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나눌 때 온다
(눅 6:38)

2016.4.24. 주일4부예배 설교

<서론>
‘행복은 나눌 때 온다’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사회학자 장 지글러는 탐욕의 시대라는 책에서, 매년 천 만 명이 넘는 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가난으로 인한 영양 결핍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이 지구상에 식량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 인구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이 지상에 양식은 해마다 남아돌아가는데 굶어 죽는다는 것은 바로 탐욕 때문에, 나누지 않기 때문에 그런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꼭 돈이 많아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골목골목 다니며 폐휴지를 모아서 기부하는 할아버지도 있고, 구두를 닦아주고 받은 돈 중, 동전을 따로 모았다가 기부하는 구두미화원도 있습니다. 또 어떤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매달 얼마씩 내어 꾸준히 모았는데, 그 돈으로 아프리카에 우물을 설치하여 많은 사람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힘들고 각박한 세상이지만 이처럼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베푸는 마음이 있어서 세상이 따뜻해지고 살 맛 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못한다고 안 된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부정적인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습고 재미가 있어서 제가 여러분 앞에 인용을 하려고 합니다. ‘10대는 철이 없다. 20대는 답이 없다. 30대는 집이 없다. 40대는 돈이 없다. 50대는 일이 없다. 60대는 낙이 없다. 70대는 이가 없다. 80대는 처가 없다. 90대는 시간이 없다. 100대는 다 필요 없다.’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이렇게 다 없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꿈과 믿음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십자가에 죽어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꿈을 갖고 믿음을 갖고 담대하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없다’와는 인연이 먼 사람입니다.

<본론>
1.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게 된다
생각한대로 인생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없다고 생각하면 패배의식에 잡히게 되어 모든 것을 없는 방향으로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모세가 열두 명의 정탐꾼을 택하여 가나안땅을 탐지했을 때, 열 명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의 안경을 끼고 출발했습니다. 그들 생각이 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40주 40야를 정탐한 곳에 할 수 없는 것만 바라보았었습니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보면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말할 수 없는 부정적인 관찰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조금만 잘못하면 부정적인 마음의 생각을 가지고 모든 환경에 부정적인 환경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들은 우리와 같이 계신 하나님을 항상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을 늘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5절로 6절에 보면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주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용감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주님께서 책임지고 같이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열 두 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그런 안경을 끼었기 때문에 그들이 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는 신념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정탐한 땅마다 “아, 이거 이미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땅으로 주셨다.” 그러므로 이미 받은 마음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모두다 우리 밥이다. 우리 밥이다.” 그러므로 민수기 13장 30절에 보면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그렇게 했으나 백성들이 돌을 들어서 갈렙을 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열두 정탐꾼 중에 열 명처럼 부정적인 생각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못하고 안 되는 것만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마음속에 늘 느끼고 “주께서 나와 같이 계신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니 감사합니다.” 마음에 느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같이 있으리라’ 이 말씀을 의지하고 같이 계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늘 훨씬 뜨겁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8절로 39절에 보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이처럼 사랑하니까 이 사랑의 줄을 누가 끊을 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11절에도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리고 하나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능치 못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 좋다는 것도 하나님 보시기는 좋기 때문에 그것을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나쁜 것은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니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하나님을 따라 가니까 모든 일이 좋게 되고, 우리 밥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스바냐서 3장 17절에 보면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한 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기쁨으로 말미암아 이기지 못합니다. 마음에. 그리고 우리를 보고 즐거이 부르짖으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아 피를 흘리고 몸을 찢고 피를 부어서 우리에게 주어서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살려고 해야지, 인간적인 생각으로 “할 수 없다. 못한다. 안 된다.”고 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꿈을 마음에 품고 믿음으로 안고 미래를 봐야 되는 것입니다.

2. 꿈이 있다고 생각하고 미래를 품에 안아라
우리는 꿈을 품고 믿음을 안고 미래를 보면 미래가 영광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꿈으로 마음에 품고, 믿음으로 끌어안고, 입으로 시인하고 나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7절로 9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이 사람들은 마음에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그 땅을 바라봤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보는 것 마다 “아, 하나님이 주신 것 아름답구나. 하나님이 주신 것 우리 밥이 이렇게 준비되어 있구나. 이것도 우리 땅이구나.” 이미 하나님이 주신 것을 믿고서 바라보니까 모든 것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말하고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개인이나 민족은 망하고, 마음에 꿈을 가지고 믿음을 품고 나가는 민족은 흥합니다. 성경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리라”고 말했지 않습니까? 꿈이 없는 개인도 망합니다. 우리가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마음속에 꿈을 품고 믿음으로 끌어안고 입술로 고백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와서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꿈을 품고 믿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준비된 심정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이미 본 것처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과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유대광야에 나가셨을 때, 남자만 5천 명, 여자, 어린아이들을 합치면 수만 명이 따라 나왔습니다. 시간은 해거름이 되고, 배가 고픈데 어린아이들이나 여자들은 쓰러지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시험해보셨습니다. 빌립을 불러서 “어디에서 떡을 구하여 이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을려냐?” 그러니까 빌립은 아주 당황했습니다. “이 사람이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많고, 떡 살 곳도 없고, 떡 살 곳이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떡을 만들 수 있을 시간도 없고, 이 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돈이 필요한데 그 돈도 없고, 먹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어린아이가 먹지 않은 점심 박스인데 이것밖에 없습니다.”하고 주님께 내놓았어요. 주님께서 굉장히 실망을 했습니다. 왜냐?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면,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집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첫째 어떻게 할까요?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꿈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이 꿈이 아닙니까?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바라보는 것이 꿈입니다. 직장에 들어가지 않은 직장에 들어간 것처럼 꿈꾸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지 않은 집을 이미 사서 들어가 있는 것처럼 꿈꾸어 보는 것입니다. 몸이 병들어서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 걸어 다니면서 부지런히 일할 수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꿈꾸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그러고 믿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해보는 것은 ‘꿈이 있느냐? 믿음이 있느냐?’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빌립과 안드레에게 주님께서 시험하신 것은 주님 명령을 들었으면 못 먹일 것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먹일 수가 있다.”, “어떻게 먹이겠느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먹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계획과 꿈을 꾸고, 계산은 주님께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산을 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분명히 꿈을 마음속에 품은 것을 믿고 주님이 일해주실 것을 알고 계산을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온 안드레 주님께 가져오니까 주님이 그것을 가지고 이 사람들을 다 먹이고 열 두 바구니 남게 하는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계산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삶 속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던 것은 “수고는 너희들이 하지 말고 내가 계산 할 테니까 너희는 내게 맡겨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모든 것을 맡기면 주님이 계산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산은 여러분과 다릅니다. 주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고 여러분 믿음으로 여러분과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외롭지 않고, 버림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3차원의 감각적인 세계를 뛰어넘어 4차원적 성령의 세계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6장 5절로 7절에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그는 못하는 것, 부족한 것만 보았습니다. 안드레는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모두 다 꿈과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가 있어도 꿈과 믿음으로 해결하려고 하십시오. 해결되는 좋은 것을 꿈꾸십시오. 나쁜 것을 꿈꾸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를 흘려 죄를 대신 해주셨고, 허물을 대신 사해주었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여러분 병은 대신 짊어지셨고, 나무에 매달리므로 저주를 대신 갚아주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폐하고 부활 영생 천국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통해서 여러분이 생각하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것은 예수님이 다 책임을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긍정적인 꿈을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나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긍정적인 꿈을 꾸고, 믿음을 가지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종교적인 대상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의 삶에 승리와 성공을 가져오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3.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 것이니
그러고 우리는 신앙생활을 내가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기 위해서 살려고 하면 잘못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되고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은 남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밥을 가지고 있으면 나 혼자 먹지 말고, 모든 배고픈 사람을 불러서 같이 먹기 위해서 밥을 많이 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주리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신앙생활을 복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그릇을 비워서 나누어주고, 빈 그릇을 주님께 가져오면, 주님은 계속해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을 나누어 주십시오. 요한복음 13장 34절로 3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은 참 힘듭니다. 사랑받지 못할 사람을 사랑해야 되고, 용서받지 못할 사람을 용서해야 되니까 힘듭니다. 그 힘든 걸 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힘들게 우리를 위해서 사랑해주신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누어 주는 일을 열심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서로 나누어 준다. 나누어 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더 여러분에게 맡겨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것은 탐욕입니다. 욕심인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우리가 탐욕을 버리고 나누어 주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아끼지 아니하고 여러분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 외롭게 살도록 하나님 내버려놓지 않았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내려와서 우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구약 4천년 동안은 아버지의 시대요, 아버지가 4천년 동안 다스리고, 아버지 뒤에서 예수님과 성령께서 역사한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 33년 동안 아들의 시대요, 아들이 일했었습니다. 아버지와 성령이 아들 뒤에서 역사했습니다. 오순절날 이후로 지금까지는 성령의 시대인 것입니다. 성령이 보혜사가 되어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보혜사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신 이’를 보혜사라고 그럽니다. 그러므로 보혜사는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같이 지금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보혜사를 의지하면 의지한 만큼 역사하는 것입니다. 문을 닫아버리면 보혜사는 역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합니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님이 기쁘고 즐겁게 여러분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에게 불안을 주지 않습니다. 공포를 주지 않습니다. 불신앙을 주시지 않습니다. 마귀가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하는 것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공포심에 붙잡히게 하고 불신앙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을 힘입어서 우리는 마귀를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따라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너 이 원수 귀신아, 너 이 불만의 귀신아 떠나가라! 불안의 귀신아 물러가라! 공포의 마귀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로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 불신앙의 귀신아 나가라! 내게서 물러가라! 따라오지 말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피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버려놓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금요일 날, 우리 기도회 할 때, 제자들이 기도 순서대로 나와 기도하는데 아따 마귀를 쫓아내는데 나보다 더 잘하더라고, 정말 기쁘더라고요. 그렇게 마귀를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이나 가정이나 생활에서 불안과 공포와 불신앙이 따라오지 못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평안, 확신,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할 때 평안을 주시고, 확신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면 성령이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하나님의 뜻은 기도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평안이 확 들어차고 확신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마음속에 불안하고 공포하고 불신앙이 계속 있으면 기도가 모자라고 아직까지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해야 되는데 하나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역시 같이 역사해주시는 것인데, 하나님 뜻을 아는 것은 성령이 여러분에게 평안을 주시고 확신을 주시고 기쁨을 주실 때 성령이 오케이 허가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고 확신을 주실 때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늘나라는 나누는 나라인 것입니다. 욕심의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고, 예수님은 당신의 피와 살을 나누어서 생명을 나누어 주셨고, 보혜사 성령은 당신의 거할 처소를 우리 속에 만들어서 우리와 함께 평안을 나누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고, 믿고, 긍정적인 선언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늘나라를 왕성하게 하시고, 나누어 주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빈손 들 때가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계시므로 언제나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광야에 나가서 5천 명이 아니라 5만 명의 사람이 모여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꿈꿀 수가 있고, 믿을 수가 있고, 입으로 시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맡길 수가 있고, 예수님이 일을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계산은 예수님이 하십니다. 가족이 휴가를 가서 휴가지에서 호텔에 들어가든지 음식을 사먹을 때 엄마가 돈도 없으면서 “돈이 없어 어떻게 하냐?”고 걱정만 자꾸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애들이 “아이고 엄마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 “걱정마라. 돈주머니는 아버지가 갖고 계신다. 우리는 결정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아버지가 걱정이 되면 “너무 비싼 것 먹지 마. 너무 비싼데 들어가자고 하지 마.” 아버지가 할 걱정이지 우리가, 엄마와 애들이 할 걱정은 아닌 것입니다. 엄마와 애들이 결정을 해놓으면 계산은 아버지가 하신다. 애들보고 “계산은 아버지가 하신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우리가 기도하면 믿음으로 기도하고 난 다음에 “계산은 주님이 하신 줄 믿고 감사합니다. 아멘.” 그러면 예수님은 그 크신 기적과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5천 명이 되는 군중이 빌립이나 안드레에게는 많은 수지만 예수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는데 우리를 위해서 큰 기적을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구주가 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여러분을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은 여러분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안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고 평안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