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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고후 5:17) 2015.11.08. 주일4부예배 <서론> 오늘 저는 자화상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중에 자기 자화상을 종종 살펴보고 자기의 삶의 위치를 결정합니다. 자화상이란, 살아오는 세월동안 자기가 사람들 속에서 배우고 느끼고, 자기를 살펴보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것을 뜻합니다.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언어 행동이 밝고 맑고 담대하며,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심신이 고달프고 생활이 어둡고 침울하고, 열등의식과 좌절감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자신의 자화상은 어떻습니까? 저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이웃 동네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아버지가 굉장히 부적절하게 여긴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시골에서는 손꼽을 만한 부자입니다. 그래서 그 자식들 공부를 잘 시키려고 하는데 이 아들은 학교 가라고 내보내면 학교를 가지 않고 마구간으로 가서 지게를 지고 산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가슴을 치는 것입니다. 공부 안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다른 애들은 다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너는 왜 공부를 안 하려고 하느냐? 너 혹시 바보 아니가?” 걔는 아버지는 똑바로 보고 “아버지, 아버지하고 나하고는 다르지 않습니까? 애들은 공부를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공부하러 가지요. 나는 나무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지게를 짊어지고 산으로 갑니다. 애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나는 나무를 잘합니다. 두고 보세요. 나는 나무를 해서 부모님 섬기고 장가가서 아들, 딸 낳아서 잘 살겁니다.” 그 이야기가 전달이 되어 온 동리 사람들이 다 웃고 그를 손가락질 했으나 그는 담담했습니다.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자화상이 건전했습니다. <본론> 1. 나의 자화상 자화상을 남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너만 잘하는 게 있느냐? 나도 잘하는 게 있다. 그래서 당당하게 나는 살 자신이 있다. 사람이 70고개를 넘게 되면 불연히 이런 생각이 다가옵니다. 사는 것이 무언가? 정말 살만한 사람인가? 내 남편 노릇할 수 있느냐? 너 아내라고 큰소리할 수 있겠느냐? 점점 자화상을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자화상 보다는 부정적인 자화상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부정적인 자화상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우울증에 걸리고 굉장히 괴롭습니다. 우울증이 걸려서 사는 것이 다 잿빛 하늘같고 살아서 무얼 하나? 곧 죽을 것인데... 이러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들어오면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청년처럼 나도 잘하는 것이 있다. 나무를 베어서 건축자들에게 건축자재로도 팔고 화목으로도 팔고 다른 사람 모두 다 이런 것 잘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귀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나는 귀하게 생각한다. 내가 내 자신을 살펴볼 때, 자기를 긍정적으로 봐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여러분은 별 볼일 없고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게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여러분을 낮추어 볼 수가 없습니다. 야~ 대단하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드셨구나.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할 수 있다 자화상이 되어 있구나. 존경 받을 수 있는 자화상, 성공적인 사회원이 된 자화상을 가지고 있구나. 그러므로 부정적인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그것을 생각해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만들지도 않았고 여러분 힘으로 인생을 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셨고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돌보고 계심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을 따라서 자기를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을 보니 굉장합니다. 하나님이 택해 주었으니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대통령이 국무총리로 택해 주었어도 대단한 일인데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했습니다. 여러분이 천당 가려고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마음대로 갔는데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해서 여러분을 불러서 거듭나게 한 것입니다. 왕은 다스리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왕 같은 제사장이다. 왕은 다스리고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하나님이 여러분이 자연 만물을 다스릴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왕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 기이한 빛에 대한 증언을 시키려고 한다. 하나님의 크시고 위대하시고 그 영광스러운 광채를 사람들에게 알게 하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였단 것입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은 참 괴롭습니다. 민수기 13장 32절로 33절에 보면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을 보면 자기도 못살 뿐 아니라 남도 못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32절로 33절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자기 자화상을 메뚜기 자화상으로 보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자기가, 자기가 메뚜기 같으니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는 미워하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고 패배의식을 가진 자화상을 가지고 있고 무능한 사람이라는 자화상과 실패한 사람이라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니 항상 그러한 사람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 사람의 삶이 행복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요즘 여자가 남자와 더불어 외모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외모가 예쁘지 않으면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청소년의 자살 위험도를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외모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열등의식인 것입니다. 외모에 자신이 없고 자기 생활에 열등의식을 가진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청소년들이 제일 자살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도 외모나 학력, 경제력 등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데, 이런 부적절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조용기 목사 너는 너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 50대, 60대 까지는 자신이 있는데 70이 되니까 자신이 없어져요. 자신 좀 세울까 싶어서 행거치프도 이렇게 꼽아보고...” 길거리 걸어갈 때도 어깨를 착 펴고, 고개를 들고 그래야지 이렇게~ 이렇게~ 있으면 그렇지 않더라도 별로 보기 좋지 않은데 몸조차 그렇게 되면 안 되지 않냐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저에게 상담하는데 어떤 자매님이 와서 “목사님이 결정해주십시오” 뭐냐고 하니까, 그 부인은 60이 넘었고, 재혼하겠다는 남자는 70이 넘었는데 , 자기하고 데이트를 몇 번 했는데 이 양반이 자기 미모에 대한 자신감도 없고, 자기 가문에 대한 자신도 없고, 재산도 없고, 전부 없는 것 밖에 없습니다. (즉) “겸손해서 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 같이 하는데 나는 그런 걸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거든요? 당당하고 없으면 없다는 것을 그대로 말하고 그렇게 말하지 빙빙 돌아가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싫다고.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 하냐고요?” 글쎄, 내가 “그 사람이 여자 같으면 평론을 하겠지만, 남자를 남자가 평론하기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할 수 있으니까, 그 사람이 돈도 없고, 나이는 많고, 가문도 좋지 않고, 그럼 좋은 것 뭐가 있습니까?” “나 같은 훌륭한 여자를 발견했다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아 그럼 거기서 끝났지, 내가 상담할 일이 안된다고. 제가 안수를 해 보냈습니다. 하나님 자기를 발견하는 훌륭한 남편이, 남자가 있으니 지혜를 주어서 잘 판단해서 행복한 결혼을 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러고 손을 내리고 난 다음, 하나님 훌륭한 자화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시라고 마음속으로 기원을 했습니다. 2.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자화상 여러분, 왜 자화상이 중요하냐면, 자화상은 우리 생각을 지배합니다. 우리 행동은 생각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오늘 여러분 생각하는 것이 내일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오늘 생각한 것이 내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 속에서 생각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긍정적인 자화상이 그 자화상과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자화상은 자기에 대한 생각이니까 자기가 자화상이 어떤 것을 보고 있는 사람은 밖에 나가서 꼭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화상이 일치하는 삶의 행동이 나타나는데 우리는 마가복음 9장 23절에 보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제자들이 부정적인 말을 하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깜짝 놀라게 “뭐 어쩌고 어때? 그 말이라고 하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여러분 우리는 다 믿는 자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량대로 믿음을 주셔서 태어났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부자가 아닐지라도 영적으로 여러분 굉장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산을 옮기는 힘이 있는데, 여러분께서 믿음으로 기도하면 태산을 옮기는 능력이 배후에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 그저께 최자실 금식기도원에서 설교하는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니 그 믿음을 가지고서 비가 좀 오게 기도한번 해보자고, 정부에서 걱정을 하고 야단인데, 아 우리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린 우리 자신을 볼 때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요, 그러니 우리가 기도하면 비가 올 것이다.” 기도했더니 비가 왔어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깨에 힘 좀 넣고 살아야 되요. 보통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생각 안에 자화상이 뚜렷이 있으면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은 그에 일치되는 언어 행동을 나타냅니다. 모든 죄악의 문제가 그 자화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그 자화상이 행동에, 언어에 곧장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로 23절에 ‘너희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부정적인 생각 도덕적으로 어그러진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고 자화상이 그를 붙잡고 있으면 언어, 심사, 행동에 그다음 내일 전부 그대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온다고. 그러므로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환경에 어떠한 좋은 것을 갖다놓아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도소에 법률을 가르치고 음악을 교육해도 재범, 3범, 4범하는데 기독교 교도소에 거의 들어와서 마음에 변화를 받고 난 다음에 재범하는 퍼센테이지가 굉장히 낮은 것을 보았습니다. 3. 변화된 삶을 위하여 우리가 변화된 나의 삶을 가져오기 위하여는 내 스스로가 자화상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 믿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 굉장히 선한 일을 많이 합니다. 자화상을 따라서 그렇게 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나쁜 독한 사람이라고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가정에서도 나쁘고 생활에도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긍정적인 자화상을 의지하고 담대히 나가서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골리앗은 30대 대장부였습니다. 감당할 수가 없는 장군입니다. 주변 블레셋 군대들의 대장입니다. 다윗은 17살쯤 먹는 초립동입니다. 도저히 상대가 안돼요. 근데 다윗은 사울의 군복도 못 입습니다.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해서, 그런데 다윗은 자기 자화상을 세웠습니다. 그가 아버지 양을 칠 때, 곰이나 사자가 와서 새끼를 물고가면 달려들어서 새끼를 빼앗았고, 역습을 해오면 그가 주먹과 몽둥이를 들고서 범이나 범도, 사자도, 곰도 때려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안 죽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경험들이 거의 마음에 자화상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담대히 말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나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그 난 내 힘으로 안 나간다. 나는 엄청난 빽이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나간다.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사무엘상 17:45-47)’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담대하게 했습니다. 블레셋 군대 골리앗은 그 말을 듣고 앙천대소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도 그 이야기를 듣고 ‘쟤가 오해를 해도 크게 오해를 한다. 골리앗이 부엌에 쫓겨나온 개처럼 쫓겨나올 것 같으냐?’ 그러나 자기는 성공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너는 창과 칼과 단창으로 나아오거니와 나는 너희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야훼의 이름으로 나왔다.” 그래서 시냇가에 있는 물맷돌을 가지고서 골리앗을 보고 나갑니다. 물맷돌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군을 대항해 나가는데 그게 먹어 들어가겠느냐? 쉬익~ 정신 차릴 (틈)없이 팍~ 하더니만 요 미간을 때려서 돌이 머릿속에 들어가서 두뇌를 흐트러 버렸습니다. 요사이에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뇌수술을 해도 못살아납니다. 뇌가 절단이 났는데 무슨 수술을 해요? 다윗이 자기의 자화상을 의지하고 나와서 전쟁에 이긴 것입니다. 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여러분 자화상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잘 하는 자화상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못하는 것만 보지 말고 잘하는 것을 봐야 돼요. 다윗은 자기가 잘하는 것을 보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고, 그러고 말해야 돼요.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하면 된다. 나는 해보자!’ 여러분이 생각하고 믿고 말하는 것이 여러분의 자화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보고, 믿고, 말합니까? 그것을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된 것은 보고,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믿고,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므로 ‘능치 못하심이 없다. 나는 이 기근의 때에도 밥벌이 잘할 수 있고, 우리 사업도 잘 될 수 있다. 사업아 잘 될지어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화상의 문제란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자화상과 의와 거룩함을 얻은 영적인 자화상을 여러분 한번 들어보세요. 에베소서 1장 4절로 5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5:17)’ 이것을 따라서 여러분은 바라고 믿고 말하면 영적으로 여러분은 성공적인 자화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사야 53장 5절처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나니’ ‘요한3서 1장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이 우리가 건강하고 병에서 치료함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자화상으로 바라보고 믿고 말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13절로 15절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고 말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 자손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하게 하겠다 하셨으니 여러분 물질적으로 축복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자화상을 여러분 이 말씀에 의지해서 굳게 마음속에 가지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었다가도 부활하는 자화상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었다가 사는 능력을 여러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그것을 믿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한다. 예수님이 다 부활했으니 우리는 시간이 오면 죽음이 오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면 잘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수입이 많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행복함이 가득한 사람이 수입도 많다는 것입니다. 런던정경대학에서 연구팀이 15,000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금 행복한 아이들이 미래에 행복감이 높은 것은 물론 수입도 많더란 것입니다. 현재의 긍정적인 자화상이 미래의 수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행복한 사람이 대부분 더 낙관적이고 진취적이기 때문에, 학점이나 취업, 승진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화상은 우리의 행동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좋든 안 좋든 간에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는 것이 무척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마음에 그린 자화상을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믿고 행동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행복한 자화상을 품으십시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옛 아담의 혈통에 따라간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예수님께서 보혈로 씻고 성령으로 지으신 사람을 입고 자기를 바라볼 때, 놀라운 새 사람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거듭나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생활적으로 부요하고, 영원한 부활과 영생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 자신을 자화상으로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어야 되고, 그러고 여러분 자신을 인용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 거룩하고 성령 충만하다.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는 나음을 입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형통한 사람이다. 죽더라도 부활, 승천, 영생을 얻는다. 이 자화상을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해서 가지면 그 자화상을 마음속에서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말을 해야 그 말을 따라 역사하는 것이니까 여러분 스스로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적이 여기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십시오. “나는 내가 바라보고, 믿고, 말한 대로 된다. 긍정적인 자화상을 갖고, 부정적인 자화상을 갖지 말자.”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