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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마 11:28-30) 2016.01.31 주일4부 <서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다 예외 없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며 삽니다. 죄의 무거운 짐, 허물의 수고로운 짐, 심신의 질병과 아픔, 가난과 굶주림의 슬픔, 죽음과 무의 절망. 끝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고 땀을 흘리며 우리가 사는 것은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 때문인 것입니다. 1. 수고하고 무거운 짐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의 제일 첫째가 무엇인가? 죄와 허물의 짐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짐치고 죄와 허물의 짐만큼 마음에 스트레스를 가하는 것이 없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우린 자기는 아무 죄 없어도 유전 때문에 어머니가 죄 중에 자기를 잉태하고 죄 중에서 낳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2절에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게 하심이라’ 죄가 사람 사이에 갈라놓고 기도를 응답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수치로 환산해본 연구결과가 있는데, 배우자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스트레스를 100으로 치면, 이혼했을 때가 73이고, 자신이 사고를 당했을 때 53이고, 실직하면 47이고, 가까운 친구의 죽음 37이고, 자녀의 가출은 30이고, 직장상사와의 갈등은 23이고,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경에는 죄가 스트레스의 주범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100으로 잡을 때 100 이상이 죄라는 것입니다. 잠언 28장 1절에는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마음이 담대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나면 두 가지의 현상이 생깁니다. 첫째는, 죄에 따른 형벌이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마음에 있습니다. 둘째는 한번 죄를 짓고 나면 그 죄가 마음과 영혼을 오염시켜서 또 다른 죄를 짓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벗어날 수가 없어 계속 죄를 짓게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죄인에게는 산다는 그 자체가 힘들고 버거운 일이다.” 맞습니다. 죄로 인한 정죄의 괴로움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삶의 가장 큰 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될 때 마음에 진정한 안식이란 없습니다. 질병과 고통이 또 죄 다음으로 우리 생활 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가난과 저주가 또 다가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이 다 저주열매인 것입니다. 땅을 개간해서 양식을 얻을 때는 얼마나 힘이 드는지 이마에 땀을 좔좔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땅은 끊임없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서 삶에 고생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산다는 것 자체가 큰 괴로움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죽음과 무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산다 해도 100세를 살고 나면 죽어서 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환갑을 사는 사람이 있으면 대단했습니다. 동네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회갑을 넘겼다고. 그런데 요사이에는 회갑을 넘겼다. 회갑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고 하면 무슨 죄 지었나보다 회갑도 못 지나게. 그럴 정도로 수명이 길어졌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모두다 100살 이상은 살 것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이 자기 생활을 만들기 때문에 100살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100살 못 삽니다. 그러나 100살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100살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니라’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의 값은 사망이라. 모든 사람들이 모두다 영적으로 죽고 육체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에 작정을 하고 자기 자화상을 긍정적으로 만들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저주를 이기고 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메이오 클리닉이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약 400명을 대상으로 어떤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지 검사했는데, 30년이 지난 후 그들의 삶을 추적해 본 결과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보다 일찍 죽었고, 그들이 생각했던 대로 실패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생각과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대다수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서 자기를 어떠한 사람으로 생각하느냐? 그것이 지상에서 그 육체로 살아가는 형상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나는 못났다. 나는 병신이다. 무능하다. 나는 가정에 짐밖에 될 것이 없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여러분 미래를 만들어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는 병들 것이다. 나는 허약하다. 요사이 암이 많이 든다고 하냐, 나도 암 들는지 모르겠다. 요사이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3사람 중에 1사람은 암을 앓는다고 하니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이것이 우리 속에서 자기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씩씩하다. 나는 괜찮다. 나는 암에 안 든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나가면 여러분 속에 그 영적인 힘이 부정적인 미래를 쫓아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자화상을 올바르게 가진다는 것은 굉장히 여러분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오늘도 또 말씀드리는데, 제가 아침에 깨어나면 반드시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일어나기 전에 갈보리 십자가 밑에 엎드려서 피 흘려 매달려있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 보혈로 내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주님 보혈로 나의 허물이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내 병이 나았습니다. 주님 채찍에 맞으므로 내가 나을 건데, 주님 그 십자가에 매달려 고난당했기 때문에 나의 저주가 청산되고 가난이 청산되었습니다. 주님 그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는 주님과 함께 죽고 장사 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해서 함께 주님 품안에 안겨 있습니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축복이 주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부탁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저보고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바라보고 믿고 말하면 그대로 된다.” 바라보아라. 꿈, 내가 꿈꾸는 꿈을 바라봐야 돼요. 훌륭한 장사꾼이 되려면 장사하는 것을 마음속에 늘 바라봐야 돼요. 훌륭한 의사가 되려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항상 바라봐야 돼요. 훌륭한 설교가가 되려면 강단에 서서 말씀을 증거하는 것을 항상 바라봐야 돼요. 자기 마음에 자기가 되고자 하는 형상을 바라봐야 돼요. 그리고 믿어야 돼요.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보고 소원하는 것을 믿음이 들어가서 삼켜버리지 아니하면 일이 안됩니다. 여러분의 꿈은 믿음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꿈이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져요. 그러나 믿음이 “아이고 나는 어림도 없다. 저런 꿈을 나 같은 적은 믿음으로 어떻게 삼키느냐? 기도할 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꿈은 기도할 때, 믿음으로 삼켜버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삼켰으면 그 다음에는 말해야 돼요. “저건 내 것이다. 이미 내가 소유했다. 내가 뜻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바라보고, 믿고, 말하라.” 매일같이 여러분 이것을 계속하면 여러분 생애 속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감사하고 그 다음에는 4차원의 영성을 간단히 깨닫는 것이 바라보고, 믿고, 말하라. 중얼중얼 말하고 지나가는 것 같지만 성령님이 그런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또 이 세상에 살면 불안과 두려움의 짐이 늘 있습니다. 취직을 해서 직장을 가지고 있어도, 직장 스트레스와 실직에 대한 불안으로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세계 95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인의 만성피로증후군이 선진국의 2배이며, 우리나라 직장인의 70%가 경제 불황에 따른 불안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연관된 병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직장인의 피로도가 심각한 수준인데 최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어디서나 업무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퇴근 후에도 핸드폰 문자나 메신저로 업무가 지시가 내려오기 때문에 마음 놓고 쉬지도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래 내가 마음에 이 스트레스가 있다고 말을 하기에 전화를 두 대를 가지고 하나는 직장에서 집에 오거들랑 꺼버려라. 잊어버렸다고.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명령이 떨어질지 모른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사는 동안 이 세상에 여러 가지 불안과 고통이 있잖아요. 죄와 질병과 생활의 고통과 이런 불행과 두려움이 있는데 예수님은 이러한 두려움을 잘 짊어질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말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멘 멍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니.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멍에를 편안하게 걸머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욕심이나 탐심을 잔뜩 가슴에 안고 세상 무거운 짐을 짊어지려면 굉장히 고통이 많아요. 아예 ‘내 짐은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한 예수님 말씀대로 무거운 짐을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걸머쥐면 짐이 무겁지 않고 멍에가 쉽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은 가장 악한 마귀의 마음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육신의 욕심과 탐심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을 참 힘들게 살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마음에 온유와 겸손은 짐을 쉽고 가볍게 걸머쥐고 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시며 그 마음은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이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은 보통 사람으로 죽은 것 이상으로 범죄인으로 취급받고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로 30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당신 자신을 칭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따뜻하고 잘 명령을 듣는 것이 온유한 마음인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이 멍에가 되는 것입니다. 쉽게 짐을 메고 나갈 수 있는 멍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 부부간의 관계도 그렇고 부모자식간의 관계도 그렇고 온유하고 겸손해서 멍에를 걸머쥐면 미운 관계가 사라지고 따뜻하고 온화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테레비 뉴스 보고 정말 끔찍해서 생각할 마음도 안 생기는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때려서 죽이는데, 그거 어떻게 자기 자식을 때려서 죽입니까? 쥐새끼도 때려죽이기가 겁이 나는데. 아니 자기 자식을 때려잡는단 말이에요. 그리고 아내가 남편을 때려잡고, 부부가 자식을 잡아서 냉장고 속에 집어넣어서 냉동시체를 만들어서 함께 산다. 이 세상이 너무나 탐심과 욕심으로 가득 찬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지 아니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우리가 엎드려서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받아들이면 성령님의 능력으로 짐을 쉽고 가볍게 메고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 힘으로 무엇을 할라면 안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받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받아들이면 성령이 그 안에 계셔서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도와주시면 무엇이든지 희한하게 쉽고 가볍게 걸머쥐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성령님의 시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보혜사라는 것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시게 하겠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주님이 말씀하신 이후로 2,000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만 성령님은 오늘도 여러분과 같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에게 같이 계셔야 있을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님이 역사할 시대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성령님은 함께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구태여 간구하고 간청해야 못 이기는 체 하고 따라오시는 성신님이 아니시라 성령님은 뜨거운 열정과 사랑으로 여러분과 같이 계시고 여러분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고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는 증거로써 여러분이 마음에 부드럽고 행복해지고 기뻐질 것은 말할 필요 없거니와 방언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성령님은 들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방언기도를 많이 하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한 은혜를 더 깊이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가 책을 읽는 중에 이런 이야기를 읽었는데 여기 칠판이 없어서 내가 설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정에 아버지가 술주정뱅인데 아들 둘을 키웠어요. 자기 부인하고는 이별하고말고. 근데 그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가지고 왔다는 것이 큰 종이에 글을 잘 쓰는 사람에게 글을 적어달라고 했는데 그 영어가 “Dream is nowhere.” 아 저기 나오네. “Dream is nowhere.” 저 교훈인데 희한하게 저거를 잘못 읽으면 두 동강이를 내어 읽게 되는 것입니다. “Dream is now here. 꿈은 여기 있다.” 그것을 또 “Dream is no where. 꿈은 아무데도 없다” 그렇게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글로 말하면 떼어서 읽는 것을 떼어서 읽지 않고 하나에 합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가 아버지가 그 액자를 응접실에다가 붙여놨는데 아들 둘이가 집에 올 때, 집에서 나갈 때나 항상 그 액자를 보고 읽습니다. 그런데 그 맏아들은 그를 쳐다보고 늘 읽는 것은 “Dream is no where. 꿈은 없다.” 아버지처럼 저래 한 잔 먹고 어~~ 하면서 자고, 그것밖에 없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Dream is now here. 꿈은 지금 여기에 있다.” 꿈을 추구해야 된다. 그래서 맏아들은 꿈이 없는 인생을 살았고, 둘째 아들은 꿈이 있는 인생을 살았는데 이처럼 삶을 사는 것이 어떻게 됐는지 나중에 알아보니까 형은 아버지를 닮아서 술주정뱅이가 되고 폐인이 되고 버림받은 사람이 되어서 인생을 살아나가고 둘째 아들은, 꿈은 여기에 있다고 한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가 되고, 훌륭히 성공해서 참 사회적으로 칭송받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액자에 붙여놓은 가르침이 인생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그것 중에 하나가 꿈을 가지면 어떻게 되고, 안가지면 어떻게 된다는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꿈이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꿈이라 하니까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꿈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 꿈이 여러분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속에 꿈을 버리면 꿈도 여러분을 버리는 것입니다. 꿈은 무엇하고 상관이 되느냐? 성령하고 상관이 되는 것입니다. 말세에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겐 꿈을 준다. 꿈을 가지면 성령이 여러분과 같이 역사하기 때문에 초인적인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Dream is no where” 라고 적혀있는 것은 꿈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형이 그 액자에 그 글을 읽어서 파탄했고 동생은 “Dream is now here. 꿈은 지금 여기에 있다.”라고 읽었던 그 동생은 어렵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바라보고 노력하면서 살아서 위대한 성공을 했던 것입니다. 꿈이 있느냐 없느냐가 인생을 좌우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꿈을 품고 꿈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와서 여러분 꿈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장래 이야기를 해드릴 테니까.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은 과거의 여러분이 무의식중에 가졌던 꿈이라도 꿈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장래를 위해서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마음속에 꿈을 따라서 기도를 하면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인생의 짐을 지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로 4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 아니라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마태복음 23장 12절에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욕심과 탐심의 마음을 가짐으로 예수님의 멍에를 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욕심과 탐심을 가지고 자기의 멍에를 걸머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돌이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면 예수님의 멍에를 가볍게 짊어지고 갈 수 있습니다. 3.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이 짊어진 모든 짐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멍에는 이 모든 짐을 쉽고 가볍게 지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일을 대하면 짐이 가벼워지도록 우주만물에 섭리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럴 리가 있느냐? 온유하고 겸손하면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무시당하고 멸시 당할 것 아니냐?” 주님이 “그렇지 않다. 생각은 그런 생각이 날 지 모르겠지만 내가 우주 만물을 만들 때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짐을 가볍게 걸머질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만들어놓으면 아무도 그를 거역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면 짐은 하나님이 맡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서 나가면 하나님이 짐을 짊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희망은 그곳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랑클 박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아우슈비츠에서 모진 고난을 겪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 정부는 유태인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60명도 아닙니다.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 빅터 프랑클 박사도 유대인이라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 그가 책을 적었는데, 그 책에 그렇게 고통스러울 때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살아났다. 눈꼽만한 희망이라도 가지고 희망을 바라본 사람은 살아났는데 희망을 잃은 사람은 그대로 병들어 죽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희망을 포기한 사람은 심신이 약해져서 죽고 말았지만,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은 극심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우리는 희망을 선택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희망찬 내일이 다가올 것입니다. 절망을 하지 말아야 돼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인생의 태도를 가지면서도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그러면 꿈과 희망이 다가와요. 꿈과 희망을 버리면 인생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삶의 태도와 함께 가장 위대한 요소는 희망인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1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 내 뜻이다’ 하나님이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오늘날 한국을 떠나서 세계로 나가면 사람들이 저를 보고 희망의 설교자 조용기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들은 저가 희망을 설교한다고 해서 비난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나보고 부자 되라는 설교만 한다고 비난을 하는데 아 희망을 가지면 부자도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할 때 하나님이 제 마음속에 말씀을 해주십니다. “너는 사명이 희망을 전파하는 주의 종이 되는 것이다. 네 사명을 다하라.” 한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희망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셔서 지금까지 잘 해왔고 또 하나님이 원하시면 무병 십년 이십년 장수. 그게 희망입니다. 희망을 가지면 하나님 그 희망을 따라서 운행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은 예수님의 멍에고, 그 멍에가 살아서 운동하게 하는 것은 마음의 희망인 것입니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희망을 갖고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 성령이 기적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망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갈보리 십자가에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 달렸을 때 여러분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희생을 한 것입니다. 죄도 용서하고, 허물도 제하여 주시고, 병도 고치시고, 저주도 없애고 천국을 주기 위해서 주님이 고난당했었음으로 여러분은 주님께 귀를 기울이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절망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에겐 다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을 말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같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삶의 태도에 위대한 희망을 걸머지고 나가면 여러분의 인생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