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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 성찬주일설교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살아라 (고후 4:7~11) <서론>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살아라”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텅 빈 가슴은 마귀의 집입니다. 마귀는 텅 빈 가슴속에 들어와서 자기 둥지를 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빈집의 우환이라는 예화를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 43절로 45절에 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것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마귀가 사람의 몸에 자기 거처를 삼고 있다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쫓겨나가고 물 없는 광야를 다니듯이 괴로워하다가 자기가 쫓겨나온 그 사람에게 찾아가보니까 예수를 믿다가 믿음이 약해지고 세상으로 도로 돌아가는 상황에 처한 것을 보고 옳지 됐구나. 나와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와서 차지하니 나중 형편이 처음 형편보다 더 악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빈집으로 살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요즘 텅 빈 가슴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50대 이후의 여성들이 빈집 증후군을 많이 앓는데, 자녀들을 다 키워서 세상으로 내보내고 난 다음에 아이들이 없는 텅 빈 집에 사니 마음이 외롭고 슬프고 답답합니다. ‘내 인생은 뭔가’ 그런 생각에 마음에 공허한 허무를 느끼게 해서 많이 마음에 병든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요사이 남성들도 텅 빈 가슴으로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소위 기러기 아빠 증후군을 앓는 아버지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자녀들을 공부시키느라 아내와 자녀들을 외국에 보내고 한국에 혼자 남아서 일만 하다 보니 그 마음이 텅 비어서 우울증이 마음을 괴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우리는 이러나저러나 마음속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아야 텅 빈 증후군, 기러기 증후군을 다 쫓아내고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예수님이 들어와야 우리는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으로 삼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2절로 4절에 보면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48편 14절에도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우리 하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삼고 그 하나님께 늘 의지하고 간구하고 찬양하고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가 있느냐. 하나님은 성경말씀 속에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서 신비한 체험을 하려고 하면 시험들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특정인에게 영적으로 음성을 듣게도 하시고 환상을 보게도 하시지만 이것은 극히 드문 일이고 우리가 보편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말씀 속에 계신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모시면 하나님을 모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우리가 어려울 때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을 발휘하여 마음속에 생명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계시면 파죽지세로 이기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도단성에 엘리사가 종과 하루를 지냈는데 아침에 종이 나가보니 아람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려고 그 도성을 첩첩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엘리사에게 와서 선생이여 우리 죽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아람 군대가 첩첩히 둘러 싸여 있으니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이 청년의 눈을 뜨게 하여 보게 하옵소서 하니 하나님이 그 눈을 띄워 주셨습니다. 눈을 떠서 보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천군과 천사들이 아람군대와 엘리사 사이에 첩첩히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놀랬습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리를 첩첩히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큰 기쁨과 소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여러분께서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안 보여지니까 우리 꿈을 꾸고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와서 계시고 하나님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 진 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입니다. 꿈꿔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어야 돼요. 우리가 꿈을 꾸면 믿게 되는 것입니다. 믿게 되면 말하게 돼요.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리를 첩첩이 둘러싸고 있다고 말하면 그 말씀이 천사들과 더불어서 여러분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꿀 때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기 위해서 10년 동안 기도를 해도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마음에 꿈이 없이 기도하는 것은 헛 기도다. 마음에 꿈을 가득히 담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밤이 어두울 때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별이 얼마나 많으냐.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네 자손들이 이 헤아릴 수 없이 많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별을 바라보고 그 마음속에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나의 자녀들이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꿈을 꾸자 아브라함은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으매 하나님이 의로 여기셨다. 우리가 꿈이 없으면 믿음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꿈이 있으면 꿈이 믿음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상상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었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꿈꿔보는 것입니다. 꿈꾸면 꿈이 믿음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통해서 말하게 되면 네 말한 대로 될지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간단하지만 굉장히 귀중한 것입니다. 사람이 병들어 있을 때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느니라고 꿈을 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질병이 물러가고 건강하게 되고 튼튼하고 씩씩하게 된 자기 모습을 꿈꾸면 얼마 있지 아니하여 믿습니다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꿈이 믿음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술로 말을 해야 돼요. 하나님이 나를 고쳐 주셨다. 입술로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이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산들에 들리어 저 바다에 던져라 하고 말을 해야 돼요. 이 산들에 들리어 저 바다에 던지라는 것은 꿈이 아닙니까? 그것을 말하고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생애 속에 실제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많이 해야 그 믿음이 두터워지는 것입니다. 체험이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8절에도 꿈꾸고 믿고 선언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같은 것이 우리를 첩첩이 둘러싸고 마음에 불안, 초조, 절망으로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실 때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주의 사자들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꿈꿔보고 그것을 믿고 말하면 우리와 같이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마귀보다 많으므로 넉넉히 이기고 평안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 신앙생활 중에 가장 큰 체험은 평안인 것입니다. 마음에 불안, 초조, 절망이 있을 때는 잠도 오지 않고 음식 맛도 떨어지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기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속에 말로 상상할 수 없는 평안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안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염려마라. 내가 책임져 주마. 내게 맡기고 평안하라. 이 평안이 마음속에 가득차면 삶이 얼마나 기뻐지고 행복하게 되고 의미있게 되는지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고통을 당해도 성령께서 그 날개 밑에 우리를 피난케 해주시면 이런 평안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평안을 체험해야 믿음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2. 해결할 길이 없어 답답하여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 우리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답답한 일이 많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생겨나고 낙심이 엄습해 오고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 낙심하는 것은 사람이니까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여러분 신앙생활 해나가면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보다. 그렇게 낙심하지 않은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낙심해요. 엘리야같이 위대한 신앙인도 낙심해서 로뎀나무 밑에 드러누워서 이제 날 죽여 주십시오. 그렇게 탄식했습니다. 다 낙심해요. 그러나 한 가지 여러분 꼭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을 하더라도 매달리고 포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여러분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일곱 번 넘어져서 낙심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포기 안하면 거둘 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말씀 해놓고 난 다음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낙심이 될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그대로 하나님 품에 의지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해결할 길이 없이 답답할 때도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계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이 말씀이 있는데 저는 이 말씀을 언제나 마음속에 외우고 삽니다. 시편 23편 4절로 5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답답하고 갈 길이 캄캄하고 도울 자가 없을 때 마음에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집니다. 그때 앉아서 나와 같이 계신 예수님을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이 저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혈로 나를 씻어 주시고 성령의 은혜로 나를 붙잡아 주시는 것을 상상하고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하면 마음에 평안이 가득해지고 마음에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므로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 저는 이 말씀을 항상 외우면 마음속에 평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두려움이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면 그는 재기불능입니다. 우리를 가장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가게 하고 파멸하는 마귀의 힘은 두려움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365번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욥같이 위대한 신앙인도 두려워하므로 마귀에게 엄청나게 고난당했습니다. 욥이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내 몸에 왔고 내 무서워하는 것이 미쳤다고 말한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안 두려워할 수 있나요? 어떻게 해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상상하고 예수님이 같이 계신 것을 믿고 말하면 두려움은 태양 빛 아래 사라지는 얼음같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가 여러분을 노리고 괴로워할 때 성경 말씀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가 오면 원수만 바라보지 말고 진수성찬을 바라봐요. 하나님이 밥상 차리려고 또 원수를 보내셨구나. 그래서 밥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을 먹게 되고 믿음으로 먹는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그 밥상을 먹게 되고 여러분 생애 속에 희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만사가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함께 주님이 계시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도 여러분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바라보십시오. 빌립이 갈릴리 광야에서 두려워한 것은 주님이 5천명이 되는 남자, 부녀자 합치면 만 명이 넘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니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돈도 없고 떡 살 곳도 없는데 만 명이나 되는 군중을 어떻게 먹입니까? 빌립은 두려워해서 얼굴이 샛노래졌습니다. 왜 두려워했느냐. 광야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군중들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바라보면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안 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광야가 다가오고 수많은 고통이 다가오거든 그것만 바라보지 말고 머리를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 믿는 여러분은 예수님이 같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하고 공포에 떨고 좌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께 찾아와서 광야만 본 것이 아니라 군중만 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알기 때문에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사용해서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예수님께 오니 예수님이 안드레의 헌물을 받아서 축복해 주시고 그 모인 사람을 먹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면 그 복이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셔서 가나안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복 받은 그가 어느 곳에 가도 복을 받습니다. 복 받은 사람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와도 복을 받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God bless you.” 만나도 “God bless you.” 떠날 때도 “God bless you.” 하나님이 복 주시기 바랍니다. 그 복을 주면 그 복을 받아들이면 복이 따라 들어가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이란 단어는 형통을 언제나 같이 손잡고 다니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 보고 오늘 복 받으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아멘하고 받아들이면 여러분에게 형통함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오늘 복 받으십시오.(아멘) 할렐루야~ 만사가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3. 핍박을 받아 설 곳이 없어도 우리가 이 세상에 예수 믿고 산다고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핍박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흉보고 가족들 간에 소외당하고 친구들도 떠나가고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사람에게 버림받아도 끄덕 없습니다. 버리고 싶으면 버리라고 하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니까.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행복과 기쁨이 하나님으로부터 넘쳐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주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오른편에는 즐거움이 넘치나이다.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넘치고 즐거움이 넘치니 주님과 함께 기쁘고 즐겁게 말로 다할 수 없는데 친구들이 날 버린다고 고난당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하나님은 나의 거처가 된다고 여러분에게 확신을 시키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 피난처가 되고 여러분의 거처가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주어지고 은혜가 고통을 넉넉히 이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은혜를 받으면 은혜가 어떤 쓰디쓴 고난도 극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값없이 은혜를 주셨으므로 은혜가 항상 여러분에게 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언제나 은혜로써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0절로 12절에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고 재앙이 내 장막에 오지 못하는 것은 천사들이 여러분과 같이 있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수들만 드글드글 끓는 세상에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주님의 천사들도 여러분 가운데 늘 계셔서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성경을 읽어 보면 사도 바울 만큼 고통당한 분이 없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다 같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 소명을 받아 나갔을지라도 바울이 당한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저는 50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시험과 환난과 고통을 많이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바울 선생의 생애를 비교해보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로 27절에 보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상에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니 얼마나 많이 맞았습니까?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와~ 이와 같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가 극복한 것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이건 것을 극복해요. 예수 믿어서 자꾸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하는 사람 있지 않습니까? 은혜를 안 받았기 때문에 그래요. 성령의 은혜를 받고 나면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기근이냐 죽음이냐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 받아야 돼요. 교회 예배 드리러 와서 훌륭한 목사님의 신학적인 설교를 듣는 것은 좋습니다. 지식은 늘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고요하고 잠잠하고 점잖게 드렸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나가서 시험과 환난을 당하면 모조리 넘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 등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별로 학문도 없고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하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교회 와서 예배드릴 동안에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하고 은혜를 잔뜩 받고 나면 세상에 나가서 어떤 고통을 당해도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책을 한권 읽었는데 한국 저 산 골짜기에 사는 사람인데 가족들이 무당이 여러 명이 있고 한 사람인데 어떤 전도자가 지나가면서 예수 믿으라는 말씀을 전했어요. 이 사람이 그 전도자의 말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모셨습니다. 아주 깊은 산골짜기에 땅만 파먹고 사는 사람인데 예수를 믿은 다음에 성경책을 받아서 감동적으로 읽고 신앙이 깊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교회 출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식은 없지만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받았어요. 자기 아들, 딸들에게 전도를 해서 아들, 딸들이 아버지를 따라서 예수를 믿었어요. 그런데 신학교를 나온 사람도 아니고 교회에서 훈련받은 사람도 아닌데 주일날 자녀들을 다 자기집에 모아놓고 예배를 인도해요. 그러니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도 있고 잘못 인도하는 것도 있지만 그는 자녀들하고 예수를 깊이 믿었는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1년 내 자녀 중에 6명이 세상을 떴어요. 한 사람이 죽어도 여러분 하나님이 왜 우리 예수 믿는데 우리 가족을 죽이느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딸 6명이 다 죽었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아들 2명이 있는데 그 중에 맏아들이 또 죽었어요. 마지막 맏아들이 죽었을 때 그는 맏아들 시체에 다가가서 몽둥이로 얼마나 많이 팼던지 죽은 아들이 두 번 죽은 것처럼 되었습니다. 야 이 못난 놈아, 예수 믿고 이렇게 아버지 보다 먼저 가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너도 가니까 나는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고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느냐. 그 아들을 그렇게 때리고 난 다음 지게에 지고 6명 딸을 심은 공동묘지에 아들을 심으러 갔습니다. 그곳에 구덩이를 파고 아들을 구덩이에 넣으려고 하다가 얼마나 낙심하고 좌절했든지 하나님, 나를 버려도 이렇게 혹독하게 버리십니까? 내가 죽게 해주시니 왜 자식들을 이렇게 죽게 하십니까? 그러면서 그 아들을 안고 구덩이에 넣으려고 하다가 졸도를 했습니다. 졸도를 한 것이 그 영이 몸에서 뽑아져 나와서 사도 바울처럼 셋째 하늘로 올라갔어요. 셋째 하늘로 올라가서 보니까 딸 6명, 아들 1명이 다 거기에 와 있더랍니다. 그들이 다 와서 아버지,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좋은데 와 있습니다. 아버지 절대로 믿음을 포기하면 안돼요. 우리는 아버지 덕분에 천국 와 있는데 이제 아버지가 천국에 올 때가 가까웠으니 절대로 믿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몇 시간을 졸도를 하고 드러누워 있었는지 모르는데 이 사람 그 졸도에서 깨어나서 새사람이 되었어요. 그래서 동네에 내려와서도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예수 믿으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저 자식 조상 대대로 섬기던 마귀를 섬기지 아니하고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천벌을 받아서 자식 다 죽고 미쳐서 저렇게 춤추고 다닌다고... 그래도 그 사람 예수를 믿게 되고 책을 지었어요. 간증을 적었는데 완전히 시골 촌놈이 지은 책이라 문장이 우습습니다만 그 책이 굉장한 감동을 주더라구요. 그가 그 책에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보니 자기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은혜가 모든 시험과 환난을 이기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은혜를 받으세요. 은혜! 은혜가 마음속에 들어오면 어떤 시험과 환난도 이기고 여러분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는 힘도 생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이렇게 고통을 당해도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는 승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은혜가 무슨 은혜냐. 예수 믿고 받는 은혜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5절로 9절 들어 보십시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예수를 믿으면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벌거벗은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오면 예수 때문에 의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취급을 해줘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믿음보다 귀한 믿음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종교도 자기 의로운 행동으로 의롭게 되어야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있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그렇게 못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보혈로 값없이 의로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은혜만 있으면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의롭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아서 넉넉히 이기는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세상에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안 망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믿고 안 망해요.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죽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와서 우리를 죽여도 안 망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나를 대신 죽으신 것이요, 부활한 것은 나를 위해서 부활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은혜 속에는 죽음과 부활이 다 나의 승리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9절로 11절에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 죽음을 걸머지면 예수 부활이 내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이란 예수 때문에 죽음의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가난할 수도 있고 시험에 들 수도 있고 욕을 얻어 먹을 수도 있고 고통을 당할 수도 있지만 예수 때문에 당하면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 몸에 넘쳐나서 이기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 은혜는 우리가 고난당할수록 더 넘쳐나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당하는 여러 가지 고통이 있을 때 기도합니다. 주님 죽음 내 죽음, 주님 죽으심이 다 내 죽음이 되는데 주님 부활의 은혜를 내게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부활의 은혜를 주시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이 여러분을 위해서 주시는 은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어디에 있느냐.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기록되어서 전달해 주셨는데 그 말씀을 받아서 여러분 그 말씀을 은혜로 모셔 들이면 여러분이 은혜 받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면 곧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고 보배를 질그릇에 담고 사는 것같이 살면 여러분은 은혜를 받고 씩씩하고 담대하게 이기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박해를 받아도 버림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것이 우리 예수 믿는 신앙인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왔을 때, 갑자기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앞에는 창창한 바다요, 뒤에는 애굽의 백만 대군이 그들을 잡으러 들어오는 것입니다. 어디밖에 못 봅니까? 하늘 밖에 보일 곳이 없습니다. 앞에는 창일한 홍해수요, 그 뒤에는 애굽의 백만 대군이요. 어디를 봅니까?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형통케 하고 형통케 하리라. 너와 싸우는 자와 내가 싸우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 하였으니 네가 백성들에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보아라.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시리니 우리가 본 애굽 군대는 다시는 보지 아니하리라. 모세의 위대한 점은 모세는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할 때 바닷물을 바라보고 우리 이제 죽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 군인들을 적군들을 바라보고 수가 많으니 우리는 졌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항상 알아야 될 것은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베드로가 바닷물을 걸어가는 것은 예수님만 바라보았을 때 물위로 걸어갔으나 예수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와 물결을 바라보았을 때 빠졌습니다. 물에 빠졌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다가오는 환난과 곤고와 고통을 바라보면 낙심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항상 열어 놓은 공간이 있습니다. 눈을 들어 어디를 바라본다구요? 하나님을 바라보자. 한번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보입니까? 안 보이지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라고 스스로 말할 수가 있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우심으로 승리로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바다도 바라보지 않고 군인들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했습니다. 가만히 있어.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라. 입술로 고백하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홍해수를 갈라서 애굽군대를 다 멸망시키고 그를 승리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 14:13)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쳐다볼 수 있을 동안에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만 바라보지 마시고 뒤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하늘을 바라보시고 그 약속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아무도 여러분을 위해서 격려를 안 해주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러분을 격려해 주십시오. 용기야, 낙심하지 말라.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시리라 하셨으니 두려워 말라. 그렇게 말하면 그 말이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물러가라! 저주는 물러가라! 마귀는 물러가라! 여러분의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이 되어서 승리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께서 파죽지세로 이기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다 계십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기도하고 나가면 여러분은 절대로 버림받지 않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장막을 벗어버리고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육신의 장막집 바라보면 낙심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입술로 그 말씀을 시인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