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없는 사람
(시 1:1-6)

2015.10.25. 주일4부예배

<서론>
오늘은 ‘복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거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복은 사람 따라 갑니다. 사람이 복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 보내시면서 복을 주시고, 그 후손들에게도 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로 14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그 아브라함에게 준 복을 이방인들이 우리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그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 아래에 있는 자가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사람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그 저주를 청산하는데, 예수님은 청산할 저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청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렇게 말씀하였기 때문에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므로 율법을 지킴으로 복을 받겠다고 말을 안했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브라함의 복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엄청나게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인데,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더 많은 동포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면 할수록, 그들 각자가 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복을 받기 때문에, 그 복을 함께 합쳐서 나누면 굉장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다고 성경이 약속했었으므로 마음에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그 생각을 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천국의 영생의 복은 말로 다할 수 없고, 아브라함은 이 땅에 살아있을 동안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그를 보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어 보낸 것처럼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면 교회 왔다 갔다 하면서 물질적인 복도 다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너 복 받은 사람이다. 너의 조상 아브라함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저주를 다 청산했다. 넌 저주 아래 있지 않고 아브라함의 복 안에 있다.’ 말로써 자기를 격려하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게 편지 오는 데 보면 복 받은 사람이라는 내용은 별로 없고, ‘왜 복을 받아야 되는데 나는 안 되느뇨? 설교들을 때 보면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줄 것 같은데 나는 사업을 해도 안 되고, 장사를 해도 신통치 않고, 어려움이 왜 이렇게 많으냐?’ 그 어려움이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광을 주시기 전에 반드시 고난을 통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믿음을 한 번 더 확신하고 영광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기 전에 종살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총을 받기 전에 반드시 고난을 통해서 신앙을 한 번 더 다짐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서 좋은 일이 일어나야 되는데 왜 안 일어나냐? 고난을 통하거든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 자꾸 복을 주면 되는 것입니다. ‘너는 예수 믿고 복 받은 사람이다. 이 고난은 얼마 있지 않다가 떠나간다. 고난 뒤에 너는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자기를 자꾸 축복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가장 부족한 점이 자기가 자기를 축복해줘야 되는데, 그러지 않고 자기가 자기를 탄식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 보세요.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좋은 사람이다.’ 남이야 듣든 말든 여러분 자신이 그 말은 언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복이 날 찾아와야 된다.’ 오늘도 여러분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저도 복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같이 복 받은 사람의 앞에서 설교를 하게 되니 얼마나 복을 받았습니까.

<본론>
1. 악인의 꾀를 따르면 복이 없다
복 받은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면 복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악인은 마귀의 종자들을 말하는 것인데, 마귀는 악의 본체입니다. 마귀를 따라 하나님을 미워하고, 저항하고, 인본주의를 주장하고, 바벨탑을 쌓는 노아의 후손처럼 악인은 복이 없습니다. 악은 죄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면 죄인이 되지만은 악인은 그 성격 자체가 부패하고 패륜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스탈린이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산주의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굉장히 그 배후를 보면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 자기의 영화를 도모하는 그건 악인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죄인은 그 근처도 못 갑니다. 악인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악인은 인본주의적으로 자기 혼자 사는 것인데,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모두 다 악의 전통을 받아가지고서 엄청나게 고약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가까이에 있는 사람 중에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심판할 때 그냥하지 않고 대포를 쏘아가지고서 벌을 내렸다는 것을 신문 가십란에 읽어 봤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데 여러분 대포를 쏴서 죽일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악이 그게 저렇게 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하나님과 어깨를 나란히 같이 하여 이콜(=)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11장 4절에 ‘또 말하되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노아의 후손들이 모여서 농사를 지었는데 시날 땅에 농사가 잘 되었어요. 여러분 농사가 왜 잘 되었느냐면 홍수가 나서 땅에 거름을 많이 생산해 놓았어요. 농사짓는 사람들은 홍수가 나고 난 다음에 농사가 잘 돼요. 그래 굉장히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그들이 “우리가 하나님 이제 섬길 필요가 어디 있냐? 우리가 탑을 쌓아서 하늘에 닿게 하고, 홍수가 와도 우리에게 건드리지 못하게 그런 높은 탑 아파트를 만들자.” 벌써 그때 이 탑이란 것이 사람이 올라가서 사는 곳이니까 아파트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 우리도 하나님처럼 될 것 아니냐?” 노아의 후손들이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한 것은 악인 것입니다. 그냥 죄가 아닌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고(요한복음 10장10절), 악한 자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를 쫓아서 참으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에게는 복을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2. 죄인들의 길에 서면 복이 없다
그 다음에 복 받으려면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죄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와 정부 간에 밀고 땡기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교회에서도 세금을 내라”, 그리고 교회에서는 “내내 세금 내라고 말 안하다가, 이제 갑자기 왜 세금을 내라고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서방에 교회, 어느 교회가 세금을 낸 적이 있느냐. 우리는 법에 없는 세금 못 내겠다. 국가법에 ‘교회는 세금을 낼 지어다’하는 법조문이 없다.” 물론 저는 그렇게 해도 양심에 가책이 없습니다. 저는 세금 내라 안 내라 할 것 없이 우리 교회는 세금을 낼 곳에 내오고 있습니다. 저도 세금 한 푼도 안 떼먹었습니다. 우리 교회 교역자들 한 푼도 세금 안 떼먹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세금 내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세금 못 내겠다.” 그러고, 정부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세금은 공평하게 다 내야 되지 않느냐. 법이 있든 뭐든 내라.” 제가 제3자로서 결정하기는, 법을 만들어 놓고 내라 해야지 법이 없으면 죄가 없습니다. 법이 있어야 법을 어기는 것인데 없는 법을 어떻게 어깁니까. 그러므로 빨리 법을 만들라고 저는 그렇게 권면합니다. 법을 만들면 법에 따라서 순종 안하면 죄가 되기 때문에 교회도 세금을 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죄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짓는 것도 법을 어겨야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늘 세상을 떠나더라도 죄가 없습니다. 여러분 죄가 없어요. 왜 죄가 없습니까? 여러분을 죄인으로 붙잡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법이 없어요. 왜 법이 없느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올라가서 여러분 죄를 영원히 청산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심판할라하면, 예수님이 여러분 옆에 서서 “내가 다 책임 졌습니다. 저 갈보리를 보십시오. 내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죄를 다 갚았습니다.” 아, 그러니 죄가 없다 말입니다. 법이 청산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라는 것이 보통 구원이 아닙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크신 은혜인 것입니다. 로마서 7장 7절로 8절에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나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도다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라’ 율법이 없으면 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옛날 십계명을 들추어가지고서 죄인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일평생의 죄가 청산되었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과의 싸움은 그쳐야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에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될 것과 사람 앞에서 지켜야 될 법이 있는데, 출애굽기 20장 3절로 17절에 보면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마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이는 하나님께 대한 법입니다. 이 법을 어기면 죄인이 되지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내지 말라’ 사람에 대한 율법입니다. 이것도 어기면 죄가 되지요. 구약에 십계명을 우리가 죄인이냐, 죄인이 아니냐를 결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십계명이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죄인으로 결정하는 조건이 못 됩니다. 예수님이 다 청산했다. 예수님이 우리의 제물이 되셔서 청산했기 때문에 이 십계명이 우리를 정죄해서 지옥으로 보내지 못합니다.
아담 이후 태어난 인간은 모두 심성이 부패한 죄의 종이었는데, 주님께서 여러분, 의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 믿고 의인이 되었다. 그런데 의인이라는 것은 뭐 보통 의인이 아닙니다. 평생에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가 의입니다. 여러분 의인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예수님이. 예수님이 얼마나 값이 나니까는 예수님의 희생은 세상 값으로 계산을 못해요. 그러므로 예수 믿으며 의롭게 되는 것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만들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옷이 너덜너덜한데 그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귀한 사람에게 초청을 받아서 가라하면 부끄럽다고 못 나가지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 힘으로 결코 예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의지하고 아버지 앞에 나갈 때 움츠리고 이렇게 나갈 필요가 없어요. 왜?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자격이 의로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하나님 앞에도 당당히 나갈 수 있고, 한평생에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만들어 주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 이 원수마귀야 물러가라!”고.. 마귀는 우리 옛날 잘못을 자꾸 들추어내서 의롭지 못하게 만들지라도 예수의 피가 우리를 덮어씀으로 아무리 정죄를 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리스도 신앙은 예수의 피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피 덕분에 우리가 살고, 아버지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원수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으면 복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앞에서 악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그 다음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만한 것은 교만을 말합니다. 그 교만은 어떠한 교만이냐면 하나님과 동등되려고 하는 교만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타락했습니까? 마귀가 꾀는 바람에 오만해져서 타락한 것입니다. 마귀가 어떻게 꾀었냐하면,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이거요. 여러분 선악과는 의미가 뭡니까? ‘선하다. 악하다’하는 것은 언제나 어른이 결정을 하지 애들이 결정을 안 합니다. 집에서도 여러분 ‘선하냐, 악하냐’는 집안에 아버지, 어머니가 결정할 일이지 애들이 결정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에 주권은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이 ‘좋다, 나쁘다’ 결정할 주권을 가지고 있지 우리가 마음대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절대주권자인 하나님이 정해놓은 것을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하고 다른 소리하면 하나님과 경쟁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나와서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 안 그렇습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습니다.” 아버지를 어떻게 알고 아버지와 동등되게 하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것은 주권에 대한 침노를 엄청나게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다’하면 그런 줄 알아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나님 주권에 도전하는 것, 그것이 원죄인 것입니다. 그 원죄에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데, 예수님이 “아버지 뭐 조그마한 이걸 가지고 내가 뛰어 와서 죽을 이유가 있습니까? 십자가에 죽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주권에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고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으면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천국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최고 천사장이 있습니다. 미카엘, 가브리엘 천사장 이름인 것입니다. 그 다음엔 사탄, 사탄은 여러분 하늘에 높은 천사장 중에 제일 높은 천사장이었습니다. 그게 하나님과 동등되려고 하다가 심판을 받고 쫓겨나서 사탄이 된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13절로 14절에 보면 사탄이 왜 사탄이 되었는지, 제일 윗자리에 있던 천사장이 왜 타락했는지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13절로 14절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이 되리라’ 완전히 천사장은 천사장이지.. 하나님과 동등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25절에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느냐’ 그래서 제일 높은 천사장이라도 하나님이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 자기 부하 천사들과 더불어서 반역해서 공중의 권세를 잡고 오늘날 우리를 꾀고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동등되게 하려다 타락했는데,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과 동등될 수 있는데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겠냐. 선악과를 따먹어라! 그러면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아는 지혜를 얻어 너와 하나님과 동등하게 된다.” 그래서 그 말이 고소해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고 말은 것입니다.
또 교만하다는 것은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시편 31편 23절에 ‘너희 모든 성도들아 야훼를 사랑하라 야훼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리로다’, 시편 40편 4절에 ‘야훼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자기를 과대평가하면 교만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만하게 어깨에 힘을 주면 하나님도 미워하시고 사람들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겸손이 제일 좋은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여주면 높아지고, 하나님이 낮추시면 낮아지고, 우리가 공경할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공경하고, 지금은 아버지 시대 아니고, 예수님 시대가 아니고, 성령님의 시대인 것이므로 아버지도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므로 하나님 성령을 인격적으로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우리가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만해서 “나는 성령 없어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교만이요, 교만은 패망의 선구자인 것입니다.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교만은 가장 근본적이고 위험한 죄입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인간이 최초로 지은 죄요,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창세기 3장5절)’이라고 유혹하자,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교만이 발동하여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 찾아와 가장 늦게 떠나는 끈질긴 죄”라고 말했습니다. C.S.루이스도 “근본적인 죄악은 바로 교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비교하지 말아야 돼요. 교만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나는 너보다 낫다.” 어깨에 힘주고 고개를 흔드는 것.. C.S.루이스는 “교만은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쾌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라 말합니다. “나는 너보다 낫다.” 거기에서 교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를 과대평가하거나 이웃을 무시하는 것은 모두 비비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왜 사이가 나빠져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였습니까. 자기하고 아벨하고 비교해보니 하나님이 아벨을 더 인정해주었습니다. 아벨은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고, 자기는 곡식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아들이고 가인의 제물은 안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아벨하고 자기하고 하나님은 편파적으로 대접한다 하고, 아벨이 자기보다 낫게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니깐 화가 나가지고서 동생을 쳐 죽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비교할 때에 불행이 생기는 것입니다. 비교하지 말아야 돼요.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너의 특성대로 하고, 나의 특성대로 하면 된다. 이번 우리 세계대회 때 내 통역하던 김 변호사는 머리를 여자처럼 철렁철렁해서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보는 사람마다 말을 하는 거예요. 머리를 깎으라고. 근데 나는 안 그랬습니다. 왜냐 오늘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만 안 주면 특성을 살리고 사는데, 이 김 변호사 머리보고 욕하지 말고 북한에 김정은이 머리를 보고 욕하라...그 머리는 정말 역사적으로 있어본 적이 없는 머리네. 그렇다고 낮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나 솔직히 개인적으로 말하지만은 미국가거든 그거 잘라라. 눈 뜨고는 못 보겠다. 오늘날은 특성의 시대이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하는데, 그것 가지고서 비교해서 정죄하거나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한 경고가 있는데, 절대로 남은 정죄하고 자기는 잘났다고 하지마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하나님 성전에 예배하러 올라가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 교인이고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바리새교인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세리는 옛날에는 굉장히 나쁜 사람이 세리였었습니다. 돈을 도둑질 해 먹고, 남의 사업을 무너뜨리고 하는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교인과 세리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는데 바리새교인은 한 쪽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여 내가 왔나이다. 보시옵소서. 나는 이레에 꼭 한 번씩 금식기도 하고, 십일조 꼭 드리고, 저쪽에 있는 저 세리처럼 허랑방탕하고 방종하고 육체적인 생활에 침전되어서 사는 그런 나쁜 놈이 아닙니다. 나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세리는 하나님 앞에 고개를 못 들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나는 죽을 죄인입니다. 하나님 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를 살려 주십시오. 나는 나쁜 놈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두 사람 중에 누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았겠느냐.” 여러분 우리가 생각해봐도 바리새교인이 훨씬 잘했다 말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것은, 끝이 없는 것은 세리하고 비교해서 자기 말을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두 사람이 기도를 하고 나가는데 이 바리새교인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이 세리는 용서를 받고 인정을 받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고백 하면 하나님은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이고,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더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살고, 인본주의로 살면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도 믿음, 둘째도 믿음, 셋째도 믿음을 중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에게는 마지막... 믿음이 율법이고, 생명이고, 모든 것 중에 모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최고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엄청나게 복을 받은 것이 우리입니다. 그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평생의 죄가 다 청산되고, 그 피로 인하여 성령을 받게 되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질병에서 고침 받고, 사망과 음부를 극복하고 천국에 올라가게 되고, 뭐 (우리가) 예수에게 너무나 큰 은혜를 입어서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구원하기 때문에 이 세리와 같이 주님께 와서 회개를 자꾸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잘났습니다. 저 사람보다 잘났습니다. 나는 술도 안 취하고, 악한 곳에도 가지 않고...” 뭐 어쩌고 , 어쩌고 자기 자랑하면 주님은 딱 질색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살면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의 사람을 품에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살면서 온전히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없습니다. 왜냐면 주님께서(베드로가 주님께) 이 질문을 했었습니다. “하나님, 하루에 죄인에게 몇 번 용서해 줘야 됩니까? 일곱 번만 용서해 주면 됩니까?” 그러니까 주님께서 베드로의 얼굴을 가만히 보시고 난 다음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회개만 하면 용서해 줘라.” 회개 안하는 것이 제일 나쁘지 회개만 하면 일곱 번씩 일흔 번 죄를 지어도 다 용서해 줘라. 7x7에 49, 490번 죄를 짓고 회개하면 용서해줘라. 그렇다고 좋다고 나가서 490번만 안되면 좋다고 죄를 짓고 다니면 안 되고요~ 그만큼 하나님은 용서해줄 마음이 계시고, 여러분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귀하게 여기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꾀를 가지고 있으면 복이 없고, 죄를 짓고 회개 안하면 복이 없고,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면 복이 없습니다.

<결론>
복 있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형통합니다. 복이 없는 사람은 항상 실패하고요. 복이 있는 사람은 복을 바라보고 꿈꾸며 믿음으로 복을 받아들이고, 복을 선언하고 감사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여러분 자신을 꿈꿀 때, 복 받아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안 된 여러분을 바라보십시오. 복을 바라보고 복을 꿈꾸고 믿음으로 나는 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가면 여러분에게 주기로 작정하고 있는 복을 왜 하나님이 안 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넘치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