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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시편 103:1-5) 2016.2.28.주일4부예배 <서론> 오늘 저는 ‘내 영혼이 야훼를 송축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인간은 자기보다 높고 위대하신 분을 높이고 송축하고 그 크신 이름이 온 천지에 알려지도록 합니다. 하물며 우리를 지으시고 돌봐주시는 야훼 하나님을 아무리 송축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요즘 시대는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은 감사 불감증이라고 말을 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사회는,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결코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자기계발 전문자 지그 지글러는 “당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태도 중에서 삶을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태도는 바로 감사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사를 통해 개개인이 변화될 때 가정도 변화되고 사회도 변화되고 국가도 변화가 오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일 감사해야 될 것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되는데 한없는 은혜를 받고도, 돌보심을 입고도 곧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번에 퍼스에서 싱가폴... 시드니 까지 와서 말씀을 증거하는데 너무 놀랜 것은 제가 한 10년 전에 세 번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했는데 그 때 은혜 받은 사람들이 정말로 저의 손을 잡고 감사하다고, 그래 내가 무엇이 감사하는지 물어보지는 못하고 잊어버렸어요. 감사하다고. 저명한 대학교 총장이 저 왔다니까 뛰어와서 길거리에서 만나서 악수를 하면서 감사하다고. 너무 감사해서 인사하려고 우리 집사람하고 같이 나왔는데 너무 목사님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집사람이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그래 제가 안부 전해달라고. 그런데 그 분을 언제 만나고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분은 너무나 나를 아는 알고 있어요. 나를 껴안고 뺨을 부비고 감사하다고. 그래서 제 생각에 ‘나도 앞으로 은혜를 베푼 사람을 꼭 기억하고 수첩에 적어놨다가 만나면 저렇게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고 감사의 표시를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의 위력을 우리가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감사가 힘이 있습니다. 그냥 공중에서 사라지는 단어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감사드리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받고 난 다음에는 그 댓가를 지불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78편 11절로 17절에 보면 ‘ 야훼께서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도다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그들의 조상들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그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그들을 지나가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셨으며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물처럼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으며 또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우리 사람들은 너무 과거에 받은 은혜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광야에 행하신 기적이란 오늘날 과학적으로라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바위가 터져서 샘물같이 물이 흐르고, 배가 고파서 견디지 못할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서 아침저녁으로 그 만나로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고함치니 메추라기가 하늘 새카맣게 내려와서 공중에서 손에 잡히도록 팔팔 날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아서 먹었다. 하나님이 희한한 일을 다 행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감사하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귀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요사이 유럽이나 미국은 직장을 구할 수가 없으니까 학교를 졸업맞고 난 다음에 어느 직장에 가느냐? 어머니 집 직장으로 돌아가요.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어린아이처럼 30대가 된 아들이 딸이 와서 “엄마 밥 줘. 엄마가 제일이야.” 그러면서 엄마에게 아부 떨고 엄마직업을 가지는 것이 오늘날 세계가 돌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것도 엄마에게 자랄 때 감사를 했으면 다행이지 안했더라면 엄마가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합니까? 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오래 살고 싶고, 잘되고 싶으면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십시오. 스승은 우리가 만나면 고맙게 느껴야 될 것은 잘되나 못되나 스승의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지적으로 성공하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돌보심을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많이 드려야 됐어요. 번제를 드리거나, 속죄제를 드리거나, 속건제를 드리거나 끊임없이 짐승을 잡아서 제사장에게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영원한 제사가 되어버리고만 것입니다. 여러분이 드릴 제사를 예수님이 통틀어서 영원히 드려버렸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드릴 제사는 감사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보혜사 성령님 감사합니다.” 구약 사천년 동안에는 아버지 야훼 하나님이 정면에 서서 일하시고 그 뒤에 예수님과 성령님은 감추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육신을 쓰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동안에는 아들 시대입니다. 아들이 모든 책임을 다 지고, 아들 뒤에 아버지와 성령이 숨어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하시고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성령이 바람같이 하늘에서 임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장차 우리가 하늘에 올라갈 때 까지 무슨 시대냐? 성령의 시대인 것입니다. 지금은 아버지도 성령 뒤에, 아들도 성령 뒤에 숨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과 나와 접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성령은 바람과 같다.’고 말하신 것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와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더구나 많은 감사를 성령께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성령께서 여러분 마음속에 계시고 여러분을 품에 안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성령님 감사합니다. 한번 말하십시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시편 50편 23절에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를 하면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마음이 뿌듯해지고 아주 기뻐지는 것입니다. 요번에 프링글 박사가 저를 소개하는데 내내 자기 선생이라고 그러고 자기가 지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첫째 둘째가는 목회를 하고 있는 것도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의 덕분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그러니까 내 마음이 뿌듯하더라고요. 그래서 설교할 때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 할 것을 두 마디 하게 되고, 고마운 대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사하게 하면 영화롭게 해서 하나님이 아주 영화를 느끼는 것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편 50:23)’ 감사를 하면 주님이 환난 당할 때 건져주고, 하나님 영화를 받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성경에도 은혜를 입고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을에 들어가실 때 열 명의 나환자가 멀리서 예수님을 보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고함을 쳤습니다. 그때는 나환자들은 건강한 사람하고 접촉 못합니다. 접촉하면 건강한 사람들도 부정을 타서 하나님 앞에 못나가는 것입니다.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든지 예수께 병고쳐달라고 나온 사람치고 그대로 돌려보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도 고쳤습니다. 이 열 명의 문둥병 환자 저 먼 거리에서 고함을 치는데도 주님께서 “제사장에게 가서 너 몸을 보여라.” 제사장은 몸이 나았는지 안 나았는지 검사해주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열 사람이 제사장에게로 다 갔는데 가면서 보니까 몸에 문둥병이 나아버렸다고요. 그 중에 이방인 한사람은 너무 놀래가지고서 돌아서서 예수님께로 뛰어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 꿇어 엎드려서 “주님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통곡을 하고 울고 감사하니까 주님께서 “쯧쯧쯧쯧 내가 고친 사람은 열 명인데 그래 구태 한 사람이 와서 감사하냐? 아홉 사람은 다 어디 갔느냐?” 여러분 하나님도 감사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꼭 은혜 받았으면 감사를 해야 돼요. 예수님께서 탄식을 했습니다. 열사람을 고쳤는데 아홉 사람은 감사하지 않고 그냥 가고 너만 왔느냐? 그러고 난 다음 주님이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게 보통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처음 너희 믿음대로 제사장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병이 나았어요. 왜 두 번째 또 말합니까? 보통 환자는 나았는데 무슨 또 말을 합니까? 나환자는 두 번 말을 해야 됩니다. 첫 번(째)은 문둥이가 떠나가고 둘째는, 코가 문드러지고 손가락이 떨어져나가고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평안히 가라.’는 것은 모습이 다 고쳐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 농촌에 나환자들이 많았습니다. 그 나환자들이 지나가면 모자를 푹 덮어쓰고 있는데 보면, 눈이 문드러진 것을, 코가 구멍만 둘이 뚫어진 것을, 손가락이 잘려나간 사람들. 나은들 정상 적인 생활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 감사하러온 사람은 덤으로 은혜를 받아서 문둥병에서만 나은 것이 아니라 그 상처 입은 몸도 정상으로 다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이 온전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냥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만들어주신다. 감사는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병을 치료 받고도 9명은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 가던 길을 걸어가 버렸으니 손해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홉 명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감사로 나아오는 자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2. 마귀를 쫓아버리는 감사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감사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만들어서 저들을 그곳에 있게 하셨을 때, ‘선악과를 따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게 금지하는 말을 했다고 삐져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잘 나오지도 않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하고 불편한 마음을 가진 마귀가 춤을 춥니다. 좋아서. 하나님하고 사이가 좋지 않기를 마귀는 원하는 것이니. 마귀는 하나님과 원수가 아닙니까? 그래서 아담과 하와 주변에 마귀가 늘 빙글빙글 돌아다니니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것보다도 마귀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매일 만나는 친구가 어떠한 친구를 만나느냐? 어떠한 잡지를 읽느냐? 어떠한 소설을 읽느냐? 어떠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느냐? 친구가 되어서 바라보면 그 물이 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꼭 이웃의 영향력을 받아서 닮아가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을 가져온 마귀와 즐겁게 대화를 하자니까 마귀가 꾀어서 선악과를 따먹게 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와에 의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난 다음에 하나님에게 불평불만이 꽉 들어찼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르되 “니가 왜 나를 피하느냐? 선악과를 따먹었느냐?” “내가 따먹을라고 따먹었나요? 아버지가 만들어서 주신 그 여자가 나를 꾐으로 먹었나니.” 하나님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자기가 회개하고 고백하면 좋은데 꼭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하와보고 “왜 남편을 꾀어서 선악과를 먹게 했느냐?” “내가 먹고 싶어서 먹었나요? 뱀이 꾐으로 내가 넘어가서 먹었지요.” 그런 하나님과 교제를 멀리하므로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동등하게 된다는 말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이콜(=)이 되면 이 우주의 주인이 둘이 있어서 또 전쟁이 일어날 것 아닙니까? 여러분 절대로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하나님처럼 잘났다고 고개를 흔들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기독교 나라와 이슬람교 나라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잖아요? 이거 조상을 따져서 올라가보면 이슬람교도들은 우리 기독교들의 이복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네 자식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그래 아브라함이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 내가 믿습니다.” 하나님이 미쁘게 여기시고 의롭다고 말했습니다. 훌륭하다고. 그랬으면 뛰어 집에 와서 자기 아내보고 “하나님이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오늘 약속을 받고 지금 오는 길이다. 우리 감사해야 되겠다.” 그렇게 해야 될 건데, 집에 오니까 마침 그때 자기 부인이 “여보 여보 내 말 좀 들어. 내가 당신에게 시집와서 이제까지 살면서 이제 나이 90이 됐는데 아들을 못 낳아줘서 미안하다. 천상 별도리 없으니 내 책임을 내야 되니까 내가 데리고 있는 하갈이라는 애굽 여자 몸종을 당신에게 줄 테니까 그를 통해서 자식을 얻게 하라.” 아 아담이 그 말을 아브라함이 들었으면 “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 괘씸하게. 왜 당신 몸종을 가지고서 자식을 낳아? 하나님이 내게 약속해주셨는데.”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브라함이 입이 이만큼 찢어져가지고서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 자식이 없으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잘했다. 그럼 내가 대리로 자녀를 얻겠다고.” 그날 그대로 자기 아내의 몸종을 첩으로 데리고 가서 어린애를 낳았으니 그 애가 이스마엘입니다. 지금 마호메트교 시조 아닙니까? 그러고 난 다음에 집안이 막 혼비백산이 됐습니다. 어린애기를 가지고 난 다음에 자기 여주인을 보고 어깨에 힘주고 말 안 듣고 하니 그 현 여주인이 자기 남편에게 와서 “아브라함 너가 잘못해서 나를 이렇게 곤욕을 주니 너가 책임져라. 어디에 나에게 큰소리하고 꼬리를 흔들고 야단이야.”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책임 안질라고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이 마음대로 해. 내가 어떻게 아나.” 그러니 쫓아내버렸어요. 쫓겨나가서 광야 우물가에 그대로 있었으면 목이 말라 죽었을 것인데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물을 마시어주어서 살아났다. 그리하여 지금은 뭐라 합니까? 서로 어머니 다른 형제간끼리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다 이삭의 자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삭의 혈통에서 나왔어요. 이스마엘 혈통을 받은 사람 지금 아랍 사람들. 이렇게 돼있는 것입니다. 결국엔 오늘날 싸우는 두 세력이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없어야 될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아브라함과 사라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함으로 마귀와 불평하다가 선악과를 따먹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좋다 나쁘다’를 분별하게 되어서 저주를 받고 쫓겨나가게 된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거 참 좋은 일이다.” 그러면 아담은 동등하게 “아니요. 나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건 나빠 안 돼.” 그러면 “아니요. 우린 좋습니다.” 집안에도 부부간에 선악과 문제로 다투게 됩니다. 부인이 “아이고 이 물건은 참 좋은 물건이야. 이거는 우리 꼭 소유하고 남에게 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남편이 “아니야. 이건 좋지 않아. 남에게 주면 그 뿐이야.”, “안 좋아요.”, “좋아”, “좋아요”, “안 좋아.” 선악가지고 다투는 것입니다. 정월대보름날 “여행가자”고 그러면 부인이 “이 트래픽이 심한데 어디 여행을 간단 말이요? 집에 있어서 그냥 애들하고 따뜻한 밥이나 먹고 이야기나 하고 지냅시다. 그게 좋습니다.” 남편이 “안 좋아. 나는 애들 데리고 갈 거야. 가는 게 좋아.” ‘좋다, 나쁘다’는 것은 두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 서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을 분별하게 되면, 하나님과 서로 동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에 주인이 둘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우주가 죽밭(쑥대밭)이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내어 쫓아 버리고 저주를 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여러분 좋다, 안 좋다 말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일은 좋든 하찮든 “예”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니요. 안 좋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저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에 절대로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감사를 하지 않고 불평을 말하면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옳게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옳게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높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8편 28절로 29절에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가 너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을 크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에게 기도해서 응답받기를 원하면 하나님을 감사 많이 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하고, 여러분의 분위기가 감사로 꽉 들어차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 1절로 2절에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렵지 싶으나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아홉 형제가 있는데, 아들로서는 맏아들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부산으로 이사를 다 갔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같이 살도록 나는 남았습니다. 학교 갔다 오니깐 다 이사를 가 버리고 나만 남았어요. 그때 많이 울었습니다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를 지극히 좋아하는 손주였었습니다. 그 다음 세월이 지나서 제가 예수를 믿게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전도를 갔는데, 할아버지는 아무리 말을 해도 동분서주입니다. 안 들어요 잘. 그러고 할머니는 늘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입에 그것을 담아놓고 있었는데, “할머니, 아무 종교도 안 믿었을 때는 모르겠지마는 할머니 손주가 예수를 믿고 전도사가 됐는데 나하고 같이 가야 안 되겠소?” 그러니까는 “천당에 가면 나라가 다르냐?”, “다르고 말고요!”, “아이고 나는 손주 따라 가야지. 내가 손주 따라 안 가고 어디 가겠느냐? 네가 믿는 나라는 예수님의 나라, 그러면 늘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할렐루야를 하십시오. 할렐루야라는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에요.” 그래 우리 할머니는 발음이 안 되니깐 할렐로입니다, 할렐로. 앉으나 서나 “할렐로, 할렐로, 할렐로” 그 할아버지가 “저거 돌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 하고 있다.” 그런데 천국가신지가 오래 됐는데, 아마 우리 할아버지는 천국을 못 갔어도 우리 할머니는 “할렐로!”하고서 들어갔을 겁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 그러니 우리도 ‘할렐루야’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옆에 분들이랑 할렐루야 한 번 하십시오. 아멘! 할렐루야. 시편 103편 22절에 ‘야훼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야훼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그 야훼 중에도 어떠한 면을 송축하라고 하느냐면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편103편 1~2절)’ 하나님 앞에서 잊어버리지 말고 송축을 해야 할 것은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신다(시편103편 3~4절)’ 늘 우리 죄를 용서해주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그리고 모든 병을 고쳐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사업이 잘못되어서 파탄에 이를 때, 파멸에서 구속해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어주실 것을 꿈꾸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꾸고 나면 믿음이 그 꿈을 안고서 꿈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은 이성적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잘 믿었다가 못 믿었다가, 울고 믿었다가 웃고 믿었다가,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꿈을 믿음으로 끌어안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에 확신이 들어오면 그것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꿈을 끌어안고 있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확신하지 아니하고, 고통스럽고 두려움이 꽉 들어차 있으면 안 됐습니다. 이제 싸움이 벌어집니다. 금식하고 철야하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음이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데, 그 마음이 편안해지고 확신이 들어올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평안과 확신이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은 그런 희로애락의 감정이 없습니다. 꿈은 갖고 싶고, 되고 싶기 원하는 것을 그저 꿈꾸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살아서 역사하도록 하는 것은 믿음인 것입니다. 그 믿어서 믿음에 확신이 있고 평안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창조적인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용기야, 네가 꿈꾸는 것이 됐다. 꿈꾸는 것이 이루어졌다!” 크게 외치면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은택을 송축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7절로 18절에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나니라’ 그러므로 죄 사함 받은 것을 감사하고, 병 고침 것을 감사하고, 파멸에서 건져주신 것을 감사하고, 우리는 감사를 입에 붙여놓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좋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소원이 만족하게 되어 독수리가 하늘로 올라감같이 올라가는 것을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시편 103편 5절에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한다’ 나쁜 어려운 일이 있어도 지나고 나면 하나님 꼭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의 뒤에는 축복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요번에 오스트레일리아 신문 기자가 저보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은 중에 어느 정도 응답을 받았느냐”그래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속도는 빠른 것도 있고 느린 것도 있지만은 나이가 80이 넘고 보니 응답 안 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꿈꾼 것을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의지한 것은 다 응답해 주셨다.” 그러니깐 “지금부턴 무얼 꿈꾸느냐”고, “지금은 하나님이 건강을 주시는 한도 내에서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내 꿈이다.” 좋은 것으로 우리 소원을 만족케 해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꿈을 꾸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꿈을 꾸지 않고 부르짖으니깐 안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삶 중에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말을 그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6절로 7절에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감사가 따르지 않으면 아무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택을 기억하고 “감사, 감사, 할렐로, 할렐로, 감사, 감사, 할렐로, 할렐로” 이것이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면 하나님이 굉장히 영화로움을 느끼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감사로 사탄을 이긴 대표적인 사람이 욥인 것입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재산 다 날아가고, 자손들 다 죽고, 온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 앞에 시부린 것입니다. “욥을 괴롭게 하면 하나님을 욕하고 돌아설 것이요.”, 하나님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고, 그래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서 마귀가 욥을 쳐서 완전히 빈손 되게 만들었습니다. 근데 욥의 아내가 와서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충성심을 가지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뒤져라 뒤져!” 마지막 부인이 떠났습니다. 마귀는 이제는 욥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했는데 욥은 하나님께 엎드려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오, 가지고 가신 이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합니다.” 마귀가 박살이 났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귀의 정수리를 부숴버린 것입니다. 욥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감사의 능력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잡혀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깊은 감옥에 발과 손목을 차꼬에 차여서 못 눕게 해서 아주 괴롭게 해서 가두어 놓았어요. 밤중쯤 되니깐 바울과 실라가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찬송을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음에 즐거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철그덩~ 철그덩~ 쇠고랑을 치면서 찬송을 하기 시작하니깐 우르르르르! 하면서 지진이 일어나서 온 빌립보 시가 다 떨리더니 감옥 문이 열리고 차꼬가 다 풀리고 자유와 해방이 다가왔습니다. 간수가 놀라가지고서 죄수들이 다 도망친 줄 알고 칼을 뽑아서 자기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가 여기 있으니 자살하지 마라! 우리가 다 그대로 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에게 뛰어 들어와서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길로 그 간수가 예수를 믿고, 음식을 지어서 대접을 하고, 기뻐한 기사가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속박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감옥의 문이 열린 것처럼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마음의 분노가 속박에서 해방되고, 우울과 슬픔에서 해방이 되고, 좌절과 절망에서 해방이 되고, 우리 마음에 기쁨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감사인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항상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감사란 키를 사용해서 감사하면 감사가 들어와서 여러분에게 모든 압제에서 해방을 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즐거움으로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감사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할 때도 앉아서 감사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느끼고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가 우리의 생활 속에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감사하는 생활을 오늘부터 열심히 하십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