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요 3:1-15)

2016.06.05. 주일4부예배

<서론>
‘주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조그마한 고깃배를 빌려 타고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고 물결이 사나워지며, 배가 바다 가운데쯤 왔을 때는 바람이 거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지나자 바닷물이 큰 파도가 되어 고깃배에 부딪히니 배가 기우뚱거림이 점점 심해져 파선하기 직전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무셨습니다. 제자들의 고함소리와 극심하게 기우뚱거리는 파도를 보시고 눈을 뜨시고 바람과 바다를 보시고 호령을 내렸습니다. “바람과 바다는 잠잠하라!”고 꾸짖었습니다. 즉시 바람과 파도가 조용해지고 만 것입니다. 정말 희한한 일이 아닙니까? 귀신을 꾸짖으니 인격체니깐 듣고 복종을 해야 되지요. 그런데 바람과 바다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명령에 변화가 다가온 것을 보았습니다. 왜냐면 바람과 바다의 뒤에 조종하는 사탄의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을 꺾어버리니깐 바람과 바다도 조용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게 마귀가 우리에게 고통을 가하고 분쟁을 일으킬 때, 눈에 안 보이는 집에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하면 가사가 평안해지고 조용해집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면 예수님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집에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뒤에서 주님이 축복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담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먹지 말라 한 선악과나무를 먹었으니 너는 네 아내와 함께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제 네가 쫓겨나간 땅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고 생활이 극도로 궁핍하고 종국에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서 생활하는데 극도로 생활이 어렵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게 되고, 맏아들이 둘째아들을 죽이는 살인극이 벌어지고, “이거 왜 이러냐? 이 일을 중지시킬 수 없느냐?” 그 배후에 하나님의 저주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노가 그치고 분이 그치고 하나님 축복이 주어지면 실생활에 다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앉아있는 여러분, 여러분이 아무리 애쓰고 힘쓰고 피땀을 흘려도 잘 살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데, 아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사는 데 어찌된 일인지 갑자기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진다는 말입니다.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건 왜냐?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에서 예수님이 축복을 했기 때문에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갈릴리 호수가 예수님이 고깃배를 빌려 타고 가는데 집채만한 파도가 덮어 침몰 시켜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은 예수님께서 일어나서 꾸짖었단 말이에요. 바다를 꾸짖고 바람을 꾸짖은 줄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 배후의 세력인 원수 마귀의 행위를 꾸짖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의 호통을 받고 혼비백산하고 손들고 나가니까는 조용하고 잠잠하게 되었단 말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세계의 배후에 영적세계가 있다는 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를 해할 자가 없고, 마귀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면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본론>
1. 인생 풍랑에 시달리는 제자들
우리는 인생 풍랑에 시달리는 제자들하고 같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의 풍랑에 매달려서 고생했지만은 우리는 아담과 하와 조상의 잘못을 이어받아 이 세상 땅 위에 살면서 인생 풍랑에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35절로 37절에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풍랑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우리 현재에 사는 사람들 무슨 파도가 쳐 오느냐. 죄악의 파도가 쳐오고, 허무의 파도가 쳐 옵니다. 우리 어디가도 죄악의 파도가 안 치는 데가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우리 배후에 마귀가 죄악을 가지고서 조종을 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사탄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질병의 파도가 있습니다. 하늘 아래 고통으로 덮어 씌워서 인간을 죽이려고 하는 마귀의 역사가 파도처럼 쳐 오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31편 10절에 보면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전도사 5장 17절에 보면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우리의 육신의 삶에는 질병이 다가와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고통을 겪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가난의 파도가 또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이 가난의 파도 말입니다. 실제로 농사를 지은 통계를 내면은 이 세상 사람들이 먹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 있는 마귀의 장난 때문에 먹고도 남을 수 있는 양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도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며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배후에 하나님 축복이 있으면 잘 살게 되고, 배후에 하나님의 저주가 있으면 잘 못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보십시오. 우리가 이 짧은 시간에 선진대열에 들어갔단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봐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시고, 우리 한국이 아시아에서 복음 전도의 중심국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축복을 해 주셔서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사실 꿈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눈부시게 우리보다 앞서간 선진국을 눈 깜빡할 사이에 따라 붙었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김정은이 따라서 몸부림을 쳐도 그 배후에 주님께서 축복 안 해주는 이상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세계 선교사 보내는 나라들 중에 으뜸이 가는 나라가 돼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선교사를 내어보내어서 복음을 천하에 증거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에 열심을 내야 될 이유도 거기 있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리라(누가복음 6장 38절)’고.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갚아주는 것입니다.
죽음의 파도가 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는 사람은 죽습니다. 생각하기 싫어도 죽음이 오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저는 60대만 되었을 때도 죽음에 대한 것을 많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80이 되니깐 세수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너 몇 날 여기에 서서 너 얼굴을 보고 웃음을 웃을 수 있겠느냐?” 저는 거울을 보고 꼭 웃고 나오거든요. 여러분 ‘마음에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에 근심은 뼈로 썩게 한다’고 말했는데, 제일 좋은 약이 웃는 약인 것입니다. 그런데 좀처럼 웃어지지가 않아요. 자기가 자기를 보고 웃는 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꼭 그렇게 하셔요. 거울보고서 “허허허허~ 너도 이제 늙었구나.” 그것이 생기발랄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아담과 하와 부모의 유전을 탄 사람은 다 죽음의 노예가 되어서 죽음의 북소리에 발걸음을 맞춰가지고서 점점 죽음의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생의 파도를 타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누가 우리를 돌보아줄 수 있습니까? 죄악의 파도, 질병의 파도, 저주의 파도, 죽음의 파도 우리가 탄 인생의 배에 우리들은 굉장히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건져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돌보아주는 목자인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겨우겨우 먹고살게 만들어 주는 주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신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거두어보니깐 남는 음식이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풍성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1절로 4절에도 보면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어떻다구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은 예수 믿고서 살면은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우리들은 이 세상의 풍랑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나는 같은 인생 배를 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어디에 계시나이까?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계신가? 찾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이 죽은 사람은 영적인 세계는 전혀 모릅니다. 물질세계 밖에 모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지 않고 영이 죽은 사람은 영이 영적세계를 전혀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물질세계 아니면 이해를 못합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3장 3절로 5절에 보면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 파면을 당하기 때문에 몰래 예수님 계시는 곳에 와서 “당신은 하늘이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기적을 행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하려고 했는데, 예수님이 니고데모를 볼 때 영이 죽고 육체만 살아있는 존재하고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생각이 대화의 그릇이 되고, 꿈이 대화의 그릇이 되고, 믿음이 대화의 그릇이 되고, 방언 말이 대화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모자라고, 꿈이 없고, 믿음으로 살지 않고, 대화에 깊은 것을 서로 나눌 수가 없고,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님하고 대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장 3절)’ 당신이 나에게 하늘나라를 주어 들으려고 왔지만은, 거듭나야 하늘나라를 알 수가 있다고. 거듭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니고데모가 말하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한복음 3장 4절)’ 이성적인 것, 과학적인 것,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에 서서 모든 것을 해석하니까 거듭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세상에서 태어났으면 그대로 늙어서 죽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장 5절)’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니까는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까. 물은 회개를 말하고, 성령은 하나님의 기적을 말하는데 도저히 니고데모는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느냐? 그것을 물을 때,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한복음3장14절)’ 그 다음 “나를 보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거듭난다, 속에 영이 살아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올 때 하나님께 배반하다가 하나님이 뱀을 시켜서 물어 죽이게 하니깐 수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뱀에 물려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고 살려달라고 모세에게 간구하니,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깐 “뱀을 만들어서 높이 장대에 매달아라. 보고 믿는 사람은 다 살아나리라” 그래서 동으로 뱀을 만들어서 높이 매달고, 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쳐다보기만 하면 기적적으로 병이 낫고 해독이 되고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 사람이 속사람이 살아나서 4차원의 영적인생이 되려면 거듭나야 되는데, 그냥 거듭나는 것이 아니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은 다 거듭나게 된다.’ 나를 구세주로 믿고, 세례를 받고,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입으로 선언하는 사람은 영원히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영이 죽어있습니다. 혼만 살아 있고, 육이 살아 있지요. 영은 죽었습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보고 아무리 말해 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가서 “야. 너 참 얼굴 못났다. 왜 핏색이 없고 하얗게 분을 발라 놓은 것 같이 돼 있는 건 왜냐. 왜 혈색이 없냐? 웃어봐라.” 죽은 사람보고 아무리 그래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건 영혼이 죽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산 사람보고서 “야. 네 꼬락서니 말이 없다. 참 인물도 못났다. 너하고 대화도 안하겠다.”하면 그 사람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무엇이 어쩌고 어째?”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이나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제물이 되었으니깐 그 공로로 인하여서 성령이 오셔서 거듭나게 해서 우리는 4차원의 세계인 영적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린 영원히 살아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생각이 서로 통하고, 꿈의 세계가 하나님과 서로 통하고, 믿음이 통하고, 영적인 언약의 말씀이 서로 통하고, 영혼이 죽은 사람은 도저히 교제가 안 되는 세상에 우리는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혼이 살아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육체 속에 죽어있던 영혼이 살아났으므로 이제 그 영적인 세계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영적인 대화를 통해서 기도를 해야 돼요. 아브라함이 아들 달라고 10년을 기도해도 아들 못 얻은 것은 영이 살아서 꿈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되는데, 꿈을 갖고 기도하지 않고 그냥 마음에 소원만 가지고 아무리 아들 달라 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영혼이 살아 있기 때문에 영혼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통해서 품던지 꿈을 통해서 품든지 믿음을 통해서 품든지 꿈을 가지고 마음에 그것을 껴안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살아 있어야 하나님과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죽은 사람은 하나님과 아무리 이야기해도 대화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이고 그 다음 물로 침례를 받고 입술로 시인하면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보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뭐 모세니, 엘리야니, 선지자 중에 어떤 한 사람이라고 말을 합디다.” 그래 예수님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주님이 무릎을 치면서 “이것을 내게 알게 하는 이는 너희 혈육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알게 해 주었다.” 그와 같이 하나님 아들인 예수님이 진짜로 구주인 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습니까? 보지도 못했는데 믿지요. 그러니까 성령이 여러분을 끌어안고 깨달음을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는 것은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차원이 달라지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으니까 불교 믿은 거와 같이 힌두교를 믿은 것 같이 종교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3차원의 산 생명에서 한 차원이 높은 영적인 차원, 4차원을 마음속에 모셔들인 이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차원인 물질적 세계에서 4차원인 영적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것을 알아라’ 육신으로 난 것은 육신이지. 육신이 변해서 영이 되지 않습니다. 영을 통해서 거듭나야 영적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과 마음대로 대화를 했습니다. 영이 살았습니다. 영이 혼과 육을 더불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죄짓고 난 다음엔 영은 죽어버렸어요. 철저히 죽어버리고, 그 다음 혼 육만 살아가지고서 육체만 살아가지고서 마귀의 종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가 죄 값을 다 지불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갈 때 아버지는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으로 영이 태어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영적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의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인 것이 영적 세계의 시민이 되니까 성경을 펼쳐서도 영적 세계의 양식을 먹고 좋아하고 여러분 영적 세계 아버지와 기도로 대화도 하고 우리 삶이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3차원에 속한 인간의 혈통이나 육정이 아니라 성령으로 태어난 자로서 4차원의 영적 세계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여러분 같이 계신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하고 함께 계신 것을 우리는 제일 큰 행복으로 느껴야 됩니다.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은 1791년 88세의 나이로 이 땅에서 삶을 마쳤는데, 그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친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남아 있던 온 힘을 다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그 다음 그는 두 팔을 들고 다시 힘을 내어서 말했습니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죽을 때 같이 계신 것이다. 웨슬리 목사님의 말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인생에 폭풍이 몰아칠 때, 환경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낙하산 훈련을 군대에서 받게 될 때, 그때 교관이 늘 하는 말이 있죠. 지금은 지금도 제게 기억이 납니다. “너희들 비행기 안에서 밑을 내려다보지 마라. 밑을 내려 보면 무릎을 벌벌 떨면서 못 뛰어 내린다. 산을 바라보라. 비행기 문을 열리면 멀찌감치 산을 바라보고 하나, 둘, 셋 하고 뛰면 낙하산이 벌어지고 안전하게 내릴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낙하산 훈련을 나갔는데 우리 친구들은 하나, 둘, 셋 하고 다 뛰어 잘 내리는데 난 못 뛰어 내렸어요. 겁이 너무 나서, 예수 믿기 전이니까. “아이 난 다른 일 다 해도 하지, 이건 안하겠다고.”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우리의 생활 속에 안정을 얻는데 중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로다(시편 121편 1-2절)’ 우리가 풍랑을 바라보고 있으면 풍랑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리니. 밤에 놀램과 낮의 환난을 당할 일이 있어도 우리가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 1절로 2절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로다’ 4절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니’(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폭풍우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께서 우리의 도움이 되시고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성경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했습니다. 중생한 4차원적 영을 모시고 사는 자는 3차원적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우리는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어서 우리는 영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영적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은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감각이나 이성을 통하지 아니하고 그 단계를 넘어서 우리는 꿈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놀라운 세계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믿음의 세계가 들어온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이 된 이상, 성경 말씀은 거듭난 사람들이 믿고 사는 하나님의 약속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당 가는 것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의지해서 아무 노력 없이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적으로 우리를 대해 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할 때, 40년 동안 농사 안 지었습니다. 만나가 내려서 먹고, 메추라기가 와서 고기를 먹고,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오고, 상상할 수 없는 기적들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인데, 그렇게 해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반역한 것은 그들은 영적인 사람이 아니고 모세가 영적인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관계해서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받아먹게 했는데 받아먹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해요. 자꾸 불평하고 반역하다가 다 죽고만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세상에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아닌 특별한 삶의 방식이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믿음으로서 사는 세계에 들어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항상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심으로 좋은 일이 생겨난다고 기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심으로 좋은 일이 생겨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된 일이 일어나고 범사에 잘 되는 일도 생겨나고 건강도 생겨난다고 기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3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해서 네 청춘으로 아름답게 해주시겠다는 것은 거듭난 사람, 영의 사람이 누리는 것을 꼭 누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일반 세상 사람은 택도 없는 일 아닙니까? 죄가 다 용서받고, 병이 다 낫고, 생활에 환난이 변하여 축복이 되게 해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미신을 믿는다고 흉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가슴을 딱 펴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구주가 되시고, 성령님 보혜사가 되시는데,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 모시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언제나 마음속에 기대하고 있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다른 점인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할 때 하나님께서는 의식주 문제를 믿음으로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백성들은 늘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여 나중에 모두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서 영이 살아난 우리는 3차원의 이 세상보다 차원 높은 삶을 살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4차원의 세계에 시민이 돼 있기 때문에, 4차원의 세계는 기적의 세계인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다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인데,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살고 있으면, 그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적이 안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풍랑 속에서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능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쳐다보고서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풍랑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만,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풍랑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이 풍랑을 잠잠케 해 주시고, 평안하게 지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28절로 30절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히 하시어 물결도 잔잔케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야훼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광풍을 잔잔케 하시고, 우리를 고통에서 건지사 안전한 항구에 들어가도록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 거듭난 우리들에게 믿음으로 살라고 늘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 인간의 노력으로 살지 말고 4차원으로 사는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3차원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물질적으로 사는 사람인데, 이 4차원으로 넘어간 사람은 4차원은 영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눈에 안 보이고, 안 만져지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세계는 믿음의 세계인 것입니다. 성령의 세계인 것입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므로 4차원의 영성에 들어온 사람은 기적을 믿을 수가 있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을 수가 있고, 하나님이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하는 이러한 담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은 우리 교회의 김순석 권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놀랍습니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 병원에 갔다가 녹내장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을 한다고 해도 100% 낫는다는 보장도 없고, 심지어 실명의 위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술날짜를 잡고 마음에 갑갑해서 평일 철야 예배에 참석했는데, 고난이 다가올 때 회개해야 한다는 설교를 듣고, 주님께 회개하며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 그 보혈을 권사님에게 수혈해주시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수술 당일이 되어 수술 전에 다시 검진을 했는데, 의사가 깜짝 놀라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녹내장이 사라지고 없어졌네요!” 이게 4차원의 영성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고난의 풍랑이 다가올 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믿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건져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더구나 예수님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대하는 그 신앙의 생활을 통해서만이 역사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대하지 않고 부르짖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응답해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응답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 그 이름을 야훼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놀라운 일을 해주겠다(예레미야 33장 2절 ~ 3절)’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잠시 동안 고개 숙이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난 다음에 변화를 받아서 이제는 4차원의 영적인 삶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아담의 후손으로서 살지 말고, 모두 다 거듭나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