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6.7. 주일설교
실천적 믿음
(막 11:12~14, 20~25)


<서론>
오늘은 실천적인 믿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본론>
1. 평범한 삶에 나타나는 변화의 기적
우리가 평범히 살아가는 나날이 우리 생활 속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특별한 하나님의 간섭이 있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도 있지마는 보통 평범하게 그냥 대화하며 살아가는 생활 속에 하나님이 기적을 나타내주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꿈을 맘속에 가지고 있지 말고 입술로 정확하게 표현을 하면 굉장한 힘이 입술의 말을 통해서 밖으로 나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나 꿈을 마음속에 그냥 가지고 있으면 속에 있다가 사라질 뿐인 것입니다. 그것이 입술로 말하면 4차원의 영성을 ㅤㅉㅗㅈ아서 입술의 고백을 따라 밖에 나와서는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큰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13절에서 14절에 보면 예수님이 바로 그 원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냥 보시고 생각하시고 지나가셨으면 무화과나무가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근데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에 대해서 당신이 생각하시는 바를 분명히 말을 했습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말씀 안하고 지나가셨으면 좋았을 것인데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더라’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저주하신 무화과가 말랐습니다. 저주 안한 무화과는 마르지 않았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예수 안 믿는 일반 사람들하고 우리 자신이 틀리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4차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니고데모가 그렇게 훌륭한 유대인이었는데 그런데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의 상대가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육에서 난 사람은 육이니 영에서 낳은 신령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신령한 사람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니 하나님이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이와 같이 차원이 높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차원이 높은 신령한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신령한 세계의 일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심으로 성령바람 불어와서 여러분의 속사람이 4차원의 신령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무엇이 다르냐? 말씀의 위력이 있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이 아닌 사람은 말을 해도 그냥 지나가버리고 말아요. 그러나 신령한 사람의 말은 창조적인 힘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신령한 사람이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말을 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는 정체성이 신령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서 글을 적더라고 분명하게 적고 말을 하더라고 분명하게 말하면 우리를 따라서 창조적인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John C. Maxwell)은 우리 중 약 95퍼센트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기록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글로 적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목표를 글로 기록한 5퍼센트의 사람들 중에 95퍼센트가 자신의 목표를 성취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로써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글로 적어놓으면 95퍼센트의 사람들이 자기가 적은 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글로 기록하면, 그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적고 입술로 표현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술로 표현하면 3차원의 세계에서 4차원의 창조적인 세계가 여러분을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 뿐 아니라 사랑을 할 때도 말로 표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 남자들은 특히 사랑을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좀 하지 않아요. 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한국 남자들은 “아, 그런 걸 꼭 말로 해야 되나? 말 안하면 안 되냐?”그럼 부인은 “말로 해야 알지? 말 안 하면 어떻게 알아요?” 그렇게 대답합니다. 사실로 한국의 남편들이 아내보고 “내 당신을 사랑해요” 하는 말 하는 지 안하는지 몰라요. 나도 안했으니깐. 그런데 그 말을 안 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사람은 엄청난 사랑의 에너지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을 그냥 없애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생각을 말로 표현할 때 큰 힘을 발휘하듯이, 사랑도 말로 표현하면 굉장한 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늘 저 말 들었으니깐 남자동지 여러분. 집에 가서 한번 말씀해보십시오. 저녁 반찬이 다를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알면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나 창조하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어. 절단강산입니다.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절단강산인 이 세계를 하나님의 성령이 물 위에 운행하시더라.
하나님의 성령 4차원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자 빛이 생기고 궁창이 생겨나고 세계가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예수 믿기 전에는 영이 죽어서 창조적인 영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영이 살아나면 여러분은 성령과 같이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창조적인 능력을 집중적으로 글을 적든지 입술로 말을 하면 굉장한 힘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날 예수 교인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대한 설교를 많이 듣지도 못했고 깨닫지 못하여서 우리 속에 창조적인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 기침 한번만 해도 깜짝 놀라고 이런 것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게 뭐 겁이 나요?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이 우리 속에 있는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그 한방에 물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제까지 구라파에 있다 왔는데 구라파에서는 메르스라는 병 이름도 몰라요. 아무것도 그런 흔적도 없어요. 말에서 말로 전달하는 것이 사람들이 자기 속에 정체성이 약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겁을 집어먹기 때문에. 마귀가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얕잡아봐선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다 굉장한 능력이 속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닙니다. 종소리지. 이 종입니다. 안 울릴 때는 종 아니거든요. 믿음은 행할 때까지 믿음이 아니며, 사랑은 사랑한다고 할 때까지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창조적인 명령을 할 때까지 4차원의 영성은 4차원의 영성이 아닌 것 입니다. 속에 가두어졌지. 여러분은 영생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영생이란 하나님의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의 생각과 사랑을 표현할 때 기쁘고 즐거운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열매 맺지 않고 잎사귀만 무성한 생활은 주님의 꾸중을 듣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위대한 창조적인 능력을 주셨는데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패배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꾸짖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3장 6절로 7절에 보면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우리 사생활에서 여러분 적은 일이라도 옛날과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1차원적인 사람도 아니고 2차원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3차원의 물질주의 세계 속에서 끌려다는 사람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은 창조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 믿는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축복을 자주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너 잘한다. 훌륭하다. 씩씩하다. 건강하다. 좋은 일을 할 것이다.” 그 엉터리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입에서 나간 4차원적 말씀은 창조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환자들을 고치실 때 주님이 직접 가서 손을 얻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평안하라.” 말씀으로써 고치시고 돌보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몸이 좀 찌뿌듯 하거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몸아 건강하라! 몸보고 말을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3차원의 세계인 육신에 4차원. 차원이 높은 여러분이 영성을 가지고서 건강하라. 튼튼하라. 씩씩하라. 일아 잘 되가라. 그러면 여러분 말을 듣습니다. 이 세상에 물질적인 세계가 말을 안 듣는줄 생각하면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소립니다. 이 물질적인 세계가 여러분 말을 듣는다고요. 차원이 낮은 물질적인 세계가 차원이 높은 여러분의 말을 듣고 그에 따라서 변화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종교를 믿고 있었지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3차원의 물질세계는 4차원의 영의 권세에 지배를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세상에도 보면 3차원의 세계에서도 낮은 권세를 가진 사람은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의 말에 순종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영적으로 높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낮은 권세를 가진 세상의 질병, 고초, 시련, 괴로움 같은 것 여러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물러나라면 물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굉장한 권세를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네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할 권세를 주셨다고 성경에 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권세도 우리가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4차원의 영인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더라. 우리의 기도는 수면에 운행하는 성령과 같이 우리의 영이 그 일에 대해서 운행하는 것입니다. 변화가 다가오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4차원의 영성의 하나님 말씀입니다. 세상 말 아닙니다. 세상 사람이 성경 읽어봤자 모릅니다.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여러분은 이 성경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 여러분이 성경말씀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면 그 말씀이 여러분의 영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말씀을 실제로 사용하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치료의 역사를 나타내고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많이 외우는 것 정말 좋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 말씀 자체는 여러분. 저를 믿으면 4차원의 영성을 얻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 앞에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이 외우면 정말 그 말씀대로 (내 정성에) 평생에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러분 평생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것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 4차원의 영성이 가진 무기가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야훼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질병에서 건져주실 것이라. 요사이 질병이 돌아다니는데 이 말씀 한마디만 하면 끝장인 것입니다. 한 길로 왔다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곁에서, 만 명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니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말씀은 여러분의 무기인 것입니다. 일반 사회도 적군과 싸울 때 적군이 탁월한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가까이 못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해도 여러분이 이 성경의 탁월한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무기를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어떤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비웃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이라 이 무기는 4차원의 무기인 것입니다.
3차원의 세계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은 늘 읽고 암송하는 것이 굉장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속사람 즉 영의 사람이 살아서 육의 사람과 환경을 단속하는 것입니다. 육의 사람을 돌볼 뿐 아니라 단속을 잘 해야지요.

2. 3차원의 세계를 다스리는 영의 사람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성령은 우리들의 영인 것입니다. 로마서 4장17절에서 18절을 보면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면 이런 배짱 있는 믿음을 좀 믿으라는 것입니다. 항상 뒤로 물러가고 부정적이고 두려워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 같이 계심으로 그와 같은 담대함이 여러분 속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어라. 우리가 바라면 그 바람을 끝까지 견디라는 것입니다. 믿었으면 끝까지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능력이 여러분 속에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바라고 있으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습니다. 라고 믿었으면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사람 영의 사람이 육의 사람이나 환경을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목적이 있는 꿈이나 환상을 믿고 그 믿은 바를 입술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을 하면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서 2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거 예수님이 굉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과장해서 엉터리로 말했다고 비난할 사람이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은 거짓말하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보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우리가 뭐 쓸데없이 점심밥 먹어가면서 산보고 물러가라 고함치고 다닐 사람은 아니지 않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다가오는 태산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태산 같은 문제. 그런 문제를 맞이할 때는 4차원의 영성인 입술로, 말로써 명령하라는 것입니다. 이 개인의 심령의 문제,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직업의 문제, 이것은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그러고 그 기도를 계속 하는 것이 운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수면 위에 운행하는 것처럼 그 기도를 계속 하면 그 문제에 대해서 긍정적인 운행을 하게 되면 그 산이 옮겨가는 것입니다. 태산 같은 문제가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해봤으면 해보십시오. 조그마한 문제가 언덕에 옮겨가면 그 다음엔 조그마한 산도 옮겨가고 태산 같은 문제가 옮겨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의 신앙생활이 좀 더 이제는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대결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살려고 해도 마음속에 자꾸 의심이 생겨나는데 이 의심을 어떻게 해야 되는 것입니까? 의심을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의심이 마음에 와서 자꾸 쪼작거리면 여러분 의심을 ㅤㅉㅗㅈ아내야 되는 것인데 의심과 정 반대되는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와가 마귀가 와서 “정말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더냐” 그럼 “마귀하고 대항해서 말도 하지 말라 하더라! 물러가라!”하면 좋은데 “아니야~”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다 따먹되, 선악과라는 사과는 먹지 말라고 하더라.” 그러니 마귀가 “아니야~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될까해 그렇다.” 대화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의심이 다가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의심은 다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심이 다가올 때 의심을 가지고 대화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와에게 마귀가 그렇게 말하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물러가라! 나는 믿음이 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어느 금보다 예리하니 물러가라!” 대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반대말을 해야 되겠습니다. “너 병들어 죽는다.” “나는 안 죽는다.” 하나님이 나와 계시면 안 죽는다.“ 죽는단 말을 대꾸를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심에 맞서서 대결함으로 이기면 의심이 여러분을 고통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너무 예리해서 의심이 들어오면 하나님이 버렸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의심을 받아들여서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걷다가 의심으로 말미암아 물에 빠졌고, 도마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여 내가 그의 손에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였노라. 이렇게 의심에 대해서 대꾸를 했습니다. 의심은 누구에게나 다가오지만 중요한 것은 의심이 다가올 때 믿음으로 물리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심은 마귀가 대적하면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4차원을 활용하고,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 언제나 사랑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만큼 하나님이 높이 보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 아들의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은 똑같이 취급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로 19절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깊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을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억세게 위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높은가. 믿음이란 사랑을 따라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높고 높은 하늘을 지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니 예수님의 사랑은 하늘 보좌같이 높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깊습니까. 그는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어서 음부에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습니까. 우리의 죄 짐을 짊어지고..음부는 안 믿는 사람이 내려가는 지옥의 전당경인 것입니다. 그까지 우리 죄 때문에 주님 내려가셨습니다. 그는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어서 음부에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깁니까?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넓습니까? 온 지구를 품에 안고 있으니 그 넓이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사랑이 높고 깊고 넓고 길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가 버림받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한번 믿었으면, 이 끈질긴 사랑으로 인연이 맺어져 있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끝까지 여러분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이 높고 깊고 넓고 길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사랑해주니 안 믿을 수가 있습니까? 믿게 되지요. 우리 이웃과도 큰 사랑을 베풀어 주면, 그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무엇이든지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 그분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엄청난 사랑을 해주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믿음이 역사하는 조건
그러므로 믿음이 역사하는 조건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끌어안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우리 믿음은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미움이 들어오면, 미움은 마귀를 끌어 들이기 때문에 마귀는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가져와서 우리를 패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기 때문에 사람을 제일 먼저 사랑했지만은 나무도, 풀도, 짐승도, 물질도 다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계시고, 여러분이 계신 곳에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짐승도 있고, 그것 다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제일 처음 사랑하였거니와 여러분이 살아야 될 환경도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캘리포니아 오렌지 농장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오렌지를 심어 놓고, 매일 아침 오렌지밭을 지나가며 ’사랑한다. 예쁘게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 이렇게 칭찬을 해주면 오렌지들이 그만 오렌지밭에 들어오면 이렇게 웃는답니다. 자기보고. 웃기만 하는 게 아니라 벌레가 안 먹어요. 그러고 병도 안 걸리고, 아주 오렌지가 잘 자라요. 사랑을 말해준 오렌지하고 사랑을 말 안 해준 오렌지가 그렇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만 이야기한 게 아니라 일본에 유명한 농학자도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벼농사를 짓는데 벼가 한참 알맹이가 들어갈 때, 벼 고랑을 지나가면서 ’벼야 잘 자라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렇게 칭찬을 하면, 칭찬을 안 해준 벼보다 몇 배나 수확을 더 많이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 동물이나 식물도 사랑을 하면 사랑에 반응을 하는데 여러분의 자녀들을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훌륭하다. 참 잘 자라라.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너는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다.‘ 칭찬해주면 기막히게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되실 것입니다. 사랑. 사랑은 모든 만물을 축복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인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위해서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리를 돌보시니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고 찬송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칼이랴 이 모든이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 끝나는 날까지 서로에게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생활은 용서해줌으로 말미암아 4차원의 영성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옛말에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한은 모래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반대로 은혜는 모래 위에 새기고, 원한은 바위에 새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번 원한이 새겨져 놓으면 그를 지우지 않아요. 그 원한이 내 마음 바위에 새겨져서 항상 머물러 있으면서, 사랑을 역사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믿음인데 믿음의 생활을 하지 못하게 훼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렵지만은 용서를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에 빚진 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이 엄청나게 우리를 용서해 주셨으니 하나님의 용서의 본을 받아서 이웃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 용서가 우리에게 큰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흙으로 빚어졌기 때문에 쉽게 부서지는 연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신학자 R.C 스프라울은 우리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아 저 사람, 죄를 짓는 걸보니 죄인이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은 어머니 뱃속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안 지을 수가 없어요. 다 죄를 짓습니다. 오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로 그를 데리고 오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해서 용서받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용서받은 의인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넘쳐납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고 사랑할 때, 우리 자신의 삶도 비로소 행복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말미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예수님을 더 믿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목숨처럼 사랑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목숨을 주고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얼마나 큰 사랑을 하나님 이 주셨습니까.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렇게 잡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떨쳐버리고 나가려도 해도 ‘에이 안 돼~너는 내 것이야. 내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써 너를 값 주고 샀어.’ 하나님 안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니 믿을 수 있지요. 이 하나님이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셔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조그마한 문제 같은 것은 하나님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목숨같이 사랑하는 여러분의 믿음으로 기도하고 나가면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 안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좋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냐. 그의 첫째 대답이,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대답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좋은 하나님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의 문제를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과 서로 미움과 분쟁 속에 불화를 갖게 되면 사랑으로 말미암는 믿음이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기초 위에 믿음과 소망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케 매는 띠니라“


<결론>
성경의 가르침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또 우리가 이웃을 그 사랑의 대가로서 용서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신앙이 특별히 다른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용서하고 살면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께 부탁하는 것은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자기를 생각하는 것보다 위대한 힘을 가진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존재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시죠. ‘나는 중생하여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있다. 높은 차원은 낮은 차원을 다스린다. 나의 속사람은 겉사람을 다스린다.’ 그 말만 하더라도 여러분은 여간히 큰 힘을 가진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의 속사람은 겉사람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스리고 돌보고 변화시키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그와 같은 사랑으로 사랑해주시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