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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일 4:7-21) 2016.05.29. 주일4부예배 <서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 세상은 강한 자가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육체의 힘, 경제적인 힘, 군사적인 힘, 도덕적인 힘, 교육의 힘 등과 같은 힘이 있어야 평안을 갖고 성취 안에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다행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허약 때문에 비참한 죽임을 당하였었으나 그 허약을 다스리시고 이기시고 극복하셔서 부활이요 생명으로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다가와 계시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오늘 이 시간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계십니다. <본론> 1. 하나님과의 근원적인 관계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그것을 마음에 철저히 깨달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때 하나님은 천사를 데리고 좋아하는 것보다도 더 말할 수 없이 우리 사람들을 더불어 좋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란 이름을 주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동식물의 이름을 사람들이 짓게 해주셨고, 그것을 사람들이 다스리게 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닮았다고 담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기 때문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닮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품에 품으시고 사랑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특별히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생각하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대화를 하기를 즐거워하셨습니다. 아담이 범죄 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끊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야기해도 사람은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화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우리 영혼이 그런데 영혼이 죽어버리니까 하나님과 대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이 “동”하면 니고데모는 “서”하고 예수님이 “남”하면 니고데모는 “북”하고 완전히 사상이 달랐습니다. 니고데모는 영이 죽었기 때문에 영이 살아계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서고 물질주의에 서고 인본주의에 서서 살면서 예수 믿는 사람과의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은 영이 죽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학교에서 공부는 많이 못했을 지라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하나님의 영과 교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말씀하신 영의 글인 성경을 이해할 수가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생각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고요하고 잠잠한 말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묵상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은 환상으로나 꿈으로나 믿음으로나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 같은 분도 역사적으로 위대한 전도자였었는데 그도 하나님의 음성을 꿈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9절로 10절에 보면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라’ 어디에 가서 복음을 전할까 아시아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할까 계획했는데 마게도냐로 오라는 성령의 지시가 있어서 그가 선교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를 사랑하는 자하고는 대화하기를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생각을 점령해서 생각 속에 하나님의 생각을 불어넣어 주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때가 있고 꿈은 환상과 더불어 종종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환상으로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꾼다고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믿음이 있고 불신앙이 있는데 불신앙을 배척하고 믿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 종종 그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면 신령한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과 대화하게 되므로 하나님과 우리가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되신 하나님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금전적인 힘, 정치적인 힘, 청춘의 힘, 사회적인 인기가 있는 힘, 이런 힘은 없을지 모르겠어도 하나님이 우리 속에 계시면 하나님이 우리 힘이 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의지할 대상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을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학벌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인생을 붙잡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146편 3절로 4절을 보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그와 같이 말씀하셨고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붙잡아줍니까? 이사야 41장 13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나 야훼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얼마나 멋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오른 손을 붙잡고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돕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내가 너를 도와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 은혜 가운데서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2. 너는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우리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가장 무서운 마귀의 도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값 주고 산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두려움 없이 하나님 소유물로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속량은 대가를 지불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그 아들의 목숨을 대가를 지불하고 값 주고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들을 보시고 너는 내 것 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이 내 것이라고 말하면 쉽게 내놓을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우리를 잡아가려고 해도 하나님 허락 안하거든 못 잡아갑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 하였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되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물을 건너갈 때,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우리가 물건을 살 때, 이 어느 나라 제품이냐? 가령 이태리산인가? 국산인가? 이태리산이라면 똑같은 물건이라도 가치를 주고 보는 것입니다. 이름난 장인이 만든 명품인지, 아니면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제품인지 그것도 물어봅니다. “누가 만들었어?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만들어 나온 것이 아니야?” “아니야. 이 사람 대장장이 진품으로 만든 것이야.” 그러면 그 값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치가 다른 것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 가운데 여러분 누가 만들었습니까? 사람이 만들었습니까? 아니지요. 여러분은 누가 만들었나요? 이태리 장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만드셧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한꺼번에 대량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친히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백하기를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편 139:13-14)’라고 말했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누구를 닮았다고 하는지 아세요? 놀랍게도 하나님을 닮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천사들조차도 우리를 보고 부러워합니다.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고 반역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오늘날같이 이렇게 되었지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은 대단한 위치에 우리를 두고서 하나님이 우리와 대화하고 즐거워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화를 할 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더불어 우주를 다스리는 대화의 장에서 함께 역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3. 삶의 시련 -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길, 새사람을 만드는 길. 우리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 이제 하나님과 대화하며 사는 중에 시련이 많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장성하기 위하여 시련의 길을 걷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 보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왜 물의 시험을 하시고, 불의 시험을 하시느냐? 우리가 시험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때는 하나님을 안 찾아도 시험과 고통을 당하게 되면 오산리기도원에도 안 가는데 가게 되고 꿇어앉아 기도 안할 사람도 일어나서 꿇어앉아 기도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삶에 시련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련을 통해서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불순종하고 불신앙 하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시련이 당시에는 괴로우나 지나고 보면 우리를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갈아입히게 하는 시녀노릇을 해주는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 ‘야훼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면서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러 가지 고난이 다가오고 시험이 다가오거든 하나님께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갈아입히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험은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괴로우나 여러분 우리를 변화 시키는 데는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보낸 시련이 우리에게 굉장히 도움이 되고 우리가 새사람이 되어 새 역사를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평가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4절로 5절에 보면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배롭게 보고, 존귀하게 보고 하나님이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했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남녀 간에 사랑하는 것도 한쪽 편에서 먼저 사랑할 때가 많지, 두 사람이 “하나, 둘, 셋, 사랑!” 그렇게 하는 법은 별로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에는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어요.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고 온갖 나쁜 짓을 하는 남녀를 보고 하나님은 먼저 사랑하고 구출하려고 그 아들 예수님을 사람으로 변화시키셔서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독생자로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죽을 고생을 시켰다는 것 기가 막히게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한 고통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인 것입니다. 육신으로 와서 예수님이 버림받을 것을 생각하고 종종 고통을 당해서 그것을 제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제자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자기 백성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통당할 때 하나님도 고개를 돌려버리셨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럽게 십자가에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려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께도 버림을 당하고 온 전체가 캄캄한 밤 중 같은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고통을 당하고 그 대가로 우리를 사랑으로 산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값이 비쌉니다. 하나님이 값비싼 대가로서 여러분을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신 사람들을 내어주며 백성들을 내 생명을 대신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사람들 가운데 특권을 주어서 하나님이 품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면케해 주시고 나라가 흥하고 망할 위험이 있으면 그곳에서 건져내어서 돌보아주시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그 고난 속에 들어가도록 피하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거 가만히 있어 그렇지 우리가 따지고 보면 대단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택하신 족속이니까 우리가 뭐 많은 족속들 가운데 우리만이 하나님이 택해서 무서운 시련과 환난을 면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시련과 환난을 그곳에 우리 대신 사람을 보내 주시고 우리 대신 백성들을 보내주신다. 믿지 않는 백성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는 택하신 족속으로 하나님이 특별대우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서 그 큰 고통을 당하여 죽으면서까지 구출을 해놨는데 그 예수를 안 믿는다고 배반해버리고 회개하고 그 예수를 믿는 사람하고 하나님 볼 때 누굴 귀하게 보겠습니까? 예수님을 배반하는 족속은 하나님이 다시 뒤돌아보기도 원치 아니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주님을 믿으면 얼마나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기뻐하고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인정해주는 삶을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죽으실 때 좌편 우편 강도가 있는데 평생에 강도짓만 하고 나쁜 짓만 했다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그 강도 중 한 사람이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해주옵소서.” 단지 그 말입니다. 평생에 좋은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마지막에 예수님을 쳐다보고 “주님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 하옵소서.” 그러니 주님이 주님을 인정해주는 것을 너무나 고맙게 생각해서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어준 그것이 얼마나 귀엽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예수를 구주로 모셔 들이면 그 예수님을 인정해 드린다는 그 자체가 거대한 기쁨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답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아무도 몰라주어도 여러분이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 백성이 되면 하나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는지 아십니까? 이 세상에 믿음을 하나님은 최고의 선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를 인하여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보배롭다. 아 존귀하다.” 뭐가 어디에 보배로운 점이 있으며 어디가 존귀로운 점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귀로운 자, 나의 보배,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이러고도 구원 못 받고 지옥 가는 사람은 팔자에 지옥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현재에 주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38절로 39절의 말씀 한번 들어보세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잠이 안 올 지경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시련의 때를 지날 때 이제 내가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 더 순종하고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시련을 보낸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나치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코리템 붐 여사란 유명한 부인이 있습니다. 그가 지은 저서가 많이 팔렸는데, 그가 하는 말이 “기차가 캄캄한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기차표를 찢어버리거나 기차에서 뛰어내리면 안 됩니다. 조용히 앉아 기관사를 믿고 기다리면 잠시 후 밖으로 나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삶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 때 두렵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곧 어두운 터널이 끝나고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동안 한 가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을 받들어서 시련의 골짜기를 지난다고 할 때, 절대로 의심하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으로 좋게 해주려고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실 어려움을 당하면 신앙이 안 흔들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 성도 내가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가 큰 시련을 당해서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이 흔들흔들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가? 정말 하나님께서 안 계시면 어떻게 하는가? 내가 그렇게 하나님 살아 계시다고 주장을 하고 예수를 믿게 한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인가?’ 사람들은 신앙이 환경에 따라서 굉장히 약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엄청나게 신앙이 좋은 분이 있습니다. 누굽니까? 욥! 욥의 신앙을 보세요. 마귀하고 하나님이 욥을 두고 시험을 걸었습니다. 욥은 어떠한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은 확신하고 계셨어요. 마귀는 욥은 고통당하면 하나님 버리고 나갈 것이라고. 그래서 욥이 마음껏 마귀에게 희롱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손을 뗐습니다. 그는 자식들 다 잃어버리고, 있는 재산 다 상실하고, 가정이 부부가 낭패가 되고, 온 몸에 전신이 병들고, 고통당하고 그래도 욥은 말하기를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가지고간 이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소서.” 마귀가 아주 체면이 묵사발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서 영광을 얻으시고 하나님께서 처음에 주신 축복보다 더 넘치는 축복을 욥에게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 꼭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나에게 당장 지금 선한 것을 주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좋은 하나님이니까 결과가 좋게 된다고 꽉 믿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시련을 많이 겪을수록 하나님 좋은 하나님인 것을 더 체험하게 되고 좋은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신다고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5만 번 기도 응답을 받았던 조지 뮬러는 “주님의 도움을 원한다면 주님이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도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 하나님을 믿고 바라봄으로 두려움을 이긴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에 고백하기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라. 언제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감사하면 결국은 하나님이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이 세상에 살아야 됩니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께서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야 할 때 믿음의 태도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기 1장 9절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노라’ 하나님 눈에 안 보여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단 있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한 번 따라 읽어주세요.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할렐루야. 이사야 41장 10절에도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면 두려움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캄캄한 밤에 처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시험해 보는 것이지 좋은 일은 결국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우리가 배우는 것은 믿음을 배우고 순종함을 더 배우는 것이지 하나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해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어려울 때 같이 계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천국에 갔는데 예수님께서 “니가 걸어온 길을 같이 보자.”고 그래서 모래사장에 예수님과 이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걸었는데 발자국 4개가 예수님 발자국 2개, 이 사람 발자국 2개, 4개가 고스란히 모래에 찍혀 있어서 잘 보였는데 큰 파도가 쳐오는 지역에 오니까 발자국이 2개만 남고 2개는 없어졌습니다. 가만 보니까 예수님의 발자국은 있는데 자기 발자국은 없습니다. “주님.” “왜 그래?” “좋을 때는 나와 같이 계시다가 어려운 일이 다가오니까 날 살짝 피해서 주님 발자국만 있고 내 발자국은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어리석은 인간이 있기도 하나? 좋을 때는 너와 나와 나란히 같이 걸어가니까 내가 너를 업을 필요가 없지만 너무 어려울 때 고통을 당할 때는 너를 홀로 둘 수 없어서 내가 등에 업고 갔으니까 발자국이 두 개 밖에 없잖아.” 주님께서 심한 어려움을 다가오는 것을 보면 여러분, “가서 기도하고 나를 의지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주님께서 이렇게 주저앉아서 “어부바~ 어부바~” 그렇게 해서 예수님 목을 끌어안고 어부바 해서 어려운 시험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어부바 되어서 가라는 것은 초등학교 때 학교 다니면서 배워서 잘 알아요. 초등학교는 언양읍에 있었고 저희 집은 중남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언양 개천이 있었어요. 지금은 개천이지만 그때 내가 볼 때에는 큰 강과 같았습니다. 비가 오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그 개천을 건너야 집으로 오는데 진양 과수원이 우리, 제가 살던 곳입니다. 진양 과수원에 올 수가 없어요. 그래도 나는 걱정을 안 합니다. 왜냐하면, 그 언양읍에 저희 고모님이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누님이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 고모 신랑이 굉장히 몸이 거창하고 튼튼한 사람이었어요. 지금 보니까 그렇게 거창하고 튼튼하지 않았는데 어린아이 눈으로 볼 때는 장군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고모.” “왜 그래?” “고모 아버지 좀 빌려줘야 되겠어. 나는 언양 개천을 건널 수가 없잖아.” “아 여보 쟤 좀 데려다줘.” 그러니까 “어. 내가 가지. 오너라.” 내 손을 잡고 그 개천가에 와서 “등에 업혀.” 등에 업으면 “목을 꽉 잡아라.” 그러고 저희 고모 아버지가 걸어가는데 밑을 내려다 보니 얼마나 물이 소용돌이 치고 천지가 거꾸로 되는 것 같았어요. 아주 두렵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모부 등만 꽉 잡고 있으면 언제나 물은 건너와요. 물을 건너오고 우리 고모부는 그 물 건너 주기를 기뻐하시고, 그런데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 사람 뱃속에 생수의 강이 넘쳐 흐른다고 하신 주님께서 ‘시험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할 때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께 맡겨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삶을 걸머지고 맡겨 주시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고 아름다운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등에 업히는 생활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시련의 강을 건널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업어주시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하시는데,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라(이사야 43장 2절)’ 내게 업혀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련의 때를 지날 때에 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문제가 작아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 어릴 때 다니던 학교의 운동장에 가 보면 어릴 때는 그렇게 커 보이던 운동장이 ‘이렇게 작았구나’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작아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운동장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내가 커진 것입니다. 우리가 커진 바탕을 가지고서 보니 운동장이 작아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해서 만물을 바라보면 모두 다 작아 보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다가 열 사람은 돌아와서 “할 수 없다. 못한다. 안 된다.”로 말한 것은 그들 자신 마음속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자! 우리 밥이다! 점유하자!” 그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하나님의 눈으로 보십시오. 하나님의 이 큰 사랑을 가지고서 여러분을 붙들어주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이길 수가 있고 문제는 여러분의 밥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 마음이 눌리면 문제가 골리앗처럼 보이고 나는 메뚜기처럼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담대하면 문제가 작아 보이고 밥으로 보입니다. 결국 우리 마음의 상태가 중요한 것입니다. 언제 우리 마음이 담대해질 수 있나요?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 마음이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이사야 45장4절)’ 우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업고 가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원수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빼앗고, 인생을 포기하게 하며, 좌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세계가 어려운 상태에 있는 이때에, 마귀는 두려움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너는 이제 다 살았다. 망했다. 갈데없다. 빈 손들게 되었다.” 그 마귀의 음성을 듣고 마귀의 시키는 것을 바라보면 정말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라볼 때 하나님을 먼저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보고, 믿고, 그 다음 입술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상황이 이렇게 어려울수록 우리 생각이 긍정적이 되어서 분위기를 언제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 살았다. 이제 끝장났다 이제 빈 손 들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환경을 만들면 절대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오늘날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바라봄, 믿음, 긍정적으로 입술로 시인하는 것, 이것을 꼭 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먼저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주십시오. “먼저 바라보자. 그 다음엔 믿자. 그 다음 입술로 고백하자.” 이것을 계속 하면 우리는 이런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빼앗고, 인생을 포기하게 하며, 좌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고 굳건한 믿음을 주사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