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들이 행하는 표적
(막 16:17-20)

16.04.03. 주일4부 예배

<서론>
‘믿는 자들이 행하는 표적’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고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을 증거 하는 물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게 됩니다. 물 침례란 우리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물 무덤에 들어가 과거를 청산해 버리고, 물에서 올라올 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함께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한 집안에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자녀가 누리는 여러 가지 권리를 누리게 됩니다. 평범한 집안에 태어난 어린아이들도 그 집안의 자녀로서 권리를 행사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세가 얼마나 위대하겠습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은 권세를 사용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는데,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한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요즘 같은 21세기에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면 미신 같은 소리를 한다고 비웃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비웃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웃음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 다니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있으니 사람들이 저보고 “무식한 사람, 웃기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내내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굉장히 일이 바빴어요. 요단강에서 세례 받고 난 다음 성령 충만 하자마자,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 고치는 일로 매일매일 바빴습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죄 용서함 받는 것과 병 고침 받는 것으로 날이 시작하고 끝이 난 것입니다.
우리가 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에 시골집 천장을 쳐다보면 천장에 거미줄이 양 사방에 있어요. 이쪽에도 거미줄이 있고, 저쪽에도 거미줄이 있고. 그러면 빗자루를 가지고 와서 싹 쓸어버립니다. “이제는 거미줄 없어졌다!” 그런데 한 이틀 자고 나면 또 여전히 거미줄이 꽉 쳐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돼서 거미줄이 이렇게 쳐 있느냐? 거미줄은 거미가 파리 같은 것을 잡아먹기 위해 쳐 놓은 거미줄이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줄입니다. 아무리 빗자루로 사람들이 쳐 없애버려도 또 다시 거미줄을 치는 것입니다. 그 거미줄을 진짜로 없애 버리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여러분? 파리를 잡아버리면 됩니까? 거미를 잡아버리면 됩니다. 거미를 잡아버리면 거미줄이 없어지지요. 그러면 우리들의 생애 속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다가오고, 병들고, 사업이 시원찮게 흔들거리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을 때 이것을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기도할 때 여러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귀신을 쫓아야지, 귀신을 그대로 내버려 놓은 다음에야 마음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안 올 수가 없고, 귀신이 억압해서 병들게 되고, 귀신의 훼방으로 내 인생의 바다에 파도가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은 사람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 위해서는 귀신을 쫓아내야 돼요.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귀신을 쫓아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귀신을 쫓아내며
예수님께서 쫓아낸 귀신들은 사람 속에 들어와서 사람을 억압하여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성경에는 사람 병든 것은 마귀가 와서 올라타서 짓누르기 때문에 병든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오브세션(obsession)이라고 처음엔 따라다녀요. 그 다음엔 오프레션(oppression)이라고 그 다음에 올라타고 눌러요, 그 다음엔 디프레션(depression)이라고 마음에 낙심하게 만들어요. 그 다음엔 포제션(possession)이라고 완전히 노예가 되어서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여러 단계를 통해서 귀신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웃기는 소리가 아닌 것입니다. 종교적인 의식도 아니에요. 우리가 더 잘 살기 위해서는 귀신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2절에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귀신이 들렸는데 귀신이 그 사람 장님이 되게 하고, 벙어리 되게 하고, 병자가 되게 했는데,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 버리니깐 눈도 보고, 입이 열려서 말도 하고, 건강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거라사 땅에 군대 귀신 들린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는데, 누가복음 8장 30절에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군대 귀신이 들렸으니 살아남은 것이 희한하지요. 온 전신에 만 가지 고통을 다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군대 귀신을 한 마디로 쫓아 낸 것입니다. 귀신이 육신에 고통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 환경에 풍랑을 일으켜 괴롭히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 22절로 24절에 보면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여기에 바람과 물결을 일으킨 배후의 악마는 귀신입니다. 우리 가정에 귀신이 들어오면 가정에 풍파가 일어나서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사업에 귀신이 붙으면 사업이 뒤엎어지는 것입니다. 귀신이 들어와서 여러분의 가정과 생활에 바람을 불게 해서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많이 발달되고 사람의 지혜가 탁월하게 나타났지만은, 아직 귀신을 못 보니깐 쫓아내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가정에도, 생활에도 고통을 많이 당합니다. 여러분 어렵거든 보따리 싸고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 가정에 귀신은 물러가라. 우리 사업을 훼방하는 귀신은 물러가라!” 쫓아내요. 그래야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제자들처럼 “주님, 우리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살아 계시면 이런 일도 돌보아 주지 않습니까?”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배가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는 제자들인 우리들에게 큰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1절로 2절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여기에 보니깐 모든 귀신입니다. 모든 귀신을 다 쫓아내요. 그런데 귀신이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귀신도 저항하며 나가니까 저항하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귀신 쫓아내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 권위는 권세라고도 말하는데 헬라어로는 익수시아(ἐξουσία)라고 말하고, 능력은 두나미스(δυνάμὶς)라고 말합니다. 익수시아 권세는 무엇이 다르냐. 자동차는 엔진에 두나미스, 능력이 있습니다. 우~웅~ 그러면 그 엔진의 마력에 따라서 굉장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힘을 가지고 달리는 차를 그 자리에 불러 세우는 것은 키가 조그마하고 빼빼한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경찰관이 휘익~ 그러면 덜컥 섭니다. “아 저런 바보가 어디 있나?” 익수시아(ἐξουσία) 권세는 능력보다 한 단계 높은 권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귀신이 2,000마리가 오든 4,000마리가 오든 와서 뒤엎으려고 달려들 때,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 귀신들이 권세가 없으니깐 권세 외침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자발적으로 권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8장32절)’ 알아야 쫓아내지, 모르면 쫓아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 보십시오. “나는 귀신을 쫓아낼 권세가 있다.” 귀신은 굉장히 강한 힘을 가지고 사람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권세 앞에는 견디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기도하고 성령의 권세와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면 귀신을 파죽지세로 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대적을 어떻게 하느냐. 여러분이 권세를 가지고 있으니 권세로 대적하고, 또 능력도 주님이 주셨습니다. 권세만 주는 것이 아니라 힘도 주셨으니 그 두 가지를 사용해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많이 늙어서 허리도 완전히 굽고,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두워지고, 세상 떠날 날이 가까운 분으로 자기 몸도 잘 다스리지 못할 지경인데, 그 할아버지가 “얘야, 여기 심부름 좀 해라. 오너라.” 그럼 내 체험으로 얘기 합니다. 할아버지 방에 가면 “빨리 이 요강 좀 가져다가 붓고, 물에 씻어서 오너라.” 여러분 요강이 뭔지 모르지요? 우리 어릴 때는 제일 나이가 어린 심부름꾼이 요강을 씻어야 돼요. 아무리 할아버지가 힘이 약해도 손주보고 요강 씻어오라고 하면 손주가 씻어 옵니다. 할아버지는 권세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여러분 보고 “네가 뭐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됐는데 건방지게 그러냐?” 건방지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즉시 그 자리에서 권세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받아요. 여러분이 권세를 받으면 권세를 입술의 명령과 기도로써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 보세요. “내가 네게 명하노니 물러가라. 너 이 귀신은 나오라!” 그거를 반복하는 겁니다. 그건 칼과 같아서 귀신을 한번 찔러서 안 죽으면 자꾸 찔러야 돼요.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물러가라!” 그러면 점점점점 약해져서 나중에는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질병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고, 집안에 풍파가 일었는데 바람을 잠잠케 할 수 있어요. 귀신이 배후에 있어 예수님이 바람과 파도를 꾸짖은 것은 바람과 파도가 예수님 말씀을 듣는 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 배후에 바람과 파도를 일으키는 귀신이 있어서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이 쫓겨나고 나니까는 바다가 조용하고 잠잠한 것입니다.

2. 새 방언을 말하며
그 다음에 방언을 말하며. 방언이라는 것은 성령 충만한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성령이 우리 입술을 통하여 방언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게 되면 말하는 사람도 성령 받은 줄 아는 것입니다. 아주 열정적으로 간구하면 성령을 받는데, 성령을 받을 때 방언을 말하면 자기도 성령 받은 줄 알고, 다른 사람들도 성령 받은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 다른 애들은 다 기도할 때 방언을 말하는데, 저는 방언을 하지 못해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은 영어를 잘 못하니깐 나에게 방언하는지 아닌지 들으러오면 영어를 사용해서 기도를 한 것이에요. 막 영어를 빨리 하면 “야~ 너 참 방언 잘한다. 영어 비슷한 방언을 하는구나.” 그래서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나중에는 영어기도도 안 나오려고 그래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삼각산 꼭대기에 성령 받으러 올라갔어요. 근데 뭔 기억이 나냐 하면 삼각산에 호랑이가 한 번씩 꼭 나타난다 그래요. 그러니 밤이 되니까 얼마나 무섭습니까. 돌멩이를 잔뜩 쌓아놓고 옆에, 양 손에 들고, 호랑이가 오면 때리려고 그러면서 “성령 주시옵소서. 성령을 주시옵소서.” 정신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새벽녘까지 되니까 지치고 피곤하고 못 견디겠어요. ‘에라, 마지막엔 범에 물려갈지라도 돌멩이 던져 놓고 기도해야 되겠다’고. 이거 들고서 기도 안 나오니까 던져놓고 그냥 고함을 치고 기도하니까 아, 혀가 돌아가서 내가 모르는 말이 입에서 나와요. 그러고 보니 방언을 해요. 그래 ‘아차! 나도 이제 성령 받았다.’ 그래가지고서 언제까지 방언을 했느냐 내 친구들이 볼 때까지 방언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산에서 내려오는데 손을 이렇게 가리고 자꾸 방언 하는 거예요. “라라라라.” 그 버스를 타는데 버스 차장이 돈을 달라고 하는데 돈은 주면서 잔돈 바꿔달라는 것도 “라라라라. 라라라라.” 그래 학교 기숙사에 뛰어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방언을 말하고 들어가니까 애들이 모여와서 “야, 너 굉장한 은혜 받았구나.” 그래서 방언체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방언이 굉장히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친히 기도를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가 안 나올 때 또 문제를 당했을 때 성령이 미리 알고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대신 기도해주는데 저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우리 구역장 한 분이 구역회를 이끌어 가야되는데 마침 사업을 해야 될 일이 있어서 은행에서 돈을 찾아서 서랍 속에 넣어놓고 집에 아무도 사람이 없으니까 집을 치워놓고 구역예배 인도하러 갔습니다. 구역을 인도하려는데 마음에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자꾸 생각이 나고 마음이 굉장히 괴로워요. 그래서 구역회에 예배는 간단히 보고 기도를 할라니까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 모르겠어요. 속에서는 기도하라고 막 강압을 하는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는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방언으로 막 기도했어요. 막 방언으로 땅을 치고 간절히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구역예배 다 마치고 집에 왔는데 집 마당에 온 가지 농장 속에 있는 옷가지가 다 흩어졌어요. 하늘이 아득합니다. 도둑놈이 들어왔구나. 그래보니까 농장 문 다 열어놓고 옷을 다 뒤져놨는데 돈만 손을 안대고 그대로 있어요. 도적이 들어와서 뒤지는데 하나님이 방언을 통해서 기도를 하게 해서 눈을 이렇게 막아버렸어요. 그러니까 돈은 그대로 두고 갔어요. 그 구역장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서 한번 와보라고. 이런 기적이 세상에 있을 수 있냐고. 천당에 갔다 온 기쁨이 이것인가 보다고. 그렇게 기뻐하고 뛰는 것을 보았습니다. 방언을 하면 우리가 마땅히 빌어야 할 바를 모를 때 직접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고 또 이사야 28장 11절로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고통스러울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평안하고 상쾌해집니다.

방언을 하면 안식과 기쁨이 다가옵니다. 저는 매일 같이 가장 괴롭고 어려울 때 방언을 많이 합니다. 방언은 여러분이 하면 할 수 있고 안하면 안 나는 것입니다. 근데 방언을 계속 하면 희한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쾌해지는 것입니다. 방언은 떨리는 입술과 다른 방언이라고 말했으니 보통 자기가 제어하는 것 같은 생각이 나옵니다. “라라라라라.”하니까, 그러나 그건 자기가 하지 않고 성령이 혀와 입술을 붙잡아 합니다. “니하라바 라샤 나 시키로보 로쇼 니 랄레이시이아봐 리카리우챠” 외국어 같지요? 성령님이 “오늘 설교를 잘 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가 대만 성회에 참석했을 때, 성회 위원장이었던 목사님이 제게 이런 간증을 했어요. 상해에서 신학생으로 공부할 때 중국이 공산화가 되었습니다. 공산정권이 신학교를 접수해서 문 닫는다고 통보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생이 1,2,3학년, 4학년 전부 다 함께 강단에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제 우리 중국은 교회가 다 무너지고 신학교가 문을 닫고 복음의 길이 막히니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1학년에서 4학년까지 기도하는데 다 방언을 말했어요. 누가 방언을 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일시에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마음에 믿음이 굳건해져서 그 다음날 공산당 간부가 와서 신학교 문을 닫아버렸는데 이들이 전부 고향으로 내려가서 지하교회를 세웠습니다. 방언을 하니까. 믿음의 증거가 뚜렷하니까. 공산당이 교회를 접수하고 난 다음에도 가정교회가 활발하게 자라서 오늘날 같이 국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된 것은 전교생이 방언을 말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고 제게 간증을 했어요.
그러나 정말 놀라운 일은 전 세계가 그때 다 떠들썩하고 신문기사에 났던 일이, 빌리 그래함 목사가 모스크바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큰 소리로 “모스크바에 사는 소련 백성 여러분, 예수님을 안 믿으면 멸망합니다.” 그런데 통역이 통역을 안 하고 가만 입을 닫아버려요. 그래서 빌리 그래함 목사는 생각하기에 ‘아 이거 통역했다가 비밀경찰에 잡혀가서 혹독히 고문당할까 싶어서 통역 안하는구나.’ ‘그럼 옜다 통역을 안 하면 내가 한번 영어로 더 해야지.’ 그래서 “소련성도 여러분, 소련 시민 여러분,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여러분 다 지옥 갑니다.” 그러니까 “아멘!” 하고 박수를 치더라고. 근데 통역은 안 하거든, 가만히 있어요. 그래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아니 당신 왜 2번이나 통역을 안 하냐고.” “왜 내가 통역을 안 해요?” “첫째, 내가 예수를 안 믿으면 소련 사람들 지옥 간다고 말하니까, 당신 아무 말도 안했지 않냐고.” “아니, 왜 그런 것을 내게 묻습니까? 목사님이 금시 소련말로 그 말을 하기 때문에 소련 말을 내가 통역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그럼 두 번째, ‘내가 소련 사람들 여러분 예수를 안 믿으면 멸망 받습니다.’인데 그것도 당신 통역 안했으니까.” “아 목사님 그것도 소련 말로 했지 않습니까?” 이 빌리 그래함 목사가 나는 소련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데 어떻게 소련 말을 한단 말인가? “그건 우리는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이 두 번이나 소련 말로 말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들었으니까 박수를 치고 아멘을 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 입술을 통해서 영어를 하는 줄 알았는데 소련어로 말을 해서 굉장한 센세이션이 일어난 것입니다. 꼭 필요하면 여러분을 하나님이 손잡고 가서 외국인 앞에 가서 외국말로 술술술 말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못하실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선교여행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어떤 때는 외국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렇게 유창하게 외국어가 나오는지 영어를 해도 하나님 성령의 능력으로 하게 되면 멋지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 받고 새 방언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신앙이 획기적으로 장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뱀을 집어올리며
그 다음에 ‘뱀을 집어 올리며’ 바울이 배로써 이곳저곳 선교여행을 갔는데 한번은 파선되어서 섬에 겨우 피난했는데, 날이 많이 추워가지고서 불을 피워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있는데 나무를 한 줌 쥐어서 불속에 집어넣는데 나무속에 있던 독사가 바울선생의 손에 달려 올라올 때, 그래 사람들이 주민들이 보고 “아 저 사람 살인자구나. 파선 되서는 섬으로 구조됐는데 모닥불에 뱀에 물려서 죽으니 저 사람 살인자다.” 그러나 툴툴 털어버리고 마는데 그냥 퉁퉁 부어서 쓰러질 줄로 생각했는데 아무 악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아 저 사람 살인자가 아니라 성자구나.” 그렇게 놀란 사실이 성경에 기록돼있는 것입니다. 일부러 ‘난 예수 믿으니까 뱀에 물려도 안 죽는다.’하면서 돌아다니다가는 물려서 죽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뱀에 물려서 죽을 수 있는데도 안 죽는 사건은 저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시골 농사짓는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도할 때 소개하는 사람들 보니까 이 사람도 뱀에 물려서 안 죽고 살았는데 퉁퉁 붓고 독이 오를 것이 독이 안 올랐다고. 그런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믿으면 뱀에 물려도 안 죽을 터이니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만 장난으로 뱀에게 물리고 돌아다니지 마시기 바랍니다.

4.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독이란 먹으면 마시면 죽지 않습니까? 제가 브라질에서 집회를 할 때 약 백이삼십만 명이 공군 비행장에 모였는데 아침에 조금 먹고 오후가 됐는데 식사를 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인산인해로 모여 있어서 빨리 집회를 시작해야 되는데 밥을 못 먹어서 부탁을 했습니다. 헬리콥터로 시내에 들어가서 김밥을 좀 만들어서 헬리콥터로 운송을 하라. 왜 헬리콥터로 해야 되냐면, 사람 뚫고 들어올 수 없어요. 강단 위에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강단에 헬리콥터가 내려서 밥을 줘야 돼. 그래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했으니) 내가 먼저 먹어야 될 것 아닙니까? 내가 설교해야 되니까. 그런데 우리 일행 중에 교포 변호사 김 변호사라고 있었는데 헬리콥터에서 김밥 내려오는 걸 다 가로채서 먹어버렸어요. 아 내가 배고파서 설교를 잘 못하겠는데 그가 다 지금 먹어버려서 쥐어박아버렸습니다. 그랬는데 아 설교를 하는데 뒤에 야단 야단법석을 합니다. 아 왜 그러냐고 보니까. 누가 그 김밥에 독을 넣었어요. 와~ 한 번에 일시에 이렇게 벌겋게 부어오는 것 처음 봤어요. 그러니 헬리콥터를 불러라.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 된다. 헬리콥터를 부를 수도 없고, 병원으로 갈 수도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하다 말고 잠시 기다리라고 해놓고 난 다음 손을 얹어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사람이 내 김밥을 대신 먹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안 죽고 살도록 해주시옵소서.” 처음에는 남의 김밥을 먹은 것이 아주 미웠는데 아 독이 든 김밥을 대신 먹어주어서 무사히 설교하게 만들어 주시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런데도 안 죽었어요. 지금도 살아있어요. 세계 선교를 다니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확실히 내용을 모르고 음식 같은 것을 사먹을 수가 없어요. 필리핀에서는 설교를 운동장에서 했는데 설교하러 올라가기 전에 이 강단 밑에서 누가 자꾸 뭘 만지는 것입니다. 경찰관이 와서 “너 누구냐?”고 하니까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 사람이 여기 와서 뭐하냐?” “아, 마이크 시설을 점검한다고.” 그런데 우리 팀 한사람이 와서 보니까 “우리가 데려온 한국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화다닥 뛰어 달아날라 하거든. 그래 붙잡아서 보니까 북한에서 내려온, 사제폭탄 가지고 내려온 사람으로서 김정일이가 내가 세계 각국에 돌아다니면서 북한에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니까 “저 놈 죽이고 오너라.” 그래서 시한폭탄 장치를 했어요. 그 장치하는데 하나님이 안 잡았으면 그날 필리핀에서 내 천당 갔습니다. 그 잡았는데 시한폭탄이야. 그 우리 일행이 갑자기 경찰이 호텔로 와서 우리를 데리고 비행장으로 가서 “빨리 떠나라.” 그래 떠나서 살아와서 지금도 여러분 앞에 서있는 것입니다. 이 독이라는 것은 그런 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독이 있습니다. 성내는데 마음에 분을 내면 이것이 굉장한 독이 되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별 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면서 흥분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싸움을 거는데, 이것은 마치 독약을 매일 조금씩 먹는 것과 같다”고 미국의 듀크 대학 레드 포워드 윌리암스가 말한 것인 것입니다. 분노가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심하게 화를 내고 난 직후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무려 8배나 높아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노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독인 것입니다.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 독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엄청난 독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분노 지수가 올라갈수록 자살을 생각할 위험이 15%정도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분노라는 독에 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속히 용서해줘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제가 여러분 곧 용서할 테니까, 여러분도 저를 곧 용서해주십시오. 용서가 분노라는 독을 제하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하지 말고 차분한 마음으로 일을 해야 될 것입니다.

5.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건 너무나 다 아는 잘 아는 사실입니다. 기독교는 병 고치는 종교인 것입니다. 죄 사함의 종교일 뿐 아니라 병 고치는 종교로서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죄인들과 환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면 죄인들과 환자들로 둘러싸여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잘 믿는 사람이면 여러분은 안 믿는 사람과 병자들이 여러분 주위에 늘 둘러싸여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 나는 목사가 아닌데요?” 목사가 아니라도 초대교회 스데반 같은 사람은 집사인데 수많은 병을 고친 것입니다. 빌립도 집사인데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니 수많은 사람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고 절름발이와 앉은뱅이가 나아서 그 성에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언제나 꼭 가지고 있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죄 사함 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병 낫습니다.” 이 말을 안하면 여러분 완전한 복음전도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활의 2/3를 병 고치는데 보냈습니다. 예수님 계신 곳에 병자가 그냥 돌아간 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병자라도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병이 나았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핍박하고 무조건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예수님이 병자를 고쳤지 그대로 돌려보낸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도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여러분이 아프면 자기 손으로 자기에게 안수를 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 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님, 내 이 심장을 튼튼하게 해주십시오. 심장을 억압하는 원수귀신아 물러가라.” 하나님을 기다리고는 하나님이 그 손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어떻게 되었던 올바른 교회는 죄인들이 꽉 들어차야 되고 환자들이 꽉 들어차야 되는 것입니다. 죄와 병은 마귀가 가져오는 것입니다. 죄와 병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서 청산한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죄와 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죄와 병은 쫓겨나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이와 같은 증거를 주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