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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봄의 법칙 (창 15:3-7) 2016.07.31. 주일4부예배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바라봄의 법칙’에 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결과가 그처럼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기록돼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객지에서 큰 부자가 되었고,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살아나고, 치료받고, 구원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본론> 1. 바라봄의 법칙 이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것은 성경에는 그렇게 기록한 데가 없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우리가 성경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에 어떻게 주더라는 것을 스스로 우리가 발견해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가 나이가 75살일 때인 것입니다. 옛날에 ‘아~ 굉장히 나이 많은 영감이구나.’ 생각했는데, 요사이에는 성경만 펼쳐보면 아브라함이 나오면 ‘내 동생이구나.’ 일흔 다섯이면 아직 팔팔 젊을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요청하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아들을 달라”는 것입니다. “아들을 주셔야 상속자를 세워서 후계구도를 확립하려고 하는데, 아들을 달라”고. 하나님이 아브라함보고 “내가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축복하고 축복하리라”고 했는데, 복의 기초가 되는 상속자인 아들을 주시겠다고 해놓고 난 다음 안 주니 굉장히 마음이 상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투정을 했습니다. “좋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안 주면 나는 우리 집에 기른 종을 양자로 입적을 시켜서 그 종에게 우리 가계를 이어나가게 하겠습니다. 하나님 종이 우리 가계를 이끌어 나가면서 야훼 하나님을 잘 받드는가 보십시다.” 투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사람아, 그렇게 화낼 것이 못 돼. 너의 후계자는 너의 몸에서 나올 사람이지, 종을 데려다가 후계자를 만드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소리 하지 말아라” 밤에 “아브라함아, 이리 좀 나와 하늘을 쳐다보자.” 그래서 아브라함이 밖에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별들이 보입니다.”, “얼마나 되느냐?”, “한없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굉장히 마음에 감동을 입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틀림없이 감동을 입고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그것을 믿으니 의로운 사람이라고 쳐 주겠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입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냥 기도해서는 안 되는데, 바라봄으로 아들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때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또다시 기도를 했는데, 이삭이라는 걸출한 아들을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내가 갖길 원하고 바라는 것을 마음속에 받아들인 잉태한 여인과 같이 가슴속에 잉태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가지고 싶은데, 그냥 ‘하나님 은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옵소서.’ 그것은 그냥 긍정적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지 꼭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꼭 이루어져야 될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에 바라는 것이 잉태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기를 잉태하지 않은 부인이 “나는 어린애를 낳을 것이다. 낳을 것이다.” 10년이 지나도 못 낳습니다. 잉태해야 애를 낳지, 어린애를 잉태하지 못했는데 애를 낳습니까? 기도도 꼭 한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꿈을 잉태해야 됩니다. 기도할 때 마음속에 내가 믿음으로 갖고 있는 그 꿈을 말하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교역자 세미나에 가면 강조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 성장은 하나님 말씀을 잘 전하고, 성도들이 필요한 것을 알아서 잘 기도해드리고, 그러면 회개하고 교회 나온다.”고. 그러나 그것을 실제적으로 이용할 때는 마음에 꿈을 꾸어야 된다. 교인들이 얼마나 나올 것인가 마음에 꿈을 꾸고 기도할 때, “하나님” 이 마음에 500명이면 “500명의 사람이 오시게 해 주시옵소서” 1,000명이면 “1,000명이 오게 해 주시옵소서” 꿈을 분명히 가지고서 바라보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슴속에 잉태하지 않고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응답이 안 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것인데,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히브리서 11장 1절)’ 실상과 증거를 마음속에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보고, 믿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것을 믿으면 의심만 생기고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의심을 극복하고 믿기 위해서는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제일 큰 무기인 것입니다. 의심이 오면 믿음으로 긍정적인 태도로써 저항하는 것입니다. 환자가 믿음으로 기도를 하고, 나았다고 바라보고 나가면 마귀가 와서 “너 안 나았다. 낫기는 뭘 나았어. 나은 증거를 내놔라.” 그러면 의심이 들어옵니다. “그래? 너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하다.” 하와가 선악과 나무 밑에 서서 ‘그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에 탐스럽기도 한 나무’라는 마귀의 꾐을 들었을 때, “그런가보다.”하고 따라간 것처럼, 우리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기도해놓고 난 다음에 “그거 안 된다. 응답 안 된다. 쓸데없는 짓 한다.” 마음에 의심이 생기고, 막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의심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기록하였으되 성경에 그렇게 말씀을 했다. 나는 말씀대로 믿는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던져라 해도 된다 그러더라.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마귀는 믿음의 신앙고백 앞에 절절 깁니다. 사람이 교회 나와서 “나 이제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면, “구원 받기는 뭔 구원을 받아? 너 같은 놈이” 그럼 어떻게 합니까? “아 그런가 보다. 구원 못 받았나 보다.” 아니요.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신앙에 의심이 오면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장 10절)’ 입으로 시인하는 신앙생활을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을 하면 믿음이 강해지고, 마귀는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을 시인했던 것입니다. 마음에 아무것도 없이 기도를 10년을 해도 헛수고 했는데, 이제 환상을 보고 그 자녀가 마음에 별들과 같이 많이 있는 것을 바라보고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내 자손이 별들처럼 많습니다.’ 의심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 별들처럼 많은 자손들을 내 마음에 이미 가지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믿음을 그렇게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기도응답 받기 위해서 부르짖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종이에 적어서 벽에 붙이든지 내 수첩에 기록해 놓든지 하고서 늘 읽어보고, 기도할 때 입술로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라는 바가 이루어 졌습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그러면 마귀가 한 길로 왔다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마음속에 잉태되어 그것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거의 다 응답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에 거역되지 않는 이상 응답 받는 것입니다. ‘너희 자식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자가 있겠는가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 주지 않겠느냐(마태복음7장9~11절)’ 참 솔직한 하나님의 심정을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많이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마음속에 꿈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잉태해서 가슴에 가지고 다니면서 기도를 하면 믿음이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한 종족의 아버지가 되어서 그와 같은 경험을 했는데, 그의 아들들 중에 야곱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은 이삭의 아들인데, 형하고 다투어서 살인극이 벌어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야곱을 자기 외갓집으로 피난을 보냈습니다. 그 야곱이 피난으로 외갓집에 있어서 목동일을 봐 주었는데, 외삼촌이 월급을 주지 않아요. 그래서 “외삼촌 나는 외삼촌하고 친척이지만은 일하고 난 다음에 월급을 주십시오. 공짜로 내 노동력을 박탈하십니까?” 그러니 외삼촌이 “어떻게 해줄꼬?” 이 야곱이 할아버지하고 아버지에게 바라봄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를 철저히 교육받은 것 같아요. “외삼촌 이 양무리를 치는데, 색깔이 있는 얼룩덜룩이는 전부 골라내서 따로 주고, 순수한 색깔만 가진 짐승 떼들을 내가 돌보겠습니다. 그 색깔이 얼룩덜룩이가 있고 반점이 있는 짐승들은 사흘길로 멀리 옮겨가서 사촌들이 그것을 돌보게 하고, 나는 순수한 색깔만 돌보는데, 그 순수한 색깔 중에 얼룩덜룩이 새끼를 낳으면 그것을 내 월급으로 쳐 주십시오.” 그러니 외삼촌이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는 좋다 말입니다. 얼룩덜룩이를 낳을 확률이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야, 너 똑똑하구나. 참 계산을 잘한다. 그래라. 얼룩덜룩이를 낳으면 네 월급으로 쳐주마. 그래야 양을 훔쳤다는 욕도 먹지 않을 터이니깐 그렇게 해라.” 그래가 삼촌은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기쁘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왜냐면 ‘저놈이 속았다. 이제 얼룩덜룩이만 많이 안 나오면 자기는 발을 동동 구를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야곱은 삼촌이 외삼촌이 떠나고 난 다음에 산으로 올라가서 자기가 부모들에게 배운 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버드나무, 심풍나무, 단풍나무 여러 가지 나무들을 베어서 껍질을 벗겨가지고 얼룩덜룩이를 만들어서 물구유 앞에 얼룩덜룩한 병풍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 떼들이 물을 마시면서 새끼를 배게 하는데, 생각해 보십시오. 양이나 염소가 짐승 떼들이 그 얼룩덜룩이 나무를 보았다고 “우리 얼룩덜룩이 새끼 낳자. 응? 레디 고!” 그래가 얼룩덜룩이를 전부 가졌다니 요사이 미친 사람이나 그런 이야기를 하지, 정신 똑똑한 사람은 안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뭇가지에 얼룩덜룩이를 만들어서 병풍처럼 물구유 앞에 세워 놓고, 자기는 팔짱끼고 ‘새끼들 가지면 얼룩덜룩이를 가져라!’ 속으로 그런 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짐승 떼들이 얼룩덜룩이를 보고 얼룩덜룩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야곱이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서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새끼를 얼룩덜룩이를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 병풍처럼 쌓아놓은 얼룩덜룩이를 보고 마음속에 ‘하나님, 얼룩덜룩이를 많이 주시옵소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내가 보는 거와 같이 저 얼룩덜룩이 새끼를 낳게 해 주시옵소서.’ 그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기도를 했는데, 새끼를 낳았다하면 얼룩덜룩, 낳았다 하면 얼룩덜룩. 외삼촌이 와보고 기가 막힙니다. 약속은 약속이니 다시 철회할 수는 없고, 전 짐승 떼들이 얼룩덜룩이들만 낳아서 나중에 야곱은 큰 부자가 되고, 외삼촌은 아주 쪼그라졌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우리가 지금 사는 형편이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곤혹스러운 때를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야곱과 같은 그런 꿈을 꿔 보면 좋지 않을까요? 주위 환경을 보고 ‘안 된다. 절단이다. 망했다.’ 그렇게 말하면 자동적으로 그것을 마음속에 꿈으로 품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망해 들어가고, 점점 더 안 되게 된다 말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들이 전부 합치고, 이웃들이 합쳐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된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찬송을 시작할 때 불러야 되는데,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여기까지 오니깐 성령께서 시작한 것처럼 성령께서 부르라고 하시니 불렀으므로 성령이 이제는 인수받았었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미안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우리는 불러야 돼요. 지금 어려운 시대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30배, 60배, 100배로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우리가 우리 본분에 맞는, 신분에 맞는 얼룩덜룩이를 바라보면서 입으로 시인하면 그와 같은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전 국민이 예수를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며 ‘우리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로 나가면 얼룩덜룩이 새끼를 낳는 것처럼 환경이 손대는 것마다 잘될 것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시간만 있으면 야곱과 같이 팔짱 끼고, 눈 감고, 우리 교회에 구원 받는 성도들이 떼를 모아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우리 교회로 보내주신 거예요.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한 유대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야곱은 어려운 객지생활에 이것을 이용해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봄의 법칙을 살펴보면 아주 놀라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엘리사가 도단성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새는데, 아람왕은 이 엘리사를 제거할 것을 굉장히 바랐습니다. 밤새도록 전 군을 동원해서 도단성을 에워쌌습니다. 아침에 엘리사의 종이 일찍이 일어나서 “아~ 잘 잤다.”하고 보니 온 성이 적군으로 포위가 되어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이제 죽었습니다. 엘리사와 그 종 자기 두 사람을 잡기 위해서 전군이 동원되어서 성을 둘러 진쳤으니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그는 뛰어 들어 왔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온 성이 적군으로 둘러 싸였는데, 우리 둘은 이제 잡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엘리사가 “네가 보는 눈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 그건 3차원적인 것, 합리적인 것, 이미 정해진 것을 따라가는 것이 3차원을 쫓아가는 것인데, 영안을 뜨고 보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군인들보다도 우리 내에 천사들이 더 많이 와 있다. 하나님. 이 종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그 눈을 열어서 성령이 와서 보여주는데 보니깐, 적군들이 포위한 그 성과 엘리사 사이에 천군천사가 빽빽하게 둘러 진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그 모든 적군을 다 포로로 잡아서 사마리아 성에 와서 점심 먹여서 “헛되이 날 잡으려고 하지 말고 너희 나라나 잘 돌보라”고 집으로 돌려 보내준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그 엘리사가 4차원의 영성을 사용한 것입니다. 여러분 3차원이라는 것은 물질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의 지혜로써 한정되어 있습니다. 4차원은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안 들리고, 손에 안 잡히는데도 불구하고 바람같이 역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3차원의 육체 속에 살면서도 속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적인 사람이 되었으므로,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 사건들을 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을 마음대로 못 합니다. 정해진 꿈을 꿔야 되고, 믿음도 기적을 바라는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창조적인 명령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 속사람이 기막힌 생각을 할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입으로 시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3차원의 제한된 상황을 떠나서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나가면 굉장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여러분이 평소에 못하던 꿈을 꿀 수 있으며, 믿음으로 기적을 기대할 수 있고, 입술의 말로써 영의 세계에 능력을 풀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4차원의 영성을 사용하면 여러분이 운명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바라봄의 법칙과 영생 바라봄의 법칙은 4차원의 영성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4차원의 영성을 사용해서 죽음에서 산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모세를 따라서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 너무 험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불평을 말하고 원망을 하고 반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불뱀을 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어 죽이라고 그랬습니다. 불뱀들이 생겨나서 광야에서 백성들이 뱀에 물려가지고서 쓰러져 죽는데, 백성들이 놀래가지고서 모세에게 나와서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가지고서 나무에 달아라. 높이 들어 사람들이 다 보게 하라. 믿고 보는 사람은 뱀에 물려도 다 낫고 건강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장대에 뱀을 만들어서 높이 달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걸 쳐다보고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반대하고, 고집을 부리고, 안 쳐다본 사람은 뱀의 독에 다 죽었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사용한 이야기도 바로 이 법칙을 말한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한복음 3장 14~15절)’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을 턱이 있느냐고 비웃을 지라도, 예수는 우리의 죄와 불의와 추악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를 매달렸으니, 우리가 그 예수를 구주로 바라보고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우리의 잘못을 다 책임져 주시고, 죄와 허물을 책임지시고, 의로움과 거룩함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라봄의 법칙의 제일 위대한 은총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죽음에서 생명을 얻었는데, 우리에게 굉장한 좋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원수의 공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우리가 다 이길 수가 있습니다. 갈보리 산 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는데, 그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기를 니고데모에게 ‘저를 바라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 일생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면 죄와 허물에서 용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바라보고 믿으면 모든 병에서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베드로전서 2장 24절)’ 그 다음 또 십자가를 바라보면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뱀을 쳐다보고 기적을 체험한 것처럼, 우리는 광야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은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어려운 시절에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으면 아브라함의 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일상생활에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산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시험과 환난이 안 다가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 우리 예수를 믿게 됐는데 왜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냐? 예수를 믿는데 왜 이런 병이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오느냐?”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를 믿더라도 세상에 다가오는 시험과 환난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다른 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런 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이기지 못하지만, 믿는 사람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그를 정복했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는 이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데 풍랑이 일어나서 배에 물이 가득해졌습니다. 거기 같이 탄 사람들이 “예수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데 왜 풍랑이 다가오는 것입니까?”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는데 왜 풍랑이 다가오냐? 예수를 믿어도 풍랑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럼 무슨 효과가 있느냐 예수 믿는 것?” 예수 믿는 사람은 풍랑이 다가와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풍랑을 물리치고 잠잠하게 만들 수가 있는 기도의 능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해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는 기도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담담하고 승리적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 14절로 15절에 말한 것을 우리가 단단히 마음에 기억하고 있어야 될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도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도다’ 우리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마음속에 빈 공간을 두지 않고 언제나 예수 십자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꽉 채워 놓고, 그 꿈을 통해서 기도를 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3차원의 세계에서 여기에 꿈을 마음속에 가지고서 그걸 정복하고 승리로운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 대한 근본적인 뜻을 성경에 다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원수가 오든지 환경이 어려우면 그를 통해서 믿음의 역사를 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한 축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들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고, 믿음을 꿈꾸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3. 바라봄의 법칙과 삶의 축복 우리는 야곱과 같이 우리 환경이 어렵더라도 잘 살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못 살아야 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믿은 사람이 못 사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텔레비전 설교를 듣고 난 다음에, 그 사람들은 나중에 “헌금을 더 많이 하라. 돈을 좀 더 하나님 사업을 위해서 내 놓으라”고 간청을 합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것이 축복이라고 하면서 돈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복을 받아야 돈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8장 9절)’ 주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해 주어서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영혼이 잘 돼야 돼요. 범사가 잘 돼야 돼요. 강건하게 돼야 돼요. 우리는 믿음으로 그 세계를 품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축복과 감정의 문제인데, 물질의 축복 뿐 아니라 행복한 삶을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분노와 같은 감정은 건강에 해롭고, 행복한 감정은 건강에 이롭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알려진 사실인 것입니다. 바라보는 것으로도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는 것입니다.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실험 참가자들이 행복한 표정이 담긴 사진을 0.03초 동안 보았을 뿐인데, 그 표정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행복한 사람이 느끼고 있는 표정을 0.03초 동안 보여주었어요. 그걸로 조사를 해 보니깐, 행복한 사람과 0.03초 동안 본 사람하고 결과가 똑같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행복한 사람 곁에 있으면 행복한 사람을 닮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정에서 “내 한사람 불평 말한다고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그래 그렇게 말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은 문제가 있어요.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불평을 말하고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다른 가족들이 전부 다 옮아가는 것입니다. 감기가 옮아가는 것도 여러분 한 사람이 들어와서 콜록, 혹, 콜록 기침을 하면 “아이 저 한 사람 뭐 저리 기침한다고 무슨 어려움이 있겠노?”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 모든 가족들이 다 옮아가지고서 콜록거리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참가자를 행복하거나 슬픈 감정을 느끼는 사람과 몇 분간 아무 대화도 없이 함께 있게 하고 난 다음, 방을 나설 무렵에 얼굴을 마주 댔던 사람과 비교해서 조사를 해 보니깐 똑같더라는 것입니다. 옮아가지고서. 그러므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것을 바라보고,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친구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행복한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의 성격이 옮아오는 것이고, 늘 원망, 불평, 탄식하는 사람하고 같이 지내면 그 사람과 같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굉장히 이웃 친구들이나 가족들에 의해서 영향력을 받습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사람은 무조건하고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더니만, 과연 큰 교회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그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제자들에게 “여의도에서 일하는 동안 월급을 받는 것보다도 월급을 내고 해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왕대밭에 왕대가 나지, 적은 훈죽밭에서 왕대가 나지 않습니다. 서울 지역에는 대나무 밭이 없으니깐 잘 모르지만 저는 대나무 밭이 많은 부산에서 살아서 대밭을 많이 보았었습니다. 왕대밭에 가면 왕대가 나요. 그러나 훈죽이라고 날씬한 대들이 대나무가 자라는 데 가면 왕대는 결코 나지 않습니다. 큰 교회 와서 목회를 하면은 이미지가 커지는 것입니다. 바라봄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게 꿈꾸고, 크게 믿을 수가 있으니깐 크게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사람들은 자기의 속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터전을 마련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 앞에서 피를 흘리고 여섯 시간 동안 고통당하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 “내가 다 이루었다.” 그러고 숨을 거두었었습니다. 다 거둔 것을 여러분 꼭 알아야 돼요.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은 것 우리가 새삼스럽게 이루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갚는 것을 다 이루어 버리셨습니다. 죄를 주님께서 죄의 값을 다 청산해 버려서 남은 것은 우리가 믿는 것만 남은 것입니다. 병도 예수님이 다 청산 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치료함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도 예수님이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만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천국도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 계신 곳에 가서 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옛사람은 청산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사람으로 주님을 믿고, 천당을 향해서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알고 보면 굉장히 축복을 받은 사람인데, 자기 스스로를 깨닫지 못하고 생각을 못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에 오중복음이 늘 가득하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예수님이 주신 축복을 알고 있어야 꿈을 꿀 때 예수님이 “내가 이루어 놓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 그 자체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굉장히 중요한 것은 여러분께서 바라는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직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직업을 얻게 될 것이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병은 물러갈 것이다.” 내 입의 말로 창조적인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4차원의 영성인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은 입술의 말로써 창조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애는 착하게 자란다.” 안착해도 착하게 자란다고 말을 하면 그 말이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과 말을 믿음으로 행하면 여러분의 세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이 굉장히 마음에 큰 부요를 가지고 있는 것은 내가 긍정적인 생각과 꿈과 믿음을 가지고 입술로 타협 없는 신앙고백을 하면은 우리는 그 세계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을 때 온 천지가 적막강산이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성령이 운행하셨습니다. 성령이 운행하시니깐 성령은 창조적인 생각과 계획과 믿음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합니다. “빛이 있으라. 궁창이 생겨나라.” 모조리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은 만물을 보니 “보기에 좋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을 따라 여러분이 시행하면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십자가 통해서 새사람이 되었으니 분명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고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을 살아가는데 목표가 분명하고, 꿈이 확실하면 성령이 들어와서 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하려면 못할 것도 많겠지만 성령이 들어와서 우리를 옷 입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이 성령이 입으시는 꿈이 되고, 우리가 목표가 성령이 우리와 함께 목표를 가지고서 우리가 믿음의 선언을 하면 성령이 그 말씀을 따라서 선언함으로 변화 받고 창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분명한 꿈과 목표를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메리 케이 애쉬(Mary Kay Ash: 1918-2001)라는 미국의 여성인데,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굉장한 사업에 성공한 여성인 것입니다. 그 여성이 자기는 미국에 여성들이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고 인권이 없을 때 그가 미국 여성들을 인권을 얻고, 남성들과 어깨를 나누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꿈을 꾸고 목표를 세워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는 돈도 없고, 남과 똑같은 탁월한 지혜도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꿈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서 기도하면서 사업을 했는데, 화장품 회사를 세웠는데 얼마나 회사가 잘 되었던지 미국 실업계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 사업가로서 손꼽았습니다. 그 여사장이 한 말은 “꿈을 가져라. 자기의 환경에 사람 힘으로 안 될 것이라도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꿈을 가져라.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줄 믿고 기도해라. 그러고 그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라.” 꼭 4차원의 영성을 좇아서 이 여인이 그렇게 했는데, 그렇게 성공한 부자가 됐었습니다. 아주 역사에 남을 만한 공로를 세운 여사장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별들을 바라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하늘은 성경이 우리의 하늘인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별들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원하는 것을 꿈으로 마음에 간직하고,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하고, 입술로 이루어진 것처럼 고백을 하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4차원의 영인데, 영이 들어와서 여러분과 같이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같이 일하게 되면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인간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이루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같이 일하기 위해서 생각이 긍정적이어야 되고, 반드시 꿈이 있어야 되고, 꿈이 없이 방황하지 않고 꿈이 있어야 되고, 그러고 믿음으로, 믿음으로 활동을 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긍정적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살아났다. 승리했다. 축복 받았다.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게 창조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나면 성령이 같이 역사해서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셔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꿈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창조적인 선언을 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습니다.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습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내일은 오늘보다 달라지고, 다음날은 금번 날보다 달라지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꿈꾸는 사람이 되십시오.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 잘나고, 머리가 좋고, 그러지 않다 할지라도 꿈을 꾸면 그 사람보다 앞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꿈을 같이 꾸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고 입술로 창조적인 고백을 하십시오. 나는 재밌는 이야기를 실화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 가정에 아버지가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그 아들이 하루 아버지가 직장에서 돌아오니깐 열심히 무엇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뭘 열심히 만드느냐?”하니까는 “아버지가 개를 사줄 줄 믿고, 개집을 짓습니다.” 그 전날 아들이 개를 한 마리 사달라고 그러는걸 아버지가 노(NO)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요, 노(NO)하지 마시고 더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고는 애가 개집을 짓는다 말입니다. “야 이 사람아, 내가 사주겠다는 약속도 안 했는데 왜 개집을 짓느냐?”, “아버지가 아들이 구한 것을 안 해줄 턱이 있습니까? 나는 무조건하고 아버지가 해줄 줄 알고 개집을 짓습니다.” 아버지가 “헛된 일 하지 마라. 나는 개 같은 것 안 가져 온다.” 그런데 집에서 밥을 먹어도 개집이 보이고, 직장에 가도 개집이 보이고, 사업을 해도 개집이 보이고. 아버지가 개집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개집을 ‘개를 사줘야 마음이 가라앉지 안 되겠다’고 개집이 다 지어질 쯤 되어서 개를 사서 아들에게 주고 개집의 영향력을 벗어났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이 아들이 그 마음속에 꿈을 꾸고, 믿고, 말했기 때문에 성령이 그와 더불어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다른 보혜사로서 여러분에게 같이 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처음 보혜사고 너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않고 다른 보혜사를 보낸다.”고 해서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다른 보혜사 성령은 4차원의 영인데, 지금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을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서 변화된 삶을 살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