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분위기와 행복
(시 103:1-5)

2016.08.28. 주일4부예배

<서론>
‘삶의 분위기와 행복’에 대해서 말씀 나누겠습니다. 3차원의 세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뚜렷한 계절이 있고, 계절 따라 분위기도 확 달라집니다. 4차원의 영적세계도 분위기를 보거나 만지거나 할 수 없는 성령님의 임재 속에 있는 것이지만은 영적인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희노애락이라는 분위기는 영적으로 뚜렷이 체험할 수 있지만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독특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느끼는 나의 분위기가 있고, 부모와 자식 간에 느껴지는 분위기, 부부간의 분위기, 이웃과의 분위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만날 때의 분위기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본론>
1. 천국 분위기
천국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마음 가운데 천국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마음이 천국입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그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꼭 기도원에 올라가지 않아도 일터에서, 매일매일의 평범한 생활 속에서 기도를 쉬지 않고 합니다. 그러고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단순한 언어가 천국의 분위기를 가슴 속에 이룩해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항상 기쁘고, 즐겁고, 천국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바람처럼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기도를 합니다. 그러고 범사에 감사하다. 좋은 일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일에도 감사하고, 희망이 있어서 감사하기도 하고, 절망적인 벽에 부딪혀도 감사하기도 하고. 그와 같이 우리가 억지로 시행함으로 말미암아 천국이 우리 속에 들어오고, 마음의 번뇌가 극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끝없는 사랑을 바라보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감동되고 감격하여 찬송하고 기뻐하면, 성령께서 놀라운 은혜의 분위기를 지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붙잡혀서 많이 얻어맞고, 감옥 튼튼한 곳에 들어가서 철고랑에 수족이 매인 채 그 밤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현실 환경을 보면 생지옥입니다. 마음에 고통스럽고, 몸은 피곤하고, 배가 고픕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천국이 마음속에 이루어져야 환경의 지옥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근데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바울과 신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사도행전 16장 25~26절)’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찬송할 수 없는 환경에, 생지옥 속에 들어가서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찬송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찬송하니 작은 천당이 마음속에 들어오는데, 그 천국이 마음속에 들어옴과 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그 옥터를 전부 흔들어 놓았어요. 모든 속박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 분노, 원한 이러한 속박이 우리를 묶고 있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속박이 끌러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은 천사와 같이 살지 못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두 다 죄를 짓습니다. ‘나는 죄를 지으니깐 이제 버림받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인생은 맑은 물에 손발을 씻고 난 다음에 진흙탕에 다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씻고 난 다음에 다시 진흙탕에 들어가고, 또 씻고 난 다음에 진흙탕에 들어가고, 자꾸 이럴 바에야 씻지 말아야 되거든. 근데 씻지 아니하면 영 더러워져서 못 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거듭나 성령님과 함께 동행 하면서도 죄를 짓고, 가슴을 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난 다음에도 또 죄를 짓고. 짓고 회개하고, 짓고 회개하고. “무슨 신앙이 이런 신앙이 있냐? 이럴 바에야 안 믿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하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영원히 우리를 씻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넘어져 일어나고, 넘어져 일어나고,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나가서 씻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요,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요한1서 1장 8~9절).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은 사람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늘 씻고,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보혈로 씻고 나오면 마음에 묶인 끈이 다 풀리고, 자유롭고, 평안한 마음이 들어가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분위기를 가정에 가져오기 위해서는 가정예배가 있어야 되고, 새벽기도회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바람과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3차원과 차원이 높은 4차원의 세계의 그 경계선에 하나님이 언제나 계시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외국 사람들은 새벽 기도하는 것을 상상을 못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잠을 안 자고, 기도회를 하고 난 다음에 하루 종일 졸음이 와서 어떻게 하느냐?” 그러나 우리는 아예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 습관화 돼 있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할 때 제일 괴로운 것이 새벽기도입니다. 새벽잠을 못자고 난 다음, 그날 하루 종일 심방을 하면 심방하면서 졸고, 기도하면서 졸고, 그러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기도회에 나가 말씀을 증거 하니깐 할 말이 없어요. 설교하려고 해도 할 말이 없어 오늘 할 말을 벌써 어제 다 해 버렸고, 굉장히 그게 괴롭습니다. 부모님들이 예수 잘 믿는 자녀들 중에 한 자녀를 지명해서 “너는 목사 되라. 너는 목사 되라.” 그러면 저는 같이 있어서 그런 격려를 안 합니다. 목사 돼 가지고서 새벽기도회 어떻게 하려고.. 그 어린아이의 부모가 “아이 목사님 좀 격려 해 주십시오.” 격려 할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자명종을 시간을 맞추어 놓고, 세시 반이면 따르릉 해 가지고서 일어나서는 옷 입고, 세수 하고, 화장 하고, 그 다음에 성경책 들고 길을 건너서 뛰어서 가면 교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번은 부흥회를 갔다가 늦게 들어와서 잤는데, 꼭 잠이 들락 말락 해서 있는데 자명종이 웁니다. 깨어 일어나서 급히 얼굴을 씻고 성경을 챙겨가지고서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강단에 뛰어 올라갔는데,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배를 안고 웃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파자마를 입고 왔어요. 너무 급하게 온다고 옷 갈아입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 또 뛰어 나가서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뛰어 올라오니깐 시간이 너무 늦어서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아유 미안합니다. 새벽기도를 오늘 못 하게 되었군요.”, “아이 새벽기도 하는 것 보다 더 재밌습니다. 하나님 위해서 옷 갈아입는 것조차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행복한 일입니까. 너무 자주는 하지 말고 가끔가다 그렇게 하세요.” 가정예배, 새벽기도회 이런 모임에는 하나님께서 오셔서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종이 조각도 맞들면 낫다고, 우리가 새벽기도, 가정예배 등은 함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잣집하고 같이 살아 필요할 때 돈을 빌려 쓸 수 있으면 좋지 않습니까. 믿음도 믿음이 강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기도를 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신 기도 좀 해 달라고 하면, 대신 기도하면 그건 빌려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꼭 내 기도 내가 해야만 응답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 많이 하고, 기도 잘 하는 사람에게 가서 기도를 빌리면 상당히 내 기도 생활에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러고 두세 사람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 큰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 보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새벽기도를 하셨습니다. 시편 46편 5절에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기도하러 나온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고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벽기도 나오는 것은 상당히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새벽기도를 함으로, 새벽 기도하는 풍습이 온 세계를 변화시키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감사는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길인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편 23절)’고.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사람들도 한 가지 아닙니까? 자식이 부모님의 슬하에서 사랑을 받고 자라면서 부모님이 무엇 한 가지라도 해주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절을 하면 마음에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헌데 “아버지 어머니인데 뭐 감사할 필요 있느냐?” 감사를 안 하면 부모님 마음에도 괘씸하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놈 아무리 해줘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안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구하는 것을 주실 때, 그 자녀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격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말을 하면 하나님 마음에 영화로움을 느끼십니다. “야~ 자식 키워 보람 있구나.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이 가치가 있구나.” 영광스러움을 느끼고 그 이후로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아끼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갈보리 십자가는 극단적인 고통인 것입니다.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괴로움을 겪었다고 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여섯 시간 동안 못 박혀서 피 흘리며 달려진 것은 처음인 것입니다. 로맨틱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웠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사람을 대신해서 극한의 고통을 당할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의 아들이 그 말을 할 지경이면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 것입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셨습니다. 인류의 죄악을 철저히 청산하기 위해서.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가장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냐. 그 십자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큰 고통을 당한 곳이 십자가인데, 그 십자가 고통이 우리 인생들에게 축복을 가져온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보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목회를 하면서도 마음이 우울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비결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는 주님의 슬픔이 극에 달았을 장소에서 가장 큰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갈보리는 주님의 슬픔이 절정에 달했던 곳이지만은 주님의 백성인 우리의 슬픔이 갈보리에서 그친다.”는 것입니다. 갈보리 건너서 슬픔이 우리를 공격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극한의 고통을 갈보리 십자가에서 극복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과 괴로움이 있을 때,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갈보리 십자가를 향해서 입을 넓게 열고, “주님, 주님이 나의 고통을 아시죠? 주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사 사람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이 고통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시옵소서.” 주님이 그 마음에 반드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극단의 고통을 극복한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 마음에 고통이라는 것은 그 주님의 고통에 비교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 십자가를 향해서 울고, 십자가의 고통을 끌어안으면 인간 고통은 희한하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위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고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갈보리는 주님의 슬픔이 절정에 달한 곳입니다. 그 때문에 주님의 백성인 우리의 슬픔은 갈보리에서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슬픔을 십자가에서 다 감당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바라보면 슬픔은 우리가 이기고, 다시 우리를 슬픔이 점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를 띠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30편 11절에 있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된다. 요사이 젊은 청소년들의 예배시간에 가보면 굉장히 몸을 많이 놀리고 춤을 춥니다. 나는 그 성경 구절을 모를 때, “하나님 앞에 경건하지 못하게 저렇게 해서 되냐? 하나님이 용서 해 주시겠냐?” 그러다가 시편 30편 11절을 보니까는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를 띠우셨다’ 그러니 춤을 추어도 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 보는 방 안에서 문 채워놓고 내가 춤을 춰 보니까는 기분 좋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춤을 추십시오. 하나님이 춤추는 것을 보고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2. 감사를 고백하면 천국이 임한다(큰 소리로 회개, 감사 믿음의 고백을 하면 천국이 임한다)
큰 소리로 회개하고, 감사 믿음의 고백을 하면 천국이 가슴에 임하는 것입니다. 묵상으로 기도해도 되지만은 하나님은 큰 소리 내어서 기도하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큰 소리로 감사와 믿음의 고백을 하면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30편 11절로 12절에 보면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야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지백체를 다 사용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4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하나님 앞에 나가려면 감사를 하면 문에 들어갑니다. 찬송을 하면 하나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우리가 하나님 곁에 나가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성경에도 시편 81편 10절에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나님은 채우기를 원하시지 않습니까. 엘리사의 제자가 자기 부인을 두고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부인이 자기 남편이 진 빚을 다 청산하고 나니깐 아무것도 없습니다. 빚쟁이들이 애들을 팔아서 빚을 챙겨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엘리사에게 나가서 간청을 했습니다. “당신의 제자인 저의 남편이 빚을 이렇게 많이 지고 죽어서, 빚을 못 갚으니깐 빚쟁이들이 자식들을 다 팔아서 빚을 갚게 하겠다고 했는데 좀 살려 주십시오.” 그러니깐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난 다음에, “당신 집에 무엇이 있습니까?”, “병에 기름이 좀 담긴 것이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온 이웃집에 그릇을 빌리십시오. 넓은 터전을 마련해서 그곳에 그릇을 줄 지어 놓고 기름을 갖다가 부으면 나중에 그 기름으로써 빚을 청산하십시오.” 그래서 집에 돌아가서 애들에게 “이웃에 다라이, 병, 그릇 할 것 없이 다 빌려오라”했습니다. 잔뜩 빌려왔는데,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기름병에 기울여 기름을 부으니깐 기름이 자꾸 나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이고 열두 바구니 남은 것처럼, 있는 것이 또 더 있고, 또 더 있고, 그래서 기름이 꽉 찼습니다. 나중에 그 여인이 “여기에 그릇 더 가져오너라.”, “엄마, 그릇이 없어요.” 그러니깐 기름이 툭 그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릇을 준비하고 나가면 그 그릇에 차이도록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입을 넓게 열지 않고 하나님께 원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입을 넓게 열라 한다고 집에 가서 입만 아~ 열고 그렇게 하지 말고, 꿈을 크게 가지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꿈을 크게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 마음속에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라는 긍정적인 마음인 것입니다. 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에 소원이 생기지 않습니까? 소원이 꿈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소원이 꿈인 것입니다. 그 꿈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꿈이 없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채워주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하나님이 우리 곁에 오시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마귀가 곁에 오는 것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곁에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믿음을 주시고, 기적을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계신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립보서 4장 6절)’고 말씀하신대로 같이 계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채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노먼 빈센트 필 목사님이 미국에서 유명한 백화점 왕인 페니가 95세였을 때에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인생을 살면서 온갖 어려운 문제를 다 겪었을 텐데, 당신의 문제 해결 철학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페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어떤 문제를 만나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문제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하나하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극복할 때마다 내가 믿음이 강해지고, 앞으로 더 큰 문제를 대면할 만반의 준비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려움을 만날 때 감사하는 사람은 절대로 인생을 실패하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라(하나님의 은혜를 소리 내어 감사 찬양 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소리 내어 감사 찬양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로새서 3장 16~17절)’ 우리 생활 속에 풍성한 감사를 하면 감사가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감사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감사의 탑이 쌓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지내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과 탄식을 하면 하나님이 떠나가셔도, 감사를 하면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은 여인이 주님을 감동시킨 것을 봅니다. 예수님이 어느 마을에 들어가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있는데, 그 이웃집에 있는 죄인 여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몰라도 큰 죄가 있는 여인이 향유 옥합을 들고 와서 예수님 뒤로 와서 예수님 발 위에 눈물을 뚝뚝뚝뚝 흘립니다. 옛날에 신발을 신지 않고 샌들을 신고 다닐 때였는데, 눈물이 흘러가지고서 먼지가 진흙이 된 것입니다. 자기 머리털을 풀어서 그 예수님 발을 닦고, 그러고 옥합을 기울여서 향 기름을 그 발에다 부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예수님이 죄인 여인이 와서 예수님 발에 눈물을 흘리고 머리털로 닦고, 기름을 붓고 하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지요. “물러가라! 어디 예수님 앞에 와서 이런 짓을 하느냐?”고 그럴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그와 같은 예배에 감동함을 느꼈습니다. 가롯 유다와 다른 제자들이 모여서 “어허이, 왜 저런 짓을 해? 저 기름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야지. 이렇게 낭비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것 위해서 낭비는 하지 말아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낭비하는 것은 거룩한 낭비를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님 위해서 낭비를 한다면 하나님은 그 낭비를 거룩한 낭비로 생각하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죄인 여인의 예배를 받고 말씀하기를 “이 복음이 전파될 때에는 세상 끝날 때까지 이 여인이 한 일이 말해지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제가 말한 것도 예수님의 그 예언이 저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예배드린 것은, 예수님이 죽을 때 시체 위에 뿌릴 기름을 미리 부어주었다고 예수님이 말했었습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6장 12~13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 103편 1절에서 5절까지 보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할 일이 많습니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첫째가 뭐냐,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한 가지 죄가 아니라 온갖 죄를 주님께서 사하여 주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한 가지 병이 아니라 모든 병을 다 고쳐주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네 소원’이라는 것은 ‘네 꿈을 이루어 주시사’ 신앙 속에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주 예수님을 경배하고, 감사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감사는 마귀를 내쫓습니다. 유대 나라에 사울 왕이 왕일 때, 다윗이 사울의 집에 가서 음악을 틀어주었습니다. 사울에게 귀신이 덮치면 고함을 치고, 창을 던지고, 야단법석을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곳에 가서 기타를 타고 찬송을 하면 귀신이 쫓겨 나가고, 사울 왕이 하하하하 웃고, 박수를 치고 좋아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건 마귀가 찬송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 개척할 때, 정신병이 든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 귀신을 쫓아내는데 귀신이 쉽게 안 나갑니다. 1시간에서 3시간, 많을 때는 6시간 계속해서 기도를 해야 되는데, 참 지루하지만은 그렇게 꾸준히 대결을 하면 귀신이 쫓겨 나갑니다. 그런데 귀신을 쫓아내려다가 피곤해가지고서 잠시 동안 쉬면서 찬송을 부르면 귀신 들린 사람이 귀를 손으로 막으면서 “찬송하지 마라! 찬송하지마라!” 찬송하지 말라고 고함을 치는 것입니다. 경험상으로 보니깐 찬송을 굉장히 싫어해요. 그러고 사울의 경우를 보니깐 다윗의 찬송에 사울에 덮쳤던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을 보고, 그 다음부터 찬송을 많이 부르면 귀신이 시험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우리 집안에 우환질고가 다가올 때 찬송을 많이 하면 귀신이 쫓겨 나가고, 우환질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찬송은 성령님을 불러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데,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감사드리면 하나님이 유리병과 같이 계실 처소를 우리가 마련해 드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분위기가 임한 개인이나 가정, 사회, 교회가 이 세상 삶을 기뻐하게 하고, 살 수 있게 하고, 부요케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그 얼마나 큰 영광인 것입니까.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구하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면 찬송을 통해서 마귀와 귀신의 역사를 다 쫓아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될 일인 것입니다. 아멘.