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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0. 주일설교 플러스 인생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1~6) <서론> “플러스 인생”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오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것은 참으로 괴롭습니다. 없다는 것, 모자란다는 것은 마음속에 만족할 수 없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6.25사변을 통해 본 세대는 없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를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집이 없다. 밥이 없다. 잠자리가 없다. 없는 것은 마음에 불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어느 전쟁고아들이 그때 미국 병사들이 도와주고 있는데 애들이 잠을 안 자요. 낮에 내내 몰려다니다가 저녁에 잠을 자야 되는데 잠을 안 잡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을 불러다가 왜 어린 아이들이 잠을 안 자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잠을 안 자므로 낮에 이동할 수가 없고 상당히 취급이 곤란한데 잠을 좀 자게 해 달라. 그래서 전문가들이 쭉 살펴보니까 병든 것도 아니고 밥맛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마음의 불안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먹었는데 내일은 뭘 먹고 사나. 먹는데 대한 불안감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자는 비결을 알려 주었습니다. 잠자는 시간에 다 자리에 눕혀 놓고 애들 손에 빵을 하나씩 들려주었습니다. 빵을 얻어서 손에 쥔 애들은 다 잠을 잘 자요. 빵을 손에 쥐지 못한 어린애들은 잠을 못자요. 왜, 마이너스가 되면 마음에 평화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마음에 평안하고 좋지 아무것도 없다고 할 때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오늘 저녁에 먹을거리가 없다고 생각하면 오늘 예배에 오셨어도 설교가 귀에 잘 안 들어 올 것입니다. 오늘 저녁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평안한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강단이 있다고 생각할 때 마음이 평안하지 강단이 없어지면 여의도광장에 가서 설교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불안해질 것입니다.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플러스 인생이란 모자란 것을 채워주고 마음에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시편 23편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 말씀이 참 좋아서 매일 그 말씀을 한 번씩 기억하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있도다. 그러면 마이너스 인생이 되면 기쁘지 않아요. 부족함이 없도다. 그래서 저에게 타이르는 것입니다. 너 두려워하지 말아라. 부족함이 없다. 야훼께서 너의 목자가 되시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확신을 시켜 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 어떻게 되었든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전한 세계 하나님이 처음 세계를 지으셨을 때 하나님은 완전하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모자람이 없이 부족함이 없이 완전한 세계를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천지를 지으시고 난 다음에 보기에 좋았더라고 했던 것입니다. 좋다. 나쁜 것을 보고 좋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제가 이 강단에 늘 서보면 옷을 참 좋게 입고 온 사람이 있습니다. 야~ 잘 입었구나. 좋다. 아무렇게나 입고 온 사람이 있습니다. 히피 같구나. 별로 안 좋다. 그런 평가를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볼 때 마음이 좋습니다. 좋지 않은 것을 볼 때 마음이 찌부둥 합니다. 모자란 것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지어 놓으시고 좋다. 바다를 지어 놓으시고 좋다. 땅과 식물을 지어놓고도 좋다. 해와 달과 별을 지어 놓고도 좋다. 물고기와 새들을 지어 놓고도 좋다. 동물을 짓고 사람을 마지막에 짓고 난 다음에도 좋다. 본인이 좋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보니 심히 좋더라. 그러므로 이 좋은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신 우리들은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쁜 것을 보고 좋다고 말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시고 이 세상을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여러분 보시고도 참 좋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심히 좋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나쁘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솜씨를 탓하는 것이 되니까 좋지 않지요. 에덴동산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살게 했는데 에덴이란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즐겁다. 기쁘다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즐겁고 기쁜 동산에 살게끔 해주신 것입니다. 그 말은 24시간 즐겁고 기쁨이 그 생활에 따라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에 대한 뜻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기쁘고 즐겁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슬프고 괴롭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야훼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창 2:8~10) 과일도 그 나무가 보기도 좋고 열매가 먹기도 좋다. 좌우간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좋은 거에요. 하나님이 지으신 중에 제일 정성을 들여서 멋있게 지은 것이 사람 아닙니까? 하나님과 함께 친교를 나누기 위해서 지은 사람은 보기에도 좋고 같이 살기에도 좋은 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서 여러분을 보니 참 좋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했을 때 불광동에서 제일 먼저 외친 것이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제가 늘 걱정을 했어요. 신학교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할 때 하나님이 나쁜 하나님이면 내 인생이 나쁜 인생이 되지 않을 것인가.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불안이 있었는데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오랄 로버트 목사님이 설교하는 설교를 들으니까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다. God is good God. 하나님께 좋은 것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라. 그 설교 말씀이 내 마음속에 확 부딪혀 오는 거에요. 어~ 나를 지으시고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마땅히 좋은 하나님을 섬기고 좋은 하나님이 좋은 것 주시기를 기대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하나님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내게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기대하고 난 다음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 다음부터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달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설교할 때 큰 소리치지요.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다. 한번 모셔보라. 좋은 일이 생겨난다. 그런게 아닌게 아니라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살아보니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마음속에 나쁜 일은 다 쫓아내버리고 좋은 일만 다가온다고 가득히 다가온다고 생각하십시오. 진짜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2. 마이너스 인생을 가져온 마귀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에게 좋은 일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나 우리에게 마이너스 인생을 가져오는 마귀가 있어서 언제나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을 시키는 것입니다. 도둑이 들어와서 여러분에게 좋은 일 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구역예배를 조직을 해서 아주 구역이 잘되어 갔습니다. 우리 자매님들이 빨간 가방을 들고 설치면 천지가 다 빨갛게 보여요. 구역장들이 정말 수고해서 교회가 성장했는데 열심히 구역 일을 보는 우리 자매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 남편이 하는 말이 당신 집 비우고 빨간 가방만 들고 설치다가 일 다하면 어떻게 하나?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데 왜 일을 당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은 부인은 집안 소제해 놓고 난 다음 빨간 가방을 들고 저녁에 해가 질 때까지 빨간 가방을 들고 설칩니다. 그런데 그날은 빨간 가방을 들고 막 설치고 다녔는데 마음이 불안해요.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겨날 것 같아요. 그래서 시간만 있으면 자꾸 방언기도를 했습니다. 한국기도는 해도 무엇이 좋지 않은 것이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를 자꾸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저녁이 되어서 집에 돌아와서 문을 열자마자 기겁을 했습니다. 응접실에 의복가지가 전부 흐트러져 던져 놓았어요. 도적이 들어왔는데 도적이 들어와서 귀중품을 찾는다고 옷을 전부 다 흩어 놓았어요. 그래서 아이구 이제는 쫓겨났다. 도적이 쫓겨난 것이 아니라 내가 쫓겨났다. 이제 신랑이 들어오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 더구나 신랑이 월급 타서 준 월급을 은행에 갔다가 예금을 하라는 것을 심방을 하고 난 다음 시간 있을 때 가겠다고 옷 밑에 서랍에다가 넣어 놓았어요. 그러니 도둑놈이 유유히 그 돈을 가져갔을 것이다. 그래서 서랍을 열라고 하니까 손이 떨려서 서랍을 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막 방언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그 마음속에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신데 좋게 해주실 것이지 나쁘게 해주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하고 서랍을 싹 당기니까 다른 서랍은 다 열었는데 그 서랍은 안 열었어요. 돈이 고스란히 옷 밑에 놓여 있어요.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라고 고함을 치고 춤을 덩실덩실 추고 주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라고... 저는 처음 알았냐구 하니까 처음 안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 집에 강도가 들어왔는데 옷을 다 흩어 놓고도 옷 밑에 있는 돈은 못가지고 갔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 자가 없습니다. 좋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좋은 일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말했으니까 기왕 믿을 바에야 좋은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마귀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도 좋다 나쁘다를 결정해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대립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립한 인간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선악과인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사람은 내가 아~ 이 세상 살면서 이것은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데 하나님이 아니야. 그것은 좋지 않다. 아니요, 내가 좋으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은 나쁘다. 아니요, 이것은 좋습니다. 하나님하고 대결이 되어요. 경쟁이 되어요. 이 우주에 경쟁자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로써 하나님께서 좋다고 하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쁘다면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과 경쟁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그것을 따먹은 사람이 하나님과 동등된 인본주의에 서서 하나님과 경쟁하므로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입니다. 원래 마귀가 천사장으로써 노래를 담당하는 루시퍼라는 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높여서 하나님을 위해서 찬양을 부르게 했는데 교만이 들어가서 하나님과 동등되게 했다가 쫓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도 자기처럼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코너에 몰아넣고 자기들이 우주를 점령하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대립한 인간 주체적 삶을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선언하고 만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 반드시 죽는다. 죽는다는 것은 생명을 빼앗아간다는 것입니다. 흑암 속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다음에 결과로 죄와 사망이 그의 생애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므로 죄와 사망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마이너스 인생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100% 플러스 인생을 주셨는데 하나님과 동등되고 대립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것이 다 빼앗긴 것입니다. 영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인데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므로 영이 죽어서 하나님과 만나서 직접 대화를 하고 사랑을 나눌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따라서 허물진 삶이 그들 인생을 끌고나간 것입니다. 모든 일에 허물진 인생이 많습니다. 술주정뱅이는 술 마시는 것이 허물 아닙니까? 거짓말쟁이는 거짓말 하는 것이 허물이고 도둑질하는 사람은 도둑질하는 것이 허물이고 하나님을 반역한 죄에다가 허물이 많습니다. 이 허물진 죄악을 없앨 수가 없어요. 영이 죽고 마귀의 유혹에 따라 허물진 삶을 살아서 마음이 고통스럽고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사는 것입니다. 평안하게 살지 못해요. 그리고 여성들은 어린 아기를 가져서 낳아서 기르는데 큰 고통을 당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인간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병들고 고달프다가 결국은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실질적인 존재는 비참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훌륭하게 자랐다할지라도 죄책의 절망은 벗을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자기가 살아온 동안에 정의롭게 살지 않았다는 죄책이 항상 있습니다. 마음에 죄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허무와 무의미가 마음을 습격해 올 때 감당하지 못합니다. 보통 때는 인생이 재밌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인생을 살아보면 갑자기 허무와 무의미가 마음을 습격해 오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뭐냐.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느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하지만 좋을 때는 좋은데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당하면 저는 저고 나는 나고... 역시 외로운 자리인 것입니다. 그 외로운 자리를 채울 수가 없어요. 그러니 인간은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에 처했으며 죽음과 무의 절망도 또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보고 저녁에 잘 때 혼자 자느냐. 같이 자느냐. 그래서 나이가 늙으면 귀찮기 때문에 혼자 자는 게 좋다. 그러면 근처에 누가 같이 자느냐. 귀찮아서 아무도 자는 사람 없다. 왜 자꾸 묻느냐고 하니까 나이가 늙으면 침대에 내려오다가 자빠져가지고서 머리를 부딪쳐서 죽는 사람도 많고 목욕탕에서 목욕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져서 죽고 난 다음에 일주일이 되어도 시체를 찾아본 적이 없고 그리고 밤에 갑자기 심장마비가 걸리든지 뇌경색이 되면 누가 병원으로 업고 가야 되겠는데 그런 사람도 없고 위험하니까 혼자 있지 말라고... 그런데 혼자 있는 것이 참 편하고 좋거든요. 옆에 누가 있으면 오히려 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으니까 눈을 감자마자 졸음이 안 오면 나는 틀림없이 죽을 것인데 올해 죽을 것인지 명년에 죽을 것인지 모르는데 죽을 준비가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몸이 고통스럽고 괴로우면 진짜로 죽음이 오는구나. 일어나 앉아서 생각하면 인생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어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하루 아침에 태어났다가 하루 아침이나 저녁에 죽는구나. 생각하니 허무하기 짝이 없지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그런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데 안 믿는 사람이 어떻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도 열심히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면서 갑자기 몸이 고통스럽고 괴로우면 진짜 천당이 있을까? 헛수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질문이 꼭 옵니다. 나만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와요. 그러면 사탄아 물러가라! 물리치고 성경구절 좀 읽고 기도하면 또 마음에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책의 절망이 있고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이 있고 죽음과 무의 절망이 있습니다. 성경에 사도바울 선생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는데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3. 희망을 플러스하는 복음 희망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희망이 있어야 돼요.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고 빼앗기지 아니하고 영원히 바라볼 수 있는 빛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생명의 빛이 되어서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있으면 어떠한 절망 가운데도 빛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나고 소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희망은 마이너스 당한 인간에게 반드시 주어야 되는것인데 이 희망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가 희망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플러스인생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플러스인생을 갖다 주느냐.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4장 18절로 19절에 보면 그가 요단강에서 세례 받고 난 다음 성령이 충만하여 금식기도를 하고 나와서 복음을 증거하는 복음선언을 했습니다. 유대인의 강단에 들어가서 복음선언을 할 때 왜 내가 왔느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 그 다음에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에게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소망을 주고 행복을 주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우리보고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도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마음에 희망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더 많이 도덕과 수양을 닦아라. 율법을 지켜라.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해라. 그러한 명령을 하지 않으시고 주님은 너희들에게 내가 희망을 주기 위해서 왔다. 기쁨을 주기 위해서 왔다. 꿈을 주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이 뭡니까? 여러분, 가난한데 제가 여러분에게 복된 소식을 주러 와서 안녕하십니까? 왜 왔어요? 다음주일부터 교회 나오십시오. 교회는 왜 나가요? 밥을 줍니까? 옷을 줍니까? 떡을 줍니까? 그런 것 안 주지만 천당 가기 위해서... 천당, 천당 좋아하네? 가난한 생활에 천당을 전하려거든 천당의 부스러기라도 갖다 주고 그런 말 하시오. 당신이나 가시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이란 뭡니까? 연탄이라도 한 장 갖다 준다면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지요.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 전하면서 연탄 한 장도 안 주는 처지에 무슨 복음을 전합니까? 말로 복음이 전하는 것입니까? 반드시 교회가 서면 교회에서는 있는 힘을 다해서 양식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연탄도 나누어 주고 옷도 나눠주고 할 수 있는 없는 자에게 있는 것을 주어야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 잊지 말아야 돼요. 예수 믿은 사람들은 천당에 갈 소식만 전해주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당은 이 지상에서 나눠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신발장에 구두 많지요? 그것 안 신는 구두 왜 거기에 두고 있습니까? 나누자구요. 더구나 우리 자매님들 이제 여름옷 간수하고 겨울옷 내놓을 때인데 옷장 열어보면 그 동안에 많이 쌓아 놓았어요. 별로 옷 안 산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옷장 열어보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느냐. 나도 알 길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말은 하지 말아야 돼요. 그러나 저 자신 옷장을 열어보면 내 입던 옷이 너무 많아요. 그것 나누어야 돼요. 밥도 옛날에는 밥풀까지 다 주워 먹었는데 지금은 많이 남겨놓고 그냥 숟가락 놓잖아요. 옛날에 비교하면 우리 얼마나 잘 삽니까? 복된 소식이라는 것은 있는 것을 나누어 플러스인생을 만들어 줄 때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도 똑같이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기 때문에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무슨 수양이나 닦고 도덕이나 행하고 율법이나 지키고 꾸중이나 듣고 그렇게 하라면 그것이 기쁜 소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면 빼앗아갑니까? 줍니까? 주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독생자를 주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천국가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냥 네가 노력하고 수양, 도덕을 닦아서 천당에 오라 그 말은 아닌 것입니다. 너를 대신 해줄 독생자를 주셔서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서 여러분과 나를 값 주고 사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성령을 받는 것도 여러분께서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고 간구하면 우리를 돕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1절로 6절이 얼마나 우리에게 복음의 근본을 잘 보여주는지 모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좌우간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 믿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 부족함이 많은데 왜 그런 소리하느냐 그러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없다니까 없는 줄 믿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있어집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살아온 과거사를 한번 돌이켜 보십시오. 참으로 하나님이 도와주셨지요. 저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천막교회에서 지금까지 목회에서 은퇴한 이 세월을 살펴보니까 팔자가 늘어졌어요. 정말 8자가 9자가 될 정도로 늘어졌어요.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것을 입으로 늘 노래처럼 부르고 다니십시오. 나는 집이 없다. 옷이 없다. 돈이 없다. 양식이 없다. 친구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없다는 말을 노래하고 다니면 좋은 일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예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니 부족함이 없다. 먹을 것도 있고 입을 것도 있고 친구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모두 다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더 주시옵소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영혼이 우울하게 되면 참 기가 막힙니다. 나이를 먹은 사람은 꼭 한 두 번 체험합니다. 마음이 텅 비고 우울하고 버림받은 마음과 슬픈 마음이 마음에 생깁니다.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마음을 쾌활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소생시켜 주는 것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위험을 안 당한다고 볼 수 없어요. 위험한 인생길을 걸어갈 때 마음속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인도하고 지켜 주시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어떤 굴에 들어갈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그 굴을 통해 터널을 만들어서 나가게 해주신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가 오면 원수 앞에 하나님이 진수성찬 차려 주시고 나를 안 버렸다는 증거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 차려 주시고 하나님 성령의 기름 부음을 주셔서 일에 성공하게 만들어 주신다. 그러므로 원수가 꼭 나에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진수성찬 차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 왔으니까 무엇이든지 좋게 해주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해주시고 풍성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으로써 포로된 자에게는 해방을 준다고 했는데 뭐가 포로입니까? 죄와 세속에 포로된 사람, 질병과 저주에 포로된 사람, 죽음에 포로된 사람이 예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해방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를 흘릴 때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냄새는 짙은 향기였습니다. 죄가 없는 피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피는 다 죄로 얼룩진 피인데 예수님은 죄를 한 번도 지은 적이 없습니다. 죄가 전혀 얼룩지지 않은 주님의 짙은 그 피가 흐르면서 그 피가 나에게 핏 값을 내놓으라고 마귀에게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마귀는 그것을 볼모로 삼아서 우리를 포로로 잡고 끌고 다니는데 예수님이 놔라. 그 밧줄을 놔라. 내 핏 값을 내놓아라. 너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다 흘렸으니 값없이 흘린 피가 없다. 핏 값을 내놓아라. 예수님은 당신의 핏 값으로 여러분을 해방시킨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시키고 질병과 죽음에서 해방시킨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은 마귀가 가지고 있던 법인데 거기에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성령을 주셔서 해방시켜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해방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죄가 허물이 붙잡지 못합니다. 고독이 붙잡지 못합니다. 외로움이 붙잡지 못합니다. 다가와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에 의지하면 예수의 피가 여러분을 자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자유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술을 먹어보고 마약을 먹어보고 온갖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마음에 기쁨을 가져와 보려고 해도 기쁨이 오지 않습니다. 마음에 슬픔이 중심을 잡아버리면 고통스럽기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가서 엎드려 기도하면서 마라의 쓴물을 달게 하신 주님, 맹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신 주님, 이 마음에 섭섭하고 외롭고 안타까운 마음에 소망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구하면 마음에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 이것 꼭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 없으면 인생에 고통이 참 심합니다. 저는 옛날에는 일한다고 바빠서 그것을 못 느껴보았지만 이제는 그래도 나이 꾀나 먹었다고 그런지 약간은 마음에 공허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공허가 다가오고 섭섭하고 눈물이 나고 그럴 때마다 십자가를 향해서 나가서 부르짖으면 신기하게 십자가에서 생기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큰 골짜기에 갔는데 뼈가 산더미처럼 쌓였어요. 백골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까 골짜기에 백골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거기 가서 보니 기가 막힙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하기를 인자야, 이 뼈들이 살아나겠느냐. 어떻게 그 뼈들이 살아납니까? 고개를 흔들면서 하나님이 아시지 나는 모릅니다. 사는지 안 사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면 이 뼈들을 향하여 생기가 들어와서 이 뼈 속에 들어가라 외쳐라.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왜 에스겔 보고 하라고 합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이 하실 일을 우리보고 하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생기를 향해서 생기는 성령 아닙니까? 생기야 이 뼛속에 들어가라! 뼈가 뚝딱뚝딱 소리가 나더니만 서로 뼈가 연결되고 좌우로 갖다 붙어서 나중에는 해골 질서와 조화가 된 해골들이 꽉 들어찼어요. 머리는 머리대로 붙고 팔다리는 팔다리로 붙고 붙을 데 다 붙어 조화와 질서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생기를 향해서 생기야 살아 일어나게 하라. 그 뼈다귀들이 다 살아 일어나더니 큰 군대가 된 것입니다. 이것 상징적인 이야기이지만 무엇을 의미 하느냐.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여러분과 우리들은 마른 뼈다귀들인 것입니다. 마른 뼈다귀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좋게 보여도 마른 뼈다귀에요. 그런데 거기에다가 늘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고 살면 마른 뼈다귀가 그렇지 않아도 마른 뼈다귀인데 불평, 원망, 탄식이 나오면 사는 것이 얼마나 괴롭습니까?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정이 파괴된 사람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 자살한 사람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 어찌 이것을 감당할지 몰라요.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성령이 와 계시므로 성령이 명하여서 이 해골아 살아나라. 뼈다귀야 살아나라. 그렇게 하면 생기가 들어오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목마른 자는 나에게 와서 마셔라. 그리하면 너희 뱃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리라. 뼈다귀만 남은 우리가 주님께 목말라 부르짖으면 생기가 생수가 되어 들어와서 우리가 살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의 생수가 들어와서 살아나면 그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기쁠 수가 없어요. 기분이 좋아요.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 예수 믿는 여러분에게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령을 가득히 부어주신 것인데 말을 해야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입 딱 다물고 있으면 안돼요.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이여 내 마음에 불어오시옵소서. 생기야 마른 뼈다귀 같은 내 가슴에 불어올지어다. 그러면 생기가 불어오는 것입니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생기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이 대낮에 물 길러 오는데 그 사마리아 여인을 보고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 그냥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진짜로 여러분 목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에 상상을 초월한 생수가 넘쳐 흐르고 생기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돼요. 기쁘게 돼요. 강제로 하늘나라에서 내려오는 행복이 마음을 점령하고 기쁨이 마음을 점령하고 소망이 있어야 돼요. 여러분, 오늘 예배를 드리고 나가는데 아무런 소망을 얻지 못하고 기쁨도 얻지 못하고 어깨가 축 늘어져서 들어왔다가 가면 나도 답답하고 너도 답답하고 하나님도 답답하고 괴로울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제가 그랬어요. 갑자기 마음속에 펑하니 구멍이 뚫린 것 같아요. 왜 그런지 몰라요. 외롭고 괴롭고 슬프고 빈 손든 것 같고 그럴 때 주님께서 이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너 마음에 외롭고 괴롭고 슬픔이 있는 것은 내가 그런 사람이 많이 이 세상에 있고 교회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할까를 가르쳐 주마. 생기를 명령하라. 그래서 에스겔서 37장을 펴서 읽고 난 다음에 생기야 조용기 마음속에 들어가라. 생기야 조용기 가슴속에 들어가서 불어서 뼈다귀를 살아 일어나게 하라. 하나님이여 생수를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마음이 기뻐지고 소망이 차지고 즐거움이 생겨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큰소리 하는 것은 여러분도 저처럼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나 몰라 주어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 값진 생수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른 땅에 시냇물 같습니다.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습니다. 여러분과 나를 어찌하든지 희망차고 꿈을 갖고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는 메지마라. 죄악의 종, 슬픔의 종, 고통의 종, 질병의 종,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종,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나에게 부르짖어서 나의 보혈의 능력으로 늘 자유와 해방과 기쁨을 누리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눈을 열어서 내일을 바라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를 상속 받아서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안 보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무신론적으로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고 유물론적으로 물질만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해답을 하나님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면 성령께서 우리 영안을 열어서 하나님을 알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깨달아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마음에 즐거움이 가득차지는 것입니다. 영적 시력을 잃은 자에게 거듭남의 은혜로 눈을 열어 거듭남의 은혜로 영적세계를 보게 하시고 영적 생각과 꿈, 믿음과 말로써 마음을 위로할 수가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로 5절에 보면 “예수께서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어떻게 물과 성령으로 나느냐. 물은 회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무슨 회개입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더니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됩니다. 도와주십시오. 그게 회개입니다.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라는 것은 여러분 안 믿는 사람이 믿음으로 돌아서는 것을 말하는데 성령으로는 어떻게 나는 것입니까? 성령을 우리가 불러다가 내 마음대로 나를 거듭나게 하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광야에 불평하다가 뱀에게 물려서 이스라엘 백성이 죽어갈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서 달아라. 그것 쳐다보면 나을 것이다. 그가 빨리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고 뱀에 물려서 죽어가는 사람 쳐다보라고 하니까 쳐다보는 사람 다 나았어요.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뱀에 물려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독이 들어서 죽어가고 있어요. 어떻게 해서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우리의 죄악과 질병과 고통을 다 해소했으므로 예수님을 쳐다보면 낫습니다. 그때 성령이 거듭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거듭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돌아서서 십자가 밑에 나와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으면 성령께서 임하여서 여러분을 거듭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거듭나서 이제는 사망의 나라, 마귀의 나라에서 하나님 아들의 나라로 옮겼습니다. 여러분은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여러분은 지금 영적으로 국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귀의 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므로 죽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페스포트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패스포트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나라에 국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어서 여러분이 패스포트가 있는데 그 패스포트가 뭔 줄 압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패스포트입니다. 세상 사람보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면은 부릅니까? 안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천국 패스포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서 기쁘고 즐겁게 성령을 역사하여 주시고 도와주시므로 생기가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누구를 막론하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흑암에 권세의 공격을 받아서 외롭고 괴롭고 슬프고 탄식스럽고 사는 것이 무언가 고통을 당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패스포트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성령이 들어와서 생기로써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뼈다귀가 살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행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역사하지 않습니다. 입을 열어서 성령님께 부탁하면 성령이 여러분에게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성령으로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 생기가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쁨을 주시옵소서. 평안을 주시옵소서. 즐거움을 주시옵소서. 용기와 희망을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신 줄 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 동안 눌린 자가 자유케 되는 은총을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눌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트레스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습니까? 집안 식구들이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스트레스가 될 수 있고 아내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고 자녀들이 스트레스가 될 수 있고 세상에 나가서 경쟁자들이 스트레스가 될 수 있고 우리는 어디에 가나 스트레스가 꽉 차 있습니다. 스테레스를 통해서 마음에 병이 걸리고 육체에 병이 걸리고 생활에 병이 걸리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스트레스 당하는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주님이 스트레스를 고치는 의사선생인 것입니다. 주님은 다니면서 스트레스에 걸린 사람을 놓아 주어서 마음에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초등학교 다닐 때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보면 돌맹이 사이로 조그마한 풀이 얼굴을 약간 내놓는 것을 보고 돌에 눌렸구나 돌을 옮겨놓고 학교갔는데 돌을 옮겨놓고 학교갔다 올 때 보면 새파랗게 되어서 살아 일어났습니다. 돌을 옮겨버리니까 스트레스도 옮겨 버리니까 생명이 넘쳐난다 말이에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것 간단한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옮겨 버려요. 특별히 다른 것도 없는데도 주님이 이 스트레스를 옮겨 버리면 여러분 마음속에 생기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왼쪽 우리 장로님들을 보니까 얼굴에 스트레스가 많이 걸려 있어요. 우리 평신도 보다도 스트레스가 많네요. 나중에 주님께 스트레스 옮겨 달라고 하세요. 스트레스 옮겨달라고 하는 것 부끄러운 것 없습니다. 스트레스에 눌려 있으면 고통스럽고 괴로우니까 나보다 신앙이 좋고 기도 잘하는 사람에게 손 한번 얹어서 스트레스에서 놓여나도록 기도해달라고 하면 간단한 기도를 받고도 마음에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과 능력을 주신 것도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시켜 주어서 행복을 갖다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이구 나 같은 사람이 무슨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모자른 점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마귀를 멸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시행 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마귀가 들끓는데 그것을 내쫓지 못하고 그냥 말만 살아서 왔다갔다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보고 벌벌 떠는 존재인 것입니다. 권세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권세를 꼭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시대는 은혜의 시대인데요.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 있을 때 천진난만한 시대에 살았고 그 다음 아브라함 때는 양심시대에 살았고 그 다음 이스라엘 4천년 동안은 율법시대에 살았고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값없이 우리가 공짜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은 우리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 것이 은혜의 선물로 공짜로 받은 것입니다. 은혜, 얼마나 좋은 말인지 모릅니다. 내가 아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주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선물입니다. 은혜의 선물. 구원은 주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데 내가 나를 보더라도 이 죗덩어리야 이 원수 같은 놈아 네가 무엇 하겠노? 그렇게 생각할 것인데 주님은 은혜의 해를 전파하러 왔다. 내가 온 것은 너희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너는 값없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와 허물을 예수님이 대신 다 짊어져서 몸 찢고 피 흘려서 그 대가를 지불해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주님은 구원을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 이 구절은 외워 놓으면 참 좋은데 못 외우면 나와 같이 읽어 보십시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에게 난 것도 아니고 행위에서 난 것도 아니고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셨으니 얼마 안 있으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은 여기에 비교도 못하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6절로 7절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늘나라 상속을 얻는 것은 우리 힘으로는 하나도 안돼요. 성령을 부어 주셔서 성령이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시고 기도도 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끝까지 믿게 해주셔서 하늘나라 상속자가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주님은 부족함이 없이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처럼 하셔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역사하신 것은 주님이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셔서 여러분에게 은혜의 선물을 가득히 채워 주시고 가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 이루어서 천국가신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리에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은 다른 보혜사로써 예수님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일을 행하시고 계시면서 여러분과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취하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그 정면에 성령이 여러분을 품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의 보혜사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항상 곁에 계신 분이 보혜사인 것입니다. 성령 보혜사가 있으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항상 구하십시오. 성령은 여러분 마음을 가득히 채워 놓고 여러분 마음에 생기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마른 뼈다귀가 되어 있지 마십시오. 마른 뼈다귀 골짜기에 살지도 마십시오. 목마르지도 마십시오. 성령의 생명의 은혜가 차고 넘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사망의 골짜기와 원수의 공격 같은 마이너스 사건이 연속되는 세계에서 마이너스는 당하고 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끝없이 플러스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플러스 여러분 생활에 플러스를 해서 조금이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좋아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플러스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마이너스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마귀가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므로 마이너스를 가져오지만 예수님은 플러스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원수 마귀는 물러갈지어다. 어제 저녁에 그렇게 기도하고 잤지요? 아마 3분의 1은 기도했을 것이고 3분의 2는 잊어버렸을 것이라. 저도 잊어버리려다가 기도하고 잤어요. 원수 귀신아 나를 억압하지 말고 물러가라! 나에게 마이너스 인생을 가져오지 못한다 . 성령 플러스 하나님이 와 계시니 너는 물러가라! 우리가 말로 해야 순종을 합니다. 가만 내버려 놓으면 마귀가 안 쫓겨 나가요. 쫓겨나가라고 명령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말을 해야 성령이 오셔요. 성령님 내 마음에 생기를 채워 주십시오. 생수를 채워 주십시오 하면 오냐 오냐. 플러스 생수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입술의 말로 묶이고 입술의 말로 사로잡힌 바 되는 것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우고 하늘에서 풀면 땅에서 풀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이 효과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입술을 통해서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을 통해서 마귀를 물리치고 입술을 통해서 주님을 청해드리고 입술을 통해서 흑암의 세력을 내어 쫓고 입술을 통해서 여러분의 모든 광명한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내 입의 말이 살리고 죽이는 역사를 베풀도록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