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빌 2:13)

2016.02.07 주일4부

<서론>
‘꿈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먼저 우리 가슴에 꿈을 심어주고, 그 꿈을 따라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하나님께서 요셉에게만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에게는 꿈을 심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에 하나님은 요셉을 사용하사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때, 무작정하고 “가나안 땅으로 가자!” 그 끌어낸 거 아닙니다. 그런다고 따라오지 않습니다.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그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이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꿈도 보통 꿈이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자.” 저는 예수를 믿지 않다가 예수를 믿게 된 이후로, 자리에 누워서 기침을 하고 피를 토하고 그러면서 성경에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으로 데려간다 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 계신가. 나는 누가 무어라고 말해도 이 하나님 내가 믿어야 되겠다.’ 자갈밭으로, 가시밭으로 이끌고 가는 지도자는 많아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 간다는 거예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저도 여러분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말씀으로 인도해 가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꿈이 인생을 이끌고 간다는 것을 제가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도 다 들어 놓으면 복이 됩니다. 19세기 영국의 평론가 토마스 칼라일은 “명확한 목적이 있는 사람은 험난한 길에 나서도 극복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사람은 가장 평탄한 길에서도 실패하고, 나아가지 못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뗏목과 같습니다. 강물이 흐르는 대로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뗏목처럼, 주변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 흔들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모터보트와 같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꿈이란 엔진이 웽~하고 모터를 끌고 나가니까는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방향을 조절하면서 힘차게 앞으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을 가지고 뗏목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모터보트인생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출애굽기 3장 8절에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이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됐을까요?

1.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곳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사이 전셋값이 싸졌다고(만) 해도, 그것을 듣는 전세인생을 사는 우리들에게 가슴이 설레게 되는데, “공짜로 젖과 꿀이 흐르는 것을 네 앞으로 등기이전을 해주겠다.” 그런데 그 소리 듣고도 박수 안치고 허허허허허~ 그들의 마음이 희망찬 꿈과 믿음으로 가득 채워졌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가나안의 꿈을 안고,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었으며, 그들의 꿈과 믿음 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6절로 8절에 보면 ‘그 땅을 정탐한 자 곧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더라’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40일 동안 정탐하도록 명령을 해서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열 사람의 가슴 속에는 살아계신 야훼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인본주의, 인간의 생각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땅을 보니깐 인간적으로 본 땅은 별 볼일이 없었습니다. “성은 보니 굉장히 높아 보입니다. 우리 이스라엘 촌놈들이 도저히 등산 올라가듯이 올라가도 못 올라갈 정도로 높은 성으로 보입니다. 그 지대 사는 사람들을 보니까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서 키가 8대 장성이오, 전부 거인들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하고 비교하면 메뚜기 떼다.” 그렇게 보고 받았습니다. 왜? 인본주의를 가슴에 품고, 하나님을 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가서 가나안 땅을 봤을 때, 실제 그렇게 젖과 꿀이 흐르는 것 같지 않아도 “걱정할 것 없다. 하나님이 손만 대면 꿀이 되고, 젖이 흐르게 된다.” 그 다음에 성은 보고 “저게 뭐 높은 성이라고. 별들 봐라. 얼마나 높으냐? 저런 별들을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있으니 성을 보고 ‘물러가!’ 한 마디면 끝장이다.” 그러고 아 백성들, 8대 장성 키 큰 사람, 몸이 튼튼한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 “하하 재미있게 됐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니까 저거 우리 밥이다 밥.”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모두 다 밥이지 뭐 밥 아닌 게 어디 있습니까. 그러고 그 백성들을 보고 “우리가 쳐들어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 우리에게 좋은 일만 있다.” 똑같이 출발해서, 똑같이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서 보고 하는데 열 사람의 보고는 모두 다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보고였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가서 보는 것 하고, 하나님 없이 보는 것 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 열 사람은 다 때려 죽여 버렸습니다. 그냥 죽이지 않고 때려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고 그들의 말을 따라서 분노를 가지고 고함을 치던 백성들은 벌을 받아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죽도록 하나님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다 죽고, 그들 후손들을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끌어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을 살면서 우리 마음속에 누가 더불어 같이 사는지 알아야 돼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속에 탁! 점령하고 앉아계시며 “같이 가자. 걱정하지 마라!” 그러면 아무리 원수가 무섭더라도 “저거 내 밥이야 밥. 저 성? 하늘 아래 성은 성도 아니야. 그냥 울타리야.” 여러분 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민수가14장8절)’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 주시고, 그 꿈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 굉장히 좋은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니라’ 소원이라는 것은 꿈입니다. ‘내가 좋은 집을 한 채 사서 살면 좋겠다.’고 소원하면 그게 꿈인 것입니다. ‘좋은 점포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그거 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을 시키기 전에, 마음속에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주고 그 소원을 따라 행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큰 꿈이든 적은 꿈이든 여러분 마음속에 꿈을 주고 난 다음에, 여러분 그 꿈을 받아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꿈을 위해서 기도하고, 할렐루야를 할 때 하나님이 역사해주셔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한 해 동안에 여러분 마음속에 크고 적은 많은 꿈을 심어주실 것입니다. 감사하고 그 꿈에 취하시면 주님은 그 꿈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축복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2. 믿음의 표상 아브람과 하나님
믿음의 표상인 아브람과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창세기에는 뚜렷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아브라함(아브람)은 살아갈 꿈과 목표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만나가지고서 ‘네 부모,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너에게 복 주면 내가 복을 주고, 너를 해치면 내가 해치겠다.’고 세상에 팔자도 이렇게 늘어진 팔자 있습니까? 금 숟갈, 은 숟갈을 입에 물고 출발을 시키신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너를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창세기 12장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러고 이방족속이 훼방을 하고 침공을 하면 하나님이 “내가 책임져 주겠다.” 창세기 12장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처음부터 으ㅤㅆㅑㅤ으ㅤㅆㅑㅤ 우리보다 훌륭한 사람 아니었습니다. 그도 마음에 겁이 많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할 때, 하란에서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데라 아버지 데라의 상속받아서, 일가친척들 거느리고 그러고 가족을 잃어버려 고아가 된 조카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가만히 내려다보시니 “가관이다. 가관이라. 너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전토도 다 팔아서 포켓에 넣고, 친척도 다 거느리고, 아비집인 조카도 데리고, 한 떼거지들이 내려가는구나.” 그런데 그냥 내려가서도 좋을 수 있겠는데, 아 가나안땅에 내려가니깐 기근이 닥쳐왔어요. 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해서 은과 금이 캐면 막 쏟아져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살기가 어려우니깐 그 아버지의 종들이 다 짐 꾸러미 싸서 고향땅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자기의 아내하고 종들 몇 사람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에 아브라함이 문제 해결을 어떻게 했습니까? 거기에 엎드려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 기도원에 내려갔으면 좋을 것인데.. 그러지 않고 자기 부인하고 “우리 살러 가자. 하나님이 농담하시는지도 모른다. 우리 여기 있다간 굶어 죽으니 애굽으로 가자.” 그 당시에 애굽은 요사이에 우리에게 미국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애굽으로 가자!” 그러고는 자기부인의 옷을 털털 털고,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면서 “야 당신 너무 인물 잘났다. 내가 사실 말을 안해 그렇지 타향 땅으로 너와 같이 가려니까 겁이 난다. 너무 잘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를 소유하기 위해서 나를 죽이고 너는 살 것이다. 그러니 나를 좀 살려줘.”, “아니 이 양반이 왜 갑자기 늙어서 이런 이상한 말을 하냐.”, “이상한 말이 아니라 세상이 그렇다. 그러니깐 이제부터 국경을 넘거들랑 나보고 ‘오빠~오빠~’ 오빠라고 하지, 그 이상 넘어가면 날 잡아먹는 짓이다.” 그래가지고서 마누라하고 애굽에 건너가서 아니 ‘오빠, 오빠’하다가 그 마누라도 뺏겼어요. 신하들이 보고 얼굴이 검은 사람에 비해서 허여멀건 아름다운 여자를 보았는데, 70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린애기를 낳지 않고 그동안 남편하고만 살았기 때문에 늙지를 않았습니다. 바로가 당장 자기 아내로 받아들이고 아브람보고 “처남 이리와 밥 먹자.” 이런 꼬락서니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보고 “쯧쯧쯧쯧. 아이고 못난 놈. 참 저런 놈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자니 앞길이 캄캄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바로의 집안을 내리쳤습니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니까 그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벌벌 떨고 알아보니까 아브라함은 사라의 남편이지 오빠가 아니었습니다. 그 정체가 드러나자 왕이 고함을 치고 “너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하게 될 뻔 하였다. 왜 거짓말 하냐? 한시가 보기 싫으니 빨리 나가라. 내가 데리고 산 날짜 섭섭지 않게 보태서 은과 금과 짐승들을 줘서 보내라.” 그래가 그 아내의 미모 때문에 죽을 뻔도 당하고 부자가 되가지고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시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믿는데 왜 나는 시험이 있느냐?” 하나님이 시험을 쳐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을 쳐보고 합격이 되면 될수록 하나님이 복을 더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5절에 보면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니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기근이 다가왔을 때 믿음으로 극복치 않고 인간지혜로 애굽으로 내려간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나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창세기 12장10절-13절) 아브람이 아내는 착한 아내를 얻었습니다. 아내가 남편 부상당할까 싶어서 입에 오빠를 달고 다녔습니다. “오빠 ,오빠 이리와. 저리가.” 그러나 거짓말 한 것이 들어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이나 우리가 마음에 꿈이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일을 하는 것입니다. 꿈이 있지 아니하면 일을 안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경쟁사회인 것입니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사업가든 경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경쟁사회에서 누가 성공을 할까요? 그것은 꿈을 가진 사람이 성공합니다. 왜냐하면 꿈이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꿈이 있으니까 꿈을 따라 달리는 것입니다. 한 여론조사기관이 약 13년 동안 미국인들의 업무 의욕에 대해 조사했는데, 70%는 자기가 하는 일에 매우 낮은 의욕을 보였고, 30%만 능동적으로 일하면서 높은 생산성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그룹의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바로 ‘꿈이 있느냐 없느냐’인 것이었습니다. 직장에서 마지못해 일하는 사람이 능률이 오를 턱이 없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이 열심히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 공부하는 학생은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합니다. 꿈을 가지고 자원해서 공부하는 학생은 좋은 결과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마음속에 꿈을 심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보면 뉴욕 맨하탄 할렘에 위치한 ‘데모크라시 프렙 챠더 스쿨’이란 뉴욕에서 가장 열악한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는 소득수준으로 보면 미국 최하위 가난한 계층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가정사정은 80%가 편모슬하에 자란 애들이고, 편부슬하에 자란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혼한 사람이 80%예요. 그러나 이 학교는 창립 7년 만에 뉴욕에서 최고로 높은 성과를 내는 공립학교가 되었습니다. 이를 가능케 만든 주인공은 세스 앤드류씨인데, 한국식 교육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던 학교가 뉴욕시 최우수 학교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원어 원주민 교사로 일한 적이 있는데, 가난에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인과, 세계 10대 가난한 나라에 속했던 한국이 오늘날 10대 강국이 된 것을 보고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자, 대학에 가자, 세상을 변화시키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2005년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설립 당시 그는 학생들과 개별면담을 했는데 대학에 가겠다는 학생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이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꿈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복도와 교실마다 세계 유명한 대학의 깃발과 사진을 가득히 걸어놓았습니다. 또 학생들을 데리고 정기적으로 좋은 대학들을 탐방했습니다. 그 결과, 이 학교의 고교 졸업 성적을 영어, 수학 과목의 합격자 비율이 명문 고등학교와 맞먹는 99%에서 98%였습니다. 대학진학률은 100%였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학생들이 대학에 가겠다는 꿈을 가지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처럼 값진 성과를 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만일 배를 만들게 하려면, 사람들에게 넓고 끝없는 바다를 구경하게 만들어라. 바다를 먼저 보여주면, 바다 건너가는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을 꾸게 되면 배를 만들게 되고,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꿈이 없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연구소가 65세 이상 되는 퇴직자들을 연구했는데,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목표를 글로 적어 놓고 수시로 꺼내 읽는 습관을 가진 사람 3%는 퇴직 후 최고의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목표는 있었지만 글로 적지 않았던 사람들 10%는 퇴직 전과 비슷한 경제력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목표가 수시로 바뀐 사람은 60%인데 간신히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목표 즉 꿈의 자체가 없는 사람들은 27%였는데 자선 단체의 도움을 얻어서 겨우겨우 목숨만 이어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목표설정은 이처럼 경제적인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왜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성경을 읽는 사람은 목표를 안 가질 도리가 없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은 이 땅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을 만들고 죽어 저 건너편에 영원한 세계에서 목표를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를 항상 생각합니다.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성결을 얻고, 병 고침을 받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죽어 장례지낸 다음에도 부활하고, 뭐 모든 것에 목표가 정하는 것입니다.

3. 생각, 꿈, 믿음, 창조적 선언
그러고 난 다음 마음속에 생각이 긍정적이고, 꿈을 갖고, 믿음을 갖고, 창조적인 선언을 하면 보고, 믿고, 말하게 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꿈을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고, 꿈이 없는 백성이 안 되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세계적으로 하나님을 믿은 백성치고 망한 민족이 없습니다. 정말로 제가 100살까지만 산다면, 산다면이 아니고 살겠지. 여러분 다 교회 예배드리면서 성경을 통해서 꿈을 얻어 백만장자가 되는 것을 보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종교적으로 우리는 교회를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생각과 꿈과 믿음과 창조적인 선언을 하면서 그 안에 하나님의 기적을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꿈을 잃어버리고 방황할 때, 창세기 15장 4절로 5절에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의 집에 있는 종)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사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꿈을 가지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믿으니 하나님이 의로 여기셨습니다. 로마서 4장 18절로 22절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로마서 4장 23절로 24절에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여러분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에게 준 축복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정말 신바람이 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천지와 만물을 지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시는데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손잡고 갈길을 밝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