같이 있는 것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가 죄로써 허물로써 병약으로 저주로 죽음으로 우리를 둘러싸나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을 하신 예수님은 이 원수들을 십자가에서 다 못박아 버리시고 청산해 버리고 영원한 승리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죄의 종, 허물의 종, 질병의 종, 마귀의 종, 가난과 낭패와 실망의 종, 고통의 종, 죽음의 종 끌려다니는 종노릇하지 말라. 마음에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부탁하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자유를 누리고 살기를 주님이 얼마나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음
그 다음에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않는다고 고린도후서 4장 8절에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 답답한 일이 많이 있어요. 우리가 예수님이 또한 우리 속에 계시면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는다.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이니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생겨납니까? 정말 답답한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답답한 일을 다 해결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그리고 세상을 뜨셨습니다. 몇 가지 이루지 못하고 떴으니 그 다음은 네가 책임져라. 그렇게 말씀 안하셨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고 주님이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같이 계시면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시편 23편 4절에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해가 두렵지 않습니다.
시편 23편 5절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도 주께서 같이 하시므로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원수가 오면 원수 앞에 진수성찬 차려주시므로 두려워할 것 없고 우리는 사망의 그림자가 우거진 곳을 지나가거나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가 오거나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셔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46절로 48절에 “야훼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 대신해서 보복도 해주시고 원수들에게서 구조도 해주시고 원수 위에 높여 주시고 엄청난 일을 주님께서 해주시므로 여러분은 외롭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힘이요 담대함이요 용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고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다. 어마어마한 형용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격려를 해주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1절로 2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전부 나에게 친밀하게 나의 방패시요 나의 요새시오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시오. 전부 나의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 성경구절만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고 내가 예수님께 이같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담대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담대하라고 말씀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겁을 내서 스스로 자꾸 물러가니 그러는데 스스로 겁을 내서 물러가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다 하고 그리스도 이름을 의지하고 적을 대적하면 적이 한길로 왔다가 입곱 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3편 6절에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이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진리를 알았으니 두려워하지 말아야 돼요. 우리가 스스로 두려워하기 때문에 마귀 앞에서 도망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27편 1절에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내 빛이요 나의 구원이라.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 어두운데 빛이 비춰서 흑암 가운데 떨어지지 않고 구원이 되어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생명의 능력이 되시니 살아있는 힘이 되시니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주님이 우리에 대해서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알아보면 마음에 굉장히 용기와 힘이 생깁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성경구절을 읽다가 여러분에게 설교하기 전에 내가 은혜를 흡족히 받았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주님이 계신데 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놀라느냐. 두려워하고 놀라지 말고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다고 느낀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이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마십시다. 답답한 일을 당하면 주님께 나와서 기도하고 주님께 맡기고 기다리면 주님께서 답답한 것을 다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3.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음
그 다음에 성경은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우리를 박해를 하고 돌보지 않고 우리 쫓아내버리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50세 이상 되는 사람들은 마음에 두려워하는 것은 소외당할까 싶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은퇴를 하고 나오면 사회에서 할 일이 없어요. 아침에 밥 먹으면 하루 종일 동안 갈데 올데도 없이 왔다갔다 하고 저녁때 어슬렁어슬렁 빈 손 들고 오면 식구들이 왔느냐하고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왜나하면 소모성 인생을 사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 남자들 가운데 우리끼리 모여서 이야기 하면 너 이사갈 때 참 조심해야 된다. 아예 이삿짐 트럭에 올라가 앉아있어야지 안 그러면 너 버리고 간다. 그렇게 농담 삼아 말하지만 농담이 진담된다고 소외되고 식구들에게도 소외되고 친구들에게도 소외되고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 없어요. 사람이 소외된다는 것은 굉장히 두려운 것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두번째 아들인 요셉은 형제들에게 핍박을 받고 소외되어서 애굽에 종으로 팔렸습니다. 그런데 하나 알아야 될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소외를 당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소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계셔서 온 세상이 다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리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때문에 소외를 당했었으니까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주님께서 요셉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는 것마다 일이 잘돼요. 요셉이 시위대 뜰 장군인 보디발의 집에 있을 동안에 하는 일들이 잘돼요. 그러나 그 아내의 참소를 들어가서 감옥에 들어가는데 감옥에 들어가서도 죄수들을 돌보아 주는데 간수장을 도와주는데 너무나 일이 잘되니까 간수장이 모든 죄수를 요셉에게 맡겼어요. 나중에는 요셉을 임금이 불러다가 국무총리를 시켰는데 요셉이 국무총리로 앉자 일이 다 형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예수를 믿은 나라는 경제적으로 하는 일마다 다 잘된다고.. 중국에 북경대학교 교수가 그 말을 했습니다. 희한하게 주를 믿는 사람은 하는 일에 형통해서 잘됩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하는 일마다 잘된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필경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잘되는 사람은 일을 시작해 놓으면 도우는 사람이 생겨나고 또 그 일이 잘 풀려 나가고 흥하게 되고 좌우간 멋있게 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돌이켜 보십시오. 여러분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주님을 잘 섬기고 난 다음에 여러분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일이 잘되는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수 믿는 성도들의 수가 많아지자 하는 일마다 다 잘되어서 오늘날 이 정도의 국가가 되었는데 앞으로 더 예수를 잘 믿으면 더 잘 될 것입니다. 잘 되어야 돼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말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주를 믿으면 무엇이든지 잘될 것을 기대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50년의 목회생활 동안에 어려움도 많이 당했지만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고 잘되었어요. 하나님 제가 불광동에 빈 손 들고 와서 가마니를 깔고 천막을 치고 개척을 한 이후로 못된 것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고생은 했었어도 다 보람이 있고 잘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은퇴했어도 지금도 잘 되게 해주시옵소서. 여러분, 다 잘됩니다. 그것은 박해를 받아도 버림바 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5절로 이하에 보면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야훼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야훼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그러니까 보디발은 총무로 삼았지요. 감옥에 들어가서는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야훼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23절)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창 41:41)
형통한다는 것 한번 따라 말씀해 보세요. 내가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만사에 형통한다.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여러분, 세상이 핍박하면 하나님이 더 사랑해 주시고 세상의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은 그 기회를 통해서 형통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로 12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박해를 하면 하나님이 보응을 해주시기 때문에 더 잘되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깨달아 알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7절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예수 믿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버리지 않는데 버림받은 소외된 사람들로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누가 끊겠느냐. 환난이 다가와도 곤고가 다가와도 박해가 와도 기근이 와도 적신이 와도 위험이 와도 죽음이 와도 예수 믿는 사람은 버림받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같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음
그 다음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죽인다는 것입니다. 죽여도 안 망한다.
고린도후서 4장 9절로 10절에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것은 날 위해서 죽은 것이기 때문에 예수 죽음 내 죽음이라고 우리가 받아 몸에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이 아니야. 나와 상관없어. 자기 죽음이지.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죽음은 날 위하여 죽었기 때문에 예수 죽음 내 죽음, 십자가에 여섯시간 동안 매달려 몸찢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온갖 고통을 다 당하고 죽은 것은 여러분과 나 때문에 죽었기 때문에 예수 죽음 내 죽음, 그러므로 예수님이 왜 죽었느냐. 예수님은 날 위해서 죽었다. 여러분 위해서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부활은 누구를 위해서 부활하셨죠? 여러분 위해서 부활하셨죠. 그러면 예수님은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여러분의 죄를 담당하고 허물을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졌기 때문에 여러분 허물을 담당하시고 예수님이 여러분 때문에 채찍에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었으므로 여러분의 병 짊어지셨고 여러분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매달렸기 때문에 저주에서 해방되었고 여러분 때문에 죽었다가 부활했기 때문에 여러분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생명을 바꾸어치기 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예수님이 가져가고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가 예수의 생명을 우리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의지해서 그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용서를 우리가 의지하고 용서받고 살고 허물을 의지하고 거룩함을 받고 살고 예수님의 질병을 의지하고 건강을 받아서 살고 예수님이 저주받은 것을 우리가 다 예수님이 저주를 청산하고 축복을 받아서 살고 부활도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서 살고 좌우간 우리는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가져온 모든 축복을 대신으로 우리가 누리고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나서 그랬다. 못나서 그랬다. 그것은 말이 아니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항상 바라보고 예수 죽음은 내 죽음, 예수 부활은 내 부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국 내 천국. 그러니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죽으셨으므로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리고 여러분은 이제 예수 생명을 가지고 살아야 돼요. 여러분의 생명으로 살 것이 아니라 예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죄를 이기고 불의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살아났으니 여러분도 이겨야 돼요. 질병도 이기고 저주도 이기고 죽음조차 이기고 살아났으니 여러분 위해서 이겼으므로 여러분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살아나셨으므로 우리도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여도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때문에 거꾸러뜨림을 당하면 하나님은 오히려 넉넉히 영광스러운 부활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롬 8:18)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무슨 의식을 지키는 것이나 도덕을 지키는 것이나 사람들에게 행위를 칭찬 받으려고 하는 이런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 아무 가치 없는 우리들이 예수님이 인수인계 받아서 주님이 다 청산해 버리고 주님이 주는 생명을 안아 받아라. 내 생명 네 것이니 받아라.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속으로 매일같이 예수 죽음을 받아서 걸머지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것은 날 위하여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부활한 것은 더 말할 필요 없이 날 위하여 부활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은 내 죽음이므로 내가 죽음의 고통이 있으면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 부활을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로움은 내 것이고 예수님의 거룩한 것도 내 것입니다. 난 믿습니다. 예수님의 건강은 내 건강이고 예수님의 축복은 내 축복이고 예수님의 부활은 내 부활이고 이론이 아니고 학문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여러분의 것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는 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 기도를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우리 주위에 늘 같이 계시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뜨거운 마음으로 구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은 바람처럼 우리 곁에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 기도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면 성령이 그 기도를 받아서 가족 가운데 역사하시고 사업을 위해서 기도하면 성령은 그 사업의 기도를 받아서 사업장에 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4차원으로 눈에 안보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성령은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헬라 원어로써는 프뉴마를 바람이라고 말하는데 성령도 프뉴마라고 바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부는지 모르지만 기도하면 기도가 바람방향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하면 여러분과 같이 있는 4차원의 능력인 성령께서 그 기도를 따라서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병 낫기 위해서 기도하면 성령이 병 고치는 능력을 가지고서 나타나고 여러분이 사업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 사업장의 기도를 따라서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똑똑히 성령 앞에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기도를 똑똑히 열심히 하면 성령께서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역사하셔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 기도를 통해서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성령이 역사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지요. 여러분이 오늘 무슨 기도를 할지 모르겠지만 기도하면 그 방향으로 성령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의 기도가 방향을 제시해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방향을 똑똑히 제시해 드리고 끈질기게 그 기도를 하고 있으면 태산이 변하여 바다로 날라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무엇이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경제적 부흥을 가져온 나라마다 먼저 주님을 믿는 영적 부흥이 오고 그 다음 경제적 부흥이 옴을 학자들이 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에게 복을 내리고 그 백성이 있는 집이 복을 받고 그 백성이 사는 나라가 복을 받고 우리 대한민국이 정부가 여러분 위해서 고맙다고 해야 될 것은 여러분에게 복을 주니까 여러분이 어느 나라 백성입니까? 대한민국이지요. 여러분에게 복을 주자니까 대한민국에게 복을 준다.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2절로 14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의미를 생각하면서 읽어 보십시다.
“야훼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야훼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할렐루야~ 하나님 말씀을 받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그 방향으로 나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하고 의지하면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까?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이 임하고 어느 민족에게도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다. 우리는 옛날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거지 국가로써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았는데 지금은 우리가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결론>
예수님이란 보배를 우리 삶이란 질그릇에 모시고 있으면 예수 때문에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보배가 보배 지킨다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여러분 주위에 떠나지 않고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귀한 것보다도 보배를 담아놓은 여러분이 귀하다 그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버리지 말고 모시고 있으면 여러분을 둘러 진치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0)
예수 생명 내 생명, 예수 생명이 얼마나 위대한 생명인 것입니까? 누가 예수의 생명을 짓밟을 수 있습니까? 마귀가 아무리해도 예수의 생명 못 짓밟지요? 그 예수의 생명이 내 생명이 되어 있으니까 여러분은 그만 왔따입니다. 두려워할 것이 없어요. 예수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말로써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장차 천당 갈 것 때문에 믿는 줄로만 알고 있는데 물론 장차 천당 가지요. 그러나 이 땅에 살고 있을 동안에 여러분이 예수 생명으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으로 살지 않고 예수 생명으로 살게 되므로 끊임없이 예수 생명이 성령으로 여러분 통해서 나타나서 기적과 이사를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