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7. 추수감사주일설교

죽으면 죽으리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3~18)

<서론>
여러분과 오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믿되 적당히 믿고 인본주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모든 일에 자기중심으로 살고 자기가 유익되고 자기에게 득이 되는 일이면 하지만 조금이라도 예수님을 믿고 교회 출석하므로 손해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단호히 등을 돌리는 삶의 태도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삶에 중대한 위기를 겪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십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등한이 여기고 사는 사람은 자기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귀를 돌리고 마시는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이 원하시는 절대 신앙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절대신앙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하면 하나님을 일단 믿었으면 절대적으로 사랑을 하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더 사랑하는 것이 없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속성인 것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사랑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교재하기 위해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만큼 하나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받은 여러분도 하나님을 사랑해 주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 요한복음 3장 16절 여러분 잘 알다시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주님이 얼마나 사랑했느냐. 이처럼 사랑했다. 이처럼이 무엇이냐.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독생자라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깊습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자기의 사랑하는 자를 우리에게 내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가 몸 찢고 피 흘리므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 절망과 저주를 다 대신 청산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줄 때 엄청난 희생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사랑한 그 사랑이 희생이 대단했습니다. 쉽게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실 줄 생각하는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가를 너무나 크게 지불했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만세전에 보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예정을 하신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 딸들이 될 것이라고 예정하시고 때가 오매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으로 남편이 가니까 교회 따라 나왔다. 아내가 가니까 함께 왔다. 친구가 전도하니까 따라 왔다. 물론 그 말이 맞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 배후에 사정을 살펴보면 만세전에 하나님이 이 때에 이러한 방법으로 여러분을 불러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나라에 들어온 것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서 들어왔지 하나님의 작정을 떠나서는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손등에 있는 손금처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해서 부르셨습니다. 저도 하나님이 부르셔서 목사가 되게 만들었지 내가 자원한다고 목사가 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놀랍게도 하나님은 지원병원은 원하지 않습니다. 지원병은 원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택해서 부르시지... 그러므로 여러분,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안 오는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를 믿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천국까지 데려가기로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작정을 누가 막을 수 있는 것입니까? 마귀가 아무리 야단법석을 해도 하나님의 작정을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뭐 잘난 것 있어서 주님이 대신 죽으셨다면 모르는데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십니까? 네가 죄를 짓고 사탄의 사자가 되어 있을 때 그때 벌써 너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죽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는 것이 그렇게 불안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죽음이란 것은 우리 생명의 종결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을 가지고서 시험을 치시는 것입니다. 네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느냐. 아들을 죽음에 내주었다. 예수님께 예수님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너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 이상의 사랑은 찾아볼 데가 없기 때문에 더 설명을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으로써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시험해 보신 이가 있습니다. 거기에 아브라함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기도 응답을 받아서 아들 이삭을 얻었는데 아들 이삭이 10대 쯤 되었을 때 얼마나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귀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들에 나가서 일을 하고 밤늦게 같이 들어오면서 손을 잡고 들어오고 아버지 팔다리 아픈 것을 만져주고 때를 밀어주고 손을 붙잡아 주고 노래, 아브라함은 기똥차게 행복했습니다. 나이가 100살이 되면 여러분 목욕할 때 조심해야 돼요. 쉽게 넘어지는 것입니다. 목욕하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고 허리를 다치고 이 세상을 하직도 하고 그런 것을 제가 많이 봤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아브라함을 붙들어 줍니까?
10대 되는 이삭이 아버지 손을 잡고 등도 밀어주고 때도 밀어주고 옷도 입혀 주시고 좌우간 이삭이라 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아브라함이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예! 제가 여기 있나이다. 네 사랑하는 독자 네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내게 번제로 드려라. 그리고는 하나님 말씀이 그쳤습니다. 번제라는 것은 뭐냐면 잡아서 전부 각을 떠서 팔은 팔대로 떼고 다리는 다리대로 떼고 목은 목대로 떼서 그럼 장작불에 올려서 태워서 하나님께 분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사람으로서 상상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말을 들었을 때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울고 하나님 못하겠습니다. 발버둥칠만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금 시험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가? 사랑은 증명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증명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그 이튿날 이삭보고 야 한 사흘동안 우리 모리아산에 가서 제사 드리고 오자. 함께 가자. 가는데 엄마에게 간다고 말하고 가자. 너희 엄마는 지금 나이를 많이 먹어서 귀도 어둡고 앞도 잘 못보니까 그냥 두고 가자! 엄마 들썩했다가 마음 흔들리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이삭을 데리고 제사드릴 필요한 나무도 다 이삭이 걸머지고 불씨도 가지고 종들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하루를 걸어가 저녁이 되면 들판에서 자지요. 그때 호텔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다 아버지가 편안하게 자도록 이삭을 돌보아 주고 아침에 일어나면 거기에서 먹을 것도 만들어가지고서 아버지에게 대접을 하고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죽을 지경입니다. 사흘 길을 걸어가서 이제 산꼭대기를 올라가야 되는데 이삭이 말합니다. 아버지, 여기에 장작도 내가 걸머지고 있고 불씨도 내가 가지고 있는데 칼도 있는데 우리가 제사드릴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심장이 칼로써 찔리는 것 같습니다. 아들의 등허리를 두들기면서 아들아, 재물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종들 보고 너희들은 여기에 있어라. 아들과 나는 산 위에 올라가서 제사 지내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여기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 드려도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잿더미 가운데서 도로 살려 줄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 아이와 같이 제사 드리고 함께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죽으면 함께 못 돌아오잖아요. 함께 돌아오리라는 것은 부활할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함께 제단을 만들고 그다음 그 아들에게 손 내놓고 다리 내놓아라. 내가 너를 묶어야 되겠다. 왜냐하면 하나님 너를 잡아 제사를 드려야 되겠다. 나는 아브라함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 아들 이삭도 위대하다고 봅니다. 아버지하고 씨름을 하면 17,18살 되는 아들이 100살이 넘는 아버지 대번에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 이제 보니까 미쳤군요. 나를 잡아서 제물로 드리다니요?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삭은 두말하지 않고 팔, 다리를 내놓아서 묶게 하고 장작 위에 드러누웠습니다. 이스라엘에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양을 잡는지 압니까? 양은 잡아서 경동맥 여기를 칼로서 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목에 칼을 대어서 경동맥을 따려고 할 때 다급한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칼을 대지 말라.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을 받으셨던지 하나님이 하하하하.. 아브라함아 네가 평소에 나를 사랑한다고 늘 말하더니 참말이구나.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어떻게.. 아들을 주시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어떻게? 아들을 주시듯이... 사랑은 증명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 대한 사랑을 증명했습니다. 그것은 아들을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이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 든 그대로 아버지 앞에 나와서 씻음을 받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고 천국 영생을 누르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이와 같이 큰 사랑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갖게 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물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믿게 되고 믿게 되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믿어야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은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으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너가 나를 사랑하고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2. 죽으면 죽으리이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그런 신앙을 가진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로니아의 포로가 되어서 잡혀갔었을 때 많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느브갓네살 왕에게 포로가 되어서 잡혀 갔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라는 꽃다운 젊은 청년 세 사람이 느브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갔는데 머리가 굉장히 좋아서 느브갓네살이 바벨론도에 지사로써 이방인인 유대인을 사용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느브갓네살이 자기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자기를 신으로 존경하기 위해서 자기 모습을 닮은 금신상을 두라평야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온 바빌로니아의 지도적인 인물들을 거기에 다 모아서 상양식을 하는데 이 악기가 여러 가지 인데 하도 악기 종류가 많아서 나는 다 읽지도 못하겠어요. 그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할 때 모든 사람이 신상에 절을 하면 그 사람 살아나고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신상을 향해서 악기를 연주하려고 하는데 아직 연주도 안 했는데 엉덩이가 하늘을 쳐다보도록 땅에 머리를 숙이고 조아렸습니다. 어느 임금의 명령이라고 타협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악기를 연주하니까 전부다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 우상에... 안 죽으려고 다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설교를 하니까 내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일정 36년에 동방유배라고 해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전부 오프가 나면 전부 동방을 향해서 절을 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가 동방유배를 하라고 고함을 치면 무엇도 모르고 일본을 향해서 절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 일반 국민들은 교육도 받지 못하고 생활은 극단적으로 어려운 곳에 일본 관원에게 대항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때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 끌려가고 장년들은 징용으로 끌려가고 젊은 아가씨들이 정신대에 끌려가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었습니다. 젊은 아가씨들이 울고불고 하는데 일본 관원이 와서 끌어가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안 끌려간다고 하니까 그 당시에 제일 깃발 날린 사람이 누구냐. 장애인들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런 이쁜 여성을 아내로 꿈도 못 꾸었는데... 왜냐, 결혼하면 정신대에 안 끌려 가니까... 아주 장애인들이 아름다운 아가씨하고 결혼을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우리 대한민국 사람의 삶이란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헐벗고 굶주려서 전부 남부여대하고 저 간도로 저 북한 만주 지역으로 살러 갔었습니다. 아마 유대인들이 당한 고난이 그와 같았을 것입니다. 이 느부갓네살 왕이 독재를 행하는데 견딜 수가 있습니까? 죽음을 두고서 저항을 했는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상양식에 나가서 절 안했습니다. 그들은 깊이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뿐 아니라 죽기까지 하기로 각오했는데 사람들이 느부갓네살에게 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여, 느부갓네살 왕이여! 왕이 악기를 연주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절하는데 왕이 사랑해서 높여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바벨론도의 지사 세 사람은 꼿꼿이 서서 왕의 신상에 절을 하지 아니했습니다. 왕이 얼굴이 새파랗게 되고 몸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뭣이 어떠고 어때? 그놈들 포로로 잡혀온 것 내가 키워가지고서 도지사까지 만들어 놓으니까 나의 신상에 절을 안 해? 이 놈의 자식들 맛 좀 봐라! 끌고 오너라! 그래서 끌고 와서 앞에 세워 놓고 네가 과연 내가 만든 신상에 절하라고 할 때 절 안하고 꼿꼿이 섰느냐? 그러니까 그랬습니다. 어떻게 감히 나를 대항하느냐. 그러니까 그들은 “우리는 유대인입니다. 성경에 십계명에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이 엄한 계명을 우리는 어길 수가 없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이 계명을 따라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밑에 부하들 보고 저 불구덩이의 불을 일곱 배나 뜨겁게 하라. 그러니 장작을 막 집어넣고 해서 불이 활활 타는데 생지옥입니다. 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라. 통째로 묶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마음이 돌아섰으면 돌이켜라. 안 돌이킵니다. 너 잿더미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잿더미가 되어도 좋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이 하나님은 우리를 이 불구덩이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능력 있는 하나님이요 건져내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에 절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을 보면 마음이 떨립니다. 과연 나는 그렇게 하겠느냐. 아이구 하나님 한번만 눈감아 주십시오. 다음에는 힘을 좀 얻어가지고서 용감하게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타협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아, 왕이 명령이 너무 세니까 군인들이 그를 묶어서 불구덩이 곁에 갔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져서 미리 타는 놈들이 한두 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느부갓네살이 던져 넣으니까 깜짝 놀랬습니다. 왜냐하면 대번에 머리털부터 시작해서 옷이 바싹하고 탈 것인데 아 타지도 아니하고 그 세 사람을 묶었던 밧줄이 다 불에 타고 사지백체가 자유롭게 되어 구덩이 속에서 늘씬늘씬 춤을 추면서 빙글빙글 강강수월래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세 사람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네 번째 사람이 함께 와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데 느부갓네살이 보니까 네 번째 사람은 신의 아들 같더라. 누구겠습니까?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사자로 나온 분은 모두다 천사가 아니고 사자로 나오는 분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기 전에 영으로 계셨을 때 그는 불풀무 속에 뛰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바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위해서 그가 뛰어 들어오자 불도 타지 아니하고 힘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왜냐,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십니다. 하지 못할 일이 없어요. 하나님이 하고자 하면 무엇이든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실히 성령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다. 우리가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중에 흐르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이 다가와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으면 파멸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으면 천인이 내 곁에서 만인이 내 우편에서 엎드려 지나니 이 재앙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즉 저가 너를 건지리라 하나님을 안즉 저가 너를 높이리라. 하나님께 간구하리니 하나님이 응답하리라. 환난 때 너와 같이 하여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장수하므로 너를 만족케 하고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에게 평안이요 환난이 아닌 것입니다. 축복을 주는 것이지 저주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정성으로 믿는 증거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도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증거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너무 놀래서 그 불구덩이 곁에 가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여, 나오소서. 이제는 말이 달라진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구덩이 속에서 나왔어요. 내 생각에는 안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안 나오면 어떻게 하겠느냐. 왕이여, 들어와! 안 들어오면 바싹 탈테니까 들어와! 그래서도 느부갓네살이 불꽃 가운데 들왔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바싹 안태우고 반쯤 태워서 내보내면 그가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깝지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걸어나왔습니다. 머리를 만져보고 옷을 냄새 맡아 보고 끌어안아보고 조금도 상처를 안 입었다 말입니다. 무릎을 탁 치면서 이러한 하나님은 우리나라에서 본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그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이제부터 우리 나라에서 누구든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에 대해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비하해서 말하고 조롱하면 그놈은 잡아서 죽이고 집은 거름무더기로 만들어라.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더 지위가 높아지고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분들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너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묻는다면 이 사건을 꼭 말할 것입니다. 두라평지에서 금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불구덩이에 사람을 던져 넣을 때 우리는 불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어요.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네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시험을 치른다면 우리는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시험은 안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쯤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요사이 시험은 간단합니다. 성수주일하는 시험, 엿새동안 일하고 일곱째 하나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시험. 그게 무슨 시험이냐. 그게 다 적은 시험인데 넘어지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그날 등산 가자고... 그날 단풍구경 가자고... 여의도만 나오면 단풍이 천지인데... 단풍구경 가자고.. 골프치러 가자고.. 칠게 하나님 하루만 봐주소. 그렇게 하는 것이 시험에 낙제하고 하나님을 실망케 하는 것입니다. 또, 십일조 문제도 그렇습니다. 십일조를 드려야 되겠는데 월급봉투는 가벼운데 십일조를 드려? 십일조를 드리기가 힘들겠다. 아버지 하나님, 이달만은 그만 빌려 주십시오. 내가 그대로 쓰겠습니다. 신앙상담 온 젊은이 한분이 손에 십일조 봉투를 가지고 나왔어요. 내가 왜 십일조 봉투를 가지고 나왔냐고 하니까 목사님 기도를 좀 해줘야 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내려고 하니까 너무 아까워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한달 동안 내내 피땀 흘려서 일했는데 거기에서 십일조를 하나님께 내니 너무나 아깝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는 하나님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아까운 마음 없이 주님께 십일조를 내도록 좀 축복해 주십시오. 그것 어렵지 않구나. 손 내라. 그래서 손을 얹어놓고 기도하려고 하니까 이 성경 위에서 떨어져서 떱니다. 제가 십일조 내면서 그렇게 떠는 것 처음 봤어요. 내가 그래서 아니 너무 기뻐가지고서 성령이 감동해서 떠느냐. 아까워서 떠느냐고 하니까 아까워서 떨어요. 아까운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칭찬해 준 것은 그렇게 아까워서 성경책 덜덜 떨면서도 십일조를 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는 것이 이겼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 보시니까 십일조 가지고 벌벌 떠는데 어느 것이 이기는가 보자고 나중에 하나님에게 올라오면 야~ 그래 그만큼 아까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네가 십일조를 내게 내놓으니 내가 진실로 30배, 60배, 100배가 되어서 돌려주겠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간단한 시험이지만 성수주일이나 십일조가 시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렇지 아니하면 가까운데 있는 친척이나 이웃에 전도하라. 하나님이 전도해라. 아이구 하나님, 만인을 다 택했다고 했는데 내가 안해도 하나님이 택해 놓은 것 아닙니까? 뭘 내가 자꾸 전도하라고 합니까? 그렇게 변명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구 나는 안 그러는데... 저는 그렇게 했기 때문에... 여러분, 사람들이 많은데 버스를 타고 가는데 버스 안에서 전도하라고 성령님이 자꾸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전도하면 시끄럽다고 뺨이라도 때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말은 안하고 전도하라. 그래서 전도하려고 입을 열면 그렇게 힘들어요. 그런데 저는 청년시절에 우리 교회에 나가는 루피 리처드라는 분이 목사였는데 이분은 50이 넘어서 미국에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한국으로 선교사로 나왔습니다. 그러니 굉장히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이라 그분 밑에서 자랐으므로 그분을 닮아가지고서 저도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할 때 가장 좋은 전도방법이 개인전도인 것입니다. 개인전도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마음에 가장 충격이 많이 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하간 그 다음에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로 보여주는 것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 하나님은 감사의 제사를 굉장히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내 서원을 갚으며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감사는 원망, 불평, 탄식 이 모든 것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요사이 감기 백신을 많이 맞잖아요. 여러분 겨울철에 감기백신은 꼭 맞으세요. 그런데 그 백신주사를 맞고나면 감기가 못 오는 것처럼 여러분 영적인 백신주사는 감사입니다. 감사를 자꾸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원망, 불평, 탄식할 자리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 원망, 불평, 탄식이 싹 사라지는 것입니다. 미움을 이길 수 있는 것도 감사입니다. 내게 굉장히 미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마음속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그 사람 받아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미운 생각이 싹 없어지고 그 사람 잘되기 위해서 축복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강단에 올라오기 전에 내가 별로 감사하기 싫은 사람을 실컷 감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니 내 마음속에 지금도 미움이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이겨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여러분 신앙을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여러분 앞에서 날뛸 때 감사를 하냐 안하느냐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별로 큰 시험을 안 당하지만 이러한 평범한 시험을 늘 당하는 겄입니다. 시험에 하나님은 이기도록 다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빌립을 시험해 보지 않았습니까? 갈릴리의 광야에 나갔을 때 남자만 5천명, 부녀자 기만명이 모여왔을 때 예수님께서 빌립을 부르셔서 빌립아 이 사람들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먹이겠느냐. 말씀했는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는지를 아시면서 빌립을 시험한다 말입니다. 빌립은 시험을 쳐서 졌지요. 하나님, 못 먹입니다. 떡 살 곳도 없고 돈도 없고 사람이 너무 많고 먹일 시설도 없고 못 먹입니다. 못 한다고 해서 시험에 낙제했으나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서 주님께 나와서 시험에 합격한 것입니다. 이런 시험을 우리가 항상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 그런 것을 가지고 시험을 하는데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마음속에 계시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여러분, 할 수 있습니다. 하려고 하면 합니다. 왜냐하면 능력이 여러분에게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로 17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평안이 오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진작에 평안이 귀중한 선물입니다. 감사를 통해서 평안이 마음속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꼭 감사가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감사할 때는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감사할 수 없는 형편에 감사하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더 감사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옛날에 시골에서 공동우물가에 나가면 수도물 퍼올리는 펌프가 있어요. 펌프가 어떤 때는 물이 차 있어서 핸들을 움직이면 물이 퍽퍽퍽 나오는데 어떤 때 가면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물이 한 방울도 안 나옵니다. 그러면 시골 아낙네가 물이 없다고 돌아섭니까? 아닙니다. 물동이 내려놓고 물 몇 바가지 가지고 와서 그 속에 부어 놓습니다. 물을 부어 놓고 난 다음 핸들을 움직이면 퍽퍽퍽 물이 쏵 나옵니다. 그것 해보셨지요? 감사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주위에 다 메마르고 내가 아무리 감사하려고해도 목에 딱 걸쳐서 감사가 안 나오는데 아이구 오늘 감사 안 나오니까 그만 하자. 그러지 말고 감사 안 나오는 조건을 보고서 감사하기를 시작해요. 물을 몇 바가지 붓듯이 몇 바가지 감사를 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하기 짝이 없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뱃속에서 퍽퍽퍽 그 다음에는 감사가 넘쳐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옛날에 기도를 하루에 2시간 많을 때는 5시간 기도굴에 들어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 내게 묻습니다. 2시간 동안 무슨 말을 하느냐. 5시간 동안 무슨 말을 하느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가르쳐다오. 가르쳐 주려면 내가 좀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오래 기도하는 방법을 평신도에게 배웠습니다.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할아버지 한분이 나와서 기도를 하는데 아침에 새벽기도회 나와서 꿇어 앉은 것이 점심때까지 가도 그대로 기도를 합니다. 굉장히 좀 놀랍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살 기어가서 그 옆에서 들었습니다. 나도 좀 배우려고... 아버지 하나님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나중에 내가 화가 나더라구요. 그래서 할아버지, 아이구 놀래라! 왜요? 무슨 기도가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입니까? 무슨 감사하는 조건을 말해야지... 나를 보더니만 젊은 전도사님 나는 북한에서 피난 온 사람입니다. 내 아내를 데리고 자식들 데리고 남한까지 생명하나 안 잃고 찾아온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일만 생각하고 감사해도 끝입니다. 그 다음 남한에 와서 굶주린 사람 많은데 우리는 동대문에서 점포를 해서 시장터에서 돈을 벌어 먹고 살고 있으니 이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이 밥 먹고 살도록... 그런데 우리 식구들이 병 안 들고 사는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비록 여기 달동네에 내가 살고 있는데 교회가 없는데 이 천막교회에 전도사님이 와서 교회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에이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내가 평생토록 천막에 있으라는 말입니까? 그런 말은 아니구요. 천막에서 성공해 나가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나도 한번 해봐야 되겠다고... 그 다음 저도 내가 꼭 해야 될 기도는 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 이제 감사기도 들어갑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기도를 하니까 점점 마음에 감사할게 더 많아져요. 그래서 요사이도 꿇어앉아서 극히 필요한 것은 아는 말로 하고 그 다음에는 감사를 해요. 감사를 실컷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 꼭 하나님 잃어버리지 않고 들어주시기를 원하시면 하나님 드립니다하고 편지를 써요. 보통 기도는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본 교회 4부예배 말씀을 증거하러 갑니다. 모든 주의 종들이 오늘은 다 추수감사 설교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저보고는 추수감사 말고 다른 설교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딴 설교를 할터이니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안 도와주면 나 큰 낭패 납니다. 꼭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 우리 성도들이 모두 다 한 가지씩 하나님의 은혜의 보화를 품고 나가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믿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적으면 내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굉장히 뚜렷해져요. 그 다음 그 편지를 내가 소리 내어 읽습니다. 읽고 난 다음 그 편지를 찢어서 불로 태워 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만 알지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편지해서 감사하고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속에 계셔서 행복해야 행복하지 인간적으로 갖는 행복은 조금 있다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없어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모두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우리가 하나님을 감사하게 되면 하나님을 더 믿게 되고 더 믿게 되면 사랑이 넘쳐나고 사랑이 넘쳐나면 믿음이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하나님을 우리가 믿을 때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을 때 절대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그 이상의 사랑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나를 사랑해 주셨다. 그러므로 나도 절대적인 믿음으로 이처럼 하나님을 믿어보자. 살든지 죽든지 성하든지 망하든지 쇠하든지 믿습니다로 나가보자. 한껏 한번 믿어서 내 자신을 내어 던지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 믿음을 통해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적으면 적은 그릇이고 크면 큰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적은 그릇은 적게 채워지고 큰 그릇은 크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공수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목숨을 내놓고 믿어봐야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우리는 목숨이 상처를 입을까 겁을 내서 맡기지를 못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물에 안 가라앉으려고 허우적 거리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물에 점점 더 가라앉고 죽거나 살거나 물에다 몸을 맡겨 버리면 뜨는 것처럼 신앙도 한 가지인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내어 맡기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죽으려고 발버둥을 치면 점점 더 가라앉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으로 하나님을 믿어보면 하나님이 여러분에 대해서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을 해야만 될 그러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언제냐 하면 심장병원을 세우기 위해서 평양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평양에 다 들어가는데 내 마음에 늘 불안해요. 왜냐하면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대표적으로 북한을 공격을 하고 김정일이를 욕을 하고 그렇게 했는데 내가 우리 성도들을 모시고 아시아나 비행기로 평양에 내릴 때 내가 성하게 내려 오겠는가. 그런 마음이 생겨요. 그래도 주여, 믿습니다 하고 갔는데 다 호텔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 조오련 위원장이 조오련이라고 해요. 조오련씨가 거기 공산당에서는 높은 사람입니다. 안기부장관과 같습니다. 그 사람이 나보고 사무실에 좀 가보자고 그래요. 그러나 즉각으로 내가 마음에 느낀 것이 내가 잘못 왔구나. 하나님, 그래도 하나님이 저보고 북한에 심장병원을 세우라고 하시므로 하나님 명령을 따라 왔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날 돌보아주시옵소서. 그때는 마음이 위급하니까 조그마한 증거도 내놓고 싶어요. 하나님께 잘보이려고... 그래서 앉으니까 그분이 차를 내게 대접하면서 우리가 여기에 있지만 남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다 알고 있어요. 조목사 밥상에 올라가는 반찬까지도 헤아리라고 하면 헤아립니다. 그러면서 나보고 하는 말씀이 목사님이 시청 앞에서 반공법 폐지하라는 연설을 할 때 우리는 북한에서 다 들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공산주의를 매도하는 설교를 하는 것도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당신이 평양을 와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성령이여 도와주시옵소서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대답할 것을 모르겠으니 도와주소서. 그래서 성령님이 도와줄 것 같이 마음에 감동이 와서 말을 했습니다. 맞았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말하는 보수 꼴통입니다. 보수 중에도 보수요 방공법 지지도 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발언을 가는 곳마다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에 하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으며 사람은 정치의 제도를 초월한 사랑을 하므로 내가 북한에 왔습니다. 북한의 정치와 제도를 바꾸려고 온 것도 아니고 혁명을 일으키려고 온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려고 왔습니다. 여기 많은 병원이 있지만 심장전문병원은 없어서 수많은 심장병 환자가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북측에 있는 동포와 그 자녀들이 죽어가는 것을 그대로 볼 수가 없어서 사랑으로 말미암아 정치나 사상을 초월해서 북한에 왔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아차, 잘못 왔구나 생각했어요. 그러나 곧장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에 북한에 왔고 여기에서 내가 못 내려가더라도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못 내려갔지 정치 때문에 못 내려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저를 건져줄 줄 믿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우상에 절 안 하므로 불구덩이에서 건져냄 받은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올라왔으니 심장병 세워 놓고 내려가도록 하십시오 하니까 허허 웃으면서 웬지 조목사님에게 적개심이 없습니다. 여기서 병원만 잘 세워 주십시오. 그리고 과연 내보내줄까 생각했는데 일어나더니 내 손을 잡고 호텔로 갑시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며칠 동안에 하마나 감옥으로 가려나 자꾸 마음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되는데 부정적으로 생각을 했는데 그 부정적인 생각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여, 평양에 온 것을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평양에 온 것 감사합니다. 오늘 평양 안기부장관을 만난 것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한국말에 그저그저가 참 좋아요. 다른 말을 하려면 복잡하지만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도움으로 지금도 여러분 앞에 서있으니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나는 어릴 때 우리 어머니가 전지전능한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하시면 못할 것이 없어요. 내가 어릴 때 가만히 보니까 할머니에게 꾸중 들을 때도 어머니가 치맛자락으로 나를 둘러싸면 오케이 괜찮고 아버지가 무엇 잘못했다고 꾸짖으면 왜 애를 데리고 자꾸 꾸짖느냐고.. 이리 오너라! 그러면 어머니가 나를 싹 치마 밑으로 감추면 피난처가 돼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어머니가 우리 집안에서는 제일 파워가 있구나. 그래서 물을 퍼오려면 우리는 높은 집에 있는데 밑으로 내려가서 논 뜰을 지나가면 우물이 있어요. 우리 어머님께서 계속 어떤 때는 용기야, 저기 가서 물 한 주전자 퍼오너라. 얼마나 겁이 나는지 밑에 내려가면 꼭 귀신이 나올 것 같아요. 거기 귀신 나오는 곳에 무사히 가려고 뛰기 시작하면 내 발걸음에 겁이 나서 더 뛰어요. 그러면 비둘기가 화닥딱 하든지 산토끼가 뛰어나오든지 하면 아주 기절초풍을 해요. 그런데 어머님이 물 길러 갈 때 용기야, 같이 가자 하면 어머니하고 같이 가면 얼마나 편안한지 모르겠어요. 어머니가 날 사랑하는 것을 알고 어머니가 전지전능한 줄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어머니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토끼가 나와도 비둘기가 날라가도 귀신이 나와도 까딱없다. 그래서 같이 물을 길러서 와도 귀신도 안 나오고 무서운 짐승도 안 나오고 편안하게 왔다 갔다 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나는 요사이 생각하면 어린 아이 때 모를 때 어머니가 있어도 모든 일에 담담했는데 어머니보다 더 나은 전지전능하신 분을 알게 되었어요. 여러분 누군지 아시지요?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편 118편 6절에 “야훼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누구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잘 섬기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어떤 순간에도 담대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학자 벵겔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외의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방패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시는데 정말 믿어요? 증거를 내세우세요. 하나님이 어떻게 여러분을 사랑합니까? 증거 있어요? 에~ 소리가 작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증거가 뭡니까?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잊어버렸네. 큰일 났구나. 마귀가 와서 하나님이 기도를 해도 너의 기도에 귀를 안 기울여 주신다. 그러면 야 이놈아, 나에게는 증거가 있다. 독생자를 주신 증거가 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노라. 그러면 얼마나 파워풀합니까?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저 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도 50년 동안 목회하면서 기도했는데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셔서 지금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응답 안 해주시는 것보다도 응답해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기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기적을 체험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