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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물로 변한 마라의 쓴물 (출 15:22-25) 2015.12.20. 주일4부예배 <서론> “단물로 변한 마라의 쓴물”에 관한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르광야에 이르러 물을 얻고자 하되, 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삼백여 명 되는 사람들이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물을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가 조그마한 호수를 발견했는데, 앞뒤를 다투어 물에 뛰어들어서 마시니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독이 있는 물이었어요. 사람들이 물을 마시고는 뒹굴고, 토하고, 그 다음 “모세야, 우릴 죽이려고 여길 끌고 나오느냐.” 원망이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셨어요. 그래서 그 나무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그들이 배가 부르도록 물을 마시고 원망이 사라졌습니다. 언젠가 제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아주 또렷하게 말씀을 주십니다. 뭐라고 하시냐면 하나님이 ‘너 무병장수를 원한다고 했지?’, ‘그럼요. 그래서 비타민도 많이 먹고 물도 많이 마십니다.’, ‘그런데 건강하고 장수하려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단다.’, ‘아이고 하나님, 그게 무엇입니까? 제가 가르쳐 주십시오.’, ‘너 성경에 읽어 보았지? 마음에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에 근심은 뼈로 썩게 하느니라. 뼈가 썩는데 비타민 아무리 먹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아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내가 뭐 대답할 것이 없어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마음의 평안을 지키는 것은 자기가 지켜야지 마음의 평안을 다른 사람이 지켜주는 것 봤니? 산 사람들이 병들어서 죽어가면서도 다른 사람이 살려줄 줄 아는데, 큰 오해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미움과 원망과 우울과 낙심 등 여러 가지 쓴물을 마시고 그 때문에 마음에 고통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지키지 아니하고 비타민만 찾다가 죽어간다고. 그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난 다음 저의 비타민 병은 비지가 않습니다. 내가 비타민을 먹으려고 손을 내밀면 ‘또 비타민이야?’ 그 소리가 내 마음속에 들립니다. 물론 비타민도 다 우리 건강을 위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먹지 말라는 말은 절대 안합니다. 저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거들랑 결정을 내리신다면은. 그러나 역시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비타민을 먹으라는 겁니다. 마음의 평안이 없이 아무리 비타민을 먹고 물을 동이동이로 마셔도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론> 1. 세상에서 겪는 시련 우리 인생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시련은 이 세상에 살면서 쓴물을 많이 마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광야에 와서 그냥 쓴 연못물을 못 마시고 발버둥을 치는 것만 생각 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 매일같이 쓴 연못을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죄악의 쓴 연못의 시련이 있습니다. 로마서 3장 9에 보면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매일매일 죄를 짓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의 쓴 연못물을 마시고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고 살까?’ 늘 궁리하고 있습니다. 또 허물의 쓴 물을 마시는 시련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고 허물은 자기 생애(생활) 속에 주어진 습관인 것입니다. 언어 심사, 행동 부정적인 감정 이런 것이 자기를 괴롭히고 이웃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데이빗 폴레이씨는 ‘3초간’이라는 책에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한 마음을 쓰레기차에 비유한 것입니다. 쓰레기차는 쓰레기 운전수가 골목골목으로 다니면서 “쓰레기차요~쓰레기차요~” 그러면 와서 쓰레기를 전부 던져서 쓰레기가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 미국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합니다. 그러면 이 쓰레기를 운전해가다가 쓰레기를 치울만한 움푹한 곳이 있으면 앞뒤를 살펴보고, 교통순경이 없는 것을 발견하면 가서 쏴~ 다 부어버리고 문 닫고 그냥 달려와 버립니다. 그래서 종종 길거리에 플랜카드가 걸립니다. ‘쓰레기 내버리는 것 발견해서 보고하면 상금을 준다.’ 그러나 쓰레기차에 쓰레기를 잔뜩 실은 운전수는 용하게도 쓰레기를 버릴 움푹한 곳만 있으면 쓰레기를 거기다 내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이지만은 우리 인생을 살면서 쓰레기차를 만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쓰레기차라고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원망, 불평, 탄식, 온갖 고통이 꽉 쓰레기로 채워있는데 어디 갖다가 퍼 붓습니까? 부인의 가슴에 쓰레기가 꽉 들어찼으면 남편이 와서 조금만 작은 흠집만 보이면 남편에게 막 쏟아 부어요. 남편이 쓰레기더미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세상에 일하다가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불안, 초조, 절망, 괴로움이 꽉 차 있는데 부인이 와서 몇 마디 말하면 남편이 쓰레기차를 거기에 부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친구들이라도 잘 봐서 마음이 고통스럽지 않은 친구를 만나야지 어디 가서 좀 잘못된 이를 만나고 마음이 고통스러운 친구를 만나면 가득히 마음속에 담아있던 쓰레기를 친구에게 다 퍼부어버리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가득하면 누가 조금만 기분을 상하게 해도 마음에 쌓인 분노가 쓰레기차처럼 쏟아 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쓰레기가 쌓아지지 않도록 평소에 마음을 잘 청소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켜서 깨끗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깨끗하게 인간의 힘으로 안 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쓴물을 달게 만들 수 없어서 마시고 부르짖은 거와 같습니다. 우리 사람들도 마음속에 쓰레기가 확(꽉) 차이면 이 쓰레기를 어떻게 정리할 수 없습니다. 달게 만들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쓰레기를 버리면 아무리 버려도 쓰레기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고통을 통해서 파놓은 웅덩이는 얼마나 깊은지 여러분이 쓰레기를 아무리 갖다 부어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밑에 가서 쓰레기를 부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환경에 가서 쓰레기를 부어 놓으면 고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통하지 않고는 달게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세가 쓴물에 나뭇가지를 던지자 물이 달아진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갈보리 십자가를 던져 넣으면 쓴물이 모두 다 단 것으로 변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질병의 쓴물이 있습니다. 죄의 쓴물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 좋지 못한 성격을 가진 것도 더러운 쓰레기지만은 우리 질병에서 쓴물이 있습니다. 모두 다 병들어서 괴로워하여 그 쓴물을 마시고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인생을 살겠습니까? 시편 31편 10절에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해지며 나의 뼈가 썩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말이 자꾸 좀 빗나가는 건 용서를 해 주십시오. 이빨을 세 개 뽑았더니만 글이, 말이 빠지려고 하고 그걸 제가 막아가면서 설교하려니깐 혀가 잘못 도는 것입니다. 치료의 질병의 쓴물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 교회 이영자 권사님. 강서대교구에 나오시는데 1982년 30대 초반에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려서 얼마나 아픈지 날마다 집안에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8살, 6살, 4살 된 세 자녀의 어머니였는데 병이 점점 심해져서 밥도 못 짓고, 혼자서 눕거나 앉지도 못하는 지경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아예) 무당을 전속으로 불러다가 두들거려도 둥당 소리만 났지 조금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역장님이 참 중요한 것을 했습니다. 그 집 이웃에 구역장이 있는데 가만 보니 둥당거리고 무당이 뭇구리를 하고 춤을 추고 야단인데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부인이 조금도 낫지 않고 있거든요. 그래 “내가 병 고침이 진짜로 있는데 데리고 갈 테니까 따라가자고. 교회가자고.” 그래가 매 주일마다 택시를 불러서 그 부인을 태워가지고서 우리 교회 와서 예배를 보게 하고, 그다음 집에 데려다 주고, 그렇게 4주간 동안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맡기는데, 마음이 편안해지니 4주가 지나고 난 다음에 아침에 일어나자고 하는데 몸이 하나도 안 아파요. 그래 서 보니깐 두발로 설 수 있거든. 부엌에 나가서 밥을 지을 수가 있어!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관절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치료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니까 하나님이 고쳐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치료의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눈에 안 보여도 4차원의 영성의 실제 약인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도다’하면 그 말씀자체가 영적인 비상한 약인 것입니다. 카터 대통령을 보십시오. 의사가 넉 달을 못 산다고 선언했습니다. 암이 머리 골수까지 사무쳐서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근데 카터 대통령은 신앙이 독실한 분입니다. 주일학교 교사 노릇을 하는데, 주일학교 교사 노릇을 못하게 하는 다른 스케줄이 들어가면 다른 스케줄을 다 버리고 주일학교를 가르칩니다. 그래 의사가 넉 달밖에 못 산다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카터는 주일학교 나가서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웠습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고 했었으니 이 말씀을 하나님 제가 믿습니다. 이 말씀을 영적으로 먹습니다. 주님이 나를 고쳐주시옵소서.” 그런데 안 죽고 넉 달이 지나도 살아있어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조사를 하니까는 암이 온데간데없어요. 좌우간 미국이 발칵 뒤집어 졌습니다. 조용기가 나았다면 안 뒤집어졌을지도 모르지만 대통령이 한 분이 뒤집어지도록 나았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 주님께서 ‘나는 너의 병을 치료하는 야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주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우리가 당하는 쓴물은 저주의 쓴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저주는 모든 면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와 안 되는 것이 저주라고 합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보면 ‘아담에게 이르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참 비참한 심판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쓴물을 다 마십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그랬어요.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아담과 하와 때문에 모두 다 죽는다고요. 그런데 이 저주의 쓴물을 어떻게 한 것입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셔서 3일 만에 부활하시므로 사망을 멸하고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죽음도 우리 겁날 것이 없습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에서 야훼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셨다(출애굽기15장25절)’고 하셨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하고 아무 조건 없이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죄 사함을 받고, 예수를 믿어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예수를 믿어서 질병의 고침을 받고, 예수를 믿어서 죽음의 고통을 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네가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하면 겁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제도가 얼마나 많으니 그걸 어떻게 다 지키냐? 그렇게 겁낼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지 다른 것은 절대로 조건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축복을 받으려면 조금 다르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법도와 율례를 지켜야 한다. 법도라는 것은 율례와 도덕성을 따라서 사는데 구약에 있는 십계명이 여러분이 지켜야 할 덕목인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와서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하니까는 “계명을 지켜라.” 그러니까 “나는 계명을 다 지키고 있습니다.”하니까는 “잘했다. 너는 부자니까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그는 부자라서 그 이야기에 낙심을 하고 갔다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율례와 도덕을 지키고, 주일날 성수주일하고, 십일조 바치고, 불쌍한 사람을 돌봐주는 이런 평범한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들을 하면 하나님은 거기에 따라서 응답을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아침에도 편지 한 통을 읽고서 여러분 앞에 섭니다. 그 편지에는 집을 내놓았는데 아무래도 집이 안 팔려요. ‘하나님 제발 집 좀 팔아주세요.’ 그러니까는 마음속에 ‘십일조도 안 내면서 무슨 집을 팔아?’ 아 그래 음성이 들려오더래요. 실제로 십일조도 안 내고, 구원은 받았어도 십일조는 안 내고 집만 팔라고 했는데 당장 돈을 마련해서 집이 팔리면 나올 십일조를 교회 와서 바쳤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십일조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으신 그저 영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미래의 것을 미리 나는 영원하신 하나님께 바칩니다. 여ㅤㄱㅣㅆ습니다.’ 그랬는데 일주일 만에 집이 팔렸어요. 그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람에게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될지 생각하니까 ‘조용기 목사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되겠다.’ 그래서 ‘하나님 응답을 받았다.’ 그 뒤에 교훈을 붙였는데, ‘여러분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으려거든 십일조부터 내고 기도하라.’ 그러므로 구원은 절대로 믿음으로 구원받지만은 축복은 법도와 율례를 지켜서 하나님의 기쁘심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니라’ 그러므로 병이 겁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병을 고치는 야훼로서 우리 병을 능히 고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원하시는 윤리와 도덕을 시행하고 하나님 섬기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으로 모든 죄를 사하고 모든 병을 고치고 너의 생활을 저주에서 건져주시는 좋은 하나님을 잊지 말고 감사를 하라. 하나님은 하나님 율례만 지키고 순종하면 이 좋은 하나님이 이 좋은 일을 너희들에게 다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생활은 정말 큰 축복인 것입니다. 3. 교회가 주는 오아시스 교회가 이 세상에 있는 목적이 무언지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교훈을 듣고 난 다음에 얼마 안 가니까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있는 엘림 오아시스를 맞이한 것입니다. 사막은 굉장히 불볕처럼 태양이 비추고, 목이 마르고, 물이 없는 곳이라 어려운데 오아시스를 만나면 그거는 완전히 천국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르광야를 지나가는데 거기에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도록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안식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천막을 치고 기운을 회복하고 가죽부대에 물을 동이동이 채워서 사막을 지나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지나는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죄악의 애굽 세상에서 나와서 이 죄악의 사막길인 인생길을 지나서 하나님의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비유로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오늘 예수를 믿고 사는 우리는 우리도 피곤하고 고달프고 괴롭고 슬플 때가 많은데 어디에 오아시스가 있겠습니까. 바로 여러분이 앉아계신 교회가 오아시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만드시고 그곳에 불러 모으시는 것은 세상에 수고하고, 고달프고, 피곤하고, 좌절되고, 절망된 사람(이) 교회에 와서 그 말씀을 듣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고 용기와 힘을 얻어 다시 걸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 샘 열둘은 열두 지파 아닙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하나님 종려 70그루는 제자들 수가 70이었어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곳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교회는 정부가 만들어준 것도 아니고, 사탄이 만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이곳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밑에 엎드리면 성령의 단비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9절에 보면 ‘그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께서 교회가 바로 당신의 몸인 것을 선언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어 몸 찢고 피 흘리면 그 자리가 오아시스다. 그 자리에 와서 영혼이 잘되고, 그 자리에 와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므로 범사에 잘되고, 그 자리에 치료받은 강건함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잊지 말라.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고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너의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는 것이 교회다! 이것이 오아시스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는 그 과정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광야를 지나 천당에 들어가는 코스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아 홍해수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고, 나와서 수르광야에 들어가서 쓴물도 단물이 되고,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리고 오아시스에 들어와서 새 기운을 얻고서 나갈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 여러 가지 시련과 어려움을 당했으나 하나님이 함께 계셔 그 모든 문제해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문제에 해답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앉아 계신 이 교회가 해답인 것입니다. 왜냐면 이곳이 오아시스이기 때문에 샘물과 같이 성령이 폭포수로 넘쳐흐르는데 성령이 여러분에게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주셔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보혜사가 되셔서 우리의 문제에 해답을 주시고 여러분이 기도해서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평안! 불안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평안을 마음에 얻었으면 그걸 가지고서 나가면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엘림 동산은 광야에서 만난 오아시스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 언제나 엘림과 같은 오아시스를 만나고 그 교회에서 여러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까지 가는 동안에 즐겁고 평안하게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