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5. 성찬주일설교

죽음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일
(눅 16:19~31)

<서론>
“죽음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생명체는 반드시 죽습니다. 나는 어제 그저께도 나하고 절친한 친구인데 나하고 100살 살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난 다음에 무엇이 그렇게 바쁘던지 미리 가버렸어요. 나보다 건강도 좋고 사람이 서글서글하고 같이 있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친구인데 섭섭하기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체험적으로 다가올 때 그것은 구경꾼이 아닌 나의 사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나 혼자 걸어가는 골짜기지 결코 손잡고서 함께 죽음의 세상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하루아침에 강단에 들어가니까 청청대에 있는 김상호 목사라는 우리 교단에서는 가장 신령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어른이 부고가 날라와 있어요. 엊저녁에 집회하고 집에 들어가서 주무시는 길에 영영 주무시고 말았다고... 빨리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내려와 달라고 하는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어른도 굉장히 몸도 건강하고 그리고 아주 신령하여 제가 존경하는 분이신데 그래서 제가 빨리 존 스테츠 목사님이신 우리 교장 선생님께 연락해서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해서 그때는 차가 선교사 밖에 없었으니까 선교사의 차를 타고 고속도로가 없는 먼지투성이의 시골 길을 달려가니까 이것 웬일입니까? 그 교회 가니까 김상호 목사님이 만연에 웃음을 띠우면서 손을 흔들고 나와요. 아니 죽었다고 전보를 쳐놓고 왜 살아 있노? 글쎄 전보는 내가 안 쳤는데 돌아와 보니까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그럼 도로 죽을까요? 아니요. 괜찮다고... 그 아주 재밌는 영감인데 그가 하는 말이 부흥회를 인도하고 밤에 숙소에 들어와서 드러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같이 집회를 하던 분이 옆에 잠을 자러 들어왔다가 좀 비켜 자리를 내 놓으라고 해도 나무 몽둥이 같거든요. 보니 죽었더랍니다. 그러니 내가 보기에는 진단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기는 죽었어요. 그런데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죽으니까 어떻데? 어때요? 그러니까 편안하더라고.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 이 세상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평안이 마음속에 가득한데 이 세상에서 자네 나보다 먼저 천국간 내 아내와 내 맏아들이 그곳에서 다 장성된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를 반가이 맞이해줘서 나도 굉장히 반갑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러면 지금 있는 사모님하고 큰일났네? 나중에 천당 가면 누구하고 살아야 하노 하니까 거기에 가니까 남편이나 아내의 구분이 없고 모두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자기 친자식도 다 장성한 천사와 같은 사람으로서 서로 친밀은 하지만 소유를 하고 있는 감정은 없더랍니다. 그리고 정말 세상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살 때 체험된 이야기를 실컷하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도로 가라고 해서 가니 깨어나서 이렇게 되었다고.. 참 재밌는 영감인데 보통 같으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할 것인데 내가 그것을 진실로 믿는 것은 하루 밤새도록 강원도에서 범하고 잤는데 안 먹힌 분이 그분입니다. 밤에 눈이 많이 와서 전도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눈에 빠져 가지고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고 지쳐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나는 도저히 지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고 눈은 너무 많이 왔고 천상 여기 눈 위에서 잘 수밖에 없으니 주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에 쓰러져서 잠이 들었는데 실컷 자고 난 다음에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범이 자기를 안고 밤새도록 안고 있어서 눈을 뜨니까 얼굴을 핥아서 세수를 해주더랍니다. 아이고 아버지 고맙습니다. 나는 따뜻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산 호랑이 가죽을 가지고 덮어주시니 감사하고 세수까지 시켜 주시니 고맙습니다. 일어나니까 범이 일어나서 뒷걸음질을 하면서 물러나가버리고 무사히 살아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게 순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굉장히 신빙성이 있고 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에는 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다음 세상의 실존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현실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과정
현실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것이 하루하루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로 21절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여기 부자는 이름이 없습니다. 한 부자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심정을 우리가 느낄 수가 있습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옛날에는 권세 있는 사람은 자색 옷을 입었습니다. 고운 베 웃은 부자들이 입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으니 권세도 있고 돈도 있는 사람인데 좋은 음식과 술과 친구들과 어울려 매일매일 인생을 즐기면 산 것입니다. 권력과 돈이 있으니 먹고 마시고 인생을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103편 15절에 보면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가 아주 호화롭고 즐겁게 연락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눈깜짝할 사이에 들의 풀과 같이 말라지고 꽃처럼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자랑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을 전혀 섬기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냥 한 부자지요. 그러니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이 다 있어도 이름조차 기억 안 되는 불쌍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지 나사로는 대문 밖에 거적을 깔고 누더기를 걸치고 누워있었습니다. 무엇이 다르냐. 그냥 거지가 드러누워 있더라 그렇게 기록하지 아니하고 이름을 딱 적어 놓았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하나님이 거지 나사로가 주님께 기도하니까 그 기도를 매일같이 들으시므로 이름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이름을 알아준다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 때 누구든지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인정받는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거지 나사로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인데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고 비록 부잣집 대문 앞에서 얻어먹고 살더라도 주를 예비한 흔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밝혀서 나사로, 거지. 그러나 내가 너의 이름을 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는 일용할 양식을 벌 힘이 없고 그로 인해 살 집도 없고 더구나 몸에 병이 들어 치료도 받지 못하고 개들이 함께 있어 헌데를 핥아 주는 절망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부자하고 다른 것은 부자는 세상일에 풍부했으나 하늘나라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나사로는 하나님이 그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름 가운데 그의 모든 생애가 들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죽음 이편의 세계
죽음 이편의 세계는 인간은 영적 나, 혼적 나, 육체적 나 즉 삼위일체로 되어 있다고 제가 여러분들게 여러 번 말씀 드렸습니다. 조용기 너는 누구나? 예 저는 영적인 조용기입니다. 그 다음은? 혼적인 조용기입니다. 그 다음은? 육적인 조용기입니다. 삼위일체가 되어서 살고 있습니다. 왜 사람이 복잡하냐면 하나이지만 셋이고 셋이지만 하나인 삼위일체가 되어있기 때문에 굉장히 복잡합니다. 우리가 영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지어진 것으로 영이 살아있으면 하나님과 대화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라 했으니 그런데 영이 죽었다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영이 죽었으므로 죽은 사람이 대화가 됩니까? 하나님과 대화가 안되니까 영적인 세계는 깜깜한 것입니다. 오늘 주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깜깜합니다. 전혀 모릅니다. 혼적 세계는 살아있지요. 혼이라는 것은 우리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면을 강조해서 말한 혼입니다. 혼은 이성과 과학적 사고를 깨닫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세계는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혼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신화를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성경은 신화에 불과하고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라고해서 안 믿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영도 없고 하나님도 안 계시고 물질밖에 없으며 인간이 전부다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 그러므로 혼적인 사람에게 전도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내 친구 한 사람 세상 떴다는 친구 굉장히 사람이 서글서글하고 좋아서 내가 예수께 전도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오스트리아 집회갈 때도 데리고 가고 뉴질랜드에도 데리고 가고 남아프리카에 갈 때도 데리고 갑니다. 내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를 따라다니면 그 대 군중을 보고 대 집회를 보고 예수를 믿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데리고 다녔는데 야, 너 사료장사해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그 돈 가지고 천국가지 못한다고 하면 에~ 천국이 어디 있어? 너 말하는 것 보니까 훈련 많이 했더군. 그러면서 대 군중을 보고 야, 사업은 근사한 사업이다. 너 1년에 수입이 얼마냐! 이 사람아 수입이 어디 있냐? 이 모든 사람이 주는 헌금은 다 주의 사업으로 환원을 하지 나는 이 사람들의 헌금을 가지고 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돈으로 산다. 예수쟁이들 그렇게 말을 해도 부자들은 다 예수쟁이더라. 그게 무슨 말이고? 미국도 예수 잘 믿고 잘 살고 오스트리아도 예수 잘 믿고 잘 살고 영국도 예수 잘 믿고 잘 살고 예수 믿는 나라마다 가보니까 다 잘살데. 그러니까 주 안에서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는 않는다. 나보고 그런 고생하지 말고 나처럼 장사를 해서 내 포켓트에 돈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 아무리 전도해도 성령께서 감화감동 안하니까 안 믿어요. 기도하면 아멘도 하는데 그것 왜 하느냐고 하니까 너희들 다 하니까 따라 한다고... 결국에는 예수를 믿지 않고 세상을 뜨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 여러분 힘으로 믿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안그래요. 성령이 여러분 마음을 열어 주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눈으로 보았어요? 못 보았지요? 예수님 음성 귀로 들었나요? 못 들었지요. 예수님 죽음에서 부활한 것 보았어요? 못 보았지요. 혼으로 사는 사람처럼 그것은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미신이요 우상이라고 말하는데 그런데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음성을 안 들어도 믿습니다. 눈으로 안 보아도 믿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한 것을 믿습니다. 그가 내 속에 들어와 계시고 함께 계신 것을 믿습니다. 희한하지 않습니까? 성령이 여러분 마음을 감동해서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세전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시고 너는 내 것이라고 선택하시고 여러분 죽은 영혼을 부활시켜서 생기를 얻게 하시고 오늘날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육적인 나는 감각적이고 본능적이고 탐욕적인 것, 쾌락적인 것만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 육체적으로 사는 사람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그 다음 육신적인 모든 요구 이런 것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할 때 이 사람이 육체를 중심으로 사느냐, 혼을 중심으로 사느냐, 영을 중심으로 해서 사느냐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 와서 앉아계신 여러분은 당연히 영을 중심으로 해서 산다고 믿습니다. 성령이 여러분과 대화를 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회개하고 말씀을 경청하는 것을 볼 때 영이 살아있는 것이 틀림이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내 속에서 낳은 자식이라도 공부를 많이 하고 교육을 많이 받고 혼이 발달된 사람은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믿습니다. 이성적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믿습니다. 절대로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신앙에 대해서 아주 웃기는 소리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말할 필요 없이 육체적인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점에 집중하고 모든 인생의 쾌락에 집중하고 살지 그 이외에는 죽으면 그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기에 부자는 혼적 자아와 육적 자아가 삶을 점령하고 영의 세계는 관심도 없고 또 알 수도 없었으며 혼적 자아와 육적 자아가 죽음으로 사라질 때 그 존재의 끝이라고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소외된 처지라 하나님을 찾고 모시고 영이 살아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람은 거지니까 인정해주지 않고 사랑하지도 아니하고 친구도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 이름을 기억하시고 나사로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화할 수 있는 영적인 신앙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3. 죽음 저편의 세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거지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혼적 세계를 떠나고 육체적인 세계를 벗어버리고 내 영이 하나님 앞에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적 및 육체적 세계를 벗어버리자 그 영적 자아는 천사들에게 에스코트를 받아서 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2절에 보면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낙원은 믿음으로만 가는 곳이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만 낙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절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낙원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낙원은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처소인 것입니다. 대합실인 것입니다. 천국 대합실이 낙원인 것입니다. 저 건너편에 강 언덕에 아름다운 낙원 있네 믿는 이만 그곳으로 가겠네 라는 찬송도 있지 않습니까? 천국은 돈, 힘, 지식, 이뻐도 마음 착해도 못가고 오직 거듭나서 믿음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낙원인 것입니다. 부자는 죽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자도 죽어 혼과 육을 벗어버리니 우주의 쓰레기 처치장인 음부의 불꽃 가운데 떨어졌습니다. 그것도 지옥의 대합실이 음부인 것입니다. 천국대합실이 낙원이고 지옥 대합실이 음부입니다. 그 음부가 벌써 불꽃이 활활 타는 곳으로 음부에 불꽃 가운데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부자가 음부에 떨어져보니 기가 막힙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산 것은 과거고 그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면서 쳐다보니 낙원에 아브라함이 있고 아브라함의 품에 나사로가 있어 희희낙락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2절로 31절에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얼마나 괴롭기에 물 한 방울 찍어서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간구하겠습니까? 세상 살 동안에는 바켓으로 물을 퍼서 부어도 부을 수 있는 처지였는데 이제는 손가락에 물방울 떨어뜨려서 서늘하게 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낙원하고 음부하고 서로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서로 말은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그런 제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건나왔다가 건너갈 수는 없는 사이에 굉장한 구렁텅이가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건너가지 못하고 건너오지 못합니다. 그 불꽃 가운데서 낙원에 있는 나사로를 보니 얼마나 부럽습니까? 그때야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세상에 살아있을 때 기도를 한 번도 안한 그가 음부에 내려가서 기도를 하니 기도가 응답됩니까? 안됩니다. 여러분, 어떤 종교는 친척이 죽으면 살아있는 사람이 자꾸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면 그 음부에서 낙원으로 폭폭 뛰어올라온다고 그렇게 말을 하는데 거짓말입니다. 아무리 폭폭 뛰어 올라와도 벼룩이처럼 천정에 바쳐서 떨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아브라함과 대화가 이루어졌는데 물 한방울만 혀를 서늘게 해달라고해도 거부되고 말았었습니다. 이르되 안 된다고 하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우리 집에 사람을 보내가지고서 죽었다가 살아나게 해서 천당과 지옥이 꼭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내 형제가 다섯이 있는데 그들이 이 소식을 듣고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고 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여기에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살았을 때 구원을 받는 것이지 죽고 난 다음에는 구원이란 없다. 여러분 많은 종교가 죽고 난 다음에도 세상에 살아있는 일가친척이 그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주고 제사를 많이 드려주면 지옥에서 살아 일어난다고 하는데 절대 거짓말입니다. 그러면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모세와 선지자라는 것은 성경입니다. 저 건너편 세상에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식을 알려면 성경을 봐야 합니다. 성경을 찾아가서 성경이 주는 말씀을 믿지 아니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이 가서 이야기해도 안 믿는다. 그러므로 성경이 보배입니다. 성경이 하늘나라에 대한 소식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 지상에서는 성경을 통해서 만나는 것이 제일 올바른 만남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대속한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나 우리는 다 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 우리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키셨다. 이사야 53장에 있는 말인데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대로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면 보혈로써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고 성결을 얻으며 마음에 병이나 육체의 병이 고침을 받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얻게 되고 부활, 영생, 천국을 얻는 정보가 그 성경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다고 했는데 회개하고 천국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천국 간다는 것이 성경에는 밝히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가서 이야기해도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은 성경말씀을 전할 때 따라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4. 4차원의 세계
이 사실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바리새교인인 니고데모와의 대화 속에 잘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라는 바리새교인이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와서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8)
비록 그는 율법주의자고 바리새교인이나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난 신기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아니고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장 그를 보고 말하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난다는 것은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혼의 사람, 육의 사람으로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습니다. 혼의 사람, 육의 사람은 3차원 세계의 사람이요, 영의 사람은 4차원 성령의 세계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영이 사람이 살아나오지 않고는 절대로 하늘나라의 일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니고데모가 거듭난다고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육으로 난 사람은 언제나 육이지 육이 영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깃덩어리가 아무리 해도 영이 안 됩니다. 영으로 태어나야 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희한하게 만들었습니다. 육으로 태어나서 혼과 육을 가지고 있는데 혼과 육의 3차원의 세계 속에 눈으로 안 보이는 영적인 나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영이 육과 혼을 다스리면서 살게 되었는데 영이 죽어버리니까 사람이 완전히 혼돈되고 부패해서 혼과 육이 서로 경쟁하여 나를 다스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인 자아가 영원한 자아입니다. 혼과 육은 물질이기 때문에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하나님은 영이신데 하나님은 안 죽잖아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우리 영은 안 죽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사든지 지옥에서 영원히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이신데 하나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유를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도 입에서 나오는 말이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보통말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말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영적인 말로써 창조력이 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내 말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창조력이 있다. 그러므로 보통 여러분들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말로써 여러분의 환경을 다스리는 창조하는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적인 사람이 죄를 지어 죽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이 오셔서 거듭나게 해서 옛 영의 사람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니고데모가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느냐고 그러니까 주님께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을 쉽게 알려면 바람과 한가지이다. 헬라어로는 둘이다 프뉴마토스입니다. 바람도 프뉴마토스고 영도 프뉴마토스입니다. 바람이 있는 곳에 우리가 있는 것과 같다. 여러분 바람을 보았습니까? 못 봤죠? 바람을 느낍니까? 느낍니다. 여러분, 어디에 있습니까? 바람 가운데 있습니다. 바람이 내 위에 있고 내 아래에 있고 나를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움직이면 내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바람처럼 우리를 둘러 진치고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여러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지는 못해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감동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지고 진동이 오고 아주 평안하고 기쁘고 즐거운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이 오셔서 바람이 우리와 같이 있는 것처럼 우리와 같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은 같이 있는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신 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제자들과 같이 있다가 떠나가고 난 다음에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과 똑같이 제자들을 돕습니다. 여러분들을 돕기 위해서 성령이 와서 계시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성령이 꼭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여러분과 함께 24시간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영적 세계는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물은 회개를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성령이 곧장 들어와서 점령을 하고 하늘나라 자녀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는 지금 성령이 들어와 계시고 성령이 4차원의 영으로써 여러분과 함께 손잡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3절로 16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길이 너무 험난하고 괴로우니까 원망, 불평을 하다가 불뱀이 나와서 물어서 많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잘못했다고 회개하고 모세에게 살려달라고 하니까 모세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달아라. 그를 쳐다보는 자마다 독에서 해방된다. 그래서 신속히 놋뱀을 만들어서 높이 달아 뱀에 물린 사람 놋뱀을 바라보면 산다. 그 놋뱀을 바라본 사람마다 퉁퉁 부은 사람들이 독이 떠나가고 깨끗하게 건강하게 낫고 안 믿는 사람은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그 사건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너희들도 세상에서 마귀 뱀에 물려서 독이 올라서 다 죽어가지만 내가 너희를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높이 달릴 것이니 나를 쳐다보고 믿으면 죄의 독이 다 사라지고 다 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놋뱀을 바라보고 산 것처럼 우리도 죄의 독, 허물의 독, 병의 독, 저주의 독, 죽음의 독, 독에 얽혀서 전부 다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 독을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기만 하면 독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를 믿어서 독이 다 해소되고 내 속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서 우리에게 주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은혜가 충만한 것입니다. 그것을 입으로 우리가 시인하면 그것이 창조적인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항상 매일같이 나는 영혼이 잘된 사람이다. 입으로 말합니다. 나는 범사에 잘된다. 나는 강건하다. 씩씩하다. 튼튼하다. 나는 기쁘다. 나는 즐겁다. 나는 감사하다. 이것은 이미 여러분 속에 성령으로 쌓아놓은 것을 입술의 말로써 하므로 우리 생활 속에 창조적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말이 여러분의 운명을 창조하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 예수를 믿는 자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서 사는데 이 땅에 육신을 가지고 살다가 제일 먼저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 낙원으로 가는 것입니다. 낙원은 천국 대합실입니다. 아브라함의 품이라고도 말하고 낙원이라고도 말하는데 신약에서 낙원이라고 사용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옆에 있는 강도가 주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까 주님이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도 죽으셔서 대합실 낙원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영을 하고 할렐루야를 했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은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살아있을 동안에 셋째 하늘 낙원에 들어가서 사람으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낙원에 들어갔다 나온 것입니다. 요사이 죽어서 하늘에 갔다왔다는 사람은 다 낙원에 갔다온 것을 말합니다. 천국 아버지가 계신 천국은 나중에 부활 승천해서 낙원이 천국으로 들어가고 합쳐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고 말씀한 것입니다. 천국은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요한복음 14장 2절로 3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는 아버지 집입니다. 낙원이 아니고... 낙원보다 한단계 더 좋은 아버지집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집에 우리가 있을 곳을 예비해 놓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절로 5절은 아버지 집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이것이 아버지가 계시는 아버지 집 하늘나라인데 여러분과 제가 낙원에 있다가 주님이 강림하시고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함께 전부 이 천국에 들어갈 곳인 것입니다. 그러나 음부에 떨어진 영혼은 최후의 심판까지 음부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옥의 대합실이 음부인 것입니다. 나사로라는 그 부자는 지금도 그 음부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만국을 불러서 심판을 받고 그 다음에는 음부는 지옥으로 던져지는 것입니다. 지옥은 인간의 머리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말을 해봤자 누가 깨달아 알겠어요? 좌우간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음부에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음부에 내려가고 나면 다시 다른 데로 못 올라옵니다. 세상으로도 못 오고 천국으로도 못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 9:48~49)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얼마나 무서운 곳이겠습니까?
<결론>
나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갑니까?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느냐. 무엇하며 사느냐. 어디로 가느냐. 아무리 해도 대답이 없어도 예수를 믿고 나면 대번에 대답이 오는 것입니다. 어디서 왔느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나를 낳아 주어서 아담과 하와로 이 세상에 있다. 무엇하고 사느냐. 예수 믿고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산다. 어디를 가느냐. 낙원에 가서 대합실에 기다렸다가 나중에 아버지 집 천국으로 들어간다. 대답이 환해요. 그러나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어디서 왔느냐? 경상남도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31번지에서 왔습니다. 자기 태어난 주소밖에 말할 수 없거든요. 무엇 때문에 사느냐.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기 위해서 삽니다. 부자 나사로와 같이 대답하다가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말지 않습니까? 어디로 가느냐. 아이고 흙으로 변하면 없어지고 말지 뭐 있겠어요? 전혀 번지수가 다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정체성이 뚜렷합니다. 하나님이 손으로 지으신 아담과 하와의 품에서 태어나서 타락한 고로 그 타락한 유전을 받아서 이 땅에서 고생을 하고 삽니다. 그러면 무엇하기 위해서 사느냐. 예수 믿고 하나님 섬기고 하나님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삽니다. 그 덤으로 이 땅에 살 동안에도 예수님 덤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과 은혜를 받아 살다가 주님이 오라고 주님이 부르시는 날 낙원으로 갑니다. 간단하고 좋지 않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되실 줄 믿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 밖에 대답해 주실 수 없는데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오중복음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죄를 용서하는 복음, 거룩함을 얻는 복음, 병 고침 받는 복음, 저주에서 해방되는 복음, 천국 영생 복락을 얻는 오중복음을 십자가에서 받아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삼중축복, 전인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꿈에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입술로 시인하면 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나의 생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섬기고 그 은총을 누리고 살다가 주님 오시는 날에 모두다 낙원에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