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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22. 주일설교 위로 (고후 1:3~11) <서론> 오늘 저는 “위로”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상처 입은 곳을 붕대로 감아주는 것이 위로인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의 말과 손길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친밀한 관계 속에 있을수록 더욱 위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상사와 아랫사람 사이, 친한 친구 사이 등 어디를 가나 상처가 없는 곳은 없기 때문에 위로가 꼭 따라야만 되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어루만져 잊게 해주시는 진정한 위로가 있어야 이 세상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14년 국내 10대 트렌드” 유행이란 말입니다. 10대 유행 중의 하나가 “위로가 필요한 사회”라는 것입니다. 고용이나 주거, 노후에 대한 불안이 증가하면 힐링이나 멘토, 상담과 같이 불안을 달래주는 “위로 산업”이 발달할 것이라고 예측을 합니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외롭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프리 허그(Free Hugs)” 즉 “공짜로 안아드립니다”라는 이벤트가 열리는 것입니다. 외롭고 괴로운데 따뜻한 가슴에 품어주는 것 위로가 되거든요. 그러니 값없이 길거리에 간판 세워 놓고 오시면 안아줍니다. 그래서 오면 꽉 안아주고 얼굴 비벼주고 그것 만해도 마음에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벤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음으로써 얘기할 수 있는 “도리도리 인형”이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중앙일보, 2014.1.5) 우리 어릴 때 어머님이 우리 보고 야~ 도리도리~ 진진진진~ 조막조막조막~ 그런 기억이 나는데 얼마나 마음이 외롭기 때문에 위로받기 위해서 그런 도리도리 인형을 갖다 놓고 그렇지? 싫어~ 그것을 보고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세상이 얼마나 살기에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필요로 하지만, 정작 위로를 얻을 곳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찾아가서 위로해 주었고, 궂은 일을 당하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고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가족 간에도, 이웃 간에도 상처와 불신이 가득하여 위로 얻기를 힘쓰나 어렵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향해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과 위로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 살 동안에 위로가 필요 없었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그는 사람으로 태어나셨으므로 우리 인생이 겪는 모든 고통을 다 겪었습니다. 사람이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길은 위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오셨기 때문에 사람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상처를 입었으며 인간을 위한 십자가 고난을 당할 것을 생각할 때 한없는 스트레스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이 잔을 옮기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서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앞에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옮겨달라고 말씀을 하셨고 제자들 듣는 앞에서 내 마음이 번뇌스러워 죽을 지경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었지만 순수한 우리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사람이 당한 고난을 견디기 위해서는 위로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위로가 필요한데 주님께 결정적인 위로를 준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베다니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자가 옥합을 품에 품고 왔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시집갈 때 지참물로 옥합에 향료를 채워서 가져가는 것입니다. 옥합이 크고 향료의 질이 좋으면 시집갈 때 대단한 환영을 받습니다. 그런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그냥 값진 것이 아니라 아주 고급 향유로 가득채운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냥 붓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발 앞에 와서 탁 때려서 바삭하고 깨뜨렸습니다. 그것은 그날로써 자기 인생을 예수님 앞에 다 부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시집도 안 간다. 이제 여태까지 모아놓은 향료를 다 부어버렸으니까 또 새로 언제 모으겠습니까? 내 인생은 이로써 주님 앞에 부어버린다. 그런 이유로 옥합을 깨뜨려서 향기가 가득차게 향료가 쏟아지는데 이것을 예수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나머지는 예수님 발에 붓고 그대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머리칼을 펼쳐서 발을 막 닦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을 쳐다보는 그 얼굴에 환희가 넘쳤습니다. 기름이 온 머리 산발이 된 머리에서 뚝뚝 흐르고 온 손에 기름천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도 아니하시고 그대로 음식을 잡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얼굴을 시퍼렇게 해서 고함을 치면서 이 여자를 향해서 비난을 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4절로 5절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그렇게 고함을 치고 여자를 꾸짖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한 사람이 하루 일당을 받는 것이 한 데나리온입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라니까 노동자가 일 년 동안 모은 돈, 그만한 값이 나는 기름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한참 계시다가 그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힘을 합쳐서 왜 이것 낭비하느냐 그렇게 하실 것 같은데 안 했습니다. 주님은 이 여자를 변호했습니다. 예수님이 마가복음 14장 6절로 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나는 이제 죽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이 여인이 기름을 가지고 와서 그의 머리에 붓고 발에 부어서 머리채로 닦음으로 말미암아 그에 대한 감사와 흠모의 정을 나타낸 것이 굉장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 안 있으면 세상을 뜨셔야 되는데 모든 사람이 자기를 버리고 나가실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이 이름 모를 여인이 와서 그를 사랑해 주고 격려해 주는 대에 대한 마음의 위로가 얼마나 큽니까?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여자를 꾸짖는 자를 주님께서 크게 꾸짖고 변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은 천하 어느 곳에서든지 이 여자가 한 일이 기념될 것이라. 이 세상에 낭비가 있는데 허랑방탕해서 낭비한 낭비도 있거니와 거룩한 낭비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낭비는 거룩한 낭비인 것입니다. 이 여인은 거룩한 낭비를 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4장 9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엄청난 칭찬인 것입니다. 온 천하만국에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기름을 내 발과 머리에 부은 것이 기념되리라 했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져서 오늘날 제가 2천년 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 강단에서 이 여자가 한 일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수님도 위로가 있어야 십자가를 걸머집니다. 큰 고난은 위로가 없이는 견뎌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크고 적은 고난을 많이 당하는데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위로를 해주면 쉽게 이기고 전진해 나갑니다. 그러나 위로가 없으면 자기 목숨을 끊는 일이 있습니다. 여인의 신실하고 전심을 다한 사랑의 위로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게 하는 힘이 된 것입니다. 위로에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2. 사도 바울과 위로 우리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 선생이 있지 않습니까? 사도들 중에 가장 위대한 사도인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느냐. 사도 바울은 삶에 큰 위로를 받아서 그 위로 때문에 수없이 죽음의 고비를 겪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기 어려운 고난이라도 성령님의 위로가 임하면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심한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만난 다메섹의 체험과 셋째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말씀을 들었던 체험의 특별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이라는 마음에 큰 믿음과 위로가 있은 것은 그가 다메섹에 가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대낮같은 빛이 비치더니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말하기를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너가 나를 핍박하는가,” “주여, 뉘시니이까?”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그는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서 예루살렘으로 와서 심판하려고 가는 길인데 그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빛 가운데서 만나고 눈이 부셔서 어두워졌습니다. 야~ 예수님은 살아 계시구나.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구나. 뼈까지 느끼도록 체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메섹에 들어가서 시가라는 곳에 아나니야라는 사람의 인도를 받아서 예수님을 확실히 알게 되고 눈에 비늘이 떨어져서 다시 보게 되고 뜨거운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 그는 하나님이 사용하기 위해서 그를 데리고 셋째 하늘로 끌고 올라갔습니다.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에 도저히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것을 보았습니다. 그쯤 보았으니까 그는 마음속에 그 은혜가 위대한 위로가 된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은혜가 기억 속에 남아있어서 위로가 돼요. 저는 사도 바울 선생만큼 위대한 일도 못했고 고난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나님이 사도 바울 선생에게 주신 은혜를 내게도 주셔서 좀 대낮에 예수님을 만나보게 해주시고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오게 해주시면 나 바울보다 더 크게 했을 거예요. 사람이란 은혜를 받으면 은혜가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성령을 받으면 성령이 마음속에 계셔서 오래오래 은혜가 되고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쓴물을 달게 하는 것은 은혜인 것입니다. 은혜가 여러분의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후 1:8~10) 이렇게 어마어마한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당하면서도 바울이 이긴 것은 그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그것이 마음속에 있어서 큰 위로가 된 것입니다. 위로라는 것은 파라클레오라는 헬라어인데 파라라는 것은 곁에고 클레오라는 것은 와서 도와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다른 보혜사, 예수님은 처음 보혜사 나와 똑같은 다른 보혜사 성령 보혜사를 보내겠는데 이 성령 보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 가까이 와서 우리를 돕는 이라는 말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은혜로 인하여 고난을 극복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예수님은 첫째 보혜사고 또 다른 보혜사, 예수님과 똑같으나 다른 보혜사가 와서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예수님이 그를 보내신지 2천년의 세월이 지나갔으니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셨으니 지금도 여러분에게 같이 계신 것입니다.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므로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성령께서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이 함께 계시므로 우리가 인격적으로 인정해야 돼요.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립니다. 저와 같이 계시고 저를 위로하시고 도와주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주님이 말씀해 주신 것을 기억하게 해주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6~27) 근심이 꽉 들어찬 세상인데 근심, 걱정 다 맡기고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구해서 다른 보혜사가 와 계신 것입니다.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염려를 없애 평안을 주시고 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의지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 의지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오늘 강단에 설교하러 나오기 전에 성령님 함께 나가십시다. 성령님 없으시면 못합니다. 기억도 안나구요. 깨닫지도 못하구요. 은혜도 없구요. 성령님 도와주십시오. 한국에서 나올 때는 한국말로 합니다. 성령님 가십시다. 외국에 나가서는 영어를 말합니다. Dear Holy Spirit, Let’s go. 일본에 가서는 일본말로 합니다. 왜냐, 성령님은 모든 사람 가운데 계시면서 모든 사람의 말을 다 알아듣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성령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므로 여러분은 절대로 외롭지 않고 고독스럽지 않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마귀에게 억압당하고 쫓기고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여러분은 성령님이 같이 계시므로 성령님께 부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기도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면 성령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므로 성령님께 부탁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 4천년 동안에는 아버지가 역사하셨고 신약 30년 동안에는 예수님이 역사했고 오순절 날 이후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는 2천년이 넘도록 성령님의 시대라. 성령님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악수하자고 손 내밀면 성령님이 손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과 같이 계시면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될 것입니다. 초대 교회 때 억센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줄기차게 복음이 증거된 것은 성령의 위로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감옥에 끌려가도 감사하고 기도하고 성령의 위로가 꽉 들어차서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못 먹어도 극복하고 얻어맞아도 극복하고 성령의 위로가 우리에게 큰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위로가 있으면 어떠한 외로움과 고통이 있어도 살아나갈 수 있어요. 일찌감치 남편이 죽고 자녀들을 데리고 혼자 사는 여인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만 애들이 어머니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잘해서 성적을 잘 따서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 고맙다고 하면 그 위로가 얼마나 커서 내가 죽더라도 일을 해서 낙심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최근에 내게 그런 말을 해요. 목회를 하는데 너무너무 괴로워. 이 이상 목회를 그만두면 좋겠다고 싶은데 하루는 권사님이 우리 목사님 너무나 고생한다고 허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면서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해주는데 온 하늘을 다 주는 것 같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권사님 한 분을 위해서라도 나는 남아서 목회 하겠다. 그런 결심이 생기더라고 위로라는 것은 너무나 좋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제 알았느냐. 나는 50년 동안 목회하면서 어느 곳에 가든지 교인들이 나면 보면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제자들도 오기만 오면 적어도 주시옵소서. 많아도 주시옵소서. 돈이 필요합니다. 주시옵소서. 그렇게 달라고만 하는 말만 듣다가 나에게 조그마한 먹거리를 가지고 와서라도 앞에서 기도해 주시고 이것 먹고 건강하라고 하면 그것이 마음에 얼마나 고맙고 위로가 되는지 더 기도하고 더 열심히 주의 사업을 해야 되겠다는 그런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로가 필요가 없는 것같이 생각되지만 그것 잘못된 생각입니다. 절대적으로 위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얼굴이 못나고 키도 작고 말도 잘 못하고 학력이 없더라도 굉장히 부인을 위해주고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붙들어 주면 그것이 위로가 되어 나타나면 어떤 잘생긴 남자보다 그 못생긴 남자하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것입니다. 위로가 있어야 돼요. 위로 없는 인생은 버림받은 인생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 성령이 오셔서 위로가 되면 전도자가 돼요. 남에게 나가서 열심히 전도하고 구역장, 지역장, 주의 종이 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위로가 마음속에 왔기 때문에 그 위로를 감당할 수 없어서 주의 종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절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시절에 성령이 임해서 충만하게 되고 방언까지 하게 되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위로가 넘쳐나게 되므로 어떤 고난도 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위로의 영인 것입니다. 파라클레토스.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아 위로해 주는 영입니다. 그 위로가 있으면 어떠한 고난도 이겨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교회가 크게 수가 많아지는 것은 성령의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서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사람들에게 위로를 나눠주므로 예수 믿는 사람 수가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로를 받은 사람이어야 다른 사람도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위로를 받으면 그 위로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3절로 7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이로다. 환난 때 부르짖으면 위로해 주셔서 환난을 이기게 해주시고 그 다음 환난 당한 사람들에게 가서 위로해 주시는 체험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고난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이 위로도 더 많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난에 우리가 참여하면 하나님께서 고난과 동등한 위로도 또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고난과 위로 이 두 가지가 항상 같이 따르는 것입니다. 고난 없는 신앙이 없어요. 예수 믿으면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있으면 넘어지고 시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으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위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의 쓴물이 다가오면 위로의 단물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의 슬픔이 다가오면 위로의 기쁨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으로써 마음이 답답하면 위로로써 마음이 상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위로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오고 말씀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위로가 되고 하나님 말씀을 공부할 때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서 여러분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갈 동안에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위로 없이는 이겨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가장 위대한 선지자가 누구였죠? 누구였습니까? 엘리야였죠. 엘리야가 이스라엘 아합왕 시대에 이방여자 이세벨을 아내로 데리고 와서 온 이방의 신상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게 했습니다. 그때 선지가 한 사람이 남아 있었는데 엘리야였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 바알 선지자 450명을 불러 모아놓고 내기를 했습니다. 네가 믿는 바알이 참 하나님이냐, 내가 믿는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냐. 시합을 해서 불이 내려와서 재단을 태우는 신이 참신으로 하자. 그런데 바알의 450명 선지자들이 오전 중에 내내 춤을 추며 고함을 지르고 기도해도 불이 안 임했습니다. 그러나 오후 제사지낼 때쯤 될 때 엘리야는 재물을 갖다 놓고 물동이로 물을 부어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늘에서 벼락 치듯이 불이 떨어져서 그 짐승을 다 태웠어요. 모든 백성들이 야훼가 하나님이라고 고함을 치고 엎드렸습니다. 그 백성들의 도움을 받아서 바알 선지자 450명을 잡아서 기드온 시냇가에 내려가서 칼을 가지고서 목을 다 베었습니다. 450명의 목을 베자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러고 난 다음에 기도를 하니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 오던 그 땅에 비가 왔습니다. 그래서 그가 시내로 들어와서 집안으로 들어와서 잠을 자는데 이세벨이 그 이야기를 듣고 사람을 보내서 너 목을 내가 베겠다. 그렇게 위대해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 온 곳에 비가 오도록 한 그도 지치고 피곤할 때 협박을 받으니까 거꾸러졌습니다.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차서 그 길로 일어나서 유다 브엘세바에 가서 종을 두고 하룻길을 걸어서 사막길을 걸어서 로뎀나무 밑에 앉아서 엉엉 울면서 하나님이여~ 이제 나는 못 견디겠습니다. 나의 생명을 거둬주시옵소서. 나는 선조보다 못합니다. 나는 죽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한마디 말로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서 450명 바알신상을 섬기는 사람을 다 붙잡은 그가 어떻게 그렇게 약해졌습니까? 사람은 위로가 없으면 지치고 피곤해지면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한 사람이 많아요. 그렇게 잘 살던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고 고난을 당하고 난 다음에는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자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로뎀나무 밑에 드러누웠습니다. 그리고 될 대로 되라.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이 엘리야를 어떻게 했습니까? 천사를 보내어서 어루만져주었습니다. 그냥 만져 준 것이 아니라 어루만져주었다. 여러분, 남편이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고 피곤해서 오면 아내가 집에서 기다렸다가 밥만 해주면 되는 것 아닙니다. 어깨도 어루만져 줘야 돼요. 팔다리도 만져주고 수고했다고 우리 식구를 먹인다고 고생한다고 그러면 속으로 웃던지 울던지 합니다. 위로가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자꾸 부인이 잔소리한다고 하지 말고 남편 되신 여러분 얼마나 수고하느냐. 오늘 내가 위로 좀 해주마. 그리고 품어주고 어루만져 주면 모든 피곤이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천사가 엘리야에게 와서 그냥 말만 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에게 와서 아주 낙심해서 넘어져 쓰러져 있는데 어루만져 주었어요. 사람이 어루만져도 기가 막힌데 천사가 어루만져 주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난 다음에 천사의 손에 물 한 병과 떡을 가지고 왔습니다. 떡을 먹여주고 그 다음에 물을 마시고 그리고 난 다음에 한 숨 더 자라. 피곤하지 한 숨 더 자라. 한숨 더 재우고 난 다음 또 어루만져 주어서 그 다음 물주고 떡 주고 그러니까 엘리야가 살아나서 옛날 엘리야가 된 것입니다. 아주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기 위해서 호렙산으로 그 먼 길을 걸어가도 피곤치 않았습니다. 엘리야 같은 사람도 낙심할 때 위로를 받았는데 여러분 위로를 받아야 돼요. 그래서 교회에 나오면 목사님이 강단에 서서 죄인들이여, 죽일 놈, 살릴 놈, 이 세상에 있으면 벼락을 맞을 것이다. 소돔 고모라로 다 불탈 것이다. 그런 소리 들으면 세상이 그렇지 않더라도 사는데 피곤하고 지친데 교회 와서 목사님께 늘씬 말씀으로 맞고 나면 어깨가 축 늘어져서 올데 갈데가 없는 처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위로를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부 다 위로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로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3. 서로 위로하라 이사야 40장 1절에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러므로 저도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여러분을 위로해야 돼요. 저의 설교를 듣고 위로를 받지 못하면 실패한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난 다음에 그 목사 이름이 뭐라고 하더라? 용기라 하지? 용기를 얻었다. 나는 오늘 용기를 얻었다. 여러분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나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위로합니까? 로마서 12장 15절처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즐거워하는 잔치집에 가서 엉엉엉 울고 있으면 이것은 저주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망쳤습니다. 초상집에 가서 하하하 아이고 오랜만이다. 여기에 어떻게 왔느냐. 아주 고약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분위기를 따라서 우는 자에게서 같이 울고 웃는 자에게 같이 웃어야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비난과 공격으로, 말로써 상처를 줍니다. 잠언 12장 18절에 보면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아주 말을 칼로써 찌르는 것같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면 앉자마자 허물을 말하고 과거에 잘못한 것을 말하고 칼로써 찌르는 것이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가정에 이혼하는 부부들 보면 서로 말로써 칼을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서로 미움이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써 허물을 덮어주고 거듭 말을 한 것을 또 하고 한 것을 또 말하지 아니하면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 17:9) 남에게 잘못을 지적할지라도 한두 번이지 두 번하고 세 번하고 또 하고 또 하면 분노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된 여러분 남편에게 원망스러운 말이 있거든 한 번쯤 하고 마십시오. 한 번쯤해도 자기 속으로 충분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면 낙심시키는 것입니다. 아주 고약한 생각이 떠올라서 대결을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부탁하는 것도 한두 번만 하면 되는 것이지 자꾸 거듭거듭 말하면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허물은 덮어주고 말은 거듭 거듭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과 이해와 칭찬과 동정으로 위로하는 것을 힘쓰고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사랑을 베풀고 말을 하는데 이해를 하고 칭찬을 해주고 동정하는 것이 그 사람을 살리는데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위로를 받아야 전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깁니다. 위로받으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자꾸 비난하고 공격하고 약점을 잡으면 낙심하고 뒤로 넘어지는 것입니다. 위로해 주면 위로를 받아서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고 한 말은 바로 두 사람 이상 있으면 위로하고 격려하므로 굉장한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충만하여 여러분 만나는 사람마다 항상 위로해 주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잘하는 것은 자꾸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못하는 것은 지적하고 싶으면 한번쯤 하고 난 다음에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장점을 말하고 단점은 덮어주는 것이 여러분 위로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우리가 하나님 성령께 의지하고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를 방언을 통해서 도와주시고 또 이 말씀은 여러분 성경에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교훈도 되지만 실제로 이것은 약이 되고 치료가 되고 양식이 되고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병들거나 육체가 병들 때 일반약을 먹어도 몸이 낫지 않고 괴로울 때 이 성경 말씀 있지 않습니까?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즐거움은 무엇이라구요? 약이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에 그랬어요. 실제로 눈에 안 보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실제 약인 것입니다. 마음에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그러므로 몸이 아프면 여러분 마음에 즐거움을 가지는 거예요. 어떻게요? 나는 즐겁다. 기쁘다. 나는 즐겁다. 기쁘다. 네 입의 말로 네가 묶였으며 네 입의 말로 네가 사로잡힌다고 했으므로 말하면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여요. 내가 기쁘고 즐겁다. 그러면 그것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약이 돼요. 하나님이 사용하는 약이 되어서 보통 약으로써는 못 고칠 병이 척척 낫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이 아플 때 암이 걸렸던지, 관절염이 걸렸던지, 불면증에 걸려서 고생하든지 하면 여러분 앉아서 혹은 누워서 나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나는 기쁘고 즐겁다. 나는 기쁘고 즐겁다. 자꾸 말하면 약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깨끗이 나아버려요. 참말입니다. 아직 감기기가 있으면 다른 것 하지 마십시오. 아스피린 안 먹어도 좋아요. 나는 기쁘고 즐겁다. 할렐루야~ 나는 기쁘고 즐겁다. 나는 기쁘고 즐겁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한숨 자고 일어나면 감기가 온 데 간 데 없어요. 하나님의 약을 먹었으니까.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기쁘고 즐겁다. 나는 기쁘고 즐겁다. 나는 기쁘고 즐겁다. 이제 예배 마치고 나갈 때 다리가 가뿐한지 안 한지 알아보세요. 아주 어려운 문제가 생겼으면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택해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는 내게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는 내게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게 어려움을 해결하는 약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 하나님은 그 고백을 통해서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입에서 말을 해야 하나님이 그것을 약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어려운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십시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내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렇게 말을 하고 나가면 그것이 하나님이 사용하는 특효약이 되어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의 공부는 이렇게 위로가 되어요.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이 공부하면 그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것입니다. 그냥 글이 아닙니다. 소설책이 아닙니다. 시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치료약인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분을 자유케하고 해방케하는 치료제인 약인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 알고 그것을 여러분께서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신 것을 꿈꾸고 믿고 입술로 말을 하면 정말로 지금까지 체험해보지 못한 능력이 여러분 생애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성경책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해결책 약으로 생각하고 항상 성경을 많이 외우고 많이 입으로 시인하면 여러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기적이 꼭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50절과 105절을 보면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말씀 자체가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다” 내가 고난당할 때 주님이 말씀을 말하면 그 말씀이 위로가 되어서 마음에 힘을 주고 주의 말씀이 나를 살려주신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다 날 버려도 내가 말씀을 가지고서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시인하면 그 말씀이 큰 위로와 생명이 되어서 나로 하여금 패배하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결론> 위로가 없이 고난만 당하면 희망을 잃고 자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는 위로를 항상 준비하고 있고 위로를 나눠야 되는데 안 믿는 사람은 위로를 받을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 십자가가 우리의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신 예수님 십자가 죄를 지으면 용서하는 위로가 되시고 거룩하게 되는 위로가 되고 병든 자에게는 고침의 위로가 되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는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주는 위로가 되고 죽는 자에게는 부활 영생 천국의 위로가 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항상 바라보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입으로 외워서 위로로 삼으십시오. 여러분 속에서 생기와 생명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여러분과 같이 계셔서 위로가 되므로 우리는 이러한 위로를 통해서 이 세상 고난을 이기고 살아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 사람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부모님의 위로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너를 너희 어머니가 위로하듯이 위로해 주겠다고 했는데 집에 있는 부모가 여러분을 위로해 주시고 자녀들이 부모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일가친척이 위로가 되고 친구가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거꾸로 위로가 되지 못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위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난이 다가와도 그것을 달게 하는 위로가 없으면 소망차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를 위로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어머님 위로 없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어린아이 기저귀 갈아주고 등허리 쓰다듬으면서 아이 우리 아기 컸구나~ 이제 어른이 다 되었구나. 거짓말 하면서 위로를 해주면 어린아이들은 그것을 듣고 쑥쑥 자라는 것입니다. 위로가 있기 때문에... 공부를 잘 못하는 것도 어머니가 위로를 해주면 공부를 잘하게 됩니다. 에디슨은 너무나 공부를 못해서 학교 교장 선생님이 에디슨을 어머님과 함께 불러서 이런 천치는 우리 학교 생기고 처음 보았습니다. 도저히 교육을 못시키겠으니 데리고 나가십시오. 그러나 어머님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교장선생님, 우리 아들은 너무 머리가 좋기 때문에 일반 애들하고 같을 수가 없습니다. 천재기 때문에 바보 같은 일반 아이들과 같이 못 있으니 내가 교육 시키겠습니다. 그래서 에디슨을 데리고 나갔는데 에디슨이 지금 우리에게도 덕을 끼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전등불을 에디슨이 발명했어요. 오만가지 필요한 것을 발명해서 우리를 편하게 했는데 그 에디슨이 어머니의 위로의 말 한 마디 때문에 그렇게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은 어머니의 위로의 말로써 위대한 사람이 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린 아이들에게 쥐어박지 말고 위로해 주십시오. 넌 머리가 좋다. 위로를 해주십시오. 카르소 같은 사람은 유명한 독창가였습니다.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음악학교에 갔는데 학교 선생이 불러서 이만큼 돼지 목 따는 소리하는 사람 처음 봤다. 아주 음악가가 못될 것이다. 얘는 음악에 소질이 없다. 완전히 낙심해서 좌절했는데 그 어머니가 아니야~ 우리 아들은 음악을 잘해~ 반드시 성공한다. 소질이 있다. 어머니가 카톨릭 신자였는데 카톨릭교에 나가서 성가대에 들어가서 노래하게 했습니다. 어머니의 격려를 받고 얘가 열심히 한 결과에 구라파뿐 아니라 오늘날 세계가 아는 음악가가 된 것입니다. 격려를 해주면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사이 저보고 격려를 많이 해주십니다. 옛날보다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 더 건강해 보인다. 설교도 옛날보다 더 깊이 있게 잘한다. 그 말씀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용기와 힘을 주는데 전에 느끼지 못한 용기와 힘을 주어서 더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고 더 기도도 많이 하게 되고 운동도 하게 되고 설교도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 위로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나는 온 세계 어느 곳에 가서 목회하는 것보다 우리 4부예배 와서 말씀 전하라면 이것을 택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다 넘버원이에요. 하나님께서는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는 것이 우리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낙심한 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셔서 일어나게 해주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의 은혜를 주신 이가 하나님이요 우리 주 예수님이요 보혜사 성령님이 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으므로 반드시 두고 보세요.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좋아지는 것입니다. 명년은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