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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6) 2016.07.17. 주일4부예배 <서론> 오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니고데모라는 유대인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회원이라고, 유대 나라에서는 제일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모인 회의 회원인 것입니다. 이 니고데모가 가만히 보니깐 예수님이 오셔서 기적을 행하는데, 상상을 초월한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직접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님이 어디에서 그런 기적을 행하시는지 그 내용을 알고자해서 질문을 한 것이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깐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나니라” 천국시민권을 갖지 않고는 내가 한 이 모든 일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구상에 살아도 미국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미국 정부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보호함을 받을 수 있고, 미국의 시민권이 없는 사람은 미국의 혜택이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시민증을 받으면 한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한국시민증은 값이 없었는데 요사이에는 값이 나가요. 한국사람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꼭 알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고 그랬어요. “시민권이 달라지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고 그랬어요. 그러니 니고데모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 모태에 들어갔다 나갈 수 있습니까?” 한번 늙었으면 늙었지, 다시 태어날 수 있겠느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종교적인 형식이나 의식이 아니라 완전히 달라져야 된다. 완전히 회개하고, 물로 씻고, 하나님 성령이 오셔서 변화시키고, 창세기적인 역사가 일어나야 하늘나라의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더라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고(창세기 1장 2~3절)’ 완전히 창조한 과정인 것입니다. 성령이 운행해야만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우리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종교적인 형식이나 의식을 집행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운행하셔서 완전히 새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거듭날 수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육이 영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으로 나야 영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는 것은 니고데모는 “육을 가지고 있는 이상은 그 상황에서 영의 일은 알 수가 없다. 영은 영으로 태어나야 안다.” 우리 교회당에 예수 안 믿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처음 앉아 있으면 아무리 들어도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육이 앉아서 영의 이야기를 들어서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해주셔서 육이 변하여 영이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보면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영으로 난 사람은 다 그와 같다.” 우리 중생한다는 것은 영은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바람이 공기라기도 하고, 바람이라고 하는데,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 이 자리에 앉아서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바람은 눈에 안 보입니다. 그리고 어디로 불어와서 불어 가는지 그냥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난 것은 그와 같다. 여러분 어디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어떻게 나를 변화시켜서 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시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번 숨 심호흡을 한 번 해 보십시다. 후~바람이 내 속에 들어 왔습니까, 안 들어 왔습니까? 들어 왔지요? 그래도 눈에 안 보이지 않습니까. 금시 내 속에 들어온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내 속에 들어오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속에 들어갔던 바람이 내속에 들어왔는지도 몰라요. 그와 같이 바람이 우리 속에 어디에서 불어 와서 어디로 나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성령께서 그렇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어지럽습니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님께서 “너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육의 세계하고 영의 세계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의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육의 사람은 알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이외에는 하늘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왔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늘에 올라간 사람 많이 있는데요? 엘리야도 하늘로 올라갔는데, 예수님만 하늘에서 내려 왔습니까?” 엘리야가 구름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랬는데, 엘리야는 하늘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왜 그러냐? 여기에 하늘이라는 것은 하나님 보좌를 배설하고,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그곳에 들어간 자는 아직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우리 다 살겠지만은 지금은 하늘에 올라가는 대합실에 다 모이는 것입니다. 지금은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의 곡조 따라 여러분의 영혼은 대합실인 낙원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가면 낙원에 들어가서 하늘에 들어갈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죽으면 지금 당장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음부에 내려가서, 대합실이 음부인 것입니다. 음부에 내려가서 심판의 날을 기다립니다. 심판의 날이 오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내려가는 것입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내려가는 것 장난이 아닙니다. 엄청난 고통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차라리 구원 받지 못할 바에는 안 태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구원을 받아, 영원히 구원 받은 영혼이 육체 속에 살다가 죽으면 대합실에 가서 기다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다 대합실에 가서 만나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는 것은 예수님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사람의 힘으로 천당에 갈 수가 없어요. 선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로 천당 갈만한 공을 세울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 사람을 하나님 은혜로써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살려 주시느냐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려주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광야를 지나오는데, 어찌 불평을 말하고 원망을 말하고 탄식을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 뱀을 보내서 마구잡이 물어 죽이게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세 앞에 회개를 하니,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이 “뱀을 만들어서 높이 달아라. 그 뱀을 쳐다보고 믿는 자마다 독에서 해방이 된다.”고. 그래서 모세가 뱀을 만들어 달으니, 사람들마다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독에서 해방이 되고, 뱀을 쳐다보지 아니하고 “무슨 그런 장난 같은 소리 하느냐?”고 오히려 더 반대한 사람은 뱀의 독으로다 죽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독을 먹지 아니하고 구원 받은 것처럼, 예수님이 광야 같은 이 세상에 내려와서 인간의 모든 죄악과 불의와 추악과 저주와 죽음을 걸머지고 십자가에 매달렸는데, 누구든지 저를 바라보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한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 “신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니고데모가 정신이 없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6절)’ 그리스도의 복음은 너무 심오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남녀노유, 빈부귀천 불구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자랑할 자가 없느니라(에베소서 2장 8~9절)’ 우리 자신이 잘났든 못났든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 앉아서 제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저 말은 진리의 말씀이다, 아멘’이라고 하면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웃기는 소리 하네. 세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안 믿을 소리를 하고 있다. 무식한 소리 하고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지옥 대합실에 아예 신청서를 내 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7절)’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해서 멸망 받게 하는 시대가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푸틴 소련 수상이 법적으로 소련에 기독교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선언을 했습니다. 이제 소련이 영적으로도 죽을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죽으려고 노망을 했습니다. 안 죽고 영생하는 것도 예수 믿는 길이요, 잘 살게 되는 것도 예수 믿는 길입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박사가 사람을 보내서 요 며칠 전에 제가 그 사람을 만났는데, 조 목사에게 가서 ‘어떻게 해야 한국이 통일이 되고, 잘 살게 되는지 그 논문을 좀 써서 보내 달라’ 그럽니다. 미국사람이 저보고 논문을 써달라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다행히 제가 8월 15일도 다가오고 해서 우리 한국이 잘 살게 된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리 그래함 박사가 그 논문을 받아서 자기가 참조해서 발표를 하겠다고 그렇게 하니깐 마음이 기뻐요. 그 논문은 대개 이런 논문인 것입니다. ‘생각을 바로 먹어야 나라가 잘 되고 통일 된다.’ 사람들이 생각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이 되면 그 생각을 통해서 ‘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새마을 운동이 마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을 부정적으로 해서 ‘나는 못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불평, 원망, 탄식하고, 무능력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든지 그 생각을 무엇이 좌우하냐면, 문화가 생각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한국민족의 문화가 있어서 그 문화를 따라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화를 변화시키려고 하면 좀처럼 변화시키지 못 하는 것은, 한국은 불교문화와 유교문화가 꽉 들어차 있기 때문에, 이것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적을 따라서 살 수 있도록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문화를 바꿔야 됩니다. 그 문화를 무엇으로 바꾸느냐? 종교가 문화를 바꾸는 것입니다. 기독교 종교가 들어오면 긍정적인 문화로 바꾸어지고, 문화가 바꿔지면 새로운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한국도 잘 살고, 미국도 잘 살 수 있어요. 우리가 짧은 세월 동안에 이런 정도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한국이 일천만 성도들이 생겨나고, 우리 한국사회에 문화가 기독교 복음화 된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적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러므로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만들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심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독생자 이름을 통해서 구원 받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독생자 이름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그 아들을 믿지 아니함으로 심판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빛인 예수님이 이 땅 위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고 믿으면 진리를 따르는 것이요, 빛을 따르는 것이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빛을 등지고 어두움을 따라서 살게 되므로 주님께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저번에도 여러분에게 이야기 했지만은 엘리베이터만 타면 주님이 내 길이요, 진리인 것을 마음속에 더 느끼는 것은 꿈속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고장이 났어요.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하나님 나는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나갈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이 누구시냐?” 그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면 네가 어떻게 감추어질 수 있느냐? 예수님 이름을 불러라.” 그러니 “주님!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 그러니깐 그 다음에 보니깐 내가 엘리베이터 밖에 나와 있어요. 그 충격이 꿈인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심했던지 내 머릿속에서 엘리베이터만 타면 그것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내 길이니깐, 예수님만 따라가면 올바른 길로 가는 거예요. 예수님이 진리이기 때문에, 예수님 따라가면 거짓에 빠져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것을 보면 영과 혼과 육, 이 세 가지로 만드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 보면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영으로 난 것은 영이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하는데, 영으로 나서 육 속에 살고 있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세기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을 갖고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러니 사람은 왜 귀중하냐. 하나님이 직접 자기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가지고서 직접 코에 후~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그러니 완전히 하나님 손에 의해서 지음 받은 것이 여러분과 나, 사람인 것입니다. 이 인생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려고 하면 천당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가 동등되게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파멸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려고 하지 말아야 되는데, 사탄의 꾀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너희들도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별할 줄 알고, 하나님과 동등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꾀 가지고서 선악과를 따먹고,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죽은 인생들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선악과를 따먹고 지은 사망의 죄가 청산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죄는 유전죄로써 사람들이 청산할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이 그 인류의 모든 죄악을 다 짊어지시고, 용서해주시고,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되어서 육체 속에 있으나 영적으로 살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살다가 주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에 많은 사람들이 “나는 크리스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 중에는 크리스챤 아닌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예전에 제가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대집회를 열 때인 것입니다. 저녁에 택시를 타고 코펜하겐에 있는 제일 큰 강단에 복음을 증거 하러 갔는데, 그 택시를 잡아타고 강단으로 가자하니깐 택시 운전사가 그땐 한국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나를 보더니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그래요. 그래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 사람이 여기 왜 왔느냐?”고. 그래 내가 “복음 전도하러 왔다.”하니깐 “예? 우리 덴마크 사람들은 모두 다 예수 믿는 사람인데 한국 사람이 여기 예수를 전도하러 오다니요? 놀라운 일인데요?” 그래서 내가 “당신은 예수를 믿습니까?”, “아 우리 덴마크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예수를 믿고 태어납니다.”, “아니 내가 당신이 예수를 믿느냐”고 묻는데, 가만히 차를 운전하면서 가더니만 나를 쳐다보고 “예수가 한국 사람입니까?”, “거보라!”고, “예수님을 한국 사람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우리 위에 죄 사함을 주신 구주인데 그 예수님을 오늘 믿으십시오. 한국 사람은 예수가 아닙니다.” 한국 사람이 예수님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우리나라 민족은 태어날 때부터 다 구원 받았다’고 그렇게 망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부모님 따라 교회 나갑니다. 우리 가족들 따라 교회 나갑니다.” 교회 따라 나가는 거는 좋지만은 구원은 자기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 보혈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라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마음에 예수님이 날 위하여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입으로 시인하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셨다”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아 천국 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은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행동을 해서 그 덕택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죽고, 장사지낸바 되고,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해서 죽음에서 깨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거듭난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정치인들도 새로운 정치로 거듭나겠다고 공약하고, 기업도 새롭게 거듭나겠다고 홍보합니다. 또 악한 사람이 선하게 살면 “저 사람 이제 거듭났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새로워진다 해도 그것은 육에서 난 육일뿐입니다. 나무를 잘라서 그 가지를 땅에 심고, 물을 주고, 비료를 줘도 그 나무가 새롭게 살아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이 죽은 인간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살아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옛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함께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그러므로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만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대신해서 끌어안고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죄를 속하기 위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의 인류의 죄를 자기의 죄로 끌어안고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으로 내가 깨달아 알고 마음에 믿으면, 예수님은 자기의 보혈로 우리를 씻고, 자기의 의로움으로 의롭다 해주는 것입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고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인데,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 보혈의 공로는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고 씻음 받은 것은 영원한 용서가 여러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영원히 의롭다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의로움 내 의로움, 예수 영생 내 영생.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구원 받는 것입니다. 2. 인간은 어떻게 거듭나는가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에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 ‘예수 죽음 내 죽음’ 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내 죽음을 예수에게 넘겨주면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부활은 나의 부활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로 2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질 때, 우리 다 무너지지 않습니까? 어떠한 사람이 저를 보고 “다 죽어가는 사람이 뭘 교회 돌본다고 야단을 하느냐?” 아마 내가 굉장히 미웠던 모양인 것입니다. “얼마 안 있으면 죽을 사람이 그래.” 그 말을 한 사람이 젊은 사람이 그렇게 말을 했기 때문에, “늙어서 죽고, 젊어서 죽는 것은 하나님이 아시지 내가, 우리가 알지 못한다.” 우리 인간의 삶은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은 집이 있어요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집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해서 죽어 부활해서 영생의 처소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빨리 주님이 이 땅에 들어오셔서 우리 죽지 않고 이대로 부활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은 틀림없지만은, 안 죽고 변화되는 것은 더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 여러분 예수님 강림하실 때 까지 기다려서 다 이대로 부활해서 승천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너무 잘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 보면 하나님이 엄청나게 사랑하고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3. 성도의 생명 활동 그러므로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거듭나서 우리 영혼이 육체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 속에 살고 있으면서 이제 성령님과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이 하나님의 영과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영은 생각을 통해서 성령과 교제하고, 꿈을 통해서 성령과 교제하고, 믿음을 통해서 성령과 교제하고, 여러분의 입술로 신앙고백을 통해서 성령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세상 사람은 육체의 영은 죽었기 때문에 영의 세계는 몰라요. 죽은 시체보고 아무리 고함쳐도 대답합니까? 그러므로 육체를 가지고 이목구비를 통해서 서로 대화를 하고, 영의 세계는 모릅니다. 여러분은 영혼이 살아서 육체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영생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생명은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건데, 생각을 통해서 대화를 같이 한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생각을 같이 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읽음으로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또 여러분께서 구체적으로 갖고 싶은 그것을 꿈꾸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같이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꿈꾸는 것, 다 막연한 생각은 막연하게 할 수 있지만은 꿈꾸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원하시는 바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령께서 들어와서 같이 일해주시는 것입니다. 믿음, 하나님 성령께서 여러분과 같이 믿어주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내가 심고 거둔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신다.’ 성령이 같이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과 더불어서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는 거듭난 성도의 생활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태복음 4장 4절)’ 우리 구원받은 사람은 말씀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 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한복음 14장 26절)’ 생각, 성령이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시고, 깨닫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로마서 8장 26~27절)’ 하나님 뜻을 따라서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도록 생각을 바꾸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설교를 듣든지, 성경을 읽든지, 생각이 마음속에 감동되면 성령이 그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하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하시고, 성령님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영적 양식을 먹게 해 주시고, 성령을 통해서 숨 쉬고 기도하는 것은 영적인 호흡이거든요. 성령이 여러분과 기도함은 호흡하게 하시고, 여러분이 능력이 없으면 성령이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 믿을 때 세상에 살던 것과 무엇이 다르냐 하면, 성령님이 여러분과 나에게 오셔서 인생을 함께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함께 살고, 기도를 통해서 함께 살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함께 살고, 믿음을 통해서 함께 살고, 다른 세상에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믿는 사람들과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4차원의 영성이라고, 안 믿는 사람은 그런 생활을 못 하죠. 믿는 사람은 생각을 같이 하고, 꿈을 같이 꾸고, 믿음을 같이 믿고, 입술의 고백을 같이 하고, 이 4중면을 통해서 하나님이 성령과 같이 하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보다도 그만큼 큰 세계에 들어와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믿는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 여러분이 들어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각을 통해서 살고, 꿈을 통해서 살고, 믿음을 통해서 살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살고, 그를 통해서 사니깐 크고 위대한 일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늘나라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로 12절에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자는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러분에게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 백성들을 더 돕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이 없으면 돈을 빌려다 쓰지 않습니까? 힘이 없으면 힘을 빌려 쓰지요. 우리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내가 생각이 부정적이 자꾸 되면 긍정적인 사람의 생각을 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함께 와서 긍정적인 생각을 빌릴 수가 있어요. 구체적인 꿈이 약해지면 꿈을 강하게 가지려면 꿈을 강하게 가진 사람과 같이 기도해서 꿈을 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도 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도 똑같이 함으로 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과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힘을 빌리면 자기가 생각할 수 없던 것이 힘을 빌려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 3차원의 삶과 4차원의 삶 그리고 하나님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 성령과 여러분은 영적인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8절로 11절에 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아주 지혜로운 말씀을 그 당시 그렇게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믿음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여러분에게 이런걸 나누어 주어요. 구체적으로 이런 은혜를 받도록 제가 여러분들 좀 더 강하게 이끌어 갈 작정입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분별의 은사 그건 성령이 여러분과 교제하면서 기대하는 대로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의 은사, 능력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그 다음에는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 이렇게 몽땅 그려진 은사를 주시는 것인데, 이것을 알고서 우리가 특별히 기도하면 그러한 은혜를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는 지식을 주시고, 영들 분별하여 귀신인지 성령인지 분별하게 해 주시고, 아 방언은 예언도 하고, 방언 통역도 하고, 방언도 하고, 발성의 은사를 주시고, 그러고 기적이 일어나게 기적의 은사, 능력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아주 희한한 성령의 은사를 주어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살게 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언제나 마음에 간직해야 될 것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 이걸 늘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값없이 주는 은사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로 2절에 있는 말씀도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느니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우리 장막집이 무너져도 우리는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있는 우리 처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귀찮스럽게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 처소를 가지고 내려와서 ‘영생하라’ 그것을 우리한테 바라고 원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었으면 안 믿을 때 사람과 틀린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고깃덩어리 속에 죽은 영혼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물정에 제한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3차원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 성령으로 거듭나서 우리는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꿈꾸고, 하나님 나라의 믿음을 가지고, 기적적인 말을 사용하며 살게 됨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됩니다. 우리는 신비한 세계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보배로운 피를 통해서 오중복음을 얻고, 삼중축복을 얻고, 성령으로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이 세상의 사람들이 체험할 수 없는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