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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하나님의 때가 있다 (렘33:3-9) 2016.03.20. 주일4부예배 <서론> ‘모든 일에 하나님의 때가 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일을 하는 분은 자신의 소개인 명함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다가 사람을 만나면 자기소개를 하고 명함을 내놓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오늘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명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야훼 하나님의 명함도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일을 행하는 야훼 하나님이다.’ 온 우주의 현재의 모습을 창조하시고, 통제하고, 사람들이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요나가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서 사흘 동안 있다가 나오는 것도 하나님이 직접 보시고, 행하시고, 성벽에 늘어진 나뭇잎사귀, 풀잎사귀가 파랗게 났다가 시들어진 것조차도 하나님이 섭리하고 계시는 일을 성취하는 야훼 알파요,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경에 잠언서 19장 21절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야훼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앞서서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님 말을 먼저 해 버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자기가 먼저 앞서 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감옥에 가두면 자기 마음대로 하지를 못합니다. 예레미야서 33장 3절로 5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읍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일을 잔뜩 행하면서 갈대아인이 침략해 들어오고 있으니깐 자기 성 안에 있는 왕궁까지 헐어가지고서 돌멩이, 진흙더미, 쇳덩어리 이 모든 것으로 갈대아인을 물리치려고 했으나 어림없이 죽임을 당하고 시체가 성을 채우게 되는데 이것조차도 하나님이 그들의 악행 때문에 보응을 받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6절로 9절에 보면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여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하나님이 원하실 때는 그 성을 멸망시켰으나 또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성읍을 재건해서 세상이 보고 칭찬을 하고, 두려워 떨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한 평생을 주님께 맡겨놓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을 해서 하나님께 매를 맞고 망할 때가 있는가 하면,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성하게 만들어 주실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흥하고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젊을 때는 하나님이 말씀도 하시지 않는데 하나님 앞서서 행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천히, 천천히”해도 우리는 앞서서 뛰어 갑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서 가만히 앉아서 살펴보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 조차 세월이 지나고 나이 먹어서 보면 하나님이 일을 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부르짖어라.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고 미리 나가지 말고, 하나님께 외쳐라. “무얼 외칠까요?”, “하나님께 죄악을 회개하라.”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것이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짓을 했기 때문에 쫓겨나고, 정죄를 받고, 저주를 받고, 죽게 된 것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사람을 파멸시키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와서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은 죄를 큰 소리를 쳐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절로 2절에 보면 ‘야훼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이 죄를 굉장히 미워하십니다.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서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고,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 되면 그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외침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5절로 6절에 보면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야훼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하리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라’ 내가 하나님께 죄를 숨기지 아니하고 자백을 하면 하나님과 만나게 되고, 하나님과 같이 계시면 홍수가 나도 홍수가 우리를 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예수님께서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하러 갔는데, 세리와 바리새인이 기도를 합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과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행하는 자들과 같지 않습니다. 저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또 소득의 10분지 1을 바칩니다.” 자기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도 서로 모여 있는데, 대단히 자기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이것도 해놓고, 내가 저것도 하고, 내가 좋은 일만 했다.”고, 어떤 사람은 “나는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아서 자랑할 것이 없다.”고 머리를 숙이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모두의 예상을 깨뜨려 놀라운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누가복음 18장 14절)” 자기자랑을 잔뜩 하나님 앞에 하고 내려가는 사람을 보고 의롭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을 치고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사람을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의롭게 여기셔서 집으로 내려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던 바리새인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던 세리가 응답을 받았다고 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10절에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은혜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주님 나는 죄가 없습니다. 저 사람이 나보다 죄가 많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면 적은 죄도 죄고, 큰 죄도 죄입니다. 죄는 뭐와 같으냐면, 돌멩이를 바다에 던지는 거와 같습니다. 적은 돌멩이를 던지면 퐁당~ 소리는 적지만 물 밑에 가라앉아 버립니다. 그럼 큰 돌멩이는 풍~덩 큰 소리를 내고서 바다에 가라앉아 버립니다. 하나님이 내동댕이 쳐버리는 것은 적은 죄나 큰 죄나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죄는 다 같이 죕니다. 그러므로 적은 죄인도 예수님 보혈을 의지해야 되고, 큰 죄인도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야 용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 죄를 회개할 때 마음에 뜨거운 소명을 가지고서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지나가는 말로 “잘못했어요 하나님, 굿바이.” 이런 회개가 아니고 마음에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빌립보서 2장 13절에 하신 말씀대로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마음에 정말 원한을 가지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 품에 안기기를 원해서 기도하는 기도가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급하게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처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급하게 하나님의 응답을 원하지만은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성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 안 해주는 것 같지만은 우리가 끝까지 기다리고 참으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급하게 서두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누가복음 18장 1절로 8절에 과부와 재판장의 이야기가 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에 한 과부가 있었다고 말했어요. 왜 과부를 대표적으로 칭했냐면 과부는 외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남편도 없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외로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편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 없으니깐 하나님께 가서 원한을 가지고 기도해야 될 때 그 비유를 하나님을 모르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에게 나갔단 것입니다.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시옵소서.” 못 들은 체 하는 것입니다. 또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주소서.”, ‘뭐 저런 게 다 와서 야단이냐? 도와줘봤자 내 백도 될 수 없으니 안 도와준다.’ 이 부인은 출근하다시피 그 재판관 들어가는 재판소 입구에 앉아가지고서 재판관만 보면 벌떡 일어나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주소서” 그렇게 인내로 끊임없이 계속해서 간청을 하면 이 재판관이 시끄러워서 못 견뎌서 “갚아주겠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관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18장6절~8절)’ 인내를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 쉽지가 않습니다. 어느 정도 기도하다가 낙심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낙심하지 않고 계속 와서 부르짖고, 부르짖는 기도를 간절히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뒤로 물러가지 않고 늘 하나님께 와서 간구하되, 마음에 간절한 호소를 가지고 오래 인내하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로 18절에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구약에서 놀라운 기적들을 말할 수 없이 행했던 신자 엘리야조차도 기도할 때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윌리암 부스는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은 “거기에 생사가 달린 것처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되 생사가 달린 사건으로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절한 기도가 응답을 가져옵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가물어 메마른 우리의 삶에 하늘에서 단비가 쏟아져 내려올 수 있는 것입니다. 2. 기도와 태도 기도를 할 때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되는가. 기도를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연결해서 하는 기도가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저 노랫소리로 들어주시고 마는 것입니다. 온갖 기도를 다 엮어서 하니깐 나중에 자기도 무슨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기도를 말을 많이 해야 들어줄 줄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언부언을 많이 합니다. 저도 처음 목회를 시작한 전도사 때 성도들 보고 “철야기도 하라. 새벽기도 하라.”해서 그들을 교회에 불러다놓고 기도를 하는데, 정작 전도사인 내가 오래 해야 되는데 몇 마디만 말하고 난 다음 할 것이 없어요. 참 딱합니다. 사람들은 주의 종이 기도를 열심히 하고 많이 하면 눈 떠서 보고, 또 다시 계속 기도하고, 보고 기도하는데, 아니 주의 종이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가만히 보니깐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는 다른 교회 장로님이 우리 교회 기도하러 왔는데 그 분은 다 기도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갈 때까지 기도를 계속 해요. ‘내가 저분의 기도를 배워야 되겠다!’싶어서 한참 기도하는데 뒤에 살~ 기어가가지고서 들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기도를 저런 기도를 하느냐?’,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장로님!”, “아이 놀랐네.”, “무슨 기도가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러니까는 “전도사님 기도할 것 제목이 없는가 봅니다. 나는 북한에서 6.25사변에 자식들 데리고서 죽음의 고비를 겪어 이남에 내려왔습니다. 지금은 남대문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내가 겪은 모든 말을 하면 하나님이 귀찮게 여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걸어온 길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저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어요. 모든 것 조차.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나쁜 것은 좋게 만들어줄 것이니 좋고, 그러니 좋은 일은 좋아서 감사하고, 나쁜 일은 좋게 만들어 주시니 감사하므로 그저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러더니만 꿇어 엎드려 또 계속 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 장로님의 간증을 듣고 저도 상당히 도움을 받아서 그 다음부터 기도할 것이 없으면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아따 우리 전도사님 기도 열심히 하고 많이 한다.” 그렇게 말하면 “저런 말을 해주시는 교인들이 있으므로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여러분 뚜렷한 목적과 그 목적을 향한 도전을 가지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 목적을 바라보고, 그것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병 낫기 원하는 사람이 “하나님 무릎 관절을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고 난 다음에는, “우리 아버지 축복하시옵시고, 우리 어머니 축복하시고, 우리 아들자식들 축복하시고, 그 다음에 무릎 관절 낫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고 또 나갑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 축복하시고, 교회 목사 축복하시고..” 왜? 기도를 길게 해야 하나님이 들어줄 줄 알고 기도를 그렇게 소설처럼 꾸며내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고 “하나님 무릎 관절 고쳐 주시옵소서. 고쳐 주시옵소서. 고쳐주시옵소서. 무릎 관절 고쳐 주시옵소서. 고쳐주시옵소서.” 그렇게 나중에 하나님이 귀찮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야~ 들었다, 들었다. 안다. 고쳐주겠다!”고. 그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이 여러분 기도를 들어주시면 여러분 마음속에 확신이 확 다가옵니다. 보통 것이 아니라 이젠 낫게 해주겠다는 확신이 여름에 더운 기운이 불어오듯이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고 평안이 다가와요. 마음이 불안하지도 아니하고, 밍밍하지도 아니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걱정이 싹 사라져 버리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마음이 하하하하~ 웃음이 나옵니다. 하~ 기쁨이 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그 기도는 끝장이 났습니다. 응답이 이미 온 것입니다. 꼭 끼고 있지 마십시오. 마음에 확신이 있느냐, 평안 하냐, 마음에 웃음이 나오고 즐거움이 있느냐. 그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그것이 없을 때 마음에 불안하고, 근심 걱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확신이 오지 않고 늘 두려움이 있습니다. 슬픔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를 계속하면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5절로 8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세 덩이의 떡을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다 하면 그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히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고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밤중에 잠자리에 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대문을 두드립니다. 똑똑똑똑똑. “누구요?”, “아 이웃에 있는 친구 아무개요.”, “왜 밤에 왔소?”, “아 내 벗이 여행 중에 왔는데, 밥을 먹지 못해서 굶주렸어요. 우리 집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떡 세 덩어리만 빌려 주십시오.”, “아이 여보소 지금이 무슨 시간이라고 이렇게 잠을 깨우는거요? 애들도 다 잠자고 있으니 내일 아침에 오시오.”, “아유 내일 아침이면 저 사람들이 굶주려서 고통당할 것인데 조금 수고하더라도 떡을 좀 빌려주십시오.”, “안 돼요. 가요 가.”, “떡 좀 주세요.”, “안 돼요.”, “떡 좀 주세요.”, “안 돼요.” 떡떡떡~ 떡떡떡~ 떡떡떡~ 떡떡떡~ 나중에는 도저히 친구로 인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일어나서 떡 덩이를 빌려줬다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주님께서 중언부언하라고 말 안 했습니다. 떡을 구했으면 떡을 계속해서 구하라. 떡떡떡~ 떡떡떡~ 떡떡떡~ 하나님은 여러분이 아주 근사하게 웅변조의 기도를 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웅변이야 하나님이 얼마나 잘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진실성을 원하는 것입니다. 말을 잘 못 하더라도, 짤막한 기도라도 진실성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기도할 때,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원한이라고 말했는데 마음에 불같은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면 그것이 권능이 있습니다. 참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면 마음이 동하여 기도응답을 쉽게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친구가 와서 도움을 구할 때 마음에 원한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고하면 마음이 동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없이 자주자주 인간 보기에도 귀찮을 만큼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믿고, 응답할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희 어머님이 94살에 하늘에 가셨지만은 이 세상에 계실 동안에 한 번 신우염을 앓았습니다. 병원에 모시고 가니깐 병원에서 “이제 나이도 많고 신우염에 걸렸으니깐 그대로 참는 것이 좋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아프면 기도하러 가고, 늘 기도를 했는데, 내 어머님이 아파서 씨름을 하니깐 정말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매일같이 어머님께 심방을 가서 안수기도를 합니다. 오늘 기도해도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안 나은 거 같기도 하고, 매일마다 가면 어머니에게 “좀 어때요?”, “아이고 그저 그렇다. 걱정하지 마라” 그게 더 걱정이 돼요. 한 달을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어, 두 달을 기도해도 점점 더 나빠져, 삼 개월을 기도를 해도 안 나아. ‘이거 내 목사 자격이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까지 났습니다. 그래가지고 6개월이 넘어서 하루는 ‘정 견디지 못하니깐 뿌리를 뽑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님 오늘 긴 시간동안 기도할 테니깐 다리 아프지 않게 편안히 앉으시라”고 그러고는 안수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어머니 신우염을 고쳐 주시옵소서. 너 이 신우염은 물러가라! 건강하라! 신우염은 물러가라. 건강하라! 신우염은 물러가라! 건강하라!” 그렇게 기도하다가 나가 졸기도 하고, 어머니도 졸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졸면서 한번 큰 소리로 “신우염아 물러가라!” 그러니까는 어머님이 내 손을 잡으시더니만 “됐다 얘야 됐다.”, “뭐가 됐습니까?”, “내가 자네가 기도하는데 지금 방금 꿈을 꾸었네.”, “무슨 꿈을 꾸었습니까?”, “네가 잔디밭에 가더니만 잔디를 손으로 잡고서 잡아당기면서 ‘뽑혀라! 뽑혀라’하는데 안 뽑히고 찍찍찍 뿌리가 붙어가지고서 안 뽑히더니 네가 큰 소리로 ‘뽑혀라!’하니까는 뿌리가 확 뽑히면서 네가 확 뒹굴어지면서 손에 보니까 뿌리가 다 들추어낸 잔디가 됐더라. 내 병이 바로 그 잔디 아니냐?” 그래서 내가 생각에 “할머니가 나이가 많으시니깐 노망기가 있어가지고서 쓸데없는 말을 하시는구나” 아 그런데 그 다음부터 전화하니깐 “이제 괜찮다 얘야. 깨끗이 나았다.” 굉장히 인상적인 간증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그 다음부터 제가 기도하면 쉽게 물러가지 않습니다. 나무를 뽑을 때도 여러분께서 가서 한번 뽑으려고 해보면 꿈쩍도 안하지 않습니까? 밀었다가 당겼다가, 밀었다가 당겼다가 하면 조금씩 흔들리다가, 좀 많이 흔들리다가, 대단히 흔들리다가 나중에는 뿌직하면서 뽑히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마귀가 뿌리를 내려서 오만 힘을 다해서 그 뿌리를 박은 물체를 먹으려고 할 때 그 마귀를 쫓아내는 것입니다. 뿌리가 뽑히도록 당겨야 돼요. 혼자서 당기는 것 보다 두 사람이 하면 더 좋고, 세 사람이 하면 더 좋습니다. 믿음을 합치면 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인내력을 가지고 당기면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병이 고침 받으려면 인내력을 가져야 돼요. 응답 받을 때까지 여러분 뒤로 물러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어머니 치료를 해주시는 것을 응답받고 난 다음에, 그 다음부터 끈질기게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하면 대다수의 병은 다 낫습니다. 그렇게 인내를 갖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의 진실성을 시험해 보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그냥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기도제목을 하는 것이냐,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가 필요해서 하는 것이냐’ 이것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시편 40편 1절로 2절에 보면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제물로 드리러가요. 그 아브라함도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정말 제물로 드리라 할 것이 아닐 것이다’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하룻길을 갔습니다. “아버지 피곤하시죠? 누우세요. 내가 안마해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팔다리를 주물러 주시고,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고 하는 그 아들을 바라볼 때, 마음이 녹아지는 것 같습니다. 또 이틀 째 걸어가고, 삼일 째 그 모리아 산에 와서 산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 제사를 드리러 가면서 양을 잡을 칼도 내 쥐고 있고, 장작도 내가 짊어지고 있는데, 제사 드릴 양은 어디 있나이까?” 정말로 아브라함이 보통 사람 같으면 털썩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그래, 여기에 제물을 잡을 칼도 있고, 제물을 드릴 장작도 있지만은 불도 있지만은 제물은 하나님이 예비하신다.” 그래 다 올라가서 둘이가 힘을 합쳐서 제단을 만들고 장작을 펼쳐놓고 그 다음에 칼을 아들의 손에서 자기가 쥐고 “아버지, 왜요?” 아버지가 가만히 자기를 쳐다보면서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흐를 것입니다. “얘야. 제사를 드릴 제물은 너다. 하나님이 너를 잡아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다.” 여러분 보통 어린아이 같으면 이 말을 듣고 “아버지 미쳤나요?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갑니다.”하고 뛰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장작 위에 스스로 드러눕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나를 제물로 삼으려고 하셨으면 아버지가 그렇게 해야지요.” 장작 위에 드러눕고, 아버지는 눈을 부릅뜨고 칼을 들고, 제물로 드린 짐승은 잡을 때 대동맥을, 대동맥을 여길 자릅니다. 목을 향해 내리치려고 하는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 아들 이삭을 죽이지 마라. 내가 네 아들조차 아끼지 않고 내게 내어놓는 것을 보니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 여러분 이것은 사랑하지 않고는 이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 증거 없는 입술로 사랑한다는 것은 뭐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만은 별로 힘이 없습니다. 사랑은 그 사랑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시고 그 이삭 아들을 크게 창대케 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성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저 사람들이 하는 기도는 진짜다.’ 자기가 이익이 되면 하고, 손해가 되면 안 하는 진실성 없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은 알아내신 것입니다. 그러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귀찮을 정도로 원한을 갖고 기도하라. 그건 제가 늘 말하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귀찮아 할 정도로, 주야로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원한을 하나님께서는 속히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줄 압니다. 항상 하나님을 향해서 기뻐하라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예요. 아들 하나님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불의와 질병과 저주와 죽음을 대신 짊어져 주신 구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할 수밖에요. 그 다음에 성령님은 여러분의 보혜사 하나님인 것입니다. 보혜사는 여러분과 항상 함께 있어 여러분을 도와주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성부하나님 아버지, 성자 예수님, 성령 보혜사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하나님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좋게 해주신다고 꼭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기 때문에 내가 기뻐합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보혈을 흘려주신 구주이기 때문에 기뻐합니다. 성령님, 성령님은 보혜사로서 지금 나와 같이 계시며 항상 나를 돕기 때문에 내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항상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좋은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로 11절에 보면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아니하겠느냐’ 여러분의 지금 구하는 것 하나님이 기다려서 진실한 뜻이 있다면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한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다. 예수 하나님은 나의 구주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이시다.” 구약 4000년 동안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전면에 나와서 일하시고,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 배후에 서서 일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고 신약 33년 동안은 아들 하나님 예수님께서 전면에 나와서 일하시고,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 뒤에서 역사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활동이 두드러져 보여 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하신 이후로는 보혜사 성령님 하나님 시대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순절날 이후로 지금까지 성령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령님의 이름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나를 돕기 위해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 그러므로 여러분이 있어달라고 해서 계신 것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와서 같이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아버지는 보혜사 성령님 배후에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굉장히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의 하나님이 아버지요, 아들 예수님은 나의 구주요, 성령은 나를 돕는 보혜사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또 좋은 일이 반드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생활보다 더 즐겁고 기쁜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어려운 일이 다가오지만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나를 돕는 보혜사 성령이 계신 것입니다. ‘아 보혜사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뜻을 좇아 우리 성도들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시옵소서.’ 성령이 재깍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항상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창조적으로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 가운데 꿈을 꾸고, 꿈을 믿고, 입술로 고백을 하면은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좋은 일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