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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을 시험해 보시는 예수님 (요 6:1-13) 2016.05.15.주일4부예배 <서론> ‘빌립을 시험해 보시는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지금 온 세계는 큰 경제적인 궁핍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정치인들과 경제인, 재계를 이끄는 분들이 부정적인 미래를 말하면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본론> 1.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삶은 우리가 어떤 것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광야에 나가셨을 때,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합치면 적어도 만 명 이상 따라 나왔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 수를 조사할 때 여자는 수에 넣지 않았습니다. 남자만 수에 넣고 여자는 수에 넣지 않았습니다. 고약한 사람들이죠. 그러니 유대광야에 만 여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왔으니 대단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빌립을 보시고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그 말을 예수님이 하시면서 예수님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빌립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알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지만은 아직 거듭나지 못한 제자입니다. 사람이 거듭나기 전에는 차원이 다릅니다. 3차원에 입각해서 모든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1차원은 직선이고, 2차원은 평면이고, 3차원은 입체고, 4차원은 영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니 3차원까지는 모두 다 물질적인 세계고, 거기서 차원을 뛰어 넘어 4차원으로 가면 물질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입니다. 그러니 물질적인 세계에 사는 빌립이 영적인 세계에 계시는 예수님이 묻는 말을 대답할 수가 있습니까? 3차원적 빌립의 생각은 이성적이고 감각적인 기분에 서서 상황을 살피니 압도적인 부정적인 생각에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단 말인 것입니까?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한복음 6장 7절)’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 3차원의 생각으로는, 3차원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서 생각해보면 그 사람 도저히 먹일 수 있는 자본이 자기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빌립이 어떤 대답을 할지 알고 계셨습니다. 빌립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 곁에 있던 안드레는 자원해서 예수님께 나와서 “주님, 여기에 어린아이가 있는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담은 점심 도시락을 들고 왔는데, 미처 바빠서 먹지 못하고 있는 걸 내가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군중에게 떡 다섯 덩어리와 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오천 명 되는 수만 하더라도 대단한데 그들에게 오병이어로 무엇을 한단 말인 것입니까? 이에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한 안드레는 빌립보다는 조금 바늘귀만큼 더 낫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은 그들은 3차원의 세계에 속해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것을 봐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먹일 수 없습니다. 두 제자가 똑같이 예수님을 해답으로 삼고 기적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대답이 굉장히 쉽습니다. 4차원의 진리를 깨닫고 있었으면 어떻게 대답하느냐. “주님 놀리지 마세요. 주님이 대답입니다. 주님이 먹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4차원의 세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도 “너 참 잘 깨달았구나.” 칭찬하실 것이고, 자기들도 부담이 없을 것인데, 니고데모와 같이 영적인 세계를 전혀 몰랐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하늘나라에서 오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기적을 행할 수가 없나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않고는 하늘나라를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선생이요, 최고 학부의 선생인데, 예수님의 말을 못 알아들었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이 뭔 말입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들어갔다 도로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겁니까?” 그러니 예수님이 “너 같은 선생이 내 말을 못 알아듣지. 거듭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거듭나는 사람은 속에 영적으로 살아나서 영의 세계의 일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니고데모도 몰랐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지금 사는 것이 거의 모두 3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세계가 3차원의 세계, 직선, 평면, 입체인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바람 같은 도저히 물질적으로 붙잡아볼 수 없는 영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3차원적 생각을 뛰어넘어 4차원적 영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고는 절대로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하는데 영어로써 설교를 하고, 여러분은 영어를 모른다고 하십시다. 그러면 제가 영어로써 “여러분 조금만 있으면 떼강도가 오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래도 못 알아들으니까 “하하하하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모릅니다. 차원이 다르니깐. 한국말만 하는 사람하고 영어하는 사람하고 서로 교통이 안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니까 그렇습니다. 이 빌립과 안드레와 예수님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여기 큰 문제가 생겨서 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배가 고파 허덕이는데 이를 먹여야 되는데 3차원의 세계 인간의 이성과 계산을 통해서 살아가는 빌립과 안드레는 돈이 얼마나 들며, 떡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계산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예 그들이 3차원의 세계에서 계산을 하기 때문에 못 먹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달아 알았다면 “주님 이들은 주님이 먹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키는 일만 할 테니까 주님이 먹이세요. 심부름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말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온 세계적으로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어려운데, 신문 잡지를 봐도 다 부정적인 글만 적어 놓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계산을 하고 해설하는데 보면 이 세계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답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이렇게 됐으니 어떻게 할까요? 먹여보세요! 그를 먹일 수 없습니다. 주님이 먹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아무렴 나는 먹일 수 있지요. 나는 삼백만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떡을 달라면 만나를 주고, 물을 달라면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고, 고기를 달라면 메추라기를 비같이 진에 떨어지게 하고, 달라는 것 다 주고 다 배불리 했는데.” 여러분보고 만나 만들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물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한 적도 없고, 메추라기를 잡아오라는 것을 한 적도 없습니다. 오직 그것은 하나님이 4차원적인 능력으로 행했을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우리는 여러분 성경에 4차원적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4차원을 사용하면 어떠한 일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반세상사람들처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차원이 다른 세계를 여러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밥퍼하는 목사님네 가서 밥을 못 퍼주면 어떻게 할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여기에 오천 명을 먹인 예수님은 지금도 똑같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겠느냐?” 주님이 우리보고 물으시면 우리가 대답하기를 “주님이 다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하시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 그렇게 대답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고 만나 만들라고 말 안 합니다, 여러분 보고 메추라기 불러오라고 말 안 합니다. 여러분 보고는 “믿기만 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생각을 긍정적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때 예화를 하나 말하겠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점령하기 위해서 쳐들어 왔습니다. 그들의 대장군은 골리앗이었습니다. 골리앗 9척 장신의 거대한 무장을 하고서 이스라엘을 향해서 오니 이스라엘 군인들이 앞으로도 못 나가고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습니다. 겁을 내서 절절 맵니다. 3차원의 계산을 보면 골리앗 한 사람은 유대인 군인들 모두 다를 거꾸러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3차원 세계 속에서 대결해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윗이 초립동입니다. 잠방바지를 입고 뛰어다니는 소년인데, 아버지가 “형들 면회하고 오너라. 곡식 볶은 것을 가져다주고 건강한지 안부를 보고 오라” 그래서 전쟁하는데 안부도 들을 겸 구경하러 왔는데, 아 보니까 골리앗이 나와서 큰 소리하니 산이 쩡쩡 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겁을 내어서 나무 뒤로 흙더미 뒤로 숨는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다윗이 “이 군인들이 이렇게 겁을 내어서 도망을 치니 어떻게 나라를 지키겠느냐? 저 골리앗 내가 싸우겠다.” 그러니깐 형이 “이놈의 자식 전쟁 구경하러 와서 헛소리하지 마라. 단칼에 날아가려고.”, “아 형님 왜 그리 꾸중을 합니까? 형님들은 저 사람보고 겁을 내어서 꼼짝도 못하지 않아요? 나는 대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귀한 터라 사울 왕이 “걔 이리 좀 오라 해라” 조그만 애가.. “아이고 답답해라. 네가 저 대장군하고 싸운다고 큰소리 하는 거냐?”, “아 왜 못 싸워요?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지 않아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아닙니까! 하나님과 할례 받은 계약적인 하나님 백성이 왜 저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우리가 손을 잡고 있으면 누가 감히 대듭니까? 내가 나갑니다.”, “아니다, 아니다. 내가 널 보니 기가 막힌다. 너 가서 단칼에 날아가겠다.”, “날 그렇게 보지 마세요. 내가 우리 아버지 양을 칠 때 사자가 와서 양 새끼를 물고 가고, 곰이 양을 물고 갈 때 내가 도망친 줄 압니까? 내가 지팡이를 하나 들고 달려들어 가지고서 사자를 쳐서 죽이고, 곰을 죽이고 양 새끼를 빼앗아 내는 그런 일도 했다고요. 곰도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갈 때 꼼짝 못했는데, 저 골리앗 저것은 곰보다 못하잖아요? 내가 나갈게요.” 그래 답답하니깐 다윗을 내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왜? 다윗은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고 4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차원이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곰이나 사자를 죽일 만큼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4차원의 세계는 언제나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하나님 영이 같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다윗이 담대하게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니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바라보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같이 계심을 믿고 자기는 골리앗을 쳐서 넘어뜨리겠다고 말을 하고 나갔었습니다. 그가 사무엘상 17절 45절로 47절에 말하기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은 꿈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같이 계신 것을 꿈꾸고, 그런 믿음으로 의지합니다. 그리고 입술로 고백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하나님이 너를 내 손에 붙이므로 네 목을 베고 네 시체를 짐승의 고기로 만들어 주겠다.’ 그래서 다윗이 4차원의 영성에 의지해서 나가니깐 골리앗이 보니깐 누가 오는지 찾아보니깐 안 보이는데 저쪽에 언덕에서 싹 올라오는 데 보니까는 조그마한 소년이 “여기 있다!” 그냥 골리앗이 땅을 단창으로 찌르면서 웃었습니다. “하하하하. 나를 개인 줄 알고 지팡이를 들고 오느냐” 그러나 골리앗은 3차원의 세계에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윗은 4차원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보고 “예수쟁이들 수다스럽고 이 어려울 때 기도한다고 야단법석을 치고 아무 일도 못하는데 어떻게 되겠느냐?”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 와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주여, 주여’ 하는 그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4차원의 원리 속에 성령과 함께 역사하매 우리는 굶어죽지 않습니다.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이 기가 막힌 속도로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된 것도 한국 기독교 신자들이 천만 명이 넘어서 그들이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각지에서 모르고도 실천하고 알고도 실천하는 4차원의 영적 원리를 하나님이 높여주셔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청산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고 저주를 담당하시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이 여러분 편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고, 큰 소리로 “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긴 사람이다.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하나님의 축복이 나와 같이 계신다.” 그 말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희한하게 길이 열리고, 문제가 해결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어려울 때 경제적인 주체들이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4차원의 영성을 좇아서 나가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크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가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3차원에 속한 사람은 이 문제가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고 좌절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같이 주님을 믿는 사람들. 문제가 닥쳐와도 ‘하나님이 이 문제보다 얼마나 더 크지 않느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이성과 논리에 근거해서 “이 문제는 태산 같다. 절대 넘을 수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장23절)” 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산만 높다 하더라. 3차원의 사람은 산 보고서 “아~ 높다. 이 태산 준령을 해결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 산에 막혀서 죽을 것이다.” 그러나 4차원의 영성은 차원이 높은 영성은 “이 산?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던지라 하면 된다’ 그랬다. 우리가 기도하고 합쳐서 산을 옮기자!” 합쳐서 옮겨가는 모습을 마음속에 바라보고 믿고 합창으로 “이 산아 바다로 옮겨가라!” 그러면 옮겨가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4차원의 영성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가까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강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강을 건너다보면, 때로는 강물이 무섭게 소용돌이 치고 금방이라도 우리를 덮칠 것만 같습니다. 그때 소용돌이를 바라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을 잃고 물살에 휩쓸리고 맙니다. 그럴 때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위에 막 물이 소용돌이치며 집동같이 굴러 가는데 보고 있으면 나도 어지러워서 그만 비틀비틀하고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때는 물질적인 현실 3차원의 세계를 바라보지 말고 차원 높은 저 하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너희 짐을 내게 맡겨라’ 우리는 차원이 다른 세상 속에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생활인 것입니다. 물질만 바라보고 물질에 압도당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빌립은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인당 조금씩 준다 해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부정적으로 말했습니다. 빌립은 부정적인 생각을 했으나 예수님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5천 명을 먹여야 하는 상황에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도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축복할 때는 먹고 남게 하시지 모자라게 하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6장 11로 13절을 보면, ‘떡과 물고기를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고 말한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마음속에 늘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고 외치십시오. 차원을 뛰어넘어 3차원에서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원리가 4차원의 세계를 바라보고 기도하고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3차원에서 눈에 안 보이는 4차원 세계에 들어가는 문인 것입니다. 저는 매일같이 제 스스로가 도움을 받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셔서 우리를 구출하신 예수님을 하루에도 시간만 나면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나 허물이 다가오면 십자가의 보혈을 생각하고, 육체의 몸이 병들어서 고통이 다가오면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셔서 내 병을 짊어진 것을 생각하고, 사업을 할 때 어려움에 처하면 주님이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 죽을 날을 생각하면 “겁날 것 없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예수 부활 내 부활’이니깐 나는 죽음 같은 것 걱정할 거 없다.” 그 생각을 기초로 해서 4차원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그러면 4차원의 영인 성령이 여러분이 보고, 믿고, 말하는 데 함께 하여서 성령의 기적을 행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으니 이건 절단강산 아닙니까? 그러나 그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셨더라. 3차원이 깨어지고 형편없을 때 4차원의 영이 그 위에 운행할 때 “빛이 있으라!” 샥 빛이 생기고, “궁창이 생겨나라!” 궁창이 생겨나고. 명령하면 명령을 따라서 성령이 역사하거든요. 그럼 여러분의 생활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영인 성령께서 같이 있으므로 기도하고 난 다음 “어려움아 물러가라! 귀신아 물러가라! 이 고통아 사라져라!” 그러면 4차원의 영성이 성령이 들어와서 역사하므로 멋지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4차원 영이라는 것은 바로 성령이 4차원의 영인 것입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 여러분 꼭 잊지 마십시오. 두 사람이 똑같이 보여도 차원이 다르면 두 사람 경쟁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성령이 같이 계시므로 긍정적으로 믿고 바라보고 입으로 시인하면 성령이 같이 4차원에서 역사하므로 승리하는 것을 깨달아 아시기를 바랍니다. 참 장난 같지만은 실제 생활에는 엄청난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적인 세계에는 예수님께서 있는 것을 가지고 복을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여러분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서 주님이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일 때도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요한복음 6장 10절 ~ 11절)’ 무얼 가지고 그들을 먹였습니까?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그냥 혼자 입에 넣어버려도 시원치 않을 그것을 가지고서 주님께서 축복해주시고, 나누어주라고 떼 주면 생선이 생겨나고, 떼 주면 생겨나고, ‘놀랄 노’자지요. 떼 주면 또 생기고, 떡 작게 해서 주고 나니까 또 그대로 생기고, 잘라 주면 또 생기고, 그 역사를 오늘날도 주님이 행하신다고요. 할렐루야. 다윗이 골리앗을 칠 때 다윗이 손에 가지고 있는 무기라고는 지팡이 하나와 물맷돌 다섯 개. 탁~ 놓는 물맷돌 다섯 개. 물맷돌 하나만 가져가지 뭘 다섯 개를 가져가느냐? 골리앗의 형제가 다섯 명입니다. 형으로부터 아우까지 다 죽이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가지고 있는 것은 부지깽이 하나에 물맷돌 다섯 개. 그 물매를 가지고서 던져 버리는데 그 돌이 성령을 통해서 4차원적인 성령을 통해서 날아가니 이 투구와 눈 사이에 있는 이마를 때려 빡~ 소리가 나더니 이 속으로 머릿속으로 돌이 파고 들어가니까는 아무리 골리앗이라도 골 깨졌네요. 그냥 뻗은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결코 “나는 공부를 많이 못 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나는 말도 잘 못 한다. 나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없고, 안 되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 은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야훼를 송축하고 그의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이거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런 놀라운 은혜를 성경이 ‘잊지 말라,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바구니 담게 했으니 먹고 남은 조각을 허술하게 짓밟고 내버리지 말고 자원을 아끼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배불리 먹는 꿈을 꾸고, 믿고, 구하고, 입술로 고백하면 4차원의 영성이 같이 일하므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 거듭난 크리스천은 4차원적 사고방식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3차원적인 부족함을 탄식하는 자리에 있지 말고 4차원의 영성 속에서 무엇을 가져도 하나님과 더불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믿음으로 행하면 성령이 함께 행해 주시므로 승리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가지고 복을 주시는데 주님은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기적을 행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출애굽기 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묻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던지니깐 곧 뱀이 되어서 기어갑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 꼬리를 잡으라”고 해요. 잡으니깐 또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를 홍해 바다 위에 흔드니깐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3차원 세계에서 보잘 것 없는 것 같으면서도 4차원의 세계의 영성을 가지고 사용하면 큰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남편이 죽고 빚 때문에 자녀마저 종으로 팔릴 위기에 처한 여인이 그 남편의 선생 엘리사를 찾아가서 간절히 울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제자인 제 남편이 죽고 우리는 빚이 많아서 빚쟁이들이 자식들을 다 종으로 잡아서 팔겠다고 하는데 살려주십시오.” 그러니깐 엘리사가 “집에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고 기름병에 기름 조금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집에 가서 온 동네에 그릇이란 그릇은 다 빌리십시오. 집에서 그릇을 빌려서 전부 집안에 갖다가 놓고 조금 있는 기름병을 가지고서 그 그릇에 부어 넣으십시오.” 아 그래서 그 말대로 그릇을 잔뜩 빌렸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애들과 함께 조그마한 기름병에 기름을 붓는데 끝이 없어요. 또 가득히 채워서 “다른 그릇 가져오너라.” 또, 또, 또, 또. 하나님의 자원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애들이 “엄마 이제는 그릇이 없어요.” 그러니깐 기름이 뚝 그쳤습니다. 엘리사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하니깐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다 갚고, 나머지는 먹고 사는 데 보탬이 되게 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지고 있는데, 성경에 있는 이 약속의 말씀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기름이요, 지팡이요, 오병이어요, 약속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이 약속을 받아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꿈으로 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것이 3차원의 세계에 들어가 가지고서 변화시키고 개조하고 창조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나서 여러분 4차원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 4차원은 여러분 자신이 육체는 3차원의 세계에 속하여 있어도 영혼은 4차원에 속해 있어서 성령이 같이 계심으로 무엇이든지 3차원의 세계에 있는 것을 보고, 확실히 보고, 기도해서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성령이 나가서 역사해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어린 아이의 한 끼 식사를 주님 손에 드렸을 때, 주님께서 거기에 축사하시고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가 남게 행하신 것은 우리에게 굉장한 의미가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것은 적은 것이라도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더하여서 기적이 일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7절에 있는 말씀을 따라 읽으십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3.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3차원 세계가 아무리 어려워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오중복음을 믿으면, 오중복음을 우리가 바라보고 믿고 나가면, 물질적인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적이 넘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3차원의 세계는 물질적인 세계입니다. 차원이 높은 4차원의 세계는 영의 세계인 것입니다. 한번 말씀을 따라해 주십시오. “3차원의 세계는 물질적인 세계요, 4차원의 세계는 성령의 세계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세계에 들어가서 바라보고, 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성령이 나가서 3차원 속에 변화시킬 것은 변화시키고, 개조할 것은 개조하고, 창조할 것은 창조해서 여러분 성공적인 삶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광야와 많은 사람과 환경적 절망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누가복음 12장 29절로 30절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가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인간은 언제나 3차원적으로 생각하나 주님은 4차원 이상으로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한 동네에 들어갔을 때, 한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땅에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간질을 하는데, 내 아들이 어릴 때부터 간질을 하는데 물에도 넘어지고, 불에도 넘어져서 죽을 고비를 많이 당하고 있는데, 오늘 당신 제자들에게 데리고 오니 고치지 못하더이다. 무엇을 할 수 있거든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이 큰 소리로 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다니! 어디 그런 말을 하느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 아버지와 아들보고 말했지만 그 내용은 우리보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너도 이루어질 것인데 예수님이 그 자리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살려준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전문가들은 올해 세계 경제 전망이 7년 만에 가장 어둡다고 말합니다. 세계은행도 올해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는데, 퍼펙트 스톰이란 둘 이상의 태풍이 충돌하여 그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으로서, 그만큼 세계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경기 침체를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서 임시 공휴일까지 지정하여 황금연휴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될까요? 우리는 3차원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4차원의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할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장 15절 ~ 16절)’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동안 인간들이 겪는 고생을 다 겪으셨으며 그리고 인생에 묶인, 이생에 묶인 자들을 도와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과 ‘못한다, 없다, 안 된다, 절망이다’하는 슬픈 생각을 하는 생각이 이중적으로 우리 속에 있어요. 저기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니 나는 믿음으로 산다.” 그러고 난 다음에 돌아서서는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이 어찌할꼬” 내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금요철야기도 때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는데, 그때 연세대학교 다니는 청년이 위가 나빠서 병원치료를 해도 안 낫고 해서 우리 철야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제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병은 물러가라!”고 고함을 치니 교인들이 “할렐루야 아멘”하고 나은 사람은 간증하라고 하니까는 일어나서 간증하는데, 이 청년이 손을 들고 간증하러 나와 가지고 “나는 위가 아주 고약한데 오늘 믿음으로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믿으라고 말하는데 아이고 답답해라! 안 믿어지네.” 사람들이 모두 다 웃고 박수를 쳤지만은 나는 마음에 쿵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나 답답하기에 ‘믿습니다’로 나왔다가 ‘아이고 하나님 나는 안 믿어지네요.’ 고생을 해요. 그래 내가 청년보고 “안 믿어지면 내 믿음을 빌려줄 테니깐 내가 안수해서 나아라.” 안수 왜 받습니까? 남의 믿음을 빌려가는 것이 안수인 것입니다. 내 믿음은 안 되니깐 당신 믿음을 좀 빌려 달라는 것입니다. 효과 있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에게 가서 안수기도 받으면 힘이 더 생겨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떤 생각과 말을 하십니까? 믿음의 생각과 말을 하고 있습니까? 긍정적인 생각 바탕에 성령께서 환상을 주시고 꿈을 주십니다. 우리가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믿고 입술로 시인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별로 복잡하지 않습니다. 4차원의 영성을 기도와 믿음을 통하여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