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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7. 성찬주일설교 원수 갚는 것 (시 139:2~4) <서론> 저는 오늘 “원수 갚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에게는 친한 친구가 있는가하면 원수도 꼭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미운 원수가 집안 식구일 때가 있고 나의 아주 절친한 친구가 원수로 변할 때도 있습니다. 정치를 하면 정치적인 원수도 생겨나고 우리나라처럼 남북이 갈라져서 원수가 되어 있기도 하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에게는 영적인 원수인 마귀와 귀신들이 언제나 우리를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수 갚기를 바라고 하나님께 원수를 갚아 주시라고 기도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다가 참 웃지 못할 일을 보았습니다. 두 사람씩 나와서 단어를 맞추는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한 노부부가 그 게임에 나왔는데, 할아버지가 단어를 설명하면 할머니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의미를 맞추면 상금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를 보고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할머니가 알아듣도록 천생연분을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할멈, 우리 사이를 뭐라고 말하지? 당신하고 나 사이를 무엇이라고 말하지?” 그러자 할머니가 텔레비에서 보니까 얼른 대답을 합니다.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가 “아니, 두 글자가 아니고 네 글자야. 네 글자!”라고 말하자, 할머니가 아주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평생 웬수!” 내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섭섭한 것은 우리 할머님이 한번 바느질을 하고 있다가 제게 말씀하시는데 “너희 할아버지가 내게는 웬수야 웬수! 평생 저 영감 때문에 내 일생을 고생했어.” 그래서 내 속으로 ‘우리 할아버지 왜 웬수야? 열심히 애쓰고 힘써서 밥 먹여 살려준 것이 웬수가 되는 것이냐!’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인생을 살아보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웬수가 될 수 있어요.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듣고 웃는 이유는 여러분도 그렇게 느낄 때가 가끔 있기 때문에 그런 줄로 압니다. <본론> 1.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 성경에는 삶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처럼 원수 갚는 것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짐은 맡기되 마음에 무거운 짐인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는데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우리도 한때 하나님께 원수였으나 예수님의 중보로 화해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상대가 될만 하지도 않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버거워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귀 편에 서서 하나님을 불순종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웬수된 것을 청산하기 위해서 우리의 죄악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켜서 십자가에 벌을 내려서 죽음으로써 원수된 것을 갚게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성전에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큰 휘장이 들어차 있는데 그 휘장이 얼마나 두꺼운지 황소 두 마리를 서로 맞보게 해서 휘장을 묶어서 잡아당겨도 안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그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쫙 찢어져서 열려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성소까지는 와도 지성소에는 휘장 때문에 못 들어갑니다. 들어가면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을 찢으므로 그 몸과 피로 인해서 원수된 담이 무너졌기 때문에 휘장이 찢겨진 것입니다. 지금은 아버지 하나님을 부를 때 휘장이 우리 사이에 막아 놓고 있지 않습니다. 찢어졌습니다. 아버지 보좌 앞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언제가 웰컴입니다. 아버지 앞에 아빠 아버지하고 우리는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로 11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화목이 되어서 이제 잘났던 못났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 것입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해준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을까요 물으면 하나님이 언제나 대답하시는 말씀은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셨다. 할 일 없다. 네가 할 일은 믿고 따라오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잘 못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근심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이 놀라운 은총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둘로 하나가 되게 했다는 것은 가까운데 있는 유대인과 멀리있는 이방인 두 부류의 민족을 예수 십자가로써 하나가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4~18) 유대인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선민이고 우리 이방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족속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로 가까이에 있는 유대인이나 멀리 있는 이방인이나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아버지 품속에 한 같은 아들로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교제하고 구원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우리를 이방인이라고 해서 이방 개처럼 취급을 받았습니다만 이제는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은 모두 다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화평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화목이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원수를 예수님께 갚아 버리셨다. 우리에게 갚을 원수를 십자가에 예수님을 매달아서 원수를 갚으셨다. 그러니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은 이제는 우리의 원수가 아니고 우리의 친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니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지요. 감사할 여지없습니다. 우리가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이제는 다른 원수 갚는 것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큰 원수된 자리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화목을 얻었으니 이제 우리도 원수를 직접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9절로 20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저는 처음 이 성경말씀 읽었을 때 내가 하나님 원수를 갚는 것 하나님께 맡겨놓고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지라 너무 오래 기다리고 너무 오래 참게 하시므로 원수 갚는 것 보지도 못하고 죽을까 합니다. 빨리 좀 갚아 주십시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하루는 기도하는데 내가 너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는데 네가 그 원수보다 더 나쁜 원수이면 어떻게 되겠느냐. 너부터 먼저 벌을 받아야 될 것 아니냐. 우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매 죄 없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서 볼 때 우리 원수만 우리에게 원수가 된 것이 아니라 그 원수에게 우리는 더 큰 원수가 되어 있을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아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써 화해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친히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어서 원수가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서서 머리가 뜨끈뜨끈 화끈화끈 하도록 그렇게 만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직접 원수 갚지 말라는 이 말씀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로 11절에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야훼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야훼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악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고 잘 살 것 같은데 하나님은 정반대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 평안을 추구하고 화평을 추구하는 자가 땅을 차지하고 잘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악하고 흉하게 날뛰는 사람이 잘산다는 착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만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화평을 추구하는 자가 잘살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야훼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우리 예수 믿는 신앙생활에 가장 힘든 것이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오래 참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오래 참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도 잘못을 뛰어 넘어서 덮어주고 오래 참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앙에 관한 것 모든 것이 오래참고 기다리는 것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면 신앙이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참고 또 참고 더 참는 것이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면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억울한 사연을 갚아주시도록 골방에 들어가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사람들이 몰라봐도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골방에서 부르짖는 여러분의 기도를 다 들어주시고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누가복음 18장 3절로 7절에 한 과부가 재판관 앞에 나와서 간구하는 기도를 주님께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는데 그 도시에 억울함을 당한 과부가 재판관에게 나와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재판관이 본 척도 안하고 들은 척도 안합니다. 이 과부는 빽도 없고 돈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재판관에게 나와서 부르짖습니다. 직접 재판소 앞에 들어가지도 못하니 재판소 문밖에 엎드려서 재판관이 들어오면 나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하루 종일 거기에 엎드려서 요사이 말하면 데모를 하다가 재판관이 일을 다보고 집에 돌아가려고 나올 때 또 그 자리에 엎드린 그대로 머리를 땅에 부딪치면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합니다. 재판관이 저러다가 말지 싶어서 못 본체 하는데 봄이 가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고 눈보라가 치는데도 여전히 그 과부가 그 자리에 엎드려 있습니다. 나중에는 재판관이 출근하고 퇴근할 때만 보는 것이 아니라 꿈속에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를 불쌍히 여겨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람도 무시하고 내가 잘난 줄 알고 사는 사람인데 저 과부 때문에 내가 정신 노이로제에 걸리겠다. 그래서 그 과부의 인내 때문에 재판관이 원한을 풀어주었다고 말하고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통해서 뭐라고 말하냐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이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탄원을 들어준 것처럼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긍휼이 넘치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물며 그 자녀들이 와서 통곡하고 와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는 자들의 기도를 안 들어 주시겠느냐. 속히 들어주실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 오래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하다가 하나님 응답해 주지 않는다고 낙심해서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했으면 몇 년을 계속해서 기도한 적이 있으신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가장 낙심할 위기에 처했을 그때가 여러분 기도 응답이 가장 가까이 올 때인 것입니다. 우리는 참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주님 이름으로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저주하는 대신 주님 이름으로 복을 빌라고 성경에는 말씀했는데 여러분, 친구를 위해서 복을 비는 것도 힘든데 원수가 잘되라고 복을 비는 것은 진짜로 힘든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 주를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기도에 부메랑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27절로 28절에 보면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원수를 보고 그냥 지나가라고 하면은 될 수 있겠는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니 그것 참 힘든 일인 것입니다.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아멘 소리가 작잖아요. 솔직히 힘든 일인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4절로 17절에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우리는 나는 축복도 저주도 안 할랍니다. 그렇게 말할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악을 악으로 심어 놓으면 더 큰 악이 되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악한 자에게 선을 베풀면 선을 심어 놓은 만큼 굉장한 축복이 되어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9절로 45절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참 좋은 말씀이지요. 실행하기 너무나 힘든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는 말씀이므로 이것을 우리 생애 속에 생각하고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해서 성령이 이런 성격을 허락해 주시도록 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과 다른 것은 우리 힘으로 못하는 것 성령님이 도와주시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의 도움을 항상 간구하십시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이 일은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고는 힘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성령께 도움을 청하면 이런 일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의 생애를 보면 다윗은 하나님 앞에 믿음이 탁월할 뿐 아니라 원수 갚는 것을 갚지 않는 것에 대해서 다윗이 위대한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골리앗을 쳐서 이기고 이스라엘의 장군이 되어서 가는 곳마다 블레셋 사람들이나 원수들을 물리치고 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이 사울왕에게서 떠나서 다윗에게 기울어졌습니다. 전쟁에 갔다가 돌아오면 여인들이 춤을 추고 북을 치면서 사울이 죽인 원수는 천천이고 다윗이 죽인 원수는 만만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사울왕의 맘속에 질투심이 불타기 시작한 것입니다. 뭐 어쩌고 어째? 나는 천천의 원수를 죽였으나 다윗은 만만의 원수를 죽였으니 결국 다윗이 얻을 것은 내 보좌밖에 더 있냐. 그때로부터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수차례 다윗을 죽이려고 했으나 다윗이 잘 피했는데 한번은 다윗이 도망을 쳐서 산에 있는 바위 굴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몇 천명의 군인을 거느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따라오던 사울왕이 배가 아파서 뒤를 좀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보니 굴이 있는지라 굴에 들어가서 허리춤을 까고 뒤를 보는데 바로 그 뒤에 다윗이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다윗의 보좌관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사울을 당신 손에 맡겼습니다. 저 엉덩이를 한 칼에 찍어버리십시오. 하나님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는 말이 그런 소리하지마라.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를 내가 감히 어떻게 손을 대느냐. 그가 타락한 임금이 되어서 나를 죽이러 따라다닐지라도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를 내가 칼로써 치지 못하리다. 그가 전쟁에 원수의 손에 죽을는지 병들어서 죽을는지 하나님이 정할 것이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에게 손을 안 댄다. 그 다윗의 부하는 가슴을 쳤습니다. 이 좋은 기회에 한칼에 찔러버리면 나라가 바뀌어질 것인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뒤를 잘 보고 에헴~ 하고서 나가서 다윗은 그 구린내만 실컷 맡고 뒤따라 나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에게는 손을 안 대겠다는 것입니다. 주의 종에게는 손 안 댄다. 하나님이 다윗을 극히 존경한 것은 기름 부은 자에게 손대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해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에 친히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의 기름 부은 자에게 손대지 말라. 내가 보낸 자를 해하지 말라. 여러분 주의 종은 하나님이 택해서 주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 종은 지원자가 주의 종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지원해서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해도 하나님이 쓰지 않습니다. 주의 종은 하나님이 택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때문에 파면시킬 때도 하나님이 파면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겨야지요. 다윗이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원수가 자기 손안에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자기 몸에서 나온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군대를 동원해서 아버지를 치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다윗이 쫓겨 나와서 시골로 피난을 갑니다. 자기 친 자식에게 쫓겨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군인들과 피난민들을 함께 대동하고 예루살렘을 나와서 시골길을 걸어가는데 그 옆 산비탈로 시므이라는 사울왕의 친척이 되는 사람인데 다윗을 따라오면서 “이 자식아 피 흘린 자식아~ 네가 너의 임금 사울왕의 보좌를 빼앗은 것 같이 네 자식이 네 보좌를 빼앗는 것 당연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 피 흘린 모든 잘못을 하나님이 네가 갚게 하신다.” 그러니까 다윗을 따라오던 장군들이 하는 말이 “임금님, 저 놈을 가서 단칼에 목을 날려 버릴까요? 어디 감히 우리 임금님을 모욕하다니 저런 나쁜 놈이 어디 있습니까?” 그때 다윗이 하는 말이 “그러지 말아라. 하나님이 저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를 모욕하라고 명령했는지 누가 알 수 있느냐. 하나님이 저 입을 통해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했는지 누가 아느냐. 저주하도록 내버려둬라. 나중에 하나님이 나를 살피실 때 내가 저주를 당한 것을 억울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보시고 도리어 선으로 갚아 줄줄 누가 알겠느냐.” 원수 안 갚았습니다. 그렇잖더라도 자기 아들에게 왕권을 뺏기고 아들의 군대에게 쫓겨나가는 그 시점에 원수가 따라오면서 자기 자식에게 쫓겨난 이놈아 “피 흘린 자식아 잘 가라! 잘 가라!” 고함을 치는데 단칼에 날릴 마음이 안 생깁니까? 이 자식아 네가 말 안 해도 내가 마음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는데 뭐 벼룩 같은 놈이 와서 그러느냐? 쳐라! 그랬으면 목이 날라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공개적으로 그를 욕하는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존중한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 때문에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돌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면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했으므로 하나님의 특권인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가 하나님 앞서서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원수보다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시편 91편 1절로 6절에 보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께 세상사는 수고와 짐을 맡길 뿐 아니라 원수 갚는 것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가 자기편이고 누가 원수인지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보면 하나님은 원수가 우리에게 오면 원수 앞에서 진수성찬을 차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원수 앞에서 여러분에게 진수성찬을 차려 주셔서 여러분이 진수성찬을 잡수시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시고 용용 죽겠지? 용용 죽겠지? 날 사랑하는 자는 내가 이렇게 대접해준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로 5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십니다. 십자가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지켜주시고 원수 앞에 하나님께서 진수성찬 차려 주셔서 원수가 치지 못하고 구경하고 안타까워하게 만들어 주시고 오히려 원수가 오면 성령의 기름을 부어서 일을 성공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로 32절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들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안 주겠느냐.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잘못을 추려내시고 온전히 나를 꾸짖으시고 심판하시고 좋지 않은 일을 일어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사탄이하는 소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허물을 덮으시고 여러분의 상처 입은 것을 치료하시고 환난 때 같이하고 건지고 영화롭게 하시고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 사랑에 감동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찬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계속 우리를 괴롭히며 죽이려고 도발해 왔습니다. 2010년에 일어난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사건과 같이 북한은 호시탐탐 우리를 공격합니다. 또한 핵폭탄으로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로, 김일성 주의라고 하는 우상을 섬기며 그 어느 나라보다도 헐벗고 굶주리며 고통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에 좌파 성향의 동포들을 볼 때 참 기가 막힙니다. 이러한 북한의 실상을 알 것인데 북한을 동정하고 그리워하고 북한 사회를 칭찬하는 것은 어찌된 연고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북한이 도발한 6.25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쓰러진 폐허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6.25를 경험한 사람들이 요사이 우리 한국에 오면 무엇에 놀라느냐면 한국에 와서 제일 놀라운 것은 가는 곳마다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래요 여러분, 차를 타고 호남선이나 경부선을 지나가면서 한번 보십시오. 동리가 있으면 십자가 없는 동리가 있습니까? 전부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이 한국의 시골이 준도시화 되어서 국도가 잘 정비되고 집들이 다 편리하게 개조되고 지어져 있어서 놀랍다는 것입니다. 제가 6.25사변 난 이후로 서울로 공부하러 왔을 때도 보면 서울 시내에 높은 빌딩이라고는 몇 개밖에 없었어요. 시골은 정말 오늘날 아프리카에 가서 볼 수 있는 그런 도시 형태였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저희가 중소도시나 시골로 집회하러 내려가보면 구라파나 미국에 와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잘 살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정말로 깜짝 놀랄만큼 우리가 잘살게 된 것입니다. 그것 왜 그렇게 되었느냐. 우리가 오늘날 정상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부유해진 것입니다.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또한 88올림픽을 개최했을 뿐만 아니라 2018년 동계올림픽개최를 앞두고 세계 가운데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그 동안 하나님을 모르고 기독교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되어 곳곳마다 십자가가 세워지고, 기도하고 전 세계로 선교하며 부르짖는 한국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60년 전에 우리가 모여서 한국에 예수 믿는 사람이 백 만명만 되어도 하나님이 크게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한국에 백만 성도를 위해서 노력하자고 박용봉 목사님 중심으로 우리 부흥사들이 모여서 각오를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60년 만에 백 만명이 아니라 일 천만명이 된 것입니다. 일 천만명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므로 그 복이 우리 한국 땅에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이 땅이 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서 여러분의 집안과 환경을 잘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도하고 교회를 흥왕케 하는 것이 제일 큰 애국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주셔서 산업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달하고 사회제도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하자 원수 앞에서 진수성찬을 차려주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지금 북한이 우리에게 자꾸 위협과 협박을 하는데 하나님은 그 위협과 협박이 있을수록 진수성찬을 더 차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 원자탄 만든다고 해서 그 원자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데 못씁니다. 아무리 살상무기를 많이 만들어도 우리의 죽고 사는 권세가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못 죽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고 북한 동포를 사랑하고 주리면 먹이고 목마르면 마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 속에 하나님 성령이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마귀가 득실거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원수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마귀가 득실거리는데 원수가 안 생길 도리가 있어요? 한 두 사람의 원수는 언제나 주변에 있는 것입니다. 원수는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멀리에 있는 사람들은 좀처럼 우리와 원수가 안 됩니다. 가까운 사람이 이해상관이 부딪히므로 원수가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볼 때 하나님께서 그 원수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기 때문에 원수도 그 아들을 통해서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징계의 권한을 맡기고 우리는 원수를 축복하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축복하고 기도하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서 여러분에게 돌아옵니다. 원수를 축복하는 그 축복의 여러 배를 보태어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살면 원수조차도 우리 신앙생활에 성장을 하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원수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원수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전체 원수가 없는 세상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원수가 반드시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원수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축복해 주고 사랑해 주고 오래 참고 다윗처럼 하나님께 내어 맡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