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0. 주일설교

행복이 머무는 곳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16~22)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행복이 머무는 곳”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행복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행복하십시오. 행복합니다. 그러면서 행복이 뭐냐고 물으면 멈칫하고 대답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한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기쁨을 느껴 흐뭇한 마음의 상태를 갖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재산이 많고 지위와 명예와 권세가 있어도 행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질적인 환경은 옛날 우리 삶과 비교해 보면 말할 수 없이 향상된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보다 그렇게 우리 국민들이 다 행복해졌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우리나라가 가정 파탄수가 제일 많습니다. 그리고 자살률도 가장 높습니다. 이를 볼 때 환경이 부요하다고 해서 옛날보다 행복해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환경보다도 마음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미운 마음, 불안, 공포를 제거하고 기쁨과 감사가 마음을 채우기 전에는 행복은 안 다가옵니다. 행복이 머무는 터전이 기쁨인 것입니다. 마음에 먼저 기쁨이 있어야 그 다음 행복이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의 전령은 기쁨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한 사람은 물질적인 환경이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서 있습니다.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할 수 있습니까?

<본론>
1. 행복의 근원 되신 예수님
첫째로, 행복의 근원은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만남을 통해 기쁨을 얻게 되고 행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 보면 사마리아의 수가성 우물가에 한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보통 시골에서 우물가에 물을 길어오면 아침에 와서 아침짓기 전에 물을 기르고 저녁에 와서 물을 기르지 한낮에 햇빛이 쨍쨍 비치는 대낮에 물 길으러 안 오는데 이 여인은 아침에도 저녁에도 안 오고 쨍쨍 햇빛이 비취니 대낮에 우물가에 오는 것입니다. 그날도 우물가에 물 길어 왔는데 예수님은 우물가에 앉아 계시고 제자들은 음식을 사기 위해서 사마리아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이 여인이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을 기르려고 할 때 예수님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본체만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물을 좀 주시오. 그러니까 깜짝 놀래서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당신은 유대인이요, 더구나 남자가 아무도 없는 대낮에 물을 좀 달라니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물을 좀 달라는 그 사람이 누군지 당신이 알았었으면 오히려 물을 좀 달라고 구했을 것이요 그분이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고... 그 여자가 또 받아서 비웃으면서 이 물이 얼마나 깊은데 당신 물 기르는 두레박도 없으면서 무슨 생수를 나에게 준다 말이오? 예수님이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면 그 물 나에게 좀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거리도 되기 원치 않습니다. 주님이 가만히 그 여인을 바라보면서 하시는 말씀이 남편을 데리고 오시오. 남편요? 하하하. 남편 흔해 빠진 것이 남편인데...그러니까 예수님이 남편으로 데려올 분이 없지요? 지금까지 데리고 산 사람은 5명이나 되는데 다 집어치우고 지금 여섯 번째 데리고 사는데 이번에는 결혼도 안하고 오다가다 만나서 살지 하니까 깜짝 놀랬습니다. 아니, 당신 내 형편을 어떻게 그리 잘 아오? 이제 가만 보니까 당신 선지자인 것 같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데... 예수님이 아니오 아니오. 이곳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하나님은 심령이 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찾습니다. 요사이는 예배를 어느 장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참 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 너무 복잡해서 우리 알아들을 수도 없고 메시아가 오면 그 사실을 다 우리에게 가르켜 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당신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그 사람이 메시아요. 여자가 가만히 쳐다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이 여자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갑자기 이분이 영혼을 구원하는 메시아구나 깨닫고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존재가 기쁨인 것입니다. 주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나이다. 그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서 정신 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는 물동이를 두고 사마리아 시내로 뛰어 들어가서 외쳤습니다. 여러분, 와보라!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내가 행한 일을 다 알고 계시는 그분이 메시아가 아닌가. 그래서 동리사람들을 떼를 지어 데리고 나왔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요 4:28~30)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강조해서 말씀하신 것은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세상의 물이 목마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평안이 목마르고 기쁨이 목마르고 화해가 목마르고 희망에 목마른 사람은 이 마음에 갈급함이 있는 사람은 주님께로 와서 말씀을 들으면 주님께서 생수를 주실 것이고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생수의 강이 넘쳐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마음에 생수의 강을 얻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전에 느끼지 못하던 기쁨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과 거리가 두어지는 것은 우리가 미움이 있을 때 그러한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인데 미움은 마귀의 표상인 것입니다. 우리가 미움이 들어오면 기쁨도 사라지고 행복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미움을 잘 처리해야 행복을 마음속에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웃을 용서하지 않을 때 미움은 예수님과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우리 맘에 기쁨을 빼앗아가서 행복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27절로 28절로 37절에 보면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이게 힘든 조건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원수를 미워하며 하시면 참 좋겠는데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읽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나요? 힘듭니다. 우리 미워하는 자를 좋게 대접하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오히려 축복을 해주고 모욕하는 자를 위해서 잘되라고 기도해주고 우리를 자꾸 비판하는 사람을 비판하지 않고 정죄하는 자를 같이 따라서 정죄하지 않고 용서해주면 그 사람은 진실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속에 기쁨이 머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어떻게 삽니까? 용서하면서 살아야지 비평하고 판단하고 손가락질하고는 살지 못합니다. 죄 안 짓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전부 죄를 짓기 때문에 내 죄를 용서받기 원하면 이웃의 죄도 용서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서로 벌거벗게 만들려고 하면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덮어주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관계가 부부입니다. 부부라 하면 의례히 사랑하며 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부부가 되어서 살아보면 가장 용서해 주기 어려운 것도 부부인 것입니다. 그만큼 신뢰했기 때문에 신뢰에 방해가 오면 정말로 용서해주기 힘든 것입니다.
프랑스의 어느 사상가는 부부관계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3주 동안 서로 관찰해 보고, 3개월 동안 서로 사랑하고, 3년 동안 서로 싸우고, 30년 동안 그 다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참고 용서하면서 산다.” 어떤 사람이 나보고 말합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도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살지 못하고 티격태격하고 그렇게 합니까? 그래 내가 말하기를 당신도 예수 믿지요? 믿습니다. 당신은 남편하고 아예 활활 불타도록 사랑하고 삽니까? 그러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그러면 어떻게 삽니까?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지요. 그게 오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3주 동안 서로 관찰을 해보고 3개월 동안 서로 사랑을 하고 3년 동안 서로 싸운다고 하는데 3년 동안 많이 싸워야 나중에 살아가는 바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싸워보니까 서로 밑천이 다 드러나거든요. 기대를 하니까 낙심하지 기대를 하지 아니하면 낙심하지 않습니다. 3년 동안 싸우는 동안에 누가 누군지 확실히 알게 되고 기대를 저버립니다. 전부 우리 남편이 대통령 같고 전부 우리 아내가 미스코리아 같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나머지는 죽을 때까지 그냥 용서해 주고 사는 것입니다. 나의 뜻에 맞지 않더라도 용서하고 사랑이 안 될지라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서로 만나면 등도 두들겨주고 키스도 해주고... 그렇게 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인생이 항상 좋기만 하지 않습니다. 가족이든 이웃이든 서로를 참고 용서하지 않으면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용서인 것입니다. 용서는 할 수 있으니까. 사랑은 적극적으로 못할지라도 소극적으로 용서는 할 수 있으니까 용서하고 살면 기쁨도 얻을 수 있고 행복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희망과 꿈을 잃어버리면 기쁨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어야 행복한데 기쁨은 마음속에 희망이 있어야 되고 꿈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사람들이 살 수 없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어떠한 역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어디가도 받아요.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 할 수 있습니까? 교회 성도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간단한 것입니다. 희망을 드려라. 우리 하나님은 희망을 주는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서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시지 않고 희망을 주셨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에게도 희망을 주셨다. 주님께서 이른 새벽에 성전에 나가서 가르치는데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 율법주의자들이 한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여자는 옷이 찢어지고 머리가 산발이고 맨발 벗고 끌려와서 예수님 발 앞에 던져놓고 그들이 하는 말이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그 자리에서 잡혔습니다. 모세 율법에는 이런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말로 어려운 일 아닙니까? 주님이 판단을 해야 되는데... 돌로써 쳐 죽이라고 하면 당신 사랑의 하나님이라면서 어떻게 무자비하게 죽이라고 합니까? 죽이지 말라면 당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면서 율법을 어떻게 무시합니까? 이래도 잡히고 저래도 잡히게 되었는데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어깨너머로 뭘 쓰는지 봤는데 성경은 뭘썼다는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추측을 하도록 여유를 주었습니다. 율법을 들었을 것이다. 율법대로 이 여자를 죽이라고 했으니까 주님이 손가락으로 십계명을 천천히 적어 내려간 것입니다. 예수님 어깨 너머로 보니 율법을 적는데 마음속에 전부 가책이 다 오거든요. 자기도 이 여자를 향해서 돌을 던지고 나면 나중에는 예수님이 돌을 들고 자기를 때려 움쩍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 두 사람이 사라진 것입니다. 손에 있는 돌을 던져 놓고 뒤로 빠져 나가서 나중에는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여자여, 고개를 들라. 고개를 드니 눈이 새빨개졌습니다. 울어서... 너를 정죄하는 사람이 있느냐. 이리저리 살펴보더니만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주는 희망의 말이 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집에 가서 다시 죄짓지 마라. 뭐 복잡한 소리 할 필요 없습니다. 그 죽음의 순간에 주님께서 건져주신 그 사랑에 감동해서 그것이 충분히 마음을 변화시키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만나면 정죄하지 않습니다. 정죄하면 예수님 앞에 설 사람이 없지요. 크고 적은 죄를 주님은 손바닥처럼 다 볼 수 있는데 주님이 너 언제 이런 죄 지었지? 너는 정죄 받으라. 그러면 아무도 정죄 안 받을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받아 살 수 있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아들이 온 것은 세상을 정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려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중대한 범죄인을 눈앞에 두고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집에 가서 다시 죄짓지 말아라. 희망을 가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있으면 절대 주저앉지 않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살 수 없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목사도 자기 말하지 말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성령의 말씀하심을 들어서 성도들에게 희망을 줘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에게 희망을 주어서 행복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얼마나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까? 주님이 그렇게 잘되기를 원하시는데 내가 못될 턱이 있느냐. 힘을 낼 수 있는 희망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하나님은 늘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늘 기도하고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하박국이라는 선지자는 3장 17절로 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이게 진짜로 기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길인 것입니다. 무엇이 있어서 기뻐하는 것은 없어지면 기쁨이 사라지지요. 이분은 하는 말이 무화과나무에 열매도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도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도 없다. 완전 거지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계시므로 그는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때문에 기뻐해야 참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지위, 명예, 권세, 돈, 가정, 좋은 집, 좋은 자동차 이런 것 때문에 희망을 가지면 그것은 얼마 안가서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도 죄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 든 그대로 내게로 오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죄를 주님이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청산했기 때문에 주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끝없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받지 못할 것을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성령으로 이 자리에 와 계신 여러분은 여러분을 무조건하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변화받기를 원하시고 기대를 가지고 사랑으로 대하시기 때문에 용기를 얻고 강하고 담대한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될 때
둘째로, 우리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될 때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고난당한 것 자기 위해서 고난당한 것 아니고 여러분 위해서 고난당한 것이거든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주님이 2천년 전에 오셔서 법적으로 여러분을 향한 죄악을 전부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십자가를 우리가 바라보면 몸 찢고 피 흘린 그 피가 외쳐 말합니다. 너희 일생의 죄를 내가 다 청산했다.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다 청산해서 너의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취급을 받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만 부르면 여러분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받고 의롭게 되었고 성결과 성령충만을 주님 십자가 때문에 얻게 되었으며 주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이 세상에 병 안든 사람 누가 있습니까? 다 병들지요. 그런데 그 병을 예수님이 다 짊어지고 가셨다니 예수님께 의지하면 예수님이 건강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거든요. 병에서 치료받고 건강을 얻을 수 있으며 우리가 저주에서 고난당하며 땀을 흘리며 먹고 살아도 낭패에 낭패를 당하고 실망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될 것은 여러분의 실패는 주님이 책임졌습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주님이 자기 몸에 받아서 십자가에 올라갔지 않습니까? 예수님께 의지해서 눈에는 아무것도 안보이고 귀에는 들리는 것 없어도 나는 저주에서 해방된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삶의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복된 사람이에요. 복 없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이고 그 무엇보다도 영생을 얻어서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이 세상에서 복잡하게 살지만 인연을 다 끊어버리고 이 육신의 장막집 떠나서 저 세상으로 건너갈 때 천국이 없다면 삶의 모든 것이 절망 아닙니까? 또 저 세상이 있는데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면 그 또한 절망적인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죽고 난 뒤에 생명이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셨고 여러분을 데리고 천국 영원한 곳에 들어가서 살 것이니 기대가 큰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로 다할 수 없이 귀한 것을 약속해 주셨다. 여러분이 믿음이 약해지고 소망이 사라지려고 할 때는 언제나 무릎을 꿇어 십자가 앞에 나가서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주신 이 축복을 계산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죄가 거룩함이 다 용서함 받고 죄를 용서함 받고 허물을 용서함 받고 병이 낫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영생복락을 얻게 된 것을 생각하고 그것이 나라는 것을 지적하게 되면 아무 곳에 희망을 갖지 못해도 십자가에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인구원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3절로 5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이것 정말 왔따 아닙니까? 이렇게 기가 막힌 은혜를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난 다음에 이 모든 은택을 잊지 마라. 사람은 다 잊어버리고 사는데 이것을 늘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외롭게 이 세상에 버려놓지 아니하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주겠다. 다르다는 뜻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알로스라는 말이 있고 헤테로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말로는 다 똑같이 다르다고 해석하는데 알로스라는 말은 똑같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모습과 내용이 다르지 않는데 이것 하나 하면 이것하고 그 다음은 알로스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헤테로스라는 말은 다 다릅니다. 남자가 여자와 다른 것처럼 다릅니다. 서양과 동양이 다른 것처럼 다릅니다. 그때는 헤테로스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이 말하기를 알로스 파라클레토스. 나와 똑같은 보혜사를 보내겠다. 보혜사란 뭐냐. 아버지께로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함께 계신 자를 보혜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성령은 우리와 같이 있어서 예수님과 똑같은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난한 자에게 소망을 주시고 마귀와 죄악과 세상에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시고 영적인 눈이 어두운 사람을 눈 띄워서 천국을 보게 해주시고 스트레스 받아서 온갖 병에 걸린 사람 스트레스에서 해방을 얻게 해주시고 그리고 자격 없는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일을 가르켜 주시는 이 역사를 성령께서 계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예수님과 똑같습니다. 구약 4천년 동안은 아버지 하나님 시대고 신약 33년 동안은 아들의 시대고 신약 이후에 오늘은 누구시대입니까? 성령님의 시대입니다. 성령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고 여러분을 떠나지 않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 2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얼마나 멋진 선생님이시기에 보혜사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늘 같이 계시겠다. 내가 이번에 목포에 내려가서 집회를 했는데 목포에 계신 분들이 제가 목포에 온 것이 30년 전에 시작해서 이번이 네 번째 목포에 왔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세발낙지도 먹으라고 가져왔는데 인천에서 낚지 먹다가 죽었다는 생각이 나서 젓가락이 안가요. 그래서 움직이는 것만 봤지 먹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장님이 정시장이라고 아주 훌륭한 시장님이 계신데 그 시장님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자기가 예수 믿기 전에 자기 아내는 교회를 다녔는데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부인이 갑자기 병이 들었는데 병원에 데려가도 병 이름을 몰라요. 그것 뭐냐면 못 일어나는 병입니다. 다리가 마비가 되어서 일어날 수가 없어요. 사람이 부축해서 업고 다녀야지 걸어는 못 다녀요. 그래서 고심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약으로도 안 되고 의사가 치료해도 안 되면 여의도순복음교회로 가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오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목사도 만나볼 수 없고 무슨 교회가 이런 교회가 있느냐. 도떼기 시장 같다고... 그래 있으니까 아마 안수집사님을 만난 것 같아요. 자기가 방황을 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왔냐고 해서 교회 예배 드리러 왔는데 어떻게 드릴지도 모르고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여기 앉으라고 자리를 만들어 주면서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느냐. 우환이 있어서 왔다. 그러면 교회에 오지 말고 오산리기도원으로 가라고... 오산리기도원이 어디 있느냐 하니까 약도를 그려주더랍니다. 그는 버스를 타고 더듬어서 오산리에 가서 거기에 오산리에 있는 목사님을 만나서 나에게 우환질고가 있어서 기도하러 왔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까 저 토굴로 들어가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말간사람이 교회 왔다가 기도원에 왔다가 토굴에 앉아 있으니까 기가 확 막히더랍니다. 이게 무슨 교회가 이런 교회가 있노. 토굴에 들어오니까 다른 할 일은 없고 기도를 해야겠다 싶어서 자기 부인이 늘 기도하는 것을 지나가면서 들은 기억이 나서 하나님이여,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마누라 걷게 해주시옵소서. 그것만 하면 내가 토굴에 며칠 더 있으라고 해도 더 있겠습니다. 하루 종일 기도했는데 별로 응답이 없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보고 하루 종일 기도해도 별로 응답이 없다고 하니까 금식을 하라고 그러더랍니다. 이제는 밥도 먹지 말라는 교회가 있나. 그러나 온 김에 그냥 갈 수 없다고 금식을 사흘을 했답니다. 했는데 기도굴에 있는데 갑자기 몸이 덜덜덜 떨리더랍니다. 나도 우리 마누라처럼 되는 것 아닌가. 앉아도 떨리고 서도 떨리고 덜덜 떨리고 마음에 박하사탕 먹은 것처럼 화~하더랍니다. 그리고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이것 조상이 죽어도 안 울었는데 이렇게 눈물이 나올 수 있느냐. 닦아도 눈물이 나오고... 그래가지고서 이제는 예수님 그 말도 안 나와요. 방언이 나오니까 방언이 뭔지 모르잖아요. 입에서 모르는 말이 줄줄 나오니까 이제 영 사람 버렸다. 안 우는 울음도 울리고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오고 그래서 놀래서 밖으로 나와가지고서 사람 잡고 입에서 이상한 말이 자꾸 나오는데 이것 큰일 났지 않느냐고 하니까 다 축복을 하면서 당신 성령 받았다고... 잘 되었다고... 그런데 여하간 이상하게 예수님을 대단히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너무나 마음이 기쁘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됐나보다 하고 집으로 내려왔어요. 집에 내려와서 보니까 자기 부인이 서서 걸어 다니더랍니다. 그러니 웬일이냐 하니까 자기가 눈물이 나고 다른 말이 입에서 나올 그 시각에 그 부인이 일어서고 싶더랍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보고 나 일어난다. 넘어지거든 받아라. 그러면서 받으려고 하니까 화닥딱 일어나더니만 건강해졌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대요. 그래서 그때부터 예수를 잘 믿어 교회 나왔는데 이제 주님을 섬기면서 고장을 위해서 일을 해야 되겠다고 목포출신인데 목포시장으로 입후보를 해서 나왔는데 제게 와서 안수기도를 받았다나요? 그리고 갔는데 시장이 되셨어요. 그래서 하는 말이 무엇이든지 조목사에게 안수만 받으면 되는가보다. 그런 느낌이 있다고 이제 시장을 올해로써 끝맺는데 끝마치면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분은 아무것도 모르는 분인데 성령을 모시므로 말미암아 그런 큰 기쁜 일이 생기고 행복한 일이 생긴 것입니다. 성령은 이처럼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 일일이 옷을 벗기고 꾸중을 하고 채찍을 때리고 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해서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손잡아 이끌어 주시고 도와주시는 보혜사를 여러분 모시고 있으니 여러분 고아가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 고아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래뵈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돕는 자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성령님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려울 때 엎드려 기도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분별의 은사 이런 것이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도 설교할 때 저의 지혜와 총명으로 설교하지 않습니다. 설교하면서 성령님께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 말하면서도 마음속에 성령이여 내게 말씀하시옵소서. 그러면 내 생각이 사라지고 성령의 생각이 떠오르게 되면 성령의 생각을 받아서 전달하게 되고 성령은 여러분에게 기쁨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고요하고 잠잠하게 없는듯하면서 여러분 속에서 계셔서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이런 은사를 주셔서 이끌어 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실 때 마음이 기뻐지는데 성령이 있음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로 27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잘못한다고 예언한다고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하나님이 예비했다. 여러분이 필요한 것을 하나님은 천년, 만년 전에 이미 예비해 놓았어요. 하나님 예비는 지금 성급하게 예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 만년 전에 여러분 필요한 것을 예비해 놓았어요. 여러분이 어려운 시련을 겪고 막다른 골목에 처하면 하나님 쳐다보십시오. 아버지, 예비한 것을 보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미리 아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기에도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성령께서 여기 와 봐. 여기 하나님이 너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것이다. 참 희한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미리 아시는 고로 미리 예비해 놓아서 어려움에 처해서 어찌할지 모르고 당황할 때 예비한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이 가라는 곳을 안 가고 다시스로 배를 타고 도망치다가 풍랑을 만나서 뱃사공과 배의 손님들이 요나를 물에 던질 때 그는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벌써 알고 요나를 삼킬 물고기를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교회 와서 앉아 있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예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그 예비한 것을 여러분을 위해서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알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만 해도 여러분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하면 예수님이 기뻐하시지요.
우리 인생을 살면서 예수님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늘 행하면서 살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을 사랑할 때 우리 마음속에 참 기분이 좋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예수님이 여러분 마음에 사랑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느냐. 여러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말을 지키게 돼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주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고 성경말씀을 읽기를 좋아하고 설교말씀 듣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여러분 사랑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희생적으로 좋은 것을 주고 어려운 일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을 하는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서 뭘 좋은 것 안 해주겠습니까? 어려운 일도 다 맡아서 해주기를 원하십니다. 부부간에도 정말 사랑하면 줘야 돼요. 사랑하면서 안 주고 뒤에 숨겨놓고 사랑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지요.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어떻게 했다구요? 독생자를 주셨으니.. 줘야 됩니다. 조금 주면 조금 사랑하는 것입니다. 많이 주면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 주면 온통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 위해서 주일날 아무리 일이 바빠도 온통 주일날을 예수님을 위해서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주일날 바쁘다고 해서 주님 그날은 눈 좀 감아 주십시오 하면 조금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온통 사랑해서 드리고 십일조 드리고 주님으로 자랑합니다. 전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10장 12절로 13절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야훼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네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이 율법을 지키라는 것 그 목적이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더 잘 살기 위해서 주님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요, 우리에게 행복을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은 좋은 것을 이웃과 나눌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좋습니다. 우리도 세상에 살아보면 줄 때가 참 행복해요. 받을 때는 받으니까 좋지요. 그러나 줄 때보다 못합니다. 남이 여러분을 위해서 무엇을 정성으로 해주거든 좀 과장하게 고맙다고 말을 하십시오. 아이 좋다. 아이 고맙다. 아이 감사하다. 그러면 주고 난 다음에 배로 더 기분이 좋습니다. 주는데 받으라. 어 그래? 그리고 돌아서면 에라 빌어먹을 안 줄 것 가지고서 괜히 줬다. 그런 생각이 납니다. 그러므로 받으면 흥감을 좀 떨면서 좋다고 하면 좋은데 사람들이 그것을 안 하는 것은 열등의식이 마음에 들어오기 때문에 내가 주지 못하고 받는다는 열등의식 때문에 그렇게 떠들썩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등의식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나를 사랑해서 주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아주 흥감을 떨고 나면 그 사람 나중에 더 주기를 원하니까 나중에 더 받을 생각하고 좀 감사를 해야지요. 하나님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구원을 보이시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께도 은혜 받고 너무 감사하다고 감사해서 뛰고 구르고 하면 하나님이 나중에 더 줘야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하나님은 반드시 30배, 60배, 100배가 되어서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좋은 것을 이웃과 나눌 때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천당 갔을 때 주님께서 우리 만나서 심판할 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그러니까 예수 잘믿은 의인들이 언제요? 우리가 주님 보았습니까? 우리는 주님 굶주린 것도 못 보았고 목말랐을 때 물을 주었고 나그네 된 주님도 못 보았고 헐벗은 주님도 못 보았고 병들은 예수님도 못 보았고 옥에 갇힌 것도 못 보았는데요?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조그마한 내 제자 나를 믿는 이 이름 없는 이들을 위해서 해준 것이 나를 위해서 해준 것이다. 네가 내 체면을 세워주고 내 사랑을 전달해 주었으니 내게 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은혜에 대해서 이제 갚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선을 베푸는데 꼭 예수님께 못 베풀었다 하더라도 지극히 적은 자 한 사람에게 선을 예수 이름으로 베푼 것은 예수님께 직접 선을 행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 우리가 남을 행복하게 하면 자기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될 때 더 많이 이웃을 도와주면 더 많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습니다. 확실히...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재물을 쌓아놓고 구경만 해서는 소용이 없어요. 줘야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면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받는 삶 보다 주는 삶이 살아가는 이들은 자기의 마음이 기쁠 뿐만 아니라, 이토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행복은 오늘 인간 삶의 전반적 목표가 됩니다. 우리 다 행복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생활의 배후의 목표도 행복입니다. 국회의원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면 여러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 그 말을 듣는 우리에게 행복해지게 만들어 주려고 죽을 애를 씁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저도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제가 설교하는 교회 성도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제 설교를 듣고 믿음을 얻어서 하나님 앞에 축복받아 행복하게 해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이 제게 격려를 많이 합니다. 이제 나이도 먹고 몸도 지칠 터이니 설교 그만하라는... 격려를 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설교를 그만할 수 없는 것이 설교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아무도 제 설교가 필요가 없다고 하면 그때는 기쁘게 이 강단에서 내려갈 것입니다만 설교를 듣기를 원하고 행복을 말씀을 통해서 얻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 이상 어떻게 뒤를 돌아설 수 있는 것입니까? 저는 저의 거처가 첫째 하나님께서 그만 두라고 하면 그만둘 것이고 둘째로 성도 여러분이 이제 듣기 싫다고 하면 듣기 싫은 것이고 셋째로 우리 당회장 이영훈 목사님이 이제 그만 두시오 하면 그만둡니다. 그 이외에는 나의 시체를 메고 이 강단 밑에 내려가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받으려고 기도를 많이 하고 애를 쓰는데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할렐루야~

정치, 경제, 사회생활의 배후의 목표는 행복입니다. 그러나 그 행복을 누리는 개인이나 집단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므로 성령께 의지하므로 기본적인 행복을 마음속에 갖고 믿음으로 나가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도록 우리는 행복의 근원이 되고 행복의 동산에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찬송가 309장 한 장 다 같이 부르십시다.
1. 목마른 내 영혼 주가 이미 허락한 그 귀한 영생수 주여 갈망합니다
그 약속 따라서 힘써 간구하오니 오 주여 내 기도 어서 들어주소서

후렴)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 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쌓여서 내 영혼에 기쁨 한량 없도다

2. 주 내게 약속한 큰 비 내려 주시려 은혜의 저 구름 건너 편에 떠올라
그 귀한 징조가 내게 밝히 보이니 나 힘을 다하여 주께 간구합니다

후렴)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 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쌓여서 내 영혼에 기쁨 한량 없도다

3. 은혜의 소낙비 지금 흡족히 내려 구원의 큰 강물 흘러 차고 넘쳐서
내 추한 모든 죄 모두 씻어 버리니 나 지금 은혜를 충만하게 받았네

후렴)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 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쌓여서 내 영혼에 기쁨 한량 없도다

4. 그 차고 넘치는 주의 은혜의 물결 힘차게 밀려와 내게 만족하오니
오 할렐루야로 주님 찬송하오니 내 맘에 기쁨이 항상 충만함이라

후렴)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다 물결 같이 내게 임하니
영광의 물결에 온전히 쌓여서 내 영혼에 기쁨 한량 없도다

여러분 항상 기뻐하면서 사셔야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마음에 기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쁨은 내가 기뻐하면 기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의사들이 하는 말이 우리 뇌가 우리가 웃는 것을 진짜로 웃는지 가짜로 웃는지 분별을 못한답니다. 가짜로 웃어도 진짜로 웃는 것으로 알고 진짜로 웃는 것을 진짜로 아는데 웃으면 어떤 일이 생기냐.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생겨나요. 그 엔돌핀이 몸으로 퍼져나가면 마음이 기뻐지고 즐거워지고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짜로 많이 웃으라고 그래요. 진짜로 웃는 일이 별로 없을지라도 가짜로 많이 웃으면 엔돌핀이 나와서 다른 사람 병드는데 병안 든다고 하는데 겨울이 오면 감기 들린 사람이 많은데 우리 미리 엔돌핀 나오도록 할까요? 하하하...

우리 장로님 웃는 것 보니까 제일 좋으네. 우리 교회에서 제일 안 웃는 사람들이 장로님들이라고 하던데... 할렐루야! 오늘도 예수님은 여러분 귀에 대놓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 갚았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