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30

자유와 해방
(갈 5:1)

<서론>
“자유와 해방”이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을 때 노예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시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상에서 주권자요 통치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직 인간은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고 섬기며 살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인간을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놀라운 축복에 탐심이 들어와서 기왕 자유를 얻어 살바에야 하나님과 동등되게 해야 되겠다. 하나님처럼 동등 위치에 서서 살아가겠다. 그 욕심을 마음에 가지고 마귀의 꾀임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반역한 것입니다. 그 결과 타락하고 악한 마귀의 종이 되고 평생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본론>
1.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십자가 고난당하신 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반역해서 버림받은 것을 주님은 건져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신 것입니다. 처음 아담 안에서 우리가 유전적인 죄로 전부 다 멸망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은 둘째 마지막 아담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처음 지은 죄를 청산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처음 아담 속에 우리는 죽었으나 마지막 아담 예수 속에 살아나게 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버림받은 인생들에게 다가온 그 모든 저주와 질병과 가난과 고통과 죽음과 절망을 청산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처음 아담 안에서 우리는 죽었으나 마지막 아담 예수 안에서 다 살아나게 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심판을 받으시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받아서 흘리신 붉은 피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이 많고 죄가 많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버림받아 영적으로 죽어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우리들을 주님께서는 대신 죽어주시므로 그 피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살아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붉은 피를 흘리셨고 그 피값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하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무슨 의미냐면 일평생에 한 번도 죄를 안 지었다 그 뜻인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죄를 지었다면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으면 한평생의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취급해 주시고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의 보혈로 의롭게 된 것을 생각하면 한 번도 죄를 안 지은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조금도 부끄럼없는 자격을 가지고 담대하게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귀한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죄와 허물을 대신 죽으신 우리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용서와 의를 얻어서 구원을 얻고 그 다음 또한 우리 삶에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질병과 심신의 고통을 예수님이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병들면 이 세상에 즐거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 안에 있어도 병들어서 고통당하면 행복이 없습니다. 건강이 모든 삶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질병과 심신의 고통을 죄값으로 말미암아 몸에 걸머지고 고난당하는 인생들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청산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보면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로마의 군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채찍을 때려서 형벌을 가할 때 마흔에 하나 감한 서른 아홉차례 매를 때린 것입니다. 마흔을 때리면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때 로마 군인들이 사용한 채찍은 채찍 끝에 이렇게 쇠고랑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때리면 몸에 쇠고랑이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잡아당기면 가죽이 쫙 벗어지고 피가 물줄기같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른 아홉차례 매를 맞고 피를 물줄기같이 흘리셨습니다. 그 결과로 저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여러분의 병은 예수님이 대신 짊어졌습니다.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병을 짊어지셔서 그 흘리신 피가 오늘날 고함을 치는 것입니다. 병은 불법이다. 마귀가 불법으로 이 몸에 병을 가져온 것이다. 치료는 합법이다. 합법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이 오늘 우리를 향해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예수님께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제일 처음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합니다. 마음을 불안정하고 염려 근심 불안으로 훼방을 놉니다. 따라다니던 마귀는 조금 있다가 올라타고 목을 조릅니다. 그래도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 다음 마음에 기쁨을 빼앗고 우울증으로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대로 내버려두면 마음을 완전히 점령해서 정신이상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인생에게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령과 능력으로 이 마귀를 쫓아내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니까 눌려서 죽어가는 육체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하셨으므로 예수님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붙어다니고 억압하고 정죄받고 마음에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고 해방을 주고 치료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 한번 따라해 주십시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채찍에 맞음으로 합법적으로 병에서 나음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결과로 온 버림받은 처지와 육체적인 질병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청산하셔서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께서 하신 것은 저주를 짊어지신 것을 말합니다. 저주라는 것은 한 번 내리면 모든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저주보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네 죄를 지었으므로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땅이 저주를 받으면 곡식을 심어도 곡식이 되지 않습니다. 잡초가 나고 벌레들이 먹고 날이 가물고 곡식이 안 되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면 온갖 재해가 닥쳐와서 사업이 되지 않습니다. 짐승을 기르면 짐승이 병들어 죽고 온갖 나쁜 것이 다 일어나는 것이 저주를 말미암아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람이 땀을 흘리고 애를 써도 저주가 없어지지 않은 이상 쓸데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하여 저주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왜 짊어졌느냐면 저주를 예수님이 청산하지 아니하면 청산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저주받은 사람은 그 대가로 나무에 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섯 시간 나무에 매달렸습니다. 매달려서 온갖 고통을 다 당하고 피를 흘리고 하실 때 저주받은 결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성령이 오시면 축복을 가져오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가져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아 다 청산하고 난 다음에 그 저주 대신에 아브라함의 복을 허락해 주셔서 성령이 아브라함의 복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 속에 와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모시고 있으면 성령은 아브라함의 복으로 여러분을 채우시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다 이 자리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을 복 받은 사람으로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와 계시므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복이라는 것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축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엄청나게 복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복 받은 것을 모르고 있어서 누리지 못하지요. 복 받은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입으로 계속 시인하면 축복이 여러분 속에 계속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청산해버리시므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 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교회가 축복이 넘치면 그 축복을 가지고 사회에 나가서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입을 넓게 열고 받아서 많은 축복을 받지 못한 고난당하는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은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 이 땅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거나 몸이 불치에 병에 걸리면 죽음의 공포로 많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죽는 것이 기분 좋지는 않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하간 죽음이란 우리 인류에게 다가오는 가장 큰 고통을 말하는 것인데 주님은 오셔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버림받아 죄로 말미암아 죽었는데 그 죽은 인생을 살려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입니다. 사망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정복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 죄를 걸머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죽지 않으시는 분인 것입니다. 죄가 없는데 왜 죽어요? 예수님은 죽을 수 없는 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에 죄의 값은 사망이라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주님은 음부에 내려가서 그 죄값을 다 지불했기 때문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옛날 이씨 조선시대에 나랏돈 천냥을 먹으면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관리가 나랏돈 천냥을 먹고 감옥에 갇혔는데 어느 날 보니까 길거리에 걸어다니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아~ 천냥을 갚았구나. 그때 개인이 천냥을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천냥을 갚으면 죄사함을 받고 감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감옥에 들어갔으면 사람들은 저사람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와서 걸어다니면 천냥을 다 갚았구나. 그렇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감옥에 들어갔을 때 이제는 끝장났다. 마귀들은 춤을 추고 야단법석을 했습니다. 인류의 구원은 영원히 끝장난 것이다. 사흘 만에 예수님이 죽음에서 나와서 걸어다닙니다. 아~ 다 갚았구나. 인류의 모든 죄를 다 갚고 죽음을 다 갚았구나. 지금 인류가 약 70억이 되는데 70억 명의 죽음을 예수님이 대신 걸머지고 70억 번의 죽음을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70억 번입니다. 일곱 번이 아닙니다. 70억 번입니다. 그 죽음을 청산하고 살아날 수 있는 분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 보면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죽음이 죽음을 당하고 철폐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안에서 부활, 영생, 천국을 값없이 소유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죄값으로 온 죄와 허물, 질병과 저주, 죽음을 깨끗하게 소재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주님이 청소했어요. 청소를 하기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걸머지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서 하나님이여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기도할 때 이마에 흐르는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지더라. 주님이 죽음을 당하는 그 고통이 얼마나 괴롭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도할 때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다. 오늘날도 심히 압박을 당하면 모세혈관이 터져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세 혈관이 더 터졌습니다. 너무 억압을 당하셨어요.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몇 번이나 간구를 했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하나님은 듣지 않았습니다. 네가 죽으면 저 백성들이 살고 네가 살면 저 백성들이 다 죽는다. 그러므로 네가 죽어야 되겠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걸머지셨고 예수님 덕분에 오늘날 지상에 있는 70억의 인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성이 아니라 영생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은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 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테텔레스타이. 내가 다 이루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밭에서 일하던 사람이 하루종일 일하다가 이제 일이 다 끝났으면 손을 탁탁 털고 옷을 털면서 오늘 일 다 끝났다. 그 이상 더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일 다 끝났습니다. 딸이 친정에 왔다가 부엌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엄마, 내가 좀 도와줄까? 아니야~ 아니야~ 오늘 일 다 끝났다. 너 할 일 없다. 일 끝났다는 것은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강단에 올라와서 저보고 내가 대신 좀 설교해 줄까요? 그러면 내가 뭐라고 합니까? 아니요? 다 끝났습니다. 내가 이미 결론에 다 도달하게 했으니 그냥 듣기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내가 다 이루었다. 즉 말하면 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한 구원의 역사를 다 끝맺혀 버렸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이 다른 종교는 구원받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인정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는데 기독교는 주님께 나와서 주여, 내가 뭘 할까요? 믿기만 해라.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영원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될 수 있는 조건을 다 청산시키고 이루었기 때문에 이제는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율법으로써 여러분을 심판하면 여러분 죄 안 지은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십계명만 대보십시오.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이것 다 여러분에게 비취면 하나도 그 죄를 안 지은 사람이 있나요? 일평생에... 한 번 죄를 지으면 일평생 죄인인 것입니다. 내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머리에 생각만 해도 죄를 지은 것이라 하니 그 죄 면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율법의 행위로써 구원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면 예수님의 보혈은 이런 것을 말갛게 청산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은혜는 공짜거든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가 무슨 일을 잘해서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저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므로 마음에 걱정이 많습니다. 온 세계에 아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보내야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카드만 보내도 몇만 장을 보내야 되는 것입니다. 선물은 공짜로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비싼 선물을 보낼수록 대가는 없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때 우리가 선물을 받으면 대가를 지불해야 되겠다. 공짜로. 고맙습니다. Thank you very much. 그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고 은혜는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써 주신 것을 우리가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죄는 믿지 않는 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어요. 이것이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오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무엇을 해야 대가로써 구원을 받는 줄 알기 때문에 구원에 확신이 없습니다. 믿기만 하면 예수님 덕분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줄 확신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믿음에 굳게 서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이 다 이루어 놓았으므로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야 되는 것입니다.
좌나 우로 흔들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굳게 믿음으로 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는 믿음이 없어요. 나는 믿음이 약해요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마귀의 큰 거짓말인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없지 않고 약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각 사람마다 분량대로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 태어날 때 이목구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처럼 예수 믿게 될 때 하나님은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믿음을 나누어 주셨어요. 믿음이 있는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아멘,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의 분량이 있다고요.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으면 나는 믿을 수 있다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눈에는 안 보여도 분량대로 하나님이 주어 놓았기 때문에 그냥 믿음을 있는 줄 알고 믿고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에게는 믿음이 없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마귀가 와서 오직 거짓말하는데 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은 있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이미 주셨습니다. 믿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유의 꿈을 품고 굳세게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로마서 1장 17절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으면 더 큰 믿음이 생기고 또 그것을 믿으면 더 큰 믿음이 생기고 믿음으로써 살 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사용하지 아니하면 그 믿음이 점점 약해져서 있어도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팔을 안 쓰면 이 근육이 말라 버려요. 자꾸 쓰면 근육이 생겨나요. 그와 같이 믿음의 근육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많은 일을 믿음을 통해서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마음속에 믿음의 결과는 평안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안과 공포가 있을 때 믿음으로 기도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면 응답 받았구나. 믿음이 응답을 갖다주는 것입니다. 불안하면 아직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 기도하고 성령이 평안을 갖다주는 것은 참 희한한 것입니다. 마음이 잔잔해지고 사랑으로써 따뜻해지고 하나님이 햇빛을 비춰주는 것같이 아주 기분이 좋고 그러면 주여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리면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때 기도와 감사를 넘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미 다 이루어진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므로 기도와 감사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응답받았으므로 평안이 마음속에 완전히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6절로 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하나님 앞에 응답받아 마음에 믿음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감사의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믿음을 죽게 만들고 믿음을 빼앗아주지만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고 좋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릎을 탁 치면서 허허허~ 그래 그렇지. 그렇게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를 넘치게 하는 우리들이 되십시다.

3.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 주님께서 이 성경에 말씀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전된 종의 멍에를 다시는 메지 말라. 죄의 멍에, 허물의 멍에, 질병의 멍에, 마귀에게 물어 찢기는 멍에, 가난의 멍에, 저주의 멍에, 죽음의 멍에, 절망의 멍에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내가 너를 종의 멍에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고통당했느냐. 내 몸 다 찢었지. 내 피 다 흘렸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서 네가 구원을 받지 않았느냐.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우리도 종의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첫 아담이 짊어진 멍에가 무엇인지 다시 보십시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절망적인 저주인 것입니다. 고생고생 하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라.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 것입니까? 그런데 마지막 아담 예수님이 오셔서 그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로 19절에 예수님이 하신 일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예수 믿고 성령 받으면 가난이 물러가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러 왔기 때문에 예수 믿고 가난한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장로님, 예수 믿고 가난한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요. 예수 믿으면 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내가 온 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러 왔다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처음 아담이 가져온 저주를 다 청산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로 15절에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여기에 상당히 어려운 성경구절인 것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이 무엇입니까? 십계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에 기록한 모든 하나님의 법령인 것입니다. 이 계명과 법령 아래 서서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에 쓴 증서를 피로써 다 씻어버렸습니다. 글자를 적어 놓은 것 비가 와도 번져서 보이지 않는데 주님이 씻어버리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계에서 인간이 발명한 발명품들을 모아서 상급을 주었는데 그 위원회에서 인간이 발명한 발명품 중에 제일 위대한 발명을 무엇을 꼽았을까요? 비행기, 자동차, 잠수함, 컴퓨터, 전화기. 아닙니다. 무엇이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냐. 지우개. 아주 우스운 일 아닙니까? 지우개는 인생을 다시 살 수 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를 정죄하는 정죄물이라도 지우개로 지워버리면 재출발 할 수 있으니까. 다른 것은 소유하고 말지만 이것은 지우개는 다시 살고 다시 살고 다시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 공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거스리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워 주셨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 인생의 지우개인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해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지우개이니까. 우리가 만일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지우개로 지웠다. 마귀가 와서 야~ 죄 지은 놈이 무슨 소리 하느냐. 용용 죽겠지? 예수님의 보혈의 지우개로 지웠다. 그러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로 지우시고 성령은 마귀의 정사와 권세, 마귀의 정부와 마귀의 권세를 다 빼앗아버리고 우리를 자유와 해방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 이루었다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자유와 해방을 얻을 다른 길은 이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 속에 성령이 들어 와 있으니 성령은 여러분 우리 속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는 위대한 능력을 베푸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다른 길로써 해방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게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절대로 죄인이 안 된다. 결코! 결코 병에서 놓여남을 받는다. 결코 저주에서 해방을 받는다. 결코 지옥에 들어가지 않는다. 예수님이 보혈로써 이 일을 다 이루어 놓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7절로 39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어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이를 먹으면 부모님이 그리워질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도 보고 싶지만 조금 보고 싶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많이 많이 보고 싶어요. 왜 그러는지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어머니는 많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와도 부모님과 사이의 끈은 끊을 수 없지 않습니까? 다윗이 압살롬을 사랑한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 왔어요. 그리고 군대를 동원해서 다윗을 죽이고 이스라엘 왕국을 점령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싸움이 붙었어요. 그런데 다윗이 자기 군대장관에게 말하기를 너 가서 싸울 때 내 아들 압살롬을 불쌍히 봐달라고... 요합이 화를 냈습니다. 군대장관 요합이 당신을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해서 우리를 이끌어내서 대적하게 만드는 그 놈을 불쌍히 봐달라고요? 그러나 다윗은 요합이 그 아들을 죽이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의 군대가 패하고 압살롬이 요합의 창에 찔려서 죽었습니다. 요합이 죽었다고 보고를 하니까 땅을 치고 울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지 어찌 네가 죽고 내가 사는가. 어찌 내가 산다하는가. 전라도말 한번 했더니 안 나오네. 사람들이 다 마음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자기를 죽이러 온 아들을 죽인 요합을 두고서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지. 요합이 말했습니다. 임금님, 그 말이 우리 군대들이 알면 전부 전쟁에 나간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당신을 떠날 것입니다. 당신은 일생에 가장 어려운 고비를 겪게 될 것입니다. 울음을 그치세요. 부모 자식 간의 이 끈도 끊기가 힘든데 성경에 하나님 성령이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을 끊을 힘이 없어요.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을 자식으로 삼고는 안 끊어져요. 하나님이 당신의 생명처럼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하세요. 장난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한다는 것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것 이외에 구원받을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종의 멍에입니까? 죄가 종의 멍에지요. 허물이 종의 멍에지요. 병이 종의 멍에지요. 저주가 종의 멍에지요. 죽음이 종의 멍에지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어떻게 안 맵니까? 예수님이 그 종의 멍에는 십자가에서 다 깨뜨린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알아야 입술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 멍에가 따라오면 예수님이 대신했으니 물러가라! 나는 이 종의 멍에를 매지 않는다. 입술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고 했는데 아들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이 종의 멍에를 청산하셨은즉 다시 매면 안돼요. 알아야 돼요. 따라 말씀하세요. 종의 멍에를 알아야 한다. 죄가 종의 멍에다. 허물이 종의 멍에다. 병이 종의 멍에다. 저주와 가난이 종의 멍에다. 죽음과 멸망이 종의 멍에다. 이런 놈들이 오거든 대적하라. 주님께서 청산하셨은즉 여러분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덮어씌운 멍에를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엄청난 결심으로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마귀가 들어오면 마귀야 물러가라~ 부드럽게 말하지 말고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개척할 때 어떤 분이 앉아가지고서 자꾸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물러가라~ 물러가라~ 부탁한다 물러가라~ 그래서 뭐한다고 야단입니까? 마귀가 와서 자기에게 정신적인 불안정을 갖다주는데 호통을 하면 마귀가 협박을 하기 때문에 달랜다고 합니다. 마귀는 아무리 달래도 절대로 안 듣습니다. 호통을 치면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입술의 고백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송하니 좋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여러분 믿음을 강하게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입술로 나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나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치료함을 받았다. 나는 축복받았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다. 말하면 그 말이 굉장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입술로써 여러분 영적인 생명과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술의 말로써 마귀를 공격하면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너희 더러운 귀신아 물러가라! 너희 거짓의 애비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나를 약하게 하는 귀신아 물러가라! 네가 나를 점령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못 점령한다 물러가라! 예수 이름으로 물러갈지어다! 그러면 마귀는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를 불구하고 마귀의 정사와 권세 하에서 속박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마귀의 속박 아래서 죄의 멍에, 허물의 멍에, 병의 멍에, 저주의 멍에, 죽음과 음부의 멍에를 짊어지고 공포와 고난의 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해방과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제 이것을 누리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 변화를 알고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자유와 해방을 취하고 뒤로 물러가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