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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9. 주일설교 나나 너가 아닌 우리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 6:5~13) <서론> 오늘 “나나 너가 아닌 우리”라는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나 혼자 사는 것 같은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항상 너와 같이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성신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혼자 인생을 살려고 해도 혼자가 아닌 우리입니다. 주님과 나, 우리, 하나님과 나, 우리. 여러분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여러분 혼자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와서 같이 앉아 계시므로 우리가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에 와서 앉아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문제가 있으면 여러분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문제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므로 나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 성경에는 주님이 너희가 물을 통할 때 내가 같이 하고 불을 지날 때 내가 같이 하여 물에 침몰되지도 아니하고 불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우리와 함께 있는 해가 어디에 있으며 덕이 어디에 있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로 3절에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러분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남편이 아내를 보고 당신은 오늘부터 내 것이다. 듣기 나쁘지 않습니다. 또 아내가 남편보고 오늘부터 당신은 내 사람이다. 그러면 좋다고 하지 싫다고 할 사람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다. 야~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요.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했었으니 여러분이 오늘 교회 와서 계신 것이 하나님이 지명하여 불러서 교회에 데리고 나오셨으니 얼마나 특권입니까?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야훼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와 대화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에 말씀을 떠난 하나님은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말씀 가운데 여러분께 말씀하기를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하며 불이 너희를 태우지 못할 것이요. 불꽃이 너희를 사르지 못하리라.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물이 우리 머리까지 채워올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물에 침몰할 것 같은 시험의 환난을 당할 때가 있고 불꽃 같은 시험을 당하여 불에 탈 것 같은 위기를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항상 우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 혼자 불 속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나간다. 너 혼자 불꽃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불꽃을 지나간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해도 주님은 물을 내게서 떠나가게 하고 불이 나의 몸에서 타지 못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셨기 때문에 능력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서 일하시고 여러분의 꿈을 통해서 일하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서 일하시고, 여러분의 말씀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나이가 이렇게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환경에 어려움을 당하면 겁이 나요. 겁이 날 때 그 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말씀을 외웁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이 와 계시는데 보라,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라. 그 말 한 마디라도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몰라요. 보통 때는 마음에 겁이 없는데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바람을 만나가지고서 비행기가 곤두박칠 칠 때 야~ 이러다가 가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 때마다 제가 말한 것은 바람아, 고요하라. 잠잠하라. 나는 혼자 있지 않다. 나와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 장난같이 들리지만 그때는 장난이 아닙니다. 아주 신중하게 몇 번 그러고 나면 바람이 잔잔해진다구요. 아~ 효과가 발생하는구나. 여러분들도 어려움을 당할 때 아무 말도 안하고 당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으로 대항을 해주십시오. 볼찌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같이 하리라.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와 함께 있느니라.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혼자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그것을 입술로써 인정을 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계십니다. 물론이지요. 혼자 있지 않고 하나님은 함께 계시므로 우리가 함께 있다고 인정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굉장히 좋아하시는 바인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에 보면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와~ 어디로 가든지... 시장터에 갈 때도 하나님 따라가시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러 갈 때도 같이 계시고 함께 계시는 것을 알면 그 하나님을 의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365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우리에게 늘 부탁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말라. 마귀가 제일 먼저 우리를 공격할 때 쓰는 무기가 두려움인 것입니다. 욥이 내 무서워하던 그것이 내게 임하였고 두려워하던 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마귀는 두려움을 마음속에 심어주고 난 다음에 파괴공작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주셔서 믿음이 마음에 꽉 들어차면 믿음을 통하여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도 되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365일에 365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평안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형편에 있던지 여러분이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되겠는데 내가 마음을 강하게 해야지, 내가 마음을 담대히 해야지. 그런다고 담대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대적을 해야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두려워지고 불안해지면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느니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러면 두려움이 하나님 말씀에 부딪히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빌립을 시험해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도 시험해 보신 것처럼 빌립을 시험해 보셨는데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 디베랴 지역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이 병 고치시는 현상을 보고 놀래서 그리스도에게 병 고침 받기 위해서 또한 구경하기 위해서 수천 명이 모였습니다. 사람이 자꾸 꾸역꾸역 모여오는데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합치면 한 2만 명 가까이 모였을 것입니다. 들판에 2만 명이 모이면 상당히 많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놓으시고 그 가운데 빌립을 지적하면서 빌립아, 어디에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 먹이겠느냐? 주님께서 어떻게 할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빌립을 시험한 것은 나 혼자 살고 있느냐, 우리가 함께 사느냐를 빌립에게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과 자기가 같이 우리가 같이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주님 다 알면서 왜 그러십니까? 주님이 하시지요. 그렇게 대답만 해도 합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이 자기 혼자만 생각하고 내가 사는데 나에게 주님이 질문하셨으니까 내가 문제를 대답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빌립의 생각을 시험해 볼 때 부정적이었습니다. 주님이 어떻게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느냐. 여기는 광야고 사람이 수만 명이 되고 떡도 없거니와 떡 살 곳도 없는데 먹이려고 하니 이런 일이 어디 있느냐. 나는 도저히 안된다. 할 수 없다. 빌립은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자기는 못하더라도 예수님은 할 수 있으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도 어려움을 당할 때 여러분 혼자 생각하지 말고 아,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주님,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주님께 묻고 주님과 함께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일은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일의 주인은 누구시지요? 하나님이십니다. 목소리가 굉장히 작네. 자신이 없는가 봐요. 일의 주인은?(하나님) 아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일은 주님께 맡기고 여러분이 걱정할 것 아닙니다. 항상 주님과 같이 계시면 계산을 여러분이 먼저 할 필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얼 해야 하느냐. 기도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계산과 일은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너희에게 보여 주리라. 기도가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 제가 함께 계시는데 주님이 일한 것은 우리 기도를 듣고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안 구하면 주님이 역사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라고 했는데 빌립은 우리라고 말 안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5~7) 계산하지 말아야 되는데 빌립이 계산을 했기 때문에 못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없는 것을 바라보고 그는 부정적인 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 생각을 부정적으로 하면 그것이 우리를 죽입니다. 나는 50여년을 목회해오면서 절망 중에 빠진 사람이 마음에 생각을 바꾸므로 살아난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약속 아닙니까?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고 했는데 나 혼자 같으면 모르겠는데 항상 함께 계신 주님이 등을 두드리면서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는 나음을 입었다. 천만에 안 나았어요. 야! 이 사람아! 내가 직접 네 병을 짊어졌는데 왜 잔소리 하느냐. 아이 주님 그렇습니까? 천지를 지으신 주님 말씀이시니 참말이겠지요. 내가 언제 거짓말 하더냐. 그러면 주님 말씀대로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고 항상 말씀 드리면 그 말씀이 여러분을 고쳐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에 기쁨과 소망은 여러분에게 좋은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과 환경에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의심과 공포는 파멸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은 생각이 못한다고 이미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을 통해서는 좋은 일이 생길 수가 없어요. 못 먹인다고 이미 생각을 굳혔습니다. 먹일 방도를 연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못 먹인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빌립은 마음에 꿈이 없었어요. 먹이는 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한 것입니다. 같이 계신 하나님은 여러분 꿈을 가져야 그 꿈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슨 꿈을 가지고 계십니까? 적은 꿈도 좋고 큰 꿈도 좋고 많고 적은 꿈을 여러분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는데 그 꿈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면 시험에 합격을 하는데 꿈이 없으면 시험에 합격을 못합니다. 저는 50년의 목회생활 동안에 항상 마음속에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당을 짓고 제일 많은 교인을 모시고 목회를 하겠다는 것이 꿈에도 사라지지 않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번에 퍼스에 가서 제가 꿈의 중요함을 느낀 것은 퍼스에 있는 교회 담임목사님이 할머니예요. 젊은 시절에 이 테니스를 잘 쳐서 연신 2번 승리를 했습니다. 한번 이기더라도 광고비로 돈더미에 올라앉는데 연신 두 번 이겼으니까 돈 산 위에 올라앉은 것입니다. 그 돈을 다른데 쓰지 않고 그는 교회를 세우는데 쓴 것은 너무 정구를 잘치고 매스컴에 동원이 되고 호주 정부에서 기념관까지 짓고 호주에 가서 이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신경적인 긴장과 테니스를 이길 수가 없어서 술을 독하게 먹다가 나중에는 아편까지 먹게 되고 폐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인생의 폐인이 되어서 또 손이 떨려서 라켓 조차 잘 들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난 것은 4차원의 영성이라는 내 책을 읽고 주님이 같이 계시구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내가 기도하고 믿고 말하겠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건강하게 나아진 모습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기적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그 병이 깨끗이 나았어요.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지은 자서전에 보면 완전히 우리 교회 성도가 그곳에 와서 교회를 세운 것과 같은 그러한 자서전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아주 놀랬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를 불러다가 집회를 한번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오라고 하니까 좋다고 갔습니다. 71살 잡수신 할머니에요. 그런데 패기가 충만하고 아주 뜨거운 마음을 가졌어요. 그래서 내가 여기에 와서 예배를 인도했으니 품앗이를 해줘야 된다고. 우리 교회 와서 한번 간증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목사님도 자기 책에 기록하기를 자기는 항상 테니스장에 가서 1등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러면 그 꿈이 나를 1등하게 만들어 준다. 꿈이 나를 이끌어가지 내가 꿈을 이끌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테니스 시합이 있기 전에 꼭 그 시합에서 이긴다는 꿈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기도하고 나간다. 꿈을 여러분 품고 있으면 꿈이 여러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나 성공한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먼저 성공의 꿈을 꾼 사람들입니다. 꿈을 버리지 마십시오. 꿈을 마음속에 품고 그를 보고 있으면 꿈이 여러분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꿈에 이끌려가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빌립이 먹이는 꿈만 있었더라면 예수님께 부탁이라도 했으면 주님이 합격을 시켜줬을 것인데 그는 무조건하고 꿈이 었었습니다. 먹일 생각도 아니하고 먹일 꿈도 없고 믿음도 없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인데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믿음도 없었습니다. 믿음이란 것을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비합리적이거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저는 항상 믿음에 대한 설명을 여러분께 여러 번 했지만 이것으로 하면 간단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이냐. 계란을 들고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어진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러니까 믿음이다. 내가 이번에 퍼스에 가서도 내가 그랬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아무 대답을 안 해요? 내가 대답을 할까요? 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 손에 제가 계란 하나 줄테니까 계란 가지고서 바위를 쳐서 어느 것이 깨어지는 것 보세요. 와~ 웃으세요. 왜 웃느냐. 바위를 쳐서 계란이 안 깨어질 사람 누가 있습니까? 뻔히 아는 말을 물으니까 우리가 웃지요. 틀렸어요. 잘못 웃었습니다. 계란을 들고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어집니다. 어떻게요? 어떻게 그렇게 돼요? 그게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여러분 터무니없는 것 아닙니까? 계란을 들고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어진다는 것 터무니없지요. 믿음이란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 기적을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기적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기적이 일어나야 믿음이지요. 적은 믿음은 적은 기적을 큰 믿음은 큰 기적을...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믿습니다 하면 기적을 기대합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기적은 있어요. 모세가 믿고 기도하니까 하늘에서 만나가 임하는 것 보십시오. 3백만이 삼시 세때 먹고도 남는 밥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온 것입니다. 믿음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고기 먹고 싶다고 기도하니까 하늘에서 메추라기가 새까맣게 덮어 와서 집 앞에 와서 날 잡아 주소. 날 잡아 주소 하고 펄럭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전부 잡아서 요리를 해서 먹었어요.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믿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을 목적으로 삼고 믿을 수 있고 꿈을 가지고 있으면 꿈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질 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특별히 다른 것은 믿음을 사용할 수 있고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빌립처럼 낙제생이 되지 말아야 돼요. 생각을 긍정적으로 해야 되고 꿈을 꿔야 되고 자기 못할 것을 꿈은 꿀 수 있으니까. 그리고 믿어야 되고 그 다음 더구나 말을 긍정적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먹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없는 것을 말했습니다. 음식이 없고 음식 살 곳도 없고 돈도 없고 없고 없다 없다 없다.... 부정적인 말을 해서 낙제한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는 것이 믿음인 것인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해야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그러므로 못한다고 하니까 혀의 열매를 먹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보지 말고 있는 것을 보아야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할 때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무능합니다. 그렇게 하면 못하는 것입니다. 못해도 어디 해볼까요? 주님을 의지하고 할 수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2. 없는 것을 보지 말고 있는 것을 보라 다 같은 제자 중에도 안드레는 그 많은 군중들을 보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먹이라고 할 때 그 마음속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안드레는 나 혼자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로 생각했습니다. 주님하고 나하고 우리가 같이 있으니까 먹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빌립이 못한다고 설명할 동안 안드레는 다니면서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없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있는 것을 가지고 나가기 위해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어린아이의 점심 도시락을 발견해서 잘 설득을 시켜서 그 도시락을 들고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빌립을 제켜 놓고 주님, 여기 어린아이 도시락이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이 많은 군중에게 이 도시락 가지고는 안 되는 줄 제가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하고 나하고 우리가 여기 있으니까 나는 도시락을 구해왔고 주님은 먹일 수 있지 않습니까? 주님이 기쁘게 여기고 빌립 옆으로 세워놓고 그 도시락을 받아 놓고 주님께서 도시락을 가지고 축사를 했습니다. 주님이 축복을 해주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8~9) 그러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기쁘게 이 도시락을 받아서 축복해주니까 떡을 나눠주니까 또 생기고 떼 주니까 생기고 생선을 잘라서 주니까 생겨서 있고 잘라주니까 생겨있고 밥과 생선을 원대로 먹었습니다. 달라는 대로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까 열두 바구니가 찼습니다. 주님께서는 기적을 응답하시되 풍성하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있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삶속에 없는 것도 많지만 없는 것 가운데 있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있는 것을 가지고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조차 빼앗으리라. 그 내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나갈 때는 없다고 나가면 있는 것도 내놓으라고 합니다. 있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 더 주마. 더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9절로 10절에 “너희 성도들아 야훼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겠다니까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같은 말씀 아닙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주님을 경외하면서 늘 부족함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 믿은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바꿔서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시인하고 깨닫고 바라보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모든 일에 온갖 일 다 포함되어 있어요. 항상,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포함되어 있어요.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선교헌금 작정해 놓고 여러분 내고 있습니까? 선교비 작정해놓고 얼마 작정했는지 숫자도 잃어버린 사람 많을 것입니다. 그것 왜냐하면 하나님이 풍성하게 주시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작정을 했으면 그 작정을 기억하고 그것을 내면 주님이 더 잘하기 위해서 더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착한 일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착한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주시고 또 더 주시고 더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주님은 모든 일에 모든 것이 넉넉하게 해주시는 하나님, 영광 가운데 풍성한 대로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여기에 야훼는 나의 목자신데 나는 거지로다. 광야에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죽을 지경이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잘못 믿는 것이죠. 항상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마음을 바꾸십시오. 생각을... 생각이 중대한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족함이 없다고 늘 생각하고 있으면 부족이 없이 되는 것이요 늘 부족하다고 잔소리를 하면 부족함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고 믿음을 바꾸고 말을 바꾸십시오. 거기가 거기입니다. 뱅글뱅글 도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믿고 말하고 이것이 여러분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보고 믿고 말하라. 간단하잖아요. 보고 믿고 말하라. 무엇을 보느냐. 없는 것이 있는 것 같이 아름답게 성취되는 것을 보고 뭘 믿느냐. 돈이 없어도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신다. 기적으로 일이 이루어진다. 그럼 말하라.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라. 힘이 없어도 나는 힘이 있다. 배가 고파도 나는 주님 은혜로 배가 부르다. 불행해도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행복하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면 보고 믿고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지어다. 꼭 이것은 실천하십시오. 쉬운 것인데 여러분 이것을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축사에 축복이 따른다는 것은 성경에 보면 주님이 축사를 해 준 사람은 복을 받고 축사를 해준 일은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일찍이 믿은 나라에서는 언제나 축사를 많이합니다. 서로 만나서도 여러분 God bless you!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제일 많이 하는 것이 우리 크리스챤들이 해외에 가면 God bless you!입니다. Nice to see you. God bless you! 저도 이번에 축사를 얼마나 많이 해주고 왔는지 모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손잡고 God bless you! 여러분 우리도 그렇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만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자꾸 그러는데 그것은 안녕 안하다는 그 말인 것입니다. 하도 전쟁을 많이 겪고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밤새 죽었는가 살았는가 모를 정도니까 만나면 인사가 안녕하십니까? 또 시골에서는 아침 잡수셨습니까? 굶는 사람들이 하도 많기 때문에 점심 잡쉈습니까 습관이 되어 있어요. 영국에 가서 절대 그런 말하지 마십시오. 굉장한 실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뭐로 알고 아침도 못 먹는 거지인줄 아느냐고... 그런데 자꾸 그 습관대로 아침 잡수셨습니까? 점심 잡수셨습니까? 저는 그것 습관이 되어서 그렇게 인사를 많이 했습니다. 저녁 잡수셨습니까 하니까 한 사람이 저에게 질문을 하더라구요. 왜 자꾸 뭘 먹었느냐고 묻느냐고... 우리 한국에서는 인사가 그렇게 되어서 습관이 되어서 미안하다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말을 바꾸었지요. 여러분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를 주시고 십자가를 믿느냐 안 믿느냐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3.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 오늘날 우리들은 꼭 하나님이 시험해 보시는 것은 갈보리 십자가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큰 구속의 은총을 완성하고 이루어 놓고 그 다음 하나님 무엇을 하셨나 하면 히브리서 12장 2절 한번 따라 읽어 주십시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아브라함 보고 별들을 바라보고 아들을 생각하라. 그 다음은 땅을 상속으로 받을지라도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으로 보는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하리라. 우리에게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여러분 다 속죄하시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셨는데 이 예수를 바라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항상 바라보라. 바라보면서 무엇을 생각합니까? 첫째로, 십자가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고 의로움을 선물로 받은 것을 생각하라. 둘째는 거룩함과 성결함을 생각하고 성령충만을 생각하라. 십자가를 바라보고 보혈로 허물이 씻기고 성령을 충만히 받은 것을 생각하라. 세 번째는 치료와 건강을 주신다는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라. 넷째는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이 주어진다는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라. 다섯째는 부활과 영생천국이 그를 통해서 주어졌다는 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항상 생각하되 십자가를 통해서 의로움이 오고 거룩함이 오고 건강과 치료가 오고 축복과 형통이 오고 부활과 영생이 온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통해서 이 은혜가 값없이 주어지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은혜가 주님이 오프해 주셔서 여러분이 받았던지 안 그러면 여러분 구좌에 저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도록 하나님이 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 속에 살든지 안 살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구좌에 저금해 놓았던지 그렇게 해 놓은 사람들로서 보통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해 보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런 것을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지 나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예비되어 있으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사람입니다 하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사는지 안 사는지를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항상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꿈을 가지고 입을 넓게 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나님이 채울 것을 알고 입을 넓게 열고 기대를 가지고서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우리가 성령이 같이 계시므로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환상과 꿈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환상이 있고 꿈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항상 품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므로 마음속에 아름다운 꿈을 늘 가지고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면서 이제는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을 실천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생명 내 생명, 언제나 우리 둘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옛사람은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살므로 새사람이 살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 혼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앉아계신 것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앉아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믿음 안에서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 보면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항상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함이라.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이거든요. 언제나 예수와 내가 함께 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한번 따라 해 보세요.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리 내 승리 그러니까 우리가 되지 내가 아니지 않습니까? 나와 예수님 우리.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입술로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 6:2)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할 수 있다는 생각이나 내일에 대한 꿈이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이나 이것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을 하면 그 말이 그것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 주위에 쌓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하면 말이 저주를 끌고 와서 다 빼앗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입술의 말로 여러분의 흥망성쇠를 체험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 테니스 여왕이 그 자서전에 기록한 것이 언제나 테니스는 몸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하는 것이다. 제가 깜짝 놀랐어요. 이것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뱃겨 놓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났어요. 테니스를 하는데 테니스는 뛰어가면서 볼을 이렇게 쳐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는 말하기를 볼을 치기 전에 말로써 먼저 친다. 그것 뭐냐. 공이 날라 오면 내가 받아친다. 받아라! 말로써 공을 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공이 반드시 그 라켓에 맞고 바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합하러 나가기 전에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이기고 남는다. 주님이 같이 계시므로 이번에도 이겼다. 그러면 꼭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으로써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운동을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가 긍정적인 말의 법을 배웠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입술의 말로 우리가 잘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하고 잘 살기도 못 살기도 하고 승리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했으니 그것도 말로써 믿는 것입니다. 말로써 생각하고 말로써 바라보고 말로써 믿고 말로써 창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꼭 닮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에게 주신 굉장한 특권입니다. 아무 다른 짐승도 동물도 말 못합니다. 여러분과 나는 말합니다. 이 말은 그냥 대화를 위한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를 위한 말인 것입니다. 서로 의견을 나누기 위한 말만하지 말고 병든 자는 건강을 얻기 위해서 사업하는 자는 축복받기 위해서 일하는 자는 성공하기 위해서 말로써 먼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로써 먼저 성공을 하면 몸으로써 성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이라는 큰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무기를 통해서 여러분이 축복과 성공을 하든 망하고 패배하든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믿음의 말을 하며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를 믿으면서 얼마나 큰 축복을 누리는지 형언할 수 없습니다. <결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어 장사되었으니 이제 나를 점령하신 분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항상 예수님이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고 함께 일하고 함께 노력하고 모든 것이 다 예수님께서 같이 계셔서 능력을 주시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이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여러분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