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19. 주일설교

주인

“그런데 뱀은 야훼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1~7)

<서론>
“주인”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의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했는데 선악과는 무엇이냐. 주인이 되게 하는 과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하다는 것은 좋다고 악은 나쁘다인데 그 과일을 따먹으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우주에 절대 주인이요, 경쟁할 자가 없어야 되는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주인 노릇을 하게 되면 아버지하고 다퉈야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두 분 있습니다. 하나님도 주인이고 아담도 주인이 되면 서로 주인에게 양도하지 않기 위해서 싸움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주인 계세요?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주인이 들어 와 계시잖아요. 주인 계세요? 아멘! 주인이 계십니다. 그런데 마귀가 하와를 꾈 때 네가 이 과일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별하게 되고 주인이 된다. 너 하나님처럼 주인이 된다. 그 말에 하와가 넘어간 것입니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우주를 지으시고 소유하신 주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 주권자이시며 만유의 좋고 나쁜 것을 그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인만이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하고 좋은 것은 순종하고 나쁜 것은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어서 자기들이 주인이 되어서 누가 뭐라고 말해도 우리가 좋은 대로 행하고 나쁜 일은 하지 않는다. 절대 주권자는 우리다. 하나님과 다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 앞에 주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은 하나님 밖에 안 계세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자기 멋대로 살겠다고 하면 굉장한 불행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자기가 주인이 된 삶
자기가 주인으로 행세하는 사람은 무신론자들이나 유물론자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주인노릇 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무신론적 삶으로써 신도 없고 주도 없다. 내가 주인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산다. 그 마음대로 사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한 사람은 부패하기 시작해서 그 마음속에 육신의 정욕의 종이요, 안목의 정욕의 종이요, 이생의 자랑의 종이 되어서 사는 것입니다. 사탄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구약시대에 보면 사람을 사용하려고 할 때 꼭 하나님 앞에서는 신발을 벗으라고 한 것입니다. 신발은 행위의 주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신 신고 돌아다니잖아요. 신을 벗어 놓으면 길에 돌멩이도 있고 가시도 있어서 잘 못 걸어 다니지만, 신발을 벗으면 잘 못 걸어 다니나 신발을 신으면 마음대로 다니는 것입니다. 행위의 주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신발은 소유의 주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발을 신는 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언제나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주인이 된 사람은 신발을 벗고 자기가 스스로 주인이 되었으니까 양도하는 신발을 벗는 행동은 안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신발 신고 걸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행위를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자기 소유는 자기가 가진다고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가 주인이 된 삶은 음으로 양으로 사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배후에서 언제나 붙잡고 조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은 거의 100% 주위에 안 보이는 마귀가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도질하는 것, 살인하는 것, 방탕한 것, 모든 허망한 짓을 하게 하는 것은 배후에 사탄이 있습니다. 마귀가 조종해서 그 길로 걸어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할 때는 하나님 성령이 배후에 계십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좋은 일을 하게 될 때 배후에 성령이 계신 것입니다. 성령이 그 일을 하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해 있어서 악한 자가 세상 사람을 배후에서 점령하고 그를 통해서 악을 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성령이 오셔서 예수를 구주로 믿은 사람 속에는 하나님 성령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행실을 가질 수 있도록 뒤에서 조종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도 자기들 스스로가 먹은 것이 아닙니다. 배후에 마귀가 조종을 해서 먹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루에 수없이 마귀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마귀가 속삭이지요. 성령께서 직접 속삭일 때도 계시고 마귀가 속삭이고 우리는 거기에 유능하게 분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인가, 사탄이 말하는 것인가 유능하게 분별을 해서 주님이 말하면 순종하고 사탄이 말하면 대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6절로 7절에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하와가 따먹고 난 다음에 가만히 있으면 좋은데 그 남편을 꾀어서 먹으라고 하니까 남편이 따라 먹었습니다. 오늘도 대다수 생각하기로는 그 부인이 선악과 먹었으면 남자도 따라 먹습니다. 남편들이 예수 믿는 것은 제가 경험으로 보면 대다수 그 부인이 전도를 해서 세상 말로는 꾀어서 교회 나와요. 교회 와서 말씀을 듣고 남편이 마음이 변화되어서 신앙을 갖게 되고 나중에 부인보다 더 잘 믿는 남편들이 많은데 그러나 처음 교회 나올 때는 거의 부인의 전도에 의해서 따라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주인이 되면 우리의 모든 생활에 책임을 져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인이 책임 안 지면 누가 책임을 지는 것입니까? 문고리 채우는 것도 주인이 채우는 것입니다. 주인이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 의복을 얻는 것, 편안히 잘 살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주인이 책임지고 돌봐줘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속한 일, 문제, 짐 등에 전적으로 주인이 책임져야 되고 환경적으로 다가오는 저주도 주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8절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아내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거역해도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책임을 안 지려고 하는 것이 이 세상살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께서 아담보고 네가 왜 이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하니까 하나님이 지어서 내게 보내주신 이 하와라는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지 내가 스스로 먹었나요? 나 책임 없어요. 책임을 하나님께까지도 돌립니다. 하나님이 지어서 내게 보내주신 이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나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와를 보고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 하나님이 지은 짐승 중에 뱀이 내게 와서 먹으라고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 했다고 안 합니다. 꼭 다른 사람이 시켜서 다른 사람 때문에 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문에 사람인 것입니다. 집에 가서 보십시오. 자식들을 많이 기르면 부모님이 여러 가지 일을 시키는데 일을 잘못해 놓고 왜 이렇게 잘못했느냐 하면 아들딸들이 ‘내가 잘못 했습니다.’ 하는 애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없습니다. 나 때문이 아닙니다. 누나 때문에... 언니 때문에... 오빠 때문에... 동생 때문에... 마누라 때문에... 남편 때문에... 전부 때문에 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에 장차 남북통일을 위해서 일할 동안에 잘못한 일이 있으면 전부 국민들이 그 사람보고 너 때문에 잘못되었으니 너는 표 못 받는다. 너 때문에 잘못되었으니 너는 대통령 안 된다. 너 때문에 잘못되었으니 너는 장관 안 된다. 전부 때문에 책임을 미룹니다. 나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용서해 주십시오 하는 용감한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의 종들은 교회에서 하나님 성령이 역사하지 아니하면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나 때문에 교회 은혜가 임하지 않으니 나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기도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좌우간 우리 4부 예배 성령이 역사하지 아니하면 누구 때문에 입니까? 나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책임져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주의 종이 안 돼보면 얼마나 마음이 다급하고 힘들다는 것을 모릅니다. 4부 예배가 다가오면 마음이 콩알만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 때문에 성도들이 오셔서 말씀을 듣고도 은혜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책임이 얼마나 큽니까? 저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서서 여러분 때문에 내가 못 했다는 말 안 할 테니까 걱정을 마십시오. 박수 받으려고 한 것 같네.
우리가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대다수로 하나님께 주인으로 삼고 내어 맡기지 않고 하나님을 이용합니다. 내가 반쯤 주인이고 하나님이 반쯤 주인이고.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을 이용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서 싹싹 빌고 하나님! 나를 건져주면 십일조 내겠습니다. 나를 건져주면 꼭 주일 성수하겠습니다. 하나님 섬기겠습니다. 조건을 내세우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우리들도 그럴 적이 많아요.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나님 이번에 금식하고 철야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따를 테니 이번에만 도와주십시오.

2. 자기 본위적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삶
자기의 꿈과 소망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그러한 신앙이 있고 철학적, 학문적 형식으로 학문적인 신앙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성경 읽고 학문적으로 성경을 알지 실제 적 행동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참된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내어 맡기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뛰어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에게 절을 하지 아니하면 불을 칠배나 뜨겁게해서 불구덩이 속에 던져 넣겠다고 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느부갓네살 형상을 닮은 형상에 절을 하면 살려 주겠거니와 절을 안 하면 불꽃 가운데 던지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믿는 우리들은 느부갓네살 닮은 우상에 절대로 절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명령하니 군인들이 그들을 잡아서 불속에 던졌는데 네 번째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을 손잡고 술래술래 춤을 추었습니다. 넷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참된 신앙이란 행동으로 옮겨나가는 것이 참된 신앙인 것입니다. 가짜 신앙은 행동하지 않고 말만 하는 것입니다. 형식만 하는 것입니다. 행동이란 여러분, 아브라함같이 ‘너 외독자 이삭을 재물로 드리라’고 할 때 데리고 나가서 그를 묶어서 각을 떠서 불로 태워 제사로 삼으려고 하는 실제 행동으로 나가는 이것이 산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이 세계적으로 높이 칭찬을 받고 한국교회를 배우겠다고 많이 오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지금 행동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새벽 기도, 행동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철야기도, 행동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산기도, 행동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가 꽉 차도록 오시는 것은 교회 와서 실제 예배드리는 행동적 신앙인 것입니다. 십일조 드리는 것 행동이지요. 그런데 구라파에는 행동하는 신앙이 없습니다. 그냥 모두다 앉아서 이야깃거리 신앙이지 희생적인 행동하는 신앙을 갖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어라고 해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적게 만나면 적은 체험을 하고 크게 만나면 큰 체험을 하는데 교회 와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해서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증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산 증거가 없으면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적은 것도 행동하면 산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수가에 왔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하기를 우리 애굽에 항복하자. 애굽이 저 군대를 동원해서 우리를 잡으러 오는데 우리는 무장도 없고 무기도 없은즉 잡히면 다 죽는다. 항복하자. 그때 모세가 뭐라고 했습니까? 가만히 있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자. 오늘 우리가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운다. 행동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3백만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안 보이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목숨을 내걸고 믿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도와주셔서 홍해수가 갈라지고 3백만 유대인들이 다 건너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우리 마음속에 즐거움을 얻고 평안을 얻고 기쁨을 얻고 행복을 얻는 것은 마땅히 좋은 것입니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해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적은 문제는 적은 문제대로 큰 문제는 큰 문제대로 해결되므로 말미암아 마음에 큰 평안과 기쁨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우리를 점령하고 우리는 피할 곳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처지도 못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이 어떻게 건지는지 압니까? 그 사람들의 마음속이 나의 해결바탕이 되게 만들어서 그 사람이 원수가 하는 일을 해결해주는 일을 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참 말하기 어렵지만 모르드개와 하만을 보면 원수인 하만이 유대인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자기 집 앞에 나무를 세워놓고 그날 밤에 왕의 허락을 받아서 모르드개를 잡아서 그 나무에 매달려고 했는데 그 밤에 어떻게 되었느냐. 거꾸로 되어서 왕비의 간청을 들어서 모르드개가 총리 대신이 되고 하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모르드개를 매달 그 나무에 자기가 달린 것입니다. 앞마당에서. 멀리가 아닙니다. 앞마당에서 심판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며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잔이 넘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나가면 응답이 우리 앞마당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만리장천 멀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을 믿고서 하나님과 실제 살아있는 체험을 해야지 이론적인 하나님만 믿어서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은즉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삶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완전히 주님을 따라서 사는 신앙생활, 이것이 진실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멍에를 걸머지고 따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예수 죽음 내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예수님 십자가를 걸머지고 따라가면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님 부활 생명을 우리에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께서는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예수께로 와서 예수님의 멍에 밑으로 들어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밭 갈때 그냥 소나 말에나 멍에를 걸쳐서 밭을 갈지 않습니다. 꼭 새끼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그 밑에 넣어서 함께 가는 것입니다. 송아지는 어미 멍에 밑에 들어가고 말은 망아지가 큰 말의 멍에 밑에 들어가고 그래서 이랴~ 이랴~ 하면 어미가 끕니다. 목에 잔뜩 힘을 주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끄는데 새끼들은 거기 그냥 따라가는 것입니다. 따라가면서 말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엄마, 왜 자꾸 땀을 흘려? 편안한데... 그러면 엄마가 잔소리하지 마라. 너는 아무것도 안 걸쳤지만 네 짐이 내 몸에 다 걸쳐 있지 않느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멍에 밑에 여러분의 짐을 다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실제로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주님의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멍에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걸머진 그 멍에 밑에 여러분의 짐을 다 내려놓으면 여러분의 짐은 예수님의 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짐을 지고 끌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하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다른데 가지 말고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평안하고 겸손하므로 나의 멍에를 매고 나에게 배우라. 그럼 너가 쉼을 얻으리니 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짐을 매일 짊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생활에 개입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앉아서 눈 감고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이시여, 나는 주님과 더불어(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고난 내 고난입니다. 상상을 해보는 것입니다. 상상이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주님, 나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상상합니다. 주님, 주님과 함께 부활한 것도 내가 상상합니다. 함께 죽고 함께 부활했으니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상상 속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죽은 나를 상상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부활한 나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죽음으로 나의 모든 죽음을 다 청산해 버리고 예수 부활로 부활의 생명을 내가 다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 체험인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죽음을 우리가 받아서 걸머지는 것입니다. 상상으로. 내가 눈을 감고 상상으로 조그맣게 말을 해도 좋습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님에게 내 죽음을 다 끌어안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그다음에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서 일어난 모습을 상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우리 실천생활을 예수님의 능력을 받는 일에 체험을 해야지 그냥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혔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믿는다. 그런 정도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상 속에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항상 가지고 있는 보배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하는 것, 여러분 생각이 세상을 따라서 나는 못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용지물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그에서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 생각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당한 고난을 전부 여러분 고난이라는 것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날 대신 고난당해서 병들었다. 가난했다. 무시와 멸시를 당했다. 천한 고통을 당했다. 그러므로 저것이 바로 내가 걸머진 것이다. 주님이 저를 통해서 나에게 새로운 생명과 은혜를 주셨다. 나는 믿는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말로써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저가 저주를 받음으로 우리는 축복을 받았다. 저가 고난당하므로 나는 평안을 누린다. 그것을 말을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성령께서 역사하기 시작해서 여러분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신앙은 산 신앙이 되고 사람들이 여러분을 볼 때 아,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증거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세상의 짐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구속한 주만 바라보는 이 신앙, 4차원의 영성의 신앙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와 세상은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나와 세상은 간곳없어야지 그것이 살아있으면 안 되니까 상상 속에 나와 세상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주의 십자가를 통하여 간곳없어진 것을 상상하고 구속한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을 상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전에도 말하기를 상상을 쉽게 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여러분 마음이 하나님과 여러분을 연결하는 연결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 즉,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첫째, 생각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서 여러분의 짐을 걸머지고 들어와서 축복해주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그것이 또 이루어져서 여러분에게 큰 축복이 되는 바라봄의 법칙으로 꿈을 꾸어야 되고 그리고 재산목록으로 믿어야 되고 입술로 몇천 번이고 고백하면 성경의 하나님의 역사가 성경에 기록된 것 이상으로 여러분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길을 하나님께 맡기면 그가 이루신다. 어떻게 맡깁니까? 상상 속에서 기도로 맡기는 것입니다. 상상 속에서 내 길을 주님께 맡겨 버립니다. 다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있으면 여러분이 해방된 모습을 꿈꿀 수가 있고 믿고 입으로 자꾸 시인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보고, 믿고, 말하는 것입니다. 보고, 믿고, 말하는 것 이것은 여러분 생활 속에 꼭 해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보고 믿고 말해라. 무엇을 통해서 보고 믿고 말합니까? 상상을 통해서. 상상을 통해서 보고 믿고 말하는 것, 이것만 알면 어떠한 위기도 극복해 나갈 수 있고 창조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생각을 정리해서 그 생각 속에서 보고, 생각 속에서 믿고, 생각 속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암으로 목에 혹이 주먹만 하게 달려서 의사선생님이 그를 보고 입을 딱 벌리고 이것 수술 안 하면 암으로 6개월도 못산다고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권사님은 신앙이 좋은 분으로서 그 암이 사라지는 것을 마음속에 보았었습니다. 자기 생각을 보는 거예요. 앉아서 이 암은 내 몸에 필요 없는 것이니 다 사라져야 된다. 보았었습니다. 생각 속에서요. 병원에서 본 것 아닙니다. 엑스레이를 통해서 본 것 아닙니다. 앉아서 기도하면서 다 사라지는 것을 상상 속에서 보고 믿었습니다. 이 암은 떠나갔다고. 믿는다고. 그리고 난 다음에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앉으나 서나 암은 사라졌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라졌다. 보고 믿고 말하고 그랬는데 가슴이 굉장히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 하더니 좋아지더랍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찍으니까 세상에 그 병원 생기고 처음 있는 기적이 일어나서 암이 없어졌어요.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그 권사님 내게 와서 말하기를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까? 나는 목사님이 설교할 때 보고 믿고 말하라고 하기에 늘 우리 목사님 하신 말씀 18번인가, 그것이 뭐 별 도리 있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이고 내 속에 있는 그 큰 암 덩어리가 녹아 버리는 것 보고, 보고 믿고 말하는 것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상상을 초월한다. 여러분에게도 그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업과 생활과 이 모든 일에 보고 믿고 말하는 것은 성경 시편 37편 5절에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잠언 16장 3절 “너의 행사를 야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행사를 하나님께 맡겨놓고 맡긴다는 것은 보고 믿고 입술로 말합니다. 그러면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네 염려를 주님께 맡긴 것을 보고 믿고 말하면 주님이 다 책임져 주신다.
시편 68편 19절에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자, 이 성경을 읽었으니까 한번 눈을 감아 보십시오. 눈을 감아 보십시오. 여러분의 짐을 주님이 짊어지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짐을 짊어지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한번 말하십시오. 날마다 나의 짐을 지시는 주,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다 짊어진 것입니다. 이제는 기적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 실제 해보면 기가 막히는데 실제 한번 해보겠어요? 여러분, 그러므로 생각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어지러운 생각을 가지지 말고 기도할 때 엎드려서 주님 성령으로 내 생각을 맑고 밝고 환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부정적인 것은 다 없애 주시옵소서. 그리고 생각 속에서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역사 해주신 것을 이제는 바라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이 별들을 통하여 자기 아들을 바라본 것과 같이 주님 바랍니다. 그리고 난 다음 믿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역사가 일어난 것을 믿습니다. 그 다음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내 짐을 야훼께 맡겨라. 저가 이루신다고 했으니 이루신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았습니다. 저가 저주를 대신 짊어졌으므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습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보고 믿고 말하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래, 내가 맡아주마. 주님이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리라 하신 그 주님이 여러분에게 승리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다는 것은 참 재미있습니다. 내가 신비한 일을 체험하게 되기 때문에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재밌다고요. 왜냐하면, 일은 모두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할 것은 오직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라는 것을 했으니 그 다음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시시한 것부터 시작해서 굉장한 것까지 다 채워 주신다. 나는 내가 한번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는데 하나님 사업을 위해서 갑자기 돈을 써야 될 것이 생겨났어요. 그런데 가지고 있는 돈 다 털고 예금한 것 다 털어도 천만 원이 안돼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데 천만 원 이상을 도와줘야 하는데 저는 제가 목회하는 동안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그렇게 도와준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주일이 지나가기 전에 정말 내가 또 도와주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는데 그도 천만 원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이 천만 원 도와주고 난 다음 하나님 보셨죠? 보셨죠? 내가 이 사람 도와줬는데 며칠 후에 저게 또 있어야 됩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준다고 했는데 말씀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셨죠? 내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 가슴속에 이 사람을 도와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 돈을 돌려주시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라 했으니 돌려주십시오. 돈은 돌아온다. 돌아온다 했는데 어떤 한 분이 내게 와서 봉투를 내주면서 축복기도를 해달라고 그래요.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자기가 그 돈을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려고 가져왔는데 자꾸 성령께서 조용기 목사에게 가서 안수기도를 받아라. 여기 예배드리면서 낼 건데요. 그러지 말고 조 목사에게 안수를 받으면 네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봉투를 가지고 와서 기도해달라고 해서 좀 기다리라고. 내가 봉투를 봤어요. 꼭 천만 원이 거기에 들어 있더라고요. 아이고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요. 그 천만 원이 언제까지 필요하냐. 오늘까지 필요한데 어제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오직 할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기다리면 하나님 기적이 다가와요. 하나님 약속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보면 이사야 30장 18절에 “그러나 야훼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야훼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와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기다리고 계세요. 아 하나님이 저기도 기다리고 계시고.. 저 위에는 더 기다리고 계시고... 하나님이 여러분 도와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못 기다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을 주셔서 우리가 담대하게 주님을 의지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성경에 내가 다 이루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혹시 주님께서 약속을 안 지켜 주면 어떻게 할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실 때 마지막 날에 내가 다 이루었다. 그리고 주님이 돌아가셨는데 다 이루었다는 것은 여러분 도와주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도움을 달라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믿음으로 기다려라. 내가 다 이루었다.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는 신앙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지면 평안이 있어야지요. 맡기고 평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눅 10:27)
우리가 사랑하고 살면 주님이 다 이루어 놓은 축복이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주님께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여러분 이웃을 돕기 위해서 여러분이 희생을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 이야기는 제가 부산에서 월드미션 평신도 교인으로 다닐 때 거기에 자매님이 와서 간증하는 것을 듣고 기억하고 있다가 지금 하는 것입니다. 루피 리처드라는 50이 넘은 할아버지가(50이 넘었으면 아직 어린 아기지). 그때는 내가 할아버지로 봤는데 지금은 50이면 아기예요. 아기. 그분이 시골 길로 차를 몰았는데 시골에서 전도하려면 시골 길이 전부 먼지가 나지 않습니까? 거기에 차를 몰고 맥도라는 곳에 가는데 50이 넘은 할머님 한 분이 무거운 짐을 옛날에는 머리에 이고 가지 않습니까? 이고 걸어가는데 기술이 좋은 할머니들은. 놀랄만합니다. 그 무거운 것을 목에 걸머지고 요래하면서 가는데 이 선교사님이 할머니가 고생한다고 싶어서 차를 댔습니다. 그래서 올라타십시오. 나도 그 방향으로 가니까 가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뒷자리에 모시고 가는데 차가 움직일 때마다 와닥닥 와닥닥해요. 그것 왜 그러는가 싶어서 백미러를 통해서 보니까 앉아서 머리에 짐을 지고 차 움직이니까. 그래서 이 선교사가 기가 막혀서 차를 세워서 아니, 자매님! 왜 그것 머리에 이고 화닥닥 거립니까? 짐을 옆에 내려놓으라고요. 그러니까 눈을 바로 쳐다보면서 그렇게 한국 사람이 행실이 고약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몸 태워 준 것도 고마운데 짐도 실어 놓으면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몸 실어 줬으니까 짐은 내가 걸머지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갑시다. 아이고, 머리에 이고 있으면 차는 똑같이 무겁습니다. 몸과 짐이 플러스해서 무거우니까 내려놓으라고... 아무리 해도 안 내려 놓더랍니다. 그래서 끝까지 짐 머리에 짊어지고 갔어요.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여러분, 여기에 예수님이 바라보는 십자가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놓고 이제는 내 손잡고 짐 걸머지지 말고 걸어가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 많아요. 주님께서 말합니다. 내가 다 짊어졌는데 왜 걸머지느냐? 아이고, 주님 영혼 구원해 주신 것도 고마운데 다른 것까지 맡길 수 있습니까? 어떠한 사람이 날 보고 와서 최근에 그렇게 묻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받는 축복에 대해서 너무 강조해서 말하는데 예수 믿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 천당 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럼요. 십자가 자체가 천당 가는 것인데. 그런데 왜 이 세상 축복을 많이 말합니까? 십자가를 자동차로 비교하면 그 짐칸이 있어서 십자가만 타면 천당 가는데 갈 동안에 짐칸에 우리 인생의 모든 짐을 싣고 가라고 말하는데 왜 그것을 짐칸에 넣지 않고 어깨에 걸머지고 가려고 합니까? 예수를 믿는 것은 영혼만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범사에 주님이 대속한 것 다 맡기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오늘 시골 길을 달려가던 선교사가 짐과 자매님을 모신 것과 같이 여러분 전체를 모셨습니다. 여러분 인생 전체를 모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영혼만 맡기지 말고 짐도 생활도 다 맡기십시오. 싣고 갑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버리고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더 쉽고 평안하게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된 사람은 선악과의 저주를 입고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주인이니까 자기에게 다가온 모든 저주를 대신 짊어져야 돼지요. 그러나 예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기고 예수님이 자기 주인이 된 사람은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여러분의 짐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이제 여러분 짊어질 짐이 없습니다. 평안하고 기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주인입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인이십니까? 암 그렇지요. 예수님이 주인이니까 이제 오늘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 짐을 짊어지고 가지 마십시오. 다 십자가에 맡기고 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