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7. 주일설교 (교회창립 57주년)

예수님 때문에
(요 7:37~38)

<서론>
“예수님 때문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절박한 인생문제에 부딪힌 매일 매일의 생활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화해되어 아름답게 변화되어 가는 스토리가 복음입니다. 제가 한참 부흥회 다닐 때 남단의 목포 어느 교회에 부흥회를 갔는데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헌금을 거두어서 앞에 가지고 나와 기도해 달라고 집사님이 헌금통을 들고 오는데 보니까 열손가락이 다 없어요. 몽당손 열 개로 헌금함을 들고 왔어요. 그래서 내가 저분 어떻게 열손가락이 다 나란히 잘려나갔습니까? 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다쳤나요? 목사님이 나를 콕 찌르면서 사연이 기니까 나중에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필하고 그 집사님을 목사님 사무실에 불러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른게 아니라 이 분은 도박에 미친 사람입니다. 하도 도박을 하고 온 집안을 못살게 구니까 형제간들이 모여와서 그를 남녀 형제간들이 묶어서 다시 도박 못하게 작두에 그 손을 밀어 넣게 해서 잘라버렸습니다. 형제간이 그렇게 했으니 그 도박은 형제까지 다 못살게 하는 도박을 했습니다. 그래서 손가락 열 개를 다 잘라버리면 도박을 안 하겠지 싶은데 아물기도 전에 붕대를 감은채 또 도박하러 가요. 하루는 자기 부인을 보고 돈을 안 모아온다고 돈 빌려 오라고 하는데 안 빌려 온다고 죽이겠다고 해서 부인이 도망을 쳤습니다. 산으로 도망을 치는데 끝까지 따라가서 부인을 잡아왔습니다. 돈을 모아올래? 내 손에 여기에서 죽을래? 나는 죽어도 이제는 돈 못 모아오겠습니다. 그러니 좋다. 바위 낭떠러지에 데리고 가서 눈 감으라 내가 너를 밀어서 오늘 죽이겠다. 그러니 부인이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문제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보혈로 씻음 받아서 희망찬 내일을 바라보고 하늘나라에 갑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지옥이 그렇게 보통 쉽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열 손가락을 작두에 잘릴 때 기분 좋았습니까? 지옥은 천 배, 만 배 더하는 고통이 계속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그 남편이 하는 말이 내 걱정하지 말고 눈 감아라! 그러니까 내가 한번 당신 위해서 기도하고 죽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이 사람에게 하나님 뜻이 있어 부부의 인연을 맺어서 같이 살아왔는데 이렇게 완악하게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죄를 짓고 살다가 죽으면 지옥가지 않겠습니까? 내가 마지막 하나님 앞에 간구하오니 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내가 죽더라도 이 영혼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제 준비되었으니 나를 미시오. 그런데 가만히 있으니까 흑흑 울음 소리가 들려요. 그래서 돌아보니까 땅에 꿇어 앉아서 통곡을 하고 울고 있어요. 왜 울고 있느냐. 당신이 날 울게 만들잖아. 보통 때 흉악하게 욕을 해도 안 울던 사람이 왜 우느냐. 내 가슴에 감동이 되고 내 슬픔이 다가왔다. 내가 졌다. 나도 예수 믿겠다. 그래서 교회 출석하기 시작한 사람이 집사가 되고 헌금위원이 되고 목사님 따라서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데 그 이야기가 정말 거짓말 같아요.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무서운 죄인을 변화시키셔서 이와 같은 훌륭한 크리스챤이 되게 만들어 주신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복음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금까지 내가 여러 번 참고 용서했지만, 더 이상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어느 날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와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세 번만 용서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큰 마음을 먹고 예수님께 일곱 번 용서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칭찬해 주실 줄 알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데 예수님께서 고개를 흔들면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용서해 줘야 한다. 일곱 번을 일흔번 계산하면 어떻게 됩니까? “7x70”이니까, 490번을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용서를 숫자로 계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끝없이 용서해주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1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여러분 용서해 주느냐. 하나님이 여러분을 예수 안에서 470번 용서해 주십니다. 하루종일 하나님 앞에 하나, 하나님 내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둘, 하나님 내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470번을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내가 다 용서했다. 새로 또 시작하자.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죄를 끝없이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그와 같이 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공로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높이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를 쫓아 나오고 난 다음 하나님의 가슴속에 고통을 얼마나 가했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원수 된 사이를 화목케 하셔서 다시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되고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예수님 때문에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담당해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서 죽으셨기 때문에 그 피가 부르짖는 곳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우리를 용서하고 우리가 화목하게 되어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고 버림받은 인생이 안 된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1절로 7절에 보면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우리가 주를 모를 때 율법 하에 있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아빠 아버지! 원수가 하루 아침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장차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부모들이 남겨주는 조그마한 재산이 아니라 천지와 만물을 하나님이 다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계산을 할 수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이웃과도 화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 때문에 이웃과 화해할 수 있게 됨
하나님과 화해해 주셨는데 왜 우리 남편과 아내와 부모와 형제와 이웃과 화해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까?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끝없는 용서를 해주는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이웃을 불쌍히 여겨라! 동정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 힘든 것을 주문하십니다. 여러분, 이웃을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힘듭니다. 진짜로 힘듭니다. 우리는 이웃을 보고 저 암이 걸려서 안 죽냐? 목숨이 왜 저렇게 기냐? 하나님, 저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원수를 갚아 주소서. 그런 기도를 저도 했습니다. 요사이는 또 하나님 그런 기도한 것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잘못 기도했습니다. 참 용서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힘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게 하시므로 용서해 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들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 속에 들어와서 사람과만 화해하지 말고 땅과 하늘에 있는 만물하고도 화해를 하라는 것입니다.
독일의 세계적인 신학자인 몰트만 박사가 튀빙겐대학교 종교학 교수로 있을 때 저를 상당히 비평했습니다. 제가 독일을 중심으로 해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서구 일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다닐 때 그는 저 미개한 한국 청년이 와서 뭐를 한다고 돌아다니느냐? 내가 다시 입을 못 열게 만들겠다. 그래서 나에게 도전장이 왔습니다. 당신의 신학에 대해서 나는 별로 좋게 생각 안한다. 당신은 용서를 해야 되는데 우리하고는 생각이 틀린다. 그러므로 내가 한국에 나갈테니까 한국에서 유명한 신문사를 동원해서 참석을 시키고 당신하고 나하고 토론을 하자. 당신이 그날 이후로 입을 열어서 우리 구라파에 와서 설교 못하게 할테니까. 그래서 아차 내가 이제는 갔구나. 세계적인 신학자하고 내가 상대를 해서 어떻게 이기겠느냐.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원래 공부도 많이하지 못한 촌놈인데 공부를 많이 한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못났으니 못난 그대로 이 사람과 대화를 해서 토론을 하게 하옵소서. 그분이 자기 보좌관들을 데리고 와서 63빌딩에서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해서 여러교회 신문기자들을 불러 모아서 저하고 토론을 시작했는데 아침 조찬을 하고 토론을 하는데 나는 입이 떨려서 밥이 입에 안 들어가요. 왜 그렇게 입이 떨리는지 모르겠어요. 좀 담대하게 해야 되는데 그 사람이 말을 하면 예~스. 부끄러워 못 견디겠어요. 그러니 신문기자들이 날 보고 동정을 했습니다. 조목사님 다투지 말고 어지간하면 손들어 버리십시오. 이 사람 너무나 유명한 사람인데 우리 한국의 저명한 신학자라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대답 안할 수가 있습니까? 나에게 조용기 목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기는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시지요. 하나님의 아들인 것 봤나? 당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보혈로써 모든 사람을 용서해 준다고 하는데 무엇으로 그렇게 증거하느냐?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여보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것들도 구원하고 땅에 있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그 구원과 사랑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는데 세상은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합쳐서 세상이니 사람만 세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 인생들을 다 구원할 뿐 아니라 천하에 있는 벌레 한 마리도 다 사랑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뭐라고 말해도 모든 인생들이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고 벌레 한 마리도 무조건하고 죽이는 것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해도 당신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랑하고 구원해 주십니다. 그러니 이 사람 얼굴이 갑자기 달라지더니만 Go ahead. Go ahead. 자꾸 하라는 것입니다 나보고... 그러나 나는 너무 많이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다는 그대로 우리가 우리 동족만 사랑하지 말고 당신은 독일 사람이니까 한국 사람도 사랑하고 우리는 세계 모든 민족을 다 사랑하고 그 다음에 동물들도 사랑하고 나무들도 사랑하고 온 세계를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함께 합시다. 사랑보다 더 위대한 힘이 어디 있습니까? 다른 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은 쓸데 없는 일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오늘 나를 미워해도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껴안더니 토론할 것 없다. 당신이 맞았다. 한국에 이렇게 훌륭한 신학자가 있는 것을 처음 봤다. 한국의 신학자 두 사람 밖에 나는 인정을 안 한다. 한분 훌륭한 신학자 그 다음 조용기다. 우리 맛있게 점심이나 먹자. 그리고 독일로 가서 책을 썼는데 책마다 아시아에 훌륭한 신학자가 있는데 그 이름이 조용기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을 내가 보통 사람에게는 발견하지 못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만 들었는데 개미새끼 한 마디도 사랑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래서 해마다 한국에 오면 나를 찾아옵니다. 안부라도 묻고 떠나갑니다. 그래서 그분이 책에 하도 제 이름을 적어서 그래서 구라파나 미국에 신학자들에게 알려진 바 되고 유명하지도 않은 놈이 하나님 덕분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예수님으로 얻은 화해는 지구와 자연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님 보혈을 통해서 천하만물이 하나님과 화목되고 하나님은 천하만물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웃만 사랑할 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산천초목도 다 사랑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만물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 때문에 새로운 자화상을 갖게 됨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 자화상을 변화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매일같이 거울보지 않습니까? 거울 볼 때 예수 믿기 전에 보던 자화상이 예수 믿고 난 이후의 자화상으로 바꿔져야 되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의 종인 자화상, 고통과 괴로운 병을 가지고 있는 자화상, 가난과 절망의 저주의 포로가 된 자화상, 죽음과 무(無)의 공포로 떨고 있는 자화상, 지옥의 공포에서 괴로워하는 자화상. 이런 모든 자화상을 예수님 사랑 속에서 쫓아내 버리고 하나님 사랑의 아들 나라에 백성이 된 새로운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옛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었으므로 새로운 자화상을 갖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서 대하면 율법에서 의롭다함을 입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십계명 앞에 서더라도 십계명을 이겨나갈 사람 누가 있습니까?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게 절하지 마라.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이 십계명 앞에 우리를 세워 놓으면 죄 안 지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나니. 그 십계명 이외에 하지 말라는 계명이 성경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율법의 계명 앞에 서면 우리는 다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구원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우리는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었다 말입니다. 여러분 죽었다가 산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셨으므로 머리털 하나만한 죄도 다 예수님이 갚아버렸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장사지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했으므로 여러분은 이제 의롭다함을 입게 된 것입니다. 의롭다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를 한번도 안 지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번도 죄를 안 지은 상태가 의로운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때 마귀가 아무리 우리를 손가락질해도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면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당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써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당당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울을 들여다 볼 때 야~ 이 죄인아! 그렇게 부르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가 양심을 펼쳐놓고 거울을 들여다 보면 야~ 너 의로운 사람아! 그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야 너! 죄인이지! 혼자 가슴속에 숨겨 놓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제는 거울이 아니라 그 무엇을 들여다 보아도 예수님의 피가 너는 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이 세상에서 죄를 한번도 지은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보혈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화상속에 죄인의 자화상은 사라지고 의로운 자화상으로 빛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한 죄만 사함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허물도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 세상에 살면서 허물진 인생을 안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요, 허물은 이 세상에서 나쁜 행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쁜 행실이 없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10장 10절에 보면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장엄한 사람이 되었다.
베드로전서 1장 15절로 16절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우리 힘으로 거룩하게 될 도리가 없습니다. 거룩함이 무엇인지 의미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장엄하고 거룩한 행실을 해야 되는데 우리는 못하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이 모든 허물을 다 짊어지고 죽음으로써 그 허물을 사하시고 거룩한 모습을 옷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이 사실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훌륭한 사람이 모인 자리에도 부끄럼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심신이 치료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도 병들고 육체도 병들고 생활도 병들고 이 세상에 병이 안 든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요사이 마음이 병든 사람 많습니다. 어떻게 이 병을 다 이길 수 있습니까?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서 사는 분이지 자기 위해서 사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이 허물 지을 수가 없지요. 그가 사람이 되어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분위기와 똑같은 환경에서 살아서 우리의 잘못을 대신 청산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찔림은 여러분 허물 때문이요 예수님이 상함은 여러분 죄악 때문이고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버림당하는 징계를 당하므로 평화를 누리게 되고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예수님은 조용기 때문에만 죽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우리들 죄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펄펄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죄가 없어요. 예수님이 다 청산하셨으니까. 기막힌 은혜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축복과 형통도 우리가 주 예수님 앞에서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삶을 산다는 것 참 괴로운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늘 우리가 부르는 것과 같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참 좋은 말씀입니다. 저는 부르면 부를수록 뼈골이 저립니다. 너무 감사해서... 우리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당연히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도 다 종교는 영혼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바탕 더 나가서 범사에 잘되고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잘되고 그리고 병들지 말고 건강하기를 내가 간구한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 것입니까?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주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냥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항상 모든 것에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시편 1편 3절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러분,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고난을 받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난이 다가와도 예수님을 의지하면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말하기를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온다면 고난을 통하여 훈련을 받아서 그릇을 크게 만들어서 더 큰 축복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셉 보십시오. 17살에 형들에게 종으로 팔려 갔습니다. 그래서 종살이 하다가 억울한 누명쓰고 3년 동안 옥살이하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엄청난 고난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애굽의 바로 임금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히브리 종이 임금님을 만납니까? 요셉이 꿈 해석을 잘하기 때문에 임금님이 꿈을 꾸고 꿈 해석을 전국에 내려도 아무도 못하는데 요셉이 감옥에 들어온 술 장관 꿈을 해석해 주고 술 장관이 복귀가 되어서 그것이 임금님에게 알려져 임금님이 요섭을 불러서 꿈 해석을 시켜서 감탄해서 이 지혜로운 사람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느냐. 애굽의 국무총리로 만든 것입니다. 그가 고난 안 당했으면 국무총리 될 수 없었습니다. 술 장관을 만날 기회도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래나 저래나 우리 주님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했는데 범사에 잘되는 주님을 모시면 잘되면 좋고 안 되면 좋게 될 것이니 좋고 다 좋은 것입니다. 순복음 교인들은 좋은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과 형통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것을 알고 항상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영생 천국시민이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죽으면 부활해서 영생을 얻고 천국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이 겁나지 않습니다. 죽음이 초행길이 되기 때문에 다 떨떠름합니다. 한번 왔다갔으면 좋겠는데 여러분 이 가운데 초행길 말고 죽음을 여러번 갔다온 사람 있으면 좀 이야기 해주십시오. 저도 좀 듣고 싶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두 번 갔다왔다 하신 분이 유일하게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초행이 아닌 분이 있기는 있는데... 그것은 바울선생이 말하기를 죽어서 갔다온 것인지 살아서 갔다오든지 그것을 모르겠다고해서 내가 증인으로 세울 수가 없습니다. 바울선생이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말로 다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했는데 그 다음에 뭐라고 했냐면 내가 죽어서 갔는지 살아서 갔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증인이 될 수 없지요. 나는 여러분이 죽어서라도 갔다오지 말고 초행길인데 다같이 갑시다. 나 혼자만 가면 섭섭하겠지만 다 가니까. 너도 가고 나도 가고 다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외롭지가 않은 것은 예수님이 죽음의 그 자리에 오셔서 우리 손잡고 걸어가기 때문에 외롭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부활영생 천국시민이 되어서 가는데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줄만한 것은 주님이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보혈을 믿고 나면 국민이 가지는 다섯 가지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헌법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다섯 가지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자유권이 있고, 평등권이 있고, 참정권이 있고, 청구권이 있고, 사회권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권한을 모두 다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든지 자유권, 평등권, 참정권, 청구권, 사회권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누구든지 똑같이 다섯 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중복음입니다. 중생의 복음, 성령충만의 복음, 신유의 복음, 축복의 복음, 재림의 복음. 놀랍죠?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다섯 가지 권한이 있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밑에서 오중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좀 더 배짱 있게 담대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이 있고 성령충만 받을 권한이 있고 병고침 받을 권한이 있고 축복을 받을 권한이 있고 재림을 받을 권한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은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하나님이 여러분을 마귀의 나라 백성에서 끄집어 내어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국적이 바뀌어 이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졌기 때문에, 우리는 이 다섯 가지 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장 좋은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습니다. 장차 살아가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2천 년 전의 하나님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지금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4. 예수님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됨
우리는 생각을 통하여, 꿈을 통하여, 믿음을 통하여, 말을 통하여 새로운 내일을 앙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로 6절에 보면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결론>
우리는 좋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학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험한 곳을 살아가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고 있으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좋은 일은 좋아서 좋고, 나쁜 일은 좋아지게 될 것이니 좋고 항상 좋으신 하나님을 모시고 이 세상에서 살다가 천국에 올라가게 될 것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같이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