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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입술의 고백 (살전 5:16-18) 2016.05.08. 주일4부예배 <서론>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입술의 고백’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탐욕과 죄악이 짙은 안개구름 같이 우리를 항상 감싸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탐욕의 죄악 가운데서 원망과 좌절과 우울과 고통이 기침처럼 쿨럭 거리면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습니까? 우리 삶의 자세와 태도를 바로 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채우시고, 둘러쳐진 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그릇이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일은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행복의 원천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본론> 1. 항상 기뻐하라 우리는 어떻게 하여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실 것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연극의 각본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아버지의 자식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육신의 아버지만 계신 것이 아니라 영의 아버지 하나님이 확실히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주님이 되시고,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의 형이 되시고, 우리 생명의 원천이 되시므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니 또 기쁨이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끝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같이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이 와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가 기쁩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성령 보혜사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우리 가운데 항상 와서 계시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시편 91편에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를 모시고, 아들 예수님을 모시고, 성령 보혜사를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면,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이 성령을 앞세워서 오늘날 우리 가운데 역사하니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시편 91편 1절로 16절에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면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91편 1절 ~ 6절)’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기쁨은 오직 하나님과 함께할 때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불안과 공포와 좌절과 절망이 짓누르고 있으면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고, 보혜사 성령님 나를 돕는 자가 나와 항상 같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마음속에 깨닫고 감사하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우리 속에 충만하게 임하기 때문에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항상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기쁨을 잃어버려서 그 자손들로 태어난 모든 자손들은 유전을 통해 기쁨의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에덴은 히브리어로 ‘기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기쁨의 동산에 살게 하셨는데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이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31절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보기에 좋으니 마음이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기쁨을 주시기 원하셨지만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서 기쁨의 동산에서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그 후 인간은 잃어버린 기쁨을 찾으려고 여러 가지 애를 쓰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이상 이 세상 그 어디를 가도 기쁨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기쁨은 깃발과 같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제이니라는 학자는 늘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았는데,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깃발에 비유했습니다. “기쁨은 깃발과 같은 것입니다. 성에 깃발이 걸려 있다는 것은 그 성에 왕이 살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얼굴에 기쁨이 있으면 그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 상태가 언제나 얼굴에 나타납니다. 미국 사람들이 미국 대륙을 점령할 때 무엇보다도 황금 광산을 찾기 위해서 경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살인극이 벌이지기도 하고 그런데, 한 무리의 미국 백인들이 산에서 금을 캐고 조사를 하다가 큰 금광을 발견을 했어요. 그래서 모여서 손을 잡고 맹세를 하고 입을 다물고 일체 말 안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양식이 떨어져서 시내에 양식을 사러 갔는데, 다같이 원주민들도 금광을 찾고 있는데 찾을 기회가 없어 늘 고생하고 있는데, 이 원주민들이 새로 탄광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따라다니더니만 나중에 음식을 사서 산으로 올라가는데 따라 붙은 것입니다. “따라오지 마라”고 “고생만 있고 아무것도 없다!”니까는 “당신들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나 우리는 금광을 당신들 가운데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고 있냐?”, “얼굴이 다 환한 걸요! 그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치고 금광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죽은 색깔인데 당신들은 환한 웃음의 색깔이 얼굴에 비춰있는 걸 보니 틀림없이 금광을 발견했었습니다! 우리 나누어 가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기쁨도 얼굴에 나타나고 슬픔도 얼굴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항상 기뻐합니다. 물론 인생이 힘들 때도 있지만은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기뻐한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박국 3장 17절로 18절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제가 옛날에 이 성경을 읽을 때 “너 이름이 좋기는 좋다. 호박국이라고 하지 왜 하박국이라고 했냐.” 이름 그대로 그는 하박국 선지자인데 일절 가진 것이 다 없어도 하나님만 있으면 기쁨이 온다고 말한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므로 우리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기쁨이 충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웃음은 굉장한 도움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암에 걸리지 않으려고 암을 예방하는 식품들을 챙겨 먹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암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으로 의사들이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웃음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슬픔은 뼈를 마르게 한다(잠언17장 22절)’고 말한 것입니다. 과학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옛말을 따라서 연구를 해서 암을 잡아먹는 약을 개발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암에 걸린 사람 생명을 연장시키고, 수술 못 할 사람이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웃음입니다. 기뻐하면 호르몬이 나와서 암을 제껴놓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암세포가 있는데, 암세포뿐 아니라 암세포를 잡아먹는 면역세포도 같이 있기 때문에 모두 다 암에 안 걸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 자리에 튼튼하게 앉아있지만은 전부 암세포가 있어요. 근데 활동을 못하는 것은 암세포가 나오는 대로 잡아먹는 세포가 있기 때문에 그 잡아먹는 세포에게 눌려서 못 나옵니다. 그런데 어찌하다가 잡아먹는 세포가 약해지고 힘이 없어지면 암이 날개를 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암을 잡아먹는 세포의 위력을 나타내려면 웃는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웃어도 조금 웃지 말고 많이 웃어야 돼요. 할렐루야! 웃음은 이처럼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항상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쁨의 열매가 웃음입니다. 잘 웃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고, 많이 열매를 맺는 사람을 찾아가보면 많이 웃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하하하하~ 웃기네 웃겨. 하하하~ 웃음이 안 나올 때 억지로 웃는 연습을 해야 되는 거예요. 아 웃겨주는 것도 웃으면 누가 못하겠어요? 여러분 저를 쳐다보고 한번 웃으십시다. 하나, 둘, 셋! 하하하~ 원수 암은 물러 갈지어다! 원수 암은 웃는 사람 앞에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 말씀하기를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항상 웃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웃기지 않은 일이 생기거든 더 웃으십시오. 앞으로 서로 만나서 인사할 때 그냥 인사하지 말고 “안녕하십시오 하하하. 오늘 좋은 날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되도록 훈련을 하면 여러분은 아주 건강하고 튼튼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 성경에는 두 번째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쉬지 말고 하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친밀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지 아니하면 사탄이 언제나 들어와서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이야기하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발을 동동 구르시면서 우리를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절로 6절에 ‘그런데 뱀은 야훼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나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 주매 그도 먹었더라’ 우리가 나쁜 친구를 사귀면 불행을 당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잘못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친구삼아 아버지와의 대화를 계속해야 되는데, 아버지를 멀리하고 사탄과 친구가 된 것입니다. 이 도둑놈과 친구가 되어서 물이 들어가지고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반항을 하지 않을 때는 에덴동산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곳이었는데,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난 다음에 우리는 가시와 엉겅퀴를 입고,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어 인생을 살아가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격도 방어도 말씀과 기도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아버지가 예수님 제자에게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하니깐 제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귀신이 나가지 않아요. 근데 산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같이 내려오는데 통곡하고 울면서 “우리 아들을 좀 고쳐 주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은 못 고치는 병입니다.” 근데 예수님은 간단히 원수마귀 보고 “그 아이에게서 나오라! 물러가라!” 고함을 치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왜 우리는 못 쫓아내었습니까?”, “말씀과 기도가 아니고는 못 나간다.” 왜냐면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믿음이 마음에 생겨나고, 예수님과 대화를 함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은혜가 넘쳐나면 마귀는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요사이 귀신들린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울증, 부정적인 마음, 고통, 그리고 약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병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자복하고, 성령에 충만하고, 하나님과 같이 하면 이 귀신을 늘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늘 하면 그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마귀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해주고 마귀가 우리를 두려워해서 멀리 떠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 말씀을 늘 가까이하고 여러분께서 기도 열심히 하고 계속 하면, 하나님의 4차원적인 능력이 임하여서 여러분들이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하늘나라가 임하고 원수마귀는 한 길로 왔다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하고 질문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는데 왜 우리가 굳이 기도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다 알고 계시니 하나님이 그냥 돌봐주면 되는 것이지 귀찮게 왜 기도하라고 하느냐”고. 그런데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를 생각해보시면 압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자녀는 필요한 것을 부모님께 요구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기쁜 마음으로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대화를 하고 받아가는 것이 우리 세상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하고 대화를 하지 않고 손만 내민다면 자식 키워서 주는 재미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응답을 하시면 하나님도 기쁘고 우리도 기쁜 것입니다. 우리가 안수기도 받으러 오는 많은 사람에게 안수를 하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머리만 쓱 내밉니다. 그래 “머리만 내밀지 말고 무엇 때문에 기도를 받는지 말을 좀 해줘야 됩니다.”, “아이고 하나님 다 알고 계신데 귀찮게 무슨 말을 해요? 그냥 목사님 손 얹어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이 자매, 이 형제가 축복받아 잘 살게 해주시옵소서. 아멘.” 그러면 성령이 마음속에 “무슨 축복을 달라는 것이냐? 밥 잘 먹는 축복이냐, 공부 잘 하는 축복이냐, 해외 잘 가는 축복이냐, 뭐 소망하는 것을 말해야지 그러지 않고 하나님이 무슨 축복 주는 기계냐? 그냥 머리만 들이대게.” 하나님께 무얼 구할 때는 자세하게 글을 적어서 내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께 편지를 쓰니깐 편지에 자세히 사연을 써서 하나님께 내놓으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 때,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느끼고 기뻐합니다. 자녀는 필요한 것을 부모님이 채워주실 때, 감사와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부모와 자녀 간에 주고받는 것을 통해 서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인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또 자녀인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통해 주고받음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더욱 친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상세하게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일일이 보아서 응답을 해 주시고, 우리는 그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과 너무 가까워지고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같이 하면 세속에 물들지 않습니다. 친구하고 가까워지면 그 친구와 같은 세계의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친구가 되면 예수의 신앙이 옮겨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담배를 늘 피는 친구가 있으면 같이 따라서 담배 피게 되고, 술을 많이 마시는 친구가 있으면 나중에 같이 술주정뱅이가 되고, 욕 잘하는 사람 친구가 되면 욕을 잘 하게 돼요. 나는 목사 친구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만 오면 내가 달아납니다. 욕을 하는데 그렇게 잘할 수가 없어요. 설교는 그렇게 잘 못하는데, 욕은 잘 하거든요. 그래 자기는 “욕 전문가가 되어서 그 욕으로써 전도한다”고. “야 이 사람아 욕으로써 전도하는 게 무엇이냐?” 그러니까는 “조 목사는 일어나서 설교해도 사람들이 웃지 않질 않느냐. 나는 설교 서기만 하면 사람들을 웃긴다!”고. 그래서 내가 “참으로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네 웃는 것을 듣고 웃는 사람들은 마귀 자식이 하나 목사 탈을 썼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요사이도 제가 바꾸려고 하니깐 안 바꿔져서 안 만나는 게 좋아요. 그가 왔다고 하면 안 만납니다. 물드니까요. 세속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계셔야 되는데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이 계시면 여러분은 하나님처럼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친구를 잘 사귀어야 되고, 항상 기도를 통해서 나쁜 친구는 멀리하고, 좋은 친구는 가까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나고,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1절로 13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주느냐. 평안한 마음을 주신다. 재앙을 주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시면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다가오면 제일 먼저 “하나님 출두요~”하는 것이 뭐냐면 평안입니다. 불안과 우울한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다가와요.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난 다음에 특별한 구절이 여러분 마음에 부딪혀오며 평안이 넘치면 그 구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슨 역사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무엇을 하려고 계획을 할 때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이거는 네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이 오고 기쁨이 올 때까지 성령의 인도를 따라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무슨 일을 하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슬프고 안정이 안 되면, 마귀가 벌써 훼방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거는 손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뜻을 따라 기도하면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응답하시나 주의 뜻을 거역해서 기도하면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너희 천부께서는 이런 것들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신다(마태복음 6장 31절 ~ 32절)’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내가 지금 하는 것이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인가 아닌가 그걸 모를 때,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지 그걸 알고 싶으면 그 기도를 그 제목을 가지고 할 때 평안과 기쁨이 오면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음에 평안이 오고 기쁨이 오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이것은 응답받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가면 기도가 응답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그 다음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원망과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4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나쁜 것도 감사할 수 있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시기 때문에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나쁜 것은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니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마음을 품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을 품어서 감사하고 나가면 감사가 변화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손길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면 좋은 것이 더 생기고, 나쁜 것을 가지고 감사하면 좋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난이 유익하다는 것을 정호승 시인이 그 시에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등의 짐’이라는 시가 있는데, 고난 중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 시인의 글입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생각해볼 만한 시인 것입니다. 물살이 센 시내에 우리가 옷을 걷어 올리고 걸어 들어가면 물에 흔들려서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면 물살보다 짐이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에 안 떠내려가고 건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차에도 짐 안 싣고 아스팔트가 아닌 일반 자갈길 시골길을 가면 윙~ 하면 뒤로 물러가고, 윙~ 하면 뒤로 물러가고 바퀴가 헛돌아요. 그러나 짐을 거기다 실어 놓으면 바퀴가 딱 땅에 붙기 때문에 윙~ 하고 올라가요. 마 그렇게 떠내려가도 뒷걸음치더라도 짐을 안 지고 가면 좋겠지만은 답답한 소리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짐을 지거든 안 떠내려가면 되니 좋다. 바퀴가 헛도니 짐이 있으니 좋다.’ 그렇게 해석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이 심히 세게 흘러가는 도랑을 건널 때 짐이 없이 걸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 떠내려가지 않게 붙잡아 주시옵소서” 기도하면 주님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은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참는 것. 여러 가지 시험이 다가오면 그것을 참습니다.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 신앙을 발전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하고 난 다음에 기다리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참고 또 참고, 그러면 응답이 옵니다. 오래 참을수록 큰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참는 것이 우리 기도생활 하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삶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시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변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굳게 믿고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감사를 넘치게 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를 하면 희망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에 바울과 실라가 잡혀 들어가서 철고랑에 손목과 발목이 다 채워져서 감옥 깊숙한 곳에 내던져 졌는데, 밤중에 그 두 사람이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했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은혜가 충만했는지 죄수들이 밤중에 보통 사람이 찬송을 했다가는 몰매를 맞을 것인데, 아주 은혜로운 찬송을 하니깐 듣는데 마음이 구수합니다. 그러자 우르르르~ 하더니만 옥터가 뒤흔들리도록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나니깐, 그냥 지진만 일어난 게 아니라 간수들이 두려워하는 죄수가 도망을 치기 좋은 환경이 됐습니다. 철고랑이 다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간수가 자살하려고 했는데 바울이 “죽지마라. 죽지마라. 우리가 다 안에 있다. 도망 안 쳤다.” 그래놓고 그 죄수들을 전부 다 예수 믿도록 말씀을 전하고, 그리고 이 간수의 집에 들어가서 밥 대접 잘 받고, 얻어맞은 핏자국 다 씻어내고 그 다음날 환송을 받고 선교길로 떠나갔습니다. 그날 큰 지진이 얼마나 사람들 앞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를 증거 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감사의 제사를 우리가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감사하는 사람과 같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께 감사하면 주님이 곁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몰라요. 예수님이 한번은 열 사람의 문둥병 환자를 고쳐줬는데, 문둥병 환자가 나아서 다 고향산천으로 찾아가는데 한 사람이 뛰어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를 고쳐줘서 고맙습니다.” 예수님께서 “섭섭하다.” 저 멀리서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고쳐주소서”해서 문둥이는 가까이 못 오니깐 예수님이 먼 데서 “병 나아서 집으로 돌아가라!” 그랬는데, 아홉 명은 다 집으로 돌아가고 한 사람만 뛰어와서 예수님 앞에 감사했었습니다. 예수님이 굉장히 섭섭하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열 사람을 다 고쳐주었는데 아홉 사람은 어디가고 너 한 사람만 왔느냐”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시요, 우리와의 교제를 가진 하나님이기 때문에 여러분 은혜를 받으면 꼭 감사를 표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를 하면 예수님이 영화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마음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지요. 감사를 하면 사람들의 분위기가 따뜻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삶을 살려면 긍정적인 분위기를 늘 만들어야 됩니다. 부정적인 말 하지 말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욕하고 하지 말고 칭찬하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뻐하고 하면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분위기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분위기가 되면 우리가 꿈을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꿈을 꾸고 그 꿈을 믿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주님이 구만리장천 멀리 계신 줄 생각하는데, 주님이 말씀 안에 계시고 성령 안에 계십니다. 말씀은 성경 속에 계시고 그 다음에 바람같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바람은 항상 우리와 같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항상 같이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면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주시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응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