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31. 주일설교

율법과 은혜
(눅 15:11~32)

<서론>
“율법과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대단한 관용과 은혜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이웃을 바라볼 때는 무서운 비평과 율법의 판단으로 정죄를 합니다.
“오십보 백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다가 적군에 쫓겨서 도망을 쳤습니다. 발이 빠른 사람은 백보로 도망을 쳤고 발이 느린 사람은 오십보 도망을 치는데 적이 침공하기를 중지하자 오십보 도망친 사람이 백보 도망친 사람을 보고 겁쟁이들 봐라. 백보나 도망을 쳤다고... 자기는 빨리 달리지 못해서 오십보 달렸지 빨리 달릴 수 있으면 백보 이상으로 도망을 쳤을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오십보 도망친 사람이나 백보 달아난 사람이나 같아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죄인입니다. 돌멩이를 물에 던져 보십시오. 작은 돌멩이도 물에 가라앉고 큰 돌멩이도 물에 가라앉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작은 돌멩이는 “퐁당”하면서 가라앉고 큰 돌멩이는 “풍덩”하면서 가라앉습니다. 소리만 다를 뿐이지 물에 가라앉는 것은 똑같이 가라앉는 것입니다.
신학자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죄인이 있는데 한 종류는 자기가 죄인인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한 종류는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사는 죄인입니다. 자기가 죄인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데로 죄를 지었고 아는 사람은 알고 죄를 지은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큰 죄, 작은 죄, 나쁜 죄, 덜 나쁜 죄 사람들은 분별하지만 하나님 앞에는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세상에 마음이 팔린 둘째 아들
오늘 이야기를 보면 한 사람이 두 아들을 키웠는데 큰 농장을 경영하는 분인가 봅니다. 그런데 둘째 놈이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기왕 나이를 많이 잡수시면 우리에게 재산 나눠줄 것이니까 미리 나눠 주십시오. 나의 분깃을 나에게 주십시오. 아버지께 강요를 하는데 아버지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밤낮으로 부르짖고 간청하고 울고불고하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둘째가 세상을 바라보니까 세상의 마귀가 그 마음을 점령해서 끌어당겼습니다. 그러므로 집에 있지 않고 세상으로 나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인지 바라보면 끌려갑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그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곳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마귀가 와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저 선악과를 바라보라.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바라보라고 자꾸 바라보니까 선악과에 끌려가서 결국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실 때 별들을 바라보고 내 자손이 저와 같이 많을 줄 알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밤마다 나가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내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된 것입니다. 땅을 줄 때도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하리라고 했습니다. 롯이 왜 소돔과 고모라 땅으로 내려갔습니까? 요단 저 건너편에 있는 인간이 만든 아름다운 땅인 소돔과 고모라 땅을 늘 바라보았습니다. 끌려갔습니다. 바라봄이 엄청난 인력을 가지고 사람을 끄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바라볼 데가 많습니다. 텔레비도 채널이 많고 바라볼 것이 많고 환경에도 바라볼 것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굉장히 어지러워지는 것은 양 사방에 세상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그러므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1절로 12절에 보면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안 나눠 줄 도리가 없어요. 재산은 자손들이 마땅히 자기들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난 다음에 아버지의 시신 앞에 형제들이 모여서 애곡하는 것같이 있더니 아버지의 비서가 와서 아버지 재산을 다 남기고 간 것이 아버지 금고 속에 있다고 하니까 형제들이 다 뛰어 들어가서 금고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고 그 다음에 금고에서 돈을 끄집어내고 난 다음 서로 나누고 난 다음에 그 빈소에 가보니까 아버지 사진만 남아있지 자식은 한 놈도 없더라는 이야기를 읽어보고 뭘 그런 것이 있겠나 과장했지. 서양 사람들은 그럴지 몰라도 동양 사람인 우리 한국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그렇게 내가 생각했는데 요사이 신문 보니까 진짜로 아버지 재산만 있으면 들고 나가버렸지 아버지 시신도 안 돌보는 자식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재산이란 분쟁의 원인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모아가지고서 먼 나라로 갔습니다. 아버지 가까이 있으면 또 아버지가 잔소리할까 싶어서 먼 나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꿈이 없기 때문에 방탕한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꿈이 없으면 망한다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목표가 있고 꿈이 있으면 그것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목표도 꿈도 없으면 방탕하여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방종과 방탕의 결과
방종과 타락한 생활이 있으면 반드시 기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모으는 재산 없고 먹는 재산만 있으면 재산이 오래 남아있지 않지 않습니까? 저희 할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서 평생에 일을 열심히 해서 우리가 태어났을 때는 1년에 천석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쌀 천가마니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는 고아로 자랐기 때문에 엄청나게 절약을 했습니다. 우리 할머니에게 옷 한 벌도 안 해줄 정도로 고생을 시켜서 할머니가 늘 눈물을 흘리면서 너 할아버지가 내가 시집오고 난 다음 1년에 옷 한 벌도 안 해주는 살림을 살라고 했다고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가 굉장히 깍쟁이었어요. 할아버지에게 명절에 가서 아무리 절을 해도 한 푼도 안 줍니다. 그런데 그렇게 절약했기 때문에 천석을 해서 우리 큰아버지, 우리 아버지, 작은 아버지 잘 살 수 있도록 뒤를 돌보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할아버지 재산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 잡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재산이 있으면 다 그것을 먹어버리고 기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차라리 재산 나눠주지 않으면 절약할 줄 알지만 재산을 많이 상속받으면 절약을 할 줄 모르고 허랑방탕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기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3절로 14절에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사람이 잘살다가 궁핍하면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나는 아프리카선교를 나가서 여러 곳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느낀 것은 참으로 너무나 궁핍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빈손 들고 입에 풀칠하기가 힘든 것을 보고 괴로웠었습니다. 내가 어제 일본서 온 손님 한 분 모시고 저녁 대접하러 갔는데 그 손님이 말하기를 한국에 와 보니까 서울이 사실은 동경보다 더 화려한 도시로 이렇게 잘 사는 줄 몰랐다고... 그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서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과연 그렇다. 내가 서울에 공부하러 왔을 때도 한국은 가난했다. 서울 주변은 다 판자촌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짧은 세월 동안에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잘살게 되었는지 그 비결이 있다. 그것 뭐냐, 예수님을 잘 믿으면 잘살게 된다. 지도를 펼쳐 보아라. 세계 어느 나라든지 잘 사는 나라는 다 예수 믿는 나라다. 그 이외에는 잘 살려고 애를 쓰는 과정에 있지 예수 믿는 나라처럼 잘살지 못한다. 주님께서 문을 열어 놓으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는데 주님께서 우리 한국에 문을 열어 놓은 것은 내가 목사가 되어서 처음 복음을 전했을 때 한국 기독교인이 백만 명도 안 되었다. 그래서 우리 목사들이 모여서 10년 이내 한국에 백만 명 성도가 되도록 함께 노력을 하자고 했는데 백만 명이 아니라 천만 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환난 때 내가 저와 같이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장수함으로 내가 저로 만족케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셨다. 이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잘 살려면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예수 믿는 사람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밑에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나누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성경에 주님이 그렇게 약속했으니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허랑방탕하고 살면 반드시 궁핍한 시간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돈이 있을 동안에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여기저기 친구로 삼겠다고 오는 사람도 많고 여자들도 서방님 이리오세요. 저리 오세요. 옷자락이 찢어질 정도로 끌어당깁니다. 자기가 영웅처럼 생각이 되어서 허랑방탕했는데 돈이라는 것이 오래 가나요? 허랑방탕하면 다 써버리고 마는 것인데 가난하게 되어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으니까 누가복음 15장 15절로 16절에 보면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직장을 구했는데 그 주인이 이 사람을 돼지 치는데 보낸 것입니다. 왜 돼지치는데를 말하냐면 유대 나라에서 가장 천한 직업은 돼지 치는 직업인 것입니다. 가장 천한 직업인 돼지치는 직업을 얻어서 갔으나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가 있는데 쥐엄열매로 돼지 먹이를 줄 때 주먹을 내밀어서 먹으려고 하니까 돼지가 손을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돼지도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양식을 안 잃어버리려고 하거든요. 여러분 짐승들이라고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아닙니다. 시골에 살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집에 불이나면 시골에는 밑천이 재산목록이 소입니다. 소를 외양간에다 묶어 놓는데 그냥 소를 불이 났으니 때리고 잡아당겨도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 타죽어도 외양간에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를 끌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쉽게 끌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소 구유를 엎어버립니다. 소 밥그릇을 엎어 버려요. 그 말은 뭐냐면 이곳이 네가 살 곳이 아니다는 그 말인 것입니다. 자기의 구유가 엎어지는 것을 보면 그 다음에 이리야 가자 하면은 그대로 뛰어 나옵니다. 소도 밥그릇은 그렇게 중요합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있어봤자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살 수만 있으면 괜찮은데 먹고 마시고 입고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해지면 짐승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궁핍과 멸시와 천대가 마음에 깨달음을 주는 것입니다. 마음에 깨닫지 못하고 세상이 꽉 들어차서 자기가 잘난 줄 알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시험과 환난이 다가와서 입에 풀칠할 것도 없고 많이 고통스러우면 깨달음을 주는 것입니다. 극한 고난을 만날 때 깨달음이 오고 깨달음이 오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배부르고 평안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배가 고파 죽겠다. 직장도 없고 도움도 받을 수 없으니 어떻게 할까?’ 쉽게 마음문을 열고 하나님께 찾아가서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3. 탕자의 회개
이 탕자는 그 마음속이 깨어졌습니다. 아버지를 멀리 떠나 먼 나라에 있었으나 배가 고프고 고통스러우니까 그 마음속에 변화가 다가왔습니다. 우리 아버지 집에는 품꾼들이 많은데 품꾼들도 아버지가 음식을 충분히 주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면서 농장에서 일을 하는데 나는 여기서 그 부자의 아들로서 있으면서 굶어 죽는다. 이럴 것이 아니라 회개를 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우리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고 야훼는 풍성하게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깨어져서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여러분에게 처음부터 에덴낙원을 주신 하나님인데 모자람이 없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축복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버지가 그 많은 물질을 가지고 계시면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젊은이가 아버지를 등지고 나갔지만 우리 아버지 집에는 품꾼들도 배불리 먹고 사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죽는구나 하고 탄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눅15:17~19) 마음속에 리허설을 합니다. 아버지에게 가서 아무 말도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회개를 하기로 작정을 하고 연습을 해서 아버지에게 유창하게 회개를 하려고 작정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가 잘나지도 못했고 실패하고 패배한 인생으로서 보잘것없는 인생이니까 아버지께 가서 아들로 인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품꾼이라도 만들어 주어서 밥 먹고 살게 해달라고 그 마음을 표시하기로 작정하고 아버지께로 가니 아버지가 이 아들이 오기 전에 이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 우리 탕자들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고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은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잘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주셨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믿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죽어가면서도 회개치 않은 사람처럼 완악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안 믿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깨어질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 용서와 사랑이 그 근본인 것입니다. 인애와 자비를 가지고 용서와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시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못 알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은 사랑과 인자를 가지고 우리를 대해주시지 정죄하고 심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 이놈 죄를 지었으니 죄값 받아라. 그렇게 냉정하게 대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4. 아버지의 사랑
이 탕자 비유에 보면 자세히 들어보세요.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 15:20~21) 그런 회개를 하기 전에 아버지가 미리 와서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습니다. 회개하기 전에 벌써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는 끌어안은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오기를 작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벌써 부둥켜안고 사랑하는 자녀로서 받아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께 나온다고 해서 우리가 의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로써 회개하기 전에 하나님은 벌써 우리를 받아주셔서 품에 안아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6절로 10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는데 죄를 짓고 있는데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데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를 보내서 미리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우리 죄를 다 속량하시고 난 다음에 오라고 환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보다 언제나 한 발자국 앞서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응답할 준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리라고 하셔서 오늘 여러분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왔을지라도 하나님이 응답하려고 준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난 다음에 즉시 응답 못 받는다고 낙심을 하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린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참아야 돼요. 즉각 응답할 것은 즉각 응답하지만 대개는 시간이 걸려서 응답할 것이 많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기도하고 난 다음에 40년 기다렸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간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40년 기다려서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정한 때에 기도를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서둘지 말고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간으로 주님께 나오면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아니하시고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벌 내리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께서 종들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자기 아들이 회개를 하기도 전에 끌어안고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혀라. 돼지를 치던 더러운 냄새가 나는 옷을 입고 있는 그에게 저 허름한 옷 갖다 입히라고 하지 않고 제일 좋은 옷 갖다 입혀라. 왜냐,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무엇이든지 제일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은 나에게 제일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 다음 가락지를 끼워라. 가락지는 아들이 된 증거로써 가락지를 끼우는 것입니다. 신발을 신겨라. 종은 신발을 신기지 않습니다. 아들은 신발을 신고 있는 것입니다. 밭에서 일할 때 똑같은 일을 합니다. 종이나 아들도 함께 똑같은 일을 하는데 누가 아들이고 누가 종인지 분별하려면 발을 보면 압니다. 신발을 안 신으면 종이고 신발을 신으면 아들인 것입니다. 신발을 신겨라. 정식으로 상속자가 되는 증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우리에 가면 병든 송아지 있으니 말라깽이 한 마리 잡아라. 그렇게 할 줄 알았는데 제일 살찐 소를 잡아라. 말라깽이 송아지 잡지 말고 제일 살찐 소를 잡아라. 우리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잃었다가 얻었으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좋지 않으냐. 하나님은 범죄인 한 사람이 돌아오는데 이렇게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은 너무 좋아서 어이구 좋다~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쳐다보시고 눈을 감지를 못하십니다. 너무 좋아서...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다 무시하고 좋아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처럼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지극한 사랑을 받고 계신 것입니다.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가락지를 끼워라. 신발을 신겨라.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 먹고 즐기자. 아휴 아버지 미안한데 안 그래도 좋습니다. 미안할 것이 무엇이냐.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오늘 여러분 하늘 나라에 들어왔으니 여러분이 마음에 하나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야 기도를 할 때 거지같이 기도하지 않고 담대하게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먹을 양식조차 없는 극심한 궁핍에 처하자, 아버지의 집을 떠올려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우리도 돌아갈 아버지 집이 있습니다. 우리 어릴 때 밤 늦게까지 동네 애들하고 모여서 딱지 따먹기 하고 구슬치기 하는데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면 내일보자~ 흩어져갑니다. 돌아갈 집이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날이 어두워지는데 돌아갈 집이 없이 들판에 홀로 남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인생을 살면서 삶의 폭풍우가 불어옵니다. 피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폭우가 내려 쏟아집니다. 피할 곳이 없는 자가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마른 땅에 목마르게 하는데 시냇물이 없으면 어떻게 물을 마시겠습니까? 곤비한 땅에 쓰러질 때 바위 그늘이 있으면 피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폭풍우를 피할 수 있는 곳이고 폭우를 가리우는 곳이고 마른 땅에 시냇물이 되고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이 되어서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서 중생하면 그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그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서도 마음에 만족함이 없습니다. 권력이 있어서도 마음에 만족함이 없습니다. 마음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처소가 확실하기 때문에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만족함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캄캄한 밤을 맞이할 때,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우가 내릴 때, 돌아갈 집이 없다면 참으로 불행하나 예수 믿는 사람은 인생의 밤이 찾아올 때 돌아갈 집이 있고 인생의 폭우가 몰아칠 때 피할 곳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달려나와 여러분을 품에 안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값 주고산 가장 비싼 옷을 입혀 주고 성령의 가락지를 끼워주고 하나님이 예비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신발을 신겨주고 마음에 살찐 송아지를 먹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음에 언제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고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아침에 깨어날 때부터 바라보고 잠자리에 들어갈 때도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은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서 하나님이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일생에 지은 죄를 다 청산해버린 것입니다. 모든 허물을 십자가에서 다 청산했습니다. 여러분이 부탁하기 전에 주님 미리 나와서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죄악과 허물을 청산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질병과 고통을 다 청산하시고 그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와 가난을 청산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주시고 그 십자가에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부활, 영생, 천국을 다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마음속에 감동을 느끼고 그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입으로 말을 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지으실 때 말씀을 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궁창이 생겨나라. 말이 있을 때 성령이 그것으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꼭 말씀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속으로 생각하지 말고 입으로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이 내 죄를 허물을 다 청산하셨다. 주님께서 나의 병을 다 고치셨다. 나의 모든 저주와 가난을 청산하셨다. 주님이 나의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내게 천당을 주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음속에 그 은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바라보고 말하는 것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매일같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입술로 말을 하십시오.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주께서 같이 하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머리에 발라 잔이 넘치게 하신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겉사람만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도 살아있기 때문에 속사람을 통해서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을 바라보고 말하고 믿고 감사드리고 하면 그러한 분위기가 이루어지고 그 분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좋은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심판하기 위해서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십니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마음속에 그려봅니까? 믿습니까? 한번 말씀하십시오. 나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이런 주님을 모시고 사니까 우리가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종결적인 소원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 이 말씀을 받아들여서 믿고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5. 형과 율법
그런데 오늘 이 이야기에서 보면 맏아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집에 들어오니까 집에서 불을 환하게 켜놓고 장구치고 북 두드리고 노래가 들려서 종을 불러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으니까 당신의 동생이 몸 성하게 집으로 돌아온 것을 기쁘게 생각해서 살찐 송아지를 잡았다. 뭐 어쩌고 어째? 그 개 뭐 같은 놈이 들어왔는데 아버지가 받아들였단 말이야? 나는 그러한 집에 안 들어가! 종이 놀래가지고서 아버지에게 가서 맏아들이 들어와서 저렇게 화를 내고 밖에 있다고... 그래서 아버지가 나가니까 아버지! 도대체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기생들하고 다 해먹어버리고 거지가 되어서 이제 살기 위해서 돌아온 놈을 환영을 하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요? 아버지가 본정신입니까? 다른 정신입니까? 나는 아버지를 섬겨서 방탕도 아니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농사를 지어왔는데 아버지가 나와 친구를 위해서 염소새끼 한 마리도 안 잡아 주시더니 창녀들하고 재산을 다 날리고 돌아왔는데 왜 살찐 송아지를 잡았습니까? 그러니 아버지가 얘야, 내가 너에게도 재산 상속을 해줬지 않느냐. 내가 있는 것도 너에게 세상 뜰 때 너희에게 다 주고 떠날 것이 아니냐. 너는 나를 잘 따르고 순종하고 착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내가 남은 것 너에게 다 주고 갈테다. 그러나 너의 동생은 완전히 거지가 되어서 그래도 회개하고 돌아온 것이 이쁘지 않느냐. 내가 죽은 자를 얻었고 잃은 자를 찾았으니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화내지 마라. 나는 못해요! 저런 나쁜 놈을, 죄인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저는 쫓겨나야 마땅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러지 마라. 용서해주고 사랑해줘야지.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나는 안 들어갑니다. 아버지 혼자 들어가십시오. 율법주의자들은 이웃을 바라볼 때 정죄하고 심판하지 절대 용서와 사랑을 갖지 않습니다. 율법 앞에 의롭다함을 입을 육체가 없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보면 정죄하고 심판하면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탕자가 돌아오매 주님께서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서 영접하고 사랑을 해주니 율법주의자인 그 형은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나중에 천당에 누가 갑니까? 천당에는 죄인들이 들어가는 곳이고 자기들이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들어오라고 해도 안 들어오고 자기 스스로가 천당에서 멀리 떨어져가는 것입니다. 여기 아버지가 한 말 들어보십시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31~32)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 다음에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누가복음 6장 37절에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문을 열어 제끼고 관용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서 비판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남의 잘못을 비판하면 반드시 그 사람도 나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내가 정죄하면 그 사람도 돌이켜 나를 정죄하고 내가 이웃을 발가벗기면 이웃이 나를 발가벗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우리가 이웃을 정죄하고 심판하지 말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뽑고 이웃 형제간에 눈에 있는 티를 뽑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정죄하지 아니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6. 사랑과 은혜로 대하라
우리는 사랑과 은혜로 이웃을 대하는 생활을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대할 때 어떻게 하는지 단단히 들어보세요.
시편 103장 8절로 13절인데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런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여러분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지 여러분을 정죄하고 심판하지는 결코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바라보실 때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우리 마태복음 20장 28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러분을 섬기러 와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목숨을 대속 제물로 주신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요한복음 1장 17절 다같이 읽으십시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예수님은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 우리 같이 읽어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은혜는 여러분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 대가 없이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천당 가는 것은 아무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공로로 천당 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 다음에 믿고 난 다음에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그 삶을 살아야 하늘에 가서 상급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고 난 다음에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지 아니하면 사탄이 와서 믿음을 빼앗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무조건하고 천당은 가되 여러분이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모습은 끝까지 계속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언제 죽더라도 예수님의 공로로 천당은 가놓은 것이니까 마귀에게 끌려서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의 기독교 작가인 C.S. 루이스는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 중 기독교만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물으니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 그 은혜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든 그대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여러분이 주님을 섬기려고 노력하고 애쓰면서 살면 살수록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상급을 더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왜 이야기를 했냐면 예수님은 죄인들하고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와서 당신 선생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저 죄인들하고 같이 식사를 하니 어찌된 일이냐. 당신 그러한 분이 당신 선생이라고 하는데 선생은 죄인들과 멀리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야지 저 꼬락서니가 뭐냐.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이 이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의인을 찾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 구원하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있을 곳은 의인 가운데 있을 것이 아니라 죄인들 가운데 있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요사이 에볼라 바이러스가 아프리카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 않습니까? 에볼라 바이러스는 약이 없어요. 그런데 미국인 선교사 의사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려서 죽어갈 때 미국으로 이송해 올 때 미국 신문들은 에볼라 바이러스 걸린 사람 미국에 데려오지 말라고 떠들고 야단법석을 했습니다. 미국 사람이니까 못 오라고 할 수 없어서 들어올 때 병원의 의사가 자진해서 이 사람을 돌보아주었습니다. 그래서 나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 이 무서운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린 환자를 당신도 처자가 있는 사람인데 병을 고치려고 한 용기가 어디에서 생겼느냐.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감동한 것은 나는 의사입니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것이 의사지 병을 보고 도망치는 것은 의사가 아닙니다. 나는 이 사람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려 온 것이 어마어마한 무서운 병인 줄 압니다만 의사는 병을 고치는 것이 의사이기 때문에 나는 지금이라도 또 이 병에 걸린 사람이 오면 그 사람 고치기 위해서 치료를 할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보고 도망치면 의사가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신 것입니다. 나는 구원하는 사람이다. 구원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 곁에 있어야 구원하지 물에 빠진 사람보고 도망치면 구원할 수 없다. 나는 구원자이기 때문에 죄인 가운데 내가 있어야 되므로 언제나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같이 있는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죄인이면 예수님이 여러분 더 가까운데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죄인이 없으면 예수님이 역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 17)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 한 사람도 주님은 버리는 사람 없습니다. 죄가 적은 사람이나 큰 사람이나 차별 없이 오늘 이 시간에 당신의 보혈로 씻으시고 구원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이중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지 마십시다. 한편으로는 비평과 정죄를 하고 자기에게는 용서와 사랑을 갖고 사는 이런 위선자가 되지 말고 갈보리 십자가를 짊어지고 오신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드리고 용서를 받고 사랑을 받고 주님을 섬기며 사는 우리들이 되도록 믿음을 가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