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징계
(히 12:1-13)

2016.2.14.주일4부예배

<서론>
‘사랑과 징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옛 속담에 ‘귀한 자식일수록 징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징계는 당시에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 징계의 매가 참으로 사랑의 매였다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영어 싫었습니다. “왜 우리나라 말이 있는데, 남의 나라 말을 배워야 되느냐?” 영어시간이 되면 아주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 정도의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영어를 가르치러 들어오는 선생님의 이름은 콩코드 라고 했습니다. 콩코드라는 선생님이 그냥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로 만든 이만한 메추리를 회초리를 만들고 들어와요. 자기가 외우라고 한 단어나 문장을 외우지 아니하면 아 그 회초리로 때리는데 눈에 불이 번쩍하도록 때립니다. 그래서 그때 그 선생님의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외웠습니다. 다른 것은 거의 다 잊어버렸는데 그 선생님만 밑에서 배운 것은 지금도 환히 머리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징계의 매가 해롭지 않게 오히려 삶의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때 선생님한테 혼나면서 배운 것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고난을 통해 배운 것은 쉽게 기억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은 우리 의 삶에 큰 유익이 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닥쳐오거들랑 “아, 하나님이 나를 고난이란 학교에 입학을 시켰구나. 여기에서 잘 배우면 내게 유익이 다가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구나.” 그렇게 이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잘 기르기 위해 학교에 입학시키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잘 가르치기 위해 고난의 학교에 입학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방종을 꾸짖고, 징계를 통해 변화된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1. 하나님의 사랑 우리는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냥 오며가며 그냥 사랑합니다. 그런 정도가 아니라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이 지으실 때, 자기의 형상과 모양을 떠서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우리를 보면 하나님을 보는 줄로 오해를 할 정도로 하나님 형상과 모양에 꼭 닮게 지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당신의 목숨처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 당신 형상과 모양에 수치가 다가오기 때문에 굉장히 괴로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심히 가슴 아파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 자신에게 수치가 돌아오기 때문에, 우리가 잘되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우리가 잘못되면 하나님 당신이 슬퍼하시고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보냈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 보낸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9절로 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은 우리를 심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건지고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셨다고 생각하니 이 세상에 70억의 사람 중 한사람도 하나님이 모르고 지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작가인 맥스 루케이도는 “당신의 존재는 우연히 된 것이 아니다. 당신은 대량생산한 물품이 아니다. 공장에 가면 대량생산하지 않습니까? 똑같은 모양으로, 그렇게 만든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창조주에 의해 신중하게 계획되었고, 특별한 재능을 받았으며, 사랑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주님이 만세전에 택하시고 하나님이 보셔서 이름을 지으시고 거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 우리 모두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아시고 생각을 아시고 행위를 아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대량생산품이 아닙니다. 공장에 똑같은 물품이 쏟아지는 그런 존재 아닙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응아”하고 울고 나올 때, 하나님은 박수를 치시고 엉덩이를 쓰다듬으시고, “잘 왔다. 내가 너를 돌보아 주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13절과 16절에도,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하나님이 우리 내장을 짓고 친히 하나님이 만드셨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내가 태어나서 하루가 되기 전에 이미 일생이 다 기록되어 있어요. 참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지금 우리가 여기에 앉아있지만 우리 미래가 하나님 손에 다 적혀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디자인하시고 친히 만드신 특별한 존재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은 나를 특별히 디자인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람이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 키울 때 하나님 뜻대로 자라지 않으면 징계하시고 꾸짖으실 때 우리가 그 징계와 꾸짖음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에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사랑하는 자, 친자식으로 받아들이는 자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남의 자식을 징계하지 않습니다. 친자식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잠언서 3장 11절로 12절에도 ‘대저 야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우리를 기뻐하고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를 하시고 우리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통하여 우리가 거룩한 삶으로 성장해서 하나님의 신성에 참석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형상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목구비를 가진 우리와 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떻게 생기셨냐? 물으면, 그 대답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쟤처럼 생겼다. 나는 쟤처럼 생겼다.” 하나님은 모양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내 없는 모양을 있는 형태를 갖추어서 지은 내 자식들을 보라. 내가 쟤처럼 생겼느니라.” 그 하나님이 우리를 그처럼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0절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신다’ 우리를 반 하나님으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전체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 아니고 징계를 내리면 징계를 통해서 우리가 올바르게 자라면 반 하나님이 된다. 그렇게 귀중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할 때 하나님은 가슴을 어루만집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어떤 초신자가 목사님 앞에서 이런 불평을 늘어 놓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못하게 금지하는 것이 너무나 많아요. 교회 나오고 난 다음에 술도 마시지 마라. 담배도 피우지 마라.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간섭이 너무 심해요.” 그러자 목사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만 원짜리 피아노를 요리할 때 쓰는 조리대로 사용하는 것을 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 그야 마땅히 말려야지요. 피아노가 얼마나 귀한 것인데 그것을 조리대로 사용하는 것입니까?” “그럼, 어떤 사람이 최고급 양복을 벗어가지고서 구두를 닦는다. 그걸 보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합니다.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합니까?” “그럼 비싼 도자기를 가지고 강아지 밥그릇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니, 그걸 보고 어떻게 그냥 둡니까? 못하게 말려야지요.” 그러자 목사님이 말씀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 값을 주시고 구원한 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귀한 몸에 술을 부어 술독으로 만들고, 담배를 피워 굴뚝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 말리지 않고 가만 계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사랑을 받는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을 하면 하나님께서 심히 가슴 아파하시고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2. 당신은 사랑받고 있다
우리는 사랑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고 놀라운 것은 내가 만일 창조주 하나님이었다면 벌써 이 세상을 심판해버렸고, 우리를 멸절해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온 우주에 우리 한 사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처럼 사랑을 베푸시고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얼마나 사랑하느냐? 죽기까지 사랑한다. 죽도록 사랑한다. 로마서 8장 38절로 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느리라’ 그러니 도무지 우리는 하나님과 끊어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숨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께 삐쳐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그 사람은 고통을 더 많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으니까 어디 갈 데가 없어요. 어머니가 밥을 지으면 따라다니는 그것이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일에 훼방을 하다가 잡혀서 종종 부지깽이로 얻어맞는데 어머니가 “야 그거 하지마라.” 그러면 어머니는 애먹이기 위해서 더하거든요. 그럼 잡혀서 부지깽이로 때리는데, 어머니에게 덜 맞으려고 뒤로 물러나가면 진짜로 얻어맞는다고요. 부지깽이 끝에 맞으면 굉장히 아프다고요. 때리거들랑 어머니 치마를 붙잡고 안고 들어가면서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아파. 아이고 아파. 안 그럴게, 살려줘 엄마. 살려줘” 어머니 안고 들어가면 부지깽이 저 안쪽에 맞으니까 하나도 안 아픕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진짜 내가 아픈 줄 알고 그만 때립니다. 우리 하나님께 매 맞는 것도 한 가집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징계를 해서 가정에 우환질고가 생겨나고 고난이 다가왔을 때, 여러분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할 줄 몰랐다. 그러면서 주일날 교회도 안 나오고 그러면 굉장히 아픕니다. 하나님이 더 심히 때리고 채찍 끝에 맞음으로 아픕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는 하나님께 나아와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께 매어 달리면 하나님의 징계가 아프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해 주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꾸짖으면 낙심해서 집안에 들어앉아 밥도 먹지 않고 문을 잠가 놓고 울기만 하는 사람은 징계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꾸짖으면 깨어지고 회개하고 털털 털어버리고 일어나서 방실방실 긍정적으로 징계를 받아들이면 필히 징계가 효과가 있고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3. 변화된 삶을 살아가자
징계를 받고 나면,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나 하나님이나 자식을 징계할 때는 변화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징계를 해도 변화 안 되면 징계를 자꾸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변화를 받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로 25절에 보면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그런 자는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잊어버리는 자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9절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 “내가 네가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 내가 너를 복으로 만들어서 너를 도와주는 사람에게 복이 되게 하고 너를 대적하는 자에게는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너는 복이 되겠다.”고 그랬습니다. “너는 복덩어리다. 너는 복이다.” 그런데 갈라디아서에 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주에서 해방시켜줄 뿐 아니라 우리를 아브라함의 복을 받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겠다는 것은 여러분이 복을 그냥 얼마씩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복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덩어립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복덩어리다.” 복덩어리가 집에 굴러들어오면 집이 복된 집이 될 것이요. 복덩어리가 물건을 만지면 물건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굉장히 경제적으로 어렵고 남북 간에 김정은이 때문에 긴장이 날카롭게 돼있는데 지금 대한민국을 지키고 보존해줄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꿈을 주시고,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복덩어립니다. 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잘 돌보아주면 하나님이 이 복덩어리 때문에 우리에게 복주는 자를 복주고, 우리를 대적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6.25사변 났을 때 한국과 지금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하고 같이 계신다는 것을 언제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는 만사를 하나님 눈으로 보아야지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의 정탐꾼 12명을 보냈는데 10명은 자기들 눈으로 보아서, “그 땅을 보니 주민을 삼키는 땅이고 성벽은 너무 높아서 도저히 기어 올라갈 수도 없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장수들이라 나피림,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이 살고 있어서 우리는 메뚜기 같더라고. 우리는 모두 다 잡힌다.” 복 없는 소리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마음속에 계시는 사람들로서, “언제나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 가나안 땅에 가서 박토를 보고도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면 땅이 옥토가 되고 말 터이니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성은 아무리 높아도 하나님이 들어오는 그 성이 안 무너질 턱이 있느냐? 그리고 대장부들이 살고 있는데 그 대장부들은 하나님 앞에는 우리 밥이다. 밥.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들어가면 점령할 수 있다.” 똑같은 땅을 똑같이 40일 동안 정탐을 했는데 10명은 인간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전부 부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꼬? 그 성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전부 우리 자식들이 포로가 될 것이고 우리는 절망하게 되었다. 희망을 잃어버렸다.” 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당당히 나가서 “아니다. 그 땅은 젓과 꿀이 흐르더라. 그 성벽은 높아도 능히 우리가 쳐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밥이다. 문제가 없다. 들어가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했습니다만, 백성들은 그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러분을 하나님이 돌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무엇이든지 능치 못하실 일이 없는 것은 아브라함과 같이 여러분이 복덩어리인 것이기 때문에. 이 복덩어리인 우리 대한민국의 교회와 교인들을 김정은이가 일어나서 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서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꾸준히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어려움을 당하면 자기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서지 아니하고, 탓을 말합니다. 주변의 사람 때문에, 남의 탓으로 변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오시는 소리를 듣고 숨었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아담아, 어디 있냐.”, “하나님 무서워서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왜 내가 오는 것이 무섭냐? 내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었느냐?”, “하나님 사태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그 여자가 먹으라고 하기 때문에, 그 꾐에 빠져서 먹었습니다.” 세상에 선악과를 자기가 먹었으면 먹었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그 여자.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잘 만들어준 여자 같으면 잘되었을 것인데, 잘 못 만들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그 여자가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야, 왜 남편을 꾀었느냐?”, “내가 꾄 것이 아니라 이 뱀하고 대화를 하고 서로 놀자니까는 뱀의 말에 내가 꾀어 넘어가서 그랬습니다.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뱀 때문에 그랬습니다.” 뱀은 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을 반역한 악의 천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꾸중하시면 “주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전부 내 죄입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용서해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복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불의에서 깨끗이 해주시는 것입니다.(요한1서 1장 9절)’ 자복하지 않고 전부 자꾸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남편은 아내 탓으로 돌리고, 아내는 자식 탓을 돌리고, 자식은 이웃 동네 사람들 탓을 돌리고,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3장 11절로 13절에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일렀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나무의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야훼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먹었나이다’ 이런 사람들은 징계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꾸짖어도 그 꾸짖음을 통해서 변화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변화를 받으십시다. 스뱌나 3장 17절에 보면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여러분보고 기뻐서 “아이고~ 아이고 이놈아~” 너무 기뻐하고 즐거워하신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자식을 낳아서, ‘엄마, 아빠’ 할 정도가 되면 아빠나 엄마가 직장에서 저녁에 돌아오면 얼마나 이쁩니까 자식이. 그냥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아이고 내 자식아~’ 좋아하는 거지.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렇게 좋아하신다고요.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택했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거룩한 나라요 그는 나의 소유된 백성이다.” 대단합니다. 우리 보통사람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존경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 입양된 우리 한국 사람인데, 주상원의원까지 되신 분입니다. 그가 지은 책에 이렇게 기록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는 고아원에서 입양이 되어서 미국 가정에 들어가서 양부모를 모시고 사는데, 애가 기운이 없어요. 학교 가도 혼자 저 구석에 앉아 있고, 잘 울고, 낙심하고 그래서 그와 가까운 사람이 물었습니다. “너는 왜 한국에서 입양되어 와서 이런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힘을 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좀 이래야지 이게 왜 이러냐?”, 그니깐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나를 한국에서 고아원에서 입양시켜서 데려와 키울 필요 있습니까?”, “아니 우리가 보기에는 너희 부모가 너를 지극히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문제입니다. 나는 한국에서 이 가정에 들어온 지 이제 오래 되었지만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꾸중 한번 들은 적이 없고, 매 맞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면 나를 징계할 것 아닙니까? 잘못을 해도 나를 안 때립니다. 나는 사랑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 이 징계의 사랑이라는 것은 선물을 줘서 사랑하는 것보다 더 깊은 사랑이구나.’ 그 부모에게 찾아갔습니다. 가서 “당신 양자를 사랑으로만 키우지 말고 징계를 주어라. 징계가 더 깊은 사랑이다.” 그러고서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 학교에 와 보니까는 공도 잘 차고, 웅변도 잘하고, 전교 대표자 학생으로 선택도 되고, 굉장히 다른 애가 됐습니다. 그래서 좀 만나자고 그래서 만났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쾌활하고 다른 사람이 되었느냐?”, “선생님.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때려요.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내 종아리를 때리면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내게 넘쳐오는 것 같습니다. 나는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받고 있으니 내가 활달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때려야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는 그것이 잘못되어가지고서 때려죽인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때려죽이기도 하고, 아내가 남편을 목 졸라 죽이기도 하고.. 이래 이거 영 살벌해서 이 사탄이 들어와서 허망하게 만들어 놓았지만은. 실상은 징계를 하는 것이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다. 지금 제 나이에 제가 집에서 자라날 때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제게 종종 징계를 내리셨는데, 그때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근데 오늘날에 와서 돌아보면 참으로 아버지의 사랑이 내 마음 깊숙이 늘 기억이 되고, 고마운 생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다른 것보다도 징계를 내려 주신 것이 감사히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는 하나님이면 여러분 그것은 가짜 하나님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꾸중도 하시고, 마음에 괴로움도 주시고,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고 나아가 울고 기도도 하게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변하는 것을 보시고 기뻐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2장 5절로 8절을 깊이 받아들여야 되겠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우리가 가끔가다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하나님 백성답지 않게 행하는 사람보고 ‘하나님 왜 저 안 때려주시나? 한번 때려주면 좋겠는데.. 정작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는 나는 하나님이 가끔 때리시는데, 저 사람들은 교회 어지럽게 만들어도 왜 때리지 않는가?’ 저도 그런 기도를 여러 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때리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안 때린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징계를 내린다. 징계를 내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다. ‘내가 미워서 그 채찍 들지 않는다. 너에게는 채찍을 들고 고통을 주고 괴로움이 오게 하는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 너는 내가 나중에 이로 말미암아 변화된 너의 생활에 큰 복을 내가 내릴 것이다.’ 그러나 징계를 내리지 않는 자에게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여기저기 꾸중하시고 채찍을 때릴 때는 정말 사랑하는 하나님인 것을 알고 할렐루야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독수리 새끼 훈련하는 것을 마음에 하나님이 꼭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깔 때에는 둥지를 만드는데 독수리의 몸에 상처를 입어서 피를 흘려가면서도 암컷, 수컷 두 마리가 열심히 둥지를 만듭니다. 독수리의 둥지는 가시 둥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가시를 꺾어가지고서 가시를 가지고, 엮어서 둥지를 만들어요. 가시 둥지입니다. 세상에 가시 둥지에 어떻게 새끼를 깔아 기르겠느냐 그래서 가시 둥지를 만들어 놓은 다음에 토끼나 쥐새끼나 이런 것을 잡아가지고서 속을 긁어내고 가죽으로 그걸 깝니다. 가죽으로 까. 그러고 나서 새들을 잡아서 새털을 벗겨서 그 둥지를 채우면 요사이 일류 호텔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새끼를 낳아서 암수컷이 부지런히 먹이면 새끼가 상당히 자라지 않습니까. 그러면 새끼를 불러내어서 나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날개를 펴서 자꾸 올라타라 그럽니다. 먹이를 갖다 주지 않고 자꾸 올라타라 그러는데, 새끼들이 겁을 내어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가고 안 올라탑니다. 그러면 암컷, 수컷 어머니가 발톱으로써 그 가죽을 탁 잡고 확 벗겨버립니다. 그리고 새끼를 밀어 넣어버립니다. 아니 그러니 새끼들이 생각하니 “아니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갑자기 미쳤다. 여태까지 잘 먹여주고 푹신푹신한 잠자리를 만들어주더니 당장 변해서 이렇게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 새끼들이 자기가 이거 어머니, 아버지 사랑에 의지해서는 안 되겠다. 새끼는 또다시 날개를 펴니까는 그 위에 올라타요. 그럼 새끼를 싣고서 공중에 올라 날라 바위 있는 데를 가니까 아버지가 짐승들을 잡아넣고 있어요. 그래서 잘 먹고, 그 다음 또 둥지에 날라 와서 둥지에 내려놓으면 ‘아이고 찔리고 있는 것보다도 날개 위에 타고 다니는 것이 좋다.’ 도로 날개 위에 기어 올라갑니다. 그러면 그를 데리고 이번엔 바위 위에 준비된 밥상에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공중으로 자꾸 올라가서 탁~놓쳐 버립니다. 그러니 공중에서 쏜살같이 떨어지니까는 막 안 죽으려고 확 날개를 칩니다. 그럼 저 밑에서는 엄마 독수리가 또 받습니다. 떨어지면 받아서 또 올라가서 또 떨어뜨려지고, 그러면 밑에서 또 받아 올리고 그렇게 해서 훈련을 시켜서 나중에 이 세상으로 날려 보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기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독수리 새끼 기르는 것 같이 기른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서 그렇게 하는지 잊어버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에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칠 때, 먼저 높은 곳에 데리고 올라가서 떨어뜨려요. 그러면 새끼 독수리는 떨어지면서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하는데, 땅에 닿기 직전에 어미 독수리가 쏜살같이 내려 안전하게 받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여 새끼 독수리로 하여금 하늘을 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높은 곳에서 떨어뜨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날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훈련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수리 훈련하듯이 그런 훈련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넉넉히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버림받은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주님 품 안에 안고 계신 것입니다. 만세전에 여러분을 택하시고, 예정하사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앉아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우리가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하신 보배로 생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한 편으로 축복을 주시되 다른 면에는 끊임없이 징계를 내리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아서 자라고, 징계를 받아서 하나님 뜻대로 살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잊지 말고 늘 하나님을 따라서 나아가시는 우리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금년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여러분 징계하셔서 더 나은 명년을 맞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기를 권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