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향한 행진
(왕하 7:3-8)

2015.11.22. 주일 4부예배

<서론>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의 희망인 것입니다. 희망이 있으면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뒤로 물러가지 않습니다. 오늘 저는 희망을 향한 행진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람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포위 공격함으로, 이스라엘은 사마리아 성이 포위당하고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이 굶주림이 극도에 달하고 또 굶어죽는 사람도 비일비재하게 생겨났습니다. 열왕기하 6장 26절로 29절에 보면, 이스라엘 수도성인 것입니다. 완전히 아람군대에 포위되어서 굶은 지가 오래됩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민심을 시찰하고 성 위에 걸어가는데 성 밑에서 바짓가랑이 속이 환히 들여다보인단 말입니다. 보니까 얼마나 답답하던지 부드러운 내복도 입지 않고 난 다음 아주 거친 삼베옷을 초상 치른 사람같이 입고서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뛰어나와서 왕 앞에 엎드려 절하고 “임금님, 우리 이웃 간의 문제가 생겼는데 임금님께서 해결해주십시오.” 임금님이 “내가 어떻게 해결하느냐? 내가 하나님이냐? 너희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나는 이 가뭄을 만나 원수들의 포위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타작마당에 곡식이 있느냐? 포도즙 틀에 포도주가 있느냐? 그러나 무슨 일이냐? 무엇이 답답하냐?” 그러니 그 여인이 하는 말이 “우리 이웃집하고 배가 너무 고파서 오늘은 내 집 자식을 삶아먹고, 내일은 저 집 아들을 삶아먹기로 약속을 해서 내 아들은 벌써 잡아서 삶아먹었습니다.” 환장을 했지. 정상적인 마음으로 자기 아들을 잡아서 어떻게 삶아먹습니까?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돌아버렸어요. “그리고 오늘 약속한대로 이웃집 자식을 삶아먹으려고 했는데 애를 숨겨버리고 데리고 나오지 않습니다. 임금님 판단해 주십시오.” 임금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습니다. 옷을 쫙 찢었습니다. 원한이 지고 해결하지 못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옷을 잘 찢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을 닮아가지고서 아무 단추를 끼워놓은 것 열려지지 아니하면 찢어버리면 됩니다. ‘단추 니가 뭐라고 붙어서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노?’ 쫙 찢어버리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요한 안건이 생겨서 해결이 안 되면 그것 가지고서 고통 할 필요 없이 그냥 아무 옷이고 찢어버리는 것입니다.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좋은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본론>
1. 네 나병환자들의 선택
문둥 환자들이 왜 문둥이 되었느냐? 저는 옛날 어릴 때 경상남도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거기에는 나병환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갈 때 애들이 그룹을 지어서 가는 것은 한센(씨) 병에 걸린 사람들이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학교 가는 애들 잡아서 간을 빼 먹는다 그래요. 그래서 일찍이 수업을 마치면 상급생들이 공부 끝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됩니다. 간 안 빼먹힐라면. 정말로 간을 빼먹는지 아닌지는 그때는 알 수가 없지요. 나병에 걸리면 감각이 없어집니다. 감각이 없어져서 손가락도 그냥 떨어져나가도 떨어져나가는걸 모르고 불에 구워먹을 수도 있어요. 코도 허물어져 나가버리고, 손가락도, 입술도 문드러져 나가고. 정말 보기가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일어난 이스라엘에도 문둥병 환자가 있었어요. 네 사람의 문둥병 환자가 너무 배가 고프니까 성에 들어와 보려고 보니 성안에서도 굶주림이 심해서 굶어죽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 사람이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들은 육신도 나병이 걸려서 세포가 활동하지 않고 떨어져 나가고 배는 고프고 앞날이 캄캄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 의논을 하는 것입니다. 성내로 들어가면 굶주림이 성안에 있는데 더구나 우리는 문둥병 환자니 부정해서 사람들에게 나갈 수도 없는 처지에 굶어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가 올 데 갈 데 없으면 아람진(영)으로 가자. 거기는 적군이 창칼을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먹을 것도 있다. 그들이 우리를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는다. 희망이 전혀 끊어지지 않고 희망의 길이 한 곳에 보인다. 동쪽을 봐도 희망이 없고, 서쪽이 봐도 희망이 없고, 남쪽을 봐도 희망이 없고, 북쪽을 봐도 희망이 없을 때는, 하늘 쪽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위대하고 훌륭한 것은 희망이 없을 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갈보리 십자가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방으로 욱여싸임을 당하여도, 나갈 데 없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사람들은 환영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당해서 어디 가서 의지할 수 있습니까? 그때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엎드려 하늘을 쳐다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위대한 점은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지고, 건강도 잃어버리고, 환경도 억세게 고통스러운 곳에 처하게 될 때, 동쪽을 바라봐 희망이 없고, 서쪽, 남쪽, 북쪽 바라봐도 희망이 없어요. 그때는 하늘을 바라보라. 아유~ 그런 시시한 소리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 해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인도를 통해서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약 300만 되는 동포를 모세가 거느리고 가나안 땅을 향해서 전진해 나가는데 그들(앞에) 홍해수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창일한 홍해수가 가로막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고센 땅을 떠나 나오니까 애굽의 임금이 그 소식을 듣고 무임노동을 가지고 우리가 일을 이 사람들에게 시켜서 돈도 벌고 잘 살았는데 이 일꾼들을 잃어버리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느냐? 도로 잡으러 가자. 그래서 백만 대군이 창검을 다 갖고 이스라엘을 공격해 옵니다. 자 동서사방을 봐도 애굽 군대가 포위해오고. 그리고 더구나 홍해수가 앞에 막혔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치고 울고, “모세야, 애굽에 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에 데리고 나와서 죽이려고 하느냐? 봐라. 동서사방에 군대들 군인들이 우리를 둘러 진 쳤지만 우리는 군사 한 명도 없지 않느냐? 저 홍해수를 어떻게 하느냐?” 동서사방을 3차원적으로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절망입니다. 그러나 오직 거기에서 희망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모세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너희는 오늘 가만히 있어 하늘을 쳐다보아라. 너희들이 본 애굽 사람은 오늘 이후에는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홍해수가에 전부다 건너갈 준비를 하라. 홍해의 물이 갈라질 것이다.” 꿈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모세 혼자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절망입니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홍해수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지에 물 한 방울 적시지도 아니하고 그곳을 건너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여러분 도우시면 먼저 마음속에 꿈을 주시고 꿈을 받은 그 사람 가슴에서 하나님이 그 꿈을 통해서 일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꿈을 하나님이 심어주시고 그 일이 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도 하나님입니다. 요셉 보십시오. 열 한 형제는 꿈을 안 꾸었는데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주신 이후에 그 꿈을 하나님이 붙잡고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여, 어디에 가야되고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꿈을 주십니다. 안 주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을지도 모릅니다. 빌립보서 2장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망을 두고 행하게 하신지라. 우리 안에서 하나님은 행하시는데 어떻게 행하시느냐? 우리에게 소망을 먼저 주고 소망이 바로 꿈입니다. 꿈을 주고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일을, 조용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끝났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게 되면 뒤를 자꾸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살펴보면 저가 한 일이 없어요. 하나님이 꿈을 늘 주셨습니다. 제일 처음 꿈을 받았을 때는, 얼토당토 안하겠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꿈을 주셔서 기도하면 그 꿈이 마음속에 탑니다. 그 꿈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의도에 오면 교통이 잘 정비되고 건물들이 이렇게 고층건물이 많고 도시가 화려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제가 여기 나올 때는 광야였습니다. 여기에 집 한 채도 없고, 모래벌판이고, 삭막하기 짝이 없어요. 모두다 여의도를 보고서 정부가 쓸데없는 짓을 해서 저 섬을 개발하려고 한다고 비웃었습니다. 저는 여의도로 나올 때 사람들마다 다 3차원의 세계인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이제 조용기 망하려고 환장을 했다. 어떻게 저기 나가노?’ 저는 동도 서도 남도 북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었습니다. 저 중간 즈음에 매일 같이 제가 꿇어앉아 이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의 가슴에 품은 꿈을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꿈은 하나님이 자꾸 주시는 것입니다. 대학을 설립하라고 하셨고, 그것도 꿈같은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니까 기도하니까 내 가슴에 있던 꿈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셨다. 기독교신문을 창간하라고 그래요. 그것도 또 꿈같은 소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마음을 이끌어서 그것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북한의 어린이를 위한 종합병원을 세워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꿈을 주셔서 꿈을 믿은 결과에 지금 건물은 내부건물은 다 이루었습니다만 기계는 도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좀 남북이 대화가 돼야 되는데 서로 대결되니까 안 되겠다 싶은데 지금 보니까 남북 대화를 하자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여기에 비행기를 차~타 해서 타고 또 올라갈 것입니다. 그 때 나하고 같이 가십시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선택할 것이냐 절망을 선택할 것이냐? 절망을 선택하면 버림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버립니다. 희망을 선택하면 가장 비참한 존재라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 문둥이는 얼마나 절망인 것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희망이 있는 데를 향해서 전진해나가자. 희망을 향해서 나가자.

2. 엘리사의 예언
그러고 성 안에서는 사람들이 다 울고 가슴치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자기 의지하는 요사이 국무총리쯤 되는 사람에게 엘리사가 지금도 살아 있으면 목을 쳐라. 하나님의 종이 있으면서도 아람군대를 물리치지 못하니 이런 일이 있느냐? 그러니까 그 장관이 일어나서 군인들 몇 사람을 데리고 엘리사의 목을 치기 위해서 엘리사가 있는 곳에 가는데 그는 절망주의적인 사람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절망을 이루려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오기 전에 엘리사가 앉아있고 주위의 유대인들이 둘러앉았는데 “너희들 조금만 있으면 저 살인자의 자식, 임금이 내 목을 치기 위해서 군인들을 보낼 것이다.” “아이고, 늘 자기들과 같이 방 안에 앉아서 밖의 소식을 어떻게 듣는가?” “하나님 성령께서 알려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자 이미 대문밖에 온 임금의 사자들이 “문 열어라.” 문 열어주니까 “임금님이 엘리사의 목을 치라고 했다. 여기 엘리사 대령해서 칼을 받아라.” 그러니 엘리사가 보고 말했습니다. “너희 임금에게 이야기 하라. 내일 이맘때면 밀가루와 보리가 이건 거름 값에 불과하게 팔릴 것이다. 태산같이 밀가루와 보리가 나타날 것이다. 내일 기다려보고 목을 베든지 하라.” 그러니까 그들을 지휘해서 데리고 온 장관은 엘리사를 보고 허허허~ 웃으면서, “하나님이 하늘의 창문을 열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왜 그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지 않으니까, 땅만 쳐다 바라보았으니까. 그러니 엘리사가 심판을 했습니다. “당신은 그 곡식더미를 눈으로 보기는 보아도 먹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 그들을 밀어내버렸었습니다.

3. 희망을 향한 행진
그런데 그 밤에 희한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뭐냐면, 이 문둥이 네 사람이 이제는 아람군대를 향해서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해)저녁에 이 사람들이 희망을 향해서 행진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그래(서) 네 사람의 문둥이가 더구나 굶었으니까 기운도 없지요. 스크람을 짜고서 걸어가는데 한사람이 넘어지면 다 따라서 넘어집니다. 와르르르. 넘어지면 백만 대군의 습격해 들어오는 공격하는 소리와 같습니다. 문둥이들의 행진 소리가 애굽의 전차군단을 이스라엘이 돈을 주고 사서 가져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넘어지면 서로 격려해서 일으키는 소리가 백만 대군이 움직이는 소리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애굽 군인들 이외 그 지역의 군사 동맹을 맺은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서 공격해온다고 두려워하게 성령께서 역사한 것입니다. 그들은 네 사람의 문둥이가 움직이는 그것에 하나님께서 마이크를 달아놓으니까 이 문둥이들이 하는 말이 다 백 만, 천만 군인들이 고함치는 소리로 들리게 되어서 하나가 ‘우리 포위되었다. 이제 우리 다 죽는다. 우리 달아나자.’ 공포란 전파심이 강합니다. 한 사람이 무서워 떠니까 그 공포심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 일제히 다 도망을 쳤습니다.

<결론>
아주 밥을 다 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고 국그릇도 그만 그대로 두고 반찬도 그래도 맛있는 것 그만 두고 달아나기 시작하는데 아람군대가 한사람도 남김없이 다 도망을 쳤습니다. 아 문둥이들이 군대 막사에 와보니까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에라 내일 죽을지라도 먹고 죽자.’고 들어가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먹고 금은보화도 감춰놓은 것 자기들이 전부다 스스로 감추고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느냐고. 할 때 그 동료 중에 우리가 이렇게 좋은 날을 맞이했는데 임금님에게 가서 빨리 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내일 낮 시(간)쯤 되면 우리는 몽둥이에 맞아죽을 것이다. 빨리 가서 연락하자. 그래서 그들이 성으로 가서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임금은 아람군대가 우리를 꾀어내는 수단으로 피했다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한번 와서 조사를 해보라고. 조사를 해보니까 요단강 건너까지 군기가 다 흐트러져 있고 옷이 내버려져 있고 급히 달아난다고 내버린 것이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굶주린 사마리아 성에 향해서 ‘여러분, 얼마간 여기 적군의 포위 진지에 가니 다 달아나고 없더라.’ 이 사람들이 배가 고픈 김에 서로 나가려고 막 밀고 댕기고 하는데 그 왕이 의지하는 총리되는 사람이 문간에 서서 군중을 컨트롤을 하니까 배고픈 군중이 뭐가 보입니까? 멱살을 잡고 밀어젖히니까 나가는 문을 막고 들어서니까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짓밟아서 그 많은 곡식을 눈으로 보고는 먹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특별히 보여주시는 것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쳐했을지라도 위를 바라보고 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건강을 가진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고, 문둥병이 걸려서 사지백체가 썩어 문드러져가는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 하나님. 여러분 누구든지 마음속에 전혀 소망이 없는 사람이 없지요. 전혀 소망이 없으면 그분은 이 세상에서 끝장난 것입니다. 큰 소망은 큰 꿈이 되고 적은 소망은 적은 꿈이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꿈을 가지고 있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꿈은 하나님이 크게 응답하시고 적은 꿈은 적게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할 때, 희한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옛날에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모아서 천당복음을 증거하고 있으니까 제가 천막교회 전도사 시절에 하루는 눈 먼 아주머니가 아들딸을 붙잡고 거의 남루하기 짝이 없는 거지 몰골로 천막교회에 찾아왔습니다. 전도사님 좀 만나게 해달라고 해서 내가 전도사라고 하니까 내 앞에 서서, “나는 애 둘 데리고 살 길이 막막하니 살 길을 좀 열어주십시오.” 그래서 “아이고 아주머니 여기는 살 길을 열어주는 곳이 아니고 천당가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있는 천막교회입니다.” “압니다. 내가 양식동냥을 하다가 사람들이 이 천막교회 가면 있는 것을 준다고 해서 왔습니다.” 아, 나보고 살 길을 열어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먼 살길은 못 열어주어도 짧은 살길은 우리 먹는 것 같이 나누어 먹고 한번 열어봅시다.’ 그래서 우리 저녁 먹는데 같이 나누어서 먹었습니다. 내가 “어찌하다가 남편하고 사별을 했습니까?” “사별한 것 아닙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눈을 못 보았으니까 혼자서 눈감고 사는 것보다 남자만 있으면 든든한 사람 의지하고 살면 잘 살겠다고 생각이 되어서 누가 중신을 해주기 때문에 그 남자하고 살았는데 애를 둘이 낳고 조금 우리가 살만하게 되니까 다른 여자와 도망을 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꼬락서니가 되었는데 좀 나를 살려주십시오.” 눈은 안 보이고 애들과 같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게 되니까 천막교회에 찾아와서 자꾸 간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딱한 사정에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예배에 참석하게 했는데, 어느 날 제가 설교를 하는데 그 부인에게 딱 맞는 설교를 했었습니다. 무슨 설교를 했냐면, 성경에 장님이 주님에게 나왔을 때, 주님께서 침을 뱉어 진흙에 섞어서 눈에 발라주고서 ‘실로암 샘물에 가서 씻으라 그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실로암에 가서 씻고 난 다음에 눈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제가 목사들은 비유의 설교를 잘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 눈에 아무리 맹인이 되어있을지라도 여기에 예수님께서 오시면 여의도에 진흙이 많으니까 여의도의 진흙을 가지고서 눈에 바르면 바로 한강수가 있어서 바로 한강물에 가서 씻어서 눈을 뜰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별 걱정을 안 하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아 이 부인 혼자 ‘할렐루야!’ 아요~ 설교 하는 중간에 “전도사님,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눈을 못보고 태어났으니 이제 나도 눈 뜨게 되겠는데요?” 어 다른 사람들 다 ‘저 조 목사 조 전도사 괜한 이야기 해가지고서 이제 고통 당하게 되었다.’ 어 나도 대답할 길이 없어서 안 된다는 말은 못하고 “글쎄, 성경에 그렇게 된다고 기록해 놓았었어요.” 예배를 빨리 마쳐버리고 빨리 집으로 (확)돌아가라고 보냈는데 그 다음날부터는 철야기도 때도, 새벽기도 때도 와서 늘 부르짖는 것이 “하나님 내 눈도 보여주시옵소서. 당신의 종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침을 땅에 뱉어 진흙으로 내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샘에 가서 씻으면 눈을 본다고 했는데 내 눈도 그렇게 해서 띄워 주시옵소서.” 그래서 “자매님 자꾸 그 기도만 하지 말고 다른 기도도 하십시오.” “아니 이 눈만 뜨이면 내가 어떻게 해도 애들 둘을 먹이고 기르고 교육시키겠는데 눈이 안 보이니까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주님께서 꼭 해줄 줄 믿습니다.” 아 그런데 하루는 교회 오니까 아유~ 깡충깡충 막 뛰어와. “아유 전도사님~” 그 왜 그러냐고 하니까 “엊저녁에 나도 꿈을 꾸었어요.” “무슨 꿈을 꾸었는데?” “머리가 긴 어떤 청년이 내게 오더니만 내 눈에 여의도 진흙으로 바르고 난 다음 한강수에 가서 씻어보라고...” 그래서 “아주머니가 내 이야기를 자꾸 들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꿈으로 표현됐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꿈에 한강에 가서 눈을 씻으니까 눈이 보이는데 파란 하늘이 보이고 푸른 나무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 이 딸에게 하나님 은혜를 주셔서 진짜로 눈이 뜨이게 해 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소망을 버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아멘. 그러니까 고개를 들더니만 나를 이렇게 봐요. 그래서 “왜 그렇게 보냐?”고 하니까. “보이는데요?” 아 내 코도 보이고, 이마도 보이고, 천막도 보이고, 눈을 완전히 고쳤습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래서 그 하는 말이 “내 눈을 뜨게 한 하나님이면 무얼 못하겠습니까?” 내가 간이 철렁 앉는 게 또 무슨 소리를 할지 몰라서 그러니까 “내 신랑이 나를 버리고 갔지만 내 이제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기도해서 신랑이 돌아오게 기도를 하겠습니다.” 그래 아 그건 기도할만하다고 기도하라고. 그러니까 이젠 눈 보게 해달라는 기도 대신에 하나님 신랑 보내주십시오. 신랑을 도로 찾게 도와주시옵소서. 그 신랑이 소문을 듣고 그때는 결혼도 이혼도 문서적으로 한 적이 없으니까 떠나가면 안 신랑이고, 오면 신랑이고. 그런데 아~ 자꾸 기도하더니만 그다음 내 눈에 환합니다. 깡충깡충 뛰길 좋아하니까. 깡충깡충 뛰면서 와서 “왔어요 왔어요!” 그 신랑이 왔다 그래요. 신랑이 왔으니 어떻겠습니까? “아이고~ 내가 눈이 어두울 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결혼했는데 이제 날 찾아왔는데 내가 보니, 세상에 소도둑놈도 그런 도둑놈이 없습니다.” 못나고 무섭게 생긴 남자가 와서 자기가 신랑이라고 하는데, 아이고 차라리 신랑 오라고 기도 안하는 것이 좋을 뻔 했다고. 그러나 여러분 보십시오. 이 여인이 그 처절한 절망 가운데도 희망을 가지고 나가니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희망을 저버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아요. 그러나 땅에 있는 희망이 다 없어지면 하늘을 쳐다보면 최후의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죄인이 용서받아 의롭게 될 희망이, 거룩한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충만을 받을 희망이 있고, 채찍에 맞으므로 병이 나을 희망이 있고,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희망이 있고, 죽는 사람에게는 사망과 음부를 극복하고 부활 영생 천국을 얻는 희망이 있습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깨닫고 새로운 생각을 얻을 희망이 있고, 꿈을 꿀 희망이 있고, 믿음으로 살 희망이 있고 하나님과 동행할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희망을 저버린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안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부어주시고 난 다음 희망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도 이 자리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여러분에게 희망을 주셨고 지금 희망을 주고 계십니다. 그 희망을 갖고 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서 희망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갈보리 십자가가 있는 이상 절망 없습니다. 어떠한 일에도 십자가 밑에 나아가면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절망을 다 주님께서 내려버리신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저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도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내가 다 이루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오늘 여러분 원수가 아람군대처럼 여러분을 둘러싸도 여러분의 형편이 네 사람의 문둥이 병처럼 처참한 지경에 있을지라도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을 쳐다보면 여러분은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