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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분위기 (마 7:1-5) 2016.06.12. 주일4부예배 <서론> 마음의 분위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맑고 온화하고 아름다운 날씨는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환경을 통해서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삶의 분위기도 이런 날씨와 같습니다.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삶의 분위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이상 대화를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기쁨과 행복은 서로가 만들어 가는 삶의 분위기에 크게 의존합니다.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행복한 삶을 아무리 기대해도 되지 않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에 오고가는 사소한 대화는 삶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오곤 합니다. 형제간, 부모 자녀 간, 친척이나 친구 간 등의 허물이 없이 지내는 사이일수록 대화의 분위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분위기란 굉장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저가 말씀을 증거 할 때, 성령님께 의지하는데 적극적으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굉장한 은혜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위기가 그렇지 못하고 살벌하고 성령님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비관적이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람 말만 들어가지고는 진부를 알 수 없는 것이, 요번에 월요일 날 제가 인도로 향해서 출발할 때 만나는 사람마다 인도가 굉장히 덥다고, 40도 이상이니까 더운 때 입는 옷을 단단히 준비하고 가야 된다고. 그래서 추위를 많이 타는 저라 좋다고 생각하고 인도에 갔는데, 얼마나 추운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이튿날 잠을 깨자마자 제일 먼저 요청한 것은 전기담요를 갖다달라고. 아 우리 장로님이 밖에 나가서 사가지고 온 것 같아요. 그거를 깔아 놓고서 잠을 자니까 천당 근처에 온 것 같아요. 그러고 사람들도 요번에는 많이 모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준비를 별로 하지 않고 나갔는데 30만 명이 모이니까... 천지에 사람들이라 앉아도 사람, 서도 사람, 옆을 봐도 사람, 뒤를 봐도 사람. 모두 다 사람들이 희망을 바라고 모여드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 한국은 인도에 비교하면 참 행복하고 평안하게 잘 사는 형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의 영향력이 굉장히 셉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서 서로 행복을 나눌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특별히 성경책처럼 여기는 탈무드에 어떤 왕이 신하 두 사람을 불러서 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가장 악한 일이 무엇인지 알아오너라”고, 또 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가장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오라” 했습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자 두 사람이 보고해왔는데, 악한 것을 알아 나오라고 한 사람보고 “무엇이 악하더냐?” “다녀보니 결과 혀가 만물 중에 가장 악하다.”고, 그러고 선한 일을 조사해오라는 사람보고 “너는 어떻더냐?” “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이라.”고. 우리가 잠언서 25장 11절에 보면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를 놓아준 것과 같다’ 그런가 하면 야고보서 3장 8절로 이하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혀는 은쟁반 위의 금 사과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말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본론> 1. 사소한 말이나 부정적인 비판 사소한 말이나 부정적인 비판은 굉장한 불행을 가져옵니다. 흔히 하는 부정적인 말들은 “너는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시키는 거나 잘 해보아라. 너는 늘 그것이 문제야.” 별로 사나운 말같이 않은데 이런 말을 가까운 사람에게 하면 듣는 상대가 모욕감을 느끼고 혹은 분노 및 불안감, 모멸감을 느껴 우울증과 불안장애, 인격 장애 같은 정신적 질병을 일으키고 자살 충동까지 일으키는 것입니다. 희노애락의 감정을 동반한 언어폭력은 깊은 마음의 상처를 주고 좀처럼 잊혀지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2장 8절로 9절에 보면 다윗이 자기 아들에게 쫓겨서 시골로 피신을 할 때 다윗의 경쟁자인 사울왕의 친척이 다윗을 따라오면서 욕을 했습니다. “저주 받을 녀석, 잘 가라. 잘 가라.” 저주를 했습니다. 그 저주하는 다윗은 다시 복권 되어서 들어올 때, 이 사람이 유다에까지 찾아와서 “내가 전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말 잘못했습니다. 평안히 들어오십시오.” 그러니까 짧은 세월 동안에 “저주받아 잘 가라. 떠나가고 다시 들어오지 말라”고 말한 그 말을 변경시켜서 환영을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자기는 칼로써 너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은 했지마는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절대로 저 놈 편안하게 저 세상에 가지 않도록 하라”고 “피를 쏟고 이 세상을 떠나도록 만들라”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야훼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열왕기상2:8-9)’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이렇게 큰 비극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부부로부터 듣는 잔소리에 고개를 흔들 때가 많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모, 그리고 부부 사이에 듣는 잔소리가 계속 되면 그게 나중에 언어폭력이 되는 것입니다 언어폭력은 몸에 스트레스 호르몬을 산출하여 신체장애를 갖고 오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24절에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된다’고 말합니다. 잔소리가 단체의 화평을 짓밟고 행복과 기쁨을 깨뜨립니다. 잠언서 18장 6절에 보면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한다’고 말했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로 11절에는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말하고,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는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잘못하면 부모 자식 간, 부부간 가장 가까운 사이에 다툼을 일으키고, 분쟁을 일으키고 마는 것입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혀를 절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그것을 따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가 잘못된 모범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방영되었던 ‘우리 아이 달라졌어요’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있은 일입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폭력을 쓰거나 욕을 하거나 누가 봐도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가진 어린 아이들이 나오는데,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고 잔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야단을 쳐도 아이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모들이 아동 심리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자 순식간에 애들이 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문제는 그 행동과 원인이 다 부모에게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훈육할 때, 무조건 잔소리를 하고 야단만 쳐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에 대해 알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1절에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도 자식을 이해하려고 애를 써야하고, 자식들도 부모를 이해하려고 애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굉장한 문제가 되는데, 아동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잔소리도 보면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부부간의 최대불만이 남편의 경우 ‘아내의 잔소리’이고, 아내는 ‘개인생활이 줄어드는 것’이 그 잔소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과 아내 모두가 가장 참기 어려운 잔소리는 “퇴근하고 곧바로 집으로 와요” 남편도 그 소리가 듣기 싫고, 아내도 그 소리가 듣기 싫습니다. 그 다음 듣기 싫은 잔소리가 남편이 자기 아내를 보고 “여보 친정에 신경 좀 써라” 아내의 말입니다. 아내가 남편보고 “여보 우리 친정에 관심 좀 기울여줘” 그런데 아내는 남편이 “시집에 신경 좀 써” 그것이 아내가 굉장히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다 비슷합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도 목회하는데 잔소리를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늘 부정적인 말, 꾸중하는 말, 그런 말로 성도들을 대하면 성도가 짜증을 내는 것입니다. 어제도 시골에 교회를 잘 받드는 권사님인데 그 멀리서 저를 찾아왔어요. 저를 그냥 찾아오기가 민망하니까 굴비를 선물로 해서 와서 듣기 싫은 소리를 가지고 온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목사가 잔소리가 너무 많아서 교회 오는 것이 딱 귀찮아졌다고,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소망을 주고, 용기와 힘을 주는 일은 하지 않고, 새벽기도 나오라고 늘 강조를 하는데 새벽기도 나가보면 몇 사람 안 나왔는데 그 중에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조는 분이 목사부인이라고. 우리보고 새벽기도 열심히 하라고 해놓고 자기 아내는 시작에서 끝날(때)까지 잠만 자고, 그러고 우리가 신앙상담을 가면 목사님이 핸드폰을 가지고 그거나 찍어보고 있고, 말을 해도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른다고. 그러니 사람들이 그 목사님 모시고 천당 못가겠다고. 좀 바꿔달라고.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하기 힘든지 몰라요. 그러고 저가 생각해도 목사 편에 말을 들으면 또 목사편의 말이 다르거든요. 알아보겠다고 말은 했는데 알아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2. 희망을 주는 말을 하라 희망을 주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만사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만 희망을 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보고 희망을 주는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저가 혼자 있을 때도 “조용기 목사, 너 끝장났어. 이제 나이도 너무 많이 먹었고 젊은 사람들이 늙은 사람 좋아할 턱도 없고, 잔소리나 하고 있으니까 너 목사로서 되겠느냐?” 그 말을 나보고 해놓고 난 다음에 내가 낙심이 되가지고서 힘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비평하는 평론도 굉장히 나쁜 것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향해서도 희망을 주는 말을 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자기에 대하여 좌절적인 잔소리를 함으로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 시편 기자는 자기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를 내라고. 왜냐하면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많이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직접 제가 고래가 춤추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이 있습니다. 항상 상대의 장점을 파악하고 칭찬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한다(잠언 27:21)’고 말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소한 대화가 희망을 싣고 흐르는 것입니다. 저가 제자들을 많이 만나고 후배를 많이 만나는데 옛날에 한마디 말 한 것이 자기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하는 간증을 종종 듣습니다. 서로 대화할 때 격려하는 말 한마디 한 것이 그렇게 자기에게 중요하더라고 제게 간증하는 것을 제가 듣습니다. 잠언서 18장 20절로 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자기도 살리고 이웃도 살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긍정적인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언어 폭력’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말이 거칠어지다 보니 영국의 한 광고회사에서 만든 광고가 SNS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광고를 보면 한 노인이 길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 놓인 널빤지에 “나는 장님입니다. 도와주세요.” 그렇게 썼는데 비디오에 나온 저대로 입니다. 아무도 돈을 별로 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것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은 몇 사람 돈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때 지나가던 한 여자가 그 널빤지 뒷면에 뭐라고 글을 쓰더니만 뒷면이 보이도록 앞을 놔 장님이 그를 바로 잡고 있도록 하고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기적 같은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돈을 주고 가는 것입니다. 그 여인이 뭐라고 기록했는지 다 보고 돈을 주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성이 종이판에 적은 문구는 이러합니다. “아름다운 날입니다. 그리고 난 그걸 볼 수가 없네요.” “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 “나는 장님입니다. 도와주세요.”그렇게 썼을 때는 몇 사람이 도와주고 많은 사람이 돕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도와주세요.” 말만 하지 않고 문구 대신에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했더니 긍정적인 단어를 읽은 사람들이 다 동전 한 푼씩 주고 갔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날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보지를 못합니다.” “아이 불쌍하다. 도와주자!”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3. 예배시 하나님께 감사를 많이 하고 찬송을 많이 하라 우리가 예배시 하나님께 감사를 많이 하고 찬송을 많이 하면 하나님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로 17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서로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감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 굉장히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같이 노래를 부를 줄 모르는 사람도 노래를 부르고 찬송을 하면 집안이 화평해진다고요. 잔소리를 하려고 하면 제가 잔소리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잔소리를 안 하려고 하면 찬송을 부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요.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칭찬을 하고, 기뻐하고 노래하면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여러분의 감사의 노래를 들을 때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제가 이 말을 많이 씁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은 안온다고. 그래서 자꾸 달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찬송을 부르고, 자꾸 감사하면 하나님이 그 제사를 즐겁게 받고 응답해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로 20절에 보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은 감사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감사와 찬양을 하면 하나님이 굉장히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면 하나님이 찌푸리시는 것입니다. 광야에 모세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이 이동을 하는데, 너무 불평을 말하니까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 가지고서 불뱀이 사람들을 무차별로 물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백성들이 와서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놋뱀을 만들어서 매달으라”고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으니까 쳐다보는 사람마다 나으리라. 뱀에 물린 사람이 그걸 쳐다보니까 다 나았었다고. 놋뱀 같이 뱀을 달아매라는 것은 마귀와 같이 원망 불평 탄식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뱀 탄식은 하나님도 굉장히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만든 예배 분위기는 놀라운 일입니다.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가지고서 실컷 얻어맞고 바울과 실라가 감방에 깊은 곳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저녁도 먹지 못했고, 실컷 얻어맞았고, 누워서 잠 못 자게 하느라고 감방의 쇠고랑에 묶어 놨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불평을 말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쇠고랑을 철거덩 철거덩 서로 부딪혀 가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던지 다른 죄수들이 고함을 안 쳤습니다. 다른 죄수들이 “잠자는데 시끄럽다. 예수쟁이들 왜 이리 시끄럽냐?” 그렇게 말할 것인데 안 그러고 그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철겅 철겅 철겅 철겅~ 그러니까 하나님도 그 찬송소리를 듣고 있다가 그 박자를 맞췄습니다. 빌립보 감옥터가 옥터가 흔들리고 쇠고랑이 다 풀려버리고 아주 분위기가 좋은 가정과 같이 되었습니다. 죄수가 감옥 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다 풀려지면 무얼 합니까 여러분? 도망쳐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 간수장이 죄수들이 다 도망치는 줄 알고 자살하려고 하니까 바울이 “자살하지 마라. 한 사람도 안 달아났다.” 바울과 실라의 찬송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구성지고 그들 마음에 은혜가 됐던지 안 달아났어요. 그만큼 감사와 찬송은 우리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영향 받은 것이 아니라 죄수들도 영향을 받아서 그 더 듣고 싶어서 도망을 안 쳤던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에 감사와 찬송을 억지로라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어진지라(사도행전 16:25-26)’ 실제로 매인 쇠고랑이 다 벗어지니까 안 보이는 마음의 쇠고랑은 안 벗어질 리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혼자서 살 수 없고 두 세 사람이 함께 대화하면서 삽니다. 그 대화가 희망을 주는 격려의 대화가 되기도 하고, 상대를 짓누르는 언어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먹으로 얼굴을 치는 것만 폭행이 아닙니다. 조용한 언어로 말하더라도 상대가 모욕감을 느끼고, 기분이 상하게 만들어 스트레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사랑을 갖고 언제나 용서와 더불어 희망을 갖고 대화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데도 찬양이 제일입니다. 집안을 요란스럽게 하고 마귀의 역사가 일어나 있으면 찬송을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마귀를 쫓는 무기가 됩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사무엘상 16:23)’ 감사와 찬양은 전쟁에서도 승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여호사밧 왕이 ‘노래하는 사람들을 택하여 군대 앞에서 행진하매 야훼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하도다 (역대하 20:21)’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찬송을 하자 하나님 역사가 나타나서 전투를 하는 적군들이 사기를 다 잊어버리고 혼비백산 하고 도망을 치고 큰 승리를 여호사밧 왕이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오늘날 전쟁이 벌어지면 원망하지 말고 노래를 불러야 돼요. 우리가 사업을 해도 사업에 성공하려면 사원들과 매일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가정이 화평하고 좋으려면 아버지 어머니가 노래를 잘하던지, 애들이 노래를 잘하던지 가정에 노랫소리가 끊어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래를 잘하시지요? 여러분 노래를 잘하시면 더 힘을 내어서 노래를 부르십시오. 그것이 가정에 예배드리는 제사 중에 제 1등 제사인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일언기출, 사마난추’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도 읽기에 어려운 중국말이라 제가 연습을 좀 하고 왔는데도 안 읽어집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말은 한번 입에서 나오면,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도 쫓아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일단 입에서 말을 하고 나면 그것을 붙잡아 놓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말은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통제할 수 있지만, 입 밖에 나가면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엎질러진 물’이요, ‘시위를 떠난 화살’ 이라고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 말을 할 때는 신중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해 놓은 말 도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입술의 말을 통해서 행복을 가져오기도 하고, 슬픔을 가져오기도 하고, 조화된 삶을 살 수 있기도 하고, 원한에 사무친 삶을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좋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하시고 남의 장점을 찾아서 장점을 늘 시인해 주고 자기 스스로를 자기가 격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용기와 힘을 스스로 가지도록 힘을 쓰고 자기를 칭찬하고 자기에게 힘을 주도록 하고 분위기에 노래를 부르는 찬송을 부르는 이것이 분위기를 크게 다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분위기가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고 행복하게도 만드는데, 그 분위기는 말과 노래가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와서도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 하고 기도로써 말씀을 할 때,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취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수요일 날 저녁 예배같이 느껴지지만 그러나 내가 여러분을 보니 얼굴에 빛이 다 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많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일날 하나님을 찾아 나오셨으니 하나님이 이 자리에 오셔서 여러분을 극히 기뻐하게 생각하고 사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