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맞추고 출근하는 사람이 더 긍정적이다
(시 2:12)

2016.3.13. 주일4부예배

<서론>
‘입 맞추고 출근하는 사람이 더 긍정적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외국잡지에서 부부간의 입맞춤의 효과에 관한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삶에 더 행복하고 건강하며 성공적이고 오래 살려면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남편이나 아내에게 입을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일의 의학박사 및 심리학자들과 보험회사 심리연구원들이 함께 연구하여 얻은 결과이고 또 하나님 말씀이 그것을 확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아더 자보는 그 연구에 의하면 매일 아침 배우자와 입맞춤하는 사람일수록 질병으로 결근하는 확률이 적다는 결과보고가 있습니다. 또한 배우자의 입맞춤을 받으며 출근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교통사고도 덜 나고 매월 수입이 매월 20내지 30%가 더 많고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침마다 배우자의 키스를 받고 출근하는 사람일수록 하루의 시작을 더욱 긍정적으로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삶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결과란 것입니다. 이 연구결과는 긍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에 플러스 요인이 되어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입맞춤도 이처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 입을 맞춘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겠냐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2장 12절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입 맞추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화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삼으시고 우리와 화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으면, 아담의 죄로 인한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을 가진 인간인 것입니다. 황혼 이혼율이 점점 더 많아지는 현실세계에 우리는 탄식하고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2015년 서울시 통계’에 의하면, 2014년에 서울시민 약 6만 5천 명이 결혼했고, 약 2만 쌍이 이혼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혼한 사람들 중에 20년 이상 함께 산 부부의 황혼 이혼이 32%나 되어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요즘 이혼을 줄이기 위해 이혼숙려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젊은 부부의 경우에는 이혼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들이 앞에 이혼할 부부를 두고 설득을 하고 달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버지뻘 되는 사람, 부부를 앞에 두고서 법관이 교훈을 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이를 불문하고 이혼율이 계속 증가하고 또 최근에는 가정 내, 아동학대 문제까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창조하셨는데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가정생활도 이처럼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본론>
1. 아담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광야와 형벌
하나님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은 광야입니다. 광야에 형벌이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성경을 보면 뱀과 원수가 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4절로 15절에 ‘야훼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때에 하나님이 말한 뱀은 요사이 우리가 들에서 휙 하고 다니는 그런 뱀하고는 틀린 것입니다. 마귀를 뱀으로 불렀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뱀은 지금 우리가 보는 뱀하고 모양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저주를 받고 난 다음에 점점 천해진 것이 현재 땅에 기어 다니는 뱀인 것입니다. 좌우간에 뱀 사랑하는 사람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시골에 가면 뱀이 있으면 끝까지 따라가서 잡습니다. 뱀이 보기에 징그러운 것처럼 마귀가 뱀의 형상으로 있을 때 말도 하고 대화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뱀은 하와를 꾄 결과로 저주를 받아서 본 형상을 잃어버리고 처참한 저주 받은 짐승이 되고만 것입니다. 하와는 임신의 고통을 크게 수고하여 자식을 낳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와는 어찌할 수 없이 그 죗가(대가)로 어린 아기를 낳는데 크게 수고하고 어린 아기를 낳고 기르게 되었습니다. 또 땅이 아담의 불순종 때문에 저주를 받아 사람이 심히 수고하여 땅의 열매를 먹을 것이요, 가시와 엉겅퀴를 땅에 낼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흙이니 고생하며 살다가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이 무서운 수고와 고생이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저주가 이른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니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리며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참 무서운 저주인 것입니다.

2. 희망을 찾아서
우리가 이런 고생스러운 땅에서 사는데 희망이 있어야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어느 곳에 가나 좌절과 절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땅이 이렇게 저주받은 곳에서 희망이 없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욥기 5장 7절에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 불을 때면 상승기류에 의해서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이 사람들은 고생 속에서 살게 돼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2장 22절로 23절에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엇이 소득이 있으랴 한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고 전도서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없이 이 세상에 살아갈 도리가 없습니다. 죄와 허물은 멸망을 가지고 옵니다. 인생의 삶은 한정된 삶을 사는데 고생, 수고가 반드시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우리를 찾으신 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2절에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우리가 환경에 소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소망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1절에 보면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음이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쳐다보면 죄인이 죄인 취급을 받지 않고 용서 받아 의인 취급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잘못된 생활을 청산하고 거룩한 삶을 얻게 되고, 질병으로 죽게 된 사람이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공로를 인해서 치료받고 살아갈 희망을 얻으며, 저주받은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저주를 상징하는 모든 것이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했는데,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저주를 다 청산했어요. 예수님은 죽음이 없는 분이신 것입니다. 죄가 없는데 어떻게 죽음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어 3일 만에 부활 승천하심으로 우리에게 예수를 통해서 죽음 저 건너편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통해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잘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험하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기대를 좋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못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고 생각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저주가 그리 모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좋은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고, 그 하나님이 좋은 것 주실 줄 기대하면 좋은 일이 우리에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3. 십자가를 보고 희망을 말하라
십자가를 보고 희망을 말하라고 내가 후배들에게 늘 말합니다. 세계를 다니면서 보면 주의 종이 되어 나간 사람들이 어떻게 목회를 해야 될지 제게 물어봅니다. 제가 신학대학에 가서 강연할 때 늘 신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목회자가 되라. 협박, 공갈을 하는 목회자가 되지 마라.” 우리가 쌀을 주고, 집을 주고, 돈을 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소망은 오직 십자가에 있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졌습니다. 우리의 저주를 끌어안고 못 박혔습니다. 채찍에 맞음으로 병을 청산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사라지고, 병이 사라지고, 저주가 사라지고, 전인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근거한 희망을 근거로 해서 설교를 하라고 젊은이들에게 권고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갔도다’ 다 이루었다. 이 세상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여 가지고 온 모든 사망과 흑암은 주님이 다 청산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고통을 청산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주님은 이 시간에 우리를 구원할 모든 일을 다 마치시고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우리에게도 살 길이 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긍정적인 생각이 우리가 꿈을 꾸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꿈이 없으면 못살지 않아요? 좋은 청년은 아름다운 처녀에게 장가를 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노처녀들은 좋은 총각에게 시집을 갈 꿈을 가지고 요사이 제게 기도해달라고 편지가 많이 옵니다. 꿈이 없으면 기도해달라고 할리도 없지 않습니까? 젊은이들은 좋은 직장을 가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을 망합니다. 꿈이 있는 개인과 백성은 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을 가지기 위해서 마음속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생각이 좋은 것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 25절로 28절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게 되었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이었음이라’ 열두 해를 피를 흘리고 재산 다 탕진하고 꿈도 희망도 다 잃어버린 그에게 죽음만 기다리고 있는데 예수님의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그 마음속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희망의 생각이 생겼습니다. 그러고 예수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낫겠다는 꿈을 가지고 기다렸다가 예수님 가시는 길에 뛰어가서 옷자락에 손을 대고 즉시로 나았습니다. 긍정적인 꿈은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부정적이고 좌절되고 절망적이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민수기 14장 6절로 8절에도 모세가 열두 스파이를 가나안 땅 정탐을 향해서 보냈는데 열 사람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갔습니다. 보는 것이 다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인간적으로 땅을 보니 ‘황폐하고, 인간적으로 성을 보니 너무 높고, 인간적으로 그 백성들을 보니 장사들이고, 인간적으로 그들에게 보니 자기들은 메뚜기 같고 그 사람들을 대항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 생각을 가지고 봤습니다. 하나님 생각으로 보니 ‘어떠한 땅도 젖과 꿀이 흐르고, 어떤 성곽도 성냥갑 같고, 거기 있는 사람은 모두 다 이스라엘의 밥그릇이다.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밥상을 차려 주신 것이다!’ 그 생각이 달라서 열두 사람이 똑같은 곳에서 출발하여 똑같이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오는데, 열 사람은 ‘못한다, 죽는다, 할 수 없다.’고 하고, 두 사람은 ‘할 수 있다, 들어간다, 다 우리 밥그릇이다.’ 그 결과로 열 사람의 말을 들은 사람은 모두 다 죽고, 그 자손들이 40년 광야에서 방황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들은 그들은 살아남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부정적인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감으로 모든 것이 우리 밥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긍정적인 생각이 꿈을 꾸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안 되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으면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의 꿈을 가질 수 있는데, 언젠가 내가 한 교회를 방문했는데 교회 마당에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 있고, 나비들이 많이 날아와서 이곳저곳에 앉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말씀하기를 “조 목사님 오신다고 제가 꽃나무를 갖다 심었지 나비는 오라고 청한 적이 없습니다. 근데 꽃나무를 심으니깐 나비가 날아왔어요.” 그래서 내가 무릎을 탁 쳤습니다. “맞았습니다. 당신이 나를 청해서 꿈을 심었으니 성령님이 꿈을 따라 역사하는 것입니다.” 나비는 꽃을 따라 역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은 꿈을 심은 사람 꿈을 따라 가슴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꿈이 있으면 반드시 성령이 따라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에서 그렇게 고생을 하고 감옥에까지 들어갔어도, 그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으니깐 성령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결국은 성령이 모든 것을 통해서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에 꿈이 있으면 성령께서 그 꿈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성령이 이룰 거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은 아름다운 꽃입니다. 꿈을 많이 피워놓으면 성령이 와서 그 꿈을 이루게 해 주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시편 146편 5절로 7절에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소망이란 바로 꿈인 것입니다. ‘야훼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야훼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희망은 굉장한 힘이 됩니다. 내 마음속에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있으면 희망이 여러분을 건져가는 힘이 되는 것은 희망은 바로 긍정적인 생각이요, 긍정적인 꿈을 낳기 때문인 것입니다. 희망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도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버드 의대 제롬 그루프먼 교수는 ‘희망의 힘’이라는 책을 통해, 희망은 실제로 병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30년 동안 환자들을 치료했는데, 희망을 가지면 우리 몸에서 엔돌핀과 엔케팔린이라는 물질이 분비됩니다. 우리는 엔돌핀만 분비되는 줄 알고 희망을 갖고 좋아하면 엔돌핀이 나온다 그랬는데, 여기에 이 박사가 발견한 것은 엔돌핀과 엔케팔린이란 물질이 분비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문자 한 번 쓰려면 외워 놓으십시오. 엔케팔린. 개가 팔렸다는 말입니다. 엔개팔린~ 희망을 토대로 믿음과 기대를 갖는 사람은 치료에 성공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입니다. 병을 치료받을 때도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받으면 엔개팔린(엔케팔린), 엔돌핀이 나와서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희망을 바라보고, 희망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입술로 말하는 말이 여러분,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을 마음대로 쓰고, 말을 별로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 굉장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신문에서 한 정신과 의사가 쓴 칼럼을 읽어 보았는데, 고맙다는 말 한 마디가 비타민이나 항우울제 한 알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미운 마음을 치료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심리치료와 약물치료와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 놀랍게도 칭찬과 긍정의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 감사와 칭찬의 언어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춘다’고 그럽니다. 감사하고, 칭찬하는 것, 하나님도 좋아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여주겠다(시편50편 23절)’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칭찬하시는 것을 좋아하는데, 우리보고 칭찬하는 것 안 좋아할 사람 누가 있어요? 저가 좀 가짜로 말한다 싶어도 좋다고..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잠언서 16장 24절에도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선한 말이 마음에 꿀송이 같이 달뿐 아니라 뼈에 양약이 됩니다.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므로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긍정적인 언어로 말 하는 것을 훈련하십시오. 하나님 말씀만큼 긍정적인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긍정적으로 말을 한 것이 굉장히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정신과 전문의 우종민 교수는 말의 영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의 뇌는 현실과 언어를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뇌는 현실과 말을 분별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짜증난다는 말을 반복하면 그 소리가 귀를 통해서 뇌로 전달되고, 그러면 뇌가 ‘짜증나는데 왜 멀쩡한 척 하고 있느냐’하면서 온몸에 불쾌한 스트레스 호르몬을 쫙~ 뿌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버릇은 그야말로 버릇으로 출발하지만 버릇이 거듭되면 몸과 마음에 굳어 버린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사용해야 된다고 우종민 교수는 말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 전 국무위원이었던 존 가드너(John W. Gardner)박사는 “리더의 처음이자 마지막 임무는 희망을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따라오는 사람에게 끝까지 희망을 줘야 된다.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희망을 줘야 돼요. 잘 못되어서 아내가 희망을 주는데 남편이 그 희망을 따라가게 될 때면 큰소리 하기는 틀렸습니다. 희망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리더란 희망을 파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리더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희망을 주어야 따라오는 사람이 있지, 희망을 안 주는데 누가 따라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기 원하시는데,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예레미야29장11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희망을 가슴에 품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은 우리에게 희망 그 자체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한참 어려움을 당할 때, 한번 멋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꿈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문이 안 열립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밖에 소리가 전달되지 않고 엘리베이터는 고층건물 중간에 달려있고, 나는 그곳에서 목이 쉬도록 고함을 쳐도 아무것도 안 되고,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주 예수님 살려주십시오.” 아 그러니깐 예수님께서 엘리베이터 안에 턱! 서서 제 앞에 서요. “주님! 어떻게 해서 들어 왔습니까?” 이러니깐 예수님이 날 보더니 “내가 누구냐? 내가 길이요. 내가 가는 곳에 길이 막히는 것 보았느냐? 나를 안아라.” 그래 내가 주님을 끌어안으니깐 엘리베이터 밖에 나와 있어요. 그 꿈을 꾸고 굉장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길이니깐 어려움은 예수님께 매달리는 것이 제일이에요. 예수님을 붙잡으면 자꾸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람의 길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요사이 바둑을 두는데 기계가 사람을 이겼다고 야단법석을 합니다. 그거 다 장사해 먹으려고 하는 소리인 것입니다. 사람이 기계를 만들어 놓으면 기계가 사람보다 잘하는 것 얼마든지 있어요. 컴퓨터도, 벌써 사람보다 컴퓨터가 잘하잖아요. 전화도,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들고 세계 끝까지 말을 합니까. 기계가 말하지 않습니까. 기계가 사람의 지성에 의해서 조종되는 것이지, 아무리 바둑 두는 기계가 사람을 이긴다고 해도 그건 돌멩이 옮겨 심는 기계지 별로 다른 기계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이어 받았으므로, 사람의 재능이란 타락해서 그렇지 안그러면 하나님께 거의 가까운 지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죄도 예수님을 통해서 해결됩니다. 어떠한 허물도 예수님을 통해서 청산됩니다. 어떠한 병도, 죽음도 예수님을 통해서 해결됩니다. 어떠한 저주와 절망도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서 해방됩니다. 죽음도,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11장 25~26절)’ 예수님 안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므로 예수님의 길을 붙잡고 가야지 그 길을 벗어나서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 맞추고, 화목하고, 따라가면 언제나 우리 앞에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에 보태어서 여러분 오늘부터는 집에 가시거든 남편 여러분은 아내에게 키스하십시오. 아내도 남편에게 키스하십시오. “아~나 다 잘하고 있는데 왜 조 목사가 저런 소리를 하느냐?” 젊을 때는 잘 하는데 나이 늙으면 그만 안 해요. 서로 마음에 신뢰를 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