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고전 1:18-31)

2015.10.11. 주일4부예배

서론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멘 하십시다. 우리가 운동을 하면 몸의 근육량이 늘어납니다. (근육을) 운동을 하지 아니하면 근육이 줄어들지요. 행복도 훈련을 해야 늘어나는 것입니다. 리버사이드 주립대학 심리학과 소냐 류보머스키 교수는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혔습니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인 요인은 10%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긍정적인 생각이나 믿음 등, 자기의 노력에 의해 행복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는 훈련을 한다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세계 각국의 국민 행복도를 조사했는데,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143개국 중에 118위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별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또한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무려 36%가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10명 중 4명은 행복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임을 믿으라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습니까? 행복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임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때 행복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하제일의 귀중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신다. 그 사랑을 느낄 때 행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스바냐서 3장 17절에 보면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이 말씀을 읽을 때, 어릴 때 기억이 납니다. 겨우 말을 알아들을 정도가 됐을 때, 할머니가 와서 끌어안고 “아이고 내 자식아, 아이고 내 새끼야.”하면서 등을 쓰다듬고 엉덩이를 두드려 줄 때, 그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할머니는 날 사랑하신다.’ 할머니를 보면 행복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끌어안으시고 “아이고 내 새끼야. 니가 왔느냐?” 기쁨을 견디지 못하는 하나님이시라니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 것입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독생 하신 예수님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제물로 내어놓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어지간히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독생 하신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 대신 제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얼마나 지극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대속의 은혜인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항상 마음속에 생각해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로 31절에 본문에 읽은 말과 같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태어나게 해서 예수님 안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이 되시고 거룩함과 구원하심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없는 자라고 스스로 자기를 비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거룩함과 온전하심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 일을 생각하고 우리가 기뻐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하간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발견할 때 우리는 마음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님이라면 무서운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 늘 꾸짖는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떨었습니다. 제가 58년 목회생활 하는 동안에 깨닫게 된 가장 위대한 발견은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제일 처음에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라고 제가 설교를 하니까 사람들이 “무슨 어린 애기냐? 좋은 하나님, 미워하는 하나님. 이름을 그렇게 골라내서 말하길” 그러나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헐벗고 굶주리고 환경이 어렵고 스산한데,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마음이 너무나 기뻐지고 행복해졌던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을 읽을 때 그 감격이 마음을 부딪혀 왔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하나님은 우리를 못되게 하시고, 가난하게 만드시고 병들게 만드시고 꾸짖으시고 쉽게 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때, 안 믿을 수는 없으나 할 수 없이 하나님을 믿어도 마음에 늘 불안하고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 네가 잘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때, 내가 비록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어려울 지라도 이 하나님이 계시니 좋게 될 수 있다. 하나님이 날 위하여 축복해주심으로 나는 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담대한 용기가 생기고 믿음이 생기고 기쁘고 행복했던 것입니다. 천막교회에서 가마니를 깔고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굶주렸지만, 좋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고 행복했던 것입니다. 요한3서 1장 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함으로 하나님이 결코 우리가 못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잘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 맡겨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청산시키고 우리를 예수 안에서 이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어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편 145편 1절로 2절에 보면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145편 8절로 10절에 ‘야훼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야훼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야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주를 감사하고 찬송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내 모든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사 내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좋으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좋은 하나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항상 사랑을 베풀길 원하시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여러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한다 하더라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품에 품으시고 좋아해주시고 사랑해주시니 행복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받으면 행복해져요. 제가 58년 동안 긴 세월동안 목회를 했는데 목사가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성도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 굉장히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또한, 목사가 성도들을 사랑해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박수를 받으니까 마음이 기쁩니다. 저도 여러분을 축하합니다.

2.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라
둘째로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두 사람 모여서 의논할 지라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우울해집니다. 행복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두고 좋은 면을 들어 칭찬하고 좋아하면 내 마음도 밝아지고 맑아지고 기뻐지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일들이 부딪혀왔을 때 좋은 면을 생각해야 돼요. 나쁜 것을 들추어서 생각하려면 얼마든지 나쁜 것을 들추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점을 들어 이야기하면 또 좋은 점을 우리가 들추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나빠지는 것도 하나님은 결국 선으로 변화시켜 주신다.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이면 기쁘지요. 나쁜 일이면 슬퍼지는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모든 일이니까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나쁘고 괴로운 것도 참고 기다렸다가 나중에 그것이 좋게 변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환난을 안 당한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환난이 하나님이 계시면 인내를 길러 내고 인내는 소망을 길러내서 하나님 앞에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생각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우리가 멈춰야 돼요. 부정적인 생각은 하면 할수록 점점 커지는 법인데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눈덩이 효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눈이 내리면 좀 기다렸다가 조그마한 눈덩어리를 만들어서 언덕 위에서 굴립니다. 그러면 이것이 굴러가면 눈덩이가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밀어낼 수 없을 만큼 큰 눈덩이가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이와 같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눈덩어리같이 커지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부정적인 생각이 큰 눈덩어리처럼 되어서 나중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밤잠을 자지 못하고 마음에 괴로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우리가 멈춰야 되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좋은 편으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좋은 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편을 말하면 행복이 따라오지만, 나쁜 편을 말하면 자꾸 나쁜 것이 나쁜 것을 물고 와서 태산 같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믿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데 그냥 있을 정도가 아닌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를 흘려 우리 일생의 죄악을 영원히 청산해버린 것입니다. 모든 허물을 청산해버려 의로움과 거룩함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질병을 예수님께 책임지어서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병을 다 청산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질병을 극복할 수가 있게 만들어 주신 좋은 하나님 아니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인간의 베풀어진 모든 저주를 속량해버리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가로 얻은 저주의 무서운 형벌을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서 몸 찢고 피를 흘려 청산하셨습니다. 성경에 저주받은 자는 나무에 매달으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나무에 매달려 피를 흘린걸 생각하면 얼마나 기가 막힌 것입니까? 거기에다가 예수님 우리 대신하여 죽어서 음부에 내려가서 그를 폐하고 부활해서 영생 천국을 우리에게 문을 열어 놓았으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베푸신 은혜를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세상에 어떤 원수들이 와서 흙을 덮어 씌워도 씌워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넘어졌어도 깨뜨러지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걸머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인 것입니다. 예수 죽인 이 어마어마한 형벌들이 다가와도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를 끌어안고 우리에게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고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사랑하고 기뻐하고 웃으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우리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인하여 기뻐하고 웃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26편 1절로 3절에 보면 ‘야훼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야훼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야훼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다’ 하나님께서 입에 웃음을 주시고 혀에 찬양을 주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이 뜻하신 것은 우리가 늘 기뻐하는 것, 늘 기도하고 늘 감사하라. 쉽게 그렇게 안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로 작정을 하고 항상 기뻐 안 할 때라도 기쁘다. 참 좋다. 할렐루야. 우리 성령 받은 사람은 할렐루야가 얼마나 말하기 쉽지 않습니까? 기쁘지 않은 것에도 할렐루야. 좋습니다. 기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할 때에 우리에게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웃음의 효과는 이미 의학적으로 증명된바 된 것입니다. 웃음은 굉장한 선물인 것입니다. 미국 인디애나 주 메모리얼 병원 연구팀에 의하면 15초 동안 크게 웃기만 해도 엔돌핀이 나와서 면역 세포를 활성화 시켜 수명이 이틀 동안 생명이 연장될 수 있다. “당신 이틀 후에 죽을 것입니다.” “아니오. 나는 이틀 후에 죽지 않습니다.” “어떻게요?” “내가 웃고 있기 때문입니다.” 웃음으로서 나오는 엔돌핀이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이틀이나 연장시킬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한번 웃어보시겠어요? 하하하하~ “여러분, 이틀 더 살게 되었어요.” 웃음은 암을 예방하는데도 효과적이며 각종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도 높여 준다는 것입니다. 웃음이 이렇게 좋은 것인데, 많은 사람이 웃음을 버리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여러분, 아이들은 하루에 얼마나 웃는지 아십니까? 400번을 웃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15번 밖에 안 웃어요. 웃지 않는 통계도 이렇게 나오는걸 보면 웃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많이 웃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웃는 훈련도 해야 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웃어야 돼요. 저는 설교하다가 내려다보면 여러분 중에 미소를 띠는 있는 분도 계시고 어떠한 사람은 손주 죽은 할머니처럼 긴~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분들도 계시는 것입니다. 웃는 성도들을 보면 마음이 굉장히 기쁩니다. 전달하는 것입니다.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분을 보면 같이 슬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거짓으로 웃는 것도 진짜 웃는 것으로 구분하지 못합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90%는 진짜로 웃겨서 웃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웃을 일이 많지 않아도, 건강을 위해서라도 웃는 것이 좋습니다. 집안에 우환질고가 사라지지 아니하면 웃음의 소리를 내어서 하나님의 긍정적인 축복이 집안에 가득 차게 해야 되는데 웃을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럼 거짓으로라도 웃으란 것입니다. 우리 뇌는 거짓으로 웃으나 진짜로 웃으나 그것을 구분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앉아서 허허허~ 하하하~ 아하하하~ 아 좋다 할렐루야. 그렇게 하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웃음을 그처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3. 삶의 기쁨과 행복을 나눠라
셋째로 삶의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기쁨과 행복을 이웃과 나눠야 되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요. 곧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 내가 혼자 누리고 있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게 되면 나눈 것만큼 행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요. 곧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 그냥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주는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부엌에서 어머니, 할머니 일하실 때 나는 장작을 가져오고 땔감을 갖다 나르는 조수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고모님이 집에 왔다가 돌아갈 때 우리 할아버지가 창문가로 늘 보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 할머니가 고모에게 그때는 쌀이나 먹을 것을 주시는데 “비워라~” 대가 흔들어 가지고서 눌러 가지고서 대어서 이렇게 줘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딱 눈치 보고 있다가 나중에 “왜 그렇게 많이 주어서 보냈냐? 우리는 공짜로 먹느냐? 젊으니까 자기들이 벌어서 먹지. 왜 자꾸 집에 오느냐?” 그래 꾸짖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아하, 자식들이 더구나 아들이 아니고 딸자식이 오면 집에서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주는구나. 그래서 내가 나도 할아버지가 말하는 것이 느껴져서 우리 집에 누가 왔다 가면 창문으로 내려다볼 때 그런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사랑은 주고 또 주고 넘치도록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의 목숨을 주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오른뺨을 치면 왼 뺨을 돌려대고,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을 주고, 오리를 가자하면 십 리를 가고, 이와 같은 마음 품성을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잠언서 11장 25절에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우리가 옛날에 해외여행을 갈 때 얻어먹고 살 때 마음이 언제나 씁쓸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손을 내밀고 구제를 요구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마음이 떳떳한 것은 어느 곳에 가나 구제하는데 우리가 함께 구제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함께 나누어 먹게 된 것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요사이 중동에 많은 난민들이 생겨서 유럽에 영국, 불란서, 독일. 여러 선진국들이 난민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번에 난민 중에 어린이 한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서 파도에 씻겨서 해변가에 엎드러져 있는 그 모습을 보았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땅덩어리 하나라도 우리가 나누어 가지며 함께 살라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만 잘 살아선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함께 잘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남북이 나누어져서 서로 대결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라도 언제든 주는 편에 있어야 되고 사랑하는 편에 있어야 돼요. 우리가 나누어주는 편에 살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도 중동에 일어나고 있는 난민들을 그냥 보고 넘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멀리 있으니까 그들이 굶어 죽든지 우리가 뭐 할 필요 있겠냐? 생각하지만, 그들도 다 같은 사람입니다. 그들도 다 같이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만 있으면 그분들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데 협조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 생각을 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런 소리를 하느냐? 뒷감당은 주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잠언서 11장 25절에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풍족하게 되고 윤택하게 되고 싶으면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풍족하게 만들어주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면 그것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잠언서 19장 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야훼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리라’ 불쌍한 사람 돌보아 주는 것이 하나님 돌보시는 것이라고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기를 원하시냐면 이웃을 사랑하고 돌봐주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과 같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니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삶의 기쁨과 행복을 나누어줄 때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흑인 해방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을 대단히 사랑합니다. 요사이 TV에서 킹 목사님의 일생이 영화화되어서 theory가 전해지고 있는데 밤에 잠이 오기 전에 그것을 보고 자면 마음이 아주 좋습니다. 흑인 해방운동가로서 미국에서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굉장한 고통을 당할 때에 흑백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흑인들에게 투표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그 일을 하는데 위대한 일을 하신 목사님이신 것입니다. 그 분이 하신 말씀이 “어둠은 어둠을 쫓아낼 수 없고 빛이 있어야만 사라진다. 이와 같이 미움은 미움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사랑만이 미움을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말입니까? 캄캄한 어두움에 어두움을 가지고 밝힐 수가 없지 않습니까? 빛을 비춰야지요. 미워하는데 서로 미움을 가져오면 끝까지 미움밖에 없지 않습니까? 미워하는데 사랑을 가져오면 미움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남북이 대결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어찌하든지 북한 동포들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미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이 미워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는 북한에 노동 국가 창설 70년 기념을 한다고 하는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군인들의 행렬이라든지, 장갑차, 전차, 비행기, 수 없는 무기들이 전시되는데 내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드냐면 ‘저거 다 우리나라에서 원조해준 돈을 받아서 저렇게 하는데 저 도와줄 필요가 있느냐?’ 사실 북한이 못산다. 어렵다. 도와줘야 된다. 그 말을 많이 하는데 그들이 그 물질적인 도움을 받아서 국민들에게 나눠주면 좋지만 거의 다 그 병력을 증강시키는데 사용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더라도 우리는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당하는 동포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북한 평양에 ‘조용기 심장병원’ 제가 시무할 때 북한에 들어가서 삽질을 하고 건축을 하기 시작한 것이 아직까지도 안하고 있습니다. 남북 간에 조그마한 이견만 생기면 건축하는 것부터 중지시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올해는 건축이 완성되어 우리 성도들이 그때처럼 아시아나기를 전세 내서 타고 가서 성대하게 건축이 완성된 것을 하나님 앞에 알려드려야 될 것인데, 그렇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이나 사람 때문에 부딪히게 될 때, 미움을 미움으로 대하면 미움이 더 자라게 됩니다. 미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대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사랑이 있을 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고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하셨으니 예수님께로 기도로써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참 주님의 말씀 가운데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다 저 사람에게로 가라. 이리로 가라.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주님 내게로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안 진 사람 누가 있습니까? 영적인 무거운 짐, 마음의 짐, 육신의 짐, 생활의 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짐을 지고 내게로 오라. 예수님께 와서 기도와 간구로 짐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짐은 쉽고 가볍다고. 여러분,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예수께로 오면 예수님이 쉬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짐이 있으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지금도 저는 우리 성도가 어려운 문제 때문에 제가 안수기도를 받으러 와서 안수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그 성도 때문에 밤새도록 마음이 무거워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 짐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그 무거운 짐이 해결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을 구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성령으로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여러분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져 주십니다. 주님께 무조건 맡기십시오. 죽으면 죽으리다. 하고 맡기십시오. 주님께서 죽도록 내버려놓지 않으십니다. 혹시 죽는다고 할지라도 주님께 맡겨놓고 죽었으면 주님이 저 세상에서 갚아주셔야 되기 때문에 천당에 무사히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 내어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4절로 16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찬송가나 부르라고 부른 것 아닙니다. 성찬을 떼고 그냥 눈감고 지나가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자신의 살을 찢어 우리에게 주고 피를 흘려 우리에게 마시게 할 정도로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교를 믿기 위해서 우리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짓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주와 생명을 하나로 하기 위해서 나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깨고 사는 생명의 일체를 가지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여러분과 운명을 같이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너의 짐 내게 맡겨라’고 했으니 죄 짐도 맡기고, 질병의 짐도 맡기고, 생활의 짐도 맡기고, ‘내가 너의 짐을 걸머지고 너와 함께 걸어가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짐을 맡기고 나가면 마음에 행복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리 내어 감사와 찬양을 끊임없이 우리는 해야 될 것입니다. 많은 일에 우리가 예수님을 섬길 때 내 속으로 섬기지, 겉으로 안 섬긴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주님께 기도도 소리 내어 하는 것이 효과가 있습니다. 찬송도 소리 내어 하고, 기도도 소리 내어서 하고,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자기가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자기가 들으면 그 기도는 능력과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자 위한 기도를 많이 하는데 병을 낫기 위해서 기도하고 난 다음에 자기가 듣도록 늘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 용기야,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 너는 건강하다. 너는 튼튼하다. 너는 씩씩하다. 주께서 너를 돌보아 주신다. 소리 내어 자기를 격려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는 하나님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를 자기가 들릴 수 있도록 입으로 소리를 내어서 시인하는 것 굉장히 능력이 있고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하다. 용기야, 너는 힘 있다. 너는 낙심하지 말아야 된다.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여러분이 들으시고 그 기도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복한 사람은 온통 그가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살맛이 있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행복해지면 이웃을 다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남편이 행복하면 그 행복의 분위기를 아내에게 전달해주어서 아내가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행복해지면 자녀들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행복해지면 여러분 같이 있는 지역장들, 지역원들, 구역원들, 성도들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행복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까지 주셨는데 그를 받아서 기뻐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은 우리 위해서 살을 찢고 피를 흘려주셨는데, 그를 받아먹고 마시고 행복 안 해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행복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은 오늘도 이 시간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큰 행복이 우리에게 이미 던져주신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긍정적으로 살므로 행복이 만들어지도록 자기 스스로가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의식적으로 쫓아내고 부정적인 생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태어서 행복하게 되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행하게 살려면 얼마든지 불행하게 살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또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를 끌어안아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