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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24. 주일설교 운명을 결정하는 믿음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히 11:29) <서론> “운명을 결정하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모세는 그의 조상 야곱이 온 가족을 다 거느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고센땅에 산지 430년 만에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이민을 간다 해도 굉장히 힘든 일인데 430년 동안 그 조상이 마련한 고센땅에서 살다가 민족 전체가 대이동을 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오게 된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많은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졌는데 그 앞에 첩첩히 어려운 것이 쌓여 있습니다. 홍해 바다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애굽에서 가나안땅에 들어오는데 홍해 바다가 막혀 있어요. 그래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 앞에 와서 진을 치고 홍해바다를 건널 궁리를 하고 있다는 말을 애굽 바로왕이 듣고 애굽왕으로서는 이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 우리가 노동력이 부족한데 값없이 노동자들을 사용한 우리나라가 430년 후에 다 자기 고향으로 되돌아 가도록 내버려 둘 수가 있느냐. 잡아 와야 한다. 대군대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잡아라. 그러니 애굽 군대들이 전부 사통팔방으로 진을 치고 이스라엘을 잡으러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 군대들이 몰아쳐오고 앞에는 창열한 홍해바다가 가로 막았습니다. 여러분이 그들 위치에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돌아보니 애굽 군대들이요 앞을 보니 망망한 대해요, 뭘 기대하겠습니까? 죽는 것밖에는 없어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끌고 오는 모세도 굉장한 어려운 고비에 처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시리니 잠잠히 믿고 기다려보자.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 이 많은 백성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건너게 한단 말인가. 우리가 죽은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해도 하자는 사람이 있으면 하지 말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반합이 언제나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로 14절에 보면 모세는 말하기를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것이 믿는 사람이 보통 말하는 말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되면 제일 먼저 마음에 느끼는 것이 두려움인 것입니다.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휘몰아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는 것을 보라. 너희가 보는 애굽 군대를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 승리를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 가지고 크고 적은 문제가 있지요? 기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다린다는 것 굉장히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 기다렸다가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제일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가 중대한 문제가 있으면 모든 일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기다리고 기도하면 마귀가 와서 기다려봤자 별도리 없다. 너희는 죽었다. 시간이 있을 때 빨리 항복해라. 기다리는 것이 뭐냐. 못 기다립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앞서서 나가다가 낭패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복하고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2절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러므로 항복해서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몰죽음 당하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그러니 항복하자. 모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렸다가 하나님 섭리를 따라 건너가자는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복하자는 것입니다. 그냥 죽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가슴속에도 두 사람이 논쟁을 합니다. 조용기의 속사람이 있으면 조용기의 겉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무슨 문제를 당하면 기도하면 조용기의 속사람은 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을 봐라.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적은 문제를 당하면 하나님이 적게 역사하시고 큰 문제를 당하면 크게 역사하신다. 가만히 서서 기다려보자. 그러나 겉사람 조용기는 야야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상황을 한번 봐라. 군대들이 둘러 진치고 있고 앞길이 막혔는데 무슨 잔소리 하느냐. 이번에는 네가 틀렸다. 바깥 조용기야 항복하자. 살길을 취하자. 여러분 언제나 두 사람이 여러분 속에 갈등을 하고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여러분이 결정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항복하러 가자 야단법석인데도 불구하고 모세는 탁월한 믿음과 지도력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서서 한 두 번 기적으로 이끈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모세의 절대적인 지도력에 이끌려서 그들은 이성과 감정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활에도 전쟁은 하나님이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의 전쟁은 야훼께서 싸워 주신다. 모세가 하나님이 싸워 주실 터이니 가만히 기다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이스라엘에게는 홍해가 갈라져 대로가 나타나면 큰 기적이 되고 애굽 군대에게는 죽음의 대로가 되는데 모세는 하나님이 기적으로 홍해를 갈라줄 것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서 육지로 변화 시켜서 걸어가게 하든지 안 그러면 홍해 바다 위에 3백만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보면 물이 다 갈라졌습니다. 신약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위로 걸어오라고 한 것입니다. 물이 갈라져서 땅위로 걸어오든 물위로 걸어오든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9절에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홍해가 쫘악 갈라지고 모세가 지팡이를 뻗으니까 갈라진 그 육지가 드러나므로 그 위를 걸어서 걷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저것 봐라. 희한하게 안 갈라지던 홍해가 갈라지는 것 보니까 지금이 보름이냐? 물이 한 곳에 몰리게... 좌우간 과학적으로 봐서 무슨 천재지변이 일어나는가 보다. 우리도 따라 가 보자. 그리고 따라서 물 한가운데 왔을 때 모세가 지팡이를 내미니까 물이 싸악하고 도로 원상복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완전 무장을 하고 창과 칼을 차고 들고 있는 그들이 물에 안 가라 앉고 있을 수 있습니까? 돌멩이 가라앉듯이 뽀르르 뽀르르 전부 다 가라앉았어요. 박수치고 있는 앞에서 가라앉아 죽어버렸다.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한 결과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체험을 많이 하게 되고 또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우리들이 체험하는 출애굽 사건들 우리도 애굽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애굽이 무엇이냐 세상살이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점령하고 마귀가 우리를 다스리는 애굽인 것입니다. 애굽에는 죄의 바다가 넘실거리고 허물의 바다가 넘실거리고 병의 바다가 넘실거리고 저주와 가난과 배고픔의 바다가 넘실거리고 죽어서 지옥을 건너가는 지옥의 바다가 넘실거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가야만 살 수 있는 바다가 홍해입니다. 건너서 바다를 지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주변에 있는 이 바다를 건너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바다가 넘실거리는데 그것을 이겨내야 되는 것입니다. 허물의 바다, 병의 바다, 마음과 육체의 병의 바다, 그 다음 저주의 바다, 헐벗고 굶주리고 낭패하고 실망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저주의 바다, 그 다음 죽음의 바다, 죽음 저 건너편에 영생의 가나안 땅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다를 건너가야 되는데 이 바다를 어떻게 건너갑니까?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머리가 총명하고 세속적으로 훌륭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절대로 바다는 갈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바다 안 갈라진다고 하는데 바다가 갈라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강단에 서 있는 바보 같은 조용기하고 그 말을 듣고 있는 여러분입니다. 바다가 갈라진다고.. 아멘?(아멘) 여러분을 보고 하나님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리면 바다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죄의 바다가 갈라지고 허물의 바다가 갈라지고 병의 바다가 갈라지고 저주의 바다가 갈라지고 지옥의 바다도 갈라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바다가 갈라지게 하기 위해서 모든 죄와 추악과 불의, 저주, 절망과 죽음을 한 몸에 걸머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찢어져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그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원수의 바다를 갈라버리셨습니다. 우리가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면 주님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다 이루었다. 걱정하지 마라. 네 앞의 바닷물이 갈라진다. 이사야 53장 4절로 12절에 보면 예수님이 오시기 7백년전에 이사야가 예언을 했습니다. 그 예언 한번 읽어볼까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우리 때문에 고난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우리 때문에 허물을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죄 사함을 위하여 거룩함을 주시기 위해서 병 고치기 위해서 저주에서 해방되고 행복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영원한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 대신 고생했는데 그것 주님의 은총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누리지 못하지요. 주님께서는 오늘도 십자가에 매달려 고난당하신 그 큰 공로를 통해서 여러분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삶을 살게 하려고 간절히 간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2.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죄의 종이 되고 불의의 종이 되고 수없이 많은 병의 종이 되어서 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가난과 헐벗음과 물질적인 어려움으로 가난의 고통을 당하고 죽음의 괴로움을 당하고 이런 멍에를 매고 고통당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우리가 멍에를 매고 고통당하는 것 주님은 몸서리칩니다. 너희는 나의 멍에를 매고 나에게 배우라고 했지 마귀의 멍에를 걸머지고 마귀를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멍에를 깨뜨리기 위해서 마귀의 멍에를 걸머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마귀의 멍에를 깡그리 다 부서뜨리고 만 것입니다. 마귀가 사용하는 종의 멍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박살을 내 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가 우리를 묶고 있는 멍에인 정사와 권세는 철폐된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로 15절에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성경구절 그냥 봐서는 힘듭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여러분, 성경에 계명을 사용해서 이 계명대로 네가 죄를 지었으니 너는 내 편에 있지 하나님 편에 있지 않다. 너는 계명 봐라. 죄가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마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어겼지 않느냐? 죄를 어겼으니 너는 죄인이요 너는 내 부하가 아니냐. 그러니까 죄를 가지고서 우리를 막고 있고 그 다음에 모든 세상 형식과 세상살이를 가지고서 우리를 막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아서 그 죄의 멍에를 다 꺾어버렸습니다. 죄를 다 청산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가지고서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에게 큰소리하던 마귀의 권세를 다 짓밟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의 구경거리고 삼았다. 봐라~ 내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서 온갖 짓을 다 하는 놈들을 잡아서 세상에 구경거리고 만든다. 어떻게 구경거리고 만드느냐. 주님의 백성들이 나가서 마귀를 쫓아내고 마귀를 쫓아내며 귀신을 보고 나오라고 하니까 귀신이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자유를 주므로 이제는 귀신들이 권세와 능력이 없다. 온 천하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고 승리를 주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는 죄의 멍에, 세속의 멍에, 질병의 멍에, 가난의 멍에, 실패의 멍에, 죽음의 멍에를 메지 말라. 멍에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고 기쁨과 소망과 사랑과 즐거움을 가지고 살지 멍에를 메고 고통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종교를 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시면 자유와 해방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이나 집안이나 교회나 예수님 계신 곳에는 자유와 해방이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있는 곳에는 속박과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압박과 괴로움이 있는 곳에는 마귀가 있고 해방과 자유가 있는 곳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 이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있든지 여러분은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가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싸움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대신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6.25때 우리가 싸웠으면 우리 힘으로 싸웠으면 졌습니다. UN 16개국에서 군대가 와서 우리를 위해서 함께 싸워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긴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귀와 그냥 싸워서는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싸워서 마귀를 이겼기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 승리가 우리가 된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27절로 31절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 보십시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야훼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야훼,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힘을 주셔서 곤비하지 않고 피곤하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서에 보십시오. 사망의 골짜기에 뼈다귀가 꽉 들어찼는데 하나님이 에스겔아 이 뼈다귀 살겠느냐? 나는 몰라요. 주님이 알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이 뼈다귀를 향해서 생기에게 명령을 하라. 성령의 생기야 불어 들어와 이 뼈다귀를 살리라. 확~ 생기가 불어오니까 뼈다귀들이 다 서로서로 엉겨붙어서 큰 군대로 살아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성령이여 오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분들에게 다 불어와서 생기가 충만하게 하소서. 성령이 여러분 속에 이제 들어오십니다. 왜냐, 하나님이 하시라는 것을 제가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로 14절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신 것을 내가 알면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감사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가 승리로운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항상 해야 될 것은 예수의 죽음은 내 죽음이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을 내가 가슴에 끌어안고 등에 걸머져야 되는 것입니다. 3. 항상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라 왜,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나 나를 위해서 죽었으니까 예수 죽음 내 죽음 아닙니까?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전부 우리 때문에 당했으니까.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 죽음 내 죽음이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 죽음은 내 죽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쳐다보고 예수님 몸 찢고 피 흘려 우리 죄를 대신한 것은 예수 죄를 위해 죽은 것은 내가 죄를 대하여 죽은 것이고 예수님이 허물을 짊어지고 죽은 것은 내가 허물을 다 청산하고 죽은 것이고 예수님이 병을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당하는 것은 내가 병들어서 고통당할 것 내가 암에 걸려서 신장병에 걸려서, 위장병에 걸려서, 부인암에 걸려서 온갖 고통으로 내가 죽어갈 것을 예수님이 대신 걸머졌으므로 나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수님이 걸머졌으므로 나는 죽음을 걸머질 필요 없다. 헐벗고 굶주려서 배고픈 사람들 예수님이 대신 헐벗고 굶주리고 배고팠기 때문에 대신 짊어지고 갔고 죽음도 예수님이 짊어지셨으므로 우리 매일 매일의 신앙생활에 기도할 때 예수의 죽음을 내가 끌어안으면 예수님이 죽음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살아난 그 능력도 내 것으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예수님이 짓밟고 부활했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항상 예수 죽음을 생각하면 예수의 생명도 여러분의 몸속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피곤하고 고달프고 괴롭고 슬프고 외로울 때 주님 앞에 고요히 앉아서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 그렇게 주님께서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죽으신 즉 그 죽음이 내 죽음 아닙니까? 주님이 내 죽음을 가지고 그렇게 하셨으니까 나는 이 죽음을 벗어버리고 예수님 부활의 생명을 지금 받아들입니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보고 믿고 말하면 여러분 것이 되는 것입니다. 보고, 예수님 죽음을 바라보고 내 죽음도 예수님 것이라는 것을 바라보고 그 다음에 부활은 내가 믿고 내 것이라고 믿고 그리고 말하는 거에요.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나는 살아났다. 나는 성령이 계셔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되었다. 이 말을 수십번 수백번 외워 보십시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기독교는 여러분 큰 천상의 생명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타나는 변화가 있어야 기독교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종교적인 의식이나 형식만 가진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늘나라 생명이 들어와서 변화가 되어야 돼요. 하나님의 자녀들로써의 굉장한 체험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바라보고 그것을 내 것으로 몸에 짊어지고 생각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져야 돼요. 예수님이 내 죽음을 걸머졌으니 예수님의 죽음이 내 죽음이고 내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이라고 생각이 달라지고 그리고 난 다음에 이를 통해서 내게 부활의 생명이 다가온다는 희망찬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희망찬 꿈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정말로 인생이 달라지지 아니하면 재미가 없어요.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우리가 믿으면 어떻게 될 것이 믿음 속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8) 인간적으로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다 될 수 있는 것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안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안된다는 것 그러나 나는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로 못 간다는 것에 나는 간다고 믿습니다. 왜 되느냐.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나 혼자 살면 안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같이 살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신앙이라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이 예수 믿는 신앙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백부장이 자기 종이 중풍병에 걸려서 죽어갈 때 예수님 찾아 나와서 내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서 죽어가니 와서 고쳐달라고... 자기 부하를 보내서 그렇게 말하니까 부하가 예수님께 부탁하니까 내가 가서 고쳐주마. 그런데 그 종이 앓고 있는 집에 가까이 오는데 자기 상사가 뛰어나오더니 주님, 우리집에 감히 들어오기를 내가 감당 못합니다. 너무나 위대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집에 들어옵니까? 말 한마디만 하십시오. 나는 군대에서 나는 상사쯤 되니까 내 밑에 있는 놈 보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데 주님이야 일부러 올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하늘의 임금인데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올 테니 내 종을 보고 나으라고 말만 한마디 해주십시오. 그러니 주님이 하늘을 쳐다보고 야~ 유대인보다 더 예수 잘 믿는 로마 사람이 있구나. 네 믿음대로 되라! 그 집에 가보니까 하인이 멀겋게 살아 일어나 있거든요. 사람으로써 안되는 것 여러분 믿으면 그대로 되는 것이니까요. 적게 믿으면 적게 되고 많이 믿으면 많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2년 동안 혈루병 앓은 여자 보십시오. 열 두해 동안 있는 약 없는 약 다 쓰고 있는 치료 없는 치료 다 받아도 안되어서 죽어가는 혈루병 앓은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되 낫는다고 믿어서 예수님이 지나갈 때 옷자락에 손가락 대니까 즉시 혈루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 옷자락에 손댔다. 그 여인이 나가서 내가 손댔습니다. 그래 네가 믿음으로 손댔으니 나았다. 깨끗이 나아서 건강하게 살아라. 그대로 나은 것입니다. 믿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어떻습니까? 가나안 여자는 유대인하고 거리가 멀기 때문에 개처럼 취급받고 절대로 안 놔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나안 지역을 지나가다가 스루보니게 여인이 와서 내 딸이 귀신 들려서 미쳤으니 좀 고쳐 달라고 그러니 예수님이 유대민족에 은혜를 줄 때가 왔지 아직 이방민족은 은혜 받을 때가 아니니까 못 주겠다. 이방 개들은 아직 안준다고 하니까 그 부인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더니 옳습니다. 개들이 주인이 밥상에서 먹어서는 안되지요. 그러나 개들도 흘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주님이 탁 무릎을 쳤습니다. 야~ 네 믿음이 크도다. 여러분 아무리 사람이 야박해도 개들이 상 밑에 돌아다니면 부스러기 주지 않습니까? 우리 집에도 개를 키워 보겠느냐. 그래서 우리 아들이 주먹 만한 개를 갖다 줬어요. 그렇게 적은 것 처음 봤어요. 주먹 만하니... 나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오면 자꾸 밀어내는데 밀어내도 자꾸 따라붙는데 희한한 일이에요. 자기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안 달라붙고 내게는 자꾸 달라붙어요. 그런데 부스러기는 내가 던져주거든. 내가 먹으면 밑에서 날 쳐다보고 자꾸 이래서 부스러기 주면 받아먹고... 개들도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예수님이 네 말이 옳다. 아무리 개에게 아무것도 안준다고 해도 개가 와서 달라고 이러면 부스러기는 주지. 집에 가봐라. 그래서 집에 가보니까 엄마~ 빨리와~ 어이구 네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 몰라~ 조금 전에 귀신이 나가고 건강하게 되었어. 할렐루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나님이 반드시 살아계신 것을 알고 쉽게 물러가지 말고 끈질기게 믿고 나가면 유대인도 이방인도 모두다 하나님의 치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너무 이야깃거리로 듣고 실제 믿음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 안 생겨납니다. 사람들은 소설을 좋아합니다. 소설은 진짜가 아닌 것입니다. 거짓말을 적어가지고서 읽게 하는데 실제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멉니다. 실제 일어난 일을 적어서 읽으라고 하면 재미가 없어서 안 읽어요. 나는 가끔가다가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소설적은 것을 읽어 봅니다. 자기들은 나에게 괴로움을 가하겠다고 소설을 적는데 소설도 어느 정도 소설을 적으면 믿을 수가 있어요. 완전히 거짓말로 적으면 그것은 개똥 소설입니다. 읽을 필요도 없어요. 사실과 소설이 다릅니다. 북한에서 선전하는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서 적은 것을 보면 소설이지요. 북한이 낙원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소설을 적어서 내주기 때문에 우리가 읽어보고 은혜를 못받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도 북한에서 하면 소설로 듣습니다. 여러분은 북한에 안가봐서 모르는데 저는 북한에 갔다가 일주일 동안 있다가 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여러 번 물은 것이 이 북한 낙원 땅에 들어와서 보니 어떻습니까? 한국과 같이 헐벗고 굶주리고 자유가 없는 나라에 살다가 조국에 오니까 좋지요? 좋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안 좋다 하면 여기 좀 좋을 때까지 있다가 가십시오 하면 더 절단이 날 것이고 진리가 우리를 변화시키지 소설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은 소설이 아닙니다. 성경을 소설로 알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참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소설을 읽듯이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영과 혼을 자르고 진리를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해주는 것이 성경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말을 말씀을 따라서 변화를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말을 자꾸 부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지 않으면 큰 패배를 당하는 것입니다. 영적 애굽은 홍해에 장사 지내버리고 가나안으로 향한 새로운 마음과 말을 하십시오. 여러분 이 세상에 죄, 불의, 추악, 저주, 절망, 죽음, 영적인 애굽은 예수님을 통해서 다 홍해수에 던져 버리고 다 던져버리고 여러분 새사람이 되셨으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새말을 하십시오. 나는 축복받았다. 나는 성공한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행복하다. 천국이 내 것이다.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말을 하시게 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선한 말을 하면 듣는 사람들도 마음에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는 말이 여러분의 운명을 변화시킨다는 큰 기적을 내가 늘 말하는데 그것을 반드시 시행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쫓아서 모든 꿈을 갖고 그것을 기적을 믿습니다. 안 되는 것을 되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생애 속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발 새해에는 여러분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꿈을 꾸십시오. 새해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꿈꾸십시오. 꿈은 꿀 수가 있습니다. 왜, 그것은 내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 기도하면서 꿈을 꾸고 그 다음에는 기적을 믿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믿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그 말이 백번도 하고 천 번도 하고 계속해서 말하면 그 말대로 창조적인 역사가 여러분 환경 속에 크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이 해가 지나가기 전에 내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말할 것이냐 적으십시오. 그냥은 자꾸 잃어버리는데 종이를 내어서 내가 무엇을 꿈꿀 것이냐 1,2,3 적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나는 이런 어려운 일을 믿습니다 하고 적고 말을 내가 어떻게 할 것이냐. 적으십시오. 그래서 여러분 가장 가까이 경대에, 화장실에, 수첩에 적어서 늘 펼쳐서 하루에 몇 번씩 읽어보고 지내면 그것이 삐약삐약 하면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병아리가 깨어나듯이 여러분 생활 속에 깨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50 평생이 넘도록 하나님이 그러한 놀라운 세계를 허락한 것을 체험하고 느꼈습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체험을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이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를 흘리면서 다 이루었다. 이제 속 시원하다. 주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지으시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다 이루셨다고 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서 다 이루어서 이제 좋은 것만 남은 것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예수님이 여러분 보고 내가 다 이루었다. 주님이 이제 우리 보고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고통당하면 내가 다 청산했다. 병은 내가 다 고쳤다. 짐은 내가 다 걸머졌다. 삶은 죽음을 내가 다 청산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축복만 남아있지 여러분이 스스로 죄짐을 짊어지고 불의를 짊어지고 병의 고통을 감당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죽음의 고통에서 지옥에 빠지고 이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 박수를 치십시다. 이제 여러분이 믿기만 하면 주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서 다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생활에 나타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어도 역사는 합니다. 주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하고 꾸짖었지만 믿음이 없는 자여라고는 꾸짖지 않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적어도 믿으십시오. 믿으면 적은 기적이 일어날 따름인 것입니다. 큰 믿음은 큰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여러분 생명의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생각이 꿈을 낳고 꿈이 믿음을 낳는 것처럼 생각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꿈을 갖지요. 대로우 밀러(Darrow L. Miller) 목사님은 국제기아대책기구 부총재로 전 세계에서 가난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수십 년 간 도왔던 사람인 것입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는데 그가「생각은 결과를 낳는다」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그는 가난의 원인이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데 그들의 생각과 사상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아대책에 관한 일을 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가난한 국가는 가난한 이유가 있고, 성공하는 국가는 성공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에 있는데 가난한 나라에 들어가서 아무리 돈을 빌려주고 자원을 대주어도 부자가 못되는 것은 결국 알아보니까 사람들의 마음에 운명론에 붙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우리는 운명적으로 못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팔자가 못살게 되어 있으니 아무리 해도 안된다. 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도와줘도 잘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팔자에 우리는 못살게 되어있다. 나는 살 수 있는 노하우가 없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기 전에는 잘 살지 못한다. 그러면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은 새마을 운동을 통해서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에 잘살게 되었다. 새마을 운동을 통해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에 한국에 국제적인 원조도 오고 차관도 오고 돈도 빌려주고 다 그것을 가지고 잘 살게 되었으므로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 일어난 것처럼 마음을 변화시키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고는 가난한 나라를 절대로 부요롭게 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이 결론을 그렇게 내렸습니다. 요번에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번 말했지만 세계 경제학자들이 서울에 와서 회의를 할 때 중국 북경대학의 경제학 교수가 한 말이 언제나 중위국에서 상위국으로 잘살게 된 나라마다 자기가 조사해 보니까 마음에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이더라. 예수를 믿어서 왜 잘되느냐. 좋은 하나님이 계시므로 좋게 해준다는 믿음을 갖고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한 나라 사람들은 대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기독교 세계관의 나라들은 자원도 부족하고 형편이 열악해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로우 밀러 목사님은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생각은 결과를 낳는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생각은 결과를 낳는다. 나는 잘 산다. 잘사는 결과가 나타난다.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생각이 달라져야 인생이 달라지고, 나라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각은 십자가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의롭게 살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허물이 많은 것이 사라지고 나는 경건하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대로 되는 것이고 병 안 든다. 병에서 낫는다. 건강하다고 생각하니까 병이 낫는 것입니다. 여러분 병이 들으면 너무나 무시무시한 병이 들어서 죽는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나는 이 병이 몸에 왔으나 낫는다. 겁날 것 없다. 그렇게 생각을 바꿔 먹으면 여러분 병이 낫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잘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잘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식물학자가 증명한 것처럼 토마토가 한 나무에 수십개 열리는 토마토에 그가 생각을 달리 했습니다. 그가 심어놓고 난 다음에 나의 토마토 나무에는 수백개가 열린다. 잘된다고 했는데 온 세계 식물학자들이 보는 앞에서 수십개 열리는 토마토가 수백개가 열렸어요. 그것 어떻게 되었느냐. 토마토가 열릴 때마다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토마토야 많이 열려라. 주렁주렁 열려라. 까짓껏 수백개 열려라. 그렇게 자꾸 말을 해주고 하니까 토마토가 생각이 달라져서 그렇게 많은 토마토가 열렸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집안에서 언제나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큰 역사를 나타내시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만 여러분 모두는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겉사람은 제삼차원의 세계 속에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지만 속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4차원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3차원의 인간 속에 중생한 4차원의 성령이 역사하는 여러분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여러분 기도를 통하여 속에 있는 성령이 나타나서 항상 기적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겉사람 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사람밖에 없는데 여러분은 육체 속에 거듭난 신령한 사람이 들어가 있고 신령한 사람이 영적인 4차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통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여 주셔서 아름다운 결과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루 하루가 향상하고 발전하는 여러분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