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16. 주일설교

언어를 선택하라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 3:1~12)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언어를 선택하라”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와 형제들과 이웃과 대화하기 위하여 말을 배웁니다. 어린아이들 말 배우는 것 보면 참 신기해요. 키가 자라는 것처럼 말도 쑥쑥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표준어를 배우면 좋은데 시골에서 아주 사투리를 배워서 자기들밖에 못 알아듣는 그런 애들도 있습니다. 저도 아주 시골 경상남도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31번지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일꾼들, 노동자들, 농민들이 하는 말을 배웠습니다. 나중에 읍내에 내려와서 말을 해보니까 나하고 전혀 다른 말을 해요. 엑센트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굉장히 부끄러움을 당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남북통일이 되면 제일 어려움이 언어일 것입니다. 우리 남쪽 사람들은 북쪽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북쪽 우리 동포들은 남쪽 동포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애를 먹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히 세상을 여행하고 다니면서 보면 하나님이 굉장히 취미가 다양하시다 생각되는데 아주 산골짜기에 있는 소수민족도 자기 나라 언어를 다 가지고 있어요. 이런 소수민족은 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글 깊숙한 곳에 옷도 안 입고 벌거벗고 있는 족속들도 자기나라 말이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서로 대화하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속에 우리 운명을 좌우하는 창조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을 잘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을 배워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우리 부모님과 대화하고 우리 이웃과 대화하고 대화하면 그로써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입술의 말로써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도 하고 파괴가 오고 절망이 다가오기도 하고 축복이 다가오기도 하고 굉장한 능력이 말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을 때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것처럼 우리도 말을 통해서 여러분 생애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운명에 기쁘고 즐겁고 소망찬 것도 말로써 만들어 놓을 수 있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도 말로써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은 대화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켜서 하는 말이 있고 마귀가 우리에게 사주해서 하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말은 대화를 할 때 ‘하나님이 저 사람을 통해서 내게 말씀을 하시는구나.’ 그렇게 느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말을 하는 것 보면 이놈의 마귀가 저 입술을 통해서 어떻게 주둥이를 알랑달랑하면서 내게 말을 하느냐. 굉장히 말을 들을 때 선택해서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와서 말을 한다고 모두 다 하나님이 대언해서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가 뒤에서 그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는 말을 따라가서는 낭패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영적인 두 나라가 말을 통해서 나타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령께서도 눈에 안 보이잖아요. 성령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바람이 이리 불고 저리 부는 것처럼 성령이 우리 가운데 계셔도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손으로 잡지 못하므로 그냥 성령이 계신 줄만 아는 것입니다. 이 성령이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저에게 와서 여러 가지 이야기 할 때 제가 들어보면 ‘아! 하나님이 지금 우리 성도를 통해서 내게 말씀하시는구나.’ 귀를 기울이고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마귀가 낙심시키게 하기 위해서 와서 아주 교묘한 말로 협박과 공갈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당장 알아들어야 합니다. ‘마귀가 날 낙심시키려고 이렇게 말을 하는구나.’ 언제나 두 나라 언어가 우리 주위에 떠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말을 들을 수도 있고 마귀의 말을 들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두 나라의 언어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은 자는 구원을 받기 전에 사용하던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대속 구원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전혀 성경 말씀을 안 쓰던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고 난 다음 하는 말을 들어보면 세상 말은 사라지고 천국 말이 그 사람 입을 통해서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우리가 마음에 깨닫고 난 다음에 입으로 시인하면 그것이 능력으로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구나 우리 가슴에 숨겨 있다가 입술로 고백하게 되면 굉장한 능력으로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생각하고 그를 통해서 우리 뜻을 표시하므로 세상 사람들이 안 쓰는 말을 많이 합니다. 용서와 의로움을 받은 사람,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와 의로움을 받았다는 것을 자랑하고 또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전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도 평신도 때 목사님이 나가서 전도하라고 해서 전도지 이만큼 들고 나가서 전도하는데 나중에 전도를 마치고 교회 다 오면 기도하는데 얼마나 고함을 치고 기도하는지 몰라요. 왜냐하면, 전도할 때 핍박을 받아서 흥분되어서. 마음에 굉장히 상처도 입고 겁도 나고 흥분이 되어서 고함치고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마음이 가라앉는 것입니다. 전도라는 것도 무조건하고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난 다음 예수 믿으라고 전도지 주고 그러다가 핍박을 많이 받습니다. 왜 안 받겠다고 하는데 자꾸 주느냐고. “받아서 읽어 보세요.” “너나 읽어라.” 좀처럼 받아서 읽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와 연관이 있는 사람, 미리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를 하고 있다가 전도를 하는 것이 비로소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준비하지 않고 길거리 걸어가는 사람 그냥 붙잡고 전도해서는 핍박을 많이 받고 마음이 잔뜩 상처와 흥분만 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면 전도를 하지 말라고 해도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는데 마음에 새벽기도 가고 철야기도 하고 주일날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감동을 받고 그러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입에서 하늘나라 말이 자꾸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자는 그 구원 얻은 하늘나라 말이 나와요. 죄가 용서받고 의로움을 얻은 말이 나오고 거룩함과 성령충만 받은 말이 나오고 치료와 건강을 받는 기적의 역사에 대한 말도 나오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은 하나님의 은총의 말도 나오고 부활, 영생, 천국에 가는 말도 입에서 술술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에 하늘나라 언어가 구원받은 사람은 넘쳐 나오는 것을 늘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이 왜 중요하느냐면 운명을 창조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사이 신문을 보면 팔자를 고쳐준다는 큰 대문짝만한 광고가 나와 있어요. 팔자를 고친다고. 구자는 못 고치고 팔자는 고친다고 하는데. 전부 거짓말이거든요. 운명을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오는데 하나님이 그 운명을 창조하는 능력을 여러분 각자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실 뿐 아니라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운명을 좌우하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입술의 말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2절로 4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올바르게 말을 하면 몸 전체를 굴레 씌워서 이끌어 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우리가 짐승을 재갈 물려서 이끌어가고 큰 배라도 키로써 배를 조정해가는 것처럼 혀를 가지고서 말을 통해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해 간다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혀의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혀로써 말한 결과를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얼마나 우리의 말이 무의미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에 있는 말을 입으로 뱉고 난 다음에 말해 버렸으니까 나하고 관계가 없다. 천만에요. 말이 일단 내 입술을 떠나서 나가면 그때로부터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일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0년 만에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생명이 있을 동안에 그 말이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이 하나님 뜻을 쫓아 생산적인 말을 하면 그것이 나가서 생산적인 일을 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술의 말을 파괴적으로 해놓으면 그것이 나가서 언제나 파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말을 중요하게 하면 많은 일에 큰 은혜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는 “말”과 관련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어떻게 갚습니까? 그러나 정 그런 것이 없는 것을 우리 조상들이 거짓말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 “말이 무슨 씨가 됩니까?”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고 입술로 말한 씨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그 이외에도 보면 “혀 아래 도끼 들었다.” 말을 하는데 혀 아래 도끼가 들어 있으니까 그 말을 통해서 깊은 상처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 활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화살은 쏘고 난 다음에 가서 주워서 전통에 넣을 수 있지만 말은 하고 난 다음 못 주워 넣는 것입니다.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말하고 입술을 떠난 말은 주워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우리는 말 속에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약 3:4~5)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도 “인생을 망치지 않으려면 자신의 말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말을 잘 선택해서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래 말 잘하는 사람은 참기름을 바른 듯이 말을 합니다. 그러나 말을 잘하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실수가 많아서 그 말로 말미암아 나중에 상처를 입을 때가 많습니다. 저같이 말이 둔한 사람은 말을 많이 안 하기 때문에 상처를 많이 안 입는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이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타락한 인류는 마귀의 손에 잡혀서 살기 때문에 말 자체가 마귀의 나타남을 유도하는 말을 많이 씁니다. 안 믿는 사람 말하는 것은 마귀가 따라서 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말을 많이 합니다. 말 자체가 마귀의 나타남을 유도해서 마귀의 조종을 따르지 중립적인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나오는 좋은 말 아니고 중간쯤 있는 말을 마귀가 말하는데 마귀가 우리에게 말하는데 중립적인 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생명의 말씀이 있는가 하면 마귀의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말이 있습니다. 중간에 숨어있는 말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빛을 유도하는 말을 사용하게 하시고 또 마귀는 어둠을 불러오는 말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5절로 6절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혀가 우리에게 잘못 전달되면 큰 화재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지옥 불로써 우리를 태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불에 타야지 지옥 불에 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혀를 조심해야 된다.’ 그것 언제든지 생각하고 있어야 됩니다. 혀를 마음대로 내버려 놓고 나가는 대로 두면 혀는 생명보다도 마귀를 이끌고 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을 우리가 종종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씨 뿌리는 원리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혀를 하나님께서는 씨 뿌리는 원리로 우리에게 설명한 때도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씨는 심는 그대로 거두지 않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씨를 심어놓고 난 다음에 그대로 내버려 놓으면 안 나오지 싶어도 씨는 납니다. 우리 어릴 때는 고구마를 심는데 고구마 줄기를 잘라가지고서 줄을 만들어서 고구마를 심어 놓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 형제들이 다 아버님께 가서 아버님, “나도 한고랑 주십시오. 좀 주십시오.” 그러면 기쁘게 주셔요. 고구마 줄을 잘라가지고서 심습니다. 여러분, 고구마는 시골에서 안 자란 사람은 모르는지 몰라도 잡수시는 둥근 고구마 그것을 심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나온 줄기를 잘라서 심어놓고 그 줄기에서 고구마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많이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심지만 추수할 때는 내 고구마가 제일 적습니다. 왜 그러냐. 매일같이 고구마에 물을 주면서 뽑아봤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고구마가 자랐는가 뽑아보고 또 심고. 3분의 2는 죽고 3분의 1만 사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 중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 물도 잘 안주고 말라 죽게 내버려둔, 게으른 사람의 고구마 줄은 뿌리가 나와서 열매를 맺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심든지 결과는 그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법칙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심어놓고 미움이 나도록 하지 않습니다. 축복을 심어놓고 화가 나오도록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꼭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서 기적을 믿고 심어놓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은 마음 터전에 뿌리는 씨앗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우리가 기도해도 그렇고 부모와 형제,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마음이 밭입니다. 그 마음의 밭에 우리 입의 말로써 뿌리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말을 해서 내 가슴에 씨를 뿌리는 경우도 있고 친구들이 내 마음에 뿌리는 것도 있고 부모들이 마음에 씨를 뿌려주는 것도 있는데 세계적인 위인들을 보면 할머니나 어머니가 씨를 뿌린 그 씨가 마음에 뿌리를 내려서 위대한 인물이 되게 만든 케이스가 많습니다. 우리는 누가 심든지 마음속에 씨를 심습니다. 말은 마음터전에 뿌리는 씨앗인데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4~37) 우리 말을 하면 그 말이 우리 마음속에 심어져서 그것이 열매를 맺습니다. 저는 어제도 한 사람에게 신앙상담을 했는데 굉장히 병이 악화되어서 심장병으로 고생을 하는 분입니다. 언제 심장이 그칠지 모릅니다. 그런 걱정을 많이 하고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서 제가 하는 말은 심장이 나쁜 것을 자꾸 생각하면 그 생각이 심장을 더 나쁘게 만든다. 그러니까 말로써 씨앗을 심어라. 무슨 씨앗을 심습니까? 예수님이 주신 치료의 말씀을 입으로 자꾸 하면 네가 내 마음에 치료를 심는다. 우리 마음이 밭이다. 남의 밭이 아니고 내 마음은 내 밭인데 내 마음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심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나음을 입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나음을 입었다.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듣고 있으니까 내 마음에 자꾸 심으면 그것이 힘을 얻어서 심장을 고친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 그러니까 괜찮을까요? 괜찮은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괜찮을까요? 하는 그것도 심어진다. 괜찮고말고. 그래서 저하고 앉아서 똑같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나니’ 합창을 하고 난 다음에 집에 돌아가는데 하루에 30분씩만 아침저녁으로 그렇게 자기 마음에 말로써 심으면 그만한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마사다라는 유적지에서 종려나무 씨앗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씨앗을 알아보니까 2천 년 전의 씨앗이었습니다. 2천 년 전의 씨앗을 화분에 옮겨서 심으니 6주 후에 하나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났다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 난 기사인데 2천 년 된 씨앗도 열매를 맺는데 하물며 지금 열흘도 안 된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싱싱한 말이 씨앗을 안 맺을 턱이 있습니까? 꼭 맺습니다. 우리는 말이 우리의 입을 떠나면 책임이란 추가 달린다고 말했었습니다. 일단 말이 내 입에서 떠나면 이루어져야 될 추가 달려 있어서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책임과 결과가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5만 번 내지 6만 번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입에 5만 가지, 6만 가지 일을 하는데 그 말을 이웃 사람 들으라고 하기도 하고 나 들으라고도 하는데 정말 주의해야 될 것은 이웃이 나의 마음 밭에 뿌리는 말씀의 씨를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웃 사람들이 와서 말하는 것을 마음에 열어놓고 받아들이면 내 마음에 이웃 사람의 씨가 열매를 맺어서 온갖 잘못된 것이 일어나기가 쉬운 것입니다. 우리가 대개 서로 앉아서 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칭찬하고 격려하고 좋게 말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당장 이 강단에서 내려가서 여러분 중 한사람과 이야기 좀 합시다 하고 아무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면 90%는 “못써요. 그 사람은 이러이러한 결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제가 50년이 넘도록 교회 목회를 했으니까 제직을 임명할 때 집사, 권사, 장로, 목사, 교역자를 선택할 때 말을 해보면 좋다고 말하는 사람 10명 중에 한 명은 좋다고 말할는지 몰라도 9명은 다 나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중에 사용해 보면 참으로 좋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 바탕에 씨를 심는데 잘못된 씨를 심을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3. 이웃이 나의 마음 밭에 뿌리는 씨
이웃이 나의 마음 밭에 뿌리는 씨앗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을 받는데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부모가 자식에게 말하는 말은 그 자식의 가슴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한평생에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야 이 나쁜 놈아, 너는 도둑질이나 해먹고 살아라. 공부를 안 하고 밤낮 인터넷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뭘 하겠느냐?” 그러면 그 마음속에 무엇이 심어지느냐면 도적질하고 먹고 살라는 것이 심어져서 자기가 자기 보고 말합니다. 나는 도적질만 하고 먹고 살아야 된다. 나중에 도적질하고 먹고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을 거느리고 홀아비가 사는데 그 아들들 보고 이 세상에는 살아갈 수 없는 꿈이 없다. 꿈이 없는 세상이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적당히 살아라. 맏아들 보고 너는 뭐가 되겠느냐 하니까 꿈이 없으니까 될 대로 살지요. 둘째 아들 보고 “너는 뭐가 되겠느냐” 하니까 “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대학교수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가서 처음에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했던 사람이 아버지와 두 아들들을 만나보았는데 아버지가 폐인이 되었고 두 아들 중에 목적이 없다고 한 아들은 공원 벤치에서 자고 기차역전에 가서 얻어먹고 살고 세 번째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한 아들은 대학 교수가 되어서 훌륭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말을 해도 이 아들은 대학교수가 될 것을 말했고 맏아들은 홈리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아버지는 꿈이 없다니까 꿈이 없는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만히 앉아 계시더라도 여러분의 운명과 다른 사람의 운명을 여러분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마음에 뿌린다는 것은 굉장한 효과를 발생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듣더라도 여러분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서 인생에 꿈을 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꿈을 꾸고 믿고 믿으면 말하게 됩니다. 말하면 그것이 여러분 생활 속에 다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꿈꾸고 믿고 말하자.’ 그렇게 하면 그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이 세상에 굉장한 역사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을 보고 여러분이 직접 이야기하면 여러분 가슴속에 그것이 심어집니다.
신명기 6장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부모가 자식에게 끊임없이 말을 하면 어릴 때 그 말이 심어져서 나중에 인생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도 굉장한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과 선생이 우리에게 뿌리는 씨앗도 마음속에 받아 드려 자라게 하고 환경이 뿌리는 잡초의 씨앗도 많이 받아들입니다. 길거리에 걸어가면서 환경에 마음대로 뿌리는 씨앗을 받아들여서 운명을 그르치는 일이 많습니다.
야고보서 3장 8절로 12절에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한 샘에서 상반되는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단물과 쓴물이 나오지 않는 것을 알아요. 그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씨앗을 심어 놓으면 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못되고 마는 것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니 콩은 콩을 심고 팥은 팥을 심고 벼는 벼를 심고 보리는 보리를 심고 잘 간추려서 심어야지 잡초를 심어놓고 좋은 씨앗이 맺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기르는 자녀들의 가슴속에 온갖 잡초를 심지 말고 한 가지, 한두 가지만 심더라도 집중적으로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가 있는 집에 대접을 받으러 갔는데 마르다는 부엌에서 열심히 음식을 준비한다고 땀을 펄펄 흘리면서 애를 쓰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만 쳐다보고 말씀만 듣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화가 났습니다. 화닥딱 일어나서 부엌에서 방문을 확 열어 제키면서 “주님, 이게 뭡니까? 나는 부엌에서 음식 준비한다고 죽을 고생을 하는데 이 마리아는 앉아서 말씀만 배우고 있으니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마리아를 명령해서 언니를 도와서 음식 좀 만들게 해주십시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고생하나 한두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 하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으니 뺏기지 아니하리라.” 우리 주님께서도 일 많이 벌려 놓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을 한두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 열심히 하라. 그것이 성공을 가져오는 비결이 된다고 했는데 오늘날 아주 머리가 좋고 총명한 사람이라도 너무 많은 일을 벌려 놓으면 그 일에 잡혀서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 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축복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잠언 15장 4절에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온유한 말, 마음에 심는 사람은 생명이 넘쳐나고 패역한 말을 심어 놓으면 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마음에 좋은 말은 뼈에 양약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어서 마음에 가득하게 채우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양약이 되고 지혜가 되고 총명이 되고 몰약이 되고 재능이 되고 결국 이 말씀이 여러분과 나를 크게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잘 못해서 잘못된 무리가 껴서 잘못된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심어 놓으면 우리 마음에 잡초가 무성히 나고 나중에는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가정사역자인 캐롤 레드는 「자녀를 크리스천 리더로 키우는 7가지 원리」라는 책에서 “격려의 힘”이 매우 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제시하는 격려의 방법은 우리가 바로 적용해 볼 수 있는 것인데, 메모지나 카드에 칭찬 한두 문장을 적어서 아이들의 베개 위, 도시락 안, 신발 속, 방문에, 이불 속, 교과서나 성경 갈피에 적어 놓아둔다는 것입니다. 그냥 적어주는 것보다도 조그마한 카드에다가 나는 너를 사랑하다. 네 아버지도 너를 사랑한다. 우리는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될 줄 믿는다. 너 요사이 공부를 열심히 하니까 참 너의 앞날이 희망이 있다. 이렇게 간단한 말을 적어 놓으면 책을 펴다가 보고 그것이 깊은 마음에 인상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칭찬과 격려의 말로써 자녀의 마음 밭에 좋은 씨앗을 뿌리면, 점점 자라서 마침내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자녀를 기를 때 한 자녀 세 사람쯤 기르면 한 짐 짐을 짊어진 것과 같을 것입니다. 세 자녀들을 다 격려해서 훌륭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 여러분은 열심히 애를 쓰고 힘을 써야 될 것인데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격려의 말이 제일 효과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무엇보다도 격려의 말이 아버지가, 어머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그 말은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자녀들을 많이 안 낳으니까 그런 걱정도 면하고 마는 것인데 우리 한국에는 자녀들이 결혼해서 자녀를 안 낳으려고 해요. 일본에서는 이제 자녀들을 많이 낳는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일본 사람들에게 자녀 구걸하러 가면 안 될 것이니까 여러분도 자녀들에게 자녀 많이 낳도록 협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경기도에서 지사님이 날 보고 어린 아이 낳게 하는 총책임자가 되어달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왜 내가 책임을 지느냐고 하니까 목사님이 매일같이 설교하는 설교가 텔레비를 통해서, 라디오를 통해서, 또 강단으로 널리 퍼져가니까 제일 젊은이들과도 접촉이 많으므로 그렇게 해줘야지 우리 말은 안 듣습니다. 시집도 안 가려고 하고 애들도 안 낳으려고 하니 우리 장차 어떻게 됩니까? 그런데 제가 제일 말을 못했어요. 그리고 내가 부흥회를 열 때도 자녀들 낳고 애들 많이 낳으라고 말 안할 때 도지사가 참석해서 나 보고서 “아이고 좀 말을 해달라고 했는데 말을 안 해주네.” 그랬는데. 그런데 실상은 우리 한국 젊은이들이 없어지고 전부 우리 같이 늙은 사람들만 생겨나면 우리나라가 큰일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젊은이들을 많이 생산해 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자리를 사표를 냈으니까 이제는 자연인으로 돌아와서 여러분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4. 내가 나의 마음 밭에 뿌리는 씨
오늘날 다른 사람들이 내게 말을 뿌려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나의 마음 밭에 씨를 올바르게 뿌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 긍정적인 말은 남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 보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자기를 보고 너 훌륭하다. 너 지혜롭다. 너 건강하다. 너 장사 잘 한다. 그런 효과적인 시인을 하면 굉장한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잠언서 6장 2절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여러분을 얽어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자기가 칭찬하는 것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말해야지 자기가 할 수 없다고 말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내게 능력 주시므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조용기 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다. 한번 따라 읽어 주십시오.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말을 안 해줄지라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여러분 입 밖에 나가면 여러분 환경에 역사해서 열매를 맺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여러분께서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하면 된다. 나는 할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이래 봐도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로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와 동행하시면서 축복해 주십니다. 필요한 말을 입에서 계속 말씀하십시오. 그러면 그 말이 나가서 여러분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격려하고 또 자기 이웃을 격려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제는 정탐을 할 사람, 열두 명을 택해서 모세가 정탐하고 오라고 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이 정탐하고 와서 긍정적인 말로써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뭐라고 말했느냐면 “그들은 우리 먹거리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다른 열 사람은 이렇게 말 안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 강하고 우리는 메뚜기 같고 그 사람들의 성벽은 높고 장대한 사람들이 살고 우리는 전쟁을 하면 진다. 우리 자녀들이 포로로 잡힐 것이다.” 긍정적인 말도 남고 부정적인 말도 남는 것인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한 것을 받아서 그것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한번 우리가 여호수아와 갈렙이 한 말을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 14:9)
이렇게 여호수아와 갈렙이 긍정적으로 시인한 결과로 이 두 사람은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한 사람은 들어가지 못했었습니다.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꾸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애를 쓰지 말고 말로써 여러분 인생을 이 자리에서부터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앉아있는 이 자리에서 집에 돌아가기 전에 인생부터 바꾸고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붙잡고 인도해 줄 인생이 바로 여러분 자신인 것입니다.
여러분 보고 “나는 왜 감기만 들면 기침이 나오고 가래가 나오고 왜 빨리 안 낫느냐. 내가 늙어서 이제 이 모양이 되었나. 이제 버림받게 되었나. 왜 이러냐?” 그렇게 하면 더 나빠지지요. 감기가 들려서 집에 드러누워 있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일어서서 걸어 다니게 되고 다른 사람은 폐렴이 든 사람도 있는데 나는 건강한 폐를 가지고 있고 기침이 나와도 사람들 있는데서 큰 기침 안 하고 잔기침만 하니까 좋다고. 좋게 말하면 당장 자기 운명이 달라진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제가 말은 어눌하게 하지만 참말을 한 것입니다. 오늘 집에 돌아가기 전에 여러분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하고 칭찬을 하고 격려를 해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말이 여러분을 훌륭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자기가 자기에게 뿌리는 씨는 인생항로를 결정하는 중대한 요소가 되므로 여러분을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절로 3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야훼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완전히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자기들에 대한 저주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민수기 14장 28절로 29절에 한번 따라 읽어 주세요.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겠다. 하나님이 여러분 말씀을 듣고 있어요. 나쁜 말을 하면 그대로 들은 대로 해주고 좋은 말을 하면 그대로 좋은 말 들은 대로 해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마음속에 심어서 입으로 고백하는가에 따라서 하나님이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긍정적인 말을 계속해서 하나님이 도와주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편 34편 12절로 13절에 보면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8~10)
오늘 이 말씀을 우리가 다 보면 우리의 입술로써 우리에게 심어 놓은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심어주는 것도 있고 친구들이 심는 것도 있지만 여러분이 혼자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잠자리에 있을 때 아침에 깨어났을 때 내가 나에게 말하는 것 이것이 여러분 인생을 변화시키는데 가장 큰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굉장한 비결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 입의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입의 말로 내가 사로잡혔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고 내가 칠십 평생을 살겠느냐.” 그러면 칠십에 죽습니다. “아이고 내가 백 살을 살아야지. 백 살을 살아야 돌봐주지.” 입으로 자꾸 말하면 마음속에 그 씨앗이 심어져서 온 전신기관이 백 살 목표로 앞으로 가! 전부 백 살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그대로 되는 걸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술에서 30초 말하는 것이 가슴에서 받아들여서 30년 동안 그것이 복이 되든지 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입에서 나간 말은 불과 30초밖에 되지 않지만, 상대방의 가슴 속에는 30년 동안 남는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홧김에 내뱉은 한마디 말 때문에 결국 파경에 이르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부부관계를 파경에 이르게 하는 말을 네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부부간에 말 몇 마디 때문에 이혼을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되느냐.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니까 첫째로, “당신이 하는 게 늘 그렇지. 언제 잘 한 적이 있나?” 아주 평범한 말 같지요? 그러나 듣는 사람은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누가 여러분 남편이 와서 “당신이 하는 게 늘 그렇지.” 언제 그러느냐. 반찬을 만드는데 장찌게가 맛이 없어요. 김치가 맛이 없고 장찌게가 맛이 없어서. “아이고 반찬 좀 잘 만들어야지. 오늘 맛있는데요? 맛있기는 뭐가 맛있어? 당신이 만든 것 늘 그렇지! 아무 맛도 없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말꼬리가 되어서 서로 원망하게 되고 싸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비난의 말입니다. 둘째는, “너나 잘 해!” 나도 이번에 누구에게 그런 말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집사람에게 사용한 말은 아니에요. 갖다 일러바치지 말아 주세요. 내가 여기에서 설교한 것 갖다 일러 바쳐서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뭐하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었노? 누가 와서 날 보고 자꾸 나비 넥타이를 매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너무 어려 보이니까 젊잖게 긴 넥타이를 하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넥타이 없이 와도 좋다고 했다가 자꾸 잔소리가 많아서 내가 그 사람 보고 너나 잘해! 너나 잘해! 그러니까 나는 목사님 잘 보이라고 내가 했는데 괜히 오해 하네? 오해가 아니라 나를 자꾸 비난하니까 그렇잖느냐. 너나 잘 해라는 말은 비난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부부간에, “주제 파악이나 잘해라!” 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주제 파악도 못하면서 저런 소리하냐. 그것도 들으면 크게 상처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상처를 입히는 것은 아예 말대꾸를 안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들은 체 만 체 해요. ‘너는 너 말 해라. 나는 내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금만 조심하면 이혼하지 않을 것도 말을 잘못해서 이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부부간에도 어떤 말의 씨앗을 뿌리느냐에 따라서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고 원수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이 씨가 되어서 우리에게 생명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역장님, 구역장님 영혼들을 많이 구원하려거든 먼저 그것을 가슴속에서 보고 그 다음에는 바깥에서 거둬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을 사는데 현재 일어나는 일들은 과거에 내 가슴속에서 일어났던 것들이 지금 옷 입고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가슴속에서 바라는 것이 뭡니까? 가슴속에서 기대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십시오. 그냥 하지 말고 그림을 깨끗이 그려 보십시오. 마음의 기대를 그림으로 그려 보시고 그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입술로 흥얼거리고 노래하듯이 흥얼거리고 다니면 그것이 나가서 내일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코 내일 오늘과 같이 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보다 더 나아진 삶을 살 것인데 그것이 어디에서 있느냐. 여러분 가슴속에 지금 들어앉아 있습니다. 씨가 되어서 지금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내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늘 내 가슴속에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등한히 보지 말고 깊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관심을 가지고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훌륭한 교수도 되고 목사도 되고 세일즈맨도 되고 원하는 훌륭한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고 소망 찬 꿈을 꾸며 할 수 있다는 믿음의 말을 하고 말의 고백이 소망이 넘치도록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