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5. 주일설교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야훼여 주는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시 91:1-16)

<서론>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매일매일의 삶 속에 하나님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만나게 해주시고 도움을 베풀어 주실까? 간단히 우리 마음속에 깨달아 아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에게 무슨 도움을 어떻게 줄까 모를 때 우리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가지고 나오면 간단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 사함을 주시고 거룩하게 해주시고 병 고쳐 주시고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천국영생을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을 믿으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다. 그 진리만 간단히 알아도 우리가 기도하고 믿고 나가는데 거대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신속히 주님이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시는가를 알고 그 지식을 따라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기도하는 것이 굉장히 효과가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라고 말하면 우리 마음속에 피난, 전쟁에서 피해서 안전한 지역으로 나가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믿고 말하면 하나님의 은총이 마음속에 크게 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매일매일 주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마음속에 깨달아 알고 나가야 합니다.

<본론>
1. 야훼는 나의 피난처
야훼는 나의 피난처라는 것을 성경이 강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난처, 피난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일정 36년 동안 속국으로 있을 때 전쟁 말기에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피해서 시골로 피난해 갔습니다. 폭탄이 떨어져도 살 수 있게 되기 위해서 인구가 조밀하지 않은 곳으로 피난 갔습니다. 6.25사변 때 남부여대하고 모두다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평화로운 곳에서 살려고 한 것입니다. 피난처라는 것은 큰 환난이 다가오는데 그것을 피해서 조용한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삶의 전반적인 환경에서 공격을 받고 고통을 겪게 될 때 피난처 되신 하나님을 마음에 알고 그렇게 바라보고 믿고 외치면 환난에서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를 하느냐.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라면 우리가 마음속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방패가 되시고 손방패가 되셔서 위험에서 지켜주는 것을 그려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그려보고 그리고 그렇게 된다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기적을 전제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여러분을 피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 나는 빈 손 들고 원수 앞에 내쫓긴 바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다. 보고, 마음에 기적을 의지하고 입술로 고백하면 기도가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면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적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는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신 것을 입으로 시인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알고 말씀의 토대에 서서 여러분이 기도하면 기도가 굉장한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절로 2절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우리의 요새요 우리의 의지하는 하나님이라 해도 좋은데 하나님과 나와의 긴밀한 관계를 생각해서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만리장천 멀리 계시지 아니하시고 오늘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강조하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된다. 미국에는 사이클론이라고 해서 광풍이 불면 온 도시가 날라가 버리는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힘으로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도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생을 살면 이런 광풍이 다가옵니다. 정치적인 광풍, 경제적인 광풍, 생활에 다가오는 광풍, 놀라운 광풍이 다가올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광풍을 막아주는 큰 방패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그리고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을 마음에 믿습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그 다음 말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광풍을 피하는 곳이다. 나에게는 어떤 광풍이 불어와도 겁날 것 없다. 하나님 같이 계신다. 그 간단한 기도가 굉장히 효과를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냥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주여, 붙들어 주시옵소서. 촌놈 같은 그런 기도하지 말고 좀 배워서 아는 기도를 하면 굉장히 힘이 있어요.
시편 91편 3절로 8절 우리 한번 같이 읽어 보십시다.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으면 이와 같은 광풍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밤에 찾아오는 공포, 한밤중에 무서운 것이 다가오는 공포, 낮에 계획적으로 싸워서 적이 화살을 쏘아서 가슴에 날라오는 화살,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 빌딩이 무너지든지 다리가 무너지는 재앙, 이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피할 곳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살면서 피난처가 내게 있는 것은 굉장히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느냐. 환난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난처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면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져주시는 것만 해도 놀라운 것입니다. 새 사냥꾼이 새를 올무에 걸어서 잡아서 요리해 먹습니다. 시골에 가면 겨울에 단백질 어디에서 얻느냐. 우리 어릴 때는 단백질을 얻을 곳이 없어요. 새를 잡아서 화롯불에 구워먹고 힘을 얻습니다.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가 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귀가 올무를 던져서 잡아서 요리해 먹으려고 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그 올무에서 피하게 해주시고 극한 전염병에서 피하게 해주신다.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는데 그 다음 폭우를 가리우는 곳이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폭우는 무서운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비가 쏟아져서 댐이 터지고 도시가 떠내려가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폭우를 가리우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할 때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그 폭우를 가리워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 사건이 터지면 폭우가 쏟아지듯이 터지는 것입니다. 욥의 환난을 보면 집이 무너지지 애들이 다 무너진 짚더미 속에 깔려서 죽지, 마누라가 욕을 하고 나가지, 몸은 병들어서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없지, 환난이 엄청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만일 욥이 그것을 가지고 탄식을 했으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그를 돌보아주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환난의 폭우를 가리워준다고 믿고 시인하니까 하나님이 그를 건져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풍을 피하고 폭우를 가리우고 그 다음에는 인생에 지치고 피곤하고 고달픈 생활에서 냇물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른 땅에 냇물 같은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생명수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3절로 1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사마리아 여인보고 한 말인 것입니다. 실제 사마리아에 있는 물은 퍼서 마시면 또 목이 마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목마르지 아니하다. 삶에 만족하게 된다. 행복하게 된다. 평안하게 된다. 기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 참 희한한 것은 우리가 그냥 믿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신앙이 우리의 생활 속에 실천적으로 체험되는 것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이 예수님이 우리의 치료가 된다고 성경에는 우리가 읽고 있는 것입니다.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고 하니까 우리가 눈을 감고 예수님이 의사로써 오셔서 나에게 치료를 해주시는 모습을 상상을 합니다. 수술을 하든지 주사를 놓든지 그렇지 않으면 반창고를 붙이시든지, 주님이 치료해 주시는 모습을 마음속에 생각해보고 꿈꿔보고 여러분이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이것을 이루어 주는데 인간 상상을 초월해서 기적적으로 이렇게 치료해 주신다. 그러므로 나는 나았다. 나는 건강하다. 내가 상상하고 건강하다고 외치면 치료의 능력이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상상력,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과 상상력은 떼낼래야 떼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피난 가는 모습을 생각하고, 나의 요새요. 요새는 여러분 전쟁터나 위험한 곳에 철벽같이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성인 것입니다. 그 성을 생각하고 예수님은 나의 요새요, 그 다음은 하나님은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큰 벽과 성벽이 있어서 내가 기대어서 의뢰할 수 있는 곳이 예수님이다.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상상을 하는 것이 여러분 신앙에 기초인 것입니다. 상상하면서 기적이 일어날 것을 바라보고 입으로 시인하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하십시오. 마음속에 상상하라. 그리고 기적을 믿어라. 입술로 시인하라.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폭우를 가리우는 곳 뿐만 아니라 마른 땅에 냇물이라고 했습니다. 마른 땅에 냇물이 흐르면 땅에 파란 풀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다 죽었던 풀들이 샘물이 흐르면 살아나지요. 그 풀들이 누구냐. 기쁨과 소망과 사랑과 은혜와 이런 필요한 것들이 여러분 속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행복하고 기뻐하는 것은 이와 같이 생수가 마음속에 들어와서 여러분에게 그러한 생명의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 같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편 121편 5절로 6절에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들어 바라보고 믿고 소리치고 지지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 지치고 피곤해서 중동지역에 가면 나무는 하나도 없고 피할 곳이 없습니다. 날이 너무 더우니까 몸에서 수분이 증발되어서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곳곳에 큰 자연산 바위가 있어요. 그 바위에 가면 그 밑을 파서 시원하게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만들어 놓았어요. 예수님은 그와 같은 광야 모래땅을 지나갈 때 기운을 되찾을 수 있는 바위가 되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피난처가 되시고 내가 뛰어가서 숨어있을 요새가 되시고 마른땅에 냇물이 되시고 그 다음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이 되신다. 그것을 그냥 말만하지 말고 그럴 때마다 눈을 감고 여러분 그것을 상상하십시오. 그러니 여러분 보통분이 아니신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계신 분이신 것입니다. 피난처가 여러분을 따라다니고 요새가 따라다니고 그리고 고달픈 땅에 바위 그늘이 예수님이 따라 다니고 그것을 언제 써먹느냐. 마음에 상상으로써 언제나 써먹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 속에는 그 말씀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이 위대한 것은 성경말씀이 하나님이 그 속에 들어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말씀 속에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것을 상상하면 말씀이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밥도 되고 떡도 되고 생수도 되고 능력도 되고 치료도 되고 온갖 것이 다 되는 것은 말씀을 여러분이 상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상상하면 그 말씀이 여러분 속에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기적을 믿고 입술로 시인하기 시작하면 그 입술의 시인을 따라서 말씀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수도꼭지를 채워 놓으면 물이 안 나오지만 수도꼭지를 열어 놓으면 물이 콸콸콸 쏟아지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여러분에게 생수의 강이 되어서 마음에 넘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62편 7절로 8절에 보면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살되 하나님이 반석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셔서 여러분을 보호해 준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한없이 많습니다. 마음 상하고 불안하고 고통이 다가오고 무섭고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절대로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고 여러분을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보호하고 여러분을 건지기 위해서 하늘보좌 버리고 떠나서 이 땅에 오셨고 예수님이 여러분을 모든 죄악에서 건지기 위해서 갈보리 산에 올라가서 몸 찢고 피 흘려서 죽으심으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죄가 있으면 주님이 용서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상하고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주님이 용서를 해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큰 지우개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글을 쓰다가 잘못 하면 지우개로 지우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새로 글을 쓰지요. 이 세상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이 지우개라고 말합니다. 지우개는 과거에 잘못한 것은 새로 시작하거든요. 저희들도 초등학교 다닐 때 글을 잘못 쓰면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새로 쓰는데 요사이는 볼펜을 쓰기 때문에 그게 낭패입니다. 안 지워지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볼펜이 아니라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연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전부 다 예수님은 지워버리는 지우개가 되시고 예수님이 나의 치료가 되시고 예수님이 나의 축복이 되시고 예수님이 나의 천국이 되시고 그 예수님을 여러분 마음속에 늘 상상하면 상상 속에 주님이 같이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상상 속에 같이 계세요. 너희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 주님이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까도 여기 앉아서 기도하니까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 내가 너와 같이 있는 것을 알지? 압니다. 어떻게 아느냐? 내가 상상을 하지요.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신 것을... 그러면 내가 너와 같이 있어서 무엇을 할 줄 아나? 물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시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면 네가 용기를 내어서 기적을 믿고 실천하겠느냐? 하지요.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우리가 예배 보는 동안 주님이 같이 계시므로 믿고 상상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상상해야 돼요.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셔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치료의 능력을 베푸는 것을 제 머릿속에 상상을 하고 그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제가 말을 합니다. 당신은 오늘 기적을 체험합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진짜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하면서 보니까 상상력이 동원이 되어서 폐가 암은 아닌데 그러나 이상한 병이 걸려서 고통당하는 분이 있는데 오늘 나았다고 말합니다. 허리 고통 때문에 늘 고통하지 말고 허리를 쭉 펴세요. 오늘 하나님이 고쳐 주신 것입니다. 신장염으로 고생하는 사람, 주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무릎 관절도 나았구요.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제 두보 보십시오. 하나님 계시기 때문에 능력이 자꾸 나타날 것입니다.

2. 야훼는 나의 요새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의 요새가 되시므로 난공불락의 성에 들어가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여러분은 버림받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여러분과 대결을 하면 쉽게 여러분을 보는데 여러분은 하나님이 같이 계신 사람들인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와 같이 있으리라. 골리앗이 이스라엘 백성과 싸울 때 이스라엘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군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과 같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17살 쯤 되는 초립동인 다윗은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상상 속에..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거니와 나는 너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과 같이 한다. 골리앗이 보니까 다윗이 혼자 나오지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너가 나를 개인줄 알고 부지깽이를 들고 나오느냐? 다윗은 상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나는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너를 잡아서 너를 죽여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겠다. 전쟁은 야훼께 있다. 다윗은 순전히 상상하고 그 기적을 믿고 입술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가서 물맷돌 던져 골리앗을 때려잡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반사람이 우습게 생각하지만 여러분 스스로가 굉장히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무기가 여러분 상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상상하고 믿고 기적이 일어날 줄 믿고 입술로 외치면 그 능력이 여러분과 같이 따르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들끓는 가운데도 예수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면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과 놀러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귀에 대고 난 너를 용서하는 하나님이시다. 죄 가운데서 나오라. 나는 너에게 거룩함을 주시고 성령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으로 같이 있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워 주겠다. 나는 너를 고치는 야훼 라파이시다. 치료자다. 나는 너에게 충만한 축복을 주시는 야훼 이레 되신다. 너와 같이 있다. 나는 너를 천국까지 데려다 주는 사람이다. 내가 너와 같이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그렇게 주님께서 늘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분이 상상하고 믿습니다!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고 말구요. 주님은 나의 힘이요 능력이요 생명이 되십니다. 입술로 중얼거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더라. 온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으면 절단강산 아닙니까? 그러한 사업, 가정, 개인, 가슴속에 주의 성령이 운행하시면 하나님의 성령은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생각을 통하여 꿈을 통해서 믿음을 통하여 입술의 고백을 통하여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역사 안 해요. 여러분 상상 속에 하나님 성령이 나와 같이 계셔서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꿈을 이루어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신다고 믿고 말로 시인하면 성령이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기에 꽉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은 영원히 시간 차이가 없습니다. 시간과 거리 차이가 없이 언제나 우리와 같이 계시는데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상상을 통해서 여러분 믿음을 통해서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 속에서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종교로 기독교를 떠매고 다니지 마십시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여러분에게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고 승리와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오늘도 요새가 되어주시고 여러분 원수가 들끓는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한 도움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하나님이 요새시고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이 희생제물이 되셔서 여러분의 죄값을 다 갚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요새 되심을 생각하고 희망찬 바라봄의 꿈을 쳐다보며 믿고 말하십시오. 그리하면 예수님은 공허하고 혼돈스럽고 무질서하고 파괴된 환경 가운데 우뚝 선 요새로써 여러분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요새는 피난처하고 좀 다릅니다. 피난처는 그냥 환난을 피해서 고요한 곳으로 나아가는 곳이 피난처지만 요새는 아예 환난이 들끓고 원수가 들끓는 한 가운데 여러분이 피할 수 있는 요새로써 사람들은 그곳에 피해서 요새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어떠한 환난과 시련이 다가와도 그 가운데 피할 수 있는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요새가 되시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님은 나의 요새가 되셔서 환난 가운데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 여러분, 시편 9편 9절로 10절에 보면 “야훼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야훼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보십시오. 주를 찾는 자는 요새가 되신다. 제일 우리가 실수하는 것이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읽고 외우는 사람 그대로 외우고 지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이 말씀 속에 실제로 금은보화와 같이 생명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여러분 상상이라는 여러분의 마음을 통해서 여러분이 기적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말씀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생명이 여러분에게 풀려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꿀보다 달고 송이 꿀보다 달다고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은 바위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바위틈에 들어가서 숨으면 어떠한 원수도 여러분을 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위가 어디 있느냐. 바위가 여러분이 상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곤비한 땅에 바위라고 했으니까 하나님은 큰 바위가 되셔서 여러분 앞에 있으니까 그 곤비한 바위틈 사이로 여러분이 상상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여러분 바위틈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바위틈에 들어와 있다. 용용 마귀야 죽겠지? 나는 바위틈에 들어와 있다. 나를 못 건드린다. 그러면 그 말한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말이 무섭습니다. 상상력과 말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게 인도하는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죄와 질병이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는 이 요새 속에 뛰어 들어가면 능히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야훼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주님께서 인류를 대신하셔서 십자가의 제물이 되도록 자신을 희생하셨으므로 주님의 도우심을 우리는 의뢰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도우심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셨기에 여러분의 영혼의 죄를 다 청산하셨겠습니까? 여러분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병을 다 짊어지시고 모든 저주를 다 담당하시고 죽음조차 싫다 생각 안하시고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이 모든 것을 여러분을 위해서 한상 차려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진수성찬 차려 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상상 속에서 먹으십시오. 잡수십시오. 그리고 그 기적이 일어난 것을 입으로 시인하면 여러분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죄와 허물을 벗어버리는데 주님께 의뢰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하여 끌려가던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써 우리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열두지파가 있는 곳에 그 지파 가운데 도피성을 하나씩 만들라고 한 것입니다. 도피성이 뭐냐. 숨는 성인 것입니다. 사람이 우연히 이웃과 다투다가 이웃을 떠밀었더니 이웃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가족들이 와서 복수를 할 것이니까 가족들을 피해서 도피성에 뛰어 들어가면 더 이상 그 사람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싸움을 하다가 낫을 들어 이웃을 쳐서 죽였습니다. 그러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때까지 도피성으로 피하면 따라오다가 도피성에 들어가면 못 잡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이 도피성이 지파마다 있어서 거기에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도피성이 뭐냐.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예수님 이름에 의지하고 피하면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억지로 고난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형형색색의 피난처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므로 도피성 안에 피하고 주님께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 주셔서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의와 평안과 사랑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형식과 의식에 딱 잡혀 있으면 하나님이 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 왔고 생수가 강같이 흐르는 곳에 왔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해서 웃고 춤추고 뛰고 외치는 삶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조용하고 고요하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여기 나이 많으신 우리 장로님들이 일어나서 춤을 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보기에 굉장하게 보이겠지요?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하다가 말고 춤을 추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좀 돌았냐?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이 충만해지면 춤을 추게 되는 것입니다. 생기가 넘쳐나야 되는데 그 생기가 여러분 하나님 말씀 속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그냥 주는 교훈이 아니라 그 속에 생명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의 생명이 그 속에 꽉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음속에 상상하고 그 기적을 믿고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라고 시인하면 그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일에 의지해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은 상상을 하고 꿈을 꾸고 믿고 말하는 그를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신데 물질적인 세계와 연합이 되어서 물질적인 세계에 들어가서 변화를 시키는 조건이 상상이고 그 조건인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 꿈꾸는 것. 기적을 믿는 것. 입술로 말하는 것. 이 조건을 통해서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를 타고 들어가서 육체와 물질세계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과 육체의 가시 즉 병에서 놓여나는 것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 가지 병에 걸렸으면 오늘 예배드리고 집에 돌아갈 때 나아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연약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것을 마음속에 상상하십시오. 주님의 능력으로 온 몸에 병이 다 사라지고 나에게 건강이 왔다는 것을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건강을 얻었다고 상상을 하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기적을 믿는다. 하나님 나는 이제 건강합니다. 나는 튼튼합니다. 두려울 것 없습니다. 그대로 역사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는 것도 여러분 매일매일 왜 나는 안되느냐. 나는 실패자다. 나는 능력이 없다. 자본이 없다. 그렇게 하지 마시고 주님께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말씀했는데 그 말씀 속에 이 모든 부요가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상상 속에서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나는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한다”(고후 9:8)고 상상하고 믿고 하나님 나는 자선 사업에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부자입니다. 나는 손대는 것마다 잘됩니다. 나는 부요합니다. 축복받았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시라구요. 그러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그 말씀 속에 약속한 것이 넘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마음속에서 상상을 통하여 역사하기 시작하면 넘치는 축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예수님이 십자가에 저주를 받아서 매달렸던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여러분의 저주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몸 찢고 피 흘려 저주를 감당했으므로 예수님을 내가 상상 속에 끌어안으면 저주에서 해방되고 축복을 끌어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축복이 온 여러분의 삶속에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있는 말씀을 여러분께서 꼭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나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러분 자신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 믿는 여러분이 저주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저주가 사라졌지요? 저주가 사라진 것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믿고 그 다음 믿었으면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저주받지 아니한다.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야~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온 하나님의 축복이 그 속에 다 들어있는데 그 축복의 보따리를 푸는 것이 상상하고 기적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보따리를 풀어 제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보따리를 여러분이 풀어 놓으면 여러분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 66권을 읽으면 거기에 아예 보배가 다 들어 있다구요.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우리는 영생 부활 천국을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얻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여러분을 죽음에서 일으켜 세운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상상 속에 이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이 다가와도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은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죽음을 함께 통과하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지금 같이 계신 것처럼 죽음의 길을 걸어갈 때도 주님이 같이 계신 것을 상상하고 믿고 주님이 같이 계시므로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면 목자로써 여러분의 손을 잡고 죽음의 길을 유유히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지만 죽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손잡고 가는 것은 믿는 자만이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 부활, 천국 구원을 이미 받아서 마음속에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경에 말씀하기를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시 91:14-16)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럽에 있는 교회가 왜 텅텅 비었느냐. 교회당이 술집이 되고 이슬람교의 교회당이 되고 댄스홀이 되고 왜 이렇게 됐느냐.

<결론>
성경의 하나님 말씀을 인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체험을 못해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사람들이 지어서 만든 것이 성경책이라고 신신학적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니 성경이 사람의 책이고 하나님의 기적이 없으니 성경을 가지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생명의 역사가 없으니까 교회 안 나오고 교회가 타락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경이 절대로 사람이 지은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여기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굉장히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말씀 그대로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제까지 누리지 못한 것은 우리가 생각을 잘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것을 상상해서 마음에 생각하고 그것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체험이 되면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기도하기를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한 보배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러면 이것이 여러분의 것이 된 것을 다 상상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것을 상상력을 펼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