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히 11:1-6) 2016.07.24. 주일4부예배 <서론>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인생의 문제를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장 6절)’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믿음으로 구하는 훈련을 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감각, 감정, 느낌 이런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가는 것입니다. <본론> 1. 기도로 구하라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마음에 평안이 올 때까지 꾸준히 주님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를 두고 간절히 기도할 때, 마음에 아주 별난 세계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 불안과 공포와 초조, 복잡한데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면 한참 만에 성령이 응답을 가지고 왔을 때는 마음에 다른 세상으로 옮겨온 것 같습니다. 아주 조용해지고, 고요한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응답을 많이 받아보신 분은 ‘하나님이 응답하시나, 안 하시냐’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마음에 평안인 것입니다. 아무리 야단법석을 해도 평안이 없는 데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불안과 공포와 좌절과 절망이 들끓는 곳에서 갑자기 평안의 나라로 옮겨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이 마음속에 세상의 시간과 공간을 쫓아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4차원적 평안이 마음을 점령하고, 그러므로 주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주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 주님 앞에 나아올 때, 주님이 은혜를 베푸셨을 때, 그 평안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세상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 나올 때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주님께서 결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28절로 30절에 보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며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야훼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평안인 것입니다.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일체 평안이 여러분 마음을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희한한 세상에 들어온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좌우간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람은 그 누구를 불구하고 인생들이 세상에서 느끼지 못한 평안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 마음과 생각, 이것이 마치 갈릴리 호수처럼 풍랑이 일어서 출렁거리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평안하고, 잠잠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주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가 생각과 마음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하나님의 평안이 마음과 생각에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이 모든 지각,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각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높은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점령하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러고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를 결심하고 ‘하나님을 만날 시간까지 뒤로 물러가지 않겠다.’고 각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를 통해서 마음에 평안을 얻고야 살 수 있을 정도의 시련을 많이 겪어 보았습니다. 아주 마음에 시련이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와서 견딜 수가 없을 때,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못 살겠다’고 생각할 때, 그때 조용한 곳에 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내려오시는데, 그 평안은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가지고서 마음을 추스러주는 것입니다. 행복이 그 불안과 고통 가운데서도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야 돼요. 문제가 있는데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문제가 있어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을 만나기로 작정을 하고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지 아니하면 일어나지 않겠다.’고 각오하고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여러분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2.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겨라 하나님을 기도로써 만나고 난 다음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여러분의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맡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68편 19절에 보면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날마다 여러분의 짐을 지시는 주인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를 찬송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고 주님이 초청하고 계시는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서 우리 주님께 맡겨버리고 마음을 다하여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아니하면 참으로 주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리면 평안을 반드시 체험해야 되고, 평안 다음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 무거운 짐을 다 맡겨 놓았습니다.”하고 일어나는데 무거운 짐이 어깨 위에 도로 내려앉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짐이 도로 어깨 위에 내려앉으려고 할 때, 그때 어떻게 그것을 피할 수 있냐하면 입술로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맡겼다. 마귀야 나를 시험치 말라. 너 짐들아,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물러가라!” 기도란 것은 꼭 꿇어앉아서 무엇을 달라고 간구하고, 찬양을 드리고 하는 이것만 기도가 아니라 입술로 원수들과 싸울 때 말하는 것 이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골리앗하고 다윗이 대면했을 때, 다윗이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말로써 대적한 것입니다. “너는 창과 칼과 단창으로 무장하여 나아오거니와 나는 네가 무시하는 만군의 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오노라” 그냥 이건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이건 대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귀를 대적하여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면 한 길로 왔다 일곱 길로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구하고 기도하는 생활만 하지 말고, 간구하고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마음을 짓누르면, 그때는 말로써 대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그 보혈로 씻음을 입었다. 허물을 사함 받았다. 그러므로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물러가라.”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괴롭히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보배가 되신다. 나의 저주와 가난과 고통을 예수님이 다 담당하셔 청산했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저주는 물러가라!” 이런 일대일로 대결해서 쫓아내는 이 기도가 대단히 모자랍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은 자꾸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붙들어 주십시오. 응답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의심과 불안이 떠나가지 아니하면 “이 내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또 간구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래도 의심이 떠나가지 않습니다. 그건 대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과 ‘마귀를 대적하라 저가 너를 피하리라(야고보서 4장 7절)’고 하셨으니 대적하는 기도도 같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미 굴러간 짐이 내 어깨 위에 도로 짊어지게 하려면, 우리는 마음으로 대적함으로 그걸 피해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사랑을 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에게 짐을 기도로써 맡기면 하나님이 영원히 거부하지 않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나는 새벽기도 때 다 맡기고 산다.”고 말합니다. 새벽에 나가서 기도할 때 “우리 남편도 하나님 맡깁니다. 아들도, 딸도 맡깁니다. 사업도 맡깁니다. 생활 전체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돌보아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임재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입니다. 즐겁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일어날 때 다시 남편도 주워 담고, 아들도 주워 담고, 딸도 주워 담고, 염려 근심을 주워 담습니다. 우리 여의도 성도들은 빨간 가방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빨간 가방에 내려놓았던 짐을 도로 다 주워 담아서 나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주워 담고 나갑니까? ‘주님, 주님이 맡아주실 것 같지 않아서... 우리 남편을 내가 안 돌보면 누가 돌보겠느냐? 포켓에 집어넣어라. 우리 아들도, 딸도, 우리 가족들을 포켓에 집어 넣어놓고 하나님 앞에 도움을 받지 못할 때가 오면 내가 책임지고 도와야 되지 않느냐.’ 그러한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의 한 가지 역사하신 것을 보면 그 다음 어떻게 역사하실지 추측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자기의 친아들,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안 주시겠느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너희 천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나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31~33절)’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예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해보지 못한 희한한 방법으로 예비해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계시므로 다 맡길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잠언서 16장 3절에도 ‘너의 행사를 야훼께 맡겨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믿으라 그러고 하나님께 짐을 맡기고 난 다음에는, 마음에 믿음을 단단히 가지고서 믿음의 세계를 침범해오지 못하도록 해야 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고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장 22~23절)’ 참 놀라운 말씀 아닙니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장 24절)’ 기도를 하고 구하고 맡기고 난 다음에는, 눈에는 아직 안 보이더라도 이미 받은 것으로 알고 행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늘 의심이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너무나 큰 보배로운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이가 그 아들과 더불어 무엇을 안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우리의 의지할 수 있는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반드시 받은 줄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하는 것이 믿음이요, 아직 내 손에 들어오지 아니한 것을 내 손에 들어온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의심은 마귀가 갖다 주는 것으로, 많은 성도님들이 “기도를 해도 자꾸 의심이 생긴다.”고 말하는데, ‘과연 될까? 할 수 있을까? 넌 할 수 없어. 그건 불가능해.’ 그런 생각이 계속 마음에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심은 마귀가 주는 것이니 우리가 마귀에게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세기 3장 4~5절)” 그렇게 유혹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와가 ‘진짜 그런가?’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선악과를 먹으면 우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경쟁을 해서 못 먹게 한다.” 마귀가 그렇게 꾀니깐 하와가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결국 죄에 빠져 하나님을 대적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만 것입니다. 의심은 이처럼 마귀가 사용하는 무서운 무기로써 의심하는 사람은 기도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같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마라’ 그와 같이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의심이 들어올 때에 의심을 단호히 물리치고, 좋으신 하나님을 굳게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심이 다가올 때 의심을 물리치는 것은 기도가 아니고 대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응답은 받았는데 자꾸 의심이 들어오니깐 아주 괴롭습니다. 제가 서대문에 목회할 때, 금요 철야기도 시간에 병 고침 받은 사람, 기적적인 체험을 한 사람 간증 시간이 있는데, 그때 연세대학교 학생 한 사람이 간증하던 것 내 평생에 잊어지지 않습니다. 위궤양으로 굉장히 괴로운 한 학생인데, 금요일날 철야기도회에 꼭 와서 기도를 받곤 했습니다. 근데 하루저녁에는 금요일날 기도 간증하겠다고 손을 들기에 간증을 하라하니까는, 사람들 앞에 나와서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역사해서 내 그렇게 쓰라리고 고통스럽던 위가 평안하고, 좋아집니다. 그러나 곧장 마귀가 도로 나에게 의심을 가지고 와서 내가 의심을 하게 되면 위장이 도로 아파집니다. 그러니까는 오늘도 위가 아팠는데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 이렇게 평안하고 좋아졌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낫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난 다음 그냥 가면 좋겠는데 “아이고 안 믿어지네.” 그 사람들이 다 웃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얼마나 답답하기에 간증을 하고 난 다음에도 불신앙이 다가오니깐 “안 믿어지네.” 그래 내가 그 청년에게 “안 믿어지는 원수하고도 싸워야 된다. 그 말을 하지 말고 다시 고통이 다가오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노라!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그렇게 대적을 하면 마귀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안 믿어진다는 것을 고백하면 마귀는 ‘내 꾀는 방법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고, 더 맹렬하게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기도를 방해하는 것은 감사와 찬송이 부족함으로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부인인 루스 벨 그래함 여사는 감사의 능력에 대해서 간증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잠을 자다가 문득 눈을 뜨니깐 아 마음속에 자기 아들 이름을 자꾸 들려오면서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찼습니다. ‘아유 아들에게 무슨 큰 일이 생기겠구나’ 그래서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문제를 생각하지 말고 감사할 것을 생각해라. 자꾸 너는 불행한 일만 자꾸 이야기 하는데, 불행한 일을 이야기하면 감당할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 사실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큰일 났다. 무서운 일이 생겨난다. 이 어찌할꼬. 나는 망했다, 나는 패했다.’ 이런 생각을 거듭 부정적으로 하면 결코 승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피난처요,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니 그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해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이다. 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괜찮다. 너 이 원수마귀야 물러가라.’ 꼭 대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위한 기도가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문제를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약속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성경책을 머리맡에 있는 것을 들고 펼쳤더니, 빌립보서 4장 6절의 말씀이 눈에 띄어 올라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 성구를 보면서 자신의 기도에 감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감사는 하지 않고, 간구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불을 켜면 어둠 속에 있던 바퀴벌레들이 순식간에 도망치는 것처럼, 누군가가 그녀의 마음속에 불을 켜 주어서 마음속의 두려움이 허겁지겁 다 도망을 치고 마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려움과 근심이 다가올 때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두려움과 근심걱정이 다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상황에 감사는 약방 감초처럼 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받은 축복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 축복이 연장되고, 받은 불행에 대해 감사하면 불행이 끝난다.”고 말했었습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좋을 때에든 힘들 때에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원한이 있으면 기도가 잘 안 나옵니다. 원한을 가지게 되면 자기 마음에만 부정적인 생각이 있을 뿐 아니라, 원한을 당하는 사람도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를 할 때, 원한을 갖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58년의 긴 세월동안 목회생활을 했습니다만, 제일 어려운 것이 미운 사람을 미워하지 못하는 것이 제일 힘들더라고요. 교회가 자그마할 때는 대화도 잘 되고 어렵지 않는데, 교회가 커지고 난 다음에는 여기에도 가도 부딪히고, 저기 가도 부딪힐 일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여러분께서 저를 모욕하고 공격한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훌륭한 장로님들이 모여서 그렇게 한 일이 있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모욕이 쏟아지고 있을 때, 마음에 고통이 굉장히 큽니다. 한 사람이 오른편 뺨을 치면 나도 오른편 뺨을 치면 좋겠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더구나 주의 종이 그렇게 하면 하늘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을 돌려대고,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을 주고, 굶으라하면 금식을 하게 되고, 이와 같은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번에도 재판이 끝나고 난 다음에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해서 크게 내려고 각 방송사에서 왔어요. 굉장한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와 우리 장로님들과 서로 피투성이가 된 싸움을 다시 일으키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나와 인터뷰하는 분이 굉장히 실망한 얼굴을 하더라고요. “안 밉냐?”고, “상대방의 마음은 좋겠지.” 싸움을 붙이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화를 내려서 계획이 망하는 것 원치 않겠느냐?” 그래 저는 “어느 교회가나, 어느 집단이 모이거나 반드시 사람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비평을 하게 된다.”고,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훌륭하시고 그 사람이 나를 욕한 것을 나는 원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분들의 마음대로 교회를 지키고 교회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일을 했겠지, 나쁘게 생각해서 그렇게 했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니까는 “아니 그럼 고발은 왜 했냐?”고. “고발은 빨리 문제가 해결되기 원해서 고발을 했을 것입니다만”,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느냐?”, “또 일이 안 생길 것입니다. 너무 급하게 서두르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시간을 두고, 내가 상대편의 상황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이해와 동정과 사랑을 가지고 일을 해야 됩니다. 교회는 사회와 달라서 사랑과 용서를 가지고서 대화를 하는 것이지, 주먹과 욕으로써 대화를 하는 곳이 아닌 것을 우리가 깨달아 알아야 된다.”고. 그러니 어떤 인터뷰하는 사람이 나보고 “그런 오랜 세월동안 어지간히 얻어맞으면서도 어떻게 염려가 되어서 빼빼한 사람이 된 줄 알았더니만 살도 찌고, 까딱없는데요? 어떻게 그렇습니까?”, “나는 당한 시련을 하나님께 감사드렸기 때문에 고통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좋은 일은 좋아서 좋고, 나쁜 일은 좋게 만들어질 것이니 좋고, 우리 하나님께 의지하고 감사하면 모든 것이 평안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서로 생각이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편에 서서 생각하고, 모든 시험과 환난을 하나님이 나를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시험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위해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고, 나의 요새가 되고,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니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지 않겠습니까? ‘천인이 내 곁에서 만인이 내 우편에서 엎드려지나 이 재앙이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시편91편7절)’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우리가 꼭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이 좋을 때는 좋아서 좋고, 나쁠 때는 좋게 만들어 줄 것이니 좋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라 좋은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나쁜 일만 생겨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니라’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해서 용서해주고 기도해주라고 했지, 때려잡으라고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교회와 사회가 틀린 점이 뭐냐 하면, 사회는 정의와 자기의 이익을 구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지만은, 교회는 사랑과 용서를 중심으로 해서 서로 대합니다. 우리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와 계실 동안에도 원수를 주님께서 저주하거나 죽이지 않았었습니다. 용서와 사랑, 그러고 다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잘못을 그대로 보고 정죄를 하고, 때린다면 살아남을 사람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않습니다(시편66편18절). 용서와 사랑을 마음에 품고서 하나님께 나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로 14절에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여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용서하고 사랑하라. 한번 따라 말씀해 보십시오. “용서하고 사랑하자”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바라는 바인 것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면 여러분도 시련을 당했으나 시련을 통해서 상처를 입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를 통해서 우리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4.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마음에 쉼을 얻으리라(마태복음 11장 28~29절)’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것은 잘 배우고, 남에게 교만하지 않고, 대화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화평을 하면 주님께서 굉장히 기뻐하시는 것입니다(빌립보서 2장 3~4절).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을 구하려 오셨지, 사람을 죽이려고 오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사람을 구원하려고 주님께서는 힘을 쓰고, 애를 쓰신 분이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결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 질병과 저주, 죽음이라는 짐을 대신 짊어져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 낙심하지 말고,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나가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간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십시다. 믿음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좋은 일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는 아버님하고 같이 살았는데, 큰 채는 높이 지었고, 그 밑에 심방돌을 주워서 큰 채에 있는 사람들과 말을 같이 했어요. 그런데 아버님께서 하루는 내가 큰 채 마루에서 있는데, 저 아래 밑에서 “용기야 날 좀 봐라.” 그래 내가 보니깐 “너 아버지가 너에게 거짓말 한 적이 있더냐?”, “아버지하고 내하고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에게 하나, 둘, 셋 할 테니까 안겨라.” 그런데 밑에 서 계시고, 나는 높은 툇마루에 서 있는데 ‘내가 뛰었다가 아버지가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겁이 나요. 그래서 “아버지 날 정말 받아줘야 돼요. 하나, 둘, 아유 못 해. 하나, 둘, 셋, 못 해.” 결국 내가 못 뛰었습니다. 왜냐면 내 눈에 보기에는 아버지가 날 받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사랑은 하지만은 힘이 없으면 못 하지 않습니까. 그럼 우리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 보고 말하는 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네가 쉼을 얻으리라”고. 주님이 이 시간에 “예수의 이름으로 뛰어서 내게 안기라”고 그럽니다. 오늘 여러분보고 “자, 레디, 고다! 하나, 둘, 셋” 뛰어서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고 안겨야 돼요. 할 수 있겠어요? 우리 주님은 아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믿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를 하나, 둘, 셋 받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인 것입니다. 주님이 “내가 멍에까지 다 준비해 놓았다. 하나, 둘, 셋” 죄인은 하나, 둘, 셋 하고 뛰면 평생을 용서와 의와 거룩함으로 구원해 주시고, 병든 자는 하나, 둘, 셋 주님께 뛰어 맡기면 주님이 받아 주셔서 모든 병을 고쳐주시고,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주님께 하나, 둘, 셋 뛰어 안기고 믿으면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고, 죽을 때도 주님께 의지하면 예수님 옆에 매달린 강도처럼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도록 주님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예수께로 다 나가십시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고, 능력이 많으셔서 여러분 문제쯤은 문제도 아닙니다. 이미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셨지 않습니까.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